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427)

* * *

이 열릴 공연장.

대기실을 찾은 멤버들은 문에 부착된 종이를 확인했다.

“어? 우리 올해는 단독으로 써?”

2년 전 처음 참석했을 때, 작년 RMMA에서도 어스래빗은 늘 V12와 대기실을 함께 사용했었다. 그러나 올해 대기실 문엔 ‘어스래빗’만 적혀 있다.

“작년에 썼던 대기실이랑 넓이도 비슷한데?”

“오오, 이래서 사람이 성공해야 하는 거구나?”

“자만 금지.”

“넵.”

리허설은 생방송 큐시트 대로 진행되었다. MC들은 시상자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큐카드에 적힌 멘트를 했고, 시상이 이뤄지는 부분도 공란으로 건너뛰었다. 공연할 가수들은 어제처럼 편한 복장이 아닌, 무대의상에다 리허설 조끼를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

어스래빗의 리허설이 모두 끝난 건 오후 2시 즈음. 아직 RMMA가 시작되려면 4시간이나 남았지만, 대기실에는 드라이어기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2019 RMMA in JAPAN> 스페셜 비하인드, <나의 친구를 찾아서>.”

먼저 단장을 마친 한율과 라이언은, RMMA 측에서 받은 셀캠, 분홍색 별 모양의 길쭉한 막대 사탕을 들고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카메라에 대고 설명한 것처럼, 방송 혹은 너튜브를 통해 나갈 RMMA 스페셜 비하인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형이 제일 먼저 찾아가고 싶은, 친한 아이돌 친구는 누구인가요?”

카메라를 보며 생글생글 웃던 라이언이 고개를 기울였다.

“보배?”

“그럼 다시 대기실로 돌아갈까요?”

휙 돌아 다시 대기실로 들어가는 두 사람. 그 모습을 촬영하던 RMMA 측 VJ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졌다. 팬들이 소소하게 웃을 분량 3초를 자연스럽게 뽑아주어서.

이내 다시 나온 두 사람.

“두 번째 친구는요?”

“찬형이요.”

“그럼 원카운트 대기실로, 고고.”

<나의 친구를 찾아서>는 어스래빗만이 아니라 다른 팀도 촬영을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비슷하게 셀캠과 막대사탕을 든 다른 팀과 도중에 마주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원제로의 라일 님, 현강희 님. 어디 가는 길이신가요?”

“네, 저희는 <나의 친구를 찾아서>, 어스래빗 대기실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두 분은 어디 가시는 거죠?”

“저희도 원….”

“원…?”

라일과 현강희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렸다. 라이언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카운트 대기실로 가는 중입니다.”

“아….”

“아….”

두 사람의 안타까운 탄식.

“라이언의 가장 친한 친구부터 만나러 가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럼 한율 선배님께서 찾아가고 싶은 친구는 누구인가요?”

현강희가 막대 사탕을 마이크 삼아 인터뷰하듯 물었다.

고등학교에서 만나 긴장한 얼굴로 말을 버벅거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간 적잖은 경험을 해서 그런지 방송이 참 많이 늘었다.

“제가 지금 배가 고파서요.”

“……?”

“원카운트 대기실과 가까운 곳에 있는 분께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빨리 돌아가서 밥 먹으려고요.”

“아니, 한율 씨 그렇게 안 보였는데.”

라일의 어색하면서도 과장된 리액션.

“이렇게 효율을 따지는 분이었을 줄은…?”

“제가 은근히 인싸라서, 누구랑 가장 친한지 콕 집기가 힘드네요.”

“와. 선배님의 인싸력에 감탄하며, 이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한국 가면 맛있는 거 사줄게.”

“네!”

라이언과 라일이 동시에 한율에게 외쳤다.

“나도!”

“네, 형들도 사드릴게요.”

