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4월 14일 밤 9시, 너튜브 어스래빗 채널.
[200414 어스래빗(Earth Rabbit) 3th Debut Anniversary]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어, 나 살쪘나 봐.]
지금까지 촬영한 앨범 재킷과 M/V에 나왔던 소품, 그리고 온갖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과 8개의 의자가 놓인 실내 스튜디오. 길우성의 엄살 섞인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핏이 조금 이상해.]
[키랑 체격이 성장해서 그런 거 아냐?]
[넌 바지 기장 어떡하냐?]
크크큭. 웃으면서 길우성이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데뷔곡 활동 당시 입었던 무대 의상을 걸치고. 뒤이어 들어온 한율도 무대 의상을 입었는데, 바지 밑단이 발목 위로 올라와 핏이 영 어정쩡했다.
[키 크면서 다리만 길어졌나 봐.]
[와, 얄미워. 너 저어기 멀리 앉아.]
[그래.]
[어? 토끼 인형이다!]
다다다. 박가람이 카메라 앞을 가로지르며 등장, 스튜디오 구석에 놓인 거대한 토끼 인형으로 달려가 풀썩 앉았다.
[셀카 찍어야지~.]
[나도!]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도 하나둘 들어오며 떠들었다.
[그 인형 계속 회사에 있었잖아. 이것들이 새삼 귀여운 척이나 하고 말이야.]
[자자, 다들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 막 피어싱하고 염색하고 그래도 돼요?! 불량해!]
[너희들도 불량해요.]
[맛있겠다. 이거 지금 먹어도 돼요? 식으면 맛없을 것 같은데.]
멤버들이 직접 그린 토끼 그림 영상. 정신 산만하게 떠들던 멤버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장면으로 바뀌었다.
[올해 데뷔 기념일은 이렇게 퉁치는 거야? 작년엔 팬분들 모아서 작게나마 콘서트 했었는데.]
[올해는 우리 컴백 준비가 코앞이라, 회사가 돈이 별로 없대.]
자막.
[※건우의 주장입니다.]
강보배가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고퀄로 만들어주신다는 거지?]
[괜찮아. 부족하면 한율이가 그만큼 메워줄 거야.]
한율은 금시초문이란 얼굴로 박가람을 쳐다보았다.
[……?]
데뷔 3주년을 기념해서 멤버들은 ‘대표님의 특급 축하 용돈’을 걸고 총 3개의 게임을 진행했다.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고요 속의 외침’, ‘네 글자 퀴즈’, 마지막으로 ‘히든박스’.
히든박스는 검은색 천으로 감싼 상자 구멍에 손만 집어넣고, 촉감만으로 안에 든 게 뭔지 맞히는 게임이었다. 물론 카메라 방향에선 안에 든 물건이 환히 보인다.
[으워어우! 뭐야, 이거!]
실시간 채팅창.
-건우 진짜 은근 겁 많앜ㅋㅋㅋㅋ
-건우야 그거 닭다리야...
-확인 후 허망한 건우 표정
[이건 주사위 같은데요? 주사위 맞죠?]
-율톢은 거침없이 그냥 만지넹
[에이, 재미없어.]
[그래도 한율이 덕에 하나는 맞췄어.]
[팀에 한율이 같은 애가 최소한 한 명은 있어야지. 그래야 꿀리지 않아.]
[…으아으아으! 너무 싫어! 으아으! 왜 축축해!]
-보배 하이톤 처음 듣는 듯ㅋㅋㅋㅋㅋㅋㅋ
-도토리묵 상처받겠다
-시크한 생김새에 그렇지 못한 소심함
-보배 너 도토리묵 좋아하잖아 왜 그래ㅋㅋㅋㅋㅋ
-남석이도 움찔거린다ㅋㅋㅋㅋㅋ
-의상 멋지게 차려입고 이게 뭐얔ㅋㅋㅋㅋ
[용돈이 걸려 있다고! 만져! 만지라고, 박가람! …이거 생물 아니지? 생물 아니지? 생물 아니지? 그것만 말해주세요, 선생님들, 제발!]
