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427)

* * *

“…그렇게 얘기해뒀으니 주의해.”

-[넵!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어요, 오빠!]

“너도 수고했어. 조심히 들어가.”

-[넵!]

한율은 계나리와의 통화를 끊은 뒤, 차에서 내렸다. 삐빅. 차가 제대로 잠긴 걸 확인하고 나서 들어간 곳은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안녕하세요.”

“어, 왔어? 오랜만이다, 한율아.”

2층 사무실의 신인 개발팀. 여전히 턱까지 수염이 빽빽하게 자라서 산적 같은 강무기 팀장이 일어났다. 덥석. 그가 반가운 얼굴로 포옹하더니 한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WB래빗의 자랑이자 대세 배우!”

“과찬이세요.”

“하하! 자, 이쪽으로 와.”

한율은 강 팀장과 회의실로 들어갔다.

“팀장님 살 많이 빠지신 것 같네요.”

“데뷔조 선정이 코 앞이라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 너희들 때도 그랬을걸?”

“그땐 별로 신경 안 쓰셨나 봐요.”

“이 녀석이?”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강 팀장이 들고 온 바인더와 노트북을 한율에게 내밀었다.

“한창 드라마 촬영으로 바쁘고 피곤할 텐데 데뷔조 평가에도 참여해주고. 정말 고맙다, 한율아.”

“아니에요.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다 참여했는데 저만 빠지면 조금 그렇잖아요. 이렇게나마 선배 노릇도 좀 해야죠.”

“하하. 저녁은 먹었어? 아직 안 먹었으면 뭐 맛있는 거 사다 줄까?”

“괜찮아요. 내일 화보 촬영이 있어서.”

“그럼 간단하게 차 한 잔?”

“감사합니다.”

강 팀장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회의실을 나갔다.

바인더에는 WB래빗의 모든 남자 연습생 프로필이, 노트북에는 그들이 WB래빗에 들어왔을 때 찍은 오디션 영상, 최근 3개월간의 월말 평가 영상이 들어있었다.

드림래빗이 데뷔한 지도 1년 4개월. 아직 드림래빗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게 아니라서, 다음 아이돌그룹을 준비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원제로 멤버가 최소 둘이나 들어갈 예정이니, 원제로 해체 이후 텀을 길게 두고 싶지 않은 것일 터다. 이미 임승준과 변지욱에게 투자했던 돈도 모두 회수해 정산되는 상태고.

‘그러고 보니 현강희는 다른 곳으로 가기로 한 건가? 잠잠하네.’

한율은 바인더를 펼쳤다.

그로부터 2시간 후.

한율은 강무기 팀장에게 평가서류를 건넨 뒤 지하로 내려갔다. 복도를 지나가며 A연습실을 지나치듯 살폈는데, 일요일 밤인데도 아직 남아서 연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열심히 하네.’

어스래빗 연습실에는 유호와 강보배, 길우성이 있었다.

“왔어? 오늘은 촬영 일찍 끝났네?”

“네. 그리고 위에서 연습생 평가서도 작성하고 왔어요.”

길우성이 쭉쭉 스트레칭을 하며 웃었다.

“잘하는 애들 많아서 고민됐지?”

“어. 실제로도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번 주 토요일이 데뷔조 선정 직전 마지막 월평이니까, 시간 되면 와. 그나저나 금요일부터 쭉 우리 없으니까 허전하지 않디?”

“딱히? 그런데 달냥이가 심심해 보이더라.”

“저런. 그럴 줄 알고 여기 오기 전에 실컷 놀아줬다.”

강보배가 낮게 웃었다.

“반대로 달냥이가 놀아주는 것 같았는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소. 놀았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 거야?”

어느새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한율은 내일 화보 촬영 스케줄이 잡힌 터라, 한 시간만 가볍게 안무 연습을 하고 퇴근했다. 길우성과 함께.

차에 둘만 있어서 그런지, 길우성은 가는 내내 잘도 떠들었다.

강보배 본가에 있는 어떤 맞춤 가구가 정말 탐나더라, 그 집 첫째 고양이 성격이 서한율 너랑 똑같더라, 목요일에 하신, 완언과 만나서 논 이야기, 들은 이야기, 강원도 K-POP 콘서트에서 티모와 있었던 일까지 모두.