두 사람과 헤어진 후엔 예정대로 원카운트 대기실을 찾았다. 원카운트 멤버들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라이언 씨, 한율 씨.”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마침 가까이에 나기혁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일부러인지. 라이언이 친근하게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내 친구 찬형 찾아왔는데, 어디 갔어요?”

“찬형인 잠깐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렇구나. 원카운트에선 선배님이 친구 찾으러 가요?”

“네!”

나기혁이 그들의 카메라에 대고 분홍색 별 모양 막대 사탕을 흔들며 씩 웃었다. 라이언도 생글생글 웃었다.

“선배님은 사탕 두 개 필요할 것 같은데.”

흠칫.

“…네?”

“아니에요, 형. 기혁 선배님은 사탕 세 개는 들고 가셔야 해요.”

“응? 둘이 아니라?”

“어….”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율을 바라보는 라이언. 반면, 나기혁은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가 저를 찍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살피더니 아무 말 같은 대답을 지껄였다.

“내가 인기와 인맥이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긴 하지. 하하하.”

한율은 셀캠에다 그런 나기혁의 모습을 담으며 함께 웃었다.

“저는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이 바닥의 숨은 인싸 선배님이십니다.”

잠시 후, <나의 친구를 찾아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어스래빗 대기실. 한율은 RMMA 측 VJ에게 셀캠을 반납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VJ가 나가는 순간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나기혁과 한율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초조한 낯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한율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때,

“하이.”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스타믹스의 JE가 등장. 나기혁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더니, 어스래빗 대기실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놀러 왔다.”

길우성이 두 눈을 크게 뜨며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손지은 씨가 웬일로?!”

“난 놀러 오면 안 되냐?”

“나 형이 선물해준 모자 갖고 왔는데.”

“여기로?”

“아니, 캐리어에. 내일 쓸 거예욥.”

“그래. 어제랑 오늘, 너희 호텔 앞에 사람들 몰리고 장난 아니었다며? 체크아웃은 했어?”

“네, 오늘 아침에 급히 짐 다 뺐어요.”

“잘했네.”

JE가 한율 근처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용맹한테도 카메오 제안했다며?”

한율은 열려있는 문 쪽을 살폈다. JE가 와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나기혁은 보이지 않았다.

“네. PD님이 아이돌 세 명까진 괜찮다고 해서요.”

“걔 나한테 여우는 어떻게 우는지 아냐고 웃으면서 묻더라.”

“‘What Does The Fox Say’?!”

그 순간 박가람이 큰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길우성도 따라 벌떡. 그러곤 함께 촐싹거리며 ‘Ylvis’의 를 떠들썩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Wa pa pa pa pa pa pow!”

“Fraka kaka kaka kaka kow!”

“…….”

“…….”

한편, 나기혁은 속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삼키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스타믹스의 JE가 있으면 뭔가 불편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이상하게 불편했다.

‘라이언은 그렇다 쳐도, 서한율은 분명히 뭔가 아는 눈치였는데. 박세은한테 뭐 들었나? 아니면 다른 애? 저 녀석도 은근히 발이 넓어서….’

그때였다.

슥.

“아, 죄송합니….”

“…….”

좁은 통로. 음료수 상자를 든 누군가와 아슬아슬하게 부딪칠 뻔하여, 나기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상대는 나기혁의 사과를 들은 체 만 체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뭐야, 저 사람?’

나기혁은 모자부터 신발까지 검은색으로 무장한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통로가 좁아 짐을 든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는 게 보통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과를 깨끗하게 무시하니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매니지 관계자는 아닌 것 같고, 공연 업체 측 현지 알바생인….’

멈칫. 나기혁은 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남자를 돌아보았다.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출입증에 부착된 사진이랑 인상이 아주 다른 것 같았는데…?’

음료수 상자를 품에 안고 있어서 제대로 보진 못했다. 하지만 데뷔 전부터 사생 스토커, 극성팬들에게 시달린 아이돌 4년 차.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하면 저절로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별의별 정신이상자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당하는 것 또한 자주 봐 온 탓이었다.

“저기요!”

