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17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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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래빗, 어스래빗 길우성 사과 녹취록 공개]

-제목 보고 길우성이 사과했단 줄

-길우성 피해망상 환자처럼 여론 선동하고 가해자 쉴드치던 놈들 다 튀어나와라 한 대씩 맞자^^

-읽는 게 아니었는데ㅅㅂ PTSD 어서오고

-초등학생 때 당한 거 맞아요? 중학생 때가 아니라?

ㄴ중학생 땐 서로 무시하면서 지냈다네요.

ㄴ원래 초딩 때가 지가 내뱉는 말뜻이 뭔지 모르고 패드립 남발하는 경우가 많음 그런데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수준인데ㄷㄷ

-경찰청은 당장 길우성을 학폭 예방 홍보대사로 임명해라

-어쩐지 길우성 생일마다 팬들이 학폭 피해자 지원단체에도 기부하더라니

-우유 팩 던지고 패드립, 누나 성희롱성 발언, 뒤통수 까기, 발표만 하면 비웃고, 가방 숨기고, 돈이랑 게임기 뺏고, 교과서 낙서하고, 미술 숙제 망가뜨리고... 더 놀라운 건 사과한 이 다섯 년놈들만이 가해자가 아니란 거다.

ㄴ심지어 현재도 진행 중임

ㄴ강도짓하려다 사생한테 걸린 ㅅㄲ 제발 뒈져라 진짜 아니 그냥 둘이 싸우다 죽어

-이 ㅅㄲ들 딴엔 길우성이 다 극복하고 아이돌로 데뷔하니까 속으로 독하다독해 이러면서 오히려 길우성 탓하고 있을 거 아냐ㅋㅋㅋㅋ 이러면서 지들 넷상에 신상 털렸다고 개ㅈㄹ발광하고 ㅈㄴ역겹다

-어제 어스래빗 핼러윈 파티 라방 진행한 거 보고 안티 ㅅㄲ들 뭐라 씨부렸더라ㅎㅎ

-좌 대표님 고소 인력 좀 늘려주세요!

-이 와중에 길우성, 자기 이슈랑 얽혀서 엉뚱하게 가해자로 오해받아 신상 유포 피해 본 사람 법적 대응 도와준다는 거 보니 그저 빛

ㄴ이렇게 바보같이 착하니까 당했지ㅜㅜ

ㄴ그리고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읽다 보니까.. 다들 초딩 시절에 저렇게 괴롭힘당하던 애 주변에 한두 명 있지 않았나? 그때 다들 방관 안 하고 돕기는 했음?

ㄴㄹㅇㅋㅋ

“양상원인가 하는 그 새끼를 잡아야 했는데.”

차남석이 중얼거리자, 함께 기사를 들여다보던 박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는 눈만 없으면 뒤통수 한번 시원하게 후려갈기고 돌하르방 뒤에 거꾸로 매달아버리는 건데.”

“돌하르방은 무슨 죄예요.”

“길우성을 지키지 못한 죄.”

“박가람 아무 말 금지.”

“싸우자, 라이언.”

“가람, 나랑 싸우면 져.”

“…젠장. 당장 반박할 수 없다는 게 분하군.”

박가람과 차남석, 라이언 세 사람은 오 팀장이 운전하는 렌트카를 타고 제주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우성만 남기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오늘 길미현도 내려오고 가족 간에 이사 문제 등으로 논의할 게 많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나저나 이대로 올라가는 거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렇다고 속 편히 제주 관광할 순 없잖아요. 토끼돌 크리스마스 노래 준비랑 RMMA 지나면 다시 조금 한가해지니까, 그때 다시 내려오죠.”

서한율의 <서울 구미호>를 촬영 종료 예상 시기는 3월. 그때까지 어스래빗 단체 활동은 자연스럽게 스톱이었다.

“한가해진다고 하니까 그건 그거대로 조금 그렇당.”

“가람, 다시 연기할 생각은 없어?”

“그건 경험치를 더 쌓고 나서 생각해보려고. 차남석 너도 그렇지?”

“네. 애매하게 하느니, 더 공부한 후에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하하.”

