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427)

* * *

[어스래빗, 4일 글로벌 팬덤 플랫폼 ‘스타아이(StarI)’ 입점]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소속 어스래빗, 크리스탈 래빗, 드림래빗이 4일 스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가 운영하는 팬덤 플랫폼 ‘스타아이(StarI)’에 입점한다. 이는 ‘스타아이’ 최초 비(非) 스엔 엔터 아티스트의 입점으로···(중략).

한편, 어스래빗은 같은 날 4일 정규 1집 [Great Time]으로 컴백 쇼케이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오 대박

-지구톢이들 본격적으로 해외 팬 공략 들어가는구나

-이제 굿즈 전부 스타아이샵에서 파는 거?

-떠비 다시 스엔 레이블로 들어감?

ㄴ떠비 원래 스엔 레이블 아니에요. 떠비 대표가 스엔 가수이자 레이블 대표 출신일 뿐.

-입점 축하해 톢톢! 떠비는 이번 계기로 굿즈 좀 다양하게 내줬으면

-아... 스타아이는 글이랑 사진 전부 외부 유출 금지라 좀 그런데

ㄴ?

ㄴ뭔 벌써 유출할 생각부터 해ㅋㅋㅋㅋ 거기서만 즐겨

-스타아이 들어가면 기레기들 더는 SNS 퍼와서 기사 쓰듯 못 쓰겠네ㅋㅋㅋ 외부 유출 금지라 바로 고소 먹을 테니

-그럼 그라 팬클럽 멤버십은 어떻게 되는 거? 스타아이도 유료 멤버십 제도 있어서 콘서트 선예매랑 공방 응모 같은 혜택 겹칠 텐데? 그라 버리는 건가?

ㄴ그라 3기 유료 팬클럽 남은 동안은 유지되지 않을까용

-스타아이샵 교환이랑 환불 규정 ㅈㄴ 까다롭고 답답해서 싫은데ㅡㅡ

-그라에 올라오는 콘텐츠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스타아이로 들어가면 유료 콘텐츠부터 우선시하게 될 텐데 걱정이네요..

ㄴ거긴 거기대로 편히 올리고, 스타아이에선 따로 유료 콘텐츠 준비하겠죠.

ㄴ스타아이 대부분 패키지거나 비싸던데..

ㄴ학생 이프림 울어욧ㅜㅜ

-애들 월드투어 영상도 올라오겠지? 꼭 올라와야 해

-입점 기념 굿즈는 빵빵하게 준비했나, 떠비?

-그래 너희들도 돈 벌어야 하는 건 알지만... 좀 그렇다ㅋ

ㄴ돈 없으면 무료 콘텐츠로 만족해라

ㄴ덕질에도 돈 필요합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 끝난 거예요.

ㄴ왜? 아예 콘서트도 무료 봉사로 해달라 그러지? ㅋㅋㅋ 음방 하나만 나가도 헤어메이크업무대세트의상인건비기름값 등등 기본 수백만 원이 깨지는데

-우리 애들 돈길만 걸어!!!!!!!!!!!!

-공굿 가격 올라가는 소리 들린다

-이 기사를 해외 이프림인 내가 좋아합니다♡

-난 좀 불안하다... 혹시 떠비, 스엔 레이블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건 아니겠지?

“팀장님···!”

컴백 쇼케이스 하루 전, 리허설을 위해 YY라이브홀로 가는 버스 안.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던 길우성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스엔 레이블로 들어가요?!”

오동식 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안 들어갑니다.”

보석과 꿈이 반짝이는 지구 CARNIVAL

스엔 엔터테인먼트 스카이러너 연습실.

휴식 시간에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용맹이 중얼거렸다.

“이참에 아예 우리 회사로 들어오면 좋을 텐데.”

“누구?”

“WB래빗.”

“들어오겠어?”

리더가 고개를 흔들었다.

“거기도 거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또 그걸로 컸는데. 회사 재정도 나쁜 편 아니잖아. 지난번 월드투어로 많이 벌었을 텐데.”

“그 돈 고스란히 드림래빗 키우는 데에 들어가고 있지 않아? 어스 애들 앨범이나 콘텐츠 퀼리티 높이는 데에도 투자해야지.”

“내가 볼 땐, 만약 우리 회사로 들어온다고 하면 그쪽 팬덤부터 엄청나게 반대할 거라고 본다. 대형 기획사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금 가진 분위기나 개성이 죽어버린다고.”

“아무리 다른 레이블이라고 해도 본사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생기니까.”

용맹은 자신으로부터 촉발된 멤버들의 토론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달력을 확인했다.

‘우리가 22일 컴백하니까, 일주일 정도 겹치겠네.’

“그런데 형들 그 얘기 들었어요?”

툭툭. 하신이 연습실 바닥을 살며시 두드리며 주의를 끌었다.

“연예인들이 자주 다니는 비싼 회원제 클럽이나 술집에, 몰카 설치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대요.”

“헐. 진짜?”

