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스래빗 길우성, 학폭 가해자들에게 사과받아]
[보이그룹 어스래빗 멤버 길우성(19)이,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따돌리고 괴롭힌 이들을 만나 직접 사과받았다고 밝혔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필 사과문을 올린 네티즌을 포함한 5명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대화 녹취록을 언제든 공개해도 좋다고 동의했으며···(중략).
한편 길우성의 소속사인 WB래빗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티스트와 관련하여 허위 사실 유포 및 명예를 훼손하는 악의적인 댓글에 법적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녹취록 어디에서 볼 수 있음?
ㄴ민감한 내용도 있고, 현재 활동에 지장 줄 수 있어서 시간 두고 신중히 검토 후에 공개한다고 본문에 나왔네요ㅇㅇ
-양쪽 동의하에 녹음. 철저하네
-다른 가해자들아 늦기 전에 빨리빨리 사과해라ㅋ 더 늦어서 ㅈ되기 전에
-엎드려 절 받기
-그냥 무시 조금 당한 거 가지고 개오버한다는 소리 있던데ㅋㅋ 그러니 바로 공개를 안 하는 거지
ㄴ너구나?
-난 아직도 20년 전에 나 무시하고 괴롭히던 애들 떠올리면 지금도 손발이 덜덜 떨리고 죽을 것 같은데
-길우성 엄마 강남 룸 출신이란 것도 거짓임? 지금 아빠도 친아빠 아니라던데
ㄴ남의 집 가정사가 왜 궁금하냐
ㄴ이런 놈들 때문에 길우성 부모가 멀쩡히 잘 되던 식당 문 닫은 거 아니냐
ㄴ남의 집 부모가 궁금하면 네 부모부터 까든가
-역시.. 이래서 친부 모르는 애는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다.
ㄴ이게 바로 패드립이에요.
ㄴ변호사 쌤들 손목 건초염 올 듯
ㄴ판사님 한 명 더 갑니다
-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나 때리고 괴롭힌 가해자 놈들 죽기만 기도하고 사는데.. 이 기사 보니까 내가 지금 누구 좋으라고 이러는 건지 정신이 확 든다.. 그런데 왜 몸은 제대로 안 움직일까.. 나도 얼른 보란 듯이 잘 살아서 복수하고 싶은데...
ㄴ우울증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 또한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힘내세요.
-19살? 그럼 6, 7년밖에 안 지났단 소리 아님??
ㄴ저거 만 나이. 지금 스무 살임.
-시원하게 공개 처형 가자.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싶다 진심.
-‘어릴 때 너무 심심해서 혼자 춤추면서 놀기 시작한 게, 지금의 절 만들었어요.’ <길우성이 라방에서 웃으며 한 말.
ㄴ너무 잘 견디고 극복해줘서 고마워 우성아ㅜㅜ
-길우성 성공해라
“우성아.”
22일 뮤닷 <락뮤닷> 어스래빗 대기실.
지난주 금요일 컴백 쇼케이스를 가지고, 오늘 <락뮤닷>에서 컴백 무대를 할 예정인 스카이러너의 용맹이 찾아왔다.
용맹이 활짝 웃었다.
“네 초등학교 동창생들 연락처 좀 줄래? SNS ID라도 좋아.”
“······.”
샌드위치를 단 세 입에 욱여넣고 먹던 길우성이 눈을 끔뻑거렸다.
“우리 사촌 형이 컴을 정말 잘 다루거든. 형한테 부탁해서···.”
길우성은 말하는 용맹의 손에 탄산수를 쥐여주었다. 그러곤 괜찮다는 얼굴로 끄덕이며 그의 등을 토닥토닥.
“······.”
용맹은 뭐라 더 말하려다가 살며시 입을 다물곤 얌전히 그 옆에 앉았다. 당사자가 덤덤한데, 그보다 더 감정적으로 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한율은 그에게 샐러드를 내밀었다.
“컴백 축하해요, 형.”
“응, 고마워. 그런데 한율이 너 파란색 머리도 잘 어울린다. 역시 피부가 깨끗해서 그런가.”
“형도 빨간색 머리 잘 어울려요.”
유호가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둘이 그렇게 있으니까 태극기 같다.”
“태극기 된 기념으로 사진 찍을까?”
“네.”
샌드위치를 모두 삼킨 길우성이 옆에 붙었다.