일본어로도 그를 불렀다.

[거기 검은색 옷 입으신 분, 잠깐만요!]

“…….”

남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모자를 깊게 푹 눌러쓰고 있어서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기혁은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혔다.

[어디 소속인지 여쭤봐도….]

그 순간이었다.

쿵! 탁탁탁! 남자가 돌연 음료수 상자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기혁은 본능적으로 남자를 뒤쫓으며 외쳤다.

“야! …거기 수상한 놈 좀 잡아주세요!”

집 나간 구미호 찾습니다

“……?”

조금 전, 스태프가 들어오면서 닫은 문을 돌아보며 강보배가 일어났다.

“무슨 일 있나? 밖이 좀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앉아.”

JE가 손짓했다.

“느낌 안 좋다. 문 열지 마.”

강보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네.”

다다다.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 그 뒤를 쫓는 다수의 기척이 빠르게 지나갔다.

거기 서, 인마!

“뭐지? 사생이라도 들어왔나?”

“…….”

한율도 문 쪽을 보았다. 오 팀장이 멤버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무슨 일인지 상황 살피고 올 테니, 여러분은 여기에 계세요.”

오 팀장이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 강보배를 말렸던 JE도 이번엔 가만히 있었다.

박가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별일 아니면 좋겠다.”

오 팀장은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대기실로 돌아왔다.

“사생 스토커가 공연 업체 측 알바생의 출입증을 훔쳐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잡아서 경찰에 넘겼다고 하니,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RMMA 시작 몇 분 전.

시상자들의 레드카펫 생중계가 진행되는 동안, 가수들은 무대 근처에 마련된 지정석에 앉았다. 어스래빗은 두 줄로 모여 앉았는데, 뒤쪽에는 아이허니, 왼쪽에는 스타믹스, 오른쪽에는 스카이러너, 앞에는 원제로가 자리했다.

“들었어? 사생이 출입증 훔쳐서 대기실 복도까지 들어왔었다던데.”

“어, 들었어. 간도 크다, 정말.”

“그거 가장 먼저 알아챈 게 원카운트 기혁이라더라. 지나가다가 아주 순간적으로 출입증 사진이랑 얼굴 다른 거 알아차리고 이상해서 불렀는데, 남자가 바로 도망쳤대.”

“오오….”

스카이러너 리더가 들려준 이야기에, 주변 아이돌의 시선이 원카운트의 나기혁을 향했다. 나기혁은 앞에 앉은 아이돌이 저를 향해 엄지를 척 세우자, 씩 웃으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기혁이, 내일이나 모레 즈음에 실검 올라가겠는데?”

“그래도 다친 사람 없어서 다행이다. 만약에 흉기라도 휘둘렀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

오프닝 무대를 맡은 신인 아이돌그룹이 조명이 꺼진 어둑한 무대로 올라갔다. 레드카펫이 생중계되던 대형 전광판에서도 오늘 MC를 맡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정각 6시. <2019 RMMA in JAPAN>이 시작되었다.

* * *

-같은 뮤닷이라고 리디스 출연자들도 챙겨줬네ㅎㅎ

-아이허니 순서 지났나요?

-벌써 2부ㅜㅜ

-비록 오늘 수상 후보엔 없지만, 블루액션, 풀썸, 그레이트7, 하울링 불러줘서 고마워요.

-퍼포먼스 스페셜 무대 시작

-길톢 춤선 진짜 예쁘다

-아직 안 했음

-아이허니 바로 조금 전에 끝남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움직이냐

-용맹이랑 길우성 완전 데칼코마니 수준ㄷㄷㄷ

-이거 다음 누구 나옴?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댄스 퍼포먼스 스페셜 무대가 끝난 직후, 백스테이지.

허억, 허억…. 후우…. 길우성은 무대에선 흐트러지지 않도록 억눌렀던 호흡을 마음껏 내쉬었다. 이는 함께 무대에 섰던 다른 아이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당….”

