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화 (215/427)

* * *

[어스래빗 단독 리얼리티 <런던래빗> 꾸밈없는 첫 방송!]

[어제 14일 인기 보이그룹 어스래빗의 단독 리얼리티 <런던래빗>이 뮤닷에서 공개되었다.

(사진=뮤닷 <런던래빗> 중)

작년 뮤닷 에서 우승하며 단독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권을 따낸 어스래빗은…(중략).]

-애들 영어 쓰는 거 너무 좋아 발음 개쩔어

-엄마랑 같이 내내 흐뭇한 미소 지으면서 봤다

-뮤닷 사랑해 어스래빗 사랑해

-분명히 낮에 갔는데 흉가 은근 개무섭던데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가 혼재된 어스래빗 영어 세계

ㄴ그 미국 영어에도 워싱턴 영어와 텍사스 영어가

-너희들 계속 이런 식으로 방송하면 우주 정복밖에 못 해ㅡㅡ

-계속 런던에만 있는 건가요? 다른 곳 안 감?

ㄴ오늘 흉가 구경하러 에식스 주까지 가기는 했는데, 범위 넓혀서 바쁘게 돌아다닐 것 같진 않아요. 힐링이 더 큰 목적이라

-초반 예고로 나온 우성이 춤 빨리 보고 싶다

-작년 RMMA에선 좀 빠릿빠릿하고 차가워 보였는데 실제론 물렁하고 귀엽

-흉가 앞에서 진짜 안무 연습하려는 거 보고 빵 터짐ㅋㅋㅋㅋ

주로 아이돌 팬층이 보는 채널인데다, 평일 늦은 시간에 방송되어서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뮤닷과 WB래빗은 괘념치 않았다. 해외 K-POP 팬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의 K-POP 팬들은 SNS를 통해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15일 아침, 어스래빗 M/V 촬영이 진행되는 실내 세트장.

길우성이 핸드폰으로 <런던래빗> 1화 반응을 살피며 실실 웃었다.

“흐. 우리 영어가 많이 늘긴 늘었나 봐. 이프림이 발음 좋았다고 칭찬한다.”

“깡충 극장에서 망신 안 당하려고, 잘하는 모습 보여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실력이 쑥쑥 늘었지.”

“난 그것보다, 왜 이 정도 발음도 제대로 못 하냐는 식으로 가만히 쳐다보는 써한 눈빛 때문에….”

말하던 길우성은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써한 어디 갔어?”

“대기실에.”

강보배가 대기실 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급한 연락 온 것 같던데?”

타악. 대기실로 들어온 한율은 문에다 등을 댔다. 그러곤 조금 전 계나리가 보낸 영상과 사진을 재차 확인했다.

‘대체 어떻게….’

매니저의 차를 운전하던 JE가 사고 직전에 봤다던 하얀 동물.

영상 분석전문업체에서 조금 더 또렷하게 살린 블랙박스 영상 속 동물은 언뜻 보면 토끼 같았다. 뒤로 젖힌 기다란 귀, 작은 꼬리. 그러나 다리와 발은 설치류처럼 짧고 작았다. 끝도 나무를 잘 타는 다람쥐처럼 살며시 구부러진 형태.

한율은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사진을 확대해봐도 축소해봐도, 눈꼬리가 살짝 쳐진 커다란 눈의 생김새 또한 그것과 판박이였다.

‘왜 이 마물이 지구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거지?’

본래 세상, 건강한 나무의 수액을 주식으로 삼으며, 병든 나무를 기가 막히게 판별하던 작고 약한 마물.

『꺄아아앙…!』

거센 태풍이 몰아치던 날에 나무를 타다, 아련한 울음소리만 남기고 빙글빙글 날아가 버린 그 마물과 똑같이 생겼다.

동일 개체는 아니겠으나, 한율은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졌다.

‘설마… 벌써 게이트가 열렸나?’

말이 되지 않는다. 길우성의 게이트 코팅 능력 없이 소수의 각성자만 드나들 수 있었던 게이트를, 어떻게 이 약한 마물이 건넌단 말인가? 애초에 게이트가 열렸다면 세상이 이렇게 잠잠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본래 세상과 연결된 게이트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열릴 예정.

‘굉장히 닮은…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외래종일 수도 있어. 하지만 왜 하필….’

머릿속에 온갖 가정이 떠올랐다. 그중 가장 그럴싸한 가정은 두 가지.

‘내가 넘어올 때 같이 휩쓸려 넘어왔거나.’

2021년 7월에 열리는 최초 게이트보다 더 일찍 열린 미지의 게이트가 있거나.

‘후자의 경우엔 그곳과 연결된 또 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뜻이 되는데…. 두 가정을 비교하면 전자일 가능성이 조금 더 커. 하지만 어떻게? 다른 가정과 비교해서 클 뿐이지…. 아니,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야.’

차원을 넘어오는 마법, 시간 마법, 누군가의 육신에 깃드는 마법. 이 세 가지는 제각기 다른 마법이지만, 처음 지구로 넘어왔을 땐 차원 마법과 시간 마법을 접목해 사용했다. 뒤의 마법은 연계 발동되도록 설계했고.

‘그러니 그때 휩쓸렸다면….’

이 하얗고 작은 마물 또한 한국전쟁 한복판에 떨어져, 70년 가까이 살았다는 뜻이 된다.

“…….”

이 마물, 수명이 몇 년이더라.

찾아야 해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찾아야 해.’

JE가 이걸 목격한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한율은 사고가 난 장소를 지도로 살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고, 먹이가 많은 곳.’

가까운 곳에 효창공원이 있었다.

똑똑. 누군가 대기실 문을 노크했다.

‘그런데 왜 하필 JE 앞에 나타난 걸까. 혹시….’

한율은 생각에 잠긴 채 문을 열었다. 프로덕션 측 스태프였다.

“한율 씨, 스탠바이할게요.”

“네.”

내 흔적을 찾아다니는 건가?

그날 밤, 한율은 잠깐 드라이브 좀 다녀온다며 숙소를 나섰다.