운전하면서 세 사람의 대화를 듣던 오 팀장이 웃었다.

“그럼 회사로 들어온 대본들 다 거절한다?”

“네? 저희가 방금 무슨 말을 했나요, 팀장님?”

“가람….”

세 사람이 어스래빗 숙소로 돌아온 건 5시께였다. 서한율은 드라마 촬영, 유호는 <뮤직센터> 스케줄, 강보배는 회사 작업실로 갔는지, 숙소엔 달냥만 덩그러니 있었다.

거실 캣타워 꼭대기 침대에 드러누운 달냥이 꼬리 끝을 까딱거렸다. 므앙?

“그래, 다녀왔다.”

킁킁. 라이언이 냄새를 맡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제육볶음 냄새가 나.”

“저 좀 씻을게요.”

“엉.”

차남석은 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휴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쉬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져 제주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이대로 오늘 하루도 그대로 보내려니 시간이 아까웠다. 좀도 쑤시고.

‘회사 가서 노래 연습이나 하자.’

잠시 후, 씻고 나오자 박가람이 핸드폰을 높이 들었다.

“차남, 저녁 뭐 먹을래?”

“회사 가서 먹을게요.”

“형이 사는 건뎅?”

“회사 가서 먹을게요.”

“그래, 그럼.”

방으로 들어간 차남석은 자신의 핸드폰을 집었다. 목적지가 아무리 회사라도, 숙소 밖을 나가는 이상 일단 매니저에게 말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부재중전화 1건 -안세현]

“……?”

컴백 준비로 한창 바쁠 텐데 웬일로?

바로 2분 전에 들어왔던 전화라, 차남석은 의아한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 남석! 뭐 하고 있었어? 연습? 아니면 아직 제주도야?]

“숙소. 이제 막 씻고 나온 참인데 왜?”

-[그렇구나…. 그럼 이제 뭐 할 거야?]

평소 용건이 있으면 통화보단 톡으로 간단히 나누는 터라, 묘하게 텐션이 높은 목소리에 경계심이 든다. 길우성에 대한 안부를 묻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하지만 차남석은 ‘방송 중이냐?’라고 묻는 대신에 순순히 대답했다.

“회사 가서 밥 먹고 연습하려고.”

-[당분간 휴일 아니었어?]

“그래도 연습은 해야지.”

-[오오…. 역시 차남석.]

“넌 뭐 하는데?”

-[어? 나? 나… 그냥 있는데, 배고파서 전화해봤어. 야, 그런데 너 전에 우리 만났을 때 먹었던 거 기억하냐? 한율이랑 은훤이 형이랑 은강이랑 같이 먹은 거.]

무언가 미션 중인가.

퀴즈? 아니면 특정 단어 말하기?

“오븐구이 치킨?”

-[어! 나 그거 먹고 싶어.]

“…사 달라고?”

-[어!]

뭐지?

차남석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어디로 가면 돼?”

-[지금 내가 아는 형 가게에 있거든. 이쪽으로 포장해서 올 수 있어? 두 마리면 충분할 것 같아.]

더욱 들뜨는 안세현의 톤.

행동 미션이구나.

“너 곧 컴백이잖아. 연습 안 하고 놀아도 돼?”

-[어떻게 매일 빡세게 연습해. 가끔은 숨도 좀 돌려야지. 장소는 톡으로 보내줄게.]

“알았어.”

통화를 끊은 차남석은 곧장 옷장을 열었다.

잠시 후.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오븐구이 치킨을 사 들고 도착한 장소는, 간판이 따로 없는 편집숍 2층이었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예상대로 그곳엔 방송 장비를 든 스태프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었다.

“남서억!”

낯익은 선배 가수, 다른 블루액션 멤버들과 함께 앉아있던 안세현이 벌떡 일어나더니 반갑게 달려와 차남석을 안았다.

“고맙다, 친구야!”

MC로 추정되는 선배 가수가 활짝 웃으면서 매직을 들었다.

“안세현, 친구 차남석 씨가 28분 만에 도착해서 1등!”