“예전에 주인결, 장원길, 얼마 전 정이장 폭로 영상 두 건까지. 다 그 사람이 설치한 카메라에 잡힌 거라던데요?”

“한 사람이 설치한 거에 다 잡힌 거라고? 얼마나 설치하고 다닌 거야?”

“그 말은, 그 사람도 그런 곳에 아주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란 소리 아냐?”

“하신이 넌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매니저 형들끼리 심각한 분위기로 말하더라고요. 정훈이도 찍혔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옥정훈은 스엔 엔터가 키운 1세대 아이돌그룹 출신으로, 그들의 대선배였다.

“아. 정훈 선배님 취하면 훌쩍훌쩍 우시지.”

“그리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아니, 그런데 이런 주사는 들켜도 딱히 별···?”

“팬의 시선으로 봤을 땐 좀 깰 법한 모습이긴 하잖아.”

“어으, 그런데 난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정말 밖에 못 나갈 것 같아.”

“애초에 그런 데를 안 가면 돼.”

“그게 마음처럼 쉬워? 선배님들이 그런 자리로 부르면?”

“목석처럼 하하하 웃기만 해야지.”

“그래도 취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망할 몰카범 새끼. 아무리 나쁜 걸 까발리려는 목적이어도, 엄연히 사생활 침해라고.”

여전히 저들끼리 떠드는 멤버들을 두고, 용맹은 다른 기사를 읽었다.

[<서울 구미호> 첫 대본 리딩 현장!]

하신이 불쑥 머리를 들이밀며 함께 보았다.

“이번에도 어스래빗 멤버들이 카메오로 나올까?”

“카메오?”

“예전에 별일 없는 드라마에서 어스래빗이랑 스타믹스 멤버들, 블블 민준 선배님까지 카메오로 총출동했었잖아.”

다시 바뀌는 집단 수다 주제.

“헉. 혹시 나중에 맹이한테도 카메오로 나와달라 부탁하는 거 아냐? 주연이면 친한 친구 카메오로 부를 깜냥은 되잖아.”

“전에 <장인>에 서한율이 카메오로 출연한 것처럼?”

“그럼 대박이겠다.”

“오오, 그럼 이제설 선배님도 만나게 되는 건가?”

용맹은 멤버들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핸드폰을 사물함 위에 두며 말했다.

“카메오가 필요하면 당연히 멤버들을 우선으로 부르겠지. 그리고 그런 건 본인이 먼저 꺼내기 전엔 설레발치는 거 아냐. 나도 바라지도 않고.”

하.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용맹은 말을 이었다.

“휴식 시간 끝. 그만 떠들고 연습합시다.”

“넹.”

* * *

10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

관객 2,500명을 동원할 수 있는 YY라이브홀에서 어스래빗 정규 1집 앨범 [Great Time] 컴백 쇼케이스가 시작되었다. 컴백 쇼케이스는 뮤닷과 너튜브, 그린라이브 어스래빗 채널을 통해 동시 생중계되었다.

[작년 12월 [Jump Up] 앨범 이후로 10개월 만에 여는 쇼케이스인데, 와아···!]

MC 김태건이 크게 감탄하며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훌쩍 컸지? 아니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나? 아니면, 백호영화제 신인남우상을 탄 배우가 있나? 유명한 프로그램에서 우승했나? 아이, 눈부셔.]

여전히 넉살 좋은 호들갑. 카메라가 그에 못지않게 뻔뻔하게 받아치는 유호를 클로즈업했다.

[네, 모두 저희가 이룬 성과입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 트랙 리스트 보고 살짝 궁금한 게 생겼는데, 지난번 디지털 싱글로 활동했던 는 수록되어 있는데, 다음 이야기인 은 어디로 간 건가요?]

미리 약속된 인터뷰 내용.

라이언이 웃으며 대답했다.

[퍼포먼스랑 연기가 너무 힘들어서 뺐어요.]

[아니, 두 노래가 한 세트잖아요.]

이번엔 한율이 대답했다.

[은 곡 분위기상 함께 넣으면 앨범 전체적인 흐름이 극명하게 갈라질 위험이 있어, 외전으로 치기로 했어요.]

[아아, 의문이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분위기도 어두운데 퍼포먼스랑 연기까지 힘들어서 뺐군요! 그럼 이번엔 타이틀곡인 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좀 미친 것처럼 떠들고 노는 노래예요. 계속 과거에 붙잡힐 순 없잖아요?]

[네? 미쳐요?]

무대 아래. 조유찬이 오 팀장에게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작년 쇼케이스보다 너튜브랑 그라 접속자 수가 굉장히 뛰었어요.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중이고요.”

오 팀장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수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당긴 보람이 있었다.

어스래빗은 올해 4월과 5월, 월드투어에서 돌아오자마자 컴백했다. 그리고 활동이 끝나기 무섭게 에 출연, 우승까지 했으며 이번엔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 정규 1집을 가지고 돌아왔다.

솔직히 출연을 결정할 당시엔 멤버들의 컨디션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우승한 성과가 이렇게 이어지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앨범 선주문량도 역대급이고.

