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방송이 끝난 뒤 어스래빗은 다른 스튜디오로 이동, 오늘 자신들의 무대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리고 PD와 주요 스태프들에게 찾아가 인사했다. 그들은 다음 주 방송에 나갈 한 가수의 사녹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 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PD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복근 공개할 예정입니까?”
“아니요.”
“네. 다음 주에 봅시다.”
돌아온 대기실은 다른 팀이 모두 퇴근하고 빠져 조용했다. 말소리가 새어 나오는 어스래빗 칸막이 안쪽을 제외하곤.
“네, 그래서 조금 고민···. 왔어?”
“잉? 임승준이, 퇴근 안 하고 여기에서 뭐 해?”
안에는 임승준과 매니저 현장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멤버 스케줄 때문에 데리러 오는 게 조금 늦는다고 해서, 시간도 때울 겸. 차남석한테 물어볼 것도 있고.”
“물어볼 거?”
“MC 대기실로 가자.”
의아해하는 차남석을 향해 조유찬이 말했다.
“10분 후에 출발한다.”
“네.”
차남석과 임승준은 아무도 없는 MC 대기실로 들어갔다. 임승준이 미니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차남석에게 넘겼다.
까득. 차남석은 받은 음료수 뚜껑을 열며 빈 의자에 앉았다.
“물어볼 게 뭔데?”
“지난주 리디스 촬영할 때, 정민솔하고 별일 없었나 해서.”
“딱히? 왜, 그놈이 뭐라 그래?”
하. 자신이 마실 음료수를 꺼내며 임승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며칠 전, 정민솔과 나눈 대화를 차남석에게 털어놓았다.
“···네가 보기에도 내가 그놈을 너무 꽉 막힌 선입견으로 대한 것 같냐?”
“글쎄. 같은 팀으로 지내면서 네 눈에 보인 그대로 판단하고 말했던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그놈 말에 바로 반박을 못 하겠더라. 일할 때 외엔 거의 대화를 안 하니까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뭐··· 어쨌든.”
차남석은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리디스 첫 촬영 때 하울링 멤버랑 마찰이 있었던 건 맞아. 그 사람이 먼저 ‘WB래빗에 같이 있었다면서 둘이 왜 안 친해?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라고 정민솔 신경을 살살 긁었거든.”
“카메라가 있는데도?”
“당연히 카메라 안 돌아갈 때 그랬지. 그것도 실실 웃으면서 얘기해서, 멀리에서 봤을 땐 그냥 잡담하는 걸로 보였을걸.”
“아···.”
임승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자에 풀썩 앉았다.
“그럼 내가 실수한 게 맞네. 하···.”
“그놈 말처럼, 임승준 너도 적당히 선 긋고 신경 끊어. 오지랖 부려봤자 좋은 말 못 들을 거 너도 잘 알잖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놈 점점 어두워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거슬리잖냐. 내버려 뒀다가 나중에 뭔 일이라도 저지르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너도 얼마 전에 기사 봤지? 예전 ‘쓰리포커즈’ 멤버가···.”
임승준은 뒷말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차남석도 미간을 구기며 말없이 음료를 마셨다.
“······.”
쓰리포커즈는 2015년, 데뷔 5년 만에 음방 1위를 하며 빛을 보려던 찰나에 리더의 폭행과 갑질, 팀 내 따돌림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 그대로 해체되어 사라진 보이그룹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전. 시간이 흐르며 차츰 대중의 기억에서 잊히던 그들이 다시 잠깐 언급되었다. 예전 멤버 한 명의 씁쓸한 뉴스로.
“우리가 쓰리포커즈처럼 악질은 아니지만, 같은 팀 멤버들이 굳이 괴롭히지 않아도 온갖 악플러의 인신 비하 공격을 받는 직업이잖냐. 아무리 강한 멘탈이라도 매일 두드리면 금이 갈 텐데, 어느 순간 빡 하고 자기도 모르게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
“···하긴.”
“그렇다고 싫은 놈 살갑게 대해주기는 싫고. 어떻게 보면 이것도 내 마음 편해지려고, 내 주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있기는 한데··· 아, 모르겠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놈이었으면 다른 멤버들처럼 그냥 넘길 텐데.”
