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누구SONG> 드디어 밝혀진 ‘콜라는콕콕’의 정체!]
[11일 MBS <누구SONG>에서 아쉽게 결승에서 탈락한 ‘콜라는콕콕’의 정체가 밝혀졌다. ‘콜라는콕콕’의 정체는 바로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가수 ‘이원조’로···(중략).]
-이 아저씨 예전에 음주운전 걸리지 않았었나? 슬그머니 복귀각 재는 거?
ㄴ잘못 인정하고 몇 년 자숙했으면 됬죠~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닌데~ ^^ㅎ
ㄴ윗댓은 지능형 안티인가
ㄴ됬 불-편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인터넷에서 이원조 아니냐 추측했었는데 진짜였네
-패널들이 멱살 잡고 올린 이유가 이거였구나?ㅋㅋㅋㅋ
-유명한 사람임?
ㄴ엄마한테 무러봐 아가야
ㄴ무슨 협회 회장도 했었고 무명 시절 밤무대 섰을 때부터 친분 다진 조폭 형 동생도 많고 재벌 여자 물어서 제비 짓도 하다가 수백억 받아먹고 떨어졌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튼 화려함
ㄴ그냥 전형적인 옛날 방송계 양아친데, 노래는 잘하고 또 좋은 노래도 많음
ㄴ와.. 이젠 이원조를 모르는 사람도 있구나ㄷㄷ
“의심은 안 좋은 건데.”
12일 아침, WB래빗 구내식당.
밥을 먹으며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던 길우성이 구시렁거렸다.
“솔직한 감상 평가가 아니라 친분 때문에, 이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점수 준 거면 정말 나쁘다.”
“아니야. 누가 들어도 ‘잘한다!’ 이 소리가 나올 만큼 내가 더 잘했다면···.”
박가람이 시무룩한 얼굴로 흐린 뒷말을, 이건우가 마저 이었다.
“콕콕인지 펩펩인지를 물리치고 다음 라운드로 가서 멤버들에게 실컷 거들먹거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멋대로 사람의 속마음을, 어? 그렇게 멋대로, 어? 까발리면, 어? 싸우자, 이건우.”
유호가 퀭해진 눈으로 두 사람을 힐끗했다.
“먼지 날려. 나가서 싸워.”
“넹.”
“그런데··· 매니지 A팀에 무슨 일 있어?”
강보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아까 사무실 잠깐 올라갔을 때 보니까, 유 팀장님이 굉장히 비장한 얼굴로 나가던데.”
“그래? 대표님이 이번에 전 직원 보너스 지급하겠다고 그래서 다들 엄청 신나 보이던뎅.”
“아.”
유호가 생각났다는 듯 멤버들에게 말했다.
“대표님이 우리한테도 상 받은 거 축하한다고, 고생 많았다고 용돈 백만 원씩 주신대.”
“한 사람당?”
“어.”
“대표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새 스피커를 살 수 있다···!”
“히.”
라이언은 기대로 가득 찬 눈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한율이 슬쩍 봤더니, 그가 불러온 메모 앱에는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중 [물놀이☆튜브]에 시선이 갔다.
“형, 바다 가고 싶어요?”
“응? 아니, 수영장. 바다는 파도 타고 멀리멀리 떠밀려갈 것 같아서 무서워. 수영도 잘 못 하고.”
“그러고 보니까 여름에 바다나 계곡 가서 놀았던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
“다음 주 리디스에서 소풍 갈 때 계곡이나 바다에 갔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가 타잖아. 워터파크 같은 곳은 한창 성수기라 통으로 빌리기도 힘들고.”
“혹시 모르지? 뮤닷 뒤에 누가 있냐.”
“대기업?”
“그럼 우리끼리라도 잠깐 놀러 갈까?”
“언제?”
박가람이 핸드폰으로 달력을 살폈다.
“이번 주엔 디싱 녹음 있고, 금요일에는 LA로 가고··· 다음 주 주말에도 녹음 있으니까, 다다음주 주말 어때?”
“생방 무대 일주일 전에요?”
“그럼 그 다음 주···는 추석이고.”
“추석 지난 다음엔 뮤비랑 앨범 재킷 촬영 있어요.”
“그렇게 9월 하순이 되었습니다.”
라이언의 얼굴이 뚱해졌다.
“안 가.”
“음, 스케줄로 가는 게 아닌 이상 힘들 것 같다.”
우웅.
매니저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이 울렸다.
