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스카이러너 용맹, LA에서 친한 동료들과 찍은 셀카 대공개!]
-우리 맹 장군 첫 스마트폰 개통 축하해♡♡♡♡♡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다들 너무 예쁘다^^
-LA 콘서트 무사히 마친 거 축하해! 조심히 돌아와(*ˊᗜˋ*)
-맹맹이 어스래빗 애들이랑 정말 친하구낭ㅎㅎ
-사진 찍은 거 보니 꼭 장난기 심한 중딩들 같네ㅋㅋ
“······.”
고동 엔터테인먼트. 김지영 실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에 뜬 사진을 살피다가, 블루액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루액션 리더, 조용히 내 방으로 보내세요.”
-[네.]
곧 블루액션 리더가 김지영 실장을 찾아왔다. 한창 연습하다가 대충 땀만 닦고 왔는지 꼬질꼬질했다.
“부르셨어요?”
“그래. 피차 바쁘니까 바로 물어볼게. 너 포함해서 애들, 친한 아이돌 애들 있지?”
잠시 후, 블루액션 연습실.
멤버들은 잔뜩 굳은 얼굴로 돌아온 리더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매니저 형이 뭐래?”
“혹시 전에 몰래 치킨 시켜 먹은 거 들킨 거야?”
“그래서 내가 뼈 말고 순살 시키자 그랬잖아. 뼈는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
참 소소한 일탈을 해놓고 걱정한다. 블루액션 리더는 가만히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망설이던 입을 뗐다. 김 실장은 알아서 에둘러 말하라고 했지만, 같은 팀 멤버들을 속이는 게 더 싫었다. 이들이 그렇게 눈치 없는 바보도 아니고.
“우리 나간 거, 회사에서 힘쓴 덕이라는 거 다들 짐작하고 있지?”
몰래 치킨 시켜 먹은 것보다 더 심각하고 진지한 일이구나.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방송 앞부분에 우리 리얼리티 장면 넣어준 거 보고 짐작하긴 했지. 자막이나 편집도 은근히 신경 써주기도 하고.”
“지금 메인 작가님이 <보컬리스트 시즌3>랑 우리 리얼리티 촬영할 때 있었던 분이지?”
은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고 보니 전에 하울링 멤버가 나한테 묻더라. 혹시 고동이 리디스 제작비 일부 지원한 거 아니냐고. 그땐 ‘에이, 예전에 보컬 PD 접대 사건으로 사람들 입방아에 내리고도 또?’란 생각도 들고, 기분도 나빠서 무시했는데···.”
말하면서 점점 얼굴을 구기던 은강이 리더를 바라보았다.
“아니지?”
리더는 천천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리디스 기획 단계에도 참여하고, 제작비도 일부 지원한 거 맞아.”
“헐···.”
“하지만 그렇게 충격받을 필욘 없어. 이 바닥에 이런 공생 관계가 한둘도 아니고, 이젠 기획사에서 TV 프로그램 제작까지 하는 시대잖아. 법적으로 문제 될 일 없이 진행된 거라고도 하고··· 티 나게 우리 팀만 편애하지도 않잖아. 어쨌든.”
이어진 리더의 말은, 블루액션 멤버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새겼다.
* * *
8월 22일 아침, 경기도의 K 워터파크.
도저히 꺾일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더위 탓인지, 아직 오픈 전인 워터파크 입구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 또한 차들로 빽빽했는데, 어스래빗의 차가 슬슬 들어가는 일부 구역은 방송 촬영 장비만 있고 한산했다.
“와, 저기 사람들 봐···.”
“나중에 우리 막 혼나는 거 아냐?”
창밖을 보던 강보배가 우려를 표했다.
“요즘 방송 촬영 갑질이니 뭐니 이런 말 많이 나오던데···.”
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는 사업장에다 돈을 주고 빌린 거라 괜찮아. 그리고 워터파크 측에서도 열흘 전부터, 22일은 자유이용권이랑 시설 일부 예약 및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공지 띄웠대. 여기 일주일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이 거의 힘든 곳으로 유명해서, 오늘 오신 분들도 다 알고 계실걸?”
“크으, 역시 대기업 방송국 클라쓰.”
탄산을 마신 것처럼 길우성이 눈을 찡그리며 감탄하자, 라이언도 옆에서 따라 했다.
“크으.”
방송 촬영이기는 하나, 하고 싶었던 물놀이를 하게 되어 정말 신난 모양이었다.
“자, 다들 마이크부터 차고.”
어스래빗 멤버들은 차에 올라타는 리디스 제작팀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마이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각자 물건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스태프들이 설치한 통제선 너머로, 무슨 촬영인가 의아해하며 모인 사람들이 기웃거렸다. 꺅! 그 틈에서 높게 울려 퍼지는 비명. 친구끼리 놀러 온 것인지, 10대로 보이는 소녀들이 서로의 팔이나 어깨를 때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스래빗 아냐? 어스래빗?!”
“그것 봐, 내가 리디스 촬영 같다고 그랬잖아!”
어스래빗 멤버들은 사람들을 향해 꾸벅꾸벅 인사하며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이윽고 카메라에 여름휴가 복장으로 한껏 꾸민 그들의 모습이 하나둘 들어왔다.
“우리가 1등으로 온 거예요?”
한율은 챙이 넓은 밀짚모자에다 선글라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샌들을 신고 터벅터벅 등장했다. 어깨에는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커다란 튜브를 걸쳤다. 팬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여기에서 오프닝 찍고 들어가요?”
메인 카메라 옆에 쭈그려 앉은 PD가 대답했다.
“네. 잘생긴 얼굴 가려지니까 선글라스는 벗어주세요.”
한율은 바로 그의 말을 따랐다. 옆에 있던 차남석이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를 받아 가더니, 대신 모자 위에다 보기 좋게 꽂아주었다.
