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427)

* * *

KBC <뮤직뮤직 대축제>는 밤 10시가 될 무렵, 전 출연자의 합동 무대로 끝났다. 카메라 불빛과 무대 조명이 꺼질 때까지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던 전 출연자는, 완전히 암전되었던 조명이 다시 밝아진 후에야 차례차례 백스테이지로 빠졌다.

“수고했어, 얘들아. 옷 갈아입어.”

대기실로 돌아오자 매니저들이 캐리어를 열었다.

“눈도 안 그치고, 바람도 점점 세게 부는 게 심상치가 않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잊어버린 물건 없는지 잘 확인하고.”

“네.”

어스래빗 멤버들은 마이크와 인이어부터 전용 케이스에 담은 뒤 옷을 갈아입었다. 회사가 산 무대용 액세서리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스타일리스트에게 넘겼다.

“아까 샵에 갈 때 나 목도리 하고 있었어?”

“아니요. 낮에 리허설로 왔을 때만 했었어요.”

“여기 없으면 안 챙긴 거겠지.”

“가자, 가자.”

잠시 후. 공개홀 건물을 나서려던 어스래빗 멤버들은, 몇 시간 전과 아주 달라진 바깥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레드카펫을 밟을 때만 해도 살랑거리며 내리던 눈이 어느새 세상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 차 왔다. 한 사람씩 줄 서서 조심히 이동하자. 우리랑 떨어지면 안 돼.”

“얘들아, 수고했… 흐악!”

휘잉! 멤버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섞인 바람이 휘몰아쳤다. 펜스와 벨트차단봉을 넘어서 입구까지 몰려와 핸드폰을 들이대던 사람들도 어깨를 움츠렸다.

“지나갈게요! 비켜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차까지 고작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멤버들은 매니저들과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차에 탔다. 조수석에 탄 이건우는 차창을 살짝 내려서 어스래빗 머리띠와 슬로건을 든 팬들에게 외쳤다.

“추워요, 감기 걸려! 빨리 집에 들어가요, 이프림!”

“사랑해, 건우야악!”

다른 멤버들도 창을 통해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기 조심하세요!”

스륵. KBC를 벗어나 도로에 합류하고 나서야 멤버들은 창을 닫았다.

“눈보라 장난 아니다.”

“그래도 도로는 차들이 달려서 그런가, 깨끗하네. 눈이 하나도 안 쌓였어.”

“내일이 걱정이다. 괜찮겠지?”

“기상청에서 폭설은 아니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여기가 강원도도 아니고, 밤새 눈이 이만큼씩 쌓이겠어?”

박가람이 손으로 높이를 가늠하자, 같은 강원도 출신인 강보배가 웃었다.

“서울인데 설마.”

다음 날 아침.

“…….”

“…밤새 서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멤버들은 거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사람과 차가 자주 지나는 길을 제외하곤 눈이 소복이 쌓였다.

“눈은 그쳐서 다행인데, 아직 바람도 세게 불고… 길도 좀 얼었나 봐. 사람들 휘청거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SBC 연말 특집방송 공연이 지붕이 있는 돔구장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었다.

“여기 지붕에 눈….”

“안 쌓였어. 안 무너져.”

“강풍….”

“안 날아가.”

오후 4시. 최종 리허설을 진행하고 난 뒤 샵에서 단장을 받고 다시 돌아온 시각. 멤버들은 과장을 섞어 불안해하는 길우성을 달래며 하얀색 천막으로 된 대기실로 들어갔다.

“어째 아침에 왔을 때보다 좁다. 의상이랑 짐 때문인가?”

“그런 듯?”

“이쪽 바닥엔 전기장판 깔았다, 얘들아. 신발 신고 올라가면 안 돼.”

“네.”

공연은 5시 30분부터 시작이라 아직 한참 남았다. 한율은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형, 저 정수기 있는 곳에 좀 갔다 올게요.”

사실은 샵에서 미리 온수를 받으려고 했지만, 텀블러를 담았던 가방을 차에 두었던 터라 깜빡했다.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던 조유찬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

“네, 오면서 봤어요.”

“아무나 한 명 데리고 같이 가. 혼자 보내려니 불안하다.”

“저 사흘 뒤면 4년 찬데요. 괜찮아요.”

갓 데뷔했을 땐 화장실도 꼭 4명씩 같이 가야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자유로워졌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긴 조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 몇 번 안 와서 헷갈리잖아. 건우야, 바빠?”

쭉쭉 스트레칭하던 이건우가 몸을 바로 했다.

“아뇨, 한가해요.”

“한율이랑 같이 좀 갔다 올래?”

