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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래빗 차남석 <서울 구미호> OST 참여… 오늘 공개!]
“……?”
드라마 촬영 중 휴식 시간. 한율은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곤 고개를 기울였다. 차남석이 <서울 구미호> OST를 불렀다고?
금시초문이라, 차남석에게 기사 링크를 톡으로 보냈다. [?] 물음표도 함께.
곧 답장이 왔다.
-[말하는 거 깜빡함.]
차남석 성격상 정말 잊어버렸을 리는 없고. 같은 팀 멤버라 좋은 기회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말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한율은 차남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쉬는 시간이야?]
“네. OST 불러줘서 고마워요, 형.”
-[노래도 안 들어보고?]
“형인데, 이상하게 불렀겠어요?”
차남석은 잠시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대답했다.
-[…숟가락 얹게 해줘서 고맙다.]
“저 오늘 늦을 것 같으니까, 달냥이한테 츄르 하나 대신 주세요.”
-[알았어. 수고해라.]
“네.”
<서울 구미호>가 방송된 지도 어느새 한 달. 총 16부작에서 9화로 넘어가며, 이야기도 본격적인 갈등 양상을 띠었다.
1999년 강남 일가족 살인사건과 2017년 강남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을 캐는 장기미제사건팀 민해솔 경장이 3백여 년 전, 민해진의 환생임을 깨달은 ‘형호’.
하지만 9화에서 형호는 곧바로 부정한다. 설령 민해진의 영혼이 윤회를 거쳐 민해솔로 태어났다 해도, 둘은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고.
그러는 와중에도 민해솔과 슬호는 1999년과 2017년에 벌어진 사건이, 한대그룹 그리고 정·재계가 얽힌 거대한 비리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검경의 수사망은 곧바로 해당 사건 근접 인물인 한대 백화점 사장, 최형호의 부친을 향했다.
경찰은 고등학교 영화제작 동아리 <빠밤>이 한창 영화 촬영 중인 2017년 사건 장소에도 들이닥쳤다. 그곳에 여전히 증거가 묻혀 있다는 실마리가 나온 까닭이었다.
[압수수색영장입니다. 학생분들은 지금부터 아무것도 건들지 말고, 모두 그대로 둔 채 나와주십시오.]
[네?! 아, 저 카메라 비싼 건데…!]
[제 가방은 들고나와도 되는 거 아니에요?]
[자자, 소지품은 살펴본 뒤 돌려줄 테니까 일단 퇴장!]
[최형호 군?]
민해솔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형호에게 다가갔다. 앞서 최형호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던 슬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여기,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잘 알죠?]
민해솔이 내민 사진에는 어딘가로 걸어가는 형호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형호는 그녀와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최형호 군이 소유한 폐건물로 들어가는 길목이에요. 블랙박스에 찍힌 걸 어렵게 찾아냈죠.]
민해솔은 1화에서 형호가 죽은 형사의 시신을 발견한 날짜를 읊고선 한 걸음 더 거리를 좁혔다.
[이날 밤, 본인 소유 폐건물에 갔었죠? 그곳에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러게요. 그때 제가 형사님의 시신을 발견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수사도 하루 더 일찍 시작되었을 거고, 유족분들도 그만큼 고인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안타깝네요.]
-크으, 역시 수백 년 산 구미호. 저만한 도발엔 끄떡도 안 하죠?
-원래 형호 성격이 시니컬하고 재벌 3세처럼 뻔뻔해서 그닥 위화감이 안 느껴진다ㅎㅎ
-이 와중에 슬호, 형호가 민해솔한테 무슨 짓 할까 봐 안 그런 척 경계 중.
[참, 그리고 그 건물이요. 다음 주면 무너뜨릴 거예요. 그곳에서 훌륭한 경찰분이 살해당한 건 참 안타깝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의 피가 스며든 건물을 그대로 방치할 순 없어서요.]
[그럼, 여기는요? 형호 군이 한때 삼촌처럼 따랐던 신 부장님의 집은, 다른가 보죠?]
정말 사람을 홀리려 작정한 여우처럼, 형호가 사르르 녹을 듯한 눈웃음을 지었다.