마음이 맞지 않아 자주 다투기는 했으나, 2년 동안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사이다.
차남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4년을 알고 지냈으니.”
“내 말이. 아오, 징글징글한 새끼.”
진심 어린 짜증이 가득 담긴 푸념.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히 들어준 것 같아, 차남석은 음료수 뚜껑을 닫으며 일어났다.
“고생해라.”
“어.”
“어스래빗 여러분.”
금요일 MBS <뮤직센터> 어스래빗 단독 대기실. 막 들어와서 몸을 풀려고 하는데, 조유찬이 웃는 낯으로 놀라운 말을 던졌다.
“오늘 <뮤직센터> 1위 후보 축하드립니다.”
“네···?”
데뷔 2년 만에 처음 듣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것도 신곡 발표 후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날에.
잠이 덜 깬 얼굴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멤버들은, 어느 순간 동시에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기쁜 괴성을 지르며 방방 날뛰는 멤버들. 유일하게 한율만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이미 사과튠즈 K-POP 차트에서 여러 번 1위를 했지만, 공중파 음악방송 1위 후보는 국내 팬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와 닿아 더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뮤센에서 컴백하자마자 1위 후보에 오른 거야?”
“자자, 다들 침착하고.”
유호가 잔뜩 들뜬 멤버들을 한데로 모았다.
“1위 공약 뭐로 할지 정하자.”
“1위 공약···!”
“동생 라인이 형 라인 업고 노래하기.”
“우리 발목은 소중하니까 안 돼.”
1위 후보에 오른 건 정말 기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틀 전 <락뮤닷>에서 1위 한 가수가 오늘도 저력을 과시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은 아무 공약이나 막 내뱉었다.
“커다란 당근 머리띠하고 진지하게 앵콜 무대하기 어때?”
“그거 재밌겠다.”
“스타일리스트 누나들 올 때 챙겨달라고 하자.”
“무대에서 메이크업 지우기!”
“콜.”
“1위 하면 난 머리에 꽃 달고 노래할 거야.”
“그냥 다 합시다.”
그러곤 정말로 생방송 컴백 기념 인터뷰 도중, 1위 공약으로 고스란히 내뱉었다.
“저희가 만약 오늘 1위를 한다면! 형 라인은 머리에다 커다란 당근 머리띠, 동생 라인은 머리에 꽃을 달고, 무대에서 메이크업을 지우면서 노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퇴근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 분위기 넘치는 무대를 그런 꼬락서니로 하겠다고? 아무리 앵콜이라도 좀ㅋㅋㅋㅋㅋ
-1위에 대한 기대가 1도 느껴지지 않는 공약
-님들 머해요 빨리 투표ㄱㄱㄱ
유호와 함께 <뮤직센터> MC를 보는 이해원이 웃으며 한율에게 물었다.
“머리에 꽃을 달고 앵콜이요? 한율 씨도 동의한 건가요?”
마이크가 한율에게 왔다. 한율은 카메라를 향해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동의한바 없···.”
슥. 유호가 한율의 손에서 마이크를 낚아챘다.
“네! 어스래빗은 한 팀이라, 몸통과 다리가 움직이면 팔도 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MC 유호 쌍마이크
-율톢 리더 쳐다보는 표정 봐ㅋㅋㅋㅋ
-이렇게 해맑은 아이들이 무대에선
-오늘 1위 가망 없다 생각하고 막 던지는구나
다행히, 이날 한율은 머리에 꽃을 달지 않고 퇴근했다.
이전 활동 때도 그랬듯, 어스래빗은 음방과 홍보 스케줄 등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 는 일본에서도 일본어버전으로 동시에 발표한 터라, 일요일엔 SBC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월요일 아침엔 한류 전문 위성채널 K-POP 소개 프로그램 녹화, 오후엔 미니 라이브&하이터치회 스케줄이 있었다.
“당일치기로 휙휙 왔다 가는 거면 더 잘 나가는 기분이 들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하하하. 길우성이 영혼 없는 웃음소리를 뱉었다. 오 팀장이 기꺼운 반응을 보였다.