이건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모르니까 핸드폰도 챙기고 가.”

“네에.”

한율은 패딩 주머니에다 핸드폰을 넣고 이건우와 함께 대기실을 나왔다. 마주치는 스태프들이나 다른 아이돌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며, 정수기와 자판기,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작은 휴게공간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테이블 앞에 앉은 스태프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나선 텀블러 뚜껑을 열었다. 이건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물 받으려고 온 거였구나?”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같이 가겠다고 한 거예요?”

“어. 데지 않게 손 조심해. 아니, 형이 해줄게. 줘.”

“괜찮아요.”

텀블러에 온수를 담자 레몬 생강차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한율은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뚜껑을 꽉 닫았다.

“내일은 촬영 몇 시에 가?”

“9시부터 촬영이니까… 6시에는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심심한 대화를 나누며 대기실로 향했다.

“과 동기들한테 들어보면 촬영 시간 지키는 주연배우가 정말 드물다던데, 한율이 네 얘기 들어보면 아닌 것 같아.”

“저도 한번 지각한 적 있어요.”

“언제?”

“길우성 사건 났을 때요.”

“아…. 그때 밤늦게 내려가서 우성이 상태 확인하고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올라왔었지? 그때 생각만 하면 진짜….”

하. 이건우가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것 같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나리의 개입이 없었다면 길우성은 그때 죽었을 테니. 그리고 남은 어스래빗 멤버들 또한, 평범한 아이돌 생활로 쉽게 돌아가지 못했을 터다.

“설마 또 그런 일… 생기진 않겠지?”

“설마 그런 미친놈이 또 있으려고요.”

그러면서 한율은 양상원과 김철영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길우성을 해코지할 마음조차 갖지 못하도록, 한율이 직접 조용히 처리했다.

“응? 둘이 어디 갔다 와?”

출연자 대기실로 사용하는 천막이 쭉 늘어진 곳. 원제로 천막에서 막 나오던 변지욱이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물 좀 뜨러. 지욱이 넌 어디 가?”

“도망?”

“……?”

변지욱이 천막을 한 번 보곤, 한율과 이건우의 팔을 잡더니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실장님이 춥다고 전기장판을 깔아줬거든? 그런데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발 냄새가 엄청 심해서 도망 나왔어. 내 후각과 폐는 소중하니까.”

“냄새난다고 상처받을 법하게 말하거나 티 내진 않았지?”

“당연하지. 안무 연습하느라 그렇게 된 걸 텐데. 아주 자연스럽게, 화장실 간다고 나왔어. 아, 두 사람.”

“……?”

변지욱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JE 선배님이랑 친하지?”

“톡 보면 꼬박꼬박 답장하긴 해.”

“친하구나.”

“그런데 그건 왜?”

“아니…. 어제 <뮤직뮤직 대축제> 대기실 복도에서 JE 선배님이….”

변지욱이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러곤 목소리를 조금 더 낮췄다.

“퍼플아워 은수 누나를 대놓고 혼내서 울렸다던데?”

JE가? 한율과 이건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까칠한 성격이기는 해도 별로 친하지 않은, 그것도 자신보다 6살이나 어린 진은수를 복도에서 혼낼 만한 인물이 아닌 까닭이었다. 진은수도 그렇게 혼날 짓 할 만한 성격도 아니고.

“그럴 리가.”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래. JE 선배님이 복도에 있는 은수 누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대뜸 인상 쓰면서….”

“서한율.”

그때 천막 사이로 원카운트의 나기혁이 불쑥 나왔다. 그는 웃는 낯으로 이건우와 변지욱을 번갈아 보더니 한율에게 말했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할까?”

“무슨 얘기요?”

나기혁은 사람이 없는 구석진 자리로 가고 나서야 용건을 말했다.

“너 루아한테 별말 안 했지? 아니, 너 어디까지 알고 있냐?”

“뭘요?”

“너 전에 RMMA에서 나한테 사탕 3개는 필요하지 않냐고 했었잖아. 그거 진짜 무슨 뜻이었냐고.”

한율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거 그냥 찔러본 거였는데요.”

“…뭐?”

“제가 자주 겪거나 본 건 아니지만, 한번 바람피운 사람은 절대 한 번으로 그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찔러본 거예요.”

“너….”

멍청한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던 나기혁이 씩씩거리며 한걸음, 거리를 좁혀왔다.

그 순간이었다.

그그그응….

“……?”

한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천장을 보았다. 나기혁도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뭐야. 방금 저기에서 난 소리야? 스피커 아니고?”

그극…. 불쾌감을 주는 낮은 소리가 다시 한번, 위에서 희미하게 울렸다.

