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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어스래빗은 데뷔 2주년을 맞이해 팬 콘서트를 가졌다. 현장 관람은 그린라이브 어스래빗 채널 유료 팬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예매가 진행되었으나, 온라인 관람은 아무 제약 없이 그린라이브를 통해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세트리스트는 팬들이 팬콘에서 듣고 싶다고 투표한 곡들로 채웠다. 미니 게임이나 토크 주제, 몇몇 무대의 의상 컨셉도. 그중 제일 반응이 좋았던 건 슈트에다 안경을 쓰고 한 무대였다.
-이것이 바로 평균 키 179.925 아이돌그룹의 슈트핏 간지다!!!!
-반올림해서 180으로 칩시다ㅜㅜㅋㅋㅋ
-범인은 박..ㄷ...ㅏ..라...ㅁ....(오타아님)
-나 원래 유사 연애 이런 거 이해 못 했는데 오늘 미래의 쟤네 마누라는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니 빡 솟은 질투심이 오존층을 뚫어버림ㅂㄷㅂㄷ
-멍멍이 간식 맛있게 훔쳐먹던 이건우는 어디 가고 슈트핏 쩌는 쎅시한 남정네가
-단체로 지팡이 휘리릭 칼각으로 돌리는 거 반칙 아니냐고
-오존층을 뚫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님아ㅋㅋㅋ
보컬 라인과 랩&퍼포먼스 라인의 파트 바꿔 부르기도 반응이 좋았다.
-강보배 그 얼굴로 이럴 거냐ㅋㅋㅋㅋ 아 웃음벨 터졌넼ㅋㅋㅋ
-보배 고음불갘ㅋㅋㅋㅋㅋㅋㅋ
-머징 사자톢도 노래 엄청 잘하는데..?
-막내 목에 핏대 무슨 일이냐
-우성아 힘내!!!!!!!!
-서한율의 랩은 마치 딕션과 박자가 딱딱 맞는 밀당 없는 AI 같다
팬콘 다음 날. 한율은 강의 및 과제를 위해 오래간만에 등교했다. 어차피 출석 일수가 모자라 대부분 F를 받게 되겠지만, 스케줄도 없이 국내에 있으면서 등교하지 않으면 나중에 말이 나와 귀찮아질 터다.
“너 월드투어 간다고 하지 않았어? 벌써 끝남?”
강의실로 들어가자 고재영이 놀란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다른 학생들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 시간이 나서 과제도 할 겸.”
“여기 앉아. 자리 비었어.”
한율은 눈이 마주친 선배나 동급생에게 묵례하며 자리에 앉았다.
“너 기사 뜬 거 봤다. <고양이 난로>, 일본 OTT 플랫폼에서 1위까지 찍었다며? 축하한다, 야.”
“땡큐.”
“…되게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냐?”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 시차가 왔다 갔다 해서.”
“하긴. 그럴 만도 하겠…. 저기요, 몰카는 범죄거든요? 핸드폰 내리시죠?”
말을 하던 고재영이 돌연 누군가에게 날 선 목소리로 경고했다. 멀찍이서 핸드폰으로 한율의 사진을 몰래 촬영하던 두 여학생이 움찔 놀라며 손을 내렸다.
“사생도 아니고, 초상권 침해 모르나 진짜.”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던 두 여학생이 이내 고재영에게 재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으나, 고재영은 ‘뭐, 왜.’ 이런 시선으로 맞받아쳤다.
“그러지 마.”
“어?”
“너 내 경호원 아니잖아.”
“그럼….”
커흠. 고재영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친구?”
“그냥 같은 고등학교 나온 얼굴만 아는 사이로 해두자.”
“…하. 건조한 널 보니까 마른오징어에 맥주 한잔하고 싶다. 아, 그런데 너 오후에 바쁘냐?”
한율은 교재를 펼치며 대답했다.
“과제 해야 해. 그리고 술은 안 마셔.”
“아니, 오후에 내가 속한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 연습 있거든. 심심하면 놀러 오라고. 선배님들이 너 데리고 오면 나 칭찬해준댔거든. 휴학하거나 졸업한 선배님들도 너 오면 바로 달려온다고 했고.”
한율은 고재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진짜 바빠. 나도 콘서트 연습해야 하거든.”
“그래.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했어. 음, 어쩔 수 없지.”
고재영은 아쉬운 티를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틀 후인 17일. 어스래빗은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19일엔 시카고, 21일엔 애틀랜타.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한율은 중간고사 핑계를 대고 다시 귀국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만류했다.