“넌 어떻게 생각하냐? 너도… 여전히 티모랑 거리 두는 게 좋다는 쪽이야? 내 팔 잡으면서 도와달라고 했는데도?”

한율은 단호히 대답했다.

“어. 이 바닥의 친구가 너뿐이니 도와달라는 말부터가 이상하잖아. 몇 년 동안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게 무슨 친구야. 스타믹스 선배님들만 봐도 스케일 엔터가 그리 강압적이거나 폐쇄적인 곳이 아니란 거 잘 알겠던데. 그리고.”

짧게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

“용맹 형이랑 하신, 완언, 남석이 형까지 나서서 말리는 거 보면 감이 안 와? 물론 다수의 말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겠지. 하지만 내가 전에 말했지? 네가 정말 걱정하는 게 티모인지, 아니면 네 불안한 마음인지 차분히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어제 가람이 형이랑 통화했는데….”

점점 힘없이 입을 다물던 길우성이 힐끗거렸다.

“…통화했는데?”

한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리허설 전 인사를 나눴을 땐 조용했던 티모가,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땐 아주 딴 사람처럼 환하게, 잔뜩 들뜬 모습으로 웃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길우성에겐 간절한 얼굴로 도와달라고 해놓고?’

심한 감정 기복. 2018년 RMMA에서 보인 증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 이 얘기를 들려준다면, 길우성 성격상 바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티모를 찾아가고도 남는다.

“나중에, 확실해지면 그때 말할게.”

“너도 남석 씨랑 비슷한 말 하냐. 이러면 나 서운해?”

“서운할 것도 많다.”

“…아, 일본 OTT 드라마 1위 찍은 거 축하한다.”

“어.”

다음 날, 포털사이트 실검 상위권에는 [원제로 현강희], [현강희 WB래빗]이 올라왔다. 현강희가 크레용박스 엔터에서 WB래빗 엔터로 이적, 전속 계약을 맺는다는 기사가 뜬 까닭이었다.

[원제로 현강희, 임승준·변지욱과 진짜 한 식구 된다!]

-해체까지 앞으로 5개월 남으니 슬슬 다들 살 궁리를

-원제로 계약 연장은 완전히 물 건너갔구나!!!! 만세!!!!!!!!

-크레용 존나 소형이라 뒷바라지 진짜 힘들게 해줬을 텐데 뜨니까 바로 버리네ㅋㅋㅋ

ㄴ본문 좀 제대로 읽고 까세요. 크레용박스 대표가 회사 아예 정리할 예정이라, 안 나가겠다는 강희 겨우 설득해서 보내는 거라고 버젓이 적혀있고만. 그리고 정말로 돈이랑 빵빵한 케어 바랐으면, 라일처럼 FJ계열사인 스케일을 선택했겠죠.

-승준이랑 지욱이랑 다시 한 그룹되는 거? 완전 찬성

-욱희단 케미 계속 볼 수 있는 건가요?ㅜㅜ

-서한율이 롤모델이라더니 결국엔 떠비로 가는 구나ㅎㅎ

-지금 매니지에서 악플이랑 허위사실 방치하는 거 보면서 속 뒤집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진짜 선택 잘했다 강희야..

-WB래빗 정도면 중소치곤 괜찮지ㅇㅇ

-떠비 특징: 법적 대응이 취미다.

원제로 팬 커뮤는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민솔이도 콩콩에 남아서 솔로 준비 중이라던데

-유지도 다시 워크라이로 돌아가려나?

ㄴ유지는 원래 거기 전속이었으니 당연히 돌아가야죠.

-원제로는 원제로일 때가 대박인데

-RMMA나 연말 무대 때 특별히 다시 뭉쳤으면 좋겠다

-팬들이 그렇게 원제로 계약 연장 바란다고 애타게 우는데도 개무시ㅅㅂ ㅋㅋㅋㅋㅋㅋㅋ

ㄴ모두가 계약 연장을 바라진 않습니다.