하아. 다른 블루액션 멤버들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은강은 천장을 향해 아쉬운 얼굴로 외쳤다.

“내가 먼저 남석이한테 전화했어야 하는 건데…!”

친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도착하는 순서대로 높은 점수를 받는 미션인 듯했다.

안세현이 차남석을 놓아주며 은강을 약 올렸다.

“내가 먼저 했지롱~. 가위바위보 내가 이겼지롱~. 고마워, 남석!”

차남석은 오븐구이 치킨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었다.

“두 마리뿐인데 괜찮아? 많이 모자랄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여기 앉아.”

“그리고 나 메이크업도 안 했는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괜찮아, 너 잘생겨서 괜찮아.”

“안녕하세요, 남석 씨!”

“샵에 갔다 온 우리보다 네가 훨씬 더 잘생겼어, 남석아.”

차남석은 다른 블루액션 멤버들과 가볍게 손을 맞부딪치며 인사하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여기까진 뭐 타고 왔어요?”

“택시요.”

처음으로 도착한 게스트라 그런지, 모두의 시선이 차남석을 향했다.

“매니저 형한테는?”

“그냥 너 만나러 간다고 하고 왔지.”

“바로 허락해주신 거야?”

차남석은 조금 놀란 얼굴로 되묻는 블루액션 멤버들을 향해 씩 웃었다.

“어차피 휴일이라. 우리 휴일엔 자유거든.”

“좋겠당.”

“그래도 방송이니까 일단 연락해야겠다.”

“응. 편하게 해, 편하게.”

“우리야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지.”

블루액션이 녹화 중인 프로그램은 케이블 채널과 통신사 OTT에서 동시 방영되는 것으로, 그들이 컴백할 때에 맞춰 방송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진짜 와 줘서 고맙다, 차남석.”

녹화 도중 잠시 쉬는 시간. 안세현이 재차 차남석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차남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뭘.”

“언제 눈치챘냐? 방송인 거.”

“이제 뭐 할 거냐고 물어볼 때부터. 아니다. 한창 바쁜 시기에 전화를 걸었던 것부터 의심스러웠다.”

“흐…. 아, 우성인 괜찮아?”

차남석은 제작진에게 받은 음료수 뚜껑을 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아. 컴백 준비는 잘 돼가는 거지?”

“응. 리디스 이후로 팬들도 많이 늘었다?”

“축하한다.”

“아, 그런데 혹시….”

안세현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만지작거렸다.

“너 이 번호 알아? 어제 은강한테도 같은 문자가 왔는데… 왠지 신경 쓰여서. 우리 쪽 사생은 아닌 것 같거든.”

차남석은 입에서 음료수를 떼고 안세현의 핸드폰을 받았다. 그가 받은 문자메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구토끼랑 정말 친해요?]

차남석은 메시지 발신 번호를 메모 앱에 옮겨 적었다. 그러곤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말했다. 사생 스토커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난 짓을 태연히 저지르기도 하므로.

“한번 알아볼게.”

우연치곤 공교롭네

“어스래빗의 귀여운 막내가 돌아왔다! 게 아무도 없느냐?!”

한율은 거실에서 들리는 길우성의 목소리에 문득 눈을 떴다. 잠시 멍하니 끔뻑거리다 핸드폰을 확인.

[11월 4일 월요일 AM 10:25]

새벽 6시 30분에 귀가해 7시에 잠들었으니 3시간 반 만이었다.

“아무도 없나 보구먼….”

한율의 옆에 붙어서 자던 달냥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그러곤 닫힌 문으로 다가가 점프, 손잡이에 매달리듯 내리쳤다. 타악, 철컥! 문이 열렸다.

므앙.

“오오, 달냥~. 너 밖에 없구낭, 우리 예쁜 달냥~.”

므아앙.

한율은 반대로 돌아누우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길우성이 방으로 가까이 오더니 소곤소곤 달냥에게 말한다.

“아, 써한 자는 중이구나. 미안.”

그러곤 달냥을 안에 집어넣곤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달칵.

한율은 다시 잠이 들었다.