-[다음 주 녹화는 K워터파크에서 진행될 예정으로, 내일 오전 11시에 수영복 쇼핑 장면 짧게 촬영합니다.]
라이언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
“크으.”
이건우가 톡을 보며 감탄했다.
“역시 대기업 방송국. 정말로 성수기에 워터파크를 빌려버리네.”
갚았다
8월 16일. 어스래빗 멤버 4명은 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뮤직센터> MC 스케줄이 있는 유호는 지난번처럼 하루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한율과 차남석, 길우성도.
“한율인 별장 문제 때문이라고 쳐도, 너희 둘은 왜?”
멤버 절반이 떠나고 한적해진 숙소. 유호가 거실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TV를 보거나 달냥과 노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완성된 서한율 집 구경하고 싶어서요. 전 지난번에 약속 있어서 못 갔잖아요.”
“호 형 외로울까 봐?”
유호는 고개를 끄덕이곤 현관으로 나갔다.
“난 회사에서 작업하다가 곧바로 스케줄 갈 거니까, 알아서들 잘 다녀와.”
“네.”
“수고하십쇼, 리더.”
“다녀오세요.”
외출할 채비를 마친 한율은 달냥의 이동장을 가지고 나왔다. 타닷! 길우성이 흔드는 낚싯대에 신나게 폴짝거리던 달냥이 이동장을 보곤 뒤로 물러났다. 므아앙.
길우성이 귀엽다는 얼굴로 웃었다.
“우리 달냥, 오빠랑 헤어디기 시더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왜 여기 사람들은 동물에게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걸까.
한율은 불만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달냥을 안아, 이동장에 집어넣었다. 므에엥.
“그런데 정말 같이 가려고?”
“왜? 싫어? 설마··· 우리가 귀찮냐, 써한?!”
“먼저 가서 시차 적응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다음 앨범 준비로 바쁘기도 하고, 활동이 끝나면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언제 쉬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래서 시차 적응이 조금 힘들더라도, 일부러 오늘 별장에서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물건을 주문했다.
“너 전자제품이랑 이불 같은 거 잔뜩 불렀다며. 그거 혼자 다 정리할 수 있겠냐? 친구랑 형이 말이야, 응? 기껏 도와주겠다고 남았으면 말이야, 고맙다고 해야지 말이야.”
정말 그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한율이 조금 미심쩍게 쳐다보자 길우성이 턱을 치켰다.
“뭐. 왜. 뭐.”
“배달은 몇 시에 온대?”
“12시 즈음 온다고 했으니 이제 슬슬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달냥이도 집에 맡겨야 하고.”
므웨엙오옹.
“밥은?”
“간단히 사 가서 먹었으면 하는데.”
“엉.”
아. 한율은 달냥이 든 이동장을 현관 앞에 두다가, 별장에 가져가려고 했던 물건을 떠올렸다. 팬들에게 받은 선물 중, 더는 여기에 장식하기 힘든 그런 것들.
“잠깐만요.”
한율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길우성이 차남석에게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행은 안전하게 써한과. 흐.”
별장은 관리를 맡긴 업체에서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달 전에 왔을 때처럼 깨끗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길우성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 쓰레기 버리는 것도 일이겠다. 차 타고 근처 마을까지 가야 하는 거잖아.”
“그게 이곳의 유일한 단점 아닐까.”
거실에 켜놓은 대형 TV에서는 예능 재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과를 지켜보는 관찰 예능으로, 굉장히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차남석이 TV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저기 한번 나가보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독립부터 해야 하는데··· 돈을 왕창 벌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방범도 좋아야지, 방송국이랑 가까워야지, 옷이랑 선물 넣을 방도 있어야지, 멤버나 친구가 놀러 가면 잘 곳도 있어야지···. 그런데 서울 집값이 좀 비싸냐고.”
“그러고 보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 시세 올랐더라.”
“얼마나요?”
“우리가 21층이잖아. 그런데 24층 최근 실거래가가 28억이더라. 더 높은 층은 30억 넘은 지 오래고.”
“으어.”
한율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현재 숙소로 사용하는 아파트는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팔아치울 생각이므로. 고층 아파트는 대형 마물이나 군의 포격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커서 무척 위험하기 때문이다.
결계를 쳐서 보호할 수도 있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큰 비효율적인 마력 낭비다.
‘그래서 여기를 지은 거지만··· 서울에도 튼튼한 집 한 채 마련해두는 게 좋으려나?’
