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427)

* * *

물에 풀어놓은 잉크처럼 시커멓고 거대한 무언가가 일렁거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도, 그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남자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 남자가 친 결계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뭐 하고 계세요?』

그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지키고 있어.』

『뭘요?』

담담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내 고향.』

그 순간이었다.

쿵!

“…허억.”

책상을 치는 충격에 놀라 계나리는 벌떡 잠에서 깼다. 근처에서 낄낄거리며 장난치던 아이들이 손을 가볍게 들었다.

“아, 미안.”

“야, 넌 뭔 침을 그렇게 흘리면서 자냐? 더럽게.”

스읍. 계나리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는 대신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에이씨, 한창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깨워.”

“너희 오빠 꿈이라도 꿨냐? 큭큭.”

“미쳤냐? 집에서 보는 것도 지긋지긋….”

“그 오빠 말고, 어스래빗.”

계나리가 어스래빗의 팬이란 건 반 아이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자유 주제로 개인 PPT 발표를 할 때, 계나리가 ‘아이돌 입덕 포인트 분석’ 모델로 어스래빗을 가져온 까닭이었다. 거기다 PPT를 어찌나 세련되게 잘 만들었는지, 담당 과목 교사는 아주 잘 만든 PPT 예시로 수업 중에 사용하기도 했다.

“흐.”

계나리가 아직 덜 풀린 눈으로 웃었다.

“티 나냐.”

“어.”

“정작 네 오빤 지금 네 꼬락서니를 보면 도망갈 것 같지만.”

“흐흐.”

계나리는 치렁치렁 내려온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정리하려다, 손등 냄새를 킁킁 맡았다.

“…으.”

“본인 침 냄새 맡고 질색하는 계나리 씨.”

“나 화장실 간다.”

“화장실 가는데 노트북은 왜 들고 가?”

“굳이 이유를 들어야겠냐?”

계나리가 능글맞게 웃자 이번엔 친구들이 질색했다.

“으. 닥치고 빨리 갔다 와. 3분 남았다.”

그러나 계나리는 화장실이 아닌,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 끝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핸드폰 핫스팟으로 인터넷을 연결,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누군가의 핸드폰 화면이 떴다.

‘아…. 생각보다 빨리 정보가 공유됐네. 오빠라면 이 정도만 가지고도 충분히 의심하고 경계할 텐데….’

계나리는 프로그램 창을 닫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손지은한테 보낸 것처럼 다른 국가 번호로 우회하든, 아예 다른 번호를 사용했어야 했나? 에휴…. 그놈의 조급함 때문에.’

여유를 갖자, 조급해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제 마음을 다독거려봐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2년도 안 남았는걸.’

현실의 서한율은 전혀 모르는, 혼자만 아는 미래.

그는 계나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나라면 네 능력, 네 존재를 아는 순간 어떡해서든 너를 찾아 죽일 거야. 그러니 설령 적절한 시기로 돌아간다 해도, 넌 네 안위만 생각해.』

‘어떻게 그래요, 오빠….’

타악. 계나리는 노트북을 덮고 무릎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떻게 오빠 혼자 그렇게….’

훌쩍.

‘게이트 앞을 쓸쓸히 지키게 둬….’

없는 번호입니다

한율은 하루도 쉬지 않고 드라마 촬영에 임했다. 한 치의 실수도, NG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매번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열심히.

물론 드라마 촬영이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법한 어려운 씬을 빨리 끝내는 등 노력한 결과, 한율은 열흘 만에 이틀간의 휴일을 얻게 되었다.

“열흘 동안 정말 고생했다.”

“형도 고생 많았어요. 괜히 저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서울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더 좋은 컨디션을 위해 열흘 동안 촬영장 근처 숙소에 머물렀었다.

“괜찮아, 출장 중일 땐 청소 당번이 면제거든. 잠도 더 푹 잘 수 있었고. 아무튼, 내일 조심히 잘 다녀와.”

“네.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한율은 이틀 연속 휴일이 생기면 제주에 바람 쐬러 가고 싶다고, 미리 회사에 말한 상태였다. 그리고 어제, 매니저 윤승우에게 부탁해 차를 제주행 탁송 서비스 업체에 맡겼다.