핸드폰 알람을 듣고 다시 깬 건 오후 1시로, 숙소엔 아무도 없었다. 한율은 씻고 나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늘 드라마 촬영은 오프. 안무 연습은 5시부터.

‘충분하겠네.’

지난달, 해외 사생의 사주를 받고 한율의 별장에 침입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이후 경찰과 부모가 별장을 찾아가 다른 이상이 없는지 살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직접 가서 살피기로 했다. 금방 다녀올 예정이라 달냥은 숙소에 두고.

‘오는 길에 세차도 해야겠다.’

우웅.

“……?”

‘블블 민준 선배님’으로부터 톡.

-[얏호]

휴가 나왔나? 한율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 한율이 너 안 본 사이에 키 정말 많이 컸다. 요즘 운동도 해?”

처음 방문한 블블 민준의 집. 그곳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민준은 이전보다 살과 근육이 붙어서 조금 더 늠름해진 모습이었다.

한율은 오는 길에 사 온 커피를 내밀었다.

“이제 겨우 선배님 키 넘었는데요.”

“그게 많이 자란 거거든? 커피 고마워. 여기 앉아.”

한율은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 내부를 둘러보며 소파에 앉았다. 아주 큰 블블 단체 사진 액자, 팬들에게 선물 받은 것 같은 소품들이 보기 좋게 장식되어 있었다.

민준이 웬 상자를 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실은 지난 주말에 나왔는데, 너 한창 바쁘다길래 방해될까 봐 연락을 미뤘어. 오늘 쉬는 건 남석이랑 통화하다가 알았고.”

“그래서 톡부터 보내신 거예요?”

“응. 한창 자고 있을 것 같아서. 그나저나 월드투어도 성공적으로 마쳐, 음방 1위도 해…. 진짜진짜 축하한다!”

그러면서 민준이 상자에서 꺼낸 건, 다양한 종류의 조각 케이크였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넣어봤어.”

“고맙습니다, 선배님. 잘 먹을게요.”

포크를 받은 한율은 가장 먼저 치즈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선배님은 군 생활 어때요? 이제 1년 지났잖아요.”

민준은 커피가 담긴 컵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며 기계처럼 웃었다.

“하하하.”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케이크를 먹으며 한율은 민준과 그동안 전화나 톡으로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눴다. 지난번 만났을 땐 군대 얘기를 실컷 들려주던 민준은, 이번엔 돌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듣고 싶어 했다.

“기혁이 그렇게 안 보였는데….”

그중 <뮤직뮤직>에서 길우성, 라이언과 함께 겪은 일을 들려주자, 민준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애가 변한 건지, 원래 그랬던 게 슬슬 드러나는 건지 잘 모르겠네. 그리고 공개적으로 아무리 루아와의 교제 사실을 부정했어도, 상대방도 그걸 모를 것 같진 않은데.”

“끼리끼리겠죠. 아니면 사람 보는 눈이 없거나.”

“에휴…. 다른 상대를 만나고 싶으면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부터 하고 만나든가 하지. 진짜 한심하다.”

“그러게요.”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쯧쯧. 민준은 혀를 차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이 넌? 혹시 눈길 가는 애 없어?”

“네, 없어요.”

“그렇구나….”

“제 나이랑 연차에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잘 아는 분이 왜 그러세요.”

“군대에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짧게 한숨 쉰 민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 사람들 연애 얘기가 그렇게 재밌고 설렌다?”

“선배님 연애는요?”

“내 연애는 행복한 거고.”

흐. 이번엔 정말 바보같이 웃는 민준의 모습에, 한율은 저도 모르게 따라 소리 없이 웃었다.

오후 5시, WB래빗 엔터 어스래빗 연습실.

한율이 연습 시간에 맞춰 들어가자, 괴상한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던 박가람이 손을 번쩍 들며 반겼다.

“와아! 서한율이, 오랜만이다?”

“어제도 봐놓고 왜 그래요.”

“여기에서 보는 거 오랜만이라고요.”

PC 앞에 서 있던 유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율을 보았다.