ㄴ어정쩡해서 팀에 묻어가던 애들이랑 팬들이 아쉽지ㅋ

실검 1위를 차지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Pick Me! IDOL Ⅱ]였다. 뮤닷에서 자정을 기해, 이번엔 프로젝트 걸그룹을 만드는 티저를 공개한 까닭이었다.

앞서 의 폭발적인 반응, 원제로가 단기간에 거둔 성적을 본 기획사들이 이번엔 너나 할 것 없이 될 만한 연습생들을 죄다 내보냈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졌다.

한 너튜버가 올린 연습생 정보 영상 또한 엄청난 조회수를 올렸다.

“우리 회사에서도 나간 애들 있어요?”

패션 잡지 화보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가는 길. 예고 영상을 보며 한율이 묻자, 조유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리고 거기에서 호랑 보배, 라이언한테 경연곡 만들어줄 수 있냐는 의뢰도 들어왔다?”

“아아.”

어쩐지.

한율은 오늘 아침에 본 광경을 떠올렸다. 유호와 강보배, 라이언이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 이참에 작곡팀 이름을 짓자며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잠시 후 결정된 그들의 팀 이름은,

“‘트레리안 호’.”

“트레리안 호? 단순하지만 잘 지었네. 어쨌든 나중에 방송 시작되면 꼭 투표하고, 응원 영상도 올려야 해. 알았지?”

“네. 그런데 저, 우리 회사 여자 연습생 애들 한 명도 모르는데요.”

마지막으로 마주친 게 몇 달 전 구내식당이었는데, 그것도 멀찍이서 본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하하. 조유찬이 웃픈 얼굴로 웃었다.

“연습생 애들도 한율이 널 실제로 가까이서 보는 게 소원이라더라.”

아직 우리한테는 안 어울려서

“복귀 축하해, 해원아. 고생 많았다.”

28일 금요일. 이해원은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 오늘, MBS <뮤직센터> MC로 복귀했다.

“자, 이건 복귀 축하 선물.”

“고마워요, 형.”

이해원은 순순히 유호가 씌워주는 머리띠를 받았다. 머리띠에는 알록달록한 [무병장수] 글자가 달려있었다.

“그런데 방금 PD님한테 들었는데…. 형, 여기 MC 4월까지만 한다는 거 사실이에요?”

“응. 컴백 이후 투어 기간이 길게 잡혔거든. 컴백 준비도 해야 하고, 이참에 곡 작업에도 더 집중하고 싶어서.”

“네….”

이해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도 모르게 유호를 살폈다. 며칠 전, 서한율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 형이랑 가람이 형도 우리랑 같은 소질을 갖고 있다 들었어요.』

계나리는 이해원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이유가,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라고 했다.

『인간의 힘으론 어쩌지 못하는 큰 재앙이 닥쳐 많은 사람이 죽을 거예요. 고작 바람 좀 다루는 마법일지라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 한 채 당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죠. 본인을 위해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나리 씨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어. 하지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괜찮아, 은수는 해원이 너랑 오랫동안 MC로 있을 거야.”

이해원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미소 지었다.

“네.”

* * *

[어스래빗 차남석 <서울 구미호> OST 참여… 오늘 공개!]

“……?”

드라마 촬영 중 휴식 시간. 한율은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곤 고개를 기울였다. 차남석이 <서울 구미호> OST를 불렀다고?

금시초문이라, 차남석에게 기사 링크를 톡으로 보냈다. [?] 물음표도 함께.

곧 답장이 왔다.

-[말하는 거 깜빡함.]

차남석 성격상 정말 잊어버렸을 리는 없고. 같은 팀 멤버라 좋은 기회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말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한율은 차남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쉬는 시간이야?]

“네. OST 불러줘서 고마워요, 형.”

-[노래도 안 들어보고?]

“형인데, 이상하게 불렀겠어요?”

차남석은 잠시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대답했다.

-[…숟가락 얹게 해줘서 고맙다.]

“저 오늘 늦을 것 같으니까, 달냥이한테 츄르 하나 대신 주세요.”

-[알았어. 수고해라.]

“네.”

<서울 구미호>가 방송된 지도 어느새 한 달. 총 16부작에서 9화로 넘어가며, 이야기도 본격적인 갈등 양상을 띠었다.