“우성아, 잠깐 숙여봐.”

길우성은 키가 작은 스타일리스트를 위해 상체를 낮췄다. 스타일리스트가 메이크업이 망가지지 않도록 수건으로 조심조심, 땀을 닦아주었다.

“고마어, 누나. 아, 혀 풀려썽.”

20여 분 후엔 어스래빗 무대를 할 예정이라, 땀만 닦고선 바로 백스테이지를 나섰다.

“이쪽이 지름길이던가?”

“아니, 이쪽일걸?”

가수 대기실 복도는 조용했다. 안에는 여전히 각 팀의 스태프들이 안에 있겠지만, 대부분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RMMA 소리만 희미하게 나왔다.

“여기 가로지르는 게 더 빨라, 얘들아.”

“누나 말이 맞겠지, 뭐.”

그러다 한 대기실 앞을 지날 때였다.

“도망쳤다고?!”

“어. 심지어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던데.”

“미쳤다, 진짜…. 비행기 타고 튀었으면 어떡해?”

“야, 밖에까지 다 들리겠다. 조용히 좀 하자.”

무슨 이야기지? 길우성과 이건우, 스타일리스트는 서로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지만, 노크까지 하며 물어볼 여유는 없었기에 그대로 그 앞을 지나쳤다.

2부 공연 마지막에서 두 번째 순서. 여러 개의 대형 전광판, 중앙 무대 위에 설치된 4면 전광판에 어스래빗 로고가 떴다.

꺄아아악! 어스래빗 포토 현수막과 슬로건, 응원봉 불빛이 물결치며 장관을 이뤘다.

현강희는 그 모습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선배님들 해외에선 정말 인기 많구나.’

이는 RMMA가 그들에게 준 무대 시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2.5곡. 한율이 빠졌다곤 해도, 커버 무대까지 하면 3.5곡이나 되었다. 여기에 댄스 퍼포먼스와 보컬 스페셜 무대까지.

어스래빗 또한 다른 대세 아이돌처럼 해외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그룹이라고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긴. 월드투어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그룹인걸.’

어스래빗을 깎아내리기 바쁜 이들은 서한율과 차남석 덕분이다, 서한율이 가수가 아닌 배우로 활동하며 홍보한 거나 다름없다라며 비아냥거렸지만, 그건 오히려 K-POP 팬들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물론 서한율이 흥미를 유발하게 할 순 있다. ‘얘가 배우가 아니라 아이돌이라고?’ 그런 생각으로 클릭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아이돌그룹의 팬으로 만드는 건 해당 아이돌그룹이 가진 매력과 실력이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돌그룹 중 혼자만 잘나가는 멤버는 많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혼자만 잘나가고 팀은 해체되어 잊히는 경우가 대다수. 그런 바닥이었다.

‘그래도….’

쓸쓸한 겨울나무를 연상시키는 그래픽. 암전되었던 중앙 무대 조명이 천천히 켜지며, 홀로 무릎을 꿇은 채 처연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서한율을 비춘다. 본래라면 엔딩을 장식하는 장면이 시작부터 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전광판에 새카만 흑발과 대조되는 깨끗하고 새하얀 피부, 그리고 은빛이 감도는 푸른색 렌즈를 낀 서한율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선배님 무대 연기를 보고 싶어서 팬이 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속삭이는 듯한 음률 섞인 목소리.

[부서진 나리 조각 a haunting image 삼켜]

모든 걸 잃은 허망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 흘린다.

[네가 없는 숲에서.]

살며시 어두워지는 조명. 이내 다시 밝아지는 무대엔 또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의 실루엣이 새롭게 그려졌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꺄아아악!

-haunting을 RMMA에서 보다니ㅜㅜ 짧게 편곡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다

-누가 서한율 주머니 뒤져봐라 안약 나오나

-와....

