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427)

* * *

‘대답을 피하는 걸 보니, 진짜 뭔 일 있는 건가?’

JE는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놓곤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선 지헌이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무슨 영화인가 확인한 JE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런 영화를 본인 방에서 안 보고 여기에서 보는데.”

“여기 TV가 훨씬 더 크니까? 그리고 저런 영화라니, 로맨스가 어때서. 대리만족엔 이게 최고거든?”

“네, 네.”

“로맨스의 멋짐을 알지도 못하면서. 아직 애라니까.”

애처럼 투덜거리는 걸 보니 살짝 취한 모양. JE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컵에 따랐다. 그리고 지헌 옆에 앉았다.

영화 속에선 두 남녀가 서로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고 있었다. 지헌은 부러움이 담긴 흐뭇한 눈으로 그걸 보는 중.

“형, 요즘 서한율이랑 자주 연락해?”

“한율이? 전에 우성이 사건 있었을 때 빼곤 톡으로만 가끔. 한율인 드라마 촬영으로 바쁘고, 우리도 투어 때문에 시차가 안 맞고 그랬잖아. 그런데 그건 왜?”

“만날 거면 같이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형도 서한율한테 줄 선물 샀잖아.”

“그러잖아도 내일 날 밝으면 톡 보내려고. 자정이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민폐잖아.”

“…….”

민폐 짓을 했던 JE는 살며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아까 통화했는데, 나더러 드라마에 카메오로 나와줄 수 있냐 묻더라.”

지헌이 놀란 눈으로 JE를 바라보더니, 리모컨을 들어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서울 구미호>?”

“어. 그런데 아직 카메오가 필요한지 확정된 건 아니래.”

“잘됐네. 언제?”

“아직 확정 안 됐다니까.”

“그럼 너 그 맥주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냐?”

“아직 확정…. 적당히 좀 하지?”

지헌이 장난이었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JE는 대놓고 한숨을 쉰 후 잔을 든 채 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지헌이 외쳤다.

“너 내일 <뮤직뮤직> 스케줄 있는 거 안 잊었지? 안주는 절대 먹지 마!”

“네, 네.”

* * *

다음 날인 23일 새벽. 경기도에 있는 <서울 구미호> 실내세트장으로 가기 위해 한율은 조유찬의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형.”

“굿모닝. 잘 잤어?”

“네. …형, 혹시 팩 했어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조유찬의 얼굴에서 광이 난다.

조유찬이 머쓱하게 웃었다.

“티 나? 오늘 저녁에 진희 씨랑 만나기로 했거든.”

“소개팅으로 만난 그분이요? 잘됐네요. 입고 나갈 옷은 정했어요?”

오늘은 ‘하양 토끼 까망 토끼’ 크리스마스 스페셜 디지털 싱글을 녹음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촬영도 3시까지만 하기로, 제작진과 한참 전부터 약속한 상태. 조유찬에게도 좋은 기회로 작용한 셈이었다.

“실은 그게 조금 고민인데…. 저녁을 어디에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드레스코드를 맞춰야 하잖아. 그런데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조금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그런 곳에 슈트 입고 가는 건… 좀 과하겠지?”

“네. 좀 부담스러울 것 같네요.”

“그렇지? 으음….”

“제 옷 빌려드릴게요.”

“아냐, 괜찮아. 키랑 체격이 다르잖아.”

“바지는 몰라도 상의는 얼추 맞을 것 같은데요? 일단 한번 입어보고 결정해요.”

“그…럴까? 하하.”

세트장까지는 차로 대략 2시간. 먼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한율은 조유찬과 잡담하다가, 조용히 라디오를 듣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대화가 소강상태가 되어 조용히 라디오를 들을 무렵. 문득 조유찬이 입을 열었다.

“아. 남석인 괜찮아?”

“남석이 형이요? 무슨 일 있어요?”

“응? 아, 한율이 넌 모르는구나.”

조유찬은 에스더즈 보컬 디브가 SNS에 올렸던 사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스캔들을 우려한 오 팀장이 직접 에스더즈 소속사를 방문,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진을 내려달라 부탁한 것도.