『한율아, 너무 무리하지 마. 어차피 학위는 너한테 크게 중요하지 않잖아. 그리고 다음 달도 거의 출석이 불가능해서 이미 학점은….』
하지만 일부러 한국에 돌아와야 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기에, 한율은 시차로 피곤한 눈을 끔뻑거리며 숙소와 학교, 본가를 차례대로 찾았다.
“달냥, 마중 나온 거야?”
므앙.
한율은 현관문 앞까지 마중 나온 달냥을 품에 안았다. 모친이 안쓰러운 얼굴로 다가와 한율의 등을 토닥거렸다.
“많이 피곤하지? 일단 씻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차려놓을 테니까 먹고 푹 자.”
“네.”
그날 밤, 한율은 달냥을 데리고 함께 잤다. 한율과 같은 베개를 베고 자는 달냥의 몸은 새벽 내내 아스라한 푸른 빛으로 반짝거렸다.
시간은 바쁜 투어 일정과 함께 정신없이 흘렀다.
26일은 올랜도, 28일은 뉴욕 콘서트. 공홈에는 기재되지 않았으나, 30일과 5월 1일 이틀 동안엔 6월에 발표할 디지털 싱글 의 M/V 촬영을 진행했다.
뉴욕 그리고 런던에서.
처음으로 연한 금발로 탈색한 길우성은 제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나의 건강했던 두피와 찰랑거렸던 머리카락이…!”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할래?’라고 물었을 때 좋다고 나선 건 길우성 씨 본인이었죠?”
“전에 한번 탈색했을 땐 이렇게까지 안 상했었는데…. 써한이 금발로 탈색했을 때도….”
“한율이가 피부와 두피가 굉장히 튼튼한 특이 케이스란다, 막내야. 전에 나 탈색했을 때 매일 헤어 팩하면서 신경 쓰던 거 생각 안 나니?”
“어흑…. 벌써 탈모 오면 어떡하징….”
3일은 예정대로 런던에서 콘서트를 진행했다.
유럽 투어의 첫 번째 도시.
다행히 티켓은 모두 팔렸지만, 유럽은 이번이 첫 방문이라 많이 걱정했었다. 하지만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자마자 느낀 건, 이들도 북미 투어 때 만난 관객들처럼 ‘어스래빗’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괜히 긴장하거나 겁먹을 필욘 없었다.
그러나 이틀 후인 5일. 프랑스 파리 공연장에 들어섰을 땐 퍽 긴장했다.
“부, 불어 공부 많이 한 사람…?”
“겁먹지 마! 우리에겐 통역사분이 계신다!”
7일엔 파리 교외에 있는 스튜디오 세트장에서 M/V의 남은 부분을 촬영. 8일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동해 그린라이브 영상 콘텐츠를 촬영했다.
“일요일에 베를린 콘서트 끝내면.”
리스본의 호텔 레스토랑. 핸드폰 달력으로 일정을 확인하던 박가람이 실실 웃었다.
“드디어 이틀 연속 푹 쉴 수 있어.”
“한율이 넌 설마 지난달처럼 또 학교 가겠다고 가는 건 아니지?”
“안 가요.”
지난달 달냥에게 마나 적응 훈련을 시키면서 아주 소량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그 작은 몸뚱이 구석구석 마력이 스며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이번 투어가 끝난 뒤에 살펴도 무방할 터다.
“투어 도중 시험 보러 올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정이 크다고, 인터넷에서 막 너 칭찬하고 그랬는데.”
“그랬어요?”
“응. 그래도 안 가니 다행이다. 자꾸 장거리 비행기 타는 것도 피곤하잖아.”
“그럼 우리 13일에 뭐 할까? 아니, 13일은 하루 푹 쉬고, 14일에 잠깐 놀러 가는 거 어때? 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오 팀장이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
“안 됩니다. 컴백 무대 연습해야죠. 회사에서 14일, 15일에 사용할 수 있는 연습실을 빌려놨습니다.”
“…….”
“이번 안무가 참 어렵잖아요? 그리고….”
오 팀장이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려다 말았다. 멤버들은 그의 시선을 쫓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턴가 몇 번 스치며 본 사람 몇몇이 자꾸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같은 호텔을 예약해 레스토랑이나 로비에 죽치고 있다가, 어스래빗 멤버들이 이동하면 그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개중 한 명은 미국에서부터 본 얼굴이었다.
“후….”