어둠에 잠긴 효창공원. 늦은 시간임에도 데이트하는 커플이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한율은 안경과 검은색 마스크, 모자, 티셔츠의 후드까지 푹 눌러쓴 채 나무가 우거진 곳을 살피며 어슬렁거렸다. 한 손엔 마나를 휘감아 일부러 기운도 흘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드문드문 보이던 인적이 뜸해지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달냥을 데려올 걸 그랬나.’

우웅. 유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형.”

-[한율아, 슬슬 들어오는 게 좋지 않을까? 내일… 아니지.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이지. 오늘도 아침 일찍 뮤비 촬영 있잖아.]

어느새 새벽 2시.

“네, 금방 들어갈게요.”

통화를 끊고선 CCTV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그 마물이 좋아할 법한 건강한 나무에다 마력으로 작은 흔적을 새겼다.

‘근처에 있다면 내 마력의 기운을 감지하고 찾아오겠지.’

다음 날. M/V 촬영을 마친 한율은 이번엔 달냥을 데리고 다시 공원을 찾았다.

웅성웅성. 찰칵찰칵.

“……?”

오늘 새벽, 마력으로 흔적을 새긴 나무 주위에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귀여워~.”

“웬일이야, 이게?”

그것도 핸드폰으로 무언가의 사진을 찍으며.

설마.

한율의 발길이 급해졌다. 므앙? 고양이 전용 하네스 산책 줄을 착용한 달냥도 빠르게 걸으며 앞장섰다.

“어? 고양이 또 왔다.”

“산책냥인가 봐.”

“친구들 있어서 왔어?”

빨간색 하네스를 착용한 검은 고양이의 등장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흐뭇한 얼굴로 비켜주었다.

우뚝 선 달냥이 나무 위를 보며 울었다.

므웨오옭.

“…….”

한율은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나무에 길고양이와 까마귀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조금 굵직한 가지엔 고양이들이, 높고 얇은 가지엔 까마귀들이. 까마귀 중엔 예전에 훈련한 개체도 섞여 있었다.

까악.

주변에 살던 마나에 예민한 개체들이 하나둘 모여 이리된 모양.

‘웬 엉뚱한 녀석들만.’

그 마물은 몸이 조금 튼튼하고 지구력도 좋지만, 힘과 공격성은 낮고 겁이 많았다. 그러니 마력을 감지했어도, 길고양이와 까마귀에게 공격당할까 봐 멀찌감치 떨어져 숨었을 확률이 높다.

이곳에 있다면.

킁킁. 달냥이 한 걸음, 두 걸음 나무로 다가가며 냄새를 맡았다. 그 순간, 달냥이 등장했을 때부터 겁먹고 눈치를 살피던 고양이들이 황급히 반대쪽으로 내려가 도망쳤다. 파바밧! 고양이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까마귀들도 일제히 날았다. 푸드덕!

구경하던 사람들도 화들짝 놀랐다.

“엄마, 깜짝야…!”

“다 도망갔어….”

몇 명은 귀여운 볼거리를 날려버린 한율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힐끗거렸다. 어떤 커플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검은색 고양이가 존나 세다니까.”

“집사가 같이 있어서 도망간 거 아냐?”

“치사하게 보호자를 데려오냐! 두고 보자!”

“큭큭.”

한율은 슬슬 흩어지는 사람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넘기며 주변을 살폈다. 툭. 나무에다 두 앞발을 올리고 냄새를 맡던 달냥이 한율을 돌아보았다.

므앙.

“가?”

뫙.

“그래, 딴 데 둘러보자.”

므앙.

강아지처럼 산책 나온 달냥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여성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집사랑 대화해.”

“귀여워~.”

“저기, 고양이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아니요, 할퀼 거예요. 죄송합니다.”

“네….”

한율은 꾸벅 인사하곤 걸음을 옮겼다. 나무에 마력으로 새긴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수고했어, 달냥.”

므앙.

달냥을 데리고 공원을 두 바퀴나 돌아봤지만, 이번에도 허탕.

한율은 달냥을 안전띠 채운 이동장에 넣고선 차 운전석에 올랐다. 답답한 마스크와 모자, 안경을 벗으며 한숨 한번 쉬곤 시동을 걸었다.

‘여기엔 없고. 대체 어디로 간 거지?’

그래도 70년 가까이 살았다면 이젠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데엔 도가 텄을 것이다. 각종 위험 요소도 체득했을 테고.

‘전쟁기념관이랑 용산가족공원 쪽도 둘러보자.’

* * *

“나 진짜 무서워 죽겠다, 지은아. 무슨 방법 없을까?”

17일 오후. JE는 집으로 오자마자 하소연하는 매니저를 보며 목 뒤를 긁적였다.

“내가 무슨 무속인도 아니고….”

며칠 전, JE는 운전에 대한 감을 찾기 위해 매니저의 자가용을 빌렸다. 그리고 담벼락을 들이받았다. 미안한 마음에 수리비는 물론이고 좋은 선물까지 줬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수리를 끝낸 차를 매니저 숙소로 가지고 온 다음부터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엔 보닛에 고양이가 들어간 줄 알고 열어서 살펴봤다? 없어. 트렁크에도 없고. 그런데 어젯밤엔 숙소에서 그 소리가 나는 거야. 나뿐만이 아니야. 다른 매니저들도 들어서, 자다 말고 다 같이 숙소 안을 샅샅이 뒤져봤거든?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 기척도.”

“…알았어요.”

JE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숙소로 같이 가봐요.”

“고맙다, 지은아. …어?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 피어싱 안 했네? 안 하면 허전하다던 그거 말이야.”

“참 빨리도 알아차리네요, 형.”

서한율이 선물로 준 피어싱은 계나리가 가져갔다. 보호 마법을 다시 새겨야 한다며.

딩동.

“아, 오셨나 보다.”

MBS <혼자서도 잘 살아요> 스태프들이 JE의 집을 방문했다. 내일이 1차 촬영이라, 그들은 JE와 매니저에게 집안에 설치될 카메라 위치와 주의사항, 팁 몇 가지를 설명했다.

“그럼 내일 새벽에 매니저분이랑 방문해서 조용히 카메라 설치할 테니까, 발견해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스태프들을 보낸 뒤, JE는 매니저와 함께 매니저 숙소로 향했다.

