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저 내일 도쿄 갔다 오는데. 면세점에서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음….”
“요즘 웬만한 건 국내에서도 파니까….”
16일 밤. 한율이 묻자 멤버들이 생각에 잠겼다. 라이언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 그 병아리 모양 빵…은 아니고….”
“만주요? 전에 이프림한테 선물로 나눠줬던 화과자?”
“응, 그거!”
“네, 사 올게요.”
박가람도 손을 들었다.
“서한율, 나도 디저트로 먹을 만한 거.”
“안 돼요, 살쪄요.”
“사람 차별하냐?!”
다음 날 17일 새벽. 한율은 일본 패션 잡지 화보 및 커버 촬영, 인터뷰 스케줄을 위해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도쿄의 촬영장에 도착하고 나서 할 예정이라, 따뜻하게 히터가 켜진 차에서 편하게 잠들었다.
그러다가 익숙한 소리에 문득 눈을 떴다.
꺄아악!
“……?”
팬들이 모인 방송국 앞이나 공항에서 자주 들었던 여러 명의 환호성.
분명히 오늘 스케줄은 공홈에도 기재되지 않아 관계자만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사람이 모인 것 같지?
한율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어나자, 조수석에 앉은 조유찬이 하하 힘없이 웃었다.
“어째 타이밍이 안 좋은 것 같다…. 우리 밴을 보자마자 술렁거리면서 카메라 챙기는 거 보니, 비슷한 시간대에 여기서 출국하는 다른 팀이 있나 봐.”
운전대를 잡은 윤승우도 고개를 기울이며 살폈다.
“V12 팬들이네요. 그럼 주차장으로 갈까요?”
“괜히 착각하게 만들어서 욕먹느니, 차라리 그게 낫겠네요. 한율아, 조금 더 걸어도 괜찮지?”
“네, 짐도 별로 없고.”
한율이 탄 밴이 국제선청사 앞에 멈출 듯하다가 그대로 지나가자, 막 카메라와 핸드폰, 슬로건을 들던 소녀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멀어지는 차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뒤를 휙 돌아보았다.
…꺄아악! 한껏 멀어지는 환호성. 이번엔 정말로 그들이 기다리던 V12의 차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출국장 안에 있는 항공사 라운지.
“어?!”
라운지로 우르르 들어오던 V12 멤버들이 한율을 발견하곤 놀라 우뚝 멈췄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와, 연예인이다…!”
V12 리더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차칵차칵. 라운지까지 따라 들어온 V12 사생 스토커들의 셔터 소리.
“방금 ‘연예인이다’라고 한 사람 나와.”
한율은 커피머신에서 완성된 커피를 꺼내며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커피 드실래요?”
V12는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으로, 단체 광고 촬영을 위해 잠깐 귀국했다가 오늘 다시 출국하는 거라고 했다. 배우 김주원의 동생이자, 뮤닷 <락뮤닷>에서 임승준과 MC로 활약 중인 김찬이 옆에 앉아 알려주었다.
“어스래빗도 이번 주 강원도 K-POP 콘서트 라인업에 있던데. 선배님도 오시는 거죠?”
“아뇨, 전 그날 촬영 스케줄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아, 저 선배님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서울 구미호>에서 선배님이 입고 나오는 옷이랑 시계, 구두 같은 거요. 그거 전부 협찬이에요? 몇몇 브랜드는 협찬이 전혀 안 되는 거라던데.”
“그거 저도 궁금했습니다, 선배님.”
앞에 앉은 다른 V12 멤버도 돌아보며 관심을 표했다.
“특히 그 4천만 원짜리 롤땡땡 시계요.”
한율은 담담히 대답했다. 어차피 드라마제작진과 배우들은 다 아는 사실이므로.
“그 시계는 제 거예요.”
작년 백호영화제에서 상을 탔을 때, 외조부가 축하 선물이라며 보내준 물건이었다.
“히익…!”
“대박.”
“협찬이 안 되는 다른 명품은 제작사가 명품 전문 대여점에서 빌린 거고.”
“선배님 지금 TMI, 방송에서 선배님과의 썰이라고 풀어도 돼요?”
“야, 김찬. 그걸 왜 네가 말해.”
“10초 정도라도 분량 챙겨야지.”
“선배님 팔지 마라?”
“이참에 친해지고 싶습니다, 선배님.”
V12 멤버 중 장난기와 사교성 있는 멤버들만 가까이 앉은 걸까. 순식간에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우웅, 우웅. 한율은 적당히 받아주다, 박가람이 연달아 보내는 톡을 보곤 전화 핑계로 빠져나왔다.
“뭐예요, 형?”