“이 선글라스는 언제 산 거야? 처음 보는데.”
“어머니 거예요. 그저께 집에 가서 빌려왔어요.”
“헉.”
박가람이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한율의 선글라스를 보았다.
“예뻐서 빌려달라고 하려 그랬는데, 안 되겠다.”
“한번 써볼래요?”
“응.”
“가람이는 꼭 한율이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거 다 해보고 싶어 하더라?”
“아니, 그런데 한율이가 가진 것 중에 예쁜 게 많아. 특히 내 취향···.”
이건우가 적절히 끼어들었다.
“취향인데, 막상 걸치면 한율이만큼 핏이 잘 안 살아서 슬프지 않아?”
막 선글라스를 쓴 박가람이 물개처럼 박수치며 대답했다. 슬픈 가락을 담아.
“엉···, 엉···.”
딱 팬들이 좋아하고 재밌어할 법하게 분량을 잘 뽑는다는 생각이 드는지, 지켜보는 PD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던데, 가람이는 뭐가 문젤까?”
“키?”
“키.”
“싸우자, 이 짜식들!”
“오오, 그래도 다리는 길어!”
“···흐.”
“가람이 좋아한다.”
그때 어스래빗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버스 문이 열렸다. 이번엔 조금 전과 다른 10대 소녀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블루액션, 블루액션!”
“꺄아!”
블루액션 멤버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곳을 향해 고개를 꾸벅이곤, 어스래빗이 있는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텐션이 껑충 올라갔다.
“아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아!”
아침부터 기운이 넘치네. 한율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다가오는 안세현에게 맞춰 손을 들었다.
짜악! 두 손이 강하게 맞부딪쳤다.
블루액션 멤버들은 다른 팀들이 도착해 오프닝 촬영을 마친 뒤에도, 오전 내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높은 텐션을 유지했다. 게임 대부분이 물에서 진행된 터라 체력이 적잖이 소모될 텐데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아. 단체로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오후 2시, 워터파크 안에 있는 레스토랑.
늦은 점심을 먹으며 차남석이 은강에게 물었다. 블루액션 멤버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어스래빗 테이블 가까이 자리 잡았다.
은강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리디스도 마지막 생방송만 남았잖아. 그러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끝까지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진담이 섞인 듯한 멘트. 차남석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짓다가 입가를 올렸다. 그들 곁에는 여전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맛있게 폭립을 뜯던 안세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제 곧 한율이 생일 아니야? 올해도 멤버들끼리 생일파티 해?”
“어? 제 생일 아세요?”
“30분 전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알게 됐어.”
“······?”
“나중에 방송으로 봐.”
“네.”
“그래서 생일파티는? 스무 살, 성인 되고 나서 맞이하는 첫 생일이잖아.”
“그렇다면···!”
길우성이 마시던 음료를 내려놓으며 눈을 빛냈다.
“어스래빗 최초, 음주를 곁들인 생일파티를···?!”
“안 돼. 첫 술은 부모님이랑 같이 마시기로 약속했어.”
“쳇.”
“와, 한율이 너 효자구나?”
“형은 첫 술 누구랑 마셨어요?”
“나···.”
안세현이 슬쩍 눈동자를 굴리더니 머쓱하게 웃었다.
“예전에 집에 있는 술 슬쩍 마셔본 게 처음.”
“혼자 마셨네요.”
“응. 히히.”
“이 방송을 보고 계실 부모님께 한마디 하시죠.”
한율은 테이블에 놓인 소형 카메라를 안세현 쪽으로 돌렸다. 안세현은 거기에다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입에서 강한 경상도 억양이 흘러나왔다.
“아부지, 아부지 양주 그거, 까만 라벨 붙은 고급스러운 거··· 내가 마시고 물 탔다. 흐.”
이어진 오후 녹화는 자유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뮤닷에서 통째로 빌린 어트랙션을 신나게 타며 즐겼는데, 그러다 보니 나중엔 소속 그룹이 마구 뒤섞여있었다.
“선배님, 이거 또 타시게요? 아까 게임 할 때도 탔는데···?”
수십 미터 위에서 커다란 원형 튜브를 타고 출발하는, 타는 내내 스릴이 넘치는 긴 슬라이드. 탑승장 위로 올라가려는데, 언제부턴가 한율과 어울리며 놀던 현강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으아아악···!
한율은 먼저 탑승한 아이들의 비명을 들으며 웃었다.
“응. 굉장히 재밌더라고.”
매년 스케일이 커진다
리디스 촬영이 끝나고 다시 차에 탔을 땐 오후 5시가 될 무렵이었다. 장시간 물에서 게임하고 놀았던 탓인지, 좌석에 앉자마자 나른하게 잠이 쏟아졌다.
“오늘 있잖아,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든데.”
길우성이 느릿하게 말하며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블루액션 형들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
“너도 느꼈어? 나도.”
“초반엔 이 형들 오늘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니까··· 뭔가 악에 받쳐서 억지로 텐션을 높이고, 그걸 웃는 얼굴로 가리는 느낌이 들더라고.”
“걔들도 그렇고, 원제로랑 하울링 멤버들도 조금 이상하더라.”
“그 두 팀은 요즘 팬덤들 간의 사이가 안 좋으니까, 일부러 서로 친한 척, 챙겨주는 척한 거래. 내가 물어봤어.”
“아.”
우웅.
양반은 못 되는지, 블루액션의 안세현이 톡을 보냈다.
-[미리 생일 축하해!]
-[(이모티콘)]
-[블루액션 안세현 님이 파리빵집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냈습니다.]
“······?”