-엄마랑 밥 먹다가 순간 둘 다 넋 놓고 봄ㅋ

-서한율 백금발 버전 haunting 레전드라고 생각했는데 흑발 버전도 레전드네 그래 네가 다 가져라 거기 떨어진 내 심장 좀 주워주고

-연기 잘한다는 소린 들었는데 몰입력 쩐다

-중간에 히아신스 표정ㅋㅋㅋㅋㅋ

-어스래빗이 하운팅으로 음방 활동 안 한 이유=무대 연기 어려워서 힘들어요

-다른 아이돌도 입 벌리고 보는 어스래빗 무대

-박다람이 고음 폭발 지렸다

-첫 곡 다음에 시간 되돌리는 암시 주고 자연스럽게 두 번째 곡, 그다음 신나는 곡으로 분위기 바뀌는 거 소름 돋네 왜 점점 현실도피로 미쳐가는 과정 같냐

-솔직히 얘네 잘하긴 함 노래 좋은 것도 많고ㅇㅇ 국내에서 원제로한테 밀린다는 게 이해 안 갈 정도

-유호♡이건우♡박가람♡강보배♡라이언♡차남석♡서한율♡길우성♡어스래빗♡많이 사랑해주세요♡

-땀 흘리는 거 봐ㅜㅜ RMMA는 양심 있으면 진짜 얘네한테 상 줘야 한다

-잘하는 거 인정하는데 왜 굳이 원제로랑 비교함? 원제로가 쟤네처럼 몇 년 동안 같이 연습생 생활하고 데뷔한 게 아닌데? 그리고 굳이 1년 차이 나는 후배랑 비교하는 거 안 쪽팔림?

-무대 뿌서지겠다

-히아신스 멤버 입틀막하면서도 무대에서 계속 눈 못 떼는 거 봐ㅋㅋㅋㅋ ㅈㄴ 귀엽다

연속으로 2.5곡 무대를 마친 어스래빗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숨을 고르다가 3부가 시작되기 전에서야 가수석으로 돌아왔다. 스타믹스와 스카이러너, 원제로 멤버들이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거나 무대 잘 봤다며 인사를 건넸다.

“진짜 수고했다.”

“첫 등장부터 쩔었다, 한율아. 눈물 연기 대박.”

지헌이 쌍 엄지를 척 들었다. 스카이러너의 하신은 한율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선생님, 나중에 시간 되시면 무대 연기 특강 좀 부탁드립니다.”

“너희 선생님께 배우세요.”

“선배님.”

현강희가 뒤를 돌아보며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

“한국 돌아가면 맛있는 거 사준다는 약속 안 잊으셨죠?”

“응. 쉬는 날 연락할게.”

옆에서 변지욱이 끼어들었다.

“나도! 맛있는 거!”

“같이 와.”

“앗싸아!”

그러다 한율은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퍼플아워의 진은수가 앞으로 고개를 푹 숙이곤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

“남석인 보컬 스페셜 무대 준비 중이야?”

한율은 자연스럽게 지헌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네.”

어스래빗이 후보에 오른 부문 중 하나인 ‘댄스 퍼포먼스상’ 시상은, 차남석과 디브의 보컬 스페셜 무대가 끝난 후 진행되었다.

[<2019 RMMA in JAPAN> 댄스 퍼포먼스상, 남자 그룹.]

무릎에 팔꿈치를 세운 채 초조한 얼굴로 시상자를 바라보는 차남석의 얼굴이 화면에 크게 나왔다.

꺄아악!

“……?!”

갑자기 나오는 제 얼굴에 깜짝 놀라 머쓱하게 웃는 차남석. 카메라는 스카이러너와 원카운트, 원제로 멤버들도 차례대로 비췄다.

뜸을 들이던 시상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상자는… 축하합니다, 스카이러너!]

본인들의 팀명이 호명되자, 옆에서 스카이러너 멤버들이 들썩거렸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뼉을 쳤다.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그리고 걸그룹 히아신스의 무대. 이어서 ‘올해의 앨범상’ 발표.