“지붕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요?”

“아이씨. 태풍 때도 멀쩡했던 게, 하필 오늘 문제 생기는 건 아니겠지?”

한편, 스타믹스 차 안.

움찔. 차에 타자마자 곤히 잠들었던 JE는 무언가가 전신을 오싹하게 훑는 느낌에 놀라 눈을 떴다. 그러곤 벙벙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방금 뭐였지?’

오한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히터 공기와 패딩, 담요의 포근한 느낌이 와닿았다. 어제부터 슬슬 몸살 기운이 돌더니, 그것 때문일까.

그때 지헌이 JE를 돌아보았다.

“딱 맞춰서 일어났네. 다 왔다, 손지은.”

JE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차창을 향했다. SBC 연말 특집방송 공연이 열릴 거대한 돔구장이 어느새 코앞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어둑한 하늘 아래, 눈비가 거센 바람과 함께 휘날린다.

JE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째 느낌이 안 좋은데….”

여기 기분 나빠

“소리? 위에서?”

이건우와 변지욱은 여전히 대기실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율의 물음에 두 사람은 천장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나도.”

나기혁은 찜찜한 얼굴로 다시 천장을 봤다가, 별말 없이 원카운트 대기실로 향했다. 그가 천막 사이로 사라지자 이건우가 물었다.

“나기혁이 왜 불렀던 거야?”

작년과 올해, 이건우와 길우성이 참여했던 RMMA 댄스 퍼포먼스 스페셜 무대엔 나기혁도 함께했었다. 그의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알고 있으니, 한율에게 시비 걸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엿보였다.

“뭔가 오해가 좀 있었나 봐요.”

“무슨 오해?”

한율은 어깨를 으쓱였다.

오후 5시 30분. SBC 연말 특집방송이 시작되었다. 오프닝으론 첫 연말 특집방송부터 지금까지의 히스토리 영상이 흘러나왔다.

장내를 울리는 웅장한 BGM을 듣던 유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향 참….”

이곳 돔구장은 날씨 상관없이 대규모 관객을 동원할 수 있어, 유명한 해외 아티스트나 국내 최정상 아이돌그룹이 종종 콘서트를 여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으니, 음향이 썩 좋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울렸다.

“한율아, 지은이 형한테서 답톡 왔다.”

이건우가 한율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건우와 JE의 톡방.

[은수 씨 혼내서 울렸다던데, 사실이야?]

-[혼내긴 누가 혼내]

-[내가 잘못해서 사과해야 할 상황이야.]

[어린애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ㅡㅡ]

-[몰라도 돼. 내 문제야.]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아무튼.”

이건우가 유호를 힐끗 살피곤 목소리를 낮췄다.

“저 형 귀엔 안 들어가게 조심하는 게 좋겠어. 은근히 은수 씨를 동생처럼 아끼더라고. 1년 넘게 같이 MC를 했으니,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조그맣고, 착하고, 귀엽고.”

흐뭇한 미소.

“…….”

“그렇게 보지 마, 사심 같은 거 없어. 그냥… 은수 씨 보면, 나도 저런 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정도? 한율이 너도 우리 누나처럼 과격하고 폭력적인 사람 밑에 있어 보면, 내 마음 충분히 이해할 거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라이언이 고개를 기울였다.

“누나도 하뉼 같은 동생 갖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내가 어때서! 나도 좋은 동생이거든?”

읏차. 강보배가 생수를 들고 와서 옆에 앉았다. 무대의상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뭐야? 무슨 얘기해?”

“엄마가 시킨 심부름, 나더러 대신 갔다 오라고 발로 찼을 때도 순순히 갔다 오고, 내가 아끼던 게임기 박살 냈을 때도, 축구공 멀리 던져버렸을 때도 복수 같은 거 하지 않고 참았거든?”

“맞을까 봐?”

“어. 나중엔 내 키가 더 크고 힘이 세져도, 꾹꾹, 아주, 잘, 참았다, 이건우. 대견하다.”

자화자찬으로 매듭지은 이건우는 강보배의 손에 들린 생수를 가져갔다.

“그런데 한율아, 뭘 그렇게 보냐.”

톡방을 슥슥 위로 올려보던 한율은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순 심심한 대화뿐이었다.

“형이 보라고 줬잖아요.”

“…네가 내 친동생이었으면, 가끔 참 얄미웠을 것 같아.”

“유감이네요.”

오늘 연말 특집방송은 총 2부로, 어스래빗의 순서는 2부 초반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 각자 핸드폰이나 노트북, 사과패드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천막 바깥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건, 1부 중반 무렵.