-[무엇이긴. 네가 사 올 심부름 목록이다, 아우야아.]
박가람의 늘어지는 목소리.
-[내가 밤새 인터넷 서핑으로 찾아내엔, 하네다 공항에서 파는 각 지역 특산품 디저트 리스트이니이, 하나도 빠짐없이 사야 한단다아.]
“…….”
-[계산은 확실히, 심부름 값으로 특별히 만 원도 주겠다아.]
뚝. 한율은 전화를 끊었다.
우웅. 금세 박가람이 전화를 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조금 전보다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2만 원!]
한율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심코 들어온 시야.
“…….”
V12 일행 중 가장 뒷자리. 마스크와 후드를 푹 눌러쓰고 혼자 앉은 티모가 카메라를 든 사람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사생보다는 홈마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표정을 보니, 따로 아는 사이인가?’
-[적냐? 3만 원!]
한율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박가람에게 대답했다.
“심부름 값은, 나중에 형이 제 부탁 하나 들어주는 걸로 대신 받을게요.”
-[응!]
일본 도쿄에 도착한 뒤엔 바로 촬영이 진행될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곳에서 담당 에디터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선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차칵차칵차칵.
[현재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구미호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환하게 웃어 주세요!]
[봄바람에 들뜨고 설렌 남자친구 콘셉트 부탁드릴게요!]
연습생 시절에 틈틈이 배운 일본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 한율은 그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바로바로 응했고, 촬영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한율이 너 반 깐 머리도 잘 어울린다. 크, 이 액세서리랑 옷도 그냥 소화해버리네.”
다섯 번째로 갈아입은 옷. 조유찬이 들뜬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자, 옆에 있던 일본인 에디터도 어설픈 한국말로 보탰다.
“크. 분위기 쩔어요, 하뉼!”
화보 및 커버 촬영이 끝난 뒤엔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질문은 모두 사전에 받은 원고 그대로. 초반은 오늘 촬영 중 입었던 스타일에 대한 감상, 피부와 몸 관리 비법 등 대체로 무난했다. 물론 <서울 구미호>와 어스래빗 활동에 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중간부터는 이성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첫사랑은 언제냐, 이상형이 정말 등산 좋아하는 힘 세고 강한 여성이냐, 어떤 연애를 꿈꾸는지 들려달라, 미래의 여자친구가 이러이러한 상황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 나중에 결혼하면 어떤 남편이 되고 싶냐 등등.
잡지가 나오면 일본 팬들은 일단 사고 볼 테니, 한율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뒤 하나씩 대답했다.
잠시 후, 다시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
“오늘 정말 수고했다, 한율아. 갈아입은 옷은 몇 벌 안 되는데, 보는 내가 다 지치더라. 아니, 아무리 네가 연기를 잘해도 그렇지, 일부러 이것저것 다 시켜보는 티가 팍팍 나더라니까? 그나저나 배고프지? 공항 가면 밥부터 먹자.”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물을 위해, 한율은 어제 점심 이후로 물과 커피 외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네.”
한율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일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꺼뒀던 전원을 켜고 몇 초. 우웅, 우웅. 이런저런 앱 알림과 톡, 메시지가 한꺼번에 떴다.
번호가 저장된 이들의 톡부터 살폈다.
길우성의 톡.
-[너 공항에서 V12 만남? 김찬 SNS에 너랑 찍은 사진 올라왔더라ㅋㅋㅋㅋ]
-[(링크)]
-[아 그리고]
-[(사진)]
-[나 면허 필기 합격함ㅋㅋㅋㅋㅋ]
-[합격 선물은 멜론 빵으로 받겠음ㅇㅇ]
박가람의 톡.
-[(이모티콘)]
-[(이모티콘)]
-[(이모티콘)]
이해원의 톡.
-[시간 나면 연락 부탁해ㅎ]
한율은 이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한율아. 촬영 중이야?]
“아뇨. 잠깐 스케줄 때문에 일본에 왔다가, 지금 공항 가는 길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별건 아닌데….]
이해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한율이 네가 나한테 물어봤던 거 기억나? 내가 받았던 조금 이상한 메시지.]
“무슨 메시지요?”
-[그…. ‘호그○트에 입학할 생각 없어요?’]
한율은 시치미를 뚝 떼고 그제야 생각난 척 반응했다.
“아, 네.”
-[그때 그런 이상한 메시지가 또 오면 말해달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나… 그 메시지 보낸 사람이랑 지난주에 만났어.]
실소가 나왔다. 계나리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입단속 시켰을 텐데.
“정말요?”
-[응. 그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랬지만… 한율이 네 말대로 굉장히 이상하고 수상해서.]
