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단독]어스래빗 숙소 무단침입 및 절도범 정체··· 사생이었다!]
[지난 19일 어스래빗 숙소에 무단침입하여 절도 행각을 벌인 A씨가 21일 오후 자택에서 검거되었다.
음식 배달원으로 위장해 어스래빗 숙소가 있는 아파트를 출입한 A씨는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등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하고 17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숙소에 무단침입, 어스래빗 멤버 B군의 옷과 베개, 향수 등을 훔쳤다.
검거 당시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자백한 A씨는 평소 B군을 따라다니던 사생 스토커로, 작년엔 B군에게 대학 동기인 척 속여 태연히 말을 걸고 B군의 필기구를 훔쳤으며 B군의 뒤를 몰래 따라다니다 같은 멤버 C군이 경기도에 별장을 짓는다는 사실을 언론사에 제보하기도 하는 등···(중략).
한편 어스래빗은 <락뮤닷>, <로얄K뮤직>에 이어 <뮤직센터>에서도 1위를 달성하며 음악방송 3관왕을 차지했다.]
-처음 도둑 들었다 했을 때부터 사생 짓인 줄 알았다
-레알 정신병자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팬이 아니라 사생 스토커로 간주, 팬클럽에서 영구 제명하고 있으며 회사 또한 팬 이벤트 참가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미친 범죄자 하나만 보고 이프림 전체를 매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겉으론 진짜 멀쩡하게 생겼다던데
ㄴ어떻게 암???
ㄴ작년에 B군 대학에서 쟤 목격한 애가 한둘이 아니었음요
ㄴB군이 누군데
ㄴ제일 잘생긴 애.
ㄴㅊㄴㅅ?
-빠수니들 지갑 털기가 참 쉽지 않다ㅋㅋ 그치?
ㄴ신고로 비공개된 댓글입니다.
-아버지란 사람은 빚 전가해, 칠레에선 조명 맞아 죽을 뻔해, 사생은 숙소까지 들어와서 물건 훔쳐 가.. 얘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얘한테만 이러냐ㅜㅜ
ㄴ나보다 잘생긴 죄
ㄴㅅㅂ온 세상 사람들 다 불행해지겠네
ㄴ슈..슈슉..슈..슈발럼아...슈..슈발..슈발..럼...ㅜㅜ
ㄴ아니 왜 다 B군이 ㅊㄴㅅ이란 걸 아는 건데
-옷이랑 향수는 나중에 팔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베개는 왜 훔쳐 가냐 ㅁㅊㄴ아
-제발 범죄자는 강력하게 처벌하자!!!!
ㄴ훔친 물건이 소액이고 초범이면 거의 벌금으로 끝날걸요
22일 토요일 KBC <뮤직뮤직> 어스래빗 대기실.
어스래빗 멤버들은 연예뉴스란 메인에 뜬 기사를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오 팀장을 통해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기사를 읽으니 정말 잡혔다는 게 실감 나는 모양이었다.
“목격자가 영아 선배님이란 이야기는 빠졌네. 다행이다.”
“당연히 빼야지. 나중에 가해자가 보복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되게 신기하다. 범인이랑 우연히 마주친 게 영아 선배님이라니.”
길우성은 핸드폰으로 온더로즈의 노래를 틀었다.
“선배님이 그 사람 인상착의를 말하니까 남석 씨가 딱 맞추고, 팀장님이 팬클럽에서 제명한 사생 리스트에서 찾아내고. 크으!”
숙소에 무단침입하여 차남석의 물건을 훔친 사생 스토커는 변호사를 고용, 이쪽과 합의를 시도했다. 초범인데다 훔친 물건도 가치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돌려주었으니 재판까지 가봤자 기껏 벌금형에 그칠 텐데, 그러면 피차 피곤해지지 않겠냐고.
차남석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싫은데요. 반드시 형사처벌 받게 해서 빨간 줄 그어버리고 민사도 진행할 건데요.”
WB래빗도 차남석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차남석은 스토커에게 돌려받은 물건 모두 기분 나쁘다며 버렸고, 그렇게 며칠 동안 어스래빗과 어스래빗의 팬들을 분노하게 했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차남석. 범인 잡았는데 표정이 왜 그래?”