“다음 주엔 그럴까요?”
다음 주엔 오사카에서 미니라이브&하이터치회 스케줄이 잡혔다.
박가람이 정색하며 거부했다.
“아니요. 우성이만 따로 챙겨서 움직이시죠, 팀장님.”
“농담이었습니다, 팀장님.”
“그나저나 다른 출연자들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냐. 연습에 제대로 참여도 못 하고.”
지난 녹화 이튿날. 처음 만들어진 조는 해산되고 새로운 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시 조별로 주어진 미션. 하지만 어스래빗은 컴백 활동 기간이 겹쳐, 음방 스케줄 도중이나 퇴근하고 난 후 짬을 내어 연습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차남석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겉으론 우리한테 눈치 줘도, 속으론 은근히 좋아하는 애들 많을걸요? 잘 못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더 주목받을 수 있으니까.”
박가람이 팔짱을 끼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넌 애가 왜 이렇게 삐뚤어졌니? 응?”
“한 살 위 철없는 형한테 배웠는데요.”
“싸우자, 차남석!”
한율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멤버들의 잡담을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번 주 목요일 녹화에서 춰야 하는 안무를 머리로라도 더 익히기 위함이었다.
우웅. 같은 과 고재영으로부터 톡이 왔다.
-[이번 주가 종강인데 넌 6월 내내 코빼기도 안 비추냐ㅋㅋ]
[바쁨.]
-[그래 보이긴 하더라ㅋ]
-[ㅅㄱ]
[ㅇ]
‘한 학기 등록금을 허공에 날렸네.’
그래도 다른 학생들의 성적이 걸린 조별 과제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아]
다시 고재영의 톡.
-[너 이강대 선배랑 따로 아는 사이 아니지?]
[ㅇ]
-[ㅋ]
-[그 선배 개이상함ㅋ]
“······?”
-[그 선배 우리 학교 휴학생인 건 알지?]
-[후배들 맛있는 거 사준답시고 왔었는데, 2차에서 술 마시다가 갑자기 너 얘기 꺼내면서 까려고 슬슬 시동 걸더라]
-[분위기 이상해질까 봐 사람들이 화제 전환하고 그래서 그치긴 했는데 좀ㅋ]
이쪽은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혼자 그러는 건지.
한율은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시험ㅅㄱ]
-[ㅇㅇ]
연락이야 하겠죠
컴백 2주 차 <락뮤닷> 스케줄.
귀국 4시간 만에 뮤닷으로 출근한 어스래빗 멤버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유찬과 현장전이 평소 사용하던 공동 대기실이 아닌, 단독 대기실 앞으로 멤버들을 안내한 까닭이었다.
대기실 문에도 [어스래빗] 그룹명 하나만 적혀 있었다.
“왜 갑자기 단독이에요, 우리?”
조유찬이 씨익 웃었다.
“이번 주 1위 후보라서?”
길우성과 박가람이 동시에 기쁜 웃음을 흘렸다.
“으흐흣.”
사실 어스래빗 멤버들은 지난주 <뮤직센터> 1위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슬슬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 높아지는 MV 조회수, 여전히 상위권에 있는 사과튠즈 K-POP 차트, 폭발적으로 증가한 SNS와 그린라이브 팔로우, 인터넷 실검과 클립 영상 반응 등등.
곳곳에서 좋은 징조가 보이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1위 공약은 뭐로 할까?”
“지난번에 못 한 머리에 꽃···.”
“왜 그렇게 꽃에 집착하는 건데, 우성아.”
“아팠을 때 병원에 입원했던 이프림이, 내가 전에 귀에 꽃 꽂고 춤춘 게 너무 웃겨서 잠깐 아픔을 잊었었대. 그게 생각나서.”
“헉. 그분 이제 괜찮아?”
“응. 나보고 핸드폰 볼 때 거북목 자세 안 되게 조심하래.”
“고무줄놀이하면서 노래 부르기는 어때?”
물론 다른 후보를 이기고 1위 할 수 있다는 100% 확신까진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 <락뮤닷> 1위 후보에 올랐다며? 축하해.”