-박다람이 랩한다ㅋㅋㅋㅋ
영상은 23분가량으로 짧았다. 그러나 영상 하나만으로 데뷔 3주년을 기념하기엔 아쉽다는 듯, 밤 11시가 되자 어스래빗은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은은한 조명만 켜진 어둑한 숙소 거실.
유호가 셀캠으로 먼저 이프림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이프림~. 데뷔 3주년을 맞이해서 어스래빗의 새로운 숙소를 최초 공개! 합니다. 멤버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지,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가 천천히 1층 거실을 촬영했다. 그러다 거실 바닥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야광 토끼 스티커를 포착.
“2층에 있나?”
부실 공사 걱정은 없겠네
[데뷔 3주년 어스래빗, 스페셜 영상과 숙소 대공개!]
[어제 14일 데뷔 3주년을 맞이한 인기 보이그룹 어스래빗이 스페셜 영상과 새로운 숙소 내부를 공개했다.
2017년 4월 14일 첫 번째 EP앨범 [Breaching]으로 데뷔한 어스래빗은…(중략).
라이브 방송에서 어스래빗은 지난달 이사한 새로운 숙소 내부를 최초 공개했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가전제품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넓은 거실에는 특별 제작된 어스래빗 단체 포스터, 지금껏 받은 상이 진열된 진열장이 특히 눈길을 끌었으며 그들의 반려묘 ‘달냥’을 위해 제작된 캣로드와 캣타워가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숙소 건물 소유주인 서한율의 방은…(중략).
한편 어스래빗은 6월 컴백 예정이다.]
-어스래빗 데뷔 3주년 축하해!!!! ♡♡♡♡♡
-달냥은 어스래빗이 아니라 율톢 고양이입니다. :)
-기사 보고 생애 처음으로 남돌 라방이란 걸 봤다.
-라방에서는 안 나왔는데, 지하실이랑 차고도 따로 있다고 하니 나중에 숙소에서 숨바꼭질 콘텐츠 해도 좋을 듯ㅋㅋㅋ
-남자 8명이 사는데 우리 집보다 깨끗해서 놀람
ㄴ청소랑 관리해주는 분 따로 있어요ㅎㅎ
-이런 집은 얼마나 함?
ㄴ저 동네는 땅값부터가 ㅈㄴ비쌈
-빨리 6월 됐으면 좋겠다
“너희는 가 본 적 있어? 어스래빗 숙소.”
원제로의 콘텐츠 촬영 현장. 잠깐 쉬는 시간이 되자 인터넷 기사를 보던 라일이 물었다. 임승준과 변지욱, 현강희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스래빗 숙소는 기본적으로 손님 초대 금지라서요. 이삿날에만 잠깐 가능했었는데, 우리 스케줄이랑 겹쳐서 못 갔어요.”
“그날 백업 댄서들이랑 친한 작곡가 쌤, 원카운트 찬형 선배님이랑 스타믹스 JE 선배님, 현우 형까지 갔었다던데….”
현강희가 고개를 기울였다.
“현우 형이면… 배우 박현우 선배님?”
“응. 형도 떠비 연습생 출신이라 다들 친하거든. 지금도 우리 회사 소속이고. 강희 넌 아직 만난 적 없나?”
“응.”
“하긴. 연습생 그만두니까 회사에 나올 일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 대본 같은 것도 매니저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서 전달하고. 그래도 가끔 심심하다고 놀러 오니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야.”
“들어보면, 떠비에 은근 범상치 않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라일이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떠비로 들어갈까?”
“형 이미 스케일 엔터랑 계약했잖아요.”
“우리 회사 아무나 안 받아줘.”
“아무나라니…!”
그때 정민솔이 그들 근처에 있는 간식 테이블로 왔다. 음료를 고르는 정민솔을 향해 라일이 물었다.
“민솔아, 오래간만에 야외에서 몸 쓰는 촬영 하니까 힘들지 않아?”
지난번 과로로 쓰러져서 입원했던 정민솔은, 부모님 집에서 쉬다가 일주일 만에 연습실과 숙소로 복귀했다.
그로부터 여드레나 지났지만, 원제로 멤버들은 정민솔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가 팀의 중요한 메인 보컬이기도 하고, 해체 시간이 다가올수록 서로 아쉬운 마음이 커진 까닭이었다.