[어떤 대답을 원하세요, 형사님?]
[…….]
-민해솔 순간 눈 흔들렸다가 바로 현타 맞는 거 왤케 실감 나냐ㅋㅋㅋ
-최형호 유죄
-범인 형호 맞음 땅땅
-슬호 놀라서 바로 끼여드네ㅎㅎㅎ
-와 나였어도 흔들렸다
-이 와중에 서한율 딕션 귀에 쏙쏙 박힌다
-민해솔도 극한 직업이네. 옆에선 슬호가 은근히 꼬셔, 강력한 용의자 아들인 미성년자도 대놓고 미남계 써
-????? 뭐임
-....헐
-‘윤회조차 못 하도록 내가 직접 목숨을 거뒀어야 했다.’???
-형호 저거 진짜 사람 헷갈리게 하네
-너 아직도 해진이 그리워하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순간 눈빛이 왜 그렇게 슬퍼ㅜㅜ
9화는 검찰 조사에 응하면서도 무언가를 도모하던 최형호의 아버지, 한대 백화점 사장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며 끝났다.
-이건 또 뭔 일이양ㅜㅜ
-오
-OST!!! 차남석!!!
-어스래빗 차남석이 부른 <서울 구미호> OST - <미로>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D
-차남석 목소리 개좋아ㅠㅠ
-꽃을 단 토끼 의리
-님들 이제 KBC 드라마로 넘어갑시다
-마지막에 이제설 정수기 미니 광고 컷 왤케 웃기지ㅋㅋ 여우도 반할 법한 맑은 물ㅋㅋㅋ
-의리!!!!!!
-오지 마!!!!!!!!
“주연이 같은 팀이니 좋긴 좋다. 요즘 핫한 드라마 OST에 참여도 하고.”
콩콩 엔터테인먼트 안무 연습실. TV로 <서울 구미호>를 시청하던 ACCOM 멤버들이 가볍게 웃었다.
“왜, 노래도 잘 부르잖아. 그런데 서한율 쟨 볼수록 진짜 놀랍다. 연기도 고1 때 연습생으로 들어가면서 처음 배웠다며. 맞지? 형수 형.”
김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한율, 차남석과 같은 WB래빗 엔터에 있었으나, 어스래빗 데뷔조에서 떨어진 뒤 콩콩 엔터로 이적해 ACCOM으로 데뷔했다.
“응. 처음 회사 들어와서 안무 기본 동작 익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다 잘하네.”
“혹시 연락하고 지내?”
“아니. 따로 연락할 정도로 친한 사인 아니었어.”
이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3년 전 보컬3에서 준우승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참 냉정한 바닥이야.”
“우리는 그때 쟤네보다 노래만 잘했던 거지, 지금은….”
그와 함께 <보컬리스트 시즌3>에 나갔던 하승헌은 고개를 저었다.
“최근 서한율 라이브 들어보니까 노래도 많이 늘었던데? 그나저나 형수 형, 어스래빗 리더한테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어?”
“어? 아…. 그거? 뭔가 결과물이 성에 안 차서 미뤄지나 봐. 그리고 걔가 본인 팀 곡 작업에, 같은 회사 후배 곡 작업까지 하느라 아주 바쁘거든.”
그렇구나.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 넘게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다시 연습할 시간이었다.
“…….”
김형수도 일어나며 멤버들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애초에 기대를 안 했다는 건지, 아니면 그의 말을 순순히 믿는 건지. 다들 덤덤했다. 그러자 김형수는 되레 초조해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초반에 쌓은 인지도나 팬덤 크기가 더는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이젠 컴백할 때마다 ‘앨범 성적이 떨어져 이번 활동이 마지막이 되면 어떡하지?’ 현실적인 불안에 휩싸여 멤버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도 여러 번.
몇몇 멤버들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게 보였다.
‘유호도 우리가 안 될 그룹이라, 곡을 넘겨주기 곤란한 건지도 몰라.’
이는 유호를 향한 원망이 아니었다.