사녹을 끝낸 아침 11시. 한율은 박가람과 함께 고양고양 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보이그룹 ‘하울링’이 사용하는 안무 연습실에는 이틀 후 에서 함께 춤을 출 조원 5명이 이미 모여있었다. 연습하는 모습을 찍기 위한 카메라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닷!”
“그건 뭐예요, 선배님?”
이번에도 같은 조가 된 원제로의 현강희가 다가오며 물었다. 한율은 손에 잔뜩 든 종이봉투 하나를 현강희에게 건넸다.
“닭가슴살 샐러드랑 고구마라떼 좀 사 왔어요.”
“와아, 감사합니다!”
먹을 걸 챙겨왔다는 소리에 다른 조원들도 기꺼운 반응을 보였다.
“1위 후보에 오른 기념으로 쏘시는 건가?!”
“잘 먹겠습니다!”
그들은 연습실 바닥에 편히 모여 앉아 한율과 박가람의 사 온 간식을 먹었다. 한율은 빨대로 고구마 라떼를 마시며 연습실 내부를 눈으로 둘러보았다. 지금까진 풀썸의 연습실을 사용했던 터라, 고양고양 엔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다 비슷비슷하네.’
거울과 방음벽, 음향 장비와 PC, 미니 냉장고와 사물함, 벽에 회사 로고가 붙은 것까지. WB래빗 연습실이나 풀썸의 연습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끊김 없이 한 번에 쭉 가볼게요.”
간단히 요기한 후엔 곧바로 안무 연습에 들어갔다. 여기 모인 아이돌 모두 팀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지만, 연습생 시절부터 몇 년 동안 춤을 췄던 터라 크게 버벅거리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연습 후, <락뮤닷> 생방송 한 시간 전.
한율과 박가람은 갈 채비를 했다.
“그럼 저흰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내일 봐욥!”
“연습 수고하셨어요.”
“1위, 기원!”
“1위, 기원!”
풀썸과 블루액션 멤버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 메시지를 외쳤다. 현강희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선배님들, 내일 봐요!”
두 사람도 손을 흔들며 연습실을 나왔다.
박가람이 코 아래를 슥슥 매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웃었다.
“오늘은 카메라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요.”
같은 조인 하울링의 멤버 ‘진정’이, 카메라만 없으면 쓸데없는 잡소리를 늘어놓는 까닭이었다. 당사자가 불쾌해하는 루머를 직접 묻는 건 예사고, 외설적인 이야기를 저 혼자 재밌어하며 떠들기 일쑤였다. 담배도 어찌나 자주 피우는지, 옆에 있으면 냄새가 지독했다.
“어?!”
“······?”
복도 모퉁이를 돌아 로비로 나왔을 때였다. 로비 한쪽에 투명한 통창으로 분리된 사내 카페에서 감성소녀의 미미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리디스 그거 촬영 때문에 온 거예요? 와, 우리 회사에서 보니까 진짜 신기하다···! 아, 나 거의 쌩얼인데···. 참!”
미미는 제 뺨을 감싸며 호들갑을 떨다가, 사뿐사뿐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반짝거리는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카메라, 혹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보이는지 잘 아는 표정과 각도였다.
“제희 언니는 잘 지내요?”
“회사에서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잘 지내시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아, 우리 다음 주에 컴백해요!”
“축하합니다, 선배님.”
“히힛. 그나저나 키 진짜 엄청 크셨다아. 3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땐 이 정도였는데.”
“가람아, 한율아.”
닫혀있는 로비 문밖에서 매니저 윤승우가 두 사람을 불렀다.
“그럼 저희는 스케줄이 있어서. 다음에 뵙겠습니다, 선배님.”
“안녕히 계세욥.”
“네! 수고하세요!”
두 사람은 미미에게 꾸벅 인사하고 고양고양 엔터를 나왔다. 그리고 윤승우가 바로 앞에 세워둔 차에 탑승했다. 차는 곧바로 뮤닷을 향해 달렸다.
“미미 선배님, 거의 너밖에 안 보더라.”
“몇 번 같이 일한 사이라 편해서 그런 걸 거예요.”
스읍. 박가람이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데에? 단순히 그런 눈빛이 아니었는데에?”