알고 지낸 지 3년이 되기는 했으나, 평소 자주 연락하던 사이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거리를 좁히려는 안세현의 태도가 조금 의아했지만, 한율은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저도 형 생일 때 보답할게요. :)]
-[ㅇㅇ!]
-[ㅎㅎ 오늘 수고했어]
[형도 오늘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딱히 경계심은 들지 않아, 한율은 포털사이트에서 [블루액션 안세현 생일]을 검색했다.
다음 날 8화.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엔 어스래빗과 블루액션, 그레이트7의 무대가 공개되었다. 어스래빗이 선택한 곡은 데뷔 앨범 수록곡이자, 멤버 전원이 작사에 참여했던 <월흔>.
본래 <월흔>은 멤버들이 데뷔 전, 데뷔를 위해 달리던 나날의 감상과 생각, 바람을 담은 잔잔한 발라드였다. 그러나 여기에 트레리안의 첫 번째 싱글인 <갈래>를 믹스 매치하고, 가사 또한 일부 수정했다. 어느새 데뷔 3년 차. 현재의 감상을 담아.
[달리기 전 미웠던 달이 이젠 예뻐.]
[늘 그곳에 숙이고 웃어, 나도 바라보며 웃어.]
[이제 그만 손을 뻗어···.]
[오늘도 난 네 그림자 아랠 걸어.]
커뮤니티 사이트의 어스래빗 게시판.
[꼭 월흔 뮤비 복습하고 리디스 무대 봐라]
[3년 동안 정말 많이, 열심히 달렸구나 싶다]
[왜 날 울려 나쁜 토끼들아]
[☆지구토끼 성장 클라쓰☆]
[애들 뿌듯한 얼굴로 웃으면서 노래 부르는데 울컥함]
[처음엔 왜 세트가 이것뿐이지 했는데 첫 소절 듣자마자]
[너무 좋아 완전 좋아]
[다음 주 예고 워터파크♡♡♡♡♡]
대부분의 아이돌 팬들이 그렇듯, 게시판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프로그램 톡창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했던 어스래빗 무대 중 제일 순둥순둥한 무대였던 것 같다
-이번엔 잠깐 쉬어가는 듯?
-하긴 계속 빡센 곡만 하기엔 힘들지
-파이널 때 뭘 들고 오려고 이러시나?
어스래빗 멤버들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서로 수고했다면서 방으로 흩어졌다. 바로 내일부터 정규 1집 앨범 녹음이 잡힌 까닭이었다. 한율 또한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렁그르렁.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달냥이 베개 옆에서 골골송을 불렀다. 툭. 한율은 달냥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자그마한 몸뚱이에 불어넣은 마력이 이젠 제법 자연스럽게 융화되었다.
한율은 달냥을 여러 번 쓰다듬어 준 뒤 잠을 청했다.
‘슬슬 기초 훈련을 준비해야겠네.’
어스래빗 정규 1집 앨범 녹음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다. 회사와 멤버 모두, 조금이라도 앨범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 탓에 예정보다 오래 걸렸다.
그렇게 어느새 날짜는 8월 30일.
한율의 스무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 * *
[어스래빗 한율, 스무 번째 생일 기념 역대급 이벤트!]
[오늘 8월 30일, 보이그룹 어스래빗 멤버이자 배우인 서한율의 스무 살 생일을 맞아 국내외 팬덤이 역대급 이벤트를 벌였다.
국내 팬덤은 서울 시내 지하철 20개 역 전광판에 서한율의 생일 축하 광고를 게재했으며 서한율의 이름으로 ○○소아암 재단에 5천만 원, ○○유기 동물보호센터에 고양이 사료 830kg과 고양이 화장실 모래 830kg, 개 사료 830kg을 기부했다.
일본 팬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쿄 중심가에, 중국 팬덤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서한율의 축하 광고 영상을 걸었으며 서한율의 부모는 올해도 아들의 이름으로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2억 830만 원을 기부, 3년 전부터 서한율의 생일마다 기부했던 익명의 개인 팬 또한 올해도 ○○재단에 830만 원을 기부했다.
이에 보답하듯 서한율은 어스래빗 팬덤 ‘이프림’의 이름으로 ○○어린이재단과 ○○대학병원 어린이병원에 각각 1억씩, 총 2억을 기부하며 훈훈함을 자아냈다.]
-매년 스케일이 커진다ㄷㄷㄷ
-미쳤다 진짜
-아이돌을 아이돌이라고 전부 싸잡을 수 없는 이유
-요즘 어린 학생들이 참 똑똑하네요. 선한 기부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좋게 알리는 게 더 큰 선물이란 걸 깨닫고 행동하다니^^ 여기에 생일 당사자도 기부..! 선한 영향력 응원합니다!
-진짜 예전엔 아이돌 팬들하면 ㅈㄴ 민폐 중의 상민폐 집단이란 생각밖에 없었는데, 최근엔 이런 식으로 팬심 드러내는 거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본인 부모님 안마는 해드리면서 저런 데 돈 쓰냐? ㅋㅋㅋㅋ 부모님이 뼈 빠지게 번 돈을 저기다 쓰고서 ‘난 착한 팬이다! 칭찬받았다!’ 자기만족으로 뿌듯해하면서 웃을 거 생각하니 존웃
-‘이 가방 너무 예쁘지 않아요?’ 생일 전에 대놓고 SNS에다가 물건 사진까지 올리면서 은근히 조공 강요하던 모 아이돌이랑 진짜 비교되네
ㄴㅋㅋㅋㅋㅋㅋㅋ
ㄴ누군지 알 것 같다
-어스래빗 멤버 전원 손편지 외의 선물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공지 띄웠다고 합니다!
ㄴ오
ㄴ안 돼!!!!!!!
ㄴ일절은 아니고, 팬미팅처럼 직접 만나는 이벤트는 제외랍니다. 다만, 경쟁률이...........