“그제야 그쪽에서 오해다, 우연이지만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다 그러면서 해당 게시글을 내려주긴 했는데…. 남석인 많이 착잡했을 거야. 가만히 있다가 열애설에 휩쓸릴 뻔했으니.”

조유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인기가 많아지면 별의별 이슈몰이로 이용된다곤 하지만…. 이건 그 에스더즈 소속사가 문제야. 디브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걸 올렸겠어. 둘이 커플템 착용이다 뭐다 하면서 실검에 뜨면 당장은 둘이 사귀냐 관심받겠지만, 나중엔 본인만 험한 욕 다 먹을 걸 뻔히 알 텐데. 왜? 남석인 데뷔 전부터 해당 피어싱이랑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고, 팬들도 그걸 다 아니까.”

말하면서도 에스더즈 소속사의 행태에 화가 나는지, 조유찬이 미간을 잔뜩 구겼다.

“설령 본인이 그런 사진을 일부러 올렸어도, 회사에서 알았으면 바로 말렸어야지. 어? 정말 애를 위한다면 그런 방식의 마케팅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건데, 참 답답하더라.”

한율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핸드폰에 뜬 기사에 고정한 채.

“그래도 시끄러워지기 전에 내려서 다행이네요.”

[정원그룹 회장 차남 정이장, 정원그룹 건설사 맡나?!]

한편 그 시각, KBC <뮤직뮤직> 걸그룹 대기실.

“거기 팀장이 회사까지 직접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다른 걸그룹과 함께 사용하는 공동 대기실이었지만, 에스더즈 매니저는 아랑곳없이 시끄럽게 통화했다.

“진짜 막, ‘아시잖습니까. 한번 터지고 나면 아무리 오해라고 호소해도, 언제든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무기로 이용될 수 있다는 거. 이건 우리 애뿐만이 아니라 디브 씨를 위해서도 드리는 말씀입니다.’라고 조곤조곤 말하는데, ‘네, 당장 내리겠습니다!’ 이 말 밖에 안 나오더라.”

생각이 없는 건지 일부러 저러는 것인지.

남돌과 열애설로 엮일 뻔한 이야기를 마구 떠든다. 그것도 매니저란 사람이, 다른 아이돌과 엔터 관계자가 있는 곳에서.

에스더즈 멤버들은 이쪽을 힐끗거리는 후배들의 시선에 수치심을 느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매니저는 아랑곳없었다.

“…어. 괜히 어스래빗이 그렇게 잘 된 게 아니더라니까? 진짜 만만한 사람이 아니더라.”

헉. 상대 그룹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에스더즈 멤버들의 시선과 고개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아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로, 우연이었는데 진짜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 스킬도.”

오히려 매니저는 사람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억울한 톤으로 떠들었다.

“아니, 액세서리야 마음에 들면 살 수도 있는 거지, 다른 남돌이 가지고 있던 건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사용권 전세 냈냐고. 협찬이 겹치는 경우도 허다한데. …어. 진짜 말을 교묘하게, 우리 회사가 열애설로 노이즈 마케팅하려는 쓰레기인 것처럼 몰아가더라니까? 하, 어이가 없어선.”

“…….”

“언니….”

결국 참다못한 디브가 대기실을 박차고 나갔지만, 매니저는 다른 에스더즈 멤버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하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쩌겠어. 이 바닥에선 팬덤 크기가 곧 권력인걸.”

‘나까지 기만한 것도 모자라 견디라고 강요할 땐 언제고!’

디브는 목 끝까지 차오른 외침을 울음과 함께 눌러 삼키며 복도를 걸었다. 이 와중에도 울 것 같은 표정을 남에게 보일 순 없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들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처음부터 디브가 차남석과 같은 피어싱인 걸 알고, 그걸 낀 사진을 올린 건 아니었다.

언제 한번 밟아볼 수 있을까. 꿈으로만 그리던 RMMA 측에서 무대 제안이 들어온 다음 날이었다. 대표가 축하 겸 격려의 의미라며 그 피어싱을 선물로 주었다. 매니저는 그 피어싱을 낀 사진을 SNS에다 올리면, 대표님이 선물을 준 보람을 느끼지 않겠냐 넌지시 조언했고.