정민솔이 미소 지었다.
“네. 괜찮아요, 형.”
“조금이라도 힘들면 참지 말고 말해.”
라일이 일어나서 다가갔다.
“그거 줘. 내가 뚜껑 열어줄게.”
“괜찮아요. 저 환자 아니에요, 형.”
“라일 형, 실은 뺏어 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아, 들킴?”
변지욱까지 일어나 가벼운 장난에 합류했다. 현강희는 그 모습을 보며 웃는 표정을 짓다가 임승준을 살폈다.
“…….”
임승준은 말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현강희는 다시 정민솔 쪽을 힐끗했다.
‘정말 승준이 형 추측대로 민솔이 형이 수작을 부린 걸까?’
WB래빗 소속이 된 첫날. 현강희는 어스래빗의 라이언에게 묘한 질문을 받았다. 정민솔이 콩콩 엔터와 전속 계약을 한 게 맞냐고. 그리고 복잡한 뉘앙스를 띤 말과 표정.
『응, 확실하진 않다는 거네.』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도 있던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라, 현강희는 임승준에게도 조용히 전했다. 정민솔을 곁에서 가장 오래, 많이 봐 온 사람이 바로 임승준이기에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
『라이언은 그렇게 의심할 줄 알았다. 나도 그런데.』
임승준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비소를 지었다.
『정민솔, 우리한테는 지금 소속사 덕에 픽미돌 나올 수 있었다면서 스케일 엔터 제안 거절했다고 잘난 척 떠들었잖아? 그런데 여태껏 콩콩이랑 전속 계약 안 맺었더라. 그 얘기 나온 게 벌써 몇 달 전인데.』
『그럼…』
『그 새끼, 본인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챙기면서 콩콩 나오려고 슬슬 수작 부리는 것 같아. 그놈 과로 기사 댓글 한번 봐봐. 지금 우리 매니지보다 콩콩 엔터가 더 욕먹고 있어. 정민솔 팬들도 정민솔이 계속 콩콩에 있으면 잘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때다 하고 공격한 것일걸?』
원제로 멤버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건 각각의 본래 소속사가 아닌, 현재 원제로 매니지 업무를 맡은 회사 몫인데도 말이다.
“민솔이 형.”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 현강희는 지나가는 말투로 가볍게 물었다.
“형도 다시 그룹으로 활동할 거예요?”
“…어?”
정민솔이 돌아온 뒤 바로 계약에 관해 묻는 건, 대놓고 그를 의심한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강희는 며칠 내내 묵혔던 의심을 단단히 포장하고 우회로 돌렸다.
정민솔이 콩콩과 전속 계약했다고 믿는 것처럼.
“호 선배님이 ACCOM에 준 곡이 타이틀곡으로 정해졌잖아요. 남석 선배님 말로는, 각 멤버들 특징이나 장점이 잘 살도록 굉장히 신경 썼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곡이 잘 되면 콩콩과도 좋은 관계가 유지될 것 같다고.”
오오. 변지욱이 감탄사를 냈다.
“그럼 언젠가 민솔이 형이 호 형이 만든 곡으로 노래 부를 수도 있단 거네?”
“응. 그런데 선배님이, 자기는 예전부터 그룹 곡만 만들어서 솔로곡은 잘 안 나온다고 하시더라고.”
현강희는 대답을 듣고자 다시 정민솔을 바라보았다. 정민솔이 슥 미소 지었다.
“아직 회사랑 논의 중이야. 솔로로 할지, 그룹으로 할지.”
변지욱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우리처럼 미리 플랜을 짜둬야 곡 의뢰하기에도, 콘셉트 정하기에도 여유가 생겨서 좋을 텐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원제로 약발 떨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재데뷔해야지. 젊음은 오래가지 않아, 형…!”
“…….”
말없이 웃는 낯을 유지하던 정민솔이 입가를 내렸다.
“저 얄미운 변지욱, 한 대만 대신 때려주라. 나 손 안 닿는다.”
툭.
“아얏!”
“엄살은.”
* * *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어스래빗은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4st EP 앨범 [Balance] 녹음을 모두 마치고, 본격적으로 앨범 재킷 촬영을 위한 관리에 들어갔다. 치과, 피부과, 피부관리실, 헬스장 등등.