아직 데뷔 3년 차.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돌이라 회사 입장에선 여러 가지 걱정과 이유로 반대할 법하지만, 오 팀장은 순순히 허락해주었다.

『한율이 너니까 혼자 가는 거 허락하는 거야.』

“소개팅,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조유찬이 머쓱하게 웃었다.

“응. 그럼 들어가서 쉬어.”

차에서 내린 한율은 조유찬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동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띵.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아파트 주민이 나와, 미소 띤 얼굴로 인사하며 지나쳤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스륵.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한율은 웃음기를 거뒀다.

“…….”

열흘 전.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최은후 명의의 핸드폰을 사용, 뒷번호 ‘55’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음성 안내.

한율은 ‘55’가 왜 세 사람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그리고 이 세 사람에게만 메시지를 보냈는가에 대해 온갖 가정을 세워 추측해보았다. 하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양상원에게선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그나마 현재 ‘55’로 추정되는 인물과 가까이서 접촉한 상대. 한율은 커뮤에 올라왔던 양상원 관련 글을 떠올렸다.

[ㅇㅅㅇ 면상]

[ㅇㅅㅇ 퇴원]

[ㅇㅅㅇ 사채 쓴 듯?]

[ㅇㅅㅇ 과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함]

[ㅇㅅㅇ 전기통닭구이범 진짜 누구임?]

[ㅇㅅㅇ 초성 짜증나네ㅅㅂ 귀여워 보이잖아]

그곳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양상원은 이틀 전 조용히 병원에서 퇴원, 부모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폭 사채업자로 추정되는 남자들에게 위협당하는 모습도 포착되었다고.

‘목과 다리를 깁스한 상태니, 내일도 얌전히 집에 있겠지.’

있어야 한다.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뒷번호 ‘55’를 의심하게 된 순간, 한율이 느낀 건 불쾌감이었다. 내 정체를 아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불쾌감.

너튜브에 [어스래빗 서한율, 미스테리한 그의 정체! -그는 정말 파랑 요정인가?!]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와는 결이 달랐다. 그건 우연히 포착된 걸 장난처럼 짜 맞춘 것에 불과했으니.

‘‘55’와 전기 충격기가 동일 인물이고, 길우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어서 지켰던 거라면… 그 중요성은 어떻게 알았을까.’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시간 관련 능력을 지닌 각성자란 가정.

미래의 자신은 필시 길우성이 능력을 각성하지 못하도록 게이트 근처에 얼씬조차 못 하게 했을 터다. 그래도 그 사실을 알아냈다는 건….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거겠지.’

그래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있다.

본래 세상에 있어 길우성은 재앙의 단초. 그러나 지구에 있어선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구원자다.

‘그러니 ‘55’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당장은 길우성이 위험하지 않도록 도와주겠지만, 추후 내 일엔 방해가 될 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찾아 없애는 게 좋을 터.

‘그나저나….’

지금 한 가정이 맞는다면, 의문 하나가 또 생긴다.

왜 양상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을까.

‘내가 양상원을 통해 자신을 추적할 수 있단 걸 충분히 예상했을 텐데.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건가? 하지만 만약 ‘55’와 ‘전기 충격기’가 별개라면….‘

딩동. 엘리베이터가 21층에 도착했다. 한율은 한숨을 쉬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삐릭, 철컥.

…므앍오옭웨옹! 문을 열자마자 왜 이제야 왔냐는 듯 항의하며 튀어나오는 달냥. 소파에 늘어진 채 TV를 보던 박가람이 손을 쭉 뻗으며 반겼다.

“와아, 서한율이! 이번엔 진짜 오랜만이다?”

“왔어, 한율아?”

“왔냐. 수고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 거실엔 이건우와 차남석도 나와 TV를 보고 있었다. 철컥, 삐리릭. 뒤로 문이 닫히며 저절로 잠겼다.

한율은 달냥을 안아 들었다.

“네, 다들 오랜만이네요. 형은 정글 잘 갔다 왔어요?”

이건우와는 지난주 그가 귀국했을 때 단톡방으로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20여 일 만이었다.

“말도 마. 이 자식의 저주가 뒤늦게 닿았는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내식 먹다가 라미네이트가 떨어져선…. 하아….”

“피부도 조금 탄 것 같네요. 그런데….”

한율은 소파 옆에 세워진 길우성의 캐리어를 발견했다.