“라욘 형이 남석 씨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놀랄 일이냐···.”
기사를 보던 차남석은 뭐라 말하려다가 머뭇머뭇 입을 다물었다. 라이언의 표정이 더 뚱하게 변했다.
“네 스토커 짓이다, 미안하다, 사과 필요 없어. 그럴 거면 과일 사과 가져와.”
차남석이 황당한 얼굴로 라이언을 쳐다보았다.
“뭐?”
“녹색 사과.”
“······.”
“네, 라욘 형의 목적은 사과였습니다.”
“나 있잖아.”
진지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강보배가 말을 꺼냈다.
“범인이 왜 컵도 가져갔는지, 그 이유 알아낸 것 같아. ···그 컵.”
강보배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린라이브에서 했던 라방 영상 속, 도둑맞았었던 컵이 찍혀 있었다.
“올해 초 라방에서 남석이가 썼던 컵이야.”
“······.”
차남석은 말없이 강보배를 쳐다보다가 슥 일어났다. 그러곤 강보배의 멱살을 잡으며 입가를 올렸다.
“그런 건 굳이 안 알려줘도 되거든?”
“아니, 난 그냥 이유를 찾은 것 같아서···.”
이건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보배 쟨 가끔 보면 은근히 눈치 없더라.”
한율은 시끌벅적한 멤버들의 소란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대본을 넘겼다.
[서울 구미호(가제) 1화].
미제사건 전담팀 형사와 두 구미호의 이야기였다.
『제설 오빠 말이, <서울 구미호> 대본을 보자마자 ‘형호’ 역으로 한율 씨 생각이 났대요. 드라마 제작사에서도 한율 씨한테 대본 보냈다던데, 혹시 봤어요?』
어제 영아의 말을 듣고 오 팀장에게 물어보니 정말 대본이 들어와 있었다.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아 말하지 않았었다고.
‘촬영 예정 시기는 빠르면 10월, 늦어도 11월.’
사극 <장인> 특별출연 건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연기한 게 작년 6월. 영화 <고양이 난로> 촬영을 끝낸 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영화가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대본이 쏟아져 들어오자, 회사에서도 슬슬 다음 작품엔 언제 들어가려나 기대하는 눈치.
오 팀장은 대본을 건네며 말했다.
『이 작품을 하면, 한율이 네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란 걸 한 번 더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껏 했던 역할과 다르긴 했다. 1화만 보면 악당으로 비춰질 법한데다, 겉으론 평범한 재벌 3세인 10대 학생 같아도 속은 수백 년을 산 여우이니.
“어때? 재밌을 것 같아?”
조유찬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스토리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를 연기하는 건 재밌을 것 같네요.”
조유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율이 너라면 구미호 역도 정말 잘 소화할 것 같아.”
영화나 소설도 아니고
어스래빗 사생 스토커 이슈는 하루 이틀이 지나자 인터넷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사건이 일단락되기도 했고, 이목을 끄는 또 다른 기사가 나온 까닭이었다.
[‘마약 복용 및 유포’ 소피아 한, 1심 실형 선고]
[소피아 한 탈퇴 걸그룹 ‘뉴온’ 사실상 해체··· 기획사 폐업]
-약쟁이 하나 잘못 들였다가 그룹이고 회사고 다 날아가는 구나ㄷㄷ
ㄴㅍㅅㅌㄹㅇ 멤버 한 명도 보내버렸죠
ㄴㅂㅇ12 멤버 한 명도..
ㄴㅂㅇ12 멤버 얘기는 루머입니다. 전혀 관계없어요.
-이거 터진 게 작년 12월 아니었나? 더럽게 느리네
-진짜 다른 멤버들은 무슨 잘못이냐; ㅁㅊㄴ 하나 때문에 몇 년 고생한 거 날아간 것도 모자라서 평생 의심 꼬리표 붙을 거 아냐
-소속사 사장이랑 멤버들은 저ㄴ한테 손배 청구해야 한다
-신고로 비공개된 댓글입니다.
ㄴ워우 욕 찰지게 잘하시네ㄷㄷ
아삭.