1999년 강남 일가족 살인사건과 2017년 강남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을 캐는 장기미제사건팀 민해솔 경장이 3백여 년 전, 민해진의 환생임을 깨달은 ‘형호’.

하지만 9화에서 형호는 곧바로 부정한다. 설령 민해진의 영혼이 윤회를 거쳐 민해솔로 태어났다 해도, 둘은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고.

그러는 와중에도 민해솔과 슬호는 1999년과 2017년에 벌어진 사건이, 한대그룹 그리고 정·재계가 얽힌 거대한 비리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검경의 수사망은 곧바로 해당 사건 근접 인물인 한대 백화점 사장, 최형호의 부친을 향했다.

경찰은 고등학교 영화제작 동아리 <빠밤>이 한창 영화 촬영 중인 2017년 사건 장소에도 들이닥쳤다. 그곳에 여전히 증거가 묻혀 있다는 실마리가 나온 까닭이었다.

[압수수색영장입니다. 학생분들은 지금부터 아무것도 건들지 말고, 모두 그대로 둔 채 나와주십시오.]

[네?! 아, 저 카메라 비싼 건데…!]

[제 가방은 들고나와도 되는 거 아니에요?]

[자자, 소지품은 살펴본 뒤 돌려줄 테니까 일단 퇴장!]

[최형호 군?]

민해솔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형호에게 다가갔다. 앞서 최형호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던 슬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여기,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잘 알죠?]

민해솔이 내민 사진에는 어딘가로 걸어가는 형호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형호는 그녀와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최형호 군이 소유한 폐건물로 들어가는 길목이에요. 블랙박스에 찍힌 걸 어렵게 찾아냈죠.]

민해솔은 1화에서 형호가 죽은 형사의 시신을 발견한 날짜를 읊고선 한 걸음 더 거리를 좁혔다.

[이날 밤, 본인 소유 폐건물에 갔었죠? 그곳에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러게요. 그때 제가 형사님의 시신을 발견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수사도 하루 더 일찍 시작되었을 거고, 유족분들도 그만큼 고인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안타깝네요.]

-크으, 역시 수백 년 산 구미호. 저만한 도발엔 끄떡도 안 하죠?

-원래 형호 성격이 시니컬하고 재벌 3세처럼 뻔뻔해서 그닥 위화감이 안 느껴진다ㅎㅎ

-이 와중에 슬호, 형호가 민해솔한테 무슨 짓 할까 봐 안 그런 척 경계 중.

[참, 그리고 그 건물이요. 다음 주면 무너뜨릴 거예요. 그곳에서 훌륭한 경찰분이 살해당한 건 참 안타깝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의 피가 스며든 건물을 그대로 방치할 순 없어서요.]

[그럼, 여기는요? 형호 군이 한때 삼촌처럼 따랐던 신 부장님의 집은, 다른가 보죠?]

정말 사람을 홀리려 작정한 여우처럼, 형호가 사르르 녹을 듯한 눈웃음을 지었다.

[어떤 대답을 원하세요, 형사님?]

[…….]

-민해솔 순간 눈 흔들렸다가 바로 현타 맞는 거 왤케 실감 나냐ㅋㅋㅋ

-최형호 유죄

-범인 형호 맞음 땅땅

-슬호 놀라서 바로 끼여드네ㅎㅎㅎ

-와 나였어도 흔들렸다

-이 와중에 서한율 딕션 귀에 쏙쏙 박힌다

-민해솔도 극한 직업이네. 옆에선 슬호가 은근히 꼬셔, 강력한 용의자 아들인 미성년자도 대놓고 미남계 써

-????? 뭐임

-....헐

-‘윤회조차 못 하도록 내가 직접 목숨을 거뒀어야 했다.’???

-형호 저거 진짜 사람 헷갈리게 하네

-너 아직도 해진이 그리워하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순간 눈빛이 왜 그렇게 슬퍼ㅜㅜ

9화는 검찰 조사에 응하면서도 무언가를 도모하던 최형호의 아버지, 한대 백화점 사장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며 끝났다.