자신이었어도, 계속 망돌 선에 머무는 그룹에게 힘들게 작업한 곡을 넘겨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유호가 아무렇게나 만든 쓰레기 곡을 적선하듯 던질 성격도 아니고.
현재 콩콩은 정민솔이 벌어오는 돈으로 굴러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수익을 ACCOM에 투자하지 않고, 정민솔의 차후 솔로 활동을 위해 아끼는 중이었다.
아이돌은 3년만 보면 안다고 했다.
데뷔한 지 3년 안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이후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그리고 ACCOM은 이제 두 달 후면 데뷔한 지 3년이 된다.
‘회사에서도 우릴 거의 포기한 상탠데.’
고작 열흘 먼저 데뷔한 어스래빗은 작년 각 음방에서 1위를 석권하고 올해도 월드투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ACCOM은 1위는커녕 5위 안에도 든 적이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첫 곡부터 쭉 가볼까?”
“넵!”
우웅, …우웅.
“누구 핸드폰 울리는데?”
“형수 형 거 아냐?”
“……?”
이 시간에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김형수는 의아한 얼굴로 사물함 위에 둔 핸드폰을 집었다.
“어?”
그러다 액정에 뜬 [유호] 이름을 보곤 멤버들에게 황급히 손짓했다.
“미안, 잠깐 음악 좀 틀지 말아봐. …어, 호. 웬일이야?”
-[웬일은. 네가 전에 부탁한 곡이 나와서 연락했지. 그런데 좀… 으른섹시 노선인데, 괜찮냐? 아니다, 일단 들어봐.]
김형수는 얼떨떨한 얼굴로 핸드폰을 귓가에서 떼어냈다. 그러곤 멤버들과 같이 듣기 위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에서 음악이 크게 흘러나왔다.
“……!”
그 순간, 김형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ACCOM 멤버들도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
“…….”
가이드 녹음까지 된 곡은 마치 ACCOM 멤버들의 특징과 강점을 샅샅이 조사하고 만든 것처럼, 어느 파트를 누가 불러야 할지 감이 올 정도로 그들과 아주 찰떡이었다. 특히나 킬링 파트는 누가 들어도 김형수의 자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듣자마자 이 생각이 떠올랐다.
노래 좋다.
…뚝. 돌연 음악이 끊겼다.
유호가 웃었다.
-[미리 듣기는 여기까지다. 어떠냐, 김형수. 마음에 드냐?]
슥. 김형수는 황급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유호와는 같은 회사 연습생, 고교 동창이란 이유로 친구로 지내다가, 이젠 그렇게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거리가 생긴 지 오래였다.
아이돌로서도 격차가 컸다. 누가 봐도 대세 아이돌 반열에 오른 어스래빗. 그와 비교해 아직 망돌에 머무는 ACCOM.
그런데 가볍게 무시해도 됐을 그의 부탁을 잊지 않고 들어주었다. 오늘은 <뮤직센터> MC 스케줄도 있던 날이라 피곤할 텐데도, 웃으면서 곡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팬을 제외한 타인의 호의를 받는 게 무척 오래간만이라 그럴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 이 착해빠진 호구 놈아.”
-[뭐, 인마?]
흡. 김형수는 유호에게 들리지 않게끔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눈물을 삼켰다.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고.”
-[고맙긴. 지금 우리 팀이 부르기엔 안 어울려서 떠넘기는 건데. 아무튼 이따가 메일 주소나 보내.]
“어. …고맙다.”
-[오냐.]
통화가 끊겼다.
하. 김형수는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으며 일어났다. 멤버들이 다급한 얼굴로 다가왔다.
“형, 방금 그 곡… 맞지? 전에 형이 호 선배님한테 부탁했다던 곡!”
“뭐 해, 빨리 A&R팀 메일 주소 안 보내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빨리!”
한편, 연습실 밖 복도.
“……?”
보컬 연습실로 향하던 정민솔은 안무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듣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매일 연습도 제대로 안 하고 저렇게 설렁설렁하니 망했지. 하…. 형수 형 따라서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서한율 아닌 형호는 상상이 안 가
김형수와의 통화를 끊은 유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김형수에게 곡을 부탁받았던 게 작년 8월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나 지났건만, 간신히 울음을 참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4년 전, 데뷔조에서 떨어진 김형수가 못난 열등감을 드러내며 이 말 저 말 지껄일 땐 정말 한 대 치고 싶었다. 그래도 그땐 다른 회사로 가서 데뷔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의욕이 엿보였다.