-[ㄴㅅ이두 같은 피어싱 있는데]

그리고 며칠 안 가 SNS에 달린 댓글. 그 댓글을 보고 나서야 디브는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너 지금 대표님이 일부러 차남석이 가진 거랑 똑같은 걸 선물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와, 대표님 알면 진짜 서운해하시겠다. 그냥 있어. 고작 피어싱 하나 겹칠 수도 있는 거지, 무슨. 그리고 다르게 생각해봐. 당장은 오해한 사람들에게 욕먹을 순 있지만, 나중엔 이런 소소한 해프닝으로 실검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에 고마워할 순간이 올걸? 그러니까 다른 애들을 위해서라도 좀, 어?』

디브의 조심스러운 우려를 들은 매니저는 급기야 화를 내며 윽박질렀다.

『전에 잠깐 어디 인사 좀 다녀오자 그랬을 때, 너만 아프다고 빠진 거 기억 안 나?!』

훌쩍. 당시 느낀 설움이 다시 살아나, 디브는 황급히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 순간,

“엄마얏!”

깜짝! 맞은편에서 들린 작은 비명과 기척에 놀라 우뚝 멈췄다.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디브는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상대는 올해 데뷔 6년 차인 걸그룹, 크리스탈 래빗의 멤버 채아였다.

채아가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쥔 채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응, 괜찮아. 나도 폰 하느라 앞을 제대로 못 봤어, 미안해. 그런데….”

디브의 얼굴을 살피며 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

디브는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다시 울음이 올라와 황급히 도로 닫았다. 그러나 끅끅거리며 억지로 삼키는 소리까진 감추지 못했다.

놀란 채아가 주변을 둘러보곤 디브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곤 크리스탈 래빗이 사용하는 단독 대기실로 이끌었다.

“이리 와, 애기야. 이리 와.”

“…흐윽.”

자신을 감싸는 따뜻한 체온과 목소리. 결국 디브는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

PD와 이야기를 나누고 대기실로 돌아가던 JE는,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나?

“손지은.”

그러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몇 년째 함께 <뮤직뮤직> MC를 맡는 아이허니의 유린이 도끼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톡 좀 그만 씹지?”

“네가 나한테 톡을 왜 보내.”

“스페셜 무대 연습 안 할 거야? 시간 맞춰야지.”

“회사 통해서 연락해.”

방송으로 나가는 사이좋은 모습과 달리,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뮤직뮤직> 스태프들은 유린이 JE의 팔을 주먹으로 가볍게 때려도 그러려니 하며 넘겼다.

“선물도 안 사 오고, 나쁜 놈아.”

“무슨 오해를 사려고.”

JE는 목소리를 낮추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건 네 남친한테 사달라고 해.”

“내가 남친이 어디 있냐?”

“좀 사귀어. 어? 장난처럼 가볍게 놀지만 말고. 너 그러다 나중에 진짜 큰일 난다.”

“뭔 상관. 네가 우리 아빠세요?”

JE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 대놓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됐다. 네 마음대로 살아라.”

유린이 JE에게만 들릴 정도로 구시렁거렸다.

“지가 차 놓곤.”

“…….”

JE는 못 들은 척 [<뮤직뮤직> MC 대기실/JE] 종이가 붙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따라 들어오려는 유린에게 손을 저었다.

“가.”

“…….”

무언가 따로 용건이 있는 걸까. 유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연 볼을 부풀렸다. 그러곤 꾹, JE의 발등을 빠르게 밟고선 몸을 휙 돌렸다.

“…하아.”

JE는 멀어지는 유린의 뒷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팀의 리더, 큰 언니다운 의젓한 모습을 잘만 보이더니, 왜 자신에게만 애같이 구는 건지.

우웅.

그때 지헌으로부터 톡.

-[방금 한율이랑 통화했는데, 오늘 저녁에 녹음 끝나면 시간 괜찮을 것 같대]

-[뭐 먹을까?]

JE는 망설임 없이 답장을 보냈다.

