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168/427)

* * *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한율이의 연애에 깊은 관심을 표한다는 건,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증거죠.”

WB래빗 엔터테인먼트.

<뮤직센터> 방송이 끝난 지 20분이 지났지만, 홍보팀 강순철 팀장은 프로그램 톡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단순히 아이돌이 아닌, 이제 대세로 자리 잡을 배우란 것도 한몫하는 것 같네요.”

어스래빗은 <락뮤닷>, <로얄K뮤직>에 이어 <뮤직센터>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이에 혹자들은 어스래빗보다 인지도 높은 가수들이 부재중이라 빈집털이 제대로 한다며 비아냥거렸지만, 어스래빗은 방송국 복도나 대기실, 엘리베이터에서 신난 얼굴로 찍은 사진을 SNS에 잔뜩 올렸다.

이면 상황이야 어떻든, 결국 중요한 건 결과다.

“그만큼 날파리도 꼬여서 문제죠.”

좌기훈 대표는 속상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전 서석진 국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시간 전, 웬 괴한이 경기도에 있는 서한율의 별장에 몰래 침입하려다 보안시스템에 걸려 도주, 출동한 보안업체 직원들에게 잡혀 경찰서로 인계되었다고.

『기자는 아니라는데, 차에 기자들이 쓸 법한 고가의 촬영 장비가 잔뜩 있었다네요.』

지금쯤이면 오 팀장이 서한율에게 직접 이 사실을 알리고 있을 터다.

“한율인 앞으로 더 잘 될 테니, 회사 차원에서도 그에 대해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숙소 아파트 지하 주차장. 다른 멤버들이 모두 내리고 조유찬과 오 팀장만 남은 차 안에서, 한율은 부친과 통화하며 정확한 사건 경위와 현재 상황을 들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연예인의 개인정보는 공공재란 말이 있다. 하물며 자신을 포함한 어스래빗 멤버 모두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도덕성이 결여된 극성팬 비율까지 늘어나는 추세.

통화를 끊은 한율은 오 팀장에게 말했다.

“언론에는 퍼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컴백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고 지금 활동 성적도 좋은데, 여기에다 괜히 얼룩을 묻히고 싶진 않아요.”

올해 스무 살밖에 안 된 아이돌의 개인 별장 무단침입 사건.

대중은 연예인이 하는 일에 비해 아주 쉽게, 많은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 덕분에 벌써 수십억 재산을 가진 한율에게 반감을 품은 이도 적잖은데, 조금 전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해외 극성팬의 사주를 받은 심부름꾼.

알려진다면 여러 말과 억측이 쏟아질 것이다.

피해자인 한율을 되레 조롱하는 방향으로.

“그래. 그럼 뒷일은 우리랑 변호사 선생님께 맡기고, 들어가서 푹 자도록 해. 오늘도 수고 많았다.”

“네, 들어가세요.”

한율이 차에서 내리자, 주차장 기둥 옆에서 기다리던 차남석과 유호가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야? 스케줄 이야기는 아니지?”

저 멀리 아파트 주민의 기척이 느껴졌다. 지하 주차장 특성상 소리도 잘 울리기에, 한율은 두 사람과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나서야 대답했다.

“별장에 무단침입을 시도한 사람이 잡혔대요.”

“뭐?!”

한율은 21층과 닫힘 버튼을 연속으로 눌렀다.

“건물 안까진 못 들어갔지만, 그래도 산 초입에 있는 사유지 출입문 훼손 장면이나 담을 넘는 장면이 CCTV에 찍혀서, 단단히 혼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호와 차남석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경찰서엔 안 가봐도 돼?”

“변호사분이 대신 가셨어요.”

“범인은 뭐 하는 새끼야? 도둑? 아니면··· 사생?”

“외국인 사생에게 고용된 사람이요.”

“이젠 별 미친.”

“······.”

차남석처럼 욕설을 내뱉지는 않지만, 유호의 얼굴에도 이 자리에 없는 사생을 향한 혐오감이 스쳤다.

“너도 참 고생이다, 한율아.”