-오늘 타임스퀘어 갔다가 전광판에 고양이 주인 나와서 개놀람ㅋㅋ 그래도 기념으로 사진 찍음ㅎ
ㄴ고양이 난로 작년 12월에 개봉하지 않았나? 아직도 고양이 주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네
“선생님.”
포털 메인에 뜬 기사를 보던 길우성이 덥석 한율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곤 과거 인기 예능에서 나온 유명한 짤의 대사를 읊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십시오.”
한율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밀었다.
“골라.”
‘기프티콘’ 폴더에다 저장한 무수한 모바일 교환권. 그중 생일 축하한다며 지인들이 보낸 아이스크림 케이크 교환권이 한둘이 아니었다. 예전에 블블 민준에게 받은 것도 많이 남았고.
한참 동안 교환권 이미지를 넘기던 길우성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니, 이게 다 뭐시여···.”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던 박가람이 끼어들었다.
“보십시오, 이프림. 서한율이 이 구역의 인싸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히익, 이게 다 몇 개야?”
“이거 다 먹으면 10kg은 바로 찔 것 같아.”
“그 전에 배가 터지지 않을까?”
오늘은 9화가 방송되는 날이기도 해서, 어스래빗 멤버들은 평소보다 일찍 숙소로 돌아와 생일파티 라방을 준비했다.
기다란 티 테이블 중앙에는 유호가 <뮤직센터> 퇴근길에 사 온 케이크를, 그 옆으론 한율의 모친이 보낸 온갖 맛있는 음식을 세팅했다. 소파 뒤 벽면엔 한율의 포토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는 [Happy birthday] 풍선도 함께.
차남석은 노트북과 연결한 카메라와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강보배는 커다란 스탠드를 가져왔다. 환한 천장 조명이 꺼진 거실은 곧 부드러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라이언이 방에서 앙증맞은 고깔모자를 들고 나왔다.
“우리 달냥, 예쁜 모자 쓸까?”
므앙.
강보배가 고개를 흔들었다.
“고양인 몸에 뭐가 붙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받아서 안 좋아.”
“그래? 미안, 달냥.”
므앙.
“라방 켠다.”
띠링. 핸드폰에 이건우가 작성한 라방 제목이 떴다.
[어스래빗-☆(경)서한율 생일(축)☆]
새카맣던 영상이 이내 환해지며 어스래빗 멤버들을 비추었다. 중앙에 앉은 한율이 손 구호를 하며 선창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서한율 생일 축하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상이 켜지자마자 올라오는 웃음 의성어.
한율은 일부러 핸드폰이 아닌, 노트북과 카메라로 가까이 다가가 톡을 읽었다. 화면에 핑크 볼 터치에, 토끼 머리끈으로 앞머리를 울려 묶은 안경 쓴 얼굴이 크게 잡혔다.
-티셔츠에 ‘으른토끼’ 먼뎈ㅋㅋㅋㅋ
-귀여워(진지)
-안경 율톢 보고 싶다고 한 거 들어준 거야ㅜㅜ??
-화면에 반대로 나오는 것까지 고려해서 글자 붙인 게 더 킬포ㅋㅋㅋㅋ
-혹시 다음 앨범 스포야?
-단체로 앞머리 올려 묶은 거 너무 귀여웡
한율은 가만히 톡을 들여다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으며 꾸벅였다.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기 전, 먼저 팬분들을 위한 포토타임부터 갖겠습니다. 일동 포즈 준비.”
“핫!”
멤버들이 우렁찬 기합 소리를 내며 귀여운 척 포즈를 취했다.
-컨셉 무엇ㅋㅋㅋㅋㅋ
라방은 방송 시작 20분 전까지 진행했다. 한율은 멤버들과 함께 뒷정리부터 한 후, 묶었던 앞머리를 풀고 볼 터치를 지웠다.
박가람이 소파에 편히 앉아 리모컨을 들었다.
“오늘은 이건우 잔소리 없이 편히 볼 수 있겠당.”
“누가 들으면 내가 매일 잔소리하는 사람인 줄 알겠다?”
“배가 너무 안 꺼지는데 어떡하지?”
“그게 내가 지금 요가 매트를 까는 이유야.”
“달냥이가 자리 잡고 누웠는데?”
한율도 편히 소파에 앉았다. 옆에 앉은 차남석이 들여다보고 있던 핸드폰을 한율에게 보여주었다.
“오늘 <혼자서도 잘 살아요>에 배우 윤승권 나온다.”
<혼자서도 잘 살아요>는 예전에 차남석이 한번 나가보고 싶다고 말한 인기 관찰 예능이었다. 방송 시간대는 와 겹치는 금요일 밤.
“나오는 계기로 좀 탈탈 털렸으면 좋겠다.”
“털려요?”
“이 프로그램, 인기가 워낙 많고 화제성도 있어서 출연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 과거나 사생활,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경우엔 특히 더. 제 딴에는 잘 감춘다고 생각해도,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 저도 모르게 드러내는 눈빛이나 표정, 이상한 단서들이 포착되기도 하고.”
“왜? 윤승권 씨한테 무슨 문제 있어?”
박가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차남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작품 할 때마다 유독, 같이 찍는 여배우랑 썸을 타거나, 아니면 단단히 틀어지거나 하는 일이 생긴대요. 회원제 클럽 같은 곳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도 있고.”
“으.”
“가만.”
달냥을 피해서 비스듬하게 스트레칭하던 강보배가 고개를 돌렸다.
“제희 선배님 지금··· 윤승권이랑 같이 드라마 찍고 있지 않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 그럼 그것 때문인가?”
“뭐가?”
길우성이 스쾃 자세를 취한 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A팀 유 팀장님 있잖아, 얼마 전부터 로드 매니저 대신해서 제희 선배님 스케줄에 동행한다던데?”