“······.”
“그나저나, 왜 우리한테 제희 선배님 안부를 묻는 거지? 따로 연락을 안 하나?”
“글쎄요.”
작년, 감성소녀 리더였던 제유가 고양고양과 계약을 마무리하고 WB래빗으로 이적했다. 그녀를 담당하는 건 매니지 A팀이라 상세한 건 모르겠지만, 사무실에 걸린 ‘유제희’ 스케줄표를 보면 드라마 촬영 일정이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같은 팀으로 오래 활동했다고, 사적으로도 친하란 법은 없잖아요.”
박가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카메라 앞에서는 친한 것처럼 장난쳐도, 카메라가 없을 땐 아예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는 팀도 많았다. 저거 혹시 따돌림 아닌가? 의심을 부르는 팀도 종종 보이고.
“서한율. 마안약에.”
박가람이 한율의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10년, 20년 지나서 더는 아이돌 일이 힘들어져서 다들 흩어지게 되면, 너 그때 연락할 거야, 안 할 거야?”
10년, 20년.
바로 2년 후 여름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율로선 참 막연하게 느껴지는 기간이었다.
한율은 담담히 대답했다.
“연락이야 하겠죠.”
그때까지 무사히 살아있다면.
“오호. ···아니다.”
“······?”
돌연 박가람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의아하게 바라보는 한율을 향해 씨익 웃으며 선언했다.
“내가 네 옆집으로 이사 간다!”
“그땐 부적 사용료 받을게요.”
오후 5시. 생방송 <락뮤닷>이 시작되었다.
1위 후보에 오른 어스래빗은 방송 후반 순서였다. 하지만 엔딩 무대는 다른 1위 후보팀도 아닌, 오늘 컴백한 아림 엔터 소속 2세대 보이그룹 ‘루트’의 차지였다.
이는 한때 대형 팬덤을 거느리며 공중파 음방 1위를 휩쓸고, 여전히 아시아 쪽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 대선배에게 양보한 모양새였으나, 실상은 대형 기획사의 갑질에 밀려난 것이었다.
“엔딩 무대 아니면 싫다고, PD님도 아니고 뮤닷 본부 측에다 떼썼단다. 이럴 때 보면 대형 기획사 진짜 꼴 보기 싫어.”
1위 후보팀 인터뷰 녹화가 끝나고 카메라와 오디오가 철수했을 때 임승준이 직접 해준 이야기였다.
유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겠어. 그리고 아림이 제작하는 TV 프로그램이 한두 개가 아닌걸. <스타학교>나 <뮤직마켓>도 전부 아림이 만드는 거잖아.”
한때 아림 엔터 소속이었던 라이언은 뚱한 얼굴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나쁜 놈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도, 어스래빗 멤버들은 대형 기획사의 갑질이나 순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쓸 겨를이 없었다. 그들의 신경은 온통 ‘과연 오늘 데뷔 후 첫 1위를 할 수 있을까’에 쏠렸다.
지난주 <뮤직센터> 때와는 달리, 이번엔 왠지 기대를 품어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후우, 떨린다.”
생방송 무대에서 내려온 후, 어스래빗 멤버들은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고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했다. 두 팀의 노래가 끝나면 다시 무대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
“침착해, 침착해.”
이윽고 마지막 순서인 루트의 컴백 무대가 시작되고, 백스테이지에 하나둘 모인 팀들은 스튜디오로 나갔다. 루트는 실제 송출되는 사녹 무대와 달리 안무를 가볍게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1절이 끝나자 무대로 올라가는 다른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어스래빗은 중앙에 선 MC 근처에 일렬로 섰다.
프롬프터에 라이브 전환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다.
5, 4, 3, 2, ···1.
실제 방송 송출 영상모니터에서 루트의 무대가 끝나고, 전 출연진이 모인 현재 무대 모습이 잡혔다.
MC들이 환하게 웃으며 마이크에다 대고 말했다.
[2019년 6월 18일, 생방송 <락뮤닷>!]
[과연 이번 주 1위는 누가 될지, 점수! 공개해주세요!]