스케일 엔터 남자 매니저 4명이 함께 사는 숙소는 오래되고 평범한 빌라로, 스타믹스가 데뷔 초에 살았던 곳이기도 했다.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던 JE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 내가 보증금 빌려줄 테니까 엘리베이터 있는 좋은 집으로 이사해요.”

“사양할게. 이거 회사 건물이잖아. 나가서 혼자 살면 돈이 더 나가.”

“…연애할 생각은 접었어요?”

“꼭 혼자 살아야 연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렴. …그렇다고 지금 내가 연애 중이란 건 아니지만.”

삐리릭, 철컥. 매니저가 잠긴 문을 활짝 열었다. 진한 방향제 냄새, 향수 냄새가 훅 풍겼다.

“처음 그 소리를 들은 장소가 여기 이 침대야. 시간은…”

매니저 숙소엔 아무도 없었다. JE는 매니저의 경험담을 다시 들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딱히 오싹하거나 이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끼웅, 끼앙? 조금 귀여운 소리였는데, 실체가 보이진 않고 계속 소리만 들리니까 점점 소름이 끼치는 거야. 어으….”

“…….”

“저기, 혹시….”

세탁기 안까지 살펴보던 JE는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매니저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사고 났을 때… 쳐버린 거 아닐까?”

“내가 쳐서 죽인 동물 원혼이 형한테 붙었다고요?”

매니저가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아니, 친구한테 말했더니 그런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아니에요. 쳤으면 그 느낌이랑 흔적이 남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리고 여기에서도 별다른 느낌이 안 드네요.”

“그래? 그럼 진짜 살아있는 동물이 들어온 건가? <선데이 동물>에 제보라도 해야 하나….”

매니저는 심각한 얼굴로 침대 아래나 옷장 위,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동안 JE는 다른 추측을 했다.

‘서한율이 블랙박스 영상을 요구한 것과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아, 지은아. 너 원제로의 정민솔이랑 우리 회사랑 계약 불발된 거 알지?”

“네, 기사 봤어요.”

울음소리 내는 동물 찾는 건 포기했는지, 매니저가 손을 탁탁 털었다.

“진짜 불발된 이유도 알아?”

“아니요?”

자신이 실장에게 정민솔 느낌 안 좋다고 말한 것 때문에 계약이 어그러졌다곤 생각되지 않는다.

영입하면 바로 CF나 프로그램 섭외, 이런저런 행사 수수료로 적잖은 돈을 벌 수 있는데, 불확실한 누군가의 감 하나만 믿고 계약을 접는다고? 엔터테인먼트도 이윤을 추구하는 회산데?

둘 말곤 아무도 없는 집인데도, 매니저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췄다.

“대표님이 점을 봤는데, 당분간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랑 도장 찍지 말라고 그랬대. 느낌 안 좋다고.”

“…점이요?”

“응. 난 우리 대표님 그런 거 전혀 안 믿을 줄 알았는데. 하하하.”

“…….”

다음 날. JE는 MBS <혼자서도 잘 살아요> 스태프들이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이래 봬도 데뷔 6년 차. 공중파 관찰 예능은 처음이지만, 웹 예능이나 스타믹스 자체 콘텐츠 등으로 자주 했던 포맷과 비슷해서 전혀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보는 사람들을 위한 혼잣말도.

“어, 금방 내려갈게.”

외출 준비를 마친 JE는 유호의 전화를 받곤 1층으로 내려갔다. 곧 빌라 입구 근처에 차를 세워둔 채 기다리던 유호와 만났다. <혼자서도 잘 살아요> 스태프들은 조금 떨어져서 촬영 중.

JE는 살며시 손을 든 채 유호에게 다가갔다.

“이게 네 차야?”

“응.”

타악. 가볍게 손을 맞부딪치며 인사하곤 유호의 차 외관을 살폈다.

“어째 자잘한 흠집이 많다? 여기도 긁혔고, 이쪽은 조금 찌그러졌는데?”

유호가 슬픈 얼굴로 웃었다.

“우리 멤버들 운전 연습용으로 굴려서 그래.”

“네 차로?”

“응. 우리 멤버 중에 보배랑 라이언 빼고 다 면허 땄거든? 걔네가 다 내 차로 연습했어.”

“그럼 가끔 차도 빌려주고 그래?”

“응.”

JE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야, 너 같은 좋은 리더가 어디 있냐?”

“가는 길에 너도 운전해볼래?”

“어….”

JE는 지난주 매니저의 차를 몰다가 낸 사고를 떠올렸다.

“괜찮아. 나까지 네 차에 흠집 내고 싶진 않다. 운전이 미숙해서, 당분간은 다른 사람 태우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아.”

“면허 딴 지 얼마나 됐는데?”

두 사람은 차에 탔다. 유호의 차 안에도 이미 <혼자서도 잘 살아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3년 정도. 그래도 지난주에 감 잡으려고 매니저 형 차 빌려서 운전해봤거든? 골목길을 천천히 가는데.”

JE는 안전띠를 매면서 이실직고했다.

“갑자기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뭔가가 앞으로 휙 튀어나오는 거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무도 없는 담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던 유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됐어?”

“그대로 담벼락에다 쾅.”

“안 다쳤어? 괜찮아?”

“정밀 검사받아봤는데, 멀쩡하대.”

“천만다행이다, 진짜. 운전할 땐 늘 조심해야 해. 사각지대에서 어린아이가 갑자기 나온다고 생각해봐.”

하아.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그 튀어나온 건 뭐였어?”

“블랙박스에 찍힌 거 한번 봐볼래?”

유호의 눈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심령사진은 아니지?”

“환한 대낮에 심령사진이 그렇게 쉽게 찍히겠냐.”

JE는 어젯밤 서한율과 통화 이후, 서한율이 보내준 사진을 핸드폰에 띄워서 유호에게 보여주었다.

“귀엽게 생겼는데? 설마 얘도 차로 친 건….”

“의심의 눈빛 거둬. 절대 아니야. 느낌도 없었고 흔적도 없었어.”

“그런데 이거 정말 귀엽게 생겼다. 기니피근가?”