다음 달에 방송될 . 그곳에 출연하는 후배 연습생들을 격려하는 영상도 찍었다.
24일엔 유호가 MBS <뮤직센터>에서 마지막 MC 스케줄을 소화하고 돌아왔다.
“수고 많았어요, 형.”
“고생 많았어, 리더.”
연습실에서 유호의 마지막 MC 활약을 지켜본 멤버들은, 유호에게 축하와 수고했단 의미로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왜 마지막에 울고 그러냐. 보는 나도 울컥하게.”
“은수 씨는 어떡해. 완전히 울음 터져서 눈물이 방울방울 뚝뚝 떨어지던데.”
“난 솔직히 은수 씨가 더 안쓰러웠음.”
“동감.”
“…그럼 나 다시 복귀해?”
“이미 형 다음 주자 정해졌잖아. 민폐야.”
“자, 선물 전달식 끝났으면 호 형한테 수고했다고 포옹 한번씩하고, 연습하자.”
“수고했어, 형.”
“수고했어요.”
토닥토닥.
“그래. 의무적인 인사치레 참 고맙다, 동생들아.”
27일과 28일은 앨범 재킷 촬영을 진행. 30일엔 일본에서 동시 발매될 싱글 앨범의 재킷 촬영을 진행했다. 7월부터 시작될 콘서트용 VCR 녹화도.
“벌써 5월 1일이야?!”
펄럭. 한율이 어스래빗 벽걸이 달력을 한 장 넘기자, 멍하니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길우성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한율은 별 싱거운 놈 다 보겠단 얼굴로 그를 힐끗했다. 길우성이 다시 소파에 축 늘어지며 중얼거렸다.
“선물 뭐 사지….”
오늘 저녁, 한율은 길우성, 이건우, 유호와 함께 JE의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길우성은 아직도 JE에게 줄 선물을 정하지 못해 고민 중.
한율은 길우성 혼자 알아서 생각하게 두곤 방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보기 좋고 향기도 좋은 허브 화분을 골라 투명한 포장지로 감싼 뒤, 그 위에 문구점에서 산 리본을 붙였다.
선물 준비 끝.
“나 먼저 출근한다.”
길우성이 벌떡 일어났다.
“같이 가! 출근 전에 쇼핑도!”
회사 연습실에서 콘서트에서 할 곡의 안무까지 포함해 온종일 연습하고, 저녁. 어스래빗 멤버 넷은 JE의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숙소에 들렀다. 말끔하게 씻고 나서 각자 준비한 선물을 챙겨 한율의 차에 올라탔다.
“걸어서 3분 거리를 차로 이동하네. 웃긴 건지, 슬픈 건지.”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경찰이 출동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아도 따라다니는 사생 스토커들 때문이었다. 무방비하게 대문 밖을 나섰다간 한 걸음도 못 가서 바로 잡힐 터다.
길우성이 음률을 실어서 투덜거렸다.
“소소하게 외출할 때마다 힘들어요, 선생님. 편의점이나 산책도 마음껏 못 가겠다구요오.”
“싫으면 장가 가.”
“장가는 혼자 갑니까.”
“싫으면 독립해. 나 독방 좀 써보자.”
“큰형이 막내 내쫓으려고 한다…!”
“아, 오늘 첫 방송인 거 알지? 투표 잊지 말고 꼭 해.”
JE의 집은 보안이 잘 된 고급빌라로, 그들의 차는 경비원의 확인을 받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JE의 집 호수가 적힌 주차장 자리가 텅 비어 있어, 한율은 그곳에다 편히 차를 댔다.
“걸어서 3분 거리를 차로 10분 걸려 도착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건우 씨?”
“퇴근 시간대라 그렇습니다, 우성 씨. 선물이나 챙기시죠.”
공동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눌러 JE를 호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했다.
JE가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그들을 맞이했다.
“다들 어서 와.”
“하이, 지은.”
“오래간만에 뵙소, 형님.”
“오, 맛있는 냄새 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집안은 모델하우스처럼 보기 좋게 깔끔했다. 한율은 안으로 들어가며 무거운 화분부터 건넸다.
“독립 축하합니다.”
“고맙다.”