모니터에 어스래빗과 상대 1위 후보팀이 자그맣게 분할되어 잡혔다. 그 아래로 음원 판매, 음반 판매, 온라인 사전 투표, MV 조회수, 방송 점수가 차례대로 기재되었다.
가 음반이 없는 디지털 싱글인 까닭에 음반 판매는 0점. 하지만 기대를 놓기엔 일렀다. 다른 부문의 점수 모두 상대 팀보다 높게 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실시간 문자 투표 점수를 더한 오늘의 1위는!]
긴장한 두 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총합산 점수. 그중 한 팀의 점수가 우뚝 멈췄다.
모니터에 집중하던 MC 임승준이 환하게 웃었다.
[축하합니다!]
한율은 바로 귀를 파고들 함성에 놀라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임승준의 시선이 어스래빗을 향하고, 모니터에 어스래빗의 화보 사진이 큼지막하게 떴다.
[어스, 래빗!]
와아아악! 우와, 우와아!
파앗! 멤버들의 환호성과 더불어 위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꽃가루가 주의를 더 산만하게 만든다.
“와아아!”
“······.”
한율은 길우성이 자신을 덥석 끌어안고 어깨와 등을 강하게 두드리다 떨어진 뒤에도, 1위 하게 되어 기쁘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자, 트로피 받으시고요.]
임승준이 그나마 차분하게 서 있는 한율에게 트로피와 마이크를 건넸다.
[데뷔 후 처음으로 <락뮤닷>에서 1위를 하셨잖아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한율은 마이크를 유호에게 넘겼다.
[어···, 일단···.]
역시 리더는 리더인지라, 유호는 들뜬 기색을 억누르며 차분히 준비한 소감을 말했다. 그 옆에선 멍하니 있던 라이언이 돌연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지금껏 이보다 더 큰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건만.
박가람과 강보배가 라이언을 토닥거렸다.
[WB래빗 좌기훈 대표님, A&R팀의 진장현 팀장님, 장재천 프로듀서님, 매니지팀의 오동식 팀장님, 유찬이 형, 장전이 형, 승우 형, 스타일리스트팀의···.]
회사 스태프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유호 본인도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는지, 눈이 점점 물기로 반짝거렸다.
[이번 란 곡은 우리 멤버들의 정말 협조와 노력, 아무리 힘들어도 끊임없이 정진하려는 끈기와 성실함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척이나 까다로운 무대 연기, 감정 연기를 보여준 우리 한율이랑 남석이한테 정말 고맙고, 멋진 안무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 우성이, 건우, 멋있는 랩으로 노래 분위기를 한층 살려준 라이언과 보배, 보컬을 한층 탄탄하게 도와주면서 평소 멤버들이 기운이 없을 때마다 웃음을 준 가람이까지···.]
유호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정말 고맙고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더 고생하자!]
미리 준비한 소감문보다 말이 엉망이었지만 뜻은 잘 전달되었다. 와아아! 멤버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함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멤버의 사랑하는 가족분들, 마지막으로!]
유호가 마이크를 차남석에게 넘겼다. 차남석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이프림.]
이프림이 모인 객석에서 화답이 돌아왔다.
꺄아아아!
[우리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죠?]
우리도 사랑해엑! 축하해!
훌쩍거리던 라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함께 이프림이 있는 객석과 카메라를 향해 크게 하트를 그렸다.
[이프림, 사랑해!]
프롬프터 옆에 서 있던 스태프가 MC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임승준이 어스래빗을 향해 말했다.
[한 분만 더 소감 들어볼게요.]
차남석이 마이크를 라이언에게 넘겼다. 라이언은 크게 심호흡하곤, 빠른 영어로 월드투어 때 만난 관객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소감이 끝나자 MC들이 마무리 멘트를 했다.
[어스래빗 분들 1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1위 공약! 잊지 마시고 앵콜 준비 부탁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여기에서 이만 인사드릴게요!]
[생방송 <락뮤닷>! 다음 주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어스래빗 1위 축하드려요!]
전주가 흘러나오고, 어스래빗 멤버들은 축하 인사를 건네며 무대에서 퇴장하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꾸벅꾸벅 고맙다고 인사했다.