“보안업체 직원분들이 고생하신 것 같아요. 산에서 추격전까지 벌였단 걸 보면.”

“추격전? 그렇게까지?”

“회사 평판 때문에 열심히 뛰신 것 같기도 하고.”

유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유명한 연예인의 집을 지킨 것만큼 가성비 좋은 홍보 효과는 없으니까. 그 반대도 생각해야 하고. 그래도 정말 고생 하셨겠다.”

“나중에 찹쌀떡이라도 보내드려.”

“그럴까요?”

다음 날, KBC <뮤직뮤직> 어스래빗 대기실.

어스래빗 멤버들은 사녹을 끝내고 대기실에서 라이언의 생일파티를 라방으로 진행했다. <뮤직뮤직>이 끝나면 바로 부산으로 출발해야 하는 까닭에, 미리.

-파티 끝나면 모할거양???

-생방 전까지 우리랑 놀자ㅎ

톡을 보던 라이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생방 전까지 놀자? 안 돼요. 댄스 챌린지 보답 영상 찍어야 해요.”

-단호박 사자.. 사랑한다

-혹시 그 커다란 리본 달린 드레스 입은 신인?

-최근에 카니발 댄스 챌린지 한 팀은 ㅅㅁㅇㅆ 밖에 없는뎅

-꼭 이렇게 보답해요, 우리 애들이♡

-따숩따숩 선배미

-스마일 썬 리더 예전에 아림에 있었던데 원래 친구야?

-쇽쇽 쇽쇽 숔숔ㅋ 럽?!

토끼 귀가 달린 왕관을 쓴 라이언의 얼굴이 모니터에 크게 잡혔다. 약간의 딜레이를 두고 올라오는 톡을 가만히 읽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예전에 배가 아주 고팠어요.”

“설마 그 얘기 하려고?”

“이런 건 숨기면 안 돼. 더 오해한댔어.”

“하긴.”

-???

-뭔가 시작됐다.

“그래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지나가던 스마일 썬 리더가 나한테 빵 줬어요. 그런데 대화는 지난주에 처음 했어요.”

-은인이네

-~은혜 갚는 사자 이야기~

-배고플 때 빵을 주다닛 고마운 사람..☆

-귀여워ㅜㅜ

-꼬륵 거리는 사자에게 빵을 주고 간 은혜 씨에게 은혜 갚는 라이언

라이언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저는요, 누나가 좋아요. 그러니 이프림, 스마일 썬 팬분들은 안심해도 좋아요.”

-이렇게 훅 들어오기 있냐 라이언?!

-생일 당사자는 라욘 넌데 왜 우리한테 선물을 줘 설레게

-다른 톢톢이들 이 와중에 왜들 흐뭇하게 웃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라이언♡♡♡

라방을 끝낸 뒤.

한율은 라이언, 길우성과 함께 대기실을 나왔다.

“선생님, 간단히 댄스 챌린지 영상을 찍으려고 하는데, 괜찮은 장소 있을까요?”

한율이 지나가는 <뮤직뮤직> 스태프를 잡아 묻자, 스태프는 아주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저기 복도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안 쓰는 빈 대기실 하나 있거든요? 문 안 잠겨있을 테니까, 안에서 카메라 잡고 복도에서 춤추면 앵글 괜찮게 나올 거예요. 반대로 대기실 안에서 추면 안 돼요. 이것저것 놓여 있어서 다칠 수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그가 가르쳐준 곳으로 이동했다. 길우성이 조용히 키득거렸다.

“국장님 아들 사용법.”

“우성, 하뉼은 도구 아냐.”

“그런데 형, 그 왕관 쓴 채로 추게요?”

“안 돼?”

“안 될 건 없는데, 도중에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들은 잡담을 나누며 스태프가 가리켰던 모퉁이를 돌았다.

“여기지? 문에 이름표 없어.”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정말 딱 좋넹.”

한율은 가끔 빈 대기실을 밀회 장소로 사용하는 아이돌 커플이 있단 소문을 떠올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노크···.”