“일주일 만에 받은 휴일인데, 더 푹 쉬는 게 좋지 않아?”

“너무 안 하면 나중에 몸이 굳을 것 같아서요. 무슨 곡부터 할 거예요?”

“RMMA에서 할 , <로컬영화>, 순으로 차근차근.”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캐비닛 앞으로 갔다. 갈아입을 연습복을 꺼내는데, 캐비닛 근처에 앉아있던 차남석이 물었다.

“민준 선배님 만나고 왔지?”

“네. 형이랑 길우성은 내일 보기로 했다면서요?”

“어. 야, 그런데 너 혹시 이 번호 아냐?”

“……?”

차남석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뜬 메모 앱엔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

“너한테도 걸려왔던 번호인지 한번 확인해봐. 블루액션 쪽인지, 아니면 우리 쪽 사생인지 지금 번호 대조 중이거든.”

“팀장님한테는 물어봤어요?”

“어. 그런데 안 나와서. 너나 다른 형들이나, 그렇게 자주 걸려오는 번호 아니면 일일이 보고 안 하잖아.”

한율은 차남석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본래 사생을 찾는 일은 회사 몫이지만, 지난번 숙소 무단침입 및 절도 사건을 겪은 이후 차남석은 사생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진 상태였다. 이렇게 세세하게 신경 쓸 정도로.

“저한텐 걸려온 적 없는데요? 이 번호로 들어온 메시지도 없고.

“블루액션 쪽도 아닌 것 같다고 그랬는데….”

“세현이 형한테 전달받은 거예요?”

“어. 지난주 금요일에 만났는데, 바로 전날인 목요일에 이 번호로 ‘지구토끼랑 정말 친해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대. 안세현만이 아니라 은강도.”

“그거 왠지….”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저랑 형 두고 묻는 말 같은데요?”

“실은 내 생각도 그래. 메시지를 받은 게 우리랑 보컬3에 나간 두 사람이니까. 전에 같이 저녁 먹는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고.”

“그럼 은훤이 형한테도 물어봤어요?”

“아직 그 형한텐 안 물어봤는데. 잠깐만.”

한율은 다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우웅. 곧 차남석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은훤이 형은 이 번호로 메시지도 전화도 받은 적 없대.”

“그래도 세현이 형이랑 은강 형 번호 알고 있는 거 보면 그쪽 사생이지 않을까요? 사생도 번호 자주 바꾸잖아요.”

차남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보다.”

안무 연습은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밤 8시에 끝났다. 한율은 휴게실에서 가볍게 샤워 후, 보컬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다가 대본을 읽었다.

어느덧 밤 10시. 한율은 오래간만에 라이브 방송을 켰다. 내일부터 다시 드라마 촬영에 집중하다 보면 언제 시간이 날지 몰라서.

제목은 언제나처럼 [서한율] 세 글자.

“안녕하세요, 이프림.”

-오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

-그라 알림 ‘서한율’ 뜨자마자 내 눈을 의심함

-오늘 쉬는 날이야??

-[고마워, 사랑해]

-구미호 토끼 등장

-백금발도 파랑머리도 좋지만 역시 흑발이 진리

한율은 모니터에 뜨는 톡을 보다가 미소 지었다.

“네. 오늘은 촬영 쉬는 날이라서 실컷 늦잠 잤다가, 민준 선배님 만나고, 회사로 연습하러 왔어요. 안무 연습도 하고, 노래 연습도 하고, 연기 연습도 하고. 그런데 내일 또 아침 일찍부터 촬영이 있어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

“10분만 하고 갈게요.”

-지금 핸드폰으로 10분 타이머 설정한 거 아니지?ㅋㅋㅋ

-♡♡♡♡♡♡♡♡♡♡

-[한율 당신의 첫사랑은 언제입니까?]

-신발 보여줘, 율아

-몇 시에 일어났어?

-구미호 연기하는 토끼 빨리 보고 싶다ㅜㅜ

“신발을 보여달라고요?”

한율은 엉뚱한 요구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순순히 신발을 벗었다. 어스래빗이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인 국내 신발 브랜드라, 상표는 가리지 않았다.