한율은 무대 아래에서 스태프들이 건네는 마이크를 받아 멤버들에게 나눠주었다.
‘하아······.’
커다란 해바라기 머리핀도.
뭔가 이상해
[<락뮤닷> 어스래빗, 데뷔 2년 만에 첫 1위!]
[2017년 데뷔한 보이그룹 어스래빗이 데뷔 2년 만에 뮤닷 <락뮤닷>에서 로 첫 1위를 거머쥐었다.
이날 1위에 오른 어스래빗은···(중략).
한편 어스래빗은 1위 공약으로 내건 ‘머리에 꽃 달고 노래 부르기’를 앵콜 무대에서 이행하며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진=<락뮤닷> 어스래빗 앵콜 무대)]
-머리에 꽃ㅋㅋㅋㅋ 미친 토끼들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
ㄴㅋㅋㅋ
ㄴ미치긴 미쳤죠 실력이랑 외모가ㅎㅎ
-꽃을 단 토끼 완전체 버전이냐곸ㅋㅋㅋㅋㅋ
-이렇게 열심히, 잘하는데 1위를 못하면 말이 안 되지 지구톢이들 1위 너무 축하해♡♡♡♡♡♡
-클립 영상도 봐주세요, 여러분! 라이브 실력bbbb
-대왕 해바라기 머리에 달고 노래 부르는데도 멋져 보이는 건 내 눈이 삔 탓인가?
ㄴ순순히 입덕하시죠
-남돌은 군대나 가라!!!!!
-빈집털이 1위 ㅊㅋ
ㄴ꼭 이런 기사에 이딴 식으로 까내리는.. 에휴 됐다
ㄴ뭐야 포기하지 마
“흐흣, 흐흐흣.”
“흐.”
어제자 인터넷 기사를 보며 박가람과 길우성이 실실 웃었다. 유호가 웃으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아직도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안 좋소?”
어제 <락뮤닷> 방송이 끝나고, 어스래빗은 대기실에서 트로피를 끌어안은 채 한 시간 동안 1위 자축 라방을 했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쁨이 넘치는지, 두 사람의 입가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여기에 오늘 MBS K <로얄K뮤직>에서도 1위 후보에 올랐으니.
“야, 그렇다고 리허설 때도 내내 웃으면 어떡해. , 그런 밝은 노래 아니잖아. 아무리 카메라 각도랑 동선 맞추는 게 목적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노래 분위기랑 다르게 계속 해맑은 얼굴로 웃으니까, 카메라 감독님도 빵 터지신 것 같더라.”
“크크큭.”
“한율아.”
매니저 현장전이 대기실로 들어오며 한율을 불렀다. 쿵. 그가 양손에 든 커다란 도시락 가방 4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다 같이 먹으라고 보내셨다. 갈비찜이래.”
“갈비찜이요?”
“우와!”
“갈비찜?!”
대기실 소파나 의자에 흩어져있던 멤버들이 단숨에 테이블 앞으로 모였다. 한율은 도시락 가방에 담긴 도시락통을 하나씩 꺼냈다. 어스래빗 멤버들뿐만이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갈비찜도 하나는 돼지갈비, 하나는 소 갈비찜이었다. 여기에 온갖 종류의 반찬들.
“어제 <락뮤닷> 방송에 나간 컴백 비하인드 보셨나 보다. 그때 한율이가 어머니가 만든 갈비찜에 흰 쌀밥 먹고 싶다 그랬잖아.”
“한율아, 어머니한테 감사 인사··· 아니지. 영통 하자. 이건 다 같이 인사드려야 해.”
멤버들은 도시락을 테이블 가득 보기 좋게 펼쳤다. 그러나 양이 너무 많아, 몇 개는 의자와 화장대에 올려놓았다.
한율은 모친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고양이 퓨마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왔다.
-[응, 율아. 도시락 받았어?]
“네. 뭘 이런 걸 보내셨어요. 준비하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
-[힘들긴. 율이 네가 먹고 싶다는데 당연히 해줘야지.]
뭬엥. 핸드폰에 코를 갖다 대던 퓨마의 얼굴이 멀어지고 모친이 나왔다. 한율은 영상에 멤버들이 다 잡히도록 팔을 높이 들었다.