“이건 왜 여기에 있어요?”

“내일 우성이랑 나, 같이 제주도 내려가거든.”

“왜요?”

“우성이네 새로 이사한 집 보러. 마침 내일 스페셜 무대 연습도 없겠다, 우성이 혼자 보내기엔 조금 그래서 겸사겸사.”

보아하니 아직 한율도 제주에 간다는 걸 못 들은 모양. 그러나 한율은 ‘나도 내일 내려간다’라고 말하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럼 전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오늘도 드라마 촬영하느라 수고했다.”

“잘 자랑.”

“쉬어.”

한율은 달냥을 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잘 된 건가? 모르겠네.’

만약 ‘55’가 길우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내일도 경호원 없이 돌아다니는 길우성 주변에 나타나지 않을까. 양상원 말고도 길우성에게 앙심을 품은 이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말이다.

‘양상원 때문에 길우성 신변이 이상이 생길 거란 걸 알고 저지했다면… 지금 흐르는 시간은 그자에겐 미지의 영역일 테니.’

꾹.

“……?”

그때 달냥이 뭘 그렇게 생각하냐는 듯 앞발로 한율의 뺨을 눌렀다. 한율은 달냥을 쓰다듬어주다 침대에 내려놓았다.

“달냥. 너도 내일 같이 갈래?”

므앙?

다음 날. 한율은 홀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고객님. 즐거운 여행 되세요.”

차량 탁송 서비스 업체 직원과 인사를 나눈 뒤, 차량 외부와 내부에 이상이 없는지 가볍게 살피곤 운전석에 올라탔다.

‘돈이 조금 더 들기는 했지만, 내 차니까 편하기는 하네.’

처음엔 전연령렌트카를 빌릴까 했으나,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대여 조건도 까다롭고.

한율은 시동을 켜기 전, 이건우에게 톡을 보냈다.

-[옆에 길우성 없을 때 톡 주세요.]

* * *

‘이 오빠는 왜 또 제주로 내려갔대.’

계나리는 모니터에 뜬 초코톡 메시지와 사진을 살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길우성을 쫓아다니는 사생 스토커의 핸드폰 화면이었다.

‘지금이라도 따라 내려가야 하나…. 으음, 이번엔 누구네 집에서 외박한다고 뻥치지? 지난번에 며칠 결석한 거 들켜서 이번엔 더 꼬치꼬치 세세하게 물어볼 텐데…. 그래도 건우 오빠도 같이 갔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양상원 다리도 깁스한 상태고.’

계나리는 이번엔 <서울 구미호> 조연출의 핸드폰 화면을 띄웠다.

‘한율 오빠도 오늘이랑 내일 촬영 오프인 거 보면…. 그래, 안 가는 게 낫겠다. 오빠라면 분명 ‘전기 충격기범’이 또 우성 오빠 주변에 나타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테니까.’

하아. 계나리는 더 큰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책상에 엎드리며 웅얼거렸다.

“솔직히 다 말하고 싶다…. 난 이런 쪽으론 머리가 안 돌아간단 말이야아…. 으으….”

그러나 ‘현재’의 서한율에게 진심과 진실을 전달하고 신뢰까지 얻을 자신이 없었다. 서한율 본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의 자신이라면 계나리의 능력과 존재를 아는 순간, 어떡해서든 찾아 죽일 거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괴물을 찢어 죽인 것처럼, 나도 그렇게 죽여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혹시 몰라 ‘나 당신과 같은 마법사예요’ 흔적을 남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괜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서웡….”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슥 얼굴을 들이밀며 속닥거렸다.

“뭐가 무서운뎅?”

“엄마, 깜짝야!”

퍽!

“악!”

털썩. 계나리에게 턱을 가격당한 계마루가 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큭… 쓰읍…….”

“…내 방 들어올 때는 노크 좀 하라고 그랬잖아, 바보야.”

“119…. 아니, 112 불러….”

“에휴.”

계나리는 바닥에 뒹굴뒹굴하는 계마루를 잡아 살폈다.

“턱이랑 이빨 다 멀쩡하네, 뭐.”

“폭행죄로 고소할 테다….”

“합의금, 치킨.”

벌떡. 계마루가 언제 엄살을 부렸냐는 듯 일어났다.