조유찬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오늘 ‘스타아이’에 새롭게 입점한 것도 좋은 효과를 낳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네? 아, 우리 애들이 고생 많았죠.”

스타아이 입점은 대표님이 고생한 거 아닌가? 조유찬은 순간 의아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토끼들이 노력하고 고생해서 인지도를 높이고, 그 덕에 스타아이 입점 논의도 가능해진 거니.

오 팀장은 고개를 들어 무대를 보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어두워진 무대 조명. 다음 곡 준비를 위해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는 멤버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번 M/V는 몇 시간 만에 천만 뷰를 찍을지, 참 기대되네요.”

어스래빗 정규 1집 앨범 타이틀 안무의 특징은 ‘자유롭고 유쾌하지만, 관절이 걱정되는 흥겨움’. 가사는 경험에서 나온 듯한 직설적인 부분이 많았다.

[장인이 깎은 예술적인 Quartz]

[찹쌀떡이 말해 ‘뭘 봐, 기둥서방’]

[꽃을 뿌리며 숨차게 뛰어 CARNIVAL]

[사방에서 전분 가루가 휘날려(안개야 뭐야)]

[보석과 꿈이 반짝이는 지구 CARNIVAL]

[차라리 실력으로 비평해줘요, 선생님들]

[내가 축제를 설계할 동안 너는 망상을 설계해]

[자기만의 확신(의심), 그럴 거란 바람(바람)]

[그래야만 해? 네 인생을 설계하렴]

[달콤한 과자를 뿌려 지구 CARNIVAL]

화면 좌측 하단에 작게 뜬 가사.

너튜브 실시간 채팅창에 저마다의 해석 의견이 올라왔다.

-망상으로 악플 달지 말고 네 인생이나 설계해라, 고소 날리기 전에.

-자꾸 악성 루머랑 악플 달면 고소 날려서 이젠 네 인생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의미인가?

-찹쌀떡은 악플러고 가루는 온갖 방해 요소?

-고소장 휘날리는 카니발

-Quartz=석영. 크래가 번 돈으로 데뷔했다고 누가 기둥서방이라 욕했었는갑다ㅋㅋㅋㅋ

-다 모르겠고 익살스러운데 섹시한 장꾸들 보는 것 같다.

-서한율 눈웃음 압수

어스래빗의 컴백 쇼케이스는 시작 2시간 만에 무사히 끝났다. 이제 몇 시간 후면 KBC <뮤직뮤직> 스케줄이라 조금이라도 쉬어야 하지만, 멤버들은 핸드폰으로 스타아이에 접속했다.

“이거 SNS랑 비슷한 거지?”

“응. 하지만 여기 게시되는 건 전부 외부 유출 금지라 조금 더 편할 거야. 만약 우리가 싸우는 사진을 올려도, 기자가 멋대로 사진을 퍼가서 기사로 쓸 순 없단 소리지.”

“그래도 SNS 보면 은근히 스타아이 게시글 캡처 돌아다니던데.”

“SNS는 그런데, 너튜브는 올리면 바로 신고 먹어서 내려가더라.”

운전하던 조유찬이 룸미러로 힐끗 멤버들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팬들이랑 소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 법한 사진이나 글 위주로 올리는 게 좋아. 너무 일과 관련된 내용이나 사진은 되도록 피하고, 다른 연예인, 비연예인이랑 같이 찍은 사진, 정치랑 종교적인 얘기는 절대 안 돼. 알았지?”

“고양이 사진은 괜찮아요?”

“남의 집 고양이만 아니면 괜찮아.”

한율도 스타아이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것저것 눌러보며 살폈다.

회사에서 관리하는 그린라이브, 기사화되어도 괜찮은, 홍보와 공지 알림으로 주로 사용되는 공식 SNS 계정과 다르게 팬과 직접 소통하는 데에 중점을 둔 플랫폼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둥글둥글했다. 게시글도 해당 아티스트 채널에 가입해야지만 보거나 쓸 수 있고.

“우리 한 명씩 글 써보자.”

“빨리 쓰는 사람이 임자.”

“너무 성의 없게 쓰면 혼난다.”

가장 먼저 라이언이 글을 올렸다.

[컴백 쇼케이스 끝내고 집에 갑니다. 안뇽♡]

기다렸다는 듯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우리 해외 팬분들 많이 가입했나 봐. 언어 다양한 거 보소.”

“한율아, 이거 어느 나라 말이야?”

“아랍어 같은데요?”

“그런데 이거 라방은 못하는 거죠?”

“어. 라방은 그라에서 해야지.”

한율은 컴백 쇼케이스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찍었던 사진을 올렸다.

[축제는 이제부터 시작! :D]

5일 새벽.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서 그런지 새벽 공기는 퍽 찼다. 그러나 KBC <뮤직뮤직> ‘출근길’에는 출연자들을 찍거나 응원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뮤직뮤직 상반기 결산특집> 이후 3개월하고도 며칠 만의 출근.

차카차카차칵!