JE가 기꺼이 받고선 발코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
한율은 그의 귀에 꽂힌 피어싱을 눈으로 가볍게 살폈다.
다른 이들과 달리 JE는 자주 만날 일이 없어서, 한율은 피어싱에다 마나를 잘 느끼도록 도와주는 마법과 함께 보호 마법도 새겨놓았다. 그리고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길우성이 주방에서 알짱거렸다.
“뭐 끓이는 중이야?”
“엄마가 보내준 갈비찜.”
“오.”
“손은 어디서 씻어?”
“집 구경 좀 해도 돼?”
“손은 저기 건식 세면대에서, 집 구경은 마음대로.”
네 사람은 차례대로 손을 씻은 뒤 어슬렁어슬렁 집 구경을 했다. 한율은 바깥 정경이 보이는 발코니부터 확인했다. 5층이라, 마나를 잘만 다루면 안전하게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다. 바로 근처에 2층짜리 주택도 있고.
똑똑.
“벽은 왜 두드려, 써한.”
“튼튼한가 궁금해서.”
JE가 식탁에다 음식을 차리며 말했다.
“중개사가 말해줬는데, 건설회사 사장이 가족이랑 살려고 직접 지은 거라 굉장히 튼튼할 거래.”
“부실 공사 걱정은 없겠네요.”
개 짖는 소리는 무시해
“기사 봤어. 스타믹스 멤버 전원 스케일이랑 재계약했다면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건우가 물었다. JE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지금 소속사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회사로 옮기며 생기는 여러 불편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라서. 대신에 계약 기간을 2년씩 끊기로 했어.”
“2년은 너무 짧지 않아?”
“나중에 본인에게 더 나은 길로 가고자 할 때 계약 기간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잖아. 이제 다들 적은 나이도 아니고.”
“하긴. 군대 다녀오면 또 시간이 훅….”
쓰읍. 그들에게 고뇌 그 자체인 ‘군대’가 나오자마자 유호와 이건우가 동시에 길우성을 째려보았다. 길우성이 아차 하는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죄송함당.”
“그러고 보니.”
그러거나 말거나. 한율은 아무렇지 않게 JE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지헌 선배님이 동반입대 얘기 꺼냈었다던데.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유호가 탄식했다.
“한율아….”
JE는 미간을 찡그렸다.
“너 그거 어디에서 들었어?”
“예전에 가람이 형이 에이플 선배님한테 들었다고 알려줬어요. 형네 매니저도 우리 매니저 형에게, 선배님까지 입대 얘기 꺼내서 고민이라고.”
하. JE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 입 가벼운 사람들을 어쩌지.”
“형 지금 군대 가려고? 조금 더 벌고 가지, 왜.”
“…….”
JE와 동갑인 유호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가 힘없이 도로 닫았다.
“그냥 얘기만 꺼냈던 거야. 회사에서도, 지헌이 형도 뜯어말려서 내후년에 가기로 했어.”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요. 그럼 지헌 선배님은요?”
“형은 내년에 갈 것 같아. 드라마랑 영화 촬영이 잡혔거든. 그나저나… 너희 MBS 예능 <혼자서도 잘 살아요> 프로그램 자주 보냐?”
“시간 맞으면 보고, 아니면 말고? 혹시 거기에서 섭외 들어왔어?”
JE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런데 난 휴일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TV만 보거든. 그걸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면 어떻게 되겠냐?”
“재미없다고 다신 섭외가 안 들어오겠지.”
“그래서 어느 정도 콘셉트랑 내용을 붙여야 하는데… 중고차를 사러 가는 내용은 어떨까 생각 중이거든. 그런데 예능에까지 우리 팀 멤버를 부르면 너무 인맥이 좁아 보이잖아.”
“오오.”
길우성과 이건우의 눈이 ‘혹시?’ 하는 기대로 반짝거렸다. JE가 네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때 나올 사람? 촬영 날짜는 18일 월요일이 될 것 같다.”
녹화가 18일이면 어스래빗이 컴백해 한창 활동할 때 방송이 나간다는 소리다. 누가 나가도 좋은 홍보가 될 터.
유호가 가볍게 말아쥔 주먹을 들었다.
“가위바위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