“매운 양념이랑 청양 마요. 다리반, 날개반으로 두 박스. 동생이라 이 정도로 봐준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당장 나가.”

“흐힛.”

계마루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방을 나갔다. 계나리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직접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노트북 전원을 제대로 끈 뒤 가방에 넣었다.

‘덩치는 커다래선, 아주 애라니까.’

그래도 게이트가 열리면 철부지 모습을 벗어던지고 두려움에 맞서 가족을 지킬 거라는 걸 잘 알기에, 결코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한동안은 조용히 있자. 마법사 자질을 갖고 있었다던 친한 아이돌이 누군지 찾는 것도.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계나리의 시선이 어스래빗 단체 포스터를 향했다.

‘한율이 오빠가 찍는 <서울 구미호>를 보고 말 테다.’

그날 밤, 제주도.

“…….”

차에 탄 한율은 한동안 계기판을 노려보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엔 조금 전 양상원이 넋을 잃고 지껄인 말만 떠돌았다.

『파란… 귀신 눈깔을 하고선 소리도 없이 슉 다가와서…. 분명히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는데, 도깨비처럼 파란 눈을 하고선… 갑자기 소리 없이 나타나서… 전기 충격기….』

잔뜩 술에 취한 상태라 말에 두서가 없기는 했으나, 상대에 대한 묘사는 일관되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눈에 마력을 돌렸더니, 양상원은 기겁하며 물러났다.

『히익…! 너도 똑같은 귀신 새끼구나!』

‘게이트가 열린 후 각성된 시간 관련 능력으로 과거로 돌아왔다 쳐. 하지만 그래도 그 각성 능력이 유지될 수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한율은 양상원을 친 차량 주인의 말을 떠올렸다.

『일주일 전 검사에선 아무 문제 없던 사이드 브레이크 케이블이 어떻게 갑자기….』

해당 차량이 양상원을 향해 구르기 직전 모습이 찍힌 CCTV에도 아무런 이상 징후는 없었다. 순간 아주 세찬 바람이 불었던 걸 제외하곤.

한율은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분명해. 상대는 나와 같은 마법사야.’

마력 특유의 색이나 바람을 주로 사용하는 것까지 자신과 아주 닮은, 마법사.

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정은, 미래의 자신이 시간 관련 능력 각성자를 제자로 거두었단 것.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주 소수이기는 하나, 길우성이 게이트 내부를 코팅하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나체 상태로 게이트를 건넌 각성자들이 있긴 있었다.

‘내가 있던 세상으로 건너가 마법을 배우고 돌아온 지구인일 가능성도 있어. ‘서한율’이 있는, 지금의 미래에서.’

길우성의 중요성을 정확히 아는 데다, 마법까지.

이해원에게 유명한 영화 시리즈의 마법사 학교 이름을 댔으니, 뒷번호 ‘55’와 전기 충격기범은 동일인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자는 한율에게 있어 단순히 방해 거리가 아닌, 명백한 적.

지구인이라면 응당 길우성이 각성 능력을 사용하길 원할 테니.

한율은 외숙인 최은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전화해 죄송합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조용히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스테파노는 차남석의 세례명입니다

호텔로 돌아온 한율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곤 곤히 잠든 이건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에게 걸었던 수면 마법을 거뒀다.

‘일부러 양상원을 통해 마법사란 흔적을 남긴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뭘까. 내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거지?’

정말 상대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마법사라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마법사 주변엔 특유의 마나 움직임이 포착되므로. 달냥처럼 마나에 예민한 개체에게 들키기도 하고.

‘애초에 내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통제 수준이 뛰어났다면 나부터 먼저 없앴겠지. 어쨌든, 그자는 앞으로도 내가 있는 근처엔 접근조차 안 할 가능성이 커. 바로 들켜서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안 돼….”

“……?”

그때 이건우가 뒤척거리며 잠꼬대했다.

“먹지 마…. 살쪄…….”

한율은 조용히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리했다.

‘55’는 한율에겐 미치지 않는 수준의 마법사. 그리고 한율처럼 길우성을 보호하고자 한다.

‘여전히 이해원과 안세현, 은강 세 사람에게 왜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의문이 남지만, 그건 최은후에게 부탁한 게 돌아오면 그때 다시 생각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