“응?”

그러나 길우성이 문손잡이를 잡아 돌리는 게 더 빨랐다.

···철컥. 철컥, 철컥.

“잉? 잠겼는데? 아까 스태프분이 문 안 잠겨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다른 데로 가죠.”

“어디로?”

“으음···.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적당한 좋은 장소가···.”

“여기 교차 지점에서 찍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 순간이었다.

우웅. 우웅. ···투당탕.

“······?!”

빈 대기실 안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 비슷한 게 나더니, 곧이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덥석! 라이언이 한율의 옷자락을 잡았다.

“귀신인가 봐! 보배가 소개한 <괴담> 사연도 이랬어! 빈방에서 멋대로 물건이 넘어져서···!”

놀라 옆으로 물러났던 길우성은 냉큼 한율 뒤로 숨었다.

“방송국에 귀신이 많다더니···!”

“···아니, 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문 너머, 빈 대기실에 숨은 사람들이 적잖이 당황해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잘은 들리지 않지만, 무어라 소곤소곤한다.

“보배 불러올까···?”

“호 형 부르자, 형.”

“리더는 기절할 것 같은데.”

“그럼 아무나 부르자. 지나가는 감독님이든 청소해주시는 분들이든···.”

그때였다.

···철컥.

라이언과 길우성의 대화를 듣고 초조해졌는지, 빈 대기실에 문을 잠그고 들어간 사람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어?”

살며시 열리는 문틈 사이로 드러나는 낯익은 얼굴. 길우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깜빡거렸다.

“기혁 선배님?”

그는 오늘 스타믹스 JE 대신, 스페셜 MC를 하게 된 원카운트의 나기혁이었다.

나기혁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뭐 해?”

스륵. 한율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쥐고 있던 라이언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라이언이 미간을 구기며 나기혁에게 되물었다.

“그건 우리가 물을 말인데?”

한율은 나기혁과 함께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 초 터진 그의 스캔들 상대. 같은 아림 엔터 소속인 퍼플아워의 루아.

‘···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한율은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 퍼플아워는 라인업에 없는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비밀로 해주라.”

한율과 라이언, 길우성을 조금 전 대기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온 나기혁이 대뜸 말했다.

“알잖아, 너희도.”

“알긴 뭘 알아.”

“두 살 위 형한테 반말하지, 라이언?”

“난 기혁 같은 형 둔 적 없어.”

“······.”

“···아무튼.”

나기혁은 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라이언을 외면했다. 대신, 한율과 시선을 맞췄다.

“괜히 소문내봤자 너희도 곤란해질 거라는 거 잘 알잖아. 솔직히 너희, 나밖에 못 보기도 했고. 그렇지?”

라이언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루아 두고 바람피워?”

“야!”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른 나기혁이 주변을 살폈다. 의아해하며 이쪽을 보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꾸벅꾸벅. 그러곤 라이언의 팔을 잡아 속닥거렸다.

“그런 얘길 이런 곳에서 대놓고 말하냐? 어? 넌 생각이 없어?”

“기혁, 지금 우리한테 부탁하려는 거 아냐? 생각이 없어?”

“너······.”

나기혁은 기가 막힌 사람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잡았던 팔을 놓았다. 후우. 허공에다 대고 몇 번 심호흡한 뒤, 그가 웃는 낯으로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라이언 너 한국말 진짜 많이 늘었다. 예전엔 잘 못 해서 귀여웠었는데.”

“징그러워. 평소대로 해.”

“······.”

길우성이 슬쩍 한율 옆으로 다가왔다. 소곤소곤.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 챌린지 영상 얼른 찍고 싶은데. 스마일 썬 후배님들도 오매불망 기대를 품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실 것 같고.”

“확답을 받기 전까진 안 놔주시지 않을까?”

“부탁이다, 얘들아.”

두 사람의 말을 못 들은 척, 나기혁이 대외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비밀로 해 줘. 대신 나도 너희 부탁 한 가지씩 들어줄게. 내 선에서 가능한 거면 뭐든.”