길우성이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식으로 많아진 인기를 실감하고 싶진 않았는데.”
“나 지금 우성이 말, 예전에도 들은 것 같은데.”
“우리 졸업식 때요.”
“아.”
“어쨌든 안전상의 이유도 있으니.”
오 팀장이 설명을 마무리했다.
“관광지처럼 사람이 많은 장소는 최대한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호텔 객실에 처박혀서 작업이나 하죠, 뭐. 경호원 형들도 쉬어야 하고.”
“음. 나도 객실에서 온라인 강의 듣고 과제도 해야겠당.”
한율은 교수의 지목으로 자신과 같은 조가 된 조별과제 멤버들을 떠올렸다.
“연습실에 가도 온종일 연습만 할 건 아니죠? 저도 해야 할 과제가 있어서요.”
아마 지금쯤,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연 중인 한율이 맡은 바를 제대로 해줄까 노심초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박가람이 차남석의 등을 토닥거렸다.
“관광 못 한다고 너무 낙담하진 마.”
“안 했는데요.”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5월 31일.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
[어스래빗, 10개국 15개 도시 ‘The Tour’ 성공적 마무리!]
[올해 데뷔 3년 차 보이그룹 어스래빗이 북미·유럽·호주 10개국 15개 도시에서 ‘The Tour’를 진행했다.
(사진=WB래빗 엔터테인먼트)
데뷔 초반부터 세련된 안무와 표정 연기, 뛰어난 무대 매너로 서서히 국내 인지도를 높인 어스래빗은 작년 8월 뉴욕 로 처음 북미 K-POP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이후 아시아 팬콘 투어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글로벌 대세의 길로 발을 들였다.
이번 월드투어 ‘The Tour’는 전석 매진을 기록…(중략).]
-얘네 뜬 거엔 치트키 같은 멤버도 한몫하지 않았나?
-유럽 쪽은 조금 아슬아슬했던 게, 티켓 판매 속도가 미국보다 좀 느렸다함. 그런데 북미 투어 반응보고 어?? 괜찮나?? 하는 호기심이랑 OTT에 풀린 고양이 영화 보고 어?? 하면서 살피다가 콘서트까지 간 관객들이 많았다고ㅇㅇ
ㄴ세트리스트도 막 귀여운 척하는 노래보다 시원한 칼군무나, 무겁지만 분위기 있는 것 위주로 넣음.
-더 자라라 쑥쑥
-작년에 우리 반 남자애들이 어스래빗 노래 커버했는데... 세상 그렇게 오글거리고 어색한 중2병 잔치가 될 줄 몰랐다.. 그때 무대 연기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다..
ㄴ동감이요ㅋㅋㅋ 어스래빗 노래는 어스래빗 아니면 은근히 소화하기 힘든 분위기? 그런 게 있더라고요ㅎ
ㄴ어스래빗 특:무대 연기 장인들만 모임(진짜 연기 장인 포함)
-많은 분이 어스래빗이 서한율이 캐리해서 떴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아닙니다. 드라마나 영화 보고 팬이 되어서 비싼 콘서트 티켓을 산다? ㄴㄴ 시작은 서한율에 관한 호기심이었겠지만 결국엔 어스래빗 뮤비나 무대 영상, 콘텐츠까지 하나하나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입덕한 분들 꽤 있습니다.
ㄴ미국 사는 제 친구도 그러더라고요. 처음엔 우연히 그라 영어극장 보고 귀여워서 웃었다가, 노래가 궁금해서 무대 영상을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멋있어서 그 갭에 치여서 또 다른 영상 찾아서 보다 보니 팬이 되었다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인 학생입니다. 여기까지 콘서트 하러 오는 한국 아이돌이 별로 없어서 보러 갔는데 진짜 열심히 하더라고요ㅎ 괜히 제가 다 뿌듯했음ㅎ
-님들 어스래빗 신곡 뮤비 티저 뜸ㅋㅋㅋㅋㅋ
ㄴ????
ㄴ오늘 월드투어 끝냈는데요?
[월드투어 성공 어스래빗, 7일 신곡 깜짝 발표 예정]
[어스래빗 첫 디지털 싱글 M/V 티저 반응 폭발]
[4세대 K-POP 글로벌 돌로 부상 어스래빗, 11일 컴백!]
[어스래빗, 11일 <락뮤닷>에서 컴백 무대 최초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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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어스래빗 오늘 2일 귀국… 해맑은 인사]
“…우와.”