한동안은 많은 물자가 서울에 몰려있을 테니 말이다.
삐리링롱.
초인종이 울리며 거실 벽에 설치된 인터폰 화면이 켜졌다.
“오, 배달 오셨다.”
잠시 후. 새 침구 세트와 전자제품 상자, 온갖 생필품과 생활용품이 거실에 잔뜩 놓였다.
모두 당장 사용할 게 아니기 때문에, 침구 세트는 포장된 상태로 각 방의 붙박이 가구 안에다 집어넣었다. 생활용품은 적절한 장소에다 배치, 전자제품은 파손된 게 없는지만 확인하곤 다용도실에다 쌓고, 생필품은 팬트리실에 진열했다.
“그래도 우리 덕에 정리 빨리 끝났지? 얼른 고마워해라, 써한.”
“그래서 도시락 내가 샀잖아.”
“후식도 사란 뜻이다.”
“그거 몇 개 날랐다고 생색은. 야, 이놈 여기에 두고 가자.”
“그럴까요?”
길우성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8백 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면 되는데 왜 날 버리고 가려 해, 이 매정한 사람들아.”
“네 돈 주고 사 먹어. 대표님한테 용돈도 받았잖아.”
“써한한테 돈 갚느라 다 썼는뎅···.”
한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잉? 그끄저께 네 초코톡 계좌로 보냈잖아! 121만 7천 원!”
받은 기억이 없는데. 한율은 초코톡을 살폈다.
[2019. 8. 14.]
-[[길우성]님이 [서한율]님의 초코톡 계좌로 1,217,000원을 입금하셨습니다.]
-[ㅎ]
-[ㅎㅎ]
-[(이모티콘)]
-[(이모티콘)]
-[(이모티콘)]
-[(이모티콘)]
정말로 3년 전 길우성에게 빌려준 동물병원비가 들어와 있었다.
“아아. 이것 때문이었어? 이모티콘이 연속으로 들어와서 ‘읽음’ 버튼만 눌러놓곤 안 봤어. 뱅킹 앱 알림은··· 다른 앱 알림이랑 한꺼번에 날린 것 같다.”
“나쁜 시키.”
“얘한테 직접 말을 하지 그랬냐. 며칠이나 지났는데 돈 받은 티를 안 내면,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길우성이 툴툴거렸다.
“무심한 놈이니까 그냥 무심하게 넘기나 보다 하고 말았지. 나도 ‘갚았다! 후련하다!’ 이러고 금방 까먹었고.”
“자랑이다.”
“엣헴.”
한율은 거실을 넓게 둘러본 후 두 사람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문단속하고 나가요. ···넌 아이스크림 사줄게.”
길우성이 덩실거렸다.
“앗싸아.”
* * *
MBS <뮤직센터> 스튜디오. MC인 유호와 이해원, 진은수는 큐카드만 든 채 생방송처럼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컴백하는 첫 번째 팀, ACCOM과의 인터뷰 리허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선배님.”
“컴백 축하드립니다.”
10명의 멤버 중엔 오랫동안 WB래빗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던 김형수도 있었지만, 유호는 다른 이들처럼 대외용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김형수도 평범한 연예계 선후배 사이처럼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퍼포먼스 상 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카메라 돌리기 전에 대본 맞출게요.”
스태프의 지시. ACCOM 멤버들이 MC석에 다섯 명씩 두 줄로 붙어서 섰다. 그 앞에 나란히 선 MC들은 큐카드에 적힌 대본에다 음방 MC 특유의 활발한 생기를 불어넣어 ACCOM을 소개했다.
“드디어 그분들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앨범보다 한층 더 남자다운, 섹시하면서도 파워풀한 모습으로 돌아온···!”
“ACCOM!”
ACCOM의 컴백 기념 인터뷰 리허설은 5번 정도 반복한 후에 OK 사인이 떨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중에 뵐게요.”
“···호.”
ACCOM 멤버들이 MC석에서 내려갈 때였다. 김형수가 유호에게 슬쩍 다가왔다.
“생방 전에 잠깐 볼 수 있냐? 네가 쓰는 대기실에서.”
멤버들 혹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선 꺼내기 힘든 용건일까. 유호는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쯤이면 괜찮아.”
김형수가 WB래빗을 떠나기 전 조금 다투는 모양새로 헤어지기는 했으나, 이후 방송국이나 아스대 등에서 마주치며 인사하는 동안 서서히 안 좋았던 감정이 풀렸다.