유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기엔 귀가 길고 털이 풍성한데. 아니면 토끼?”

“정확히 무슨 동물인지는 모르겠는데, 집에서 탈출했다가 나 때문에 놀라서 더 멀리 도망친 건 아닐까 걱정이다. 그래서.”

JE는 어젯밤, 서한율에게 들은 부탁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꼭 찾고 싶은데. 도와주시겠어요, 선배님?』

“SNS에 올려서 찾아볼까 생각 중이야.”

죽었나?

20일 아침.

한율은 어젯밤에 JE가 SNS에 올린 게시글을 확인했다.

[5월 12일 효창동에서 본 이 동물을 찾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아닙니다. 최근에 비슷한 동물을 목격하셨다면 댓글로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D]

게시글엔 스타믹스 매니저의 차 블랙박스 영상에서 순간 포착한 마물의 사진도 함께 실렸다.

처음에 한율은 이 마물을 조용히 찾으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어서 정체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지, 지구인의 눈에는 토끼 비슷한 동물로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리 마법 실력이 대단한들, 서울에서 이 작은 마물 한 마리를 찾는 건 무척 어렵다. 그래서 영향력이 큰 매체를 이용하기로 했다. 인기 많은 예능 프로그램, 인기 많은 아이돌의 SNS.

‘어차피 사람들에게 쉽게 잡히진 않을 테니, 목격담만이라도 잘 추리면 수색 범위를 좁힐 수 있어.’

어젯밤, 한율은 JE와 통화 직후 달냥을 데리고 스케일 엔터 남자 매니저 숙소를 찾았다. JE가 적당한 핑계로 그들을 모두 밖으로 불러내서 안엔 아무도 없었다.

달냥은 그곳에서 이질적인 생물의 냄새를 맡곤,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꼬리를 낮게 흔들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막혔다. 도중에 증발이라도 한 듯 흔적이 끊겼다. 스타믹스 매니저의 자가용과 빌라 주변도 샅샅이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왔을 때처럼 또 다른 차를 타고 이동한 건 아닐까.

‘만에 하나 사람에게 잡혀 연구소 실험체가 돼도, 신종 동물 혹은 돌연변이로 치부되는 데에 그치겠지만….’

그래도 찾고 싶었다.

곁에 둬봤자 별 도움 안 되는 작고 약한 마물일지라도.

우웅.

계나리로부터 전화.

-[댓글에서 그럴싸한 목격담 몇 가지를 추려봤는데 대부분 5월 이전이었어요. 방송에 손지은 씨가 언급하는 내용이 나가야 조금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올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동물… 아니, 이 마물. 정말로 오빠가 마법을 배운 세계에서 넘어온 거 맞아요?]

“생김새도 그렇고, 달냥이 냄새를 맡고 묘한 반응을 보였어. 맞을 거야.

-[그럼 혹시 번식 가능성은….]

“그 마물은 생식기능이 없어. 그쪽 세계에서 특수한… 아무튼,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돼.”

-[그래서 잠잠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특이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어쩌다 사람들 눈에 띄었어도 ‘누가 롭이어 토끼를 키우다 버렸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을 테니.]

한율은 시간을 확인했다. 곧 회사로 출근할 시간이었다.

“그럼 이만 끊을게. 쉬엄쉬엄 부탁해.”

-[넵!]

한편 그 시각, 차남석은 SBC <너의 집> 1차 녹화를 위해서 아침 일찍 청담동 샵을 찾았다. 위이잉. 시끄러운 헤어드라이어기 소리에도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단장이 끝났다.

“컴백 준비로 정말 피곤한가 보다.”

차남석은 머쓱하게 웃었다.

“여러 콘텐츠를 미리 앞당겨서 찍느라 정신이 없네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촬영 수고해.”

“네, 감사합니다.”

차남석은 샵에 마련된 피팅룸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낯익은 직원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한 뒤 샵을 나와, 매니저 조유찬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진영 씨가… 없네? 주문이 많이 밀렸나?”

허진영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러 간 상태. 조유찬이 허진영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차남석은 가볍게 어깨와 발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예비 키 없어요?”

“있어. 일단 문 열어줄게.”

삐빅. 뒷좌석 문이 천천히 자동으로 열렸다. 마침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허진영이 보였다.

“허억, 허억…. 죄송합니다. 가게에 이상한, 헉, 진상 손님이 앞에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조유찬이 핸드폰 전원 버튼을 가볍게 누르며 갸웃했다.

“베이커리 카페에 진상 손님이요?”

“자기가 굉장히 인기 많고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매니저인데, 촬영 장소로 협찬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것 같더라고요. …남석 씨, 여기요.”

부스럭. 허진영이 봉투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꺼내 내밀었다.

“고마워요, 형.”

뛰면서도 균형을 잘 잡았는지 커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아 깨끗했다. 차남석은 뚜껑을 열어서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신 뒤 차에 탔다.

조유찬과 허진영도 각각 조수석과 운전석에 올라, 봉투에서 커피를 꺼냈다.

“남석아, 뒷문 닫을게.”

“네.”

천천히 문이 닫혔다. 차남석은 커피를 홀더에 꽂아놓곤 안전띠를 맸다. 철컥.

“어디로 가면 되나요, 대리님?”

“잠시만요. 주소가….”

조유찬이 <너의 집> 제작진에게 받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경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꺙….

“……?”

샌드위치 포장을 뜯던 차남석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내비게이션 음성이 흘러나올 때, 동물 울음소리 비슷한 게 겹친 것 같았다.

그것도 뒤쪽에서.

“왜 그래요, 남석 씨?”

뒤쪽을 기웃기웃 살피는 차남석을 보곤 허진영이 물었다. 스타일리스트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간 터라, 차엔 그들 셋뿐이었다.

‘잘못 들었나?’

차남석은 자세를 바로 하곤 마저 샌드위치 포장을 뜯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너의 집>은 의뢰인의 요구에 맞는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오늘 녹화는 송파구 여기저기에서 이뤄졌다. 차남석은 고정 출연자와 함께 집을 소개하고, 안을 살피며 설명하거나 적절한 리액션을 취하며 열심히 일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녹화는 오후 4시가 지날 무렵 끝났다.