하지만.
『형수 걔 요즘 얼굴 보기 정말 힘들다. 불러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 나와. …왜겠냐? 잘 안 되니까 괜히 친구들 보기 쪽팔리고, 그런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움츠러드는 거지.』
유호, 김형수와 같은 예고를 졸업해 종종 함께 만났던 친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래전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썩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서 팀이 해체, 군대를 다녀온 뒤 평범한 직장인이 된 친구였다.
『걔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올라서 안쓰럽다. 그나마 나야 일찍 실패한 만큼 더 빨리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형수는… 지금 스물 여섯이잖냐. 군대까지 다녀오면 서른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올 텐데, 학생 때부터 아이돌만 보고 살아온 놈이 뭘 하겠어. 무슨 생각이, 어떤 의욕이 나겠냐고.』
좋은 환경, 좋은 멤버들을 만나 순탄한 길을 달리고 있어서 그럴까. 솔직히 유호는 그게 어떤 심정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점점 변해가는 김형수를 보며, 그에겐 흘러가는 시간 자체가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 뿐.
그래서 한번 눈 딱 감고 도와주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호구가 따로 없네. 하지만 김형수한테 말한 대로, 지금 우리가 소화하기엔 부담스러운 콘셉트이기도 하고.’
묵혔다가 나중에 트렌드에 뒤처지는 곡으로 변질했다며 버리게 되느니, 지금 그 곡에 어울리는 팀에 보내는 게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우웅.
유호는 김형수가 보낸 이메일주소로 샘플 파일을 전송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이 곡으로 ACCOM이 잘 될 거란 보장도 없잖아. 자만하지 말자.’
다음 날인 29일 토요일.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차기 보이그룹 데뷔조 결정 전 마지막 월말 평가가 열리는 날.
한율은 어스래빗 멤버들과 회사로 향했다. 본래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촬영이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해 시간을 조정했다.
“애들이 한율이 너까지 온 거 보고 더 긴장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데뷔하고 나서 애들 월평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
“네. 그래도 지금까지 형이나 다른 멤버들이 종종 참여했었으니, 새삼 저 한 사람 더 낀다고 크게 긴장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유호가 웃으며 물었다.
“어스래빗에서 제일 무대 연기 잘하는 게 누구시죠?”
“저요.”
“잘 아시네요, 서한율 씨.”
회사에서 가장 넓은 연습실. 가장 안쪽에 트레이너들과 대표, 직원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일렬로 마련되었다. 카메라는 중앙 정면과 비스듬한 측면 양쪽에 각각 한 대씩 세워졌다.
한 데에 모여 앉은 연습생들이 초조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어스래빗 선배님들도 오겠지?”
“전부 오시진 않을 것 같아. 와도 트레리안 호 선배님들이랑 건우 선배님 정도?”
“만약 전부 오시면 난 아마 기절할 듯.”
“에이, 한율 선배님 요즘 드라마 촬영으로 바빠서… 어헉?!”
연습실 문이 활짝 열려있던 터라, 한율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저를 보며 놀라는 연습생을 향해 생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녀엉… 하심까!”
잔뜩 꼬인 인사가 크게 퍼지자, 다른 연습생들도 고개를 돌렸다가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몇몇 여자 연습생들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거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율뿐만이 아닌, 어스래빗 멤버 전원이 들어오는 걸 보며.
“하이, 후배님들?”
박가람이 안쪽 테이블을 향해 우아한 몸짓으로 핑그르르 돌았다.
“참 평화롭고 따뜻한 날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하하하하.”
“돌지 말고 의자나 챙겨, 박가람.”
“가람, 창피해.”
우뚝. 박가람이 연습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먼지 날려서 죄송합니다.”
어스래빗 멤버들이 한쪽에 세워진 접이식 의자를 들자, 몇몇 연습생들이 후다닥 다가왔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선배님.”