정확히는, 그나마 동갑내기랍시고 걱정했던 생각이나 감정이 이젠 까마득한 과거처럼 밀려나 무덤덤해졌다.
“어. 이따 봐.”
잠시 후. 김형수가 유호와 이해원이 사용하는 대기실로 찾아왔다.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뽑은 것인지, 그는 유호 앞에 음료수를 내려놓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소리구름에서 상 받은 거 축하한다. 너희 정말 받을 만했어.”
“너도 컴백 축하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네가 날 다 보자고 하고.”
“그냥.”
까득. 뚜껑을 열며 싱겁게 대답한 김형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 유호에게 물었다.
“다음 앨범 준비는 잘 돼가냐? 뮤닷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느라 굉장히 바빠 보이던데.”
“그래서 조금 정신이 없기는 한데, 하루하루가 재밌어.”
“······.”
웃으며 대답하는 유호의 얼굴에서 잘난 체가 아닌, 진심이 드러나서 그럴까. 김형수는 말없이 유호를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그래, 즐거우면 된 거지. 어떻게, 혹시 남는 곡 하나 없냐? 만들기는 했는데 너희가 쓰기엔 조금 안 맞지만, 우리 그룹엔 어울리겠다 싶은 곡.”
“글쎄···. 한번 찾아볼게.”
“고맙다.”
그 뒤 김형수는 정말 별 용건 없이, 단순히 ‘친구’에게 놀러 온 사람처럼 소소한 잡담만 나누다가 ACCOM 대기실로 돌아갔다.
유호는 빈 음료수병을 쓰레기통에다 버리며 생각했다.
‘철이 든 건지, 이 바닥 경험치가 쌓인 건지.’
WB래빗에 있었을 적의 소위 ‘꼰대’ 같은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이쪽을 향해 은근히 내비치던 열등감도.
‘그나저나 민솔이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어스래빗과 정민솔 관계를 두고 왈가왈부 떠들던 사람들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따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특유의 오지랖을 부릴 법도 하건만.
‘뭐.’
유호는 이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겼다.
‘딱히 할 말이 없으니 언급하지 않은 거겠지.’
미국 LA 날짜로 8월 17일 오후 1시 무렵. 유호와 차남석, 한율과 길우성이 LA의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박가람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곁에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서들 오시게. 나는 이 호텔 레스토랑의 디저트를 하나둘 정복 중인 아이돌, 박가람이라고 하네. 그래, 자네들은 어떤 디저트가 취향인고?”
“민초만 아니면 되옵니다, 즈언하.”
박가람이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이런 진정한 미미를 모르는 편협한 입맛을 보았나! 감히 민초를 배척해?!”
상황극에 어울려주던 길우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미미 선배님도 민초파야?”
“······.”
유호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아름다울 미에 맛 미. 좋은 맛이란 뜻이야, 우성아.”
“아하? 왜 헷갈리게 어려운 말을 쓰시오, 형님!”
박가람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미안하구나, 막내야. 내 너의 지식 레벨을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
“싸우자, 박가람!”
한율은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깨끗이 무시하며, 이 모든 모습을 촬영 중인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먼저 온 멤버들과 무사히 합류했습니다.”
“보배, 어제 방송된 봤어?”
“응. 여기 위성 TV 채널로 나오더라.”
어제 방송된 7화는 출연팀들이 각자의 노래를 새로이 선보이는 내용이었다. 이번엔 팀마다 분량을 많이 주어서 다음 주 8화까지 방영될 예정. 어스래빗의 무대도 다음 주 공개 예정이었다.
“그런데 방은 어떻게 정했어요?”
“짜라란.”
이건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호텔 키 4개를 꺼내 펼쳤다.
“어제 우리가 객실마다 한 명씩 짐 풀었거든? 감 따라 골라.”
“흐흐훗.”
박가람이 길우성을 밀어내며 한율의 옆으로 슥 다가왔다.
“그럼 어제 다들 방을 혼자 썼던 거예요?”
“보배랑 이언이만. 나도 오래간만에 편히 혼자 자고 싶었는데, 박가람이 갑자기 내가 있는 객실로 쳐들어왔어. 그러더니 뜬금없이 베개 싸움하자고 하더라. 애도 아니고.”
“후. 아저씨가 되어도 동심을 잃지 말자는 뜻이었다, 이건우.”