-진짜 보여줬어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율톢 신발 짱크다

-사이즈 몇이양?

-율톢 ○○위키에 따르면 280 신는다고 나왔던뎅 맞아?

다시 신발을 신으며 대답했다.

“참고로 연습할 때 신는 신발은 아니고, 평소 그냥 편히 신고 다니는 신발이에요. …네, 사이즈 280 맞아요.”

-신발 보여달란 부탁은 들어주지만 라방 더 해달란 부탁은 안 들어주겠지ㅠㅠ

-우리 아빠가 왕발은 도둑발이라 그랬는뎅

-율아 실검 봐봐

-왕발토끼단

-달냥이 회사로 데려온 적 있어?

-율아 실검 봐봐

-실검 뭐야

-천벌 받았네 나쁜놈

-실검에 뭐 떴어요?

“……?”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핸드폰을 집었다. 포털사이트 실검 말미, [A군 학폭가해자]가 올라와 있었다.

[아이돌 A군 과거 학폭 가해자 B씨, 교통사고]

[인기 보이그룹 멤버 A군의 본가에 무단침입을 시도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B씨가 오늘 4일 오후 2시경, 제주시의 한 숙박업소에서 나오다 언덕에서 내려온 차량에 치여 병원에 입원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해당 차량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으며,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있던 것으로 추정…(중략).

한편 A군은 오늘 아침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음….”

우연치곤 공교롭네.

한율은 실검과 기사를 확인하는 제 모습이 고스란히 라이브로 나가고 있단 걸 자각하곤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곤 핸드폰을 덮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언덕이나 경사진 곳에 주차할 땐 사이드 브레이크 채우는 거, 꼭 잊지 마세요.”

-차가 업ㅇ엉

-열네 살이라 운전을 못 해요, 오빠ㅎ

그 시각, 고은훤의 집.

내일은 알바 휴일이기도 하고 한동안 연기 일도 없어, 고은훤은 매트리스에 편히 앉아 노트북을 켰다. 스피커폰으로 이해원과 통화를 하면서.

“야, 그나저나 남석이랑 한율이네, 또 이상한 사생 붙었나 봐.”

-[사생?]

“어. 아까 남석이가 나한테 톡으로 웬 번호 하나를 보내더라고. 혹시 이 번호로 이상한 전화나 메시지 받은 거 없냐고. 그래서 확인해보고, 없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사생 번호 같아서 확인차 물어봤다고 하더라.”

하아. 이해원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 같은 일만 안 생기면 다행일 텐데.]

“그러게. 넌? 괜찮냐?”

-[나야 뭐…. 아, 전에 이상한 문자 하나 받기는 했는데.]

“이상한 문자?”

-[어. 사생은 아니고… 잘못 보낸 듯한 그런 느낌? 그런데 내용이 워낙 인상 깊어서 생각난다.]

달칵달칵. 고은훤은 가입된 배우 지망생 카페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디션 정보 게시판을 클릭.

“무슨 내용이었는데?”

이해원이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그○트에 입학할 생각 없어요?]

“인상 깊을 만하네. 답장은 했냐?”

-[누군지 알고, 또 뭐라고 답장을 해. 그냥 수신 차단하고 말았지.]

큭. 고은훤은 가볍게 웃으며 무심코 물었다.

“설마 보낸 사람 뒷번호, 55는 아니지?”

-[…….]

잠시 침묵.

“여보세요? 이해원?”

잠깐 그 메시지를 다시 살펴봤는지, 이해원이 뒤늦게 대답했다.

-[뒷번호 55…. 맞는데?]

멈칫. 도전할 만한 오디션 게시물을 스크랩하던 고은훤은 동작을 멈췄다.

“…뭐?”

어떻게 그래

5일 아침. 한율은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유명한 세트장에 도착했다. 드라마 <장인> 특별출연 촬영 이후 두 번째였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느 때처럼 스태프들을 비롯해 눈이 마주치는 배우들에게 밝고 예의 바르게 인사.

오 PD가 기특하단 얼굴로 웃었다.