“어머니, 맛있는 점심 감사합니다!”
“싸랑해요, 어머닝!”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멤버들은 저마다 머리 위로 하트를 크게 그리거나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네, 다들 1위 축하해요~. 어스래빗, 홧팅!]
“감사합니다!”
모친은 쑥스러운지, 카메라에다 손을 흔들곤 황급히 통화를 끊었다.
“와, 진짜 맛있겠다.”
“대박, 대박.”
“서한율, 잘 먹을게.”
“SNS에다가 올려도 되지?”
“네. 다들 맛있게 드세요.”
한율은 모친에게 고맙다는 톡을 보낸 뒤 젓가락을 들었다.
한율의 모친 덕에 오래간만에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어스래빗은, 사녹을 끝낸 후 어제처럼 준비를 위해 여기저기 흩어졌다.
“오늘은 고동 엔터에서 연습한댔지?”
“네.”
한율은 박가람과 함께 블루액션의 소속사, 고동 엔터로 향했다. 고동 엔터 로비에는 블루액션의 멤버, 은강이 어슬렁거리다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선배님들. 어제 1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이, 땡큐, 은강. 오늘도 우리가 지각?”
은강이 두 사람을 연습실로 안내하며 대답했다.
“아니요. 강희가 스케줄이 있어서 두 시간 정도 늦는대요.”
“회사 통해서 연락 온 거지?”
“네.”
“걔네도 참 답답하겠다. 프로그램 때문에 해야 할 연락도 일일이 회사 통해서 해야 하고.”
은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게요.”
블루액션도 데뷔 직후, 그들을 둘러싼 이런저런 루머가 터지자마자 핸드폰을 압수당했었다. 그해 RMMA 시상식에서 대표에게 대놓고 핸드폰 해금을 요구하고 나서야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 적잖이 답답했을 터.
은강은 그때가 생각나는지 진저리나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악플이나 루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사회와 단절된 느낌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데.”
“그래도 옆에 멤버들이 있으니까···.”
“처음엔 저희도 그래서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나중엔 같이 우울해지더라고요.”
“아.”
박가람이 은강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많이 힘들었겠당. 그래서, 지난번에 말한 게임 아이템은 언제 보내줄 거야?”
“갑자기요?”
오늘도 연습실에는 에서 나온 VJ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한율과 박가람에게 어제 <락뮤닷>에서 1위 한 거 축하한다며,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창 연습하는 동안엔 블블의 티스트가 연습실을 찾아왔다.
“우리 은강이 잘 봐달라는 의미로, 간식거리 좀 사 왔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어스래빗 분들은 어제 <락뮤닷>에서 1위 하신 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기 괜찮으시면··· 저희 안무 연습하는 거 조금 봐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평소엔 조금 가벼운 이미지지만, 올해 데뷔 8년 차인 대선배였다. 티스트는 그들의 안무를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적절한 조언을 해주거나 칭찬했다.
“한율이 넌 동작 진짜 깔끔하다. 바빠서 연습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던데, 은근히 여유도 느껴지고.”
“칭찬 감사합니다.”
“엣헴. 우리 막내가 안무를 참 잘 외웁니다. 직접 출 수 없을 땐 눈으로 수십 번을 보면서 익히고 외웠다가, 나중엔 영상 없이도 그냥 춘다니까요?”
“오오, 정말? 대단하다.”
“엣헴. 우리 팀 막내입니다.”
헛기침하며 자랑하는 박가람을 향해 은강이 물었다.
“어스래빗 막내는 우성이 아니었어요?”
“둘이 생일이 한 달 정도밖에 차이 안 나서, 그냥 둘 다 막내라고 불러.”
“늦어서 죄송합니다!”
뒤늦게 원제로의 현강희가 도착했다.
“앗, 티스트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가람 선배님, 한율 선배님, <락뮤닷> 1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냐.”
평소보다 더 씩씩해 보이는 현강희의 모습.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표정이 밝네.”
“아.”
현강희가 머쓱하게 웃었다.
“제가 비 오는 날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밖에 비가 엄청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