멤버들이 포토존에서 여유롭게 포즈를 취하는 동안, 매니저 현장전과 윤승우는 울먹거리는 팬들에게 어스래빗 멤버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대신 건넸다.

“공지 보셨는데 깜빡하셨나 보다. 서로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예전 ‘출근길’을 걸을 땐 멤버들이 직접 팬에게 선물도 건네고 함께 셀카도 찍었지만, 경호 업체와 회사 내부에서 ‘이젠 인기도 많아졌으니 슬슬 조심하는 게 좋겠다’란 의견이 나온 까닭이었다.

본인 인증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팬 이벤트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달리, 음방 출근길은 공항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접근할지 모른다며.

“감사합니다!”

“이프림! 조심히 들어가요!”

“감기 조심해요!”

“이프림 사랑해!”

촬영을 마친 멤버들은 이프림이 모인 곳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곤 저마다 하트를 날렸다.

멀리서 이프림이 화답했다. 우리도 사랑해!

“하하···.”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직후, 박가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전처럼 이프림이랑 가까이서 하이파이브도 못 하고 셀카도 못 찍으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허전해···.”

“아쉽기는 하지만 팬분들이랑 우리,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지.”

“컴백 일주일 전부터 공지했으니 괜찮을 거야. 팬분들도 대부분 이해해주시는 분위기였잖아.”

일부는 그 공지를 보곤 ‘이젠 초심 잃었구나’, ‘지들이 누구 덕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인기 많아졌다고 팬들이랑 거리 두냐?’, ‘멀리서 얌전히 결제만 하란 얘기지?’ 이렇게 비꼬긴 했지만 말이다.

조유찬이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리허설 끝내면 바로 자. 너희들 중 몇 명, 한 시간 전까지 스타아이에서 떠드는 거 다 봤어. 팬들이 오히려 조금이라도 자야 하는 거 아니냐 말리는 것도.”

길우성이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떨었다.

“뜨끔.”

“···뜨끔 소리를 일부러 내는 애가 여기 있네.”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복도에 낭랑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깜짝. 길우성의 어깨가 이번엔 자연스럽게 떨렸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러나 정말 대충 만든 것 같은 알록달록 드레스. 5명의 소녀가 복도 벽에 나란히 서서 허리를 깊게 숙였다.

“K-POP의 지지 않는 해, ‘스마일 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인 걸그룹 ‘스마일 썬’은 어스래빗 멤버들 뿐만이 아니라, 복도를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K-POP의 지지 않는 해, ‘스마일 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고 싶은데 마음껏 볼 수가 없어

“아까 복도에서 인사한 신인 있잖아.”

“스마일 썬?”

“응.”

어스래빗 단독 대기실. 라이언이 소파에 편히 앉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는 애 있었어. 아림.”

“친했어?”

“아니. 그런데 나한테 빵 줬어. 배고파 보인다고.”

“오.”

혹시? 하는 눈으로 라이언을 바라보는 박가람. 라이언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인사 무시하고 그냥 인사도 무시해서, 나도 무시했어.”

“오···.”

“춤은 진짜 잘 춰. 여자애들 사이에서 춤으론 1등이었어.”

“라이언 있었을 때 1등 했었다면··· 지금도 굉장히 잘 출 텐데, 왜 이제야 데뷔했지?”

“몰라.”

“퍼플아워가 작년에 데뷔했잖아. 그럼 사실상 1, 2년은 더 기다려야 다시 기회가 주어질 텐데···.”

유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가 되면 나이로 걸리겠지. 이 바닥은 스물한 살만 넘어도 늦었다는 소리 듣잖아.”

“···라고 스물셋에 데뷔한 리더가 말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른 회사로 옮겨서 데뷔했나 보다.”

이 바닥에선 흔한 일이었다.

데뷔 전부터 큰 주목을 받는 대형 기획사 출신을 제외하고, 아이돌 대부분은 데뷔 후 2, 3년 정도 지나야 간신히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그때 나이가 20대 중반이 넘어가면 아이돌 주 소비층을 공략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데뷔하려 발버둥 치고, 더 늦어서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기 전에 다른 길을 모색한다. 이 순간에도 실력 좋은 어린 연습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므로.

“아, 한율아.”

“······?”

보온병의 레몬생강차를 종이컵에 따르던 한율은 동작을 멈췄다.

“드림래빗 뮤비 출연 배우, 네가 소개한 친구라며? 걔 너무 웃겨서 애들이 현장에서 배꼽 빠질 뻔했다던데.”

“친구는 아니고, 같은 고등학교 나온 같은 과 동기예요.”

“같은 학교? 누구?”

“고재영.”

길우성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 짜식 툭하면 너한테 친한 척했던 걔 아냐? 미랑이 누나랑 최혜승 선배님 사인받아다 줄 수 없냐고 부탁했던?”

“맞아.”

“그런데 뮤비 출연을 도와줬다고?”

“도와준 건 아니고 오디션 기회만.”

“왜?”

한율은 마저 차를 타곤 보온병 뚜껑을 단단히 닫았다.