“아저씨는 누가 아저씨야, 나 아직 스물셋이거든? 자, 어쨌든 한 명씩 키 뽑아.”
툭툭, 툭툭. 그 순간 박가람이 한율의 왼팔을 두 번씩 빠르게 두드렸다. 왼쪽에서 두 번째 키를 뽑으라는 뜻일까.
“하나, 둘···.”
어떡할까.
“셋.”
나랑 나중에 사업 하나 하자
강보배는 씻고 나오자마자 작업용 노트북부터 꺼내는 유호를 바라보았다.
“안 피곤해? 시차 맞추려고 잠도 제대로 안 잤을 거 아냐.”
“비행기에서 내내 자서 괜찮아.”
“그런데 뭐 하려고?”
강보배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유호 옆에 앉았다.
다음 어스래빗 앨범 수록곡은 모두 완성되어 녹음만 앞둔 상황이었다. 에서 새롭게 선보일 곡도 바로 이틀 전 녹음을 끝내, 급하게 할 작업도 없을 터.
유호는 ACCOM의 김형수와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내가 만든 곡을 다른 회사 가수에게도 줄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참에 한번 찾아보려고. 물론 우리 팀 일이 최우선이니까 당장 뭐 하겠단 소린 아니고.”
“그럼 예전에 작업했던 것부터 들어보는 거야?”
“으으음···. 따지고 보면 몇 년밖에 안 됐는데 고대의 흑역사를 발굴하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으으, 흑역사!’라며 몸부림치는 건 과거의 미숙함이 환히 보인다는, 말하자면 현재 레벨이 높아졌다는 반증이니까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직 첫 번째 파일 열지도 않았는데요, 강보배 씨.”
그렇게 유호가 파일 하나를 클릭하려던 순간이었다.
딩동. 객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강보배가 크게 대답하며 문으로 향했다.
“나···.”
문 너머에서 머뭇거리는 기척과 함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민솔···.”
“······?”
원제로도 같은 호텔에 묵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강보배는 의아한 얼굴로 유호를 돌아보았다.
표정과 눈치로 나누는 짧은 대화.
따로 만나기로 하거나, 아니면 그럴 일이 있어? 아니?
유호는 노트북을 덮으며 일어났다. 강보배도 일단 문을 열었다.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복도에 오래 세워두면 안 되는 사람이기에. 상대가 정민솔이라서가 아니라 인기 아이돌인 까닭이었다.
“하이.”
강보배와 눈이 마주치자 정민솔이 손을 들며 머쓱하게 인사를 건넸다.
“호 형 있어?”
그 시각, 바로 옆 객실.
“서한율, 너 나랑 나중에 사업 하나 하자.”
“무슨 사업이요?”
얼굴에 토끼 마스크팩을 붙인 박가람이 진지하게 말했다.
“고스트 스폿 정화 사업.”
“······.”
“지금 세계 곳곳에 잡것들 때문에 폐가가 되고, 흉물이 된 곳이 은근 많잖아? 그런 곳에 가서 나쁜 잡것들을 몰아내 주면 떨어졌던 부동산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살아날 거 아냐. 그러니까 정기 방문 케어로 잡것들을 몰아내 주고, 다시 또 슬슬 기어들어 오면 또 쫓아내 주고. 서한율 넌 맨몸으로 설렁설렁 돌아다니기만 해도 돈이 막 들어오는 거지. 어때?”
한율은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머물렀던 숙소를 떠올렸다.
‘하루는커녕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몇 시간 사이에 다시 나타났던 것 같던데.’
그러니 박가람이 말하는 사업으로 돈을 벌려면 매일 방문해야 할 터.
애초에 할 생각도 전혀 없지만 말이다.
한율은 물끄러미 박가람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박가람이 재빠르게 귀여운 척 포즈를 취했다.
찰칵.
“···아니, 형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사진을 찍어? 어?”
“지금이라도 방 바꿀까요?”
“아니요?”
바로 태세를 전환한 박가람은 마스크팩을 떼서 고이 접었다.
탁탁탁. 박가람이 얼굴을 두드리는 찰진 소리를 들으며, 한율은 조금 전 찍은 사진을 어스래빗 단톡방에 올렸다.
딩동.
“누구쎄용?”
“나.”
현관으로 뛰어간 박가람이 문을 열었다.
“보배쓰, 웬일?”
“그냥, 여기가 바로 옆이라 놀러 왔어. 민솔이가 호 형이랑 할 얘기 있다고 찾아왔거든.”