“오, 진심이세영?”

“갖고 싶은 거 말해도 괜찮아. 백만 원까진 가능해.”

“히익···!”

백만 원이란 소리에 길우성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한율은 저도 모르게 구겨지려는 미간 근육을 통제했다.

바람둥이는 예전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마음이 떠났으면 깔끔하게 정리부터 하고 새 사람을 만나든가 하지, 대체 왜 상대방을 기만하면서 그딴 짓을 하는지.

현재 모든 사람을 기만하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번호 찍어, 기혁.”

라이언이 핸드폰을 꺼냈다.

“내 요구 조건은 나중에 전화로 말할 거야.”

“···그래. 그렇다고 너무 선은 넘지 말자?”

“그럼 선배님, 저도 천천히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나기혁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한율을 향했다.

“저도 나중에요.”

“그래, 그래.”

나기혁은 라이언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빠르게 찍었다. 아까부터 초조하게 벽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게, 인터뷰 리허설 시간이라도 다가오는 모양.

“역시 다들 말이 통할 줄 알았다. 그럼 믿고, 나 간다?”

“어.”

“넵! 나중에 뵙겠습니다, 선배님!”

“수고하세요.”

나기혁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라이언을 한번 보곤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조금 전까지 눈을 빛내며 웃던 길우성의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으. 바람둥이 극혐.”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

라이언은 원카운트의 찬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형, 나기혁 바람피워. ···상대? 몰라.”

생방송 <뮤직뮤직>이 끝나고, 유호와 길우성이 나갔던 tv Mu <뮤직마켓>이 방송되는 저녁 6시 40분.

한율은 <뮤직뮤직>에서 받은 1위 트로피를 손에 든 채 셀카를 찍었다. 찰칵.

[잠시 후, 우회전입니다. 50m 앞, 좌회전입니다.]

김포국제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일 <부산 아시아 뮤직 페스티벌> 리허설이 아침 일찍 잡혀, 오늘 미리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뮤직마켓> 시작한다.”

“난 나중에 볼게. 눈 아플 것 같아.”

“엉.”

한율은 셀카를 SNS에 올리곤 OTT 앱을 실행,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뮤직마켓>을 재생했다. 자그마한 화면 속, 노래와 함께 유호와 길우성이 등장했다.

“호 형이랑 나란히 잡혀서 그런가···. 내 키 너무 작아 보여.”

“깔창 안 깔았어?”

“우성이 너 지금 키가 몇이었지?”

“178.2cm.”

“결코 작은 키는 아닌데.”

“미안하다, 우성아.”

“말로만 그러지 말고 2cm만 나눠줘요, 큰형.”

방송에서도 유호와 길우성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출연자들은 유호에게 키가 몇인지부터 물었다. 유호는 <뮤직마켓>이 데뷔 후 고작 세 번째 예능이지만, 현역 음방 MC답게 태도에서 여유가 보였다.

[올해 초에 쟀을 때 정확히 187.2cm 나왔습니다.]

[우와···.]

[아니, 비율도 정말···! 앞으로 잠깐 나와보시겠어요? 박서래 씨도 앞으로.]

키 150cm 미만인 여성 출연자와 유호가 나란히 섰다.

[화면에 같이 안 잡혀!]

[서래야? 어디 있니, 서래야?]

[아니, 얼마나 카메라를 멀리 잡아야 같이 들어오는 거야?]

[우성 씨도 옆에 서봐요.]

[넵! 178.2cm 길우성입니다!]

[귀여워ㅋㅋ]

[나 이거 좀 그거 같은데?]

[장신 아이돌들에게 잡힌 외계인서래]

편집된 영상과 자막, CG가 참 정신없다. 그래도 녹화 당일 갑자기 촬영 순서가 밀리는 등 갑질을 당한 것에 비해, 방송에선 나름 분량을 챙겨준 티가 났다. 퀴즈 도중 잠깐 멍청하게 굳은 길우성의 표정에 적절한 자막과 CG를 곁들여 재밌게 부각해주기도 하고.