“선은 안 넘어서.”

“······.”

차남석이 입이 한 댓 발 튀어나온 길우성을 향해 말했다.

“서한율이 괜찮다고 판단했으니 소개한 거겠지. 얘가 아무한테나 그런 기회 주겠냐.”

“우리 엄마가 늘 하는 말씀이, 친한 척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랬어.”

“그래. 어머니한테 통장은 맡겼고?”

길우성은 딴청을 피우다가 리허설 조끼를 걸쳤다.

“빨리 리허설 하고 빨리 잤으면 좋겠당.”

“보배쓰.”

박가람이 팔꿈치로 강보배의 팔을 툭 쳤다. 그러더니 매니저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닥속닥.

“너 꿈톢 애들하고 따로 연락하냐?”

“은보람 씨하고 음악 작업 같이하고 있습니다, 형님. 늘 쌤도 옆에 계세요.”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아우야. 남들이 들으면 오해해.”

“네.”

오늘 <뮤직뮤직>에서 할 무대는 10초짜리 인트로와 <그려>, .

활동이 끝나면 <로컬영화>로 후속곡 활동을 할 예정이지만, 최근 컴백 스페셜 무대에선 후속곡 무대도 함께 선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추세였다.

K-POP을 좋아하는 해외 팬들 취향이 다양하니, 그들이 즐겨 보는 방송에서 한 곡이라도 다양한 노래를 선보인다.

네가 어떤 무대를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수고하셨습니다, 어스래빗! 사녹도 잘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새벽 4시에 드라이 리허설을 진행한 어스래빗은 아침 7시, 인트로 무대를 녹화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9시에 <그려> 사녹을 진행한 뒤 다시 11시. 사녹을 위해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꼭 꿈속을 걷는 것 같다. 이게 내 팔다리가 맞나?”

“응. 그래도 실수는 안 봐줘.”

“건우 형이 실수하면?”

“나를 쳐라.”

“오늘 어디 한번 제대로 하극상을.”

“보배 정말 졸리나 보다. 애가 아무 말을 하기 시작했어.”

그때였다.

“야, 어스래빗.”

막 사녹을 끝냈는지, 스튜디오에서 나오던 퍼스트라인 멤버들이 어스래빗 멤버들을 보자마자 인상을 썼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이고 자시고.”

퍼스트라인 리더가 빠르게 바짝 다가오더니 주변을 살폈다. 그러곤 유호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가사에 그거 뭐냐?”

“무슨 가사요?”

“[찹쌀떡이 말해 ‘뭘 봐, 기둥서방’].”

“아.”

“그 가사, 우리 저격한 거 맞지? 그때 저 검머외가 우리한테 한 말이잖아. ‘찹쌀떡’.”

헉. 라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영어 바본 줄 알았는데···!”

“저 이 씨···. 그때 내려가고 나서 다른 애한테 들었거든? 네가 우리보고 뭉개진 찹쌀떡이라고 말한 거?”

설마 애들끼리 다투는 건가?

두 팀이 대치하는 형태로 마주 서서 낮게 대화를 나누자,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조유찬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지나가던 다른 스태프들도 이쪽을 힐끗거렸다.

그러나 라이언은 태연했다.

“나 선배님 자식 아니에요, 라고도 했어.”

“지금 반말하냐?”

“한국말 잘 몰라. 어려워.”

“어디서 쌩구라를 까. 너 한국말 존나 잘하는 거 다 알거든? 아무튼 너희.”

바로 가까이 온 조유찬이 고개를 갸웃하자, 퍼스트라인 리더가 그제야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우리 대기실에서 보자. 꼭 와.”

마지막 당부에서 시선이 마주쳐, 한율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네. 이번엔 꼭 좀 대기실 안에서 앨범을 교환했으면 좋겠네요, 선배님. 녹화 수고하셨습니다.”

한율의 선창에 맞춰 다른 멤버들도 퍼스트라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복도에 힘찬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토끼 새끼들 진짜 밉상이야.”

퍼스트라인 멤버들은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구시렁구시렁 참았던 말을 토해냈다.

“우리 슬쩍 알릴까? 저놈들이 우리보고···.”

“쟤네는 입 없냐? 우리가 한 얘기 들은 다른 놈들은 없겠냐고.”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걸 기억하는 놈이 있겠어? 아니, 그런데 왜 우린 항상 저놈들이랑 활동이 겹치는 거야? 대체 왜? Why?”

“실장님한테 따져.”

“다녀오셨습니까, 선배님.”

함께 대기실을 사용하는 그레이트7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냐.”

“다녀왔어요, 후배님?”

“오···.”

무심코 다시 ‘오냐’라고 말할 뻔한 퍼스트라인 리더는 입을 다물었다.

“······.”

그레이트7 멤버 사이에서 스타믹스의 JE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부드럽게 올린 입가와 다르게 전혀 웃지 않는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퍼스트라인 멤버들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얘기 다 들었겠지?