-이건 또 뭔 일이양ㅜㅜ

-오

-OST!!! 차남석!!!

-어스래빗 차남석이 부른 <서울 구미호> OST - <미로>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D

-차남석 목소리 개좋아ㅠㅠ

-꽃을 단 토끼 의리

-님들 이제 KBC 드라마로 넘어갑시다

-마지막에 이제설 정수기 미니 광고 컷 왤케 웃기지ㅋㅋ 여우도 반할 법한 맑은 물ㅋㅋㅋ

-의리!!!!!!

-오지 마!!!!!!!!

“주연이 같은 팀이니 좋긴 좋다. 요즘 핫한 드라마 OST에 참여도 하고.”

콩콩 엔터테인먼트 안무 연습실. TV로 <서울 구미호>를 시청하던 ACCOM 멤버들이 가볍게 웃었다.

“왜, 노래도 잘 부르잖아. 그런데 서한율 쟨 볼수록 진짜 놀랍다. 연기도 고1 때 연습생으로 들어가면서 처음 배웠다며. 맞지? 형수 형.”

김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한율, 차남석과 같은 WB래빗 엔터에 있었으나, 어스래빗 데뷔조에서 떨어진 뒤 콩콩 엔터로 이적해 ACCOM으로 데뷔했다.

“응. 처음 회사 들어와서 안무 기본 동작 익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다 잘하네.”

“혹시 연락하고 지내?”

“아니. 따로 연락할 정도로 친한 사인 아니었어.”

이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3년 전 보컬3에서 준우승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참 냉정한 바닥이야.”

“우리는 그때 쟤네보다 노래만 잘했던 거지, 지금은….”

그와 함께 <보컬리스트 시즌3>에 나갔던 하승헌은 고개를 저었다.

“최근 서한율 라이브 들어보니까 노래도 많이 늘었던데? 그나저나 형수 형, 어스래빗 리더한테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어?”

“어? 아…. 그거? 뭔가 결과물이 성에 안 차서 미뤄지나 봐. 그리고 걔가 본인 팀 곡 작업에, 같은 회사 후배 곡 작업까지 하느라 아주 바쁘거든.”

그렇구나.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 넘게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다시 연습할 시간이었다.

“…….”

김형수도 일어나며 멤버들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애초에 기대를 안 했다는 건지, 아니면 그의 말을 순순히 믿는 건지. 다들 덤덤했다. 그러자 김형수는 되레 초조해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초반에 쌓은 인지도나 팬덤 크기가 더는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이젠 컴백할 때마다 ‘앨범 성적이 떨어져 이번 활동이 마지막이 되면 어떡하지?’ 현실적인 불안에 휩싸여 멤버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도 여러 번.

몇몇 멤버들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게 보였다.

‘유호도 우리가 안 될 그룹이라, 곡을 넘겨주기 곤란한 건지도 몰라.’

이는 유호를 향한 원망이 아니었다.

자신이었어도, 계속 망돌 선에 머무는 그룹에게 힘들게 작업한 곡을 넘겨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유호가 아무렇게나 만든 쓰레기 곡을 적선하듯 던질 성격도 아니고.

현재 콩콩은 정민솔이 벌어오는 돈으로 굴러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수익을 ACCOM에 투자하지 않고, 정민솔의 차후 솔로 활동을 위해 아끼는 중이었다.

아이돌은 3년만 보면 안다고 했다.

데뷔한 지 3년 안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이후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그리고 ACCOM은 이제 두 달 후면 데뷔한 지 3년이 된다.

‘회사에서도 우릴 거의 포기한 상탠데.’

고작 열흘 먼저 데뷔한 어스래빗은 작년 각 음방에서 1위를 석권하고 올해도 월드투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ACCOM은 1위는커녕 5위 안에도 든 적이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첫 곡부터 쭉 가볼까?”

“넵!”

우웅, …우웅.

“누구 핸드폰 울리는데?”

“형수 형 거 아냐?”

“……?”

이 시간에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김형수는 의아한 얼굴로 사물함 위에 둔 핸드폰을 집었다.

“어?”

그러다 액정에 뜬 [유호] 이름을 보곤 멤버들에게 황급히 손짓했다.