이해원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한텐 꼭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
한율은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며 웃었다.
“네. 고마워요, 형. …혹시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돼요?”
주인공이 없어도 이야기는 전개된다
2월 21일 금요일. 서한율을 제외한 어스래빗 멤버들은 내일 공연 스케줄을 위해 미리 강원도로 향했다.
어스래빗이 묵는 호텔.
[어스래빗-자기 전 잠깐 왔성]
<서울 구미호> 7화를 시청한 길우성은 자기 전, 라방을 켰다.
“안녕, 이프림. 어스래빗의 귀여운 막내, 우성이가 왔습니다~. 흐.”
처음 개인 라방을 할 때만 해도 혼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 어색하기도 해서 헤맸었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돌 4년 차. 지금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길우성은 여유롭게 톡을 보면서 이프림과 소통했다.
“지난번에 서한율이 일본에 다녀오면서 디저트 선물을 잔뜩 사 왔거든요. 그걸 좀 생각 없이 막 집어먹었더니 여기 트러블이 올라왔어영. …응. 지금은 많이 가라앉기는 했는데, 혹시 몰라서 패치 붙였어요. 내 얼굴은 소중하니까.”
-암암 우성이 얼굴은 소중하지♡
길우성은 운전면허 필기 합격 소식도 전하며 자랑했다. 오늘 강원도에 도착해 있었던 일도.
“오늘 드디어, 보배 형 집에 가서 보배 형 가족분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고양이들하고도 인사 나눴어요.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보배 형 동생이랑도 만났는데, 정말로 형이랑 웃는 모습이 닮았더라고요.”
-나 보배옵 동생이랑 같은 학굔데, 무표정하게 있을 때도 진짜 보배옵 분위기 잡았을 때랑 똑같아ㅎㅎㅎ
-그 집 고양이 반 사람 반이라던데 진짜야?
-모태 집사 가문을 방문한 소감은?
“가구도 대부분 고양이랑 같이 쓰기 위해 맞춤 제작된 것들이었는데, 그거 거의 보배 형네 부모님이 손수 만드신 거래요. 나중에 시간 여유가 되면, 절 제자로 받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니 벌써 제2의 직업을 설계하다니.. 네가 나보단 낫다ㅜㅜ
-길우성은 민낯도 이쁘지
-부지런한 길톢
-얼마 전에 보배가 SNS에 올린 거 봤는데 진짜(엄지척)
-우성인 누나 있잖아. 여동생 있는 거 보니 어땠어?
-고양이에 진심인 토끼들
올라오는 톡 대부분엔 모두 그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길우성은 미소 띤 얼굴로 톡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이프림, 하이.”
영상 속, 길우성의 뒤로 이건우가 상체를 옆으로 꺾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아잇, 깜짝이야. 벌써 팩 뗐어?”
길우성은 말하면서도 옆으로 비켜주었다. 이건우가 다른 의자를 끌고 와서 나란히 앉았다.
“응. 반짝거리지?”
“생기가 확 살아났네. 그렇다고 평소에 죽어있었다는 얘긴 아니고.”
“무슨 얘기 중이었어? 무슨 얘기 중이었어요, 이프림?”
-건우야 사랑해
-하.. 민낯도 빛나는 우리 아이돌
-보배 집 얘기하고 있었어!
-보배 여동생 만났다는 얘기ㅎ
“아아, 보배 동생분.”
이건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오늘 실제로 보니까 왜 보배가 그렇게 동생을 챙기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동생이 용돈 좀 그만 보내라고 진지하게 잔소리하는데, 그게 뭔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서로 정말 친하고 위하는 느낌?”
-와
-용돈 좀 그만 보내라니! 충격받을만하다
-건우도 누나 잘 챙기잖아ㅎㅎ
-내 동생은 나 월급날만 되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이것저것 뜯어갈 궁리만 하는데
-우성이랑 건우도 누나한테 용돈 줘?
“아뇨, 전 누나한테 용돈 안 줘요. 우성이 넌?”
길우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누나가 안 받겠대. 예전엔 누나가 알바로 번 돈을 쪼개서 나한테 용돈 줬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내가 돈 버니까 보답하려고 했는데, 차라리 엄마랑 아빠한테 더 드리라고 하더라.”
“우리 누나도. 아, 그래도 해외 다녀올 때마다 대신 뭐 사다 달라고 부탁하거든? 그때 선물 겸 보내기는 해.”
“돈은?”
