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일이 <서울 구미호> 마지막 화죠?”
MBS <뮤직센터> 출연자 대기실 복도. 방송이 끝나 함께 MC 대기실 쪽으로 돌아가던 진은수가 물었다.
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벌써 그렇게 됐네.”
“한율 선배님에게 드라마 종영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정말 재밌게 잘 보고 있다고요.”
“그럴게. 오늘 수고했어, 은수야. 2주 후에 보자.”
“네, 선배님도 오늘 수고하셨어요. 다음 주 여행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응, 고마워. 너도 조심히 들어가. 좋은 주말 보내고.”
“네. 선배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둘은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서 각자의 대기실로 들어갔다.
유호는 대기실에 있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에게도 수고했다고 인사하며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회사로 들어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단체 안무 연습, ‘깡충깡충 영어극장’ 대본 정리, 곡 작업.
다음 주 리얼리티 촬영을 떠나면 대엿새 정도는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시간이 있을 때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
“잊은 거 없지?”
“네. 가요, 형.”
유호는 매니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활동 중이었다면 다른 아이돌처럼 팬 서비스 겸 정문 근처에다 차를 세워놓고 일부러 그쪽으로 나가 손 인사라도 하겠지만, MC 스케줄로 혼자 왔을 땐 조용히 출퇴근하는 게 좋았다.
“호, 저녁은 어떻게 할래?”
차에 타자마자 현장전이 물었다.
“포장해서 작업실에서 먹으려고요. 그런데 뭐 먹지….”
“정해지면 알려줘. 차가 막힐 시간이라 천천히 골라도 되지만. 안전띠도 잘 매고.”
“네.”
철컥. 유호는 안전띠를 맨 뒤에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실행했다.
차는 방송국을 무사히 빠져나와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조수석에 탄 스타일리스트는 조용한 음악을 틀었다. 평화로운 퇴근길이었다.
“…어? 저 자식 뭐지?”
부아앙. 시끄러운 오토바이 배기음, 현장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막 음식 메뉴를 골라 결제하려던 유호는 고개를 들었다.
“……?”
“이제 빨간불인데… 어?!”
쾅.
“……!”
유호는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바로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오토바이가 그대로 한 차량과 비스듬하게 충돌, 라이더가 신호대기 중이던 WB래빗 차량 앞쪽으로 날아와 데굴데굴 굴렀다. 오토바이 배달통에서도 포장된 음식이 튀어나와 도로에 쏟아졌다.
빠앙! 퇴근 시간대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두 사람은 차에 있어요!”
현장전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주위 차량에서도 사람들이 나와서 라이더의 상태를 살폈다.
거의 정면으로 충돌한 거나 다름없는데, 괜찮을까.
유호는 오토바이와 충돌한 차량 쪽을 살피며 망설이다가 안전띠를 풀었다. 철컥.
“호야, 나가지 말라고 그랬잖아…!”
스타일리스트가 겁먹은 얼굴로 말렸다. 밖에선 현장전이 119에 신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을 안 쉬는 것 같다고.
빠앙. 그때 멀리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신호가 풀렸는데 왜 안 가냐 재촉하는 소리였다. 밖에서 다른 운전자가 뒤쪽을 향해 크게 팔을 저으며 외쳤다.
사고 났어요!
“저도 내려서 다른 분들이랑 차량 통제 좀 도울게요.”
“그래도….”
“괜찮아요.”
유호는 차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서늘한 바람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오싹.
“……?!”
유호는 저도 모르게 왼손을 감쌌다.
안색이 안 좋아 보여
“형! 오다가 사고 났었다면서! 괜찮아?”
쿵탕탕. 길우성과 박가람이 연습실로 들어오는 유호를 소란스럽게 맞이했다.
“사고가 나긴 누가.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것뿐이야. 그나저나 연습에 늦어서 미안하다.”
“괜찮아, 괜찮아. 밥은 먹었어?”
다른 멤버들도 다가가 유호를 이리저리 살폈다.
“아니, 아직. 놀라서 그런지 입맛도 없다.”
“리더, 얼굴이 새파래. 쉬는 게 좋겠어.”
“사람 많이 다쳤어? 힘든 거… 본 건 아니지?”
“어.”
유호는 고개를 끄덕이곤 안심하라는 듯 입가를 올렸다. 그가 캐비닛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습하자, 연습. 내가 오늘 할 일이 많아서 이럴 시간이 없다.”
“…….”