한율은 사과를 먹으며 기사 스크롤을 내렸다.
‘이 사건도 벌서 반년이나 지났구나.’
자연스레 떠오르는 한 사람.
한율은 [V12 티모]를 검색했다.
[V12 티모, 건강 문제로 당분간 휴식]
작년 12월에 작성된 기사. 최근 V12 관련 기사를 찾아봐도 티모의 근황은 기재되지 않았다. [휴식 중인 티모를 제외한 11명의 V12 멤버들은···.] 이런 식으로 간단히 언급됐을 뿐.
“티모 말이야.”
멋대로 한율의 핸드폰을 들여다본 길우성이 말을 꺼냈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사과 한 조각을 포크로 콕 찌르며.
“언제쯤 돌아올까? 춤도 너무 오래 안 추면 몸 굳어버릴 텐데··· 관리 잘하고 있나 모르겠다.”
“여전히 연락 안 돼?”
“됐으면 진작 너한테 말했지. 전에 지은이 형한테 물어봤는데, 지은이 형도 잘 모르겠다 그러더라. 안 친하다고.”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퍼스트라인 코우]를 검색했다.
[퍼스트라인 前멤버 코우, 日에서 배우 준비 중]
이쪽은 나름 잘 지내는 듯했다. 한율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본어가 흘러나오는 TV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현재 오사카의 한 공연장 대기실에 있었다. 미니라이브&하이터치회 이벤트를 위해.
“가람이 형. 지금 뉴스에서 뭐라고 하는 거야?”
“내일 큰 태풍 오니까 미리 대비하래.”
“오늘 밤 비행기 제대로 뜨겠지? 아까 보니까 바람 장난 아니게 불던데.”
“뜨기를 바라야지. 내일 <락뮤닷> 무대 준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건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스래빗은 상반기 결산특집에 걸맞게 특별히 호러 컨셉 무대를 하자며 도 살짝 편곡하고, 안무 몇 부분도 수정해 연습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세트와 VCR 영상, 의상까지 모두 완성되었을 터.
짝! 박가람이 두 손을 맞부딪치더니 깍지꼈다.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형제들.”
“형 불교잖아.”
“손목에 염주 팔찌 끼고 다른 신 찾는 불자가 있다?”
라이언도 박가람을 따라 두 손을 꼭 모으고 눈을 감았다.
“오늘 한국 갈래요.”
과연 기도는 통할까.
오후 1시. 미니라이브&하이터치회 1부가 시작되었다.
어스래빗은 지난주 도쿄에서 한 것처럼 일본어 버전을 포함해 3곡을 부르고, 팬들과 가볍게 하이터치 하며 한두 마디 주고받았다.
한율은 한 팬에게 일본어로 물었다.
[바깥 날씨 어때요?]
[바람이 엉망진창으로 불어! 와줘서 고마워!]
다음 팬이 한율과 손을 가볍게 맞부딪치며 이었다.
[아직 비는 안 와, 사랑해!]
[감사합니다!]
1부가 끝났을 땐 정확히 2시. 2부 시작 예정인 6시까지 내내 대기실에 머물 수는 없기에, 어스래빗 멤버들은 잠깐 호텔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억. 비 온다.”
“바람 진짜 장난 아니다.”
“호 형, 저기 봐.”
그들을 태운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였다. 강보배가 건너편 한곳을 가리켰다. 샛노란 우비에다 장화를 신은 어린아이들이 인솔자로 보이는 성인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엄청 귀엽지 않아? 꼭 병아리들 같다.”
“애들 얼굴은 울상인데? 그런데 정말 귀엽다. 아이고, 바람에 날아가겠네.”
“······.”
한율은 무심코 그 광경을 따라 봤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아이들 앞에 멈추는 ‘반짝반짝 유치원’ 버스. 운전석에서 내리는 남자의 얼굴이 낯익은 까닭이었다.
‘설마.’
그래서 눈을 찡그리며 유심히 봤다가, 이내 단순히 닮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본래 세상, 거둬서 돌보던 고아들을 위해 ‘마력 차단’ 능력을 감추고 살던 남자. 그는 현재 끽해야 20대 중후반일 터다. 반면에 지금 아이들을 버스에 태우는 남자는 아무리 젊게 봐도 30대 후반.