“시간이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괜찮으면 같이 밥 어때요? 이 근처에 정말 육개장 맛있게 하는 데가 있는데.”

“죄송합니다, 선배님. 이제 다른 스케줄을 가봐야 해서요.”

“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럼 다음에.”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차남석은 고정 출연자, <너의 집> 스태프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곤 대기 중이던 차에 탔다.

“수고했다, 남석아.”

“수고했어요, 남석 씨.”

“감사합니다. 시간, 안 늦겠죠?”

5시부턴 어스래빗 자체 콘텐츠 촬영이 있었다.

“괜찮을 거야. 아, 잠깐만. 나 PD하고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진영 씨도 따라와요.”

“네.”

타악.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차남석 혼자만 남았다.

…후우. 그제야 차남석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의 집>은 작년에도 출연했었지만, 공중파 예능에 나오는 것 자체가 오래간만이라 솔직히 조금 긴장했었다.

차남석은 옆에 있는 가방을 집어서 손을 넣었다.

‘일단 멤버들한테 녹화 끝났다고 알려야….’

툭. 몽실몽실.

“……?”

핸드폰과 화장품 파우치, 사과패드만 들어있어야 할 가방 안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무언가가 잡혔다. 달냥을 쓰다듬었을 때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덩치가 더 작고 털이 길다.

‘설마.’

차남석의 심장이 덜컥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은 사이, 안티가 가방에다 죽은 동물 사체라도 넣은 건 아닐까.

차남석은 천천히 손을 빼며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덥석. 발톱 끝이 구부려진 아주 작은 두 발이 차남석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것도 모자라 연한 분홍색 코를 갖다 대며 냄새를 맡는다. 킁킁.

“…….”

차남석의 표정이 멍해졌다.

‘토끼? 기니피그?’

커다랗고 새카만 눈망울과 새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살짝 젖힌 채 늘어진 긴 귀가 마치 토끼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얼굴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몸집도 작고 다리도 짧았다.

‘발 모양이 꼭 쥐 같….’

전체적으로 귀여운 생김새였으나, 차남석은 ‘쥐’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화들짝 질색하며 손을 강하게 털었다.

“이런 씨, 뭐야 이게…!”

꺄앙…! 막 차남석이 낀 팀 반지를 핥으려던 동물이 앙증맞은 비명을 지르며 날았다. 툭. 반대쪽 차창에 한 번 부딪히곤, 아래로 데굴데굴, 풀썩.

…….

‘…죽었나?’

힘없이 스륵 눈을 감은 새하얀 동물은 미동이 없었다.

차남석은 그 동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앞으로 손을 더듬거렸다. 베이커리 카페 로고가 새겨진 봉투가 잡혔다.

‘아니, 아직 살아있어.’

호흡에 따라 몸통이 완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남석은 조심조심 봉투로 그 동물을 감싸서 휙 뒤집듯이 안으로 넣었다. 그러곤 도망치지 못하도록 적당히 매듭지었다. 질식해 죽을 수도 있으니 작은 공기 구멍도 만들어주었다.

‘분명히 숙소에서 가방 챙길 때만 해도 이런 건 없었는데… 대체 언제 들어간 거지? 무슨 동물이야?’

토끼치곤 작고 쥐치곤 크다.

차남석은 항균 물티슈로 손과 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까지 모조리 닦았다.

‘정확한 종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털이 깨끗한 걸로 봐선 누가 키우다가 버렸거나 잃어버린 거겠지. 동물보호소에 넘기자.’

새벽 1시. 콘텐츠 촬영을 마친 어스래빗 멤버들이 숙소로 돌아왔다.

“아이고오, 피곤하다아.”

“달냥아아, 오빠들 왔다아.”

길우성이 큰소리로 달냥을 찾았다. 강보배와 차남석이 사용하는 방에서 달냥이 불쑥 나왔다.

“우리 달냥, 부르니까 왔쪄요… 옹?”

달냥은 장난감 낚싯대를 든 길우성이 아닌, 한율에게 달려와 두 앞발을 들어서 덥석 다리를 잡았다.

므앙, 므아앙.

“왜 그래, 달냥?”

므아앙. 달냥이 휙 몸을 돌려 다시 강보배와 차남석의 방으로 향했다.

“……?”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달냥을 따라갔다. 방 주인들도.

“우리 방엔 왜…. 헉.”

“…달냥, 이게 무슨 짓이야.”

방바닥에는 차남석의 가방이 패대기쳐져 있었다. 달냥이 가방 위로 올라가 앞발로 벅벅 긁었다. 이미 잔뜩 헤집고 긁어 놓아서 가방은 박음질 된 부분이 처참하게 해져 있었다.

므앙.

“아니, 원래 이런 짓을 하던 애가 아닌데….”

강보배가 당황한 얼굴로 차남석과 한율을 번갈아 보았다. 한율은 가만히 달냥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차남석에게 물었다.

“형. 혹시 오늘 <너의 집> 녹화하러 갈 때 이 가방 썼어요?”

“어.”

차남석이 성큼 달냥에게 다가가 몸을 낮췄다. 그러곤 달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낯선 냄새 나서 그러냐?”

뫙.

“낯선 냄새요? 무슨….”

차남석이 달냥이 망가뜨린 가방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오늘 토끼처럼 생긴 이상한 게 이 가방에 들어갔었거든.”

“……?!”

덥석. 한율은 차남석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곤 마물이 찍힌 사진을 핸드폰에 띄워 보여주었다.

“혹시, 이렇게 생겼어요?”

차남석은 의아한 눈으로 한율을 한번 보곤 핸드폰을 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하더니 사진을 확대했다.

“어, 이거랑 비슷하게 생겼어. 네가 아는 동물이야?”

“이거 지금 어디에 있어요?”

“매니저 숙소. 내일 아침에 진영이 형이 동물보호소에 데려가기로… 야, 서한율?!”

한율은 황급히 자신의 방에서 차 키를 챙기고 나왔다. 그러곤 졸졸 따라오는 달냥을 덥석 안고선 차고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쿵. 문이 닫히고, 한율의 발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아직 거실에 있던 멤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쟤 새벽에 달냥이 데리고 어디 가?”