“나는 검은색 막대기를 맡도록 하지.”
“검은색 막대기 아니고 사괘.”
찰칵, 찰칵. 다른 방향에서 조용히 끼어든 박가람과, 지나가던 차남석까지 잡아 그들은 셀카를 찍었다.
“그런데 너희 활동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잖아. 끝나면 다들 뭐 할 거야? 한율인 드라마 촬영할 거고.”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려고.”
차남석이 어깨를 돌리며 대답했다.
“우리 사실상 반년 넘게 계속 활동한 거 아냐? 4, 5월에 월드투어하고, 돌아오자마자 싱글로 컴백하고, 리디스 촬영하고, 다시 컴백하고···.”
“보배랑 라이언은 3월에 트레리안 활동까지 했었지.”
“난 제주도 내려가서 일주일 동안 푹 쉴 거야.”
“제주도? 집에?”
“응.”
길우성이 들뜬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 활동 끝난 다음 날은 온종일 자고, 그다음에 내려가서 엄마, 아빠랑 여기저기 놀러 다니려고.”
“부모님 식당 하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식당은?”
“이번 달로 정리할 예정이욥.”
용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설마···.”
길우성이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바로 잡았다.
“이번 일 때문은 아니에용. 몇 달 전부터 준비 중이었던 거거든.”
몇 년 전, 길우성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건물주가 바뀌었다. 새 건물주는 초반부터 임대료를 올리겠다, 주차장 관리 등의 문제로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길우성의 부모와 사소한 갈등을 빚어왔다.
그런데 길우성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식당이 매일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슬슬 노골적으로 꼬투리를 잡으며 시비를 거는 일이 많아졌고,
『이대로 가다간 우성이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터질 것 같아.』
길우성의 부모는 식당을 정리하고 잠시 쉬기로 했다. 마침 지난달을 기해 드디어 길우성의 정산명세에서 마이너스가 사라지기도 했으니, 한시름 마음도 놓였을 것이다.
‘여기에 아들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점차 손님을 직접 상대하는 일 자체가 힘들어질 거란 생각도 했겠지.’
언제 어디에서 이상한 날파리가 꼬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자나 악의를 품은 너튜버, 악플러, 안티, 돈을 노린 사기꾼 등등.
“와···.”
길우성의 설명을 들은 용맹은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얼굴로 손뼉을 쳤다.
“걱정이 아니라 축하해야 할 일이었네. 정산받게 된 거 축하해, 우성아.”
“히히.”
“그럼 아버지랑 술 마시기로 약속한 것도 이참에 지킬 수 있겠네?”
“흐흐흐.”
“다음에 만날 땐 술 한 잔?”
“히히히.”
박가람도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나도 제주도 놀러 가고 싶엉.”
“우성이가 부모님이랑 실컷 회포 풀면 그때 내려가. 눈치 없이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사이에 끼지 말고.”
“싸우자, 이건우.”
“그나저나 맹이 넌 가서 안 자도 돼? 되게 피곤해 보이는데.”
“여기서 잘래. 돌아가기 귀찮아.”
“그래, 그럼.”
“그런데 우리 왜 이번에도 단독 대기실이지? 이번 주는 1위 후보 아니잖아.”
“글쎄다.”
이야기하는 동안 샐러드를 모두 먹은 용맹은 소파 하나와 담요 한 장을 차지하고선 바로 잠들었다. 한율도 그 옆에서 조용히 대본을 읽다가,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붙였다.
찰칵.
“······?”
그러다 카메라 앱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앞에 스카이러너의 하신이 핸드폰을 든 채 히죽 웃고 있었다.
“맹이 형도 너도 참 잘 잔다. 특히 맹이 형.”
한율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왜? 평소엔 못 잤어?”
“컴백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지, 뭐. 컴백할 때마다 전보다 좋은 성적을 내놔야 하잖아. ···야, 사진 잘 나왔다. 너한테도 보내줄까?”
하신이 한율에게 조금 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실은 맹이 형이 리더 형이랑 조금 다투기도 했거든.”
“왜?”
휙휙. 하신은 감겨있는 용맹의 눈앞에다 손을 흔들어보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그의 반대쪽에 앉았다.