“팀장님이 직접?”
“와···.”
박가람이 미간을 구기며 차남석의 핸드폰 속 윤승권 사진을 보았다.
“어째 느낌이 조금 싸한데?”
“방송 시작한다.”
떠드는 동안 광고가 끝났다.
9화 오프닝은 지난주, 워터파크 주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어스래빗이 열었다. 카메라는 어스래빗 멤버를 한 명씩 클로즈업 했다.
[우리가 1등으로 온 거예요?]
슥삭삭. 출연자의 말은 하단 자막으로, 얼굴 옆으론 파스텔 톤 설명 자막이 붙었다.
[차남석(어스래빗)]
[특징: 우주최강존잘보이스]
이어서 한율의 등장.
[여기에서 오프닝 찍고 들어가요?]
[서한율(어스래빗)]
[특징: ☆8월 30일 오늘 생일☆]
프로그램 톡창은 벌써 시끌벅적했다.
-서한율 생일 축하해♡♡♡
-생일 기념 2억 기부자ㄷㄷㄷ
-선글라스 예쁘다 생각했는데 엄마 거ㅎㅎㅎ
-뭔 남자애들이 팔이랑 다리에 털이 없냐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적고 싶었는데 박다람 보니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진짜 키는 작은데 다리는 기네ㅋㅋㅋ
-털이 별로 없는 건 보기 좋을 정도로 왁싱해서 그럼ㅇㅇ 아이돌은 이미지가 생명이니깐
같은 거 탄 거 맞냐
여섯 팀이 모두 모이는 오프닝이 지나고 워터파크 입장.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땐, 팀별로 사전 촬영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스래빗은 다섯 번째 순서였다.
자막.
[2019년 8월 13일.]
차에 탄 어스래빗 멤버들이 들뜬 얼굴로 떠들었다.
[노출은 어디까지 허용이에요?]
[바지는 보드숏 종류로, 너무 달라붙거나 짧은 건 안 돼.]
매니저의 단호한 목소리.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리 팬분들의 눈은 소중하니까 지켜줘야지.]
[우리 눈도 지켜주세요.]
[상체는요?]
[래시가드. 복근에 자신 있으면 아주 살짝 붙는 것까진 허용.]
복근이란 말에 멤버들이 이건우를 바라보았다. 이건우가 거들먹거리며 미소 지었다.
[나 오늘부터 몸 관리 더 빡세게 들어간다. 긴장해라.]
프로그램 톡창.
-중간에 서한율 ‘우리 눈도 지켜주세요’
-짐승돌 보고 싶다.. 이젠 희귀종이 되어버린 짐승돌..
-안 지켜줘도 되는데
수영용품 전문점으로 장면이 전환되었다.
[여기에서 수영할 줄 아는 사람, 손?]
[저요.]
[나는 일단 물에는 떠.]
[···물에 뜨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아냐, 물에 뜨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해. 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사랑까지?]
-맞아 율톢 어릴 때 수영 배웠었다고 했었지
-라이언 특징: 잠수는 잘하는데 수영은 못 함
[나는 수영은 하는데, 물속에선··· 아무리 수경을 껴도 눈을 못 뜨겠어. 옛날에 그··· 트라우마가 있어서.]
[무슨 트라우마요?]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 유호는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다.
[나중에 말해줄게.]
[????] 물음표 자막과 함께 유호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멤버들.
[그럼 수영할 때 눈 꼭 감고 하는 거야?]
[그게 더 위험할 것 같은데요, 형.]
영상은 셀캠을 들고 가게에 전시된 수영복과 온갖 용품을 살피며 떠드는 모습, 이것저것 멋있거나 우스꽝스럽게 걸쳐보는 모습이 축약되어 나왔다. 물론 민망하거나 과한 노출은 일절 없었다.
곧 간판이 모자이크 처리된 가게 외관으로 장면이 전환, 목소리와 자막이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물놀이! 물놀이!]
[※풀영상은 방송이 끝난 뒤 너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워터파크.
[과연 어스래빗 멤버들이 선택한 물놀이 패션은?]
따단, 따다다단. 패션쇼에서 곧잘 흘러나오는 멋들어진 BGM과 함께 물놀이 패션으로 꾸민 어스래빗 멤버들이 등장했다.
-네, 다른 팀처럼 아주 건전합니다.
물놀이 패션쇼가 끝난 뒤엔 다음 주 무대 순서를 건 게임으로 이어졌다. 여러 종류 게임을 거쳐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팀 순서대로, 원하는 무대 순서를 선점할 수 있었다.
[무조건 이겨서 무조건 마지막!]
[최소한 2등은 해야 해, 얘들아. 그 이상 타협은 없다.]
[우워어···!]
무대 순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전 세계 K-POP 팬들이 즐겨보는 뮤닷 방송인지라, 그들은 제각기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게임에 임했다.
[믿는다, 서한율!]
수십 미터 위에서 급하강과 급상승,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는 커다란 튜브에 앉아 돈을 세는 게임. 돈은 보드게임에서 사용되는 가짜 화폐로, 얇고 작았다. 사방에서 물까지 튈 테니 평정을 유지한 채 차분히 세는 게 관건.
출발지점. 구명조끼를 걸치고 튜브에 앉은 한율은 멤버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요!]
함께 튜브에 탄 이들은 그레이트7의 완언과 원제로의 정민솔.
후우! 완언이 크게 심호흡하더니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침착해, 침착해.]
정민솔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흠뻑 젖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곤 멤버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홧팅!]
[차분히 해, 민솔아!]
스태프들이 그들에게 가짜 돈 뭉치를 쥐여주었다.
[출발!]