WB래빗 엔터테인먼트 남자 매니저 숙소.

흐. 커다란 성인 남성 셋이 철장 속 동물을 들여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들은 지난달에 WB래빗에 입사한 새 매니저들이었다.

“종류가 뭔지는 몰라도 참 귀엽게 생겼네요. 우리가 직접 키우면 안 되나?”

“그건 안 돼요.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거 대체 무슨 종이예요? 롭이어 토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당근을 물고선 꿈쩍하지를 않지?”

“글쎄요…. 턱 빠지겠다, 하양아.”

딩동.

“치킨 왔나 보네요.”

허진영이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나갔다.

덜컹.

“어? 한율 씨가 여기는 어쩐 일로….”

므웨오옹. 메이크업도 지우지 않은 채 찾아온 한율의 품에는 검은색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남석이 형이 맡긴 동물, 어디에 있어요?”

그 순간, 하얀 마물이 물고 있던 당근 조각을 툭 떨어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그마한 두 앞발이 철창을 부여잡았다.

끼아앙….

잠시 후, 한율은 JE에게 톡을 보냈다.

[SNS 글 내리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혼자서도 잘 살아요> 측에도 해당 내용 편집 부탁드립니다. :)]

우리 집 갈래?

한율의 추측은 이렇다.

마물이 마법의 기운을 흘리는 스타믹스 JE를 발견하고 쫓는다. 그러다 그가 운전하는 차에 치일 뻔하고, 사고 수습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차 안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차는 카센터를 거쳐 스케일 엔터 남자 매니저 숙소로 향한다.

스타믹스 매니저를 따라 숙소 안까지 들어갔지만, 그 안에도 JE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곳을 나왔다가, JE의 체취가 느껴지는 또 다른 차에 탑승한다.

20일 새벽, 다른 스타믹스 매니저가 빌라 주차장에 세워둔 밴을 이끌고 스타믹스 숙소, 이후 청담동의 샵으로 향했다고 했으니 아마 그 차일 것이다.

어쨌든 그 차를 탄 마물은 청담동의 샵 거리에서 하차, 주변을 방황하다가 WB래빗 차량을 발견하고 그 안에 탄 게 아니었을까.

“이거… 토끼야?”

한율은 작은 마물을 명상센터로 데려왔다. 달냥과 마물이 서로 잔뜩 경계하기도 하고, 70년 가까이 지구에서 살아온 마물의 상태를 차분히 살피기 위해서.

“토끼치고는 조금 묘한데….”

이해원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마물을 바라보았다. 새벽에 갑자기 찾아온 것도 의아한데, 웬 철장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한 시간 만에 나오자 어리둥절한 것도 당연했다.

“토끼 발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마물이에요. 딱히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녀석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요.”

이해원이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마물?”

“당분간은 센터에 둘 테니, 철장 문은 열지 마세요. 굉장히 빨라서, 자칫 밖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다시 잡기가 힘들거든요.”

“먹이는?”

“나무 수액이 주식이기는 한데, 한동안은 안 먹어도 괜찮으니까 이쪽 통해서 물만 하루에 한 번 갈아주세요.”

“응.”

한율은 화분이 잔뜩 놓인 곳 옆에다 철장을 두었다. 그리고 보송보송한 수건 한 장을 접어서 철장 구석에다 깔아주었다. 마물은 도망치지 않고 얌전히 지켜보다가, 깔아놓은 수건에 자리 잡고 웅크렸다.

“그런데 얘 되게 귀엽게 생겼다. 이름이 뭐야?”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다음 날 아침.

“이름, 이름이라….”

명상센터로 찾아온 JE는 하얀 마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서한율이 그들에게 작명을 부탁한 까닭이었다.

“해원 씨는 생각해놓은 거 있어요?”

“털이 새하야니까 백설기나 찰떡이요. 구름이도 괜찮을 것 같고… 어렵네요.”

“나중에 나리 씨 오면 그때 같이 의논할까요?”

“네. 그리고 말 편하게 놓으세요, 선배님.”

“그래, 해원아. 너도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기다렸다는 듯 선뜻 말을 놓는다. 이해원은 소리 내어 웃곤 노트북을 열었다.

“네.”

“그런데 이 녀석, 계속 여기에서 키울 거래?”

“한율이 말론 당분간만이라던데요?”

“흐음.”

JE는 철장 안으로 살며시 손가락을 넣었다. 포개놓은 수건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있던 마물이 킁킁 냄새를 맡으며 다가왔다. 그러곤 JE의 손가락에 작은 앞발을 툭 올려놓는다.

“…야, 내가 널 차로 쳐서 죽일 뻔한 놈이야.”

마물이 고개를 갸웃하며 커다란 눈을 끔뻑거린다. JE도 고개를 기울였다.

“너 우리 집 갈래?”

쫑긋, 끔뻑끔뻑.

한편 그 시각, MBS K <주말 아이돌> 스튜디오로 향하는 어스래빗 차 안.

차남석이 한율에게 물었다.

“어제 그거, 어디로 데려갔어?”

“병원에 데려갔다가, 안전한 곳에 맡겼어요.”

“병원? 네가 왜? 주인이 누군데?”

한율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거, JE 선배님이 차로 칠뻔했던 동물이에요. JE 선배님이 SNS에다 사진 올리면서 찾고 싶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여기요.”

“어….”

차남석이 얼떨떨한 얼굴로 JE의 SNS를 보았다. JE가 지난번에 올렸던 글은 삭제되었다. 대신에 오늘 아침, 새로운 글을 올렸다.

[무사히 찾았습니다! 다행히 건강하네요ㅎㅎ #우리집갈래 #이름짓는중]

마물의 얼굴 일부를 크게 찍은 사진도 함께. 롭이어 토끼와 퍽 닮아서, 사람들은 결코 이게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마물이란 걸 꿈에도 모를 터다.

“최근에 청담동에서 본 것 같다는 목격담이 들어왔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형이 그쪽에 갔었잖아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제가 매니저 숙소로 가서 확인한 거였어요. JE 선배님도 사진을 보더니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설명을 들은 차남석의 표정이 흐려졌다.