퍼스트라인엔 JE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갑인 멤버도 있지만, 데뷔 연도나 인지도, 인맥을 따지면 그가 더 높은 곳에 있는 까닭이었다. 어스래빗 멤버들과도 친하고.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왜 여기 계세요?”

“오늘 그레이트7도 컴백이잖아요. 그래서 미리 인터뷰 연습 좀 하고 있었어요.”

“그거라면 선배님 대기실에서 하는 게 편하실 텐데요.”

“일곱 명이 우르르 움직이는 것보단 한 명이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라서요. ···그럼 계속할까요?”

“네, 선배님.”

곧 대기실엔 음방 MC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 그에 장단을 맞추는 그레이트7 멤버들의 목소리가 시끌벅적하게 울렸다.

“······.”

퍼스트라인 멤버들은 얌전히 입을 다문 채 소파나 의자에 앉아, JE가 가기만을 기다렸다.

***

KBC <뮤직뮤직> 생방송 한 시간 전. MBS K <주말아이돌> 어스래빗 편이 시작되었다.

[저희 그거 봤어요. 예전에 PD님이 우리 영상에 남기신 댓글.]

이건우가 큐카드를 보며, 주말아이돌 PD가 어스래빗 호러버전 영상에 단 댓글을 읽었다.

[왜 서한율 군은 락뮤닷에서만 복근을 공개했는지? 왜 어스래빗은 락뮤닷에서만 이런 특별 무대를 선보이는지 모르겠네요.]

[대답하기에 앞서.]

어스래빗 멤버들이 PD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PD님은 그때 우리를 부르지 않으신 거죠?]

[······.]

말없이 자막으로 찍히는 점.

큭큭. 자칭 서한율, 차남석 1호 팬 이아름은 핸드폰으로 <주말아이돌>을 보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건 내가 말해줄게, 얘들아. 사실 그 댓글 쓴 거, PD님 아니야.]

[네?]

의아한 얼굴로 MC를 바라보는 멤버들. MC가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저어기 스케치북으로 얼굴 가리고 숨은 애 있지? 저 막내 작가가 쓴 거야. 사심을 듬, 뿍! 담아서.]

[그럼 저분이 PD님 ID를 도용하신 거예요?]

[업무상 계정일 테니 도용은 아니지 않을까?]

[와, 얘네 무섭다. 대뜸 도용한 거 아니냐고 묻네?]

[그래. 상대가 아무리 팬이라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 딱 지적해주는 게 참된 스타지. 그래서 한율이, 복근 보여줄 거야 말 거야?]

서한율이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요?]

안 돼. 보고 싶지만, 지금은 안 돼.

이아름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슬슬 쉬는 시간이 끝나, 다른 수강생들이 옆이나 뒤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핸드폰을 품에 안았다.

‘보고 싶은데 마음껏 볼 수가 없어···.’

대신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소리만 들었다.

[오오···!]

[서한율 복근 아직 살아있는데?!]

이아름은 눈을 꼭 감고 아쉬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했다.

‘나중에 VOD로 봐야겠다.’

툭툭.

“아름아름, 뭐 해?”

“어?”

이아름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이곳 학원에서 사귄 친구가 옆자리에 앉으며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이아름이 품에 안은 핸드폰을 향해.

“혹시 남친이랑 톡하고 있었어?”

이아름은 정말로 나중에 VOD로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어폰을 뺐다.

여전히 서한율과 차남석을 포함해 어스래빗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이들의 행보는 나에게 기쁨을 주지만, 그게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숨길 생각도 없기에, 이아름은 당당히 대답했다.

“아니, 우리 오빠들 영상 보고 있었어. 오늘 컴백하거든.”

“아아···.”

‘오빠들’이란 단어에 옆자리 친구의 표정이 순간 미묘하게 변했다. 고1이나 되어서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하나?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이아름은 친구의 입에서 나올 그다음 말을 예측했다.

이제 예의상 누군지 묻겠지.

“누구 좋아하는데?”

역시.

이아름은 활짝 웃었다.

“어스래빗.”

“헐.”

반응은 옆자리의 친구가 아닌, 앞에서 먼저 나왔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아이가 뒤를 휙 돌아보더니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너 어스래빗 팬이야?”

“어? 어. 왜?”

그 아이는 대답 대신 쥐고 있던 펜을 휘리릭 돌리더니 탁, 이아름의 책상에 놓았다.

이아름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건···!”

“더순한화장품 첫 팬 미팅 기념 펜. 그리고 이건···!”

이번엔 핸드폰을 빠르게 조작하더니 사진 한 장을 띄운다.

헉. 사진을 본 이아름은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프림이라면 단번에 ‘아, 율톢 글씨네’라고 알아볼 법한 악필 메시지가 적힌 엽서.

[개나리 빛깔처럼 고운 동생 분에게♡]

앞자리 아이가 눈썹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자기소개했다.

“내 이름은 계나리. 서한율 골수팬이죠.”

살랑. 그 순간 햇살을 가리며 하늘색 커튼이 흔들렸다.

그 탓일까. 계나리의 눈에 아주 가느다란 하늘빛이 스친 듯했다.