촤악. 세 사람과 VJ들을 태운 튜브가 수십 미터 위에서 아래로, 물살을 따라 내려갔다. 슬라이드를 감싼 널찍한 푸른색 통로에 이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 으아아!]
-아이고 민솔아ㅜㅜ
-ㅋㅋㅋㅋㅋㅋ
-민솔이 간만에 활기차게 비명 지른다
-우리 메보 목 아껴, 목!
완언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촤악! 얼굴을 강타하는 물살에 오만상을 찌푸렸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휘잉! 벽을 타고 올라가는 데에 깜짝 놀라서 다시 으아악.
반면, 한율을 찍는 카메라나 오디오는 평온했다.
[······.]
촤악! ···쐐엑, 촤악! 좌우로 거칠게 이동하거나 회전하는 튜브. 그러나 움직임이 거칠어졌을 때만 손잡이를 잡을 뿐, 한율은 시선을 지폐에 고정한 채 손을 움직이며 셌다. 물이 얼굴에 튈 때만 눈가만 살짝 찡그리는 정도.
평화로운 BGM이 흘러나왔다.
라랄라라 랄라.
-이거 같은 거 탄 거 맞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침착톢킹
-???: 스카이다이빙 하고 싶어요!
-와 나 저거 탔을 때 나도 모르게 비명 지르게 되던데ㄷㄷ
뒤늦게 정민솔과 완언이 애써 평정을 찾아 돈을 세기 시작했지만, 손에 들고 있던 돈이 이미 흠뻑 젖을 대로 젖어서 쉽지 않았다.
[다 셌어요.]
중간 지점. 거친 물살을 따라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며 내려가는 중. 한율이 VJ를 향해 태연하게 웃었다.
[총 67만 5천 원입니다.]
그러곤 남은 코스를 여유롭게 즐겼다.
[엄마아···!]
[아, 까먹었어···!]
완언과 정민솔의 절규를 들으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강심장
-방송 중에 누가 화장품 CF 찍으래
-서한율 혼자만 딴 세상이야ㅋㅋ
-자네 혹시 롤러코스터에서 먹방해 볼 생각 없나?
-선크림 바르기는 했는데 피부 진짜 넘사 수준이다ㄷㄷ
해당 라운드의 승자는 당연히 한율이었다.
촬영 당시엔 멀찍이서 보고, 결과만 들었던 멤버들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보다 너무 실리를 챙긴 거 아닌가 조금 걱정했는데, 편집 재밌게 잘해주셨네.”
“민솔인 진짜 찐으로 겁먹었었구나. 그땐 저렇게 휘청거리는 거 보고 방송 참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쟤도 은근 겁 많더라.”
인공 파도가 몰아치는 풀에 둥둥 뜬 점수 깃발 쟁취 게임, 물에서 하는 가위바위보 뿅망치 게임 등이 이어졌다.
이윽고 쉬는 시간 겸 늦은 점심시간. 레스토랑으로 향하던 출연자 중 몇 명이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오, 여기에서도 수영복 파는구나.]
[잠깐 보고 갈래?]
[아, 나 여기 온 김에 그거 사야겠다.]
[뭘?]
촐랑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박가람 뒤를 라이언이 따랐다.
[조금 있으면 서한율 생일이잖아.]
함께 가게로 들어간 블루액션의 안세현이 물었다.
[한율이 생일이에요?]
[응, 이번 달 30일.]
[어? 그럼 오늘 방송 나갈 때네?]
방송으로 보라는 게 저런 의미였구나.
한율은 녹화 당시 안세현이 생일 얘기를 꺼내게 된 경위를 이해했다. 오늘 박가람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물총과 핸드폰 방수팩의 구입 출처도.
-본격 먹방 시작
-물놀이 실컷 했으니 배고프지ㅎㅎ
-아니 다들 저렇게 말랐는데 저게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서한율 그럼 아직도 술 한 모금도 안 마셔본 거? 8월인데??
-조용히 꾸준히 맛있게 많이 먹는 사자톢
-얌냠냠냠냠냠냠 얌냠냠냠냠냠냠
-안 마셔봤을 리가ㅋ 아이돌들 뒤에서 더럽게 노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
-하울링 쟤 엄청 떠드네
-차라리 그냥 두지 물은 왜 타 세현아ㅋㅋㅋㅋㅋ
-그레7 애들은 왤케 눈치 보면서 먹는 것 같냐8ㅅ8
-더럽게 논다 어쩌고저쩌고 일반화로 까면서도 보는 이유가 참 궁금타.. 까기 위해 보는 건가?
새벽 1시. 방송은 자유 놀이시간에 이어, 다음 주 있을 마지막 무대 평가에 관한 설명 및 각 팀의 새로운 곡을 짧게 들려주고 끝났다.
“내일은 12시부터지? 연습.”
“어. 다들 잘 자.”
“안녕히 주무십쇼.”
“다들 잘 자요.”
방으로 들어간 한율은 양치 후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침대엔 요가 매트에서 자던 달냥이 어느새 와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한율은 테이프 클리너로 시트와 이불에 붙은 고양이 털을 제거하고 불을 껐다.
오전엔 <서울 구미호> 대본을 읽고, 오후부턴 내내 노래 연습, 춤 연습을 하느라 무척 피곤했다.
‘알람은 9시에 맞출까.’
캄캄한 방 안. 환하게 켜진 폰엔 여전히 프로그램 톡창이 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떠드는 사람들. 방송이 끝난 직후 다시 재방송으로 틀어주는 걸 보는 모양이었다.
-혼잘요 보지 말고 바로 이거 본방을 봐야 했어
-ㅇㅅㄱ편 뭐 재미도 없고 작위적이기만 하고 내 2시간 보상받으러 옴
-혼잘 보다가 온 분들 많네ㅎㅎ
-ㅇㅅㄱ 보다가 애기들 보니까 풋풋해진다
-후.. 너흰 계속 해맑게 있어주라
-다른 방송, 다른 연예인 이름은 거론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ㅜㅜ
“······?”