“난 순간 설치류인 줄 알고 질색하면서 내팽개쳐버렸는데…. 다친 데는 없었어?”

“네. 건강하더라고요.”

“다행이네. 그나저나 하필 우리 차에 타다니, 우연 한번 기가 막힌다.”

“그러게요.”

“그럼 이거 JE 선배님이 키우는 거야? 주인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잖아.”

우웅.

마침 JE로부터 톡이 왔다.

-[(사진)]

-[이놈 내가 데려가서 키우면 안 되나?]

“…….”

마물을 키우고 싶다고?

잠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 한율은 핸드폰 전원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화면이 꺼졌다.

“일단은 선배님이 보살피지 않을까요? 주인이 나타나면 그건 그때 생각할 문제고.”

차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앞자리에서 길우성이 감탄사를 냈다.

“오, 민준 선배님이랑 수재 선배님 전역 기사 떴다. 크으, 늠름하다.”

“메인에 떴어?”

“엉.”

차남석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한율도 핸드폰 전원 버튼을 다시 누르곤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연예뉴스란 메인.

[오늘 21일 블블 수재·민준 군 복무 마치고 전역! 각종 러브콜 쇄도]

[인기 보이그룹 블랙블러드의 멤버 수재와 민준이 오늘 21일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사진=앗싸일보)

블블에서 첫 타자로 입대한 수재와 민준은…(중략).

한편 민준은 2018년부터 배우 이희우와 교제 중이다.]

-벌써?

-ㅊㅊ

-이희우 마중 나감?

ㄴㄴㄴ집에서 따로 만나겠죠.

-이제 겨우 둘.. 블블 완전체 언제 보냐 진짜ㅜㅜ

ㄴ아직 제대하려면 1년 이상 남은 애들도 있고.. 소속사도 달라서 완전체 활동은 더 오래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ㅠㅠ

-남돌들 제발 동반입대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가주라.. 팬들은 우리 오빠들 언제 완전체로 컴백하나 기다리다 애 엄마 된다.. 나 결혼 날짜 잡혔어 레알루..

ㄴ축하합니다ㅋㅋㅋㅋ

비슷한 댓글을 봤는지, 강보배가 진지한 얼굴로 읊조리듯 말했다.

“우리, 나중에 동반입대 할까?”

“안 돼.”

유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너흰 천천히 따라와.”

“그러면 완전체 활동이 멀어지잖아.”

“여덟 명 중 한두 명 정돈 빠진 채 활동해도 괜찮아. 믿는다.”

박가람이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벌써 그런 이야기 하지 마오, 슬프오.”

“헐? MOHE 멤버들, 안인섭 빼고 네 명 전부 입대했대.”

“잉? 언제?”

“1, 2주 정도 됐다는데? 팬들한테도 일언반구 없이 아주 조용히 들어가서 이제야 알려졌나 봐.”

“MOHE는 정말 끝났구나. 이래서 사람이 그릇된 길로 가면, 언제고 그 벌을 받게 되어 있다니까?”

“그런데 MOHE 멤버 여섯 명 아니야?”

“해원이가 탈퇴했잖아. 그러니 다섯이지.”

우웅.

한율과 길우성, 차남석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한 민준과 수재가, 세 명을 단톡방으로 초대했다.

-[다음 주에 뭐 먹을까 얘들아ㅎ]

-[(이모티콘)]

그날 밤, 10시 50분.

뮤닷 <런던래빗> 2화가 방송되었다.

지난주 방송에선 런던 도착 이틀째 정오, 유호와 길우성이 먼저 왔던 6인과 무사히 합류했다. 그들은 느긋하고 평화롭게 런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돌연,

[보배가 안 보여…!]

길치에다 방향치인 강보배가 사라지는 돌발 사태가 벌어지며 끝났었다. 버킹엄 궁전과 주변을 신나게 구경하면서 걷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강보배의 모습이 셀캠에 고스란히 찍혔다.

[다 어디 갔지…?]

VJ를 포함한 스태프들도 안 보이는 상황. 신났던 강보배의 얼굴이 멍해지더니, 그의 동공이 두려움으로 흔들린다.

[다 어디 갔어…?]

그 모습은 지난주 이야기를 축약한 오프닝 말미를 장식했다.

띡, 띠딕, 띡.

자막.

[제작진 심장도 철렁 내려앉게 만든]

[강보배 실종(?) 사건 5분 전]

“아니, 저기 기념비 기준으로 뒤는 궁전이고, 앞으론 가운데 길 있고, 그 양쪽으로 정원이 있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저기에서 혼자 엉뚱한 길로 빠질 수가 있냐고.”

어스래빗 숙소 거실. 함께 본방송을 보던 이건우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길이 복잡한 것도 아닌데.”

“사실 나도 조금 이상했어. 분명히 궁전으로 갈 때 왼쪽에 있던 호수가 끝나면서 도착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까 또 왼쪽에 호수가 있는 거야.”

“이상한 걸 느꼈으면 멈췄어야지.”

“내 기억이 잘못된 건 줄 알았지.”

“자랑이다.”

“이 형, 그 흉가에 혼자 보냈으면 어쩔 뻔했어?”

“지금 이 자리에 일곱 명만 앉아있었을지도 몰라.”

“무서워…!”

다행히 멤버들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 강보배는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멍하니 셀캠만 든 채 서 있다가 멤버들에게 잡혔다.

방송에서 박가람이 강보배의 등짝을 때리며 혼낸다.

[아이고, 이 화상아! 내가 그렇게, 형아들이랑 동생들 놓치지 말라고, 어?]

[아얏, 아.]

[길 동생, 연행해. 두 번 다시 길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잡아.]

[네, 박 형. 강 형, 이번엔 나 잃어버리면 안 돼.]

[걱정시켜서 미안….]

프로그램 톡창엔 웃음 의성어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향치와 길치는 매번 헤매면서도, ‘이 길이 맞을 것이다’란 이상한 확신을 가진 채 움직이는 게 특징임. 내 얘기임.