[한우.]

-[ㅇㅇ 가게 예약 내가 함]

검사하는 중

한율이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건 정확히 5시. 홀로 늘어져서 자던 달냥이 부스스한 얼굴로 한율과 조유찬을 반겼다.

므앙. 그러곤 드레스룸까지 따라 들어왔다.

“이렇게 적당히 캐주얼하고 단정한 스타일이 좋을 것 같네요. 이거랑 이 코트도 같이 입어봐요, 형.”

한율은 조유찬이 가지고 있는 검은색 바지와 비슷한 걸 꺼낸 뒤, 어울리는 상의를 꺼내 맞춰보았다. 조유찬이 머뭇거렸다.

“둘 다 비싼 것 같은데….”

“형인데, 빌려주는 옷 가격이 문제겠어요?”

“제가 부담스럽다고요….”

“그렇게 안 비싼 거예요.”

조유찬의 데이트 약속이 6시 20분. 매니저 숙소에 들르려면 더 서둘러야 한다. 한율은 그동안 스타일리스트가 멤버들을 단정하게 꾸며줬을 때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얼추 떠올려 빠르게 옷을 골랐고, 조유찬은 정신없이 휙휙 갈아입어 보다가 엄지를 들었다.

“고마워, 한율아! 나중에 결과 보고할게!”

“네, 형. 저녁 맛있게 먹어요.”

“응. 너도 이따가 지헌 씨랑 JE 씨 만나지?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네.”

옷 몇 벌이 든 종이가방을 든 채 조유찬이 급히 숙소를 나갔다. 한율은 꺼내 놓은 옷을 정리하고 욕실로 들어가려다, 문득 달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달냥.”

므아앙…. 꼭 닫아놓은 옷장 안에서 애처로운 대답이 들려왔다. 한율은 달냥을 꺼내준 뒤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한율의 녹음 시간도 6시. 15명이 한 곡을 부르는 터라 주어진 파트는 아주 짧았다. 그러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터.

‘목 상태도 괜찮고.’

지헌, JE와 만나기로 한 건 8시지만, 혹시 몰라 조금 더 늦을 수 있다고 미리 양해도 구했다.

씻고 나온 한율은 드레스룸에서 적당히 옷을 골라 입었다. 큼지막한 백팩을 꺼내 다른 옷도 챙겼다. 검은색 신발, 모자, 마스크, 장갑까지.

마지막으로 달냥에게 새 장난감을 내어주며 달랬다.

“오빠 오늘 새벽에 들어올 것 같으니까, 얌전히 잘 놀고 있어. 나중에 길우성 검사 잘하고.”

므앙.

잠시 후, WB래빗 엔터테인먼트 녹음실.

“한율아, 어서 와.”

“안녕하세요.”

한율은 엔지니어와 프로듀서, 소파에 앉아있는 유호와 인사를 나눴다.

“다른 멤버들은 녹음 다 끝냈어요?”

“응. 지금 저녁 먹고 연습실에 있을 거야. 우성이랑 건우는 RMMA 스페셜 무대 연습하러 갔고.”

“그럼 제가 마지막인 거예요?”

“아니. 크래에서도 몇 명 아직 안 한 상태. 지금 활동 중이라, 목 컨디션 조절한다고.”

“한율아, 바로 들어갈까? 괜찮아?”

“네. 물 한 모금만 마시고요.”

한율은 생수병을 든 채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시험 삼아 부른 뒤 피드백을 받고, 본격적으로 녹음을 시작. 개인 파트는 고작 한 줄이지만, 음률과 박자, 발성, 톤, 호흡, 앞뒤 파트와의 케미 등등이 곡 분위기와 함께 잘 어우러져야 하는 까닭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십 번 반복해서 불렀다. 다른 이들과 함께 부르는 파트도 마찬가지.

먼저 녹음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반복해서 불렀다.

[OK,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율은 어느새 빈 생수병을 들고 녹음실 부스를 나와, 자신이 부른 부분만 쭉 들었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던 유호가 씩 웃었다.

“편하고 즐겁게 부르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한율은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유호와 함께 나왔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갈 거야?”