윤승권이 출연한 <혼자서도 잘 살아요>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한율은 연예 뉴스란에 들어가 볼까 1초 정도 고민하다, 알람만 설정하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잠이나 자자.’
다음 날,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
[달라지는 팬덤 문화①-우리는 선행으로 내 연예인을 알린다]
[ 어스래빗 서한율, 차분한 스릴 매니아]
[떠오르는 대세 믿듣돌 풀썸, 여름 수영 패션]
[마지막 생방송만 남은 , 6팀 중 최고는?]
[<혼자서도 잘 살아요> 윤승권, 소탈하고 느긋한 반전 일상]
[30일 방송된 MBS <혼자서도 잘 살아요>에 출현한 배우 윤승권이 소탈하고 느긋한 반전 일상을 공개했다.
새벽에 비몽사몽 일어나 익숙하게 스트레칭을 한 윤승권은 매트에 그대로 드러누운 채 대본을 읽었다. 먹는 대로 쉽게 살이 찐다는 그는 아침밥으로 삶은 달걀과 바나나를 기계적으로 씹는 모습을 보이며 소소한 웃음···(중략).]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다 역시
-얘 아직도 클럽 사진 돌고 있지 않나? 10년 전 일이라 이젠 괜찮다고 여기는 건가
ㄴ징글징글하네요. 단순히 클럽 갔다가 찍힌 걸 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작정인지
ㄴ클럽 입구컷 당한 못난이라 모르나 봄ㅋㅋㅋㅋ
ㄴ잘 나가는 배우 중 클럽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 어디 있다고ㅋㅋ 배우나 영화감독들 생파, 수상 축하 파티 대부분 클럽에서 한다 이 촌것들아
-아침에 눈도 못 뜬 채 스트레칭하는 것도 잘생길 일이야?
-이미지 세타악
ㄴ그래, 이미지 세탁하려고 전에 이재민 돕기 성금 1억 기부했단다, 이 방구석 열폭러 악플러야
-몸이 좋은 이유가 있었네요ㅎㅎ 앞으로 자주 나와주세요^^
-왜 나이를 안 먹어요 오빠ㅜㅜ
-술자리를 좋아할 뿐 이성은 멀리한다던 그분이시군요
ㄴ???: 그래도 이 ㅅㄲ가 양심은 있는지 양다리는 안 걸친다네? ㅋㅋㅋ
-드라마에서 보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일상 보니 윤승권 씨 볼수록 매력이네요♡
프로그램 인기가 많고 화제성도 있어서 출연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더니. 댓글을 보아하니 조만간 과거의 흑역사가 재조명될 낌새다.
한율은 뒤로가기를 누르곤 추천 동영상 리스트 어스래빗 미공개 영상을 살폈다.
[유 리더의 트라우마란? ※노약자 및 심장 약한 분 시청 주의!]
따로 인터뷰 영상을 찍었었나?
한율은 영상을 클릭했다.
[(PD) 물속에서 눈을 뜨지 못하게 된 트라우마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의자에 앉은 유호에게 PD가 물었다. 유호의 뒤로 풀장에서 즐겁게 노는 리디스 출연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게···.]
시선을 낮춘 유호가 머뭇거리더니 돌연 제 팔을 문질렀다.
[제가 무서운 걸 진짜 싫어하고, 정말 무서워하거든요?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순간이었다.
살금살금, 덥석!
“뭘 그렇게 봐?”
조용히 뒤에서 다가온 길우성이 한율의 어깨를 잡았다. 제 딴엔 놀라게 하려고 그런 것 같은데, 이미 거울을 통해 낌새를 눈치챘다.
“호 형 영상.”
“어제 방송 끝나자마자 올라온 건데 그걸 이제야 보냐. 그런데 그거 보니까 호 형, 트라우마 생길 법하긴 하더라. 나도 벌레 질색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면··· 으.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일찍 왔냐? 평소엔 연습 시간 딱 맞춰서 오더니?”
현재 시각 오전 11시 20분. 오늘 안무 연습은 12시부터 하기로 한 터라, 연습실엔 길우성과 둘뿐이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이랑 친척들이랑 다 같이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어요. 그때···.]
한율은 영상을 보며 대답했다.
“안무 중에 영 매끄럽게 잇지 못했던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그럼 연습해야지, 왜 앉아서 폰만 들여다보고 계십니까.”
“봐줄 사람 기다리느라. 영상 1분이면 끝나.”
“···크으.”
오늘로 끝이구먼?
-으으... 물속에서 버려진 마네킹이랑 아이컨택
-[설명이랑 당시 감정 전부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 보니까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한가 보네요.]
-[오, 상상했어. OMG]
-어릴 때 그런 충격적인 일을 겪었으니.. 이젠 겁보라고 안 놀릴.. 아니 그런데 반응이 재밌는데
ㄴ????
WB래빗 엔터테인먼트 기획홍보팀. 어제자 방송 반응을 살피던 김 대리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애들 조회수가 제일 높네요. 너튜브는 외국인 댓글 비중이 아주 크고.”
강순철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섯 팀 중 유일하게 월드투어 마치고 돌아온 팀이잖아요. 해외 인지도에서 당연히 차이 나야죠.”
“원제로도 10월에 투어 간다던데···. 가는 곳 보니까 미국 몇 개 도시랑 아시아 몇 군데더라고요?”
“유럽 쪽은 적자가 날 법해서 안 보낸대요.”
“어? 그러고 보니 스타믹스도 10월에···.”
우웅.
“잠깐만요. ···네, 이 기자님.”