한율의 시선이 유호의 손을 향했다. 그가 낀 반지에서 자연의 마나와는 확연히 다른 마나를 머금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구나.’
반지엔 주변의 마나를 흡수해 착용자가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법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아직 주변 마나를 제 것으로 만드는 기술이 없으니 그대로 흘려보냈을 터.
그래도 느껴졌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서 빠져나온 체내 마나가.
그 마나는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추출했을 때와 달리,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주 서늘하다.
“아, 가람아.”
“응?”
캐비닛에서 연습용 옷을 꺼내던 유호가 박가람을 돌아보았다.
“연습 끝나고 잠깐 좀 보자.”
잠시 후, 단체 안무 연습이 끝났다.
휴게실에서 간단히 씻은 한율은 머리카락도 제대로 말리지 않고 로비로 나갔다. 씻기 전에 배달시킨 음식이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뜬 까닭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어슬렁거리다가 주문했던 음식을 받아서 유호의 작업실로 향했다.
똑똑.
“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라던 박가람은 안 오고 한율이 와서 그럴까.
“웬일이야? 심심해서 놀러 왔어?”
어리둥절한 유호의 표정. 한율은 가볍게 웃곤 문을 닫았다.
“일 많죠?”
“많다고 생각하면 많고, 없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만드는 느낌인데…. 뭐지? 맛있는 냄새 난다.”
한율은 조금 전 받은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죽이에요. 조금이라도 먹어야, 나중에 몸이 덜 힘들잖아요.”
“어….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러잖아도 뭐라도 조금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유호가 종이가방에서 죽이 든 포장 용기와 숟가락을 꺼냈다. 그러다가 한율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장전이 형한테 무슨 말… 들은 거야?”
“아니요. 그냥, 형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요.”
사실은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반지에 새긴 마법 때문에 그 소름 끼치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을 테니 말이다.
‘설마하니 비교적 안전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목격하게 될 줄이야.’
한율은 살갑게 미소 지었다.
“얼른 먹어요. 식겠다.”
* * *
[종영 D-1 <서울 구미호>, 오랜 인연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tv Mu와 글로벌 OTT서비스에서 동시 방영 중인 드라마 <서울 구미호>가 최종화만을 남겨두었다.
27일에 방송된 <서울 구미호> 15화에서는…(중략).]
<서울 구미호>는 수백 년 전부터 악연으로 얽힌 ‘흑호를 부리는 자’와의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민해솔이 ‘흑호를 부리는 자’일지도 모른다는 복선을 그대로 따르는 듯한 전개, 그러나 밝혀진 또 다른 진실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짐승은 정착한 영역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인간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습성이 있어.]
작은 상영관에는 고등학교 영화제작 동아리 <빠밤!>이 완성한 독립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어색한 연기와 카메라 무빙, 현실과 동떨어진 오글거리는 대사.
관객은 단 두 명이었다.
한대그룹의 총수와 그의 손자.
[그 여자의 고향도 여기였죠.]
1999년 강남 일가족 살인사건이 벌어질 당시, 미국에 있어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 김권숙.
경기도 영어마을에서 촬영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배경을 미국으로 믿게 하도록 부단히 애를 쓴 장치들이 나왔으나 그래도 퍽 어색했다.
영화 속 김권숙은 정서가 불안정했다. 가족이 모두 죽은 사건을 수습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밤에 개로 추정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두려움에 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김권숙을 안심시킨 건, 얼굴이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 한 남자.
[의붓자식들도.]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이 클로즈업된다. 사건 이후 흐른 시간을 알려주듯 병색이 완연해진 김권숙과 그의 남편, 그리고 남편이 데려온 쌍둥이 자매.
사진 속 쌍둥이 자매 위로, 어린 민해솔과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 겹친다.
한대그룹 회장이 조용히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우두커니 서서 스크린을 바라보던 형호의 눈이 짐승과 같은 모양새로 검붉게 빛났다.
[넌 언제부터 알았느냐.]
[당신이 죽은 형호를 보내주고 그 껍데기를 흉내 내기 시작한 날. 그날 바로 알았습니다.]
한낮의 여름. 여섯 살의 ‘최형호’가 지루한 얼굴로 있다가, 저들끼리 하하호호 웃는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곤 별장을 몰래 빠져나간다. 아이가 향한 곳은 근처에 있는 계곡.