6월 2일 오후. 약 한 달 반 만에 숙소로 돌아온 어스래빗 멤버들은, 거실 상태를 보곤 잠시 할 말을 잃고 망연히 섰다. 거실엔 투어 기간 팬들에게 받은 선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쿵. 멤버들의 캐리어를 함께 옮겨준 조유찬이 손을 탁탁 털었다.
“이탈리아랑 러시아, 호주에서 받은 선물은 아직 안 들어왔어.”
“들여오느라 이런저런 절차 밟는 것도 일이었겠네요…. 고마워요, 형. 수고하셨어요.”
“수고는 너희가 더 했지. 그럼 다들 푹 쉬어. 내일 보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형들.”
멤버들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매니저들을 배웅하곤 다시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박가람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46분. 정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조수, 커터칼.”
“여기 있습니다.”
강보배가 핸드폰으로 유명한 의학 드라마 OST를 켰다.
두둥, 두두둥.
한율은 자신의 캐리어부터 방으로 옮겼다. 그동안 숙소를 관리해준 가사도우미 덕분에 방은 여전히 깨끗했다. 허브 화분도 싱싱한 그대로고.
캐리어를 다 정리했을 즈음, 거실에서 멤버들이 웅성거렸다.
“와우….”
“이거 진짜야?”
“보증서랑 영수증까지 있는 거 보면 진품인데?”
“진짜 예쁘다.”
거실로 나가자 길우성이 이건우의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가리켰다.
“써한, 건우 형 명품 시계 선물 받음.”
그러나 정작 이건우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나도 앞으로 고가 선물은 사양한다고 못 박아야겠다. 이거 무서워서 어떻게 쓰냐…?”
“금 하나만 생겨도 수리비만 몇십만 원 깨지긴 하겠네. 음.”
“들여올 때 이미 세금도 적잖이 떼이지 않았을까?”
한율도 자신에게 들어온 선물을 하나둘 정리했다. 선물은 대부분 의류와 신발을 비롯한 패션 잡화. 고급스러운 수제 만년필이나 책, 인형도 있었다.
“이 선물은 왠지 차남석한테 갈 게 나한테 잘못 온 것 같은데….”
옆에서 선물을 정리하던 박가람이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긴 가톨릭 묵주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카드엔 내 이름이 적혀있단 말이지. 그런데 독일어라 못 읽겠엉.”
박가람이 자연스럽게 카드를 한율에게 건넸다. 한율은 대신 읽어주었다.
“일본의 무서운 놀이공원에서 당신이 무엇을 보았는진 모르겠지만, 이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난 불교라고요…!”
말론 항의해도, 그의 입꼬리는 즐겁게 씰룩거렸다.
“아무튼 감사. 흐.”
“일본 놀이공원이면 우리 데뷔 초 때 찍은 거잖아? 와, 그거 다 보셨나 보다.”
“벌써 2년이나 지났엉.”
“그러고 보니 그때 형, 뭘 본 건지 나중에 말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박가람이 강보배를 향해 히죽 웃었다.
“나중에 더 잘돼서 예능 나가게 되면 그때 말할 거야.”
“형은 계획이 다 있구나?”
“뭘….”
조용히 팬레터를 읽던 유호가 덜컥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가람이가 뭘… 봤어…? 그때…?”
“…….”
멤버들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유호를 쳐다보았다.
거실에 내려앉은 정적을 깬 건 라이언이었다.
“리더, 우리 콘텐츠 안 봐?”
“봐. 보는데, 아니, 그게… 무섭잖아. 그래서 그 편만 패스했어.”
“응.”
“써한, 달냥인 언제 데리고 올 거야?”
한율은 시간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오늘.”
잠시 후.
므엉앍옹. 한 달하고도 일주일 만에 본 달냥은, 한율에게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이상한 울음소리로 항의했다. 그리고 한율이 부모와 저녁을 먹는 동안 발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 다른 고양이 임보는 안 할 거지?”
“네. 컴백 활동에다 프로그램 촬영도 해야 해서, 당분간은 힘들 것 같아요. 아, 혹시 경기도 집엔 가보셨어요?”
“음. 슬슬 마무리 단계라 빠르면 이번 달 안에 완공될 것 같다더구나. 늦어도 여름이 지나기 전엔 들어갈 수 있겠지.”
한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로 돌아온 뒤 살펴본 달냥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이 마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천천히 훈련을 시키는 것.
“달냐앙, 오빠 기억나? 잊어버린 건 아니지?”