“민솔? 정민솔?”
“응. 들어가도 돼?”
“웰컴!”
“뭐 하고 있었어?”
“서한율한테 돈이 될 법한 사업 브리핑을···.”
객실로 들어오던 강보배가 미간을 찡그렸다.
“형. 한율이가 돈이 많다고 이상한 바람 넣으면 안 돼.”
“걱정하지 마. 자금이 저언혀 필요 없는 사업이거든. 오히려 느긋하게 산책하고, 여행하면서 돈 버는 일이야.”
“에이, 그런 일이 어디 있어.”
“설명할 순 없지만 있어.”
한율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리뷰 기사를 훑었다. 이번엔 본인들의 노래를 새롭게 선보였던 터라 팬덤 간의 신경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하울링과 원제로 팬덤이 기사 댓글란에서 또 다투고 있었다.
-방송에선 서로 어떻게 꾸미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 모를 수가 있나? 스태프가 몇 명인데? PD도 겹친다고 분명히 말해줬을 테고
-하울링 멤버가 저 아이디어 내는 거 나왔는데 뮤닷은 뭔 배짱으로 원제로도 비슷한 연출 쓰게 놔둔 거??
ㄴ바보들아 저 촬영 기법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거야
ㄴ그래도 다른 팀이랑 비슷하다 싶으면 후발주자가 빼는 게 도리 아님?
ㄴ이미 돈 들이고 연습 시간 들여서 준비한 걸 어쩌라고? 그리고 무대 순서도 녹화 당일에 정해졌는데 후발이 어쩌니 저쩌니ㅋㅋ
ㄴ당연히 아이디어 낸 순서지 빡XX리야
ㄴ누가 어떤 사람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렸는지 넌 어떻게 확신하는데? 듣보들의 팬 수준 잘 봤다^^
그러나 두 팬덤 간의 다툼을 제외한 부정적 반응은 여전히 유독 원제로를 향한 상태였다.
-ㅇㅈㄹ 정말 인기에 비해 그렇지 못한 실력
-다른 팀들은 진짜 말 그대로 새롭게 재해석해서 선보이려고 차별성을 뒀는데, 원제로는 대체 달라진 게 뭐냐
-팀에 역사가 없으니 얕네ㅋ 해석도 뭣도 다
-뮤닷 지들이 런칭한 팀 아님? 좀 챙겨줘라ㅋㅋㅋ
ㄴ내년 계약 연장은 없다는 뮤닷의 포석이었구연
한율은 다른 연예 기사를 살폈다.
[[단독]배우 윤승권, 인기 관찰 예능 출연?!]
[‘라움♡’ 블블 티스트, 오는 10월 입대]
[‘술자리서 한 농담, 아이돌 배우 편견 없어’ 배우 이강대 해명]
[MOHE 안인섭 건강 적신호··· 당분간 5인 체제로 활동]
한율은 안인섭 관련 기사를 눌렀다. 제목이 곧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아, 그 얘기 들었어?”
한참 동안 ‘세상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없다, 있다면 그건 함정이다’라고 박가람에게 잔소리하던 강보배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MBS에서 새롭게 괴담 예능 하나 만든대.”
“여름 다 지나는데 이제야?”
“요즘은 계절 같은 거 안 따지잖아. 아무튼 사람들한테 오싹한 괴담 제보받고, 고정 출연자나 게스트가 직접 제보를 읽어주고, 제보 속 장소까지 찾아가는 그런 내용이래.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한율과 박가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조금 전 박가람이 말한 사업 얘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강보배가 두 손을 꼭 모으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런칭되면 꼭 나가보고 싶어.”
우웅. 손에 든 핸드폰이 울렸다.
오 팀장의 초코톡.
-[710호로.]
매니지 B팀 4명이 묵는 객실은 어스래빗 멤버들이 묵는 객실보다 더 좁았다. 여기에 테이블과 화장대 위를 채운 온갖 업무 관련 물건들.
“일 얘기는 회사에서 차분히 나누는 게 좋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오 팀장의 안내로 테이블 의자에 앉은 한율은, 바로 옆 박스에 잔뜩 쌓인 인형을 보았다. 2주 전 <뉴욕 K-POP 콘서트> VVIP 미니 팬미팅 때 팬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던 어스래빗 인형 굿즈였다.
“우선 이것부터 볼까?”
오 팀장이 한율을 향해 노트북을 돌렸다. 지난달 촬영한 더순한화장품 CF 영상이었다.