이아름은 덥석 계나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계나리를 따라 눈썹을 움직였다.

“내 이름은 이아름. 서한율, 차남석 1호 팬이죠.”

꺄아! 두 소녀는 아주 작게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움을 표했다.

분위기 파악 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컴백 축하드립니다!”

“그레이트7 여러분도 컴백 축하드립니다!”

사녹을 마치고 대기실. 어스래빗 멤버들은 그레이트7 멤버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앨범을 교환했다. 함께 촬영을 하는 동안 친해진 몇 명은 편히 대화를 나눴다.

“정말 고생했다. 마지막 곡 준비에다 컴백 준비까지 같이한 거잖아.”

“형들이 더 대단하던데요. 우리는 싱글이지만, 어스래빗은 정규 1집 앨범이잖아요. 쇼케이스 보니까 진짜 장난 아니던데.”

“영혼과 관절을 갈았다.”

활짝 열린 문밖엔 어스래빗에게 인사하러 온 다른 후배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쉬세요!”

“응. 나중에 심심하면 놀러 와.”

“네!”

오래 잡담을 나눌 수 없어 금세 자리를 뜨는 그레이트7 멤버들. 복도에서 기다리던 후배 중 몇 명이 그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약간의 시간을 두고 양해를 구하며 들어오는 보이그룹.

“작년 5월에 데뷔한 ‘멀티데이’입니다!”

“컴백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활동이 겹치지 않아 오늘 처음 만나는 팀이었다. KBC <뮤직센터> MC를 하는 유호를 제외하곤.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여기 저희 앨범입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여기 앨범···.”

서로 앨범을 교환할 때 유호가 멀티데이의 한 멤버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난주에 의자에 앉아서 무대 하던데. 발목은 이제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활동 오래오래 해야 하니까, 벌써 관절 너무 혹사하지 말아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멀티데이 뿐만이 아니라 다른 후배들도 유호가 있어서 그런지 어스래빗을 어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어스래빗의 다른 멤버와는 시선을 맞추지 못하던 걸그룹 멤버도, 유호에게만큼은 말을 곧잘 했다. 평소 유호가 <뮤직센터>에서 후배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까 보니까 호 형 진짜 인싸 같더라. 대학에서 밥 잘 사주고 성격 좋은 복학생 느낌이었어.”

“실제로 밥 사준 적 있는 거 아냐?”

“어쩌다 보니 음료수 사준 후배는 몇 명 있는데, 오늘은 없었어.”

이번엔 어스래빗이 선배들에게 인사를 갈 차례. 멤버들은 앨범을 넣은 종이가방을 챙기곤 대기실을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올해 데뷔 6년 차 보이그룹 ‘올그라운더’의 대기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힘차게 손구호와 함께 인사. 그들이 입가를 올리며 화답했다.

“컴백 축하드립니다.”

“리디스 우승도요. 정말 잘 봤어요.”

하지만 어스래빗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본인들을 훌쩍 앞지른 후배들을 향한 복잡한 심경이 섞여 있었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모른 척,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앨범 교환을 하고 나서 그들은 곧 문을 닫고 나왔다. 달칵. 그리고 그 순간, 안에서 들리는 자괴감 가득한 목소리.

“우린 나이랑 연차만 처먹고 이게 뭐냐···.”

더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활동하고, 좋은 실력을 갖춰도 결과는 천차만별. 아이돌의 성공 요소는 상당히 복합적이어서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럽니다’라는 말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

“······.”

그렇기에 어스래빗 멤버들은 올그라운더 멤버들에게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퍼스트라인과 그레이트7이 함께 사용하는 대기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예의를 갖춰 인사한 것도 잠시. 어스래빗 멤버들은 이내 편히 떠들었다.

“우와, 여기가 선배님들이 사용하는 대기실이구나. 2년 만에 처음 들어와 봐. 신기하다.”

“이 약과는 누구 거예요?”

“저희 이번 앨범입니다, 선배님. 안에 메시지 직접 적었으니까, 중고로 파시면 안 돼요. 자칫하다간 퍼스트라인 인성 무엇? 이란 기사가 뜰지도 몰라요.”

“어, 그래. 아주 고오맙다.”

“여기가 마지막이니까 온 김에 놀다 가야징. 완언, 너희 포인트 안무 좀 가르쳐주라.”

“대기실 좁아서 복잡하니까 용건 끝났으면 좀 가주지? 피곤하거든?”

복작복작. 한율은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밀려난 두 팀의 스태프들을 보았다. 그레이트7 스태프들은 차치하고, 퍼스트라인 매니저의 얼굴엔 ‘애들이 어스래빗이랑 친했었나?’란 의문이 떠 있었다.

“그런데 나 너한테 묻고 싶은 거 있는데.”

한율이 퍼스트라인 앨범을 챙기고 먼저 대기실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퍼스트라인 멤버 중 한 명이 한율을 향해 물었다.

“왜 너희만 단독 대기실이야? 그레이트7 애들도 오늘 컴백인데?”