노을 아래. 어른들이 최형호를 애타게 부르며 찾아 헤맨다. 그들은 해가 완전히 떨어진 밤이 되어서야 계곡 바위틈에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수색견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 가지 않으려 용을 쓰던 장소였다.
[내가 발견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시간을 살짝 되돌려 환한 오후.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계곡물에 빠져 죽은 최형호의 몸을 건져낸다.
[압니다. 그분이 말씀해주셨지요. 당신은 결코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다고.]
회장과 형호가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잡기 위해서.]
한대그룹 오너 일가는 수백 년 전부터 흑호를 부리던 자를 섬기던 집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미호를 꾀어내는 미끼로 쓰기 위해 성심을 다해 키운 딸이 도망쳤다. 그 딸이 바로 민해진의 친모였다.
[괘씸하여 모조리 죽이고자 했으나, 그 친모보다 더욱 맑은 정기를 가지고 태어난 민해진은 차마 아까워서 없애지 못했지. 그러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여, 미끼 노릇을 할 때까지 살 수 있단 보장이 없었다. 결국 그자는 민해진에게 진호의 구슬을 넣었지. 그리고….]
그자의 의도인가, 우연인가. …혹은 인연인가.
두 마리의 구미호가 민해진의 곁을 지켰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이번엔 민해솔의 곁을.
[하지만 왜 진작 그자에게 나에 대해 알리지 않았지?]
[자식 잃은 슬픔을 아니까요.]
회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몸을 돌려 형호와 마주 보았다.
[내 자식에게 그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경찰조사를 받던 중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한대 백화점 사장. 회장의 자식이자, 최형호의 아버지 모습이 회상 씬으로 뜬다.
[모른 채 떠났지요.]
[…….]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스크린 속, 세월이 흘러 김권숙의 남편이 대한민국 서울 땅을 밟는다. 그는 2017년 강남 일가족 자살 사건이 벌어지는 57번지로 들어갔다.
[부디 그분의 굴레를 끊어주십시오. 부모에게 제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쓸쓸히 떠난, 당신에게 이름을 빼앗긴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28일 새벽. 어젯밤 방송된 <서울 구미호> 15화를 뒤늦게 모니터링하던 한율은 리모컨을 들었다.
재생되던 VOD를 일시 정지.
“…….”
한율은 TV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내려갔다. 므앙? 옆에 붙어서 자던 달냥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한율을 졸졸 따라 나왔다.
조금 전 대사가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부모에게 제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쓸쓸히 떠난, 당신에게 이름을 빼앗긴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서울 구미호>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한율은 ‘형호’가 자신과 무척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본래 세상, 인간이 아닌 존재를 겪었던 경험을 더해 자신만의 ‘형호’를 만들어가면서 더더욱.
15화 대본에 적힌 저 대사를 봤을 땐 심장이 따끔거렸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서한율’의 육체는 일찌감치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부모는 주검이 된 아이를 끌어안은 채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을 테지.
그래서 미안하지 않았다.
이 시간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본래 세상의 원수였으니, 동정할 필요도 없다고.
…이런 식으로 묻어버린, 진짜 서한율을 향한 생각을 절로 불러일으킨 대사였다. 촬영 며칠 전 미리 받지 않고 현장에서 쪽대본으로 받았다면, 아마 한두 번은 NG를 내지 않았을까.
“후….”
정원으로 나간 한율은 차가운 밤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고작 NG 한두 번.
그 정도일 뿐이다.
고개를 들자 2층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유호와 길우성이 함께 사용하는 방이었다.
유호는 들어왔을까.
몇 시간 전, 한율은 사실 유호에게 마법과 마나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었다. 그러나 도중에 마음을 바꾸었다. 자신이 느낀 게 죽은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온 마나였단 사실을 알게 되면, 아주 몸서리가 쳐질 테니.
그래서 유호를 명상센터로 데려가는 건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마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고 훈련에 들어가봤자 삐거덕거릴 게 뻔하므로.
박가람에게도 입조심을 당부했다.
“거기서 혼자 뭐하냐?”
열어놓은 테라스 문 사이로 차남석이 물었다. 한율은 태연히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머릿속으로 종영 소감 정리 좀 하고 있었어요.”
“웬 하얀 옷 입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해서 귀신인 줄 알았다.”
파삭. 그때 어둠 속에서 새카만 달냥이 불쑥 튀어나오자 차남석이 움찔거렸다.
“…깜짝이야. 너도 있었냐?”
뫙. 달냥이 차남석의 다리에 제 몸을 비비적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차남석이 달냥을 안아 들었다.