-ㅋㅋㅋㅋㅋㅋ

-등짝 스매싱ㅋㅋㅋㅋㅋ

-또 잃어버릴까 봐 멤버 가방끈 잡고 걷는다ㅋㅋㅋㅋ

자막과 짧은 영상.

[※이후 보배는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한 번, 켄싱턴궁전에서도 또 한 번 멤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ㅋㅋㅋㅋ

런던 여행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만들어 준 방송이 끝난 뒤, 한율은 박가람과 함께 명상센터로 향했다.

“……!”

하얀 마물을 처음 본 박가람은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가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철장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대박, 진짜 귀엽다. 만져도 돼?”

“네.”

한율은 창이 모두 닫힌 걸 확인하곤 철장 문을 열었다. 마물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오더니, 박가람을 지나쳐 한율의 발등으로 올라가 바지를 꼭 잡았다. 끼웅.

박가람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 찍어도 돼?”

“안 돼요.”

“어, 그래. …잠깐만. 지은이 형은 SNS에 올렸었잖아.”

“그건 토끼로 보일 수 있는 사진이라 괜찮은 거였고요. 이름은 뭐로 정했어요?”

한율의 시선이 이해원을 향했다. 이해원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구동이.”

“왜죠.”

“지은이 형이랑 나리 씨랑 같이 구름이랑 흰둥이 중에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합쳐봤거든. 그런데 구둥이는 뭔가 어감이 조금 그래서, 구동이라고 하기로 했어. 동물 이름은 친근감 있고 구수한 게 좋잖아.”

“반가워, 구동아.”

박가람이 구동에게 살며시 손가락을 내밀었다. 구동은 젖힌 두 귀를 움찔거리더니 킁킁 냄새를 맡곤, 박가람의 손가락에다 제 손을 툭 올렸다.

박가람이 눈을 빛내며 한율에게 물었다.

“구동이, 우리 숙소에서 키우면 안 돼?”

한율은 JE에게 했던 답변을 똑같이 읊었다.

“제가 아니라 교장이 결정할 문제에요.”

“어…. 교장이 있었지, 참. 그 양반, 존재감이 워낙 없어서 무심코 너한테 물었다, 야.”

며칠 뒤 저녁. 민준과 수재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가는 길. 한율은 JE에게서 톡으로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노을빛으로 물든 야외. 예쁜 하네스 산책줄을 착용한 구동이 두 발로 서서 나무에 찰싹 달라붙은 사진이었다.

-[얘 진짜 밥 특이하게 먹는다ㅋ]

-[나무에다 앞니 내리꽂듯이 박고선 꿈쩍도 안 해.]

한율은 링크 주소 하나를 보냈다.

[인터넷에서 나무 수액 팔아요. :)]

-[진작 말해주지ㅡㅡ]

취하는 척이라도 해

식당의 개별실. 블블의 수재가 테이블에 팔꿈치를 세우고 깍지낀 손에 턱을 괬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여름이고 하니, 내가 군대에서 겪은 오싹한 썰들을 풀어줄게.”

“예능 나가면 하세요.”

“아, 그럴까? 아냐, 그래도 들어줘. 입이 근질근질해.”

배우 김재신이 키득거렸다. 그는 민준, 수재보다 며칠 늦게 입대해서 오늘 막 전역한 참이었다.

“예능 나가면 아주 오래간만이라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봐 이러는 거야. 이해해줘.”

어스래빗 멤버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무서운 내용은 아니죠?”

후. 수재가 씨익 웃곤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내가 훈련소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있었던 일이야. 그곳에 예전부터 귀신이 나오기로 유명한 장소가 있었거든?”

그렇게 군대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이나 생각, 최근 연예계와 아이돌들에 관한 이야기 등. 그들은 한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두 시간 가까이 놀다가 일어났다. 술은 수재를 제외하곤 한 명도 마시지 않았다.

식당 주차장.

“이미 대박 난 어스래빗, 더 대박 나라.”

“감사합니다.”

“이 차, 선배님 거예요?”

민준이 운전석 문을 여는 차가 왠지 눈에 익다. 민준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누나 거야. 내가 아직 차가 없어서 빌렸어.”

“여전히 사이좋으셔서 다행이에요.”

민준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내가 누나한테 더 고맙지. 아무리 연락을 자주 해도 직접 만나지 못해서 참 답답했을 텐데, 그 긴 시간을 기다려주고. 그나저나 너희 컴백 쇼케 예매, 이번엔 광탈했다고 크게 실망하더라. 윤영 씨랑 민선 씨랑 같이 PC방까지 가서 했다던데.”

“관계자용 초대권 드릴게요.”

“응. 그 얘기 기대하고 말 꺼냈어.”

군대를 다녀오더니 조금 능글맞아졌다. 한율은 민준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로 보내드릴까요?”

“아냐. 편한 시간 말해주면 내가 너희 회사로 가서 받을게. 그게 도리지.”

“네, 그럼 연락드릴게요.”

“응. 운전 조심히 하고.”

“선배님도요.”

그들은 각자 인사를 나눈 뒤에 차에 탔다.

“수재 선배님 공포썰 레알 무서웠당. 으.”

“보배한테 들려주면 좋아하겠더라.”

한율의 차는 WB래빗으로 향했다. 그들은 외식으로 자리를 비운 시간만큼 평소보다 더 연습한 뒤 퇴근, 숙소로 돌아왔다.

[구동인 어때요?]

어느새 새벽 3시. 늦은 시간이었으나 한율은 개의치 않고 JE에게 톡을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사진)]

침대 옆에 놓인 안락한 방석. 하얀 마물이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서 자고 있다.

-[생각보다 적응을 너무 잘해서, 예전에도 사람 손을 탔던 거 아닐까 생각이 든다ㅋ]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진 않네요.]

지구로 온 뒤 70여 년 동안 한 번 정돈 있었겠지.

-[그런데 이 녀석이 사용했던 철장은 어디로 보낼까? 이거 너희 매니저가 다른 곳에서 급히 빌려온 거라며.]

[회사로 보내주세요.]

-[ㅇㅇ 너도 그만 자라.]

[네. 선배님도 바뀐 밤낮 리듬 되찾기를 바랄게요.]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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