“······?”
가만히 모니터를 보던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당시 프로덕션 직원이 그린 그림이 아닌,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촬영한 게 나와서.
“9월 2일부터 방영될 예정이야. 그리고···.”
한율이 참여해야 하는 브랜드 이벤트부터 시작해, 새롭게 들어온 광고 섭외, 예능 섭외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 괴담 프로그램, 보배 형이 무척 나가고 싶어 하던데요.”
“그래? 한율이 넌?”
“전 리액션을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잖아요. 딱히 재밌는 캐릭터도 아니고.”
“그럼 보배랑 한번 이야기 나눠볼게.”
그렇게 일 얘기가 마무리될 때 즈음이었다. 발코니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던 조유찬이 조용히 한율 옆에 앉았다.
오 팀장이 노트북을 덮으며 물었다.
“유찬 씨 왜요? 할 얘기 있어요?”
조유찬은 말없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온갖 이상한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인터넷 기사였다.
[배우 이윤영, 아이돌 A군과의 열애설 의혹 강력 부인]
“···한율아.”
조유찬 성격상 다른 아이돌이 관계된 기사를 굳이, 지금 들이밀진 않을 터. 가만히 핸드폰에 뜬 기사 제목을 보던 오 팀장이 안경을 고쳐 썼다.
“윤영 씨랑 연애 중이거나 했었니?”
질문과 달리 그의 목소리엔 의심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니요. 연락처도 모르는데요.”
“이 찌라시가 나오게 된 경위가 더 기막혀요.”
조유찬이 짧게 한숨 쉬었다.
“배우 이강대 아시죠? 그놈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율이랑 윤영 씨 사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더라, 이런 뇌피셜을 지껄인 게 원흉이랍니다.”
“아. 혹시 오늘 포털에 뜬 기사도?”
“네. 그것도 같은 술자리에서 지껄인 게 퍼진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아이돌 배우에 대해 깐 것 같지만, 누가 봐도 서한율 두고 한 말 같았다’라는 목격담 카더라가 SNS에 퍼지고 있단 거예요.”
오 팀장이 다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이강대 씨랑 트러블 있었니?”
“한율이가 이강대랑 트러블 생길 일이 어디 있어요.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드라마 <장인> 연기 비교요?”
“설마하니 반년도 더 지난 그것 때문에 이럴까 싶기도 하지만···.”
조유찬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이 바닥에도 별의별 놈이 다 있잖아요.”
“그래도 왜 윤영 씨랑···?”
“짚이는 게 있기는 한데요.”
같은 바닥 사람의 입에서 출발한 찌라시다. 회사 측이 아무것도 모른 채 대응하도록 두는 건 추후 상호 간의 신뢰 문제가 될 수 있기에, 한율은 윤상진과 블블 민준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드라마 <장인> PD가 이강대에게 한율의 연기를 들먹거리며 비교해 현장 분위기가 안 좋았다는 것, 백호영화제 뒤풀이 당시 한율의 험담을 늘어놓던 이강대가 이윤영이 항의하자 되레 ‘혹시 서한율한테 꼬리 쳐서 배역 따냈냐?’라고 모욕한 것.
덥석.
“그런 일이 있었으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점 얼굴을 구기던 조유찬이 한율의 팔을 잡았다. 그러곤 웃는 얼굴로 화냈다.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 한율아.”
“술버릇이 안 좋은 사람이니 가만히 둬도 알아서 내리막길을 가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윤영 선배님이 모욕당한 건, 제가 나서면 일이 더 꼬이잖아요.”
“그래도 앞으론 그런 일이 있으면, 아무리 자질구레하고 사소하게 느껴져도 형이랑 팀장님에게 말해. 알았지?”
“네.”
“어쨌든 이 건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다시 노트북을 펼쳐 SNS를 살피던 오 팀장이 말했다.
“한율이 넌 신경 쓰지 말고 내일 공연에 집중해.”
“네, 감사합니다.”
한율은 두 사람에게 인사하곤 객실을 나갔다. 문을 닫을 때 조유찬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우리 애가 잘하고, 또 잘 나가니까 괜히 시기 질투하는 놈들이 슬슬 나타나네요.”
다음 날 새벽. 공연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 이건우가 유호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제 민솔이가 방으로 찾아왔었다면서? 무슨 일 있대?”
“별일은 아니고···.”