한율은 몸을 바로 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그렇지.’
영화나 소설도 아니고, 이렇게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칠 리가.
* * *
25일 새벽 1시, 뮤닷 <락뮤닷> 출연자 대기실.
오늘 상반기 결산 특집방송에서 컴백하게 된 감성소녀 멤버들은, 한껏 들뜬 얼굴로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맡아보는 방송국 냄새야?”
“나 여기 샌드위치 너무 먹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잖아.”
“왜. 그냥 와서 사 먹어도 될 텐데.”
“그러다가 후배랑 마주치면 존나.”
매니저가 순형의 말을 잘랐다.
“얘들아, 우리 말 좀 예쁘게 쓰자. 그리고 여기 단독 대기실 아니니까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도 말고.”
“네에.”
그러나 대답만 잘할 뿐, 감성소녀 멤버들은 다시 재잘거리기 바빴다.
“그거 봤냐? 우리 팬튜브 중에···.”
“화장실 같이 갈 사람?”
“혼자 가, 이 년아. 나이가 몇인데 화장실도 혼자 못 가냐?”
“말 예쁘게 안 하지? 매니저 오빠, 순형이 좀 혼내줘!”
“수녕이 좀 혼내죠!”
“따라 하지 마라?”
“따다 하디 마라?”
“아오, 주둥이를 확.”
미미는 순형의 입술을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에휴 크게 한숨 쉬며 몸을 돌렸다. 순형이 뒤에서 낄낄거리며 외쳤다.
“휴지 갖고 가, 이 뇬아!”
미미는 순형에게 중지를 세워준 후 씩씩거리며 대기실을 나갔다. 이내 순형이 쫓아 나오더니 미미의 팔에 덥석 팔짱을 꼈다.
“성미미 씨, 삐쳤어용?”
“놔. 너 짜증 나.”
“싫은뎅? 싫은뎅?”
“···아, 만지지 마라? 이거 성추행이거든?”
“싫은뎅? 싫은뎅?”
미미는 팔짱 대신 자신의 허리를 안아 만지작거리는 순형을 보며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이년은 날이 갈수록 점점···. 아, 제유 언니 보고 싶다···. 나도 언니 따라 나갈 걸 그랬나.’
사실 미미도 작년 재계약 시즌 때 계속 고양고양 엔터와 함께 갈 것인지 많이 망설였었다. 오라는 기획사도 있었고.
하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니, 연기실력도 애매하고 노래 실력도 이 바닥에서 흔하게 잘 부르는 그런 수준이었다. 예능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고.
그래서 남기로 했다. 그룹으로 있을 때보다 더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서.
‘인지도가 더 쌓일 때까지만, 더 버티자.’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자신과 비슷한 얼굴, 경력, 캐릭터를 가진 아이돌은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버티면서 하다 보면 감성소녀 멤버 1인이 아닌, ‘미미’ 그 자체로 각인될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어차피 재계약은 기간이 3년밖에 안 되기도 하고.
‘아니면 나도 누구처럼 잘 나가는 배우나 아나운서 같은, 반듯해 보이는 남자랑 사귀어? 그럼 상대방 기사가 나올 때마다 같이 언급될···.’
“미미양~. 무슨 생각을 그렇게···. 야.”
“······?”
깊은 생각에 빠진 채 걷던 미미는, 돌연 날카로워진 순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 옆을 지나치던 여자 아이돌들이 흠칫 놀라며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네? 저희요?”
“너희 왜 선배 보고도 인사 안 해? 우리 누군지 몰라?”
드림래빗 멤버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했는데···.”
“했다고? 언제?”
은보람이 종종걸음으로 그들과 2m 떨어진 앞으로 갔다.
“방금 여기에서 다 같이 ‘선배님, 안녕하세요’라고···.”
“그래서. 우리가 대답했어?”
“네? 아뇨···.”
“일방적으로 툭 던지고 지나갔다는 거네?”
“툭 던진 게 아니라요.”