“발도 안 닦고 어딜 들어오려고 해.”
므왕.
한율도 정원용 슬리퍼를 벗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형은 안 자고 왜 나왔어요?”
“목말라서 물 마시러.”
차남석은 고양이 전용 물티슈로 달냥의 발을 닦아준 뒤 내려놓았다. 뫙, 뫙. 달냥이 뒤늦게 투덜거리며 한율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자라.”
“네, 형도 잘 자요.”
한율은 방으로 들어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곤 마저 드라마 모니터링을 마친 뒤 잠이 들었다.
드라마 반응은 아침, 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대충 훑었다.
-그러네.. 형호 부모님은 진짜 자기 자식이 죽은 줄도 모르는 거잖아..ㅜㅜㅜㅜㅜㅜ
-회장님하고 형호 극장 대화 씬은 진짜 몰입도 최강이었다..
-진짜 최형호 위해서라도 굴레 끊어달라는 말 듣고 서한율 눈빛 미세하게 떨리는데 완죤.. 하.. ㅜㅜ
-회장님 배우 분도 그렇고 서한율도 연기.. 뭐라 말로 제대로 표현 못 하겠는데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었음
-어린 나이에 죽은 진짜 형호도 너무 안쓰럽고.. 여우형호도 안타깝고.. 둘 다 안아서 토닥토닥해주고 싶다ㅠㅠ
-서한율 진짜 연기 잘하기는 함.
반응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한율은 다른 기사를 클릭했다.
[스타믹스 JE, 오늘 <뮤직뮤직> MC 마지막 인사]
한율은 JE에게 톡을 보냈다.
[4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축하 선물은 언제 드리면 될까요?]
우웅.
-[뭐 줄 건데?]
[좋은 거요. 지난번에 선배님이 부탁하신 부동산 자료도 있고.]
-[오늘 출근하기 전이면 잠깐 볼 수 있을 듯.]
-[컴백이 코앞이라 다른 날은 힘들 것 같다.]
[어디로 몇 시까지 갈까요?]
스타믹스가 이용하는 샵 위치가 찍힌 지도 링크가 도착했다.
-[11시 괜찮나?]
[네, 이따 뵙겠습니다.]
한율은 JE와 톡을 마치고 나서야 침대에서 벗어났다.
드륵. 책상 서랍에서 JE에게 줄 선물을 미리 꺼냈다. 작은 상자 안에는 지난번 별장에서 완성한 물건이 담겨 있었다.
‘이거라면 시계보다 자주 착용하겠지.’
집중이 안 된다
[신호 무시 배달 오토바이, 승용차와 충돌… 1명 사망]
[어제 27일 저녁 서울시의 한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배달 오토바이가 마주 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20대 A씨가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승용차 운전자 30대 B씨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경찰은…(중략).]
-아 제발 배달 라이더들 신호 준수 좀
-신고로 비공개된 댓글입니다.
-사고 충격으로 튕겨 나간 오토바이 운전자가 떨어진 곳이 신호대기 중이던 어떤 아이돌 차 앞이라던데. 그래서 그 아이돌 매니저가 쓰러진 오토바이 운전자 살피면서 119 신고하고, 아이돌도 경찰이랑 구급차 올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랑 차량 통제하는 거 도왔다고 했음ㅇㅇ
ㄴ그 아이돌은 어스래빗의 유호입니다. 어제 뮤센 스케줄 마치고 퇴근길에 사고 목격한 것 같네요..
ㄴ우리 엄마도 퇴근하다가 봤다던데
ㄴ어쩌라고
ㄴ넌 어쩌라고
-승용차 운전자는 뭔 잘못이냐
-커뮤에 사고 장면 담긴 블랙박스 영상 올라온 거 보니까 진짜 목숨 내놓고 달렸더만.. 배달 하나 더 뛰겠다고 목숨 걸지 마라.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
-승용차 운전자는 진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고 목격자들도 개놀랐을 듯
예약한 샵 근처 베이커리 카페. JE는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 기사를 훑었다.
‘톡이라도 보내야 하나?’
지난 23일, 어스래빗의 새 숙소에 방문했을 때 유호와 말을 트기로 하고 나중엔 번호도 교환했다. 2015년 데뷔 이래 처음 사귄 동갑내기 연예인 친구였다.
JE는 잠시 망설이다가 톡을 보냈다.
[어제 퇴근길에 교통사고 목격했다는 기사 봤음. 괜찮음?]