유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원제로가 내년이면 끝날 프로젝트그룹이잖아. 그래서 같은 팀 멤버에게 털어놓기 힘든 일이나 생각 같은 게 많나 봐. 그런데 폰이 압수당한 상태라 여러모로 답답하잖아. 그래서···.”
“그렇다고 형을 찾아와요?”
하. 차남석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곤 아직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염치없는 건 여전하네.”
“삐뚤어진 남석 씨.”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게 삐뚤어진 거냐? 길우성 너도, 필요할 때만 너 찾는 사람이랑은 거리 둬. 호구 되기 싫으면.”
“오호. 남석 씨 지금 리더를 호구라고 돌려 까는 건가?”
대답은 이건우가 했다.
“호 형은 본인 스스로 호구란 걸 옛적에 인정했잖아.”
“야.”
공연장에 도착한 후엔 콘서트 관계자들, 다른 출연팀과 인사를 나누고 어둑한 한쪽으로 이동,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오늘따라 다른 팀에 붙은 개별 카메라가 많아, 그 안에 들어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반대로 어스래빗을 찍는 카메라도 있고.
VJ가 한율에게 물었다.
“작년 에 출연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한율은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미소 지었다.
“순서와 시간이요. 작년엔 앞에서 네 번째 순서에다가 인트로를 포함해서 2.5곡을 했었는데, 올해는 뒤에서 세 번째, 곡도 세 곡이나 부르게 되었거든요.”
“어스래빗 성공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길우성이 불쑥 끼어들었다가 상체를 굽히며 사라졌다. 한율은 그런 길우성을 잠깐 돌아보았다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래서 이번 콘서트를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에게 우리의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보여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네요.”
그래도 다리는 길어
작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VVIP 티켓 소지자 중 어스래빗 미니 팬미팅을 찾아온 사람들.
작년엔 어스래빗을 먼저 알고 팬이 되어 찾아온 사람들보다, 어떤 팀일까? 라는 호기심으로 온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과 환호성엔 어스래빗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2주 전 뉴욕에 이어 오늘 LA에서도.
“팬분이 지난번 콘서트 못 와서 미안하다고 우는데, 나도 괜히 울컥하더라.”
미니 팬미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어느새 2시. 대기실로 돌아온 멤버들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난 그게 참 신기하던데.”
“뭐가?”
“우리 중 누구도 다음 단독 콘서트 언급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
“크으!”
“안 돼. 자신감도 좋지만 거만해져선 안 돼. 초심을 찾자.”
박가람이 자신의 도시락에 있던 미니당근을 멤버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자, 당근부터 먹고.”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편식쟁이?”
“가람이 형, 당근 좋아하지 않아?”
“익힌 당근은 싫엉.”
이제 레드카펫 시간까진 자유. 점심을 먹은 멤버들은 대기실 여기저기 흩어져 쉬었다. 한율은 소파에 앉은 채 선잠을 자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떴다.
“깼어?”
언제 왔는지, 옆에는 스카이러너 용맹이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새로 샀어요?”
본래 용맹은 카메라는커녕 인터넷도 안 되는 구형 폴더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든 핸드폰은 최근 TV 광고에 심심찮게 나오는 최신 기종.
용맹이 웃으며 자랑했다.
“응. 미국 오기 직전에.”
“축하해요. 이제 맛집 리스트 일일이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요.”
“흐흣. 기념으로 사진 고?”
“네.”
한율은 흔쾌히 용맹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찰칵.
“사실은 사자마자 톡 보내려고 했는데, 매니저 형이 맡기라고 해서 맡겼었거든. 그러다 아까서야 받았어. 한율이 넌 폰에 무슨 앱 깔았어?”
“별거 없어요.”
한율은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기본 앱을 제외하곤 초코톡, 은행, 음악 스트리밍, 그린라이브, 박가람이 설치한 사진 필터 앱이 다였다.
용맹이 감탄했다.
“와. 산 지 이틀밖에 안 된 내 핸드폰이랑 깔린 게 똑같아.”
“맹 형, 폰 새로 샀어요?”
어디를 다녀왔는지, 대기실로 들어오던 길우성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응. 최신 모델이다? 비싼 거다?”
“오오! 봐도 돼요?”
“그럼. 사진부터 찍고.”
“최신 모델이라고?”
최신 핸드폰이란 소리에 박가람도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용맹은 박가람과 길우성에게 이런저런 앱 추천을 받고 설명을 들으며 놀다가, 찾으러 온 매니저에게 잡혀 대기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