“이게 어디에서 눈 똑바로 뜨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너 누구야? 너희 팀 이름 뭐야?”
“야, 순형. 왜 그래.”
미미는 당황한 얼굴로 순형의 팔을 잡아 말렸다. 드림래빗인 거 잘 알면서 시비는 왜 걸어, 이 미친 X가.
그리고 드림래빗 멤버들을 향해 웃으며 남은 손을 저었다.
“괜찮으니까 가던 길 가.”
“놔 봐.”
순형이 미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이것들이 우리가 연차만 찬 망돌이라고 무시하잖아!”
은보람이 억울한 얼굴로 받아쳤다.
“저희가 언제요, 선배님! 방금 여기에서 인사드렸는데 선배님이···!”
그때였다.
“누구인가? 누가 큰 소리를 내었어?”
옛 사극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
미미는 복도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휙 돌렸다. 창피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왜 하필···!’
뒷짐을 지고 걸어오는 건 어스래빗의 박가람이었다. 그 뒤로 함께 오는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
“이 귀에 익은 목소리는 설마···.”
박가람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멈췄다.
“우리 회사 후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감성이 넘치는 감성소녀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컴백 축하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컴백 축하드립니다!”
어스래빗의 등장에 당황한 건 미미뿐만이 아니었다. 꼬투리를 잡아 드림래빗에게 무안을 주려던 순형은, 재빠르게 눈치를 살피곤 어스래빗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환하게 웃었다.
“역시 어스래빗 분들은 다르시네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자, 미미야.”
“어? 어···.”
미미는 순형에게 잡힌 채 엉겁결에 걸음을 옮겼다.
‘이미 한눈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다 파악한 눈친데, 이대로 가면 나까지 이거랑 똑같은···!’
“······.”
“······!”
그러다 아주 가까이에서 한율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미미는 에라 모르겠다 드림래빗을 향해 아무렇게나 외쳤다.
“미친년처럼 굴어서 미안해! 사랑해!”
“···야, 성미미!”
미미는 차마 한율의 반응을 살피지 못하고, 순형을 버린 채 화장실로 전력 질주했다.
‘아악, 쪽팔려어···!’
“와···.”
미미와 순형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 멀리 사라지자, 박가람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리깐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라. 저것이 8년 차 대선배님의 패기란 것이다. 방송국을 제집 안방처럼 질주하는 패기···!”
“무슨 일 있었어?”
의아해서 멈췄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는 가운데, 유호가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드림래빗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드림래빗 멤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다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작은 오해가 있어서요. 지난주 1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이번 주 1위 후보에 오르신 것도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들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두 래빗 팀은 함께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에서 이제야 막 왔거든.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 출발해서.”
“그래도 돌아온 게 어디야. 하마터면 데뷔 후 처음으로 방송 펑크낼 뻔했다.”
“고생하셨어요.”
“······.”
“······?”
그때 한율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옆을 쳐다보았다.
바로 앞에 은보람이 있어서 긴장한 걸까. 귀만 새빨갛게 물든 길우성이 삐걱삐걱, 고장 난 인형처럼 같은 쪽 손과 발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느려지는 걸음 속도.
“······.”
한율은 모른 척했다.
잠시 후, 1위 후보팀에게 주어진 단독 대기실.
길우성이 강보배 옆에 가까이 앉았다.
“형. 방금 감성소녀 선배님들이랑 우리 토끼 후배들이랑 무슨 트러블 있었던 것 같았지?”
“응. 그렇게 보이더라.”
“무슨 일이었을까?”
“글쎄···.”
강보배는 잠시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일 아니었겠지. 그리고 미미 선배님이 사과하고 갔잖아.”
“······.”
“왜 그렇게 봐, 우성아?”
길우성이 뚱한 얼굴로 일어나며 반문했다.
“형님, 미안하단 말로 다 해결되면 경찰이 왜 있냐?”
“···엉?”
투자자가 원한다는데 어쩌겠어
25일 <락뮤닷> 방송이 끝난 후, 너튜브에 <락뮤닷> 출연팀의 무대 동영상이 하나둘 올라왔다.
어스래빗의 호러 버전 무대도.