“맞아.”

옆의 다른 멤버도 히죽 웃으며 맞장구친다.

“너흰 데뷔 1년 차에 컴백했을 때도 여기에서 단독 받았었잖아. 편애 너무하네.”

갑자기 우리는 왜 끌어들여. 그레이트7 멤버들이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태연히 받아쳤다.

“그러게요. 나중에 PD님 만나면 왜 대기실을 이렇게 배정해주셨는지 물어볼게요.”

“아니, 누가 물어보랬냐?”

“왜 우리만 단독 쓰는지 궁금하다면서요. 대신 물어봐 드린다니까요?”

“너 지금 우리 겁박 하냐? 국장 아들이면 다냐고.”

싸우는 건가? 아니면 친해서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건가?

내용만 놓고 보면 시비 같지만, 서로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어서 그런지 스태프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문 옆에 서 있는 조유찬도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더 헷갈리는 모양.

“에이, 다는 아니죠. 국장 아들 타이틀로 어떻게 지금 성적을 거두겠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편의를 받는 건 사실이잖아, 서한율아.”

“그래서 다음 주 <뮤직뮤직> 스페셜 MC도 제안 거절했어요. 선배님들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

웃으며 시비를 걸던 퍼스트라인 멤버들의 얼굴에 금이 갔다. 아이돌이라면 아무리 하루만 하는 스페셜 MC라도, 그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아주 잘 아는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여기 국장 직책에 계시지 않았다면 마음껏 수락할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네요.”

“그럼···.”

라이언이 한율의 옷자락을 잡았다.

“<락뮤닷> 스페셜 MC, 할래?”

“형이 뽑은 기회잖아요. 당연히 형이 해야죠.”

“빵 사줄까?”

“괜찮아요.”

“그럼 찹쌀떡은?”

“······.”

“······.”

입을 꾹 다문 채 못난 표정을 짓는 퍼스트라인 멤버들. 보다 못했는지 리더가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앨범 잘 들을게요, 어스래빗 분들. 그럼 나중에 생방송 때 봐요.”

오후 6시. 정규 1집 앨범 음원 및 M/V가 공개된 지 24시간.

[어스래빗, 스탠바이할게요.]

어스래빗 멤버들은 생방송 무대를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인이어와 마이크를 체크했다. 그들 곁에는 컴백 비하인드 촬영 VJ가 서 있었다.

“사녹 영상 나간다고 대충하면 혼난다.”

“우리가 언제 생방 무대라고 허술하게 하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흐.”

“그래도 발목은 다치지 않게 조심해.”

“네에.”

“얘들아, 올라가기 전에 이거 보고 가.”

“······?”

마치 오늘 저녁 메뉴를 알려주려는 사람처럼 다가와, 멤버들은 대수롭지 않은 눈으로 조유찬의 핸드폰을 보았다.

[어스래빗, M/V 24시간 만에 천만 뷰 돌파]

“······.”

“···오.”

“드디어···!”

6월에 발표한 M/V가 공개 사흘 만에 천만 뷰를 달성했었다. 그로부터 고작 4개월. 이번엔 하루 만에 천만 뷰라니.

멤버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너무 놀라면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더니···.”

“안 놀란 것 같은데요, 형.”

차남석이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고자질했어.

“호 형, 대기실에서 계속 너튜브 보고 있었거든요.”

유호가 넉살좋게 웃었다.

“아. 난 표정에서 티 난 줄 알았어.”

사실 앨범 선주문량과 컴백 쇼케이스 생중계 동시 접속자 수를 들었을 때부터 멤버들은 조금씩 기대와 확신을 품고 있었다.

우리 팀, 제대로 뜨고 있구나.

그리고 이 확신을 쭉 품고 싶었는지, 틈만 나면 너튜브 M/V 조회수를 들여다보았다. 한율은 대기실에서 나오기 전, 길우성이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흐···. 천만 뷰 고지가 코앞이다. 흐흐흐···.』

조유찬이 씩 웃으며 핸드폰을 거뒀다. 슬슬 앞 팀인 올라운더의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

“잘하고 와, 얘들아.”

“네!”

멤버들은 계단을 밟기 전, VJ의 카메라를 향해 천만 뷰 달성 소감을 짧게 말했다.

“이프림, 우리 뮤비 천만 뷰 달성했대요! 모두 이프림 덕분입니다!”

“이프림 짱짱!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이프림!”

“멋진 무대로 보답할게요!”

“고마워요, 이프림! 사랑해!”

“더욱더 열심히, 멋있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기대해주세용!”

“이따가 봐요, 이프림!”

“사랑하는 우리 이프림,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사랑합니다. ···이게 바로 로 카니발을 열 수 있는 상황인가?!”

“오오?”

“우잇효!”

길우성과 박가람이 난데없이 브라질의 삼바를 추기 시작했고, 라이언도 슬쩍슬쩍 소심하게 따라 췄다. 한율은 카메라 앞으로 손하트를 빠르게 내밀었다가 옆으로 슥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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