“오늘도 일찍 왔네요, 한율 씨?”

“사극은 분장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래서 더 빨리 오려고, 매니저 형 닦달했어요.”

“하하하.”

한율의 농담 같은 말에 조유찬도 구김살 없이 웃자, PD와 주변 스태프들도 덩달아 웃었다.

“그럼 얼른 준비하고 나올게요.”

“아.”

“……?”

그 순간 오 PD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벌려,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조연출이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다른 배우도 있고, 준비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니까 천천히, 느긋하게 하세요. 아침은 먹었어요?”

“네, 간단히 먹고 왔어요.”

스태프들 분위기로 봐선 딱히 준비에 차질이 생긴 것 같진 않은데. 그러나 한율은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분장차로 향했다.

이번 복식은 <장인>을 촬영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을 홀리는 구미호란 설정에 맞춰 옷 색과 장신구, 메이크업은 조금 더 화려했다.

“감사합니다.”

분장을 마친 한율은 스태프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차에서 내려왔다. 조유찬이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오늘 강정현 선생님을 실물로 뵙게 되는구나. 진짜 기대된다.”

오늘 촬영할 내용은 현미나가 맡은 ‘민해솔’의 전생이자, 두 구미호의 과거 이야기 중 일부. 과거 배경에만 등장하는 중요한 역할에도 쟁쟁한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는데, 강정현도 그중 한 명이었다.

“형, 강정현 선생님 팬이었어요?”

“지금 내 나이 또래는 한 번쯤 강정현 선생님이 진짜 우리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꿈꿨을걸? 지금도 굉장히 고우시지만, 선생님 리즈 시절엔 정말 장난 아니었거든. 연기 내공도 어마어마하시잖아.”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볼 때마다 연기실력이 소름 돋을 정도로 뛰어나기는 했다. 30여 년 전 데뷔한 이후 찍은 영화는 수십 편, 시청률 1위를 찍은 주말 드라마 역시 다섯 손가락이 넘어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명배우이자 대배우.

<서울 구미호>에서는 ‘민해솔’ 전생인 ‘민해진’의 모친으로 나올 예정이었다.

조유찬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뵙고 싶다.”

그러나 조유찬의 바람은 2시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선배님, 이거 할 줄 아세요?”

대기실에 있기 답답해서 나온 바깥. 대청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던 아역 배우가 한율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실뜨기로 만든 무언가의 형태였다.

“아니, 한 번도 안 해봐서 잘 모르는데. 가르쳐줄 수 있어?”

“네!”

‘민해진’의 어린 시절 역을 맡은 아역 배우는 신이 나서 한율에게 실뜨기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한율은 아역 배우와 마주 보고 앉아 함께 실을 가지고 놀아주었다.

“…….”

그 옆에선 조유찬이 다른 스태프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용히,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아역 배우의 모친은 슬쩍 주변을 살피곤 흐뭇한 미소를 유지했다.

아무리 높은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아역 배우라 하더라도, 대배우인 강정현이 2시간 넘게 지각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건 언감생심이므로.

어쩌다 주연을 맡아 인기가 급상승한 배우도 더 강한 영향력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 일감이 뚝 끊길 수 있는 부조리한 바닥이라 조심, 또 조심하는 듯했다.

“짠! 이렇게 하면 나비가 돼요!”

“와아, 정말이네? 멋지다.”

“헤헷.”

한율 역시 이 바닥에서 대접 좀 받는 중견 배우들의 나쁜 습성을 익히 들어왔다. 주연 같은 경우엔 촬영 시간보다 한두 시간 늦게 도착하는 게 기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리고 이건, 이 바닥에 자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과시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했다.

설령, 본인이 해당 작품의 주연이 아닐지라도.

“아무리 상대가 방송국 높은 분의 아들이자 인기 아이돌이라도, 자신에겐 그저 새파란 후배일 뿐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 거지.”

다시 30여 분 후.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온 이제설이 한율에게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흔히 후배들 기를 꺾어놓는다고 하지. 네가 지금 쑥쑥 호가를 달리곤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건방 떨지 마라, 아가야. 그래봤자 너보다 태산 같은 선배님들이 많단다. 대충 이런 뜻?”