[<2019 RMMA in JAPAN> 올해의 월드 인기 아티스트, 남자.]

[…축하합니다, 원카운트!]

함께 ‘남자그룹상’ 후보에 오른 원카운트가 호명되었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축하한다는 얼굴로 손뼉을 치면서도 ‘설마…?’하는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RMMA는 모두가 인정할 만큼 우월한 성적을 거두지 않고서야, 웬만해선 한 팀에 상 두 개 이상을 몰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참석자 대부분에게 상을 나눠주려, 온갖 상을 만들어 남발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비록 어스래빗은 2년 전 RMMA에서 공연만 하고 아무 상도 받지 못했지만, 설마하니 올해도 그럴까.

[<2019 RMMA in JAPAN> 남자그룹상.]

드디어 ‘남자그룹상’ 시상 시간.

시상자로 나온 배우 장미연의 시선이 가수석을 향했다.

[축하합니다.]

대형 전광판에 어스래빗이 잡혔다.

[어스래빗.]

우와아아아!

<2019 RMMA in JAPAN>은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쯤 되니 조금 무섭다. 우리 너무 승승장구, 잘되는 거 아냐?”

“아주 승승장구는 아니지 않나?”

버스 안. 어제 호텔 정보가 어디에서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 아직 찾지 못해 경계하는 건지, 매니저들은 오늘 묵을 호텔에 대해선 멤버들에게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멤버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스태프도 늘 곁에 있기 때문인 듯했다.

버스는 복잡한 도심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아다니다가 외곽에 있는 커다란 호텔 앞에서 멈췄다.

“우리 정도면 승승장구 맞을걸?”

‘남자그룹상’이 든 상자를 끌어안은 채 길우성이 실실 웃었다.

“흐. 어쨌든 기분 좋다.”

조유찬이 멤버들을 돌아보며 일렀다.

“너희들 이따가 라방하게 되면 호텔 로고처럼 장소 특정할 수 있는 단서 같은 거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 우성이랑 라이언은 내일 아침 한국에 잠깐 들어가야 하니까, 너무 늦게 자면 안 된다.”

“넵!”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라, 그들은 조용히 호텔로 들어갔다. 객실을 함께 사용할 멤버는 버스에서 미리 정한 대로. 한율의 룸메이트는 이건우로, 그는 객실에 짐을 풀자마자 노트북으로 오늘 RMMA 무대 반응을 확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편곡으로 안무 순서까지 바꾼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오늘 RMMA 핫클립 섬네일만 봐도.”

섬네일은 한율이 눈물방울을 뚝 흘리는 모습. 마치 포토샵 보정을 거친 것처럼 아주 잘 나왔다.

-서한율 앞세운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떠비

-타팬인데 섬네일 보고 홀린 듯이 들어옴

-가요계와 나눠 가진 연기 천재돌

-진짜 무슨 세상이고 삶의 의미고 다 잃은 표정

-조명 다시 어두워지기 직전에 서한율 비뚜름하게 씩 웃는 거 본 사람? 완전 소름 끼침ㄷㄷㄷ

ㄴhaunting 자체가 좀 미친? 그런 정신 상태에 놓인 이야기라, 오리지널 무대도 잔잔한 광기 같은 거 담고 있어욤 놀라지 말아욤ㅎ

ㄴ이 댓글 보고 다시 천천히 돌려봄ㄷㄷㄷ

ㄴ저도

-서한율 나랑 결혼하자

-집 나간 구미호 찾습니다... 드라마 촬영하다 놀러 나간 구미호 찾아요...

-오늘 RMMA에 출입증 위조해서 들어갔던 사생 잡혔다가 도망쳤다던데

댓글을 훑던 한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안녕, 계나리야?

[RMMA 어스래빗, 퍼포먼스 맛집돌 등극]

[어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9 RMMA in JAPAN>에서 어스래빗이 떠오르는 퍼포먼스 맛집돌이란 수식어에 걸맞은 무대를 선보였다. 연기천재돌 별명을 지닌 서한율이 몽환적이면서 슬픈 연기를 선보이며 등장…(중략).