“객석에 비 새는 곳이 있대요.”

“지붕에 구멍이라도 난 거예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어디선가 빗물이 들어와서 철골 타고 흘러내리나 봐요. 임시로 거기 관객들 자리 옮기고, 수통 갖다 놓았다고 하더라고.”

“무대 쪽은요? 괜찮아요?”

“그쪽은 괜찮은 것 같아요.”

“여기가 원래, 비 많이 내릴 때마다 작은 누수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한율은 나기혁과 함께 들었던 소리를 떠올렸다. 육중한 무언가가 뒤틀리는 듯한 소음이었다. 조금 신경이 쓰여서 스태프들이나 다른 멤버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들 또한 이건우와 변지욱처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길우성은 질색했다.

『겁주지 맛!』

‘대체 뭐였을까. 나기혁도 함께 들었으니 착각이 아니었을 텐데.’

이윽고 1부가 끝나, 어스래빗 멤버들은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백스테이지에는 2부 첫 순서인 트로트 가수가 서 있었다. 최근 핫한 트로트 열풍을 타고 인기 급상승 중인 ‘욱수’였다.

리허설 때도 보지 못했고, 대기실도 비어 있었기에 그와는 지금이 첫 만남.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8명의 아이돌이 일렬로 서서 인사해서 그럴까. 욱수는 잔뜩 당황해하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트로트 가수 욱! 수~ 라고 합니다!”

목소리가 참 쩌렁쩌렁 큰 사람이었다.

“조금 전에 대기실로 인사드리러 갔었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아…. 제가 다른 행사가 있어서 거기에 갔다 오느라 이제야 막 도착했거든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바쁘시면 좋은 거죠!”

“지난번에 <한방> 나오신 거 재밌게 봤습니다, 선배님.”

“아…! 건우 씨, 맞죠? <한방>에 두 번 나오셨었잖아요! <정글 탐험>도 봤는데, 크으! 몸이랑 힘이 아주 좋더라고요! 여자친구가 참 좋아하겠어요! 하하!”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가요계 선배라 예의상 웃으며 인사를 건넸던 이건우의 입가가 움찔 떨렸다.

“…네?”

“아….”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던 욱수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어스래빗 스태프들의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는 본인의 매니저를 보곤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생각 없이 말을 뱉었네요. 평소에 어르신들하고 주로 성인용 대화를 나누다 보니 좀, 하하하!”

“아뇨, 괜찮습니다. 하하….”

그리고 어색한 웃음 뒤에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으려 할 때, 박가람이 ‘아!’ 하며 차남석을 휙 돌아보았다. 일렬로 섰던 대열이 자연스럽게 흐트러졌다.

“차남석, 너 내일 한가하지?”

“바쁜데요.”

“그랭….”

“남석인 왜?”

“나 오디션 도와달라고 하려고.”

“구두 정말 멋있으시네요. 혹시 수제에요?”

유호가 자신의 구두에 관심을 보이고,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도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이 큰 말실수를 한 건가, 눈치를 살피던 욱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의상에 맞춰서 제작했어요.”

“앗, 밑에 반짝이가.”

곧 욱수가 무대로 올라가며 2부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욱수 다음 순서인 아이허니 멤버들이 뒤늦게 도착, 다급히 마이크와 인이어를 체크하고선 돌출 무대 통로로 이동했다.

욱수의 무대가 끝날 무렵엔 어스래빗 멤버들도 등장 동선에 따라 나뉘었다. 강보배와 이건우는 좌측 리프트, 길우성과 라이언은 우측 리프트. 남은 보컬 멤버들은 중앙 백스테이지에서 대기.

한율은 아이허니의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복잡한 천장 구조물이 색색의 화려한 조명으로 물들고 있었다.

옆에서 박가람도 천장을 보았다.

“왜? 위에 뭐 있어?”

“아뇨, 그냥.”

“안 무너져, 괜찮아.”

한편, 우측 리프트로 이동하던 길우성도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의아한 얼굴로 왼쪽 귀에 꽂았던 인이어도 슬며시 뺐다.

“……?”

“왜 그래, 우성?”

길우성은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가 다시 인이어를 꽂았다. 음악 소리가 방송국 스튜디오보다 더 크게 울린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지붕을 덮은 천이나 철골 구조물도 멀쩡하고.

‘위에서 ‘그드득’거리는 이상한 울림이 들린 것 같았는데.’

여기 음향이 안 좋다더니, 스피커에 잡음이라도 섞였던 걸까. 길우성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잘못 들었나 봐.”

SBC 연말 특집방송은 시작 2시간 30분 만인 8시, 일부 객석의 누수 문제 외엔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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