한율은 그와 함께 커피차에서 멀어지며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에 비하면 새파란 핏덩어리긴 하죠. 그래도 두 시간 지각은 너무한 거 아닌가요.”

30분 전, 강정현은 2시간을 지각하고도 차가 밀려서 늦었단 변명만 던지곤 분장차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는 중.

“분장 시간까지 생각하면 본인 한 사람 때문에 수십 명이 3시간 가까이 허비하는 셈인데.”

차라리 처음부터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했다면, 스태프들이 조금 고생할지언정 다른 씬 촬영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정현 측은 ‘금방 도착한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많은 인력의 시간을 빼앗았다.

‘혹시 아침에 PD가 머뭇거렸던 게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건가.’

조연출은 대놓고 힌트를 줬던 거고.

“그래도 미나가 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아마 미나가 있었다면 바로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라면서 항의하다가 선생님이랑 대판 싸웠을걸?”

“혹시 미나 선배님이 없어서 마음 놓고 늦으신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고.”

“한율아, 남석이한테서 톡 온 것 같은데?”

그때 조유찬이 다가와 맡겨놨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한율은 지문 인식으로 잠긴 걸 풀고 나서 톡을 확인했다. 이제설은 한율의 핸드폰에 시선을 던지지 않고 조유찬에게 말을 걸었다.

“형,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네? 그건 갑자기 왜….”

“괜찮으시면 좋은 분 소개해드리려고요.”

“네?!”

그러나 한율의 귀에는 조유찬의 기쁨 섞인 놀란 목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너한테 물어본 번호,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사생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진짜 이상하다.]

-[은훤이 형한테 들었는데, 지난달에 이해원한테 같은 번호로 ‘호그○트에 입학할 생각 없어요?’라는 문자가 온 적 있단다.]

-[특정 아이돌 안 가리고 다 쫓아다니는 사생도 있다 듣긴 했는데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ㅋ]

“…….”

한율은 미간을 구겼다.

호그○트는 유명한 소설 원작 영화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사 학교였다. 그런데 그걸 이해원에게 보낸 뒷번호 ‘55’가, 하필이면 한율과 함께 <보컬리스트 시즌3>에 출연했던 안세현과 은강에게 ‘지구토끼랑 정말 친해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따로 놓고 보면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지만, 만약 내 정체를 아는 자가 보낸 거라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진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으로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돌의 핸드폰 번호야 마음만 먹으면,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거고.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흠칫. 그 순간 한율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우연…?’

최근 들어 무심코, 스치듯이 자주 떠올렸던 단어.

얼마 전 길우성에게 벌어진 사건. 사람들은 길우성의 집 근처를 서성이던 사생과 양상원이 우연히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사생이 전기 충격기를 갖고 있었던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바로 어제 뜬 기사를 봤을 때도, 한율은 ‘우연치곤 공교롭다’라며 넘겼었다.

“형, 혹시 길우성 사생 찾았어요?”

이제설의 소개팅 제안에 싱글벙글 웃음꽃을 피우던 조유찬이 화들짝 놀라며 정색했다.

“사생? 무슨 사생!”

“양상원 잡은 사람이요.”

“아….”

조유찬이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못 찾았어. 경찰들이 CCTV랑 블랙박스 토대로 역추적은 해본 것 같은데… 듣기론 도중에 감쪽같이 사라졌다나? 우리로선 아쉽지. 그 사람이 목격자로 나서주면, 다시 그 학폭 가해자를 경찰 앞에 데려다 앉힐 수 있을 테니까.”

한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리 길우성의 본가가 CCTV가 몇 없는 외진 동네에 있다손 쳐도, 이 또한 과연 쉬운 일인가?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의혹.

“형, 저 잠깐 차에서 통화 좀….”

그때 멀리서 조연출이 외쳤다.

“한율 씨, 촬영 리허설 들어갈게요!”

조연출 뒤에는 막 분장을 마치고 나온 강정현이 서 있었다.

한율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다시 핸드폰을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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