어스래빗은 이날 데뷔 2년 만에 ‘남자그룹상’을 수상했으며 드라마 <서울 구미호>를 촬영 중인 서한율을 포함해 한동안 일본에서 휴가를 즐길 예정이다.]

‘휴가?’

계나리는 다른 노트북 화면을 살폈다.

‘아냐, 기사는 훼이크야.’

어스래빗 정보를 팔아먹는 WB래빗 직원과 길우성 사생의 톡창. 그들은 12일, 어스래빗의 호텔 정보가 유출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은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생.

[내가 미쳤다고 호텔 정보를 흘려요? 어제 그 ㄴ들 때문에 사진 제대로 못 찍은 거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데]

어제는 오동식 팀장이 직접 다른 호텔을 찾아 예약한 터라, 어디로 옮겼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의 대화. 14일인 오늘은 길우성과 라이언이 <일일 멘토>란 프로그램 미팅을 위해 잠깐 한국에 들어간다는 내용이 오갔다.

고정 MC와 게스트가 초등학생 신청자의 일일 멘토가 되어 도움을 주는 교육 방송국 프로그램인데, 본래 나오기로 했던 게스트가 급한 사정이 생겨 출연을 못 하게 되자, 급히 길우성과 라이언을 섭외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고.

-[당장 녹화가 다음 주라 오늘 미팅한다네요.]

[몇 시 비행기에요?]

-[오늘 12:30 나리타 출발 15:10 인천 도착]

-[내일은 11:00 인천 13:25 나리타 도착 둘 다 ㄷㅎ]

계나리는 다른 창을 보았다. 정보 유출 직원과 서한율 사생의 톡창이었다.

-[15일 08:55 나리타 출발 11:30 인천 도착 예정]

‘왠지 불안한데….’

타닥. 계나리는 모니터에 여러 장의 사진을 띄웠다.

12일 저녁과 13일 아침 사이. 사생들이 어스래빗이 묵었던 호텔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중 몇 장.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가 찍혀 있었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타닥.

[뱅기값 보냈다. 잘해라]

[우리 인생 망가뜨린 보상 철저하게 받아야지ㅅㅂ]

길우성을 해코지하려 했던 양상원이 누군가와 나눈 대화. 상대는 몇 달 전 길우성에게 사과한 초등학교 동창인, ‘우유팩 사건 패드립 가해자’ 김철영.

그는 12일,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13일, 타인의 출입증으로 훔쳐 RMMA에 들어갔다가 도망친 남자가 김철영이라면…?’

가해자가 어떻게 이렇게 끝까지 쓰레기 짓을 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되진 않지만, 딱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쓰레기들이 이번엔 합심해서 길우성을 노리고 있다는 것.

‘만약 유출된 호텔 정보를 입수하고 거기까지 찾아갔다가, RMMA에도 들어간 거라면….’

지독한 악의와 집념. 그러나 한 번 일본 경찰에 잡혔었으니, 다시 붙잡힐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하지 않을까. 이번엔 WB래빗에서 옮긴 호텔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고.

‘어스래빗이 한동안 일본에 머물 거라고 기사가 떴으니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으, 불안해서 안 되겠어.’

양상원도 더는 김철영과 연락하지 않았지만, 엄연히 범죄를 공모한 건데 개인 핸드폰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나리는 결국 모든 노트북을 끄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머리부터 감자. 그리고 우성이 오빠가 안전하게 귀국하는 걸 보고 와야겠어.’

마침 토요일이라 시간도 여유롭다. 만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서한율도 내일이 되어서야 귀국하고.

계나리는 비장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우성 오빤 내가 지킨다!’

타악. 문이 닫혔다.

그러고 3초 뒤.

스윽. 창 너머에서 새카만 까마귀가 고개를 내밀어 계나리의 방을 살폈다. 그러곤 이내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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