“네. 그런데 밖에서 먹으려고요. 지헌 선배님이랑 JE 선배님이 한우 사주신다고 해서.”

“오오. 내일 촬영은 몇 시부터 있는데?”

“오후부터요. 그런데 모레는 밤 촬영이라, 내일은 늦게까지 안무 연습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내일 같이 하자. 나도 요즘 밤낮이 슬슬 뒤바뀌고 있어서, 낮에 연습하기 힘들더라.”

“네.”

“오늘 술 마실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차도 끌고 가는데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도 좀 쐴 생각이라… 귀가가 늦을지도 몰라요.”

“어….”

멈추는 걸음. 한율을 바라보는 유호의 눈에 걱정이 어렸다.

“나는 연기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유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 들어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고민이 생기면 너무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 언제든 형한테 말해. 꼭 연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 회사와 팀, 멤버들에 대한 불만 같은 것도 상관없어. 몇 시간이고 들어줄게.”

가식이 보이지 않는 얼굴.

한율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네. 고마워요, 형.”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스타믹스 지헌, JE와 만난 곳은 테이블이 파티션이나 개별실로 나눠진 한우 전문식당이었다.

“투어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거 축하드려요.”

“고마워. 자, 이거 이탈리아에서 산 네 선물.”

“이것도 받아. 이건 서한율 네 거고, 이 두 개는 이건우랑 길우성한테 전달.”

“감사합니다. 다음엔 제가 맛있는 거 살게요.”

치이익. 달궈진 불판에다 소고기를 올리며 지헌이 손을 내저었다.

“됐어, 동생은 돈 쓰는 거 아니야.”

“그럼 이 한우, 형이 사는 거야?”

“그래, 내가 살게. 다른 애들한텐 더치페이했다고 해라.”

“팀의 동생들은 동생이 아니다?”

“지금 널 내 동생으로 삼아줬잖아. 그걸로 만족해.”

한율은 지헌과 JE가 소소하게 떠드는 동안, 두 사람에게 받은 머플러와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했다. 그러곤 상체를 살며시 틀어, 그들과 고기가 다 들어가도록 셀카를 찍었다. 찰칵.

고기 냄새가 밸 수 있으므로 머플러부터 케이스에 넣었다.

“둘 다 예쁘네요. 잘 쓸게요.”

반사적으로 카메라 안에 들어가 브이를 그리거나 환하게 웃었던 두 사람도 자세를 바로 했다.

“어.”

“역시 선물한 보람을 주는 바른 동생이야.”

“안 그런 동생도 있나 봐?”

“동생은 아니고.”

지헌이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형 놈이 자꾸 천만 원짜리 명품 코트 아니면 선물 안 받겠다고 개소리해.”

“친형이요?”

“어. 남 앞에서 가족 흉보는 거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란 거 아는데, 그놈은 진심 우리 가족 호적에서 내쫓아버리고 싶다. 징글징글해.”

그들은 조금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길우성에게 벌어졌던 사건이나 월드투어 도중 있었던 일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지헌이 잠깐 화장실에 갔을 때, 한율은 넌지시 JE에게 물었다.

“혹시 선배님은 이상한 메시지 같은 거 받은 적 없어요?”

“어떤 메시지?”

“최근에, 저랑 조금 친하다고 알려진 아이돌에게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는 사생이 있어서요. 서한율이랑 정말 친하냐, 호그○트 입학에 관심 없냐… 뭐 이런.”

“…….”

JE는 입에다 넣은 쌈을 한참 동안 우물거리다가, 삼키고 난 뒤에야 대답했다.

“딱히? 나한테도 이상한 메시지 보내는 애들이 원체 한둘이 아니라서,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들어오는 건 눈으로 대충 훑고 바로 지우거나 차단해버리거든. 아직은 바뀐 번호를 알고 연락해오는 애는 없지…만, 아.”

뒤늦게 생각나는 게 있는지, JE가 살며시 눈동자를 굴렸다.

“지난달에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 국제번호로 ‘Do you believe in magic?’ 이렇게 묻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긴 해.”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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