“예전에 우리끼리 반농담 삼아서, 너 드라마에 맹이 형 카메오로 출연하게 되는 거 아니냐 한 적 있었거든. 그 얘기를 리더 형이 매니저 형한테 했나 봐. 매니저 형은 또 실장님한테 말하고. 그런데 실장님이 그걸 다큐로 받아들이고 너희 회사로 연락했다더라.”
금시초문이었다.
한율의 시선이 조유찬을 향했고, 가까이에 있어서 하신의 이야기를 함께 들은 조유찬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란 소리였다.
“아무튼 그 일로 맹이 형이 화나서 리더 형한테 불평했는데, 리더 형이 ‘회사로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가 의견이 엇갈려서 투닥투닥. 컴백 준비 때문에 둘이 신경이 예민해졌던 것도 있고.”
“소소하네.”
“소소하지. 그런데 둘 다 삐친 게 은근 오래 가는 타입이라.”
하신은 5분 정도 더 떠들다가 용맹을 깨워 데리고 갔다. 조유찬이 조용히 말했다.
“카메오 출연에 대한 논의는 이쪽도 시기상조라, 스엔 측엔 대답을 보류한 상태야.”
“네.”
어스래빗! 로! 컬! 영! 화!
꺄아아악!
후속곡이라고 해도 <로컬영화> 활동은 일주일로 끝. 그리고 앞서 로 1위를 휩쓸기도 하며 역대급으로 좋은 성적을 낸데다가, 차남석이나 길우성 관련 이슈까지 재조명되어서 그럴까.
오늘 사녹 방청을 온 이프림의 의욕은 오디오를 터뜨릴 정도로 아주 높았다. 덕분에 어스래빗은 무대를 4번이나 반복하면서 이프림을 달래야 했다.
“우리 이프림, 환절기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궁~.”
“두 번째 줄 녹색 머리띠 누나, 그저께 부산 팬싸에도 오지 않았어요?”
“헉! 나 기억해, 우성아?!”
“흐히힛. 그런데 부산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피곤하지 않아요?”
특히 길우성은 무대 끄트머리로 가서 평소보다 더 밝게 웃었다. 팬들도 팬 매니저에게 당부받았는지, 길우성에게 따돌림 이슈나 괜찮냐는 질문을 일절 하지 않았다.
팬이 감동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가 내 피로회복제야, 우성아!”
사녹을 마치고 돌아온 대기실.
“오늘로 <락뮤닷>도 당분간 안녕이구나.”
“이번 활동 며칠 남지 않은 게 후련하면서도··· 이제 한동안 이프림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너희들을 위해서, 이걸 준비했다.”
조유찬이 씨익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멤버들은 의아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오 팀장이 보낸 톡.
-[2019 RMMA 스페셜 무대 제안]
-[서한율 제외 멤버 전원]
“······.”
“뭔데요, 이거.”
“뭔데요, 라니. 여기 적혀 있잖아. RMMA 스페셜 무대 제안.”
“와아···.”
짝짝짝. 강보배가 뒤늦게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사실 RMMA처럼 큰 시상식에서 스페셜 무대 제안을 받는 건, 대다수 아이돌이 꿈꾸는 아주 좋은 기회인 까닭이었다.
“여기에 무대도 해달라는 요청이 왔어. 당연히 다른 공연도 포함해서. 자세한 건 나중에 퇴근하고 나서, 팀장님에게 직접 듣자.”
박가람이 느긋하게 스트레칭하며 웃었다.
“그래도 한 달 넘게 남았으니 여유 있네. 흐.”
경기도에서 찍는 서울 구미호
MBS K, MBS, KBC 음방을 차례차례 돌던 어스래빗은 27일, SBC 대기실에서 정규 1집 앨범 활동 마무리 기념 라방을 진행했다.
<로컬영화> 순위는 2위에서 5위 사이를 떠돌았지만, 멤버들은 아쉬움보다는 후련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끝났다아···!”
라이브 방송 종료.
멤버들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내일은 잠만 잘 거다. 중간에 깨우면 화낼 거야, 진심.”
“누가 할 소릴.”
“우리 기념으로 맛있는 거 먹을까? 보쌈? 족발?”
“써한 넌 뭐 먹을래?”
한율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대답했다.
“나 촬영장 가야 해.”
“···뭣이?”
“오늘부터 촬영 시작이었어?”
한동안 푹 쉴 수 있단 생각에 들떠있던 멤버들이 동작을 멈추며 놀란 눈을 했다.