우웅.
-[ㅇㅇ]
-[(이모티콘)]
‘고마워!’ 글자가 크게 적히는 토끼 캐릭터 이모티콘 아래로 장문의 톡이 이어졌다.
-[4년 동안 음악방송 MC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고생 많았고, 무사히 마침표를 찍는 게 참 존경스러우며 한편으론 축하한다ㅎㅎ]
[감사. 너도 오래오래 해라ㅎ]
-[아]
-[난 다음 달까지만 할 예정ㅎ;]
[아. ㅎ;]
-[ㅋㅋ;]
톡으로 나누는 대화도 아직은 어색하다. 나이도 스물여섯이나 먹은 남자들끼리라 그런지 더.
우웅. 마침 서한율에게서 샵 근처로 왔다는 톡이 왔다. JE는 현재 있는 카페 위치를 전송했다.
“어서 오세요.”
곧 서한율이 도착했다. 서한율은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한 뒤 JE의 맞은편에 앉았다.
“언제 오셨어요, 선배님?”
“5분 전쯤에. 아침은 먹었냐?”
“네, 간단히.”
서한율이 가방에서 사과패드를 꺼냈다.
“선배님은요?”
“난 출근해서 먹으려고. 그게 부동산 자료야?”
“네. 선배님이 원하는 지역과 조건에 맞는 매물들이에요. 중개인이 직접 사진이랑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대요.”
“그렇게까지?”
“요즘엔 부동산 앱이나 홈피에 매물 사진이랑 영상도 같이 올리는 추세라, 겸사겸사요.”
JE는 사과패드를 받아 자료를 살폈다. 주소와 실제 건물 외관 사진, 내부 사진, 보증금과 월세 및 옵션 등. 필요한 정보가 세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정말 고맙다.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이제 선배님이 중개인에게 직접 연락해서 약속 잡고 살펴야 해요.”
“당연하지. 설마하니 떠먹여 달라고까지 할까. 그런데 되도록 빨리 연락하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요. 좋은 매물은 다른 사람도 탐내기 마련이니까.”
“이거 메일로 보내줄 수 있어? 쉬는 시간에 대기실에서 천천히 보고 싶다.”
“네.”
서한율은 그 자리에서 메일을 통해 자료 파일을 보내주었다.
“땡큐, 땡큐.”
“그리고 이건 막방 축하 선물이요. 액운 방지 부적이나 다름없으니까, 되도록 몸에서 떼어놓지 마세요.”
이번엔 작은 종이상자.
JE는 의아한 얼굴로 받았다.
“부적? 지금 열어봐도 돼?”
“괜히 오해 살 수 있으니 나중에 다른 데서 열어보세요.”
“음…. 아무튼 고맙다. 너도 오늘 드라마 종영이지? 여기에서 먹고 싶은 거 골라, 멤버들 몫까지. 내가 다 사준다.”
“정말요?”
“너희가 가는 샵이랑 거리가 있어서 여긴 처음 와봤을 것 같은데. 맞지? 여기 빵 맛있어. 마음껏 골라.”
위잉. 마침 진동벨이 울렸다. 서한율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KBC <뮤직뮤직> MC 대기실.
오늘이 MC 마지막 날이라고, 대기실에는 <뮤직뮤직> 스태프들과 스타믹스 팬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출근길을 걸을 때부터 붙은 VJ를 향해서 JE는 적절한 리액션을 선보였다. 그리 감성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4년 동안 별 탈 없이 잘해왔다는 뿌듯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지금까지 제가 성실히 MC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서한율에게 받은 선물을 확인한 건 VJ가 나간 뒤.
작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은색과 검은색으로 이뤄진 작은 피어싱 한 짝이었다.
‘괜찮은데?’
그러나 액운 방지 부적이라고 말한 게 살짝 마음에 걸려, 핸드폰 카메라 기능으로 확대해 살펴보았다.
‘부적 같은 문양은 안 보이는데.’
일단 거울을 보며 귓불 두 번째 자리에 착용.
반짝.
“……?”
JE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피어싱이 은은한 푸른색으로 반짝인 것 같은데, 비칠 만한 같은 색깔의 물건이나 조명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봤나?’
옆에서 옷을 정리하던 스타일리스트가 물었다.
“피어싱 예쁘다. 선물 받은 거야?”
“네.”
“무난해서 평소에 끼고 다녀도 괜찮겠는데?”
JE는 다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