“괜찮아요. 제자리로, 턴.”
“네….”
곧 좌기훈 대표를 비롯해 트레이너들과 직원들이 들어왔다. 어스래빗 멤버들을 담당했던 트레이너들도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제도 봐놓고 왜 그러니, 우성아.”
“밤새 안녕하셨어요?”
“전에 선물로 사 온 간식 잘 먹었어, 한율아. 오늘은 촬영 없어?”
“저녁부터요.”
한율과 인사를 나눈 안무 트레이너 황현정이 연습생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걸렸다.
“여러분들 조심해요. 오늘 괜히 어설프게 연기했다간 바로 마이너스 처리될지도 모릅니다.”
WB래빗의 차기 보이그룹은 7인조. 이미 내정된 멤버도 셋이나 있는 상황이다. 서브 보컬 현강희, 퍼포먼스&랩 변지욱, 랩 임승준.
임승준은 현재 원제로에서 보컬을 맡고 있지만, 원래 그가 더 잘하는 포지션은 랩이었다. 하지만 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팀별 경연을 할 때마다 팀의 우승을 위해, 밸런스를 위해서 그보다 노래를 못 부르는 다른 이들에게 랩 파트를 양보하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랩보단 보컬로 굳혀졌다.
그게 원제로까지 이어진 셈.
언젠가 임승준이 이렇게 푸념했었다.
『다른 멤버들 괜히 욕먹는다고, 나한테 원제로 활동 중엔 아예 랩하지 말라더라.』
촬영 당시, 원제로는 랩 파트 실력이 왜 저 모양이냐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걸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새로 만들어질 보이그룹은 기본적으로 임승준과 변지욱을 중심에 두고 기획 중이니, 실력은 물론이고 두 사람과의 밸런스가 중요할 터다.
‘이미 메인 보컬도 정해진 거나 다름없고.’
며칠 전 살핀 영상 중, 안정적으로 고음을 뽑아내던 노래 실력자. 그 연습생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본인이 뽑힐 거란 걸 자신하는 얼굴이었다. 4년 전의 차남석처럼 태도에서 여유가 흘러나왔다.
한율의 옆자리에 앉은 길우성이 속닥거렸다.
“사실상 세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해서 그런가, 벌써 눈빛들이 활활 타오른다.”
한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강 팀장에게 물었다.
“승준이 형이랑 지욱인 오늘 안 와요?”
“응. 애들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중요한 날이잖아. 서로의 사소한 제스처나 표정으로 감정, 멘탈도 흔들릴 수 있어서 일부러 오지 말라고 했어. 각자 또 친한 애들이 따로 있을 테니까.”
“자, 다들 모인 것 같으니!”
평가단 가운데 자리에 앉은 좌 대표가 씨익 미소 지었다.
“남자 연습생분들 노래부터 볼까요? 다들 목은 풀고 왔죠?”
남자 연습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월말 평가는 한율이 마지막으로 받았을 때와 비슷하게, 중간에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까지 이어졌다.
한율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점수를 적은 뒤, 기타 의견란에 임승준과 현강희, 변지욱과의 밸런스에 대한 의견, 무대 연기에 대한 평을 간단히 적었다. 어차피 데뷔조 결정은 회사 임원들의 판단이 더 크게 반영될 테니 부담 없이.
“이제 촬영장으로 갈 거야?”
WB래빗 2월 월말 평가가 끝났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평가가 진행된 연습실을 먼저 나왔다.
“네. 그리고 며칠 동안은 촬영장 근처에 머물 거예요.”
“지금 <서울 구미호> 결말 부분 찍고 있는 거지?”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작사 측에서 예상하고, 또 계획 중인 <서울 구미호> 마지막 촬영 날짜는 3월 12일. 앞으로 2주도 남지 않았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
“밥도 잘 챙겨 먹어, 하뉼. 요즘 살 빠졌어.”
“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응. 달냥인 걱정하지 마. 우리가 잘 챙길게.”
한율은 멤버들과 가볍게 인사하곤, 로비에서 기다리던 조유찬과 함께 회사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