“당연히 안 받지. 뭐 엄청 비싼 걸 사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크으
-용돈만 안 보낼 뿐 잘 챙기네 뭐ㅎㅎㅎ
-이건우 쿨한 플렉스
-다정해
-누나들 진짜 부럽다.. 용돈이고 선물이고 다 떠나서 동생이 어스래빗인 게 제일 부러워ㅜㅜ
라방 주제는 어느새 누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래서인지 톡에는 이런 질문이 많이 올라왔다.
-누나가 있는 멤으로서, 만약에 여동생이 있었다면 멤버 중 누구한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당 질문을 소리 내서 읽은 이건우는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멤버들이랑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단호해
-이건우 사랑한다
길우성도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누나가 저랑 친했던 형이랑 사귀고 있거든요. 그런데 둘이 그렇게 된 뒤로 그 형이랑 조금 거리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전처럼 편하게 대하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랑 내 혈육이랑은, 그런 관계가 안 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우웅.
“우성아, 네 핸드폰 울린다.”
“……?”
길우성이 침대에 둔 핸드폰을 집어서 돌아왔다. 그러곤 카메라에다 핸드폰 화면을 들이댔다. 화면에 뜬 번호를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현우 씨’ㅋㅋㅋ
-라방 보고 있었나 보다
-거리가 생겼다고 하자마자 (구)친했던 형이자 (현)누나의 남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아보겠습니다. …웬일이시죠, 형님? 지금 방송 중입니다.”
-[스피커폰.]
길우성은 의아한 얼굴로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박현우가 방송에 나갈 정도로 크게 외쳤다.
-[사랑해, 처남!]
뚝.
길우성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잠시 방송 사고가 있었습니다.”
-미치겠다ㅋㅋㅋㅋ
-길우성 순간 표정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귀여웡
-그들의 우정엔 아무 이상도 없었다고 한다.
-옆에서 건우 웃겨 죽으려고 햌ㅋㅋㅋㅋㅋ
-나 방금 우성이가 소리 없이 욕하는 거 들은 것 같아
“뭐 봐?”
내일 열리는 강원도 K-POP 콘서트 출연팀 중, 보이그룹 V12가 묵는 호텔 객실. 침대에 걸터앉아 어스래빗 라방을 보던 티모는 핸드폰을 덮었다. 그러나 한쪽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여전히 길우성과 이건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냐, 아무것도.”
리더가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그럼 불 꺼도 되지?”
“어.”
“눈 나빠지니까 폰 적당히 하고. 내일 적어도 10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 알지?”
“어.”
다소 건성인 대답이었지만, 리더는 씩 웃곤 조명을 껐다.
리더가 지켜본 티모는 연습생 시절부터 마음이 여렸다. 그래서 다름 멤버들보다 특히 악의적인 루머와 악플, 팬의 가면을 뒤집어쓴 범죄자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었다.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던 후배를 때린 뒤에도 스스로 얼마나 자책하던지.
그렇게 안 좋은 일을 겪는 동안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카메라 뒤에선 이전처럼 밝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 다시 이전의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아, 리더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리더는 옆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잘 자.”
티모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네. 형도 잘 자요.”
고요해지자 티모의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내 티모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써서 더는 들리지 않았다.
‘뭘 보는 거지?’
리더는 살짝 궁금해졌지만, 조금 전 티모가 핸드폰을 엎었던 걸 떠올리곤 반대로 돌아누웠다.
‘이상한 건 아니겠지.’
티모는 이불 속에서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요즘 뭐 하면서 시간 보내냐고요? 이프림 여러분,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매일 연습하고, 어? 면허 학원도 다니고, 어?]
[너 어제 친구랑 놀러 간다고 나갔었잖아. 한율이가 일본에서 사 온 과자 잔뜩 챙겨서.]
[아, 그건 나가는 김에 우리 00즈 모임에 나눠주라고 해서.]
[00즈 모임? 누구누구 있는데?]
길우성이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나 포함해서 네 명뿐이야. 스카이러너 하신, 그레이트7의 완언. 그리고 나랑 서한율. 그런데 서한율이 요즘 너무 바쁘잖아. 그래서 일단 셋만 모여서 저녁도 먹고 VR 겜방도 가고….]
-나도 00년생인데 어떻게 안 되겠니ㅜㅜ
-우성이 은근 핵인싸
-동갑내기 남돌 모임!!!!!
-다들 순둥순둥 착해서 되게 건전하게 놀 듯ㅎㅎㅎ
-넷 다 모이면 꼭 사진 올려줘8ㅅ8
-우성이가 성격이 좋으니까 주변에도 그런 사람만 모이는구나
-케이팝의 미래 모임 적극 찬성
-3초 만이라도 좋으니 한번 끼어보고 싶다
“…….”
10여 분 후. 티모는 길우성과 이건우의 라방이 종료되고 나서야 이어폰을 빼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