“촬영은 내일부터지만, 오늘 미리 가서 인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사실 <서울 구미호>는 보름 전부터 다른 두 주연과 배경이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촬영이 시작된 상태였다.
“그렇구나···.”
길우성이 안쓰러운 눈으로 한율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활짝 웃으며 멤버들에게 외쳤다.
“그렇다면 치킨도 시킵시다! 튀긴 닭!”
“오오.”
“매운 것도 시키자!”
“······.”
경기도 연천에 있는 거대한 실내 스튜디오.
“안녕하십니까!”
“오, 한율 씨! 어쩐 일이에요? 촬영은 내일부턴데?”
소리가 높이 울리는 스튜디오엔 여러 개의 세트가 세워져 있었다. 현재 촬영 중인 씬은 극 중에서 미제 사건으로 남겨진 살인 사건 현장.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장을 둘러볼 배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로 앨범 활동이 끝나서, 미리 인사드릴 겸 와 봤어요.”
“어우, 그럼 들어가서 푹 쉬어야죠. 무척 피곤···해 보이는 피부는 아니지만, 그래도요.”
반갑게 한율을 맞이한 오준기 PD는 도중에 하던 말을 얼버무리곤 멋쩍게 웃었다.
그 역시 이 바닥 생활을 오래 한 터라 음악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 수면 부족과 진한 무대 메이크업, 강한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느라 급격히 피부 상태가 나빠져 스케줄 도중 피부과를 다녀오는 이가 적잖다는 것도.
하지만 지금 한율의 피부는 당장 화장품 CF를 찍어도 될 정도로 아주 깨끗하고 생기가 넘쳤다.
“한율 씨 어쩐 일이에요? 촬영 내일부터 아니었어요?”
그때 <서울 구미호>의 또 다른 주연인 현미나가 오 PD와 비슷한 말을 하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늘 활동이 끝난 기념으로 미리 인사드릴 겸 들렀습니다.”
“스케줄 끝나고 바로요?”
“음? 저기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두 배우가 인사를 나누자 오 PD는 슬쩍 자리를 피해주었다.
“네. 극 초반엔 선배님과 함께 촬영하는 씬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
현미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멀어지는 PD나 다른 스태프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율과 거리를 좁혔다.
“한율 씨.”
“네, 선배님.”
“다음 작품에 들어갈 땐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정말 근처에 있어서 잠깐 들르는 거면 모를까.”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촬영이 없는데도 인사하러 오는 거 말인가?
“예전엔 권위 의식에 찌든 제작진이나 배우들이 인사를 못 받으면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후배들을 잡았지만, 이제 슬슬 이 바닥도 그런 비효율적인 문화를 버릴 때도 됐잖아요. 그냥 배우답게 연기만 잘하면 됐지.”
말하는 자신 또한 제 말을 강요하는 선배로 비춰질 것 같았는지, 현미나는 장난스럽게 살짝살짝 웃었다.
“그러니 영향력 있고, 젊고 유망한 주연들이 나서서 차근차근 바꿔줘야, 나중에 후배들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환경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아···.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한율에게 하루 먼저 촬영장에 와서 주요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인사하는 게 좋지 않겠냐, 그렇게 말했던 조유찬의 어깨도 축 내려갔다.
“아뇨, 아뇨. 한율 씨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늘도 스케줄로 무척 피곤할 텐데, 여기까지 인사하러 왔다고 하니까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요. 연기자 선배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현미나는 아주 어릴 적 CF 아역 모델 활동을 하다가 7살에 사극으로 데뷔한, 한율에겐 까마득한 선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바닥의 온갖 더러운 꼴이나 부조리한 일을 직간접적으로 겪었을 터다.
지금도 가끔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당시는 오죽했을까.
“아니에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율의 미소에 현미나도 살며시 웃었다.
그래도 간 김에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인사하고, 촬영 분위기나 세트장을 둘러보고 나서 서울로 돌아왔을 땐 새벽 2시가 될 무렵이었다.
“그럼 11시에 데리러 올게. 푹 자.”
“네, 형. 수고 많으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아파트 지하 주차장. 조유찬을 보낸 한율은 공동 출입문을 지나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러고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릴 때였다.
“······?”
한율은 문득 투명한 출입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아무도 없었다.
‘사생이나 기잔가?’
띵. 한율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활짝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