[우리 제주댄싱킹, 이대로 돌하르방이 되나요?]

[가사가 슉, 슈슉, 슈···, 슈퍼···.]

“얘들아, 공항 도착했다.”

“벌써요?”

공항엔 이쪽으로 올 걸 예상하고 기다리던 극성팬이 많았다. 그들을 피해 바삐 걸음을 옮겨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고 라운지에 도착. 다시 OTT 앱을 켰을 때 <뮤직마켓>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실검에 호 형이랑 우성이 올라왔다.”

“크으. 이래서 사람이 인기 예능에 나가야 하는 거구나.”

“흐. 춤출 때 누구보다 빛나는 토끼.”

“우성아, 너 혹시.”

<뮤직마켓> 리뷰 기사를 보던 이건우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방송에서 누나 공개했어?”

“응.”

길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봤을지 모르겠는데, 전에 나한테 여친 있는 것 같다면서 사진 하나가 커뮤에 퍼진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작가님이 미랑이 누나와의 인연에 대해 말하면서 그 사진도 자연스럽게 해명하면 어떻겠냐 하셔서, 곰순이한테 허락받았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하기로 하고.”

“그래서 실검에 네 누나도 올라왔구나···.”

“···뭐?”

실검 소리에 길우성이 화들짝 놀라며 이건우의 핸드폰을 받았다. 정말로 실검 말미에 [길우성 누나]가 올라와 있었다.

“기사도 떴어, 우성.”

[어스래빗 길우성, ‘함께 찍힌 미모의 여성은 누나’]

길우성이 목 뒤를 턱 잡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 내가 언제 곰순이를 ‘미모의 여성’이라고 칭했다고···!”

“모자이크한 사진이 사람들 호기심을 더 자극했나 보다. 찾아보니 정말 예쁘셔서 더더욱.”

“우성이네 누나 예쁘다.”

“벌써 찾았다고?!”

차남석이 핸드폰에 길미현의 SNS를 띄워 내밀었다.

“SNS 팔로워도 급증하고 있는데?”

“······!”

“우성이네 누나 사진 보니까, 왜 그렇게 현우랑 사귄다는 소리에 난리 쳤는지 이제 이해 간다. 그런데 괜찮겠어? 가족이 이렇게 공개되어도?”

“나도 사실은 걱정 많이 되어도 한번 물어본 건데 곰순이가 미랑이 누나랑 충분히 상의해서 괜찮다고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았는데 왜 실검에까지···.”

길우성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가질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우물쭈물 말이 두서가 없어졌다. 안색도 점점 어두워지는 중.

“어? 현우랑 같이 찍은 사진 있다.”

“현우랑 사귀는 사이란 것도 벌써 기사 떴어. 이거, 현우랑도 이야기된 거겠지?”

“최근 SNS에다 보란 듯이 하트 찍고 간 거 보면 그런 것 같은데?”

한율은 연예뉴스란에 막 올라온 최신 기사를 클릭했다.

[어스래빗 길우성 미모의 누나, 배우 박현우와 연인 사이]

-두 사람은 박현우가 길우성의 제주 집으로 놀러 갔다가 처음 만났다고 알려졌다...<친한 친구나 형을 집에 데려오면 안 되는 이유

ㄴ내 호적메이트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편안하다.

ㄴ네 호적메이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ㄴ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너희 눈에는 형제자매가 별거 아닌 존재로 보일지 몰라도 생판 남에겐 안 그럴 수 있으니까 조심해라 진짜.. 나 지금 매형이 내 십년지기 친구다.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그ㅅㄲ 평생 우리 집에 안 데리고 왔다

-이분 별다방 ㅇㅇ점 여신으로 유명한데 동생이 아이돌이었구나.. 어쩐지

ㄴ오바는ㅋㅋㅋ 여신급이라고 하려면 영아 정돈되어야지

ㄴ그건 연예인이고 이 눈새야 수천만 원짜리 관리받는 탑급 여돌이랑 비교를 하네

-이미 박현우 씨 팬들 사이에선 유명한 분입니다ㅎ 알바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현우 씨가 매일 데리러 가거든요

ㄴ이런 여친이면 나라도 불안해서 매일 가겠다

ㄴ크래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합니당ㅎㅎ 미랑이랑 같이 놀러 다니는 거 종종 목격됐었거든요

-외모양극화 부추기는 커플 반대한다. 후손들 생각은 안 하냐

-이분 비연예인입니다. 성희롱성 발언이나 억측, 악플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ㄴ그런 거 아무도 안 달고 있어요...