[[락뮤닷]190625 어스래빗(EarthRabbit) - Shadowy(Horror ver.)]
어둡고 붉은 조명이 어우러진 음산한 분위기에서 시작되는 노래. 평소보다 짙고 어둑한 눈화장과 피와 흉터가 새겨진 창백한 피부 분장. 날카로운 무언가에 여기저기 찢긴 채 적갈색으로 얼룩진 의상을 입고, 중간중간 삐걱거리는 기괴한 동작이나 먼 곳을 응시하는 정적인 표정 연기까지.
-오늘 락뮤에서 이거 밖에 생각 안 나서 또 보러 옴
-[좀비토끼]
-[저렇게 섹시한 좀비들이 나타나면 당장 목을 내놓으리]
-호 무서운 거 싫어하지 않나요?
ㄴ1위 후보 인터뷰할 때 승주니가 ‘호 씨 무서운 거 못 보시잖아요’ 했더니 ‘멤버들이라 괜찮았어요’ (*´﹀`*) <요런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어요ㅎㅎ
-중간중간 노래 음산한 분위기로 바뀔 때마다 표정이랑 몸짓 싹 돌변하는 거 대박이다
-[여기에서 내 취향을 깨닫고 싶진 않았는데!]
-핼러윈 때도 해주라ㅜㅜ
-노래 속 여주 누군지 몰라도 머리채 잡고 싶네
-마지막에 조각상처럼 굳어버리는 거 맴찢
-연기 이렇게 리얼하게 할 거냐 정말
-왜 서한율 군은 락뮤닷에서만 복근을 공개했는지? 왜 어스래빗은 락뮤닷에서만 이런 특별 무대를 선보이는지 모르겠네요..
ㄴ주말아이돌PD님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ㄴ잉???
ㄴ아 프사 보고 설마했는데 진짜네ㅋㅋㅋㅋㅋㅋ
ㄴPD님 여기에서 뭐 하세욬ㅋㅋㅋㅋㅋ
ㄴ아니 이번엔 지구톢이들 섭외 안 하셨잖아욬ㅋㅋㅋ
ㄴ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겁니다 :’(
“얘 진짜 장난 없네요. 피부도 좋아서, 화면에 크게 잡혀도 굴욕 한 점 없어야 하는 구미호 역이랑 완전 찰떡 아니에요? 다른 자료 보니 한복도 정말 잘 어울리던데.”
권 대표는 연신 감탄을 쏟아내는 캐스팅 디렉터를 향해 웃었다.
“그래서 대본 보냈잖아요.”
“오디션도 보게 한다면서요.”
“투자자 쪽에서 주연배우 모두 오디션 거쳐서 뽑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떡합니까.”
탁. 캐스팅 디렉터가 서한율이 단독으로 잡힌 장면에서 일시 정지를 눌렀다.
“‘형호’랑 딱 들어맞는 외견에다 연기실력까지 갖춘 배우가··· 제가 아는 선에선 없는데요. 아, 박현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스케줄 잡혀있어서 안 되고.”
“그러니 불안할 필요 없지 않나요? 서한율이 되면 예정대로 되는 거고, 서한율보다 더 어울리는 배우가 나타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 바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고요.”
“그런 불안이 아니라요, 대표님···. 괜히 이쪽에서 간 본다고 오해하고 걷어찰까 봐 그러죠.”
캐스팅 디렉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친구, 전에 이사문 감독님 신작 <안시>도 당분간 아이돌 일에 전념하고 싶다고 거절했었잖아요. 이 감독님 작품에 한 번 나가보려고 온갖 별짓을 다 하는 애들도 있는데. 그런데 이 감독님은 이 감독님대로 ‘허허, 그럴 수 있지.’라고 웃어넘기고. 이 정도면··· 와.”
“너무 그렇게 띄우진 마세요. 왜 배우들이 뜨기 시작하고 좋은 대우를 받으면 받을수록 거만해지는데요. 주변에서 그렇게 떠받들어 주니까 자신들이 무슨 특권층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 아, 말이 샜네요.”
탁. 권 대표는 재생 버튼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쪽 회사로 사정과 사과를 적어서 메일 보냈으니, 이해해주기를 바라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