강 팀장이 전화를 받으며 자리를 옮겼다. 남은 김 대리는 이번엔 너튜브 뮤닷 채널의 어스래빗 영상과 댓글을 다시 살폈다. 어스래빗 멤버들이 블루액션 멤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영상이었다.
그러다 미간을 찡그렸다.
‘뭐 이런 댓글을 써? 그것도 영어로?’
작성자는 닉네임을 보나 프사를 보나 한국인이 분명했으나, 영어로 댓글을 적었다. 외국인 팬들에게 보란 듯이.
-[블루액션 친구들 참 애처롭네요. 데뷔 초엔 그나마 라이벌 구도였는데 이젠 어스래빗 멤버들에게 친한 척, 잘 보이려고 아부까지 떨어야 한다니. 토끼들이 부디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9월 2일. 새로운 모델 이단영과 서한율이 함께 찍은 더순한화장품의 새로운 CF가 공개되었다.
너튜브에 올라온 광고 풀버전 영상 댓글.
-단영 씨에게 사과해 한율아.
ㄴ단호해ㅋㅋㅋㅋ
ㄴ단호한 표정 짓는 율톢 프사 걸고 말하는 게 더 웃겨ㅋㅋ
-누가 봐도 율톢 그림이군요.
-[영상에 등장하는 그림, 정말로 한율이 그린 건가요?]
ㄴ[네.]
-산뜻한 얼굴로 그런 그림 그릴 거냐고ㅋㅋㅋㅋㅋ
-우리 연기 천재돌, 그림 하나로 클리셰를 박살 내셨다
ㄴ다 잘하는 완벽한 남주는 한물간 지 오래죠ㅎ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란 메인엔 이단영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더순한화장품 새 모델 이단영, ‘서한율 선배님께 감사할 따름’]
[높은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더순한화장품의 새로운 모델이 된 신인배우 이단영이 잡지 인터뷰를 통해 첫 광고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단영은 “첫 광고 촬영에 잔뜩 긴장하고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속상해서 눈물이 나왔는데 서한율 선배님이 스케치북으로 제 우는 모습을 가려주시면서,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어요”라고 서한율에게 감사한 마음을···(중략).]
-서한율과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 매너가 좋고 배려심도 있더라.
ㄴ어디서든 화내거나 짜증 내는 모습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니 말 다 했죠 뭐ㅎ
-단영 씨 예뻐요♡ 응원합니다!
-토끼 발로 그린 그림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진지)
-그래도 반하면 안 됩니다.(진지)
ㄴ윗댓이랑 짰냐?
···톡, 토독.
걸그룹 퍼플아워 숙소. 소파에 앉아서 이단영의 기사를 보던 진은수는 기사 댓글란에 커서를 대고 한 글자씩 쳤다.
-혹시 등산
그때였다.
“뭐 해?”
깜짝! 갑자기 들린 루아의 목소리에, 진은수는 놀라 사과패드를 뒤집었다.
“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음.”
루아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는 진은수를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소파 옆 거울로 향했다.
“네가 했던 화장품 광고, 새로 들어온 모델 예쁘더라. 피부도 정말 좋고. 우리는 무대 조명이랑 메이크업 때문에 하루하루 피부가 작살 나는데. ···아, 또 트러블 생겼어.”
진은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고민했다. 루아가 방송이 아닌 숙소에서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는 게 너무 오래간만이라.
그러는 동안에도 루아는 작게 투덜거렸다.
“사생이랑 기레기들 때문에 밖에서 데이트도 못 하고. 아, 은수야.”
“네, 언니.”
“호수 언니한테 들어보니까 혼자 살던 너희 큰오빠, 얼마 전에 군대 갔다던데. 집은 어떻게 했어? 정리했어?”
다른 사람의 가족, 그것도 집에 관해서는 왜 물어보는 걸까. 진은수는 의아했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대답했다.
“정리는 안 했어요. 호수 언니랑 제가 편히 쉬고 싶을 때 와서 쓰라고, 그냥 두기로···.”
“그럼 있잖아.”
진은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루아가 활짝 웃으며 바로 옆에 앉았다.
“너희 오빠 집 좀 빌려도 돼?”
“···네?”
“며칠 있으면 기혁 오빠 생일이라서 미리 서프라이즈 파티해주고 싶거든. 그런데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당연히 은수 너도 파티에 참여하고. 그럼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아···.”
아무리 그래도 멤버 가족의 집에서 남자친구의 생일파티를 하겠다니. 진은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언니.”
“왜? 너도 편히 써도 되는 집이라면서. 그냥 거실이랑 주방 조금 쓰는 건데, 그것도 안 돼? 내가 막 지저분하게 어질러놓고 치우지도 않을까 봐 그래?”
웬일로 말을 걸더라니, 이것 때문에 그랬구나.
진은수는 용기 내어 재차 거부했다. 돌아올 루아의 반응이 두려웠지만, 울컥 올라온 속상한 마음이 용기를 주었다.
“아무튼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래?”
루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럼 호수 언니한테 부탁해볼게. ···하아.”
대놓고 한숨을 쉬며 루아가 일어났다. 제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혼잣말이 진은수의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다.
“같은 멤버라고 있는 게 전혀 도움 안 되네, 진짜.”
쾅. 큰소리를 내며 방문이 닫혔다. 진은수는 그 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훌쩍. 꾹 삼키려 했는데 비집고 나오는 눈물. 황급히 닦아내곤 사과패드를 돌렸다. 그러곤 다이어리 앱을 실행, ID와 비밀번호를 치고 접속했다.
함께 <뮤직센터> MC를 하며 친해진 유호와 이해원의 조언으로 쓰기 시작한 일기였다.
톡, 토독.
[9월 2일 월요일.]
[루아 언니가 갑자기 군대 간 우리 큰오빠의 집을 빌릴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