ㄴ떠비의 고소 치료 예방 효과

인기 예능에도 출연하고 실검에 누나까지 떴으니, 길우성이 과거에 따돌림당한 일이나 민감한 가정사가 다시 수면 위로 뜨는 것도 시간문제.

처음 그 일이 드러났을 땐 WB래빗이 언론사에 부탁하기도 하고, 또 인지도가 낮은 데뷔 초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컴백하자마자 음방 1위를 휩쓰는 대세돌인데다, 실검에도 오르내리는 중. 기사를 쓰기만 하면 조회수가 폭발할 테니, 누가 먼저 스타트를 끊을지 눈치 싸움 중일지도 모른다.

길우성 본인 역시 자신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다시 그 일이 떠 오르고, 그땐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다. 따돌림당한 과거가 알려지는 게 싫었다면 애초부터 아이돌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

가해자들이야 다시 불안에 떨겠지만, 그건 이쪽이 알 바 아니다.

다음 날 새벽, 부산의 한 호텔.

한율은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껐다. 그리고 반쯤 감긴 눈을 끔뻑거리며, 습관처럼 포털사이트에 접속.

[인기 보이그룹 멤버 A군의 충격적인 과거!]

어제 예상한 대로, 연예뉴스란 메인에 길우성의 과거 기사가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실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과거 커뮤에 한 차례 돌았던 이야기라 그런지 벌써 댓글에 답이 적혀 있었다.

-ㅇㅅㄹㅂ ㄱㅇㅅ. 어제 ㅁㅈㅁㅋ 나온 아이돌.

“하하···. 제목만 보면 내가 가해잔 줄 알겠네···.”

옆 침대에서 비슷하게 핸드폰을 확인한 길우성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반대로 돌아누우며 웅얼웅얼.

“그리고 뭐가 충격적이야···. 집단 따돌림이 얼마나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우웅.

“···어, 곰순. 괜찮아?”

한율은 기지개를 쭉 켠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워낙 조용해, 길우성의 전화 상대방 목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내가 물어볼 말을 왜 네가 물어봐.]

“이상한 댓글 다는 놈들은 내가 다 변호사 쌤한테 넘겨서 혼내줄 테니까, 괜히 기사 찾아보지 말고, SNS도 당분간 하지 마···.”

-[내가 이런 것도 예상 못 하고 허락했을까 봐? 너나 이상한 댓글 신경 쓰지 말고, 내 걱정,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고 공연이나 잘해. 다치지 말고.]

“엉···.”

한율은 조용히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씻고 나왔을 때 길우성은 핸드폰을 쥔 채 다시 잠든 상태였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로비 집합 약속 시간까지 20분.

한율은 길우성의 다리를 툭 찼다.

“야, 일어나.”

“어엉···.”

<부산 아시아 뮤직 페스티벌> 공연이 열릴 경기장.

그들이 도착했을 땐 막 외국인 가수가 무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무대 옆에선 그다음 리허설 순서인 퍼플아워가 대기 중.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스래빗 멤버들은 무대 앞 의자에 앉아있는 히아신스와 핑크팝의 리스, 드림래빗, 김우재와 인사를 나눈 후 적당히 빈자리에 모여 앉았다.

오늘 공연 라인업에 오른 한국 가수는 총 8팀. 그러나 남은 두 팀인 원제로와 원카운트가 보이지 않았다.

“원제로는 벌써 리허설 끝내고 들어갔나?”

“방금 승준이한테서 톡 왔는데, 지금 막 공항에서 달려오는 중이래.”