달냥은 오랜만에 돌아온 숙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그런 달냥에게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다가가는 길우성.
킁킁. 달냥이 이번엔 길우성의 발 냄새를 맡았다.
……!
입을 벌리며 해괴한 표정을 짓는 달냥.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보배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달냥이 충격받은 표정 봐.”
“나… 나 발 냄새 안 나는데? 안 나는데? 달냥, 나한테 왜 그랭….”
우웅. 그때 한율의 핸드폰이 울렸다.
스타믹스의 지헌이 톡을 보냈다.
-[월드투어 성공 축하!]
-[선물은 이거ㅎ]
-[(사진)]
지헌이 주연을 맡은 공포 영화 <입>의 VIP 시사회 초대권이었다. 날짜는 6월 8일. 마침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갈게요.]
-[ㅇㅇ]
-[ㅎ]
다음 날. 어스래빗 멤버들은 샵에 들러 가볍게 단장한 후 뮤닷으로 향했다. 바로 이틀 후 첫 녹화 예정인 미팅을 위함이었다. 미팅이 진행될 회의실 곳곳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멤버들은 테이블에 설치된 카메라와 제작진을 향해 인사했다.
“어스!”
“래빗! 입니다.”
“예능 출연 너무 오랜만이라 떨린다.”
“다른 팀은 미팅 다 끝났어요?”
“같이 녹화하는 팀 누군지 알려주시는 거예요, 오늘?”
“어? 작가님 혹시 예전에 <보컬리스트>에 있지 않았어요?”
유호가 멤버들을 빈자리에 앉히며 잔소리했다.
“얘들아,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질문을 퍼부으면 제작진 분들이 당황하시잖니. 좀 얌전히, 좀.”
미팅은 우선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제작진은 각 멤버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음악, 어떤 퍼포먼스, 어떤 컨셉을 해보고 싶은지 자세히 물었다.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그다음은 프로그램 진행 방식에 관한 설명.
“어스래빗 분들 모두 자체 리얼리티 콘텐츠도 찍고 있고, 여러 예능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으니 어렵진 않을 거예요. 오히려 저희가 조금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PD의 부탁은 다른 게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예능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많으니 그들을 잘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어스래빗으로선 좋은 이미지를 챙길 수 있는 부탁이기도 하여,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팅을 마친 뒤 회사로 가는 차 안.
“결국 누가 나오는진 못 들었네.”
“블루액션이랑 원제로가 나온다는 건 알잖아.”
한율은 핸드폰으로 ‘캣타워 맞춤 제작’을 검색하며 멤버들의 대화를 들었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 빠진다는 것도 알지.”
“아직 탑티어엔 들지 못했지만,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실력파 아이돌을 보여준다는 게 프로그램 취지니까… 우리보다 선배님이 나올 수도 있겠다.”
“난 개인적으로 풀썸 선배님들 나왔으면 좋겠어. 써한, 효운 선배님한테 뭐 들은 거 없어?”
“어.”
“그런데 우성. 하뉼한텐 언제 말할 거야?”
“응?”
“……?”
한율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라이언과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길우성이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과장되게 짓더니 씨익 웃었다.
“에에이, 형.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나중에 놀리려고 아껴두고 있었던 건데.”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무슨 준비요?”
“후후후.”
박가람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써한.”
길우성이 활짝 웃으며 한율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어제 네가 부모님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는 동안, 난 어디 가서 누구 만났게?”
“…….”
그 순간 한율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조별 과제와 달냥의 훈련, 비밀기지 인테리어 등을 신경 쓰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
“…끌지 말고 핵심만 말해.”
“표정 보니 이미 눈치챘네, 뭐.”
신호에 걸린 차량이 멈췄다. 뒷좌석에 앉은 이건우가 한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축하한다, 한율아. 남석이, 이언이, 박가람이. 어제 관장님에게 아슬아슬하게 인정받은 막내까지. 식스팩 내기는 네가 졌다.”
길우성이 얄밉게 히죽거리며 불끈 쥔 두 주먹을 앞뒤로 흔들었다.
“복근 공개, 복근 공개!”
한율은 구겨지는 미간을 짚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억눌렀다.
“하…….”
그날 한율은 회사에서 연습이 끝나자마자 헬스장으로 향했다.
내기에 진 이상 약속대로 무대에서 복근을 공개해야 하는데, 기왕 공개하기로 한 거 볼품없는 몸을 보이는 건 자존심이 상하므로, 열심히 복근 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