“미안, 잠깐 음악 좀 틀지 말아봐. …어, 호. 웬일이야?”

-[웬일은. 네가 전에 부탁한 곡이 나와서 연락했지. 그런데 좀… 으른섹시 노선인데, 괜찮냐? 아니다, 일단 들어봐.]

김형수는 얼떨떨한 얼굴로 핸드폰을 귓가에서 떼어냈다. 그러곤 멤버들과 같이 듣기 위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에서 음악이 크게 흘러나왔다.

“……!”

그 순간, 김형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ACCOM 멤버들도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

“…….”

가이드 녹음까지 된 곡은 마치 ACCOM 멤버들의 특징과 강점을 샅샅이 조사하고 만든 것처럼, 어느 파트를 누가 불러야 할지 감이 올 정도로 그들과 아주 찰떡이었다. 특히나 킬링 파트는 누가 들어도 김형수의 자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듣자마자 이 생각이 떠올랐다.

노래 좋다.

…뚝. 돌연 음악이 끊겼다.

유호가 웃었다.

-[미리 듣기는 여기까지다. 어떠냐, 김형수. 마음에 드냐?]

슥. 김형수는 황급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유호와는 같은 회사 연습생, 고교 동창이란 이유로 친구로 지내다가, 이젠 그렇게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거리가 생긴 지 오래였다.

아이돌로서도 격차가 컸다. 누가 봐도 대세 아이돌 반열에 오른 어스래빗. 그와 비교해 아직 망돌에 머무는 ACCOM.

그런데 가볍게 무시해도 됐을 그의 부탁을 잊지 않고 들어주었다. 오늘은 <뮤직센터> MC 스케줄도 있던 날이라 피곤할 텐데도, 웃으면서 곡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팬을 제외한 타인의 호의를 받는 게 무척 오래간만이라 그럴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 이 착해빠진 호구 놈아.”

-[뭐, 인마?]

흡. 김형수는 유호에게 들리지 않게끔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눈물을 삼켰다.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고.”

-[고맙긴. 지금 우리 팀이 부르기엔 안 어울려서 떠넘기는 건데. 아무튼 이따가 메일 주소나 보내.]

“어. …고맙다.”

-[오냐.]

통화가 끊겼다.

하. 김형수는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으며 일어났다. 멤버들이 다급한 얼굴로 다가왔다.

“형, 방금 그 곡… 맞지? 전에 형이 호 선배님한테 부탁했다던 곡!”

“뭐 해, 빨리 A&R팀 메일 주소 안 보내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빨리!”

한편, 연습실 밖 복도.

“……?”

보컬 연습실로 향하던 정민솔은 안무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듣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매일 연습도 제대로 안 하고 저렇게 설렁설렁하니 망했지. 하…. 형수 형 따라서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직 우리한테는 안 어울려서

“복귀 축하해, 해원아. 고생 많았다.”

28일 금요일. 이해원은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 오늘, MBS <뮤직센터> MC로 복귀했다.

“자, 이건 복귀 축하 선물.”

“고마워요, 형.”

이해원은 순순히 유호가 씌워주는 머리띠를 받았다. 머리띠에는 알록달록한 [무병장수] 글자가 달려있었다.

“그런데 방금 PD님한테 들었는데…. 형, 여기 MC 4월까지만 한다는 거 사실이에요?”

“응. 컴백 이후 투어 기간이 길게 잡혔거든. 컴백 준비도 해야 하고, 이참에 곡 작업에도 더 집중하고 싶어서.”

“네….”

이해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도 모르게 유호를 살폈다. 며칠 전, 서한율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 형이랑 가람이 형도 우리랑 같은 소질을 갖고 있다 들었어요.』

계나리는 이해원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이유가,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라고 했다.

『인간의 힘으론 어쩌지 못하는 큰 재앙이 닥쳐 많은 사람이 죽을 거예요. 고작 바람 좀 다루는 마법일지라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 한 채 당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죠. 본인을 위해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나리 씨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어. 하지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괜찮아, 은수는 해원이 너랑 오랫동안 MC로 있을 거야.”

이해원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미소 지었다.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