“월드투어 도중에 다른 스케줄로 귀국하면 흐름 깨지는 것도 그렇고, 굉장히 피곤할 텐데. 괜찮을까 모르겠다.”

“그러게.”

“······?”

그 순간, 한율은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주친 시선.

생긋. 히아신스의 호수가 한율을 향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까딱까딱

“서한율. 너 혹시 최호수한테 실수한 거 있냐? 조금 전 널 보는 눈빛에 못마땅한 기색이 한가득하던데.”

리허설을 마치고 들어온 대기실. 한율은 박가람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음방이랑 아스대 빼곤 따로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동생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리허설 조끼를 곱게 접으며 이건우가 말했다.

“아이돌이니 연애는 안 될 말이지만, 그래도 언니로선 동생을 찬 남자가 그리 좋게 보이진 않을 거 아냐.”

“차? 서한율이? 은수 씨를?”

“정확히는 그런 소문이 돌고 있어. 걸그룹 사이에서.”

“잉? 난 금시초문인데?”

차남석은 그 소문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 씨가 서한율 좋아하는 것 같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돌았었잖아요. 그런데 지난번에 라디오에서 서한율이 연애는커녕 썸도 탄 적이 없다고 밝히니까, 그걸 근거로 은수 씨를 찼다는 소문이 도는 것 같아요.”

“아아, 그럼 이제 막 퍼지는 소문이구나?”

“네.”

유호는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정작 은수는 내 앞에서 한율이 얘기 먼저 꺼낸 적 한 번도 없는데. 그런 이야기를 스스로 떠벌릴 성격도 아니고.”

“박가람이 네가 호수 씨한테 물어봐. 고등학교 동창이잖아.”

“사촌형놈 때문에 사인 부탁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담이었는뎁쇼.”

한율은 진은수에게 사과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작년, 시작도 전에 자신에게 거절당했을 때도 무척 상처받은 눈치였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 법한 시간이 흐른 지금, 이번엔 차였다는 소문이 돌다니.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얘들아, 아침 먹자!”

그때 현장전과 윤승우가 양손 가득 묵직한 봉투를 들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네에!”

밥이 등장하자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형, 이 대기실 오늘 우리만 쓰는 거예요?”

2년 전 처음 부산 아뮤페에 참석했을 땐 풀썸, 작년엔 MOHE와 함께 대기실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대기실에 낯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 문에 너희 이름만 적혀 있었잖아. 못 봤어?”

“주최 측이 실수로 깜빡한 줄 알았죠.”

“이런 큰 공연에서 단독 대기실 받으니까 뭔가 기분 이상하다.”

“왜. 뉴욕이랑 LA K-POP 콘서트 때도 받았었잖아.”

“우리 이거 먹고 뭐 해?”

아침을 먹고 나서 한율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서울 구미호> 대본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서울 구미호> 첫 촬영까지 어느덧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 사이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성, 누나는 괜찮대?”

“응. 아까 톡 왔는데, 이참에 당분간 알바 쉬기로 했대.”

“나도 오래간만에 누나한테서 연락 왔는데, 어디 가서 내가 누나 동생이란 거 알리지 말라더라.”

“왜?”

“쪽팔린다고. 진짜 너무하지 않냐?”

“창피한 동생이 되어버린 이건우.”

길우성의 과거 따돌림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고 실검에도 [따돌림피해 아이돌], [길우성 따돌림]이 떴지만, 멤버들 누구도 해당 주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길우성 본인 또한.

“라이언, 찬형 왔다.”

한율은 이어폰을 빼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찬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오랜만이다.”

찬형은 대기실을 크게 둘러보더니 라이언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본인의 대기실인 것처럼 아주 편안하게, 가방에서 핸드폰과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에다 세팅했다. 먹기 좋게 썰린 과일이 잔뜩 담긴 커다란 도시락통과 포크까지.

과일을 본 박가람이 의자를 끌고 그 앞으로 향했다.

“아니, 이 선배님은 왜 남의 대기실에 자기 살림을 차린대? 응?”

찬형이 여분의 포크를 라이언과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가 더 편하고 조용해서요. 라이언한테 <락뮤닷> 진행도 가르쳐줄 겸.”

그 시각, 원카운트 대기실.

나기혁은 초조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지?’

어제부터 퍼플아워 루아에게서 톡이 없었다. 그가 보낸 톡도 처음에만 읽고 무시, 이젠 아예 ‘읽지 않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는 중.

조금 전 마주쳤을 때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인사했지만, 속마음을 가면 아래로 숨기는 게 피차 능숙해서 갑자기 왜 이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라이언 이 새끼가 어제 일 떠벌린 거 아냐?’

전화로 요구 사항을 말하겠다며 번호까지 받아놓고, 지금까지 잠잠한 것도 수상하다.

나기혁은 직접 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났다. 그러다 찬형이 보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찬형 어디 갔어?”

“어스래빗 대기실.”

설마.

“형은 그걸 가만히 뒀어? 가뜩이나 안티들이 뭐 하나 꼬투리 잡을 거 없나 눈에 불을 켜는데, 한 놈이 멀쩡한 팀 대기실 두고 자꾸 다른 팀으로 도는 거 알아봐. 또 무슨 말을 지어낼지.”

“아니, 왜 급발진이야. 그리고 요즘 누가 고작 그런 걸로 불화설을 밀어. 믿지도 않겠고만. 더 위험한 건 지금 네 말투거든, 나기혁?”

나기혁은 입을 꾹 다물고 대기실을 나갔다. 등 뒤에서 리더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또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본인도 술 처먹고 찬형만 밀어주는 거 뭣 같지 않냐고 불평불만 쏟아낼 땐 언제고.

나기혁은 속으로 씩씩거리며 어스래빗 대기실을 찾아 성큼성큼 걸었다.

‘들어가서 무슨 말로 불러내지? 찬형이 자식 성격상···.’

그러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

“···엄마, 깜짝이야!”

“······?!”

인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나기혁에게 화들짝 놀란 소녀가 작게 소리를 지르며 멈췄다. 생각에 몰두하던 나기혁 또한 그 소리에 놀라 우뚝 섰다.

“···아. 미안해.”

나기혁은 미안한 표정에다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였다. 부딪칠 뻔한 상대는 바로 걸그룹 드림래빗 멤버 중 한 명. 그녀 뒤로 함께 오던 다른 드림래빗 멤버들 또한 놀란 얼굴로 멈춘 상태였다.

“내가 위험하게 잘 안 살피고 빨리 걸었다. 많이 놀랐지? 정말 미안해.”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선배님.”

놀란 가슴팍을 꾹 누르던 박세은은,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나기혁의 사과에 당황해하다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갑자기 튀어나와 죄송합니다.”

이런 외부 공연 대기실 복도엔 출연팀 스태프 외에 공연 관계자나 알바생, 기자들 등 불특정 다수가 지나간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여돌과 오래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선 안 되기에, 나기혁은 두 손을 모아 박세은에게 재차 사과하며 옆으로 피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뇨, 괜찮···.”

나기혁은 박세은의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떨어져서 봤을 땐 잘 몰랐는데···.’

지나가는 낯익은 스태프들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하며, 나기혁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뭘 넣은 것 같진 않은데 크네. 쟤 이름이 뭐였지?’

우웅. 그때 손에 든 핸드폰이 울렸다.

나기혁은 반사적으로 벽에다 등을 대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루아의 톡이었다.

-[어제부터 매니저가 갑자기 폰 확인하겠다구 해서 연락 제대로 못 했어, 미안ㅜㅜ]

-[진짜 몰폰 하나 장만해야겠당..]

-[뭘로 살까???]

-[오빠랑 같은 기종 사고 싶은데 그러면 나중에 들키면 티날 것 같궁..]

-[오빠가 이참에 최신 기종으로 바꾸면 안 돼??? 그럼 티 덜 나잖아ㅎ]

어제 일, 들키진 않았구나.

나기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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