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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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래빗> 어스래빗, 여덟 청년의 훈훈한 힐링 여행기]

[어제 28일 뮤닷에서 <런던래빗> 3화가 방송되었다. 이날 어스래빗은 런던아이를 찾아 런던의 야경을 즐기며…(중략).

(사진=뮤닷 <런던래빗> 방송 화면 캡처)

어스래빗은 그저 관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솔한 소회, 연습생 시절의 추억, 다퉜을 때의 이야기를 나눴다. 리더인 유호는 “우리가 아닌 우리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라고 말해 멤버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중략)

다음 주 예고에선 팬들 사이에서 의젓하기로 소문난 라이언이 눈물을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

천천히 리뷰 기사를 읽은 눈이 댓글로 향했다. 주접이 잔뜩 섞인 어스래빗 팬들의 댓글은 건너뛰었다.

-별 기대 안 하고 봤는데 부담스럽게 조미료 친 느낌 없어서 그냥 재밌게 본 듯

-노메이크업이라 더 킹받음 왜 다 잘생기고 예쁘장하냐 아이돌은 왜 기본 외모가 받쳐줘야지만 할 수 있냐ㅡㅡ

ㄴ그래야 팬들이 지갑을 열지ㅋ 너 같으면 안 팔릴 게 분명한 못생긴 애한테 몇억 투자하면서 키울 수 있겠냐?

ㄴ아이돌 중에도 평범하거나 좀 못생긴 애도 있기는 한데.. 기본적으로 머리랑 얼굴은 작아야 함ㄹㅇ

-버스킹 음악에 맞춰서 춤출 때 다른 외국인들이 가던 길 멈추고 구경하고 촬영하는 거 보니까 괜히 내가 뿌듯하더라ㅎㅎ

-다른 아이돌 예능 보면 어색하거나 혹은 너무 잘하려고 과하게 컨셉질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자연스럽게 다투거나 표정 짓는 거 보고 얘넨 찐이구나 했다ㅋㅋ

-케미 굿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었죠?”

정장을 입은 여성이 개별실로 들어왔다.

정민솔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났다. 함께 나온 아버지도 일어나, 여성을 향해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일찍 나온걸요.”

정민솔도 그녀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민솔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대형기획사인 스엔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출신으로, 현 리얼 엔터테인먼트의 심 대표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실제로 보니 인물이 더 훤하신데요? 목소리도 좋고.”

“감사합니다.”

“앉으시죠.”

정민솔이 아버지와 함께 심 대표를 만나는 건 다름이 아니라, 리얼 엔터 측과 전속 계약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지난번 스케일 엔터와의 계약이 불발된 이후, 정민솔은 그룹이 아닌 솔로로 활동하기 좋은 회사를 살폈다.

올해 나이 스물둘. 다시 아이돌그룹으로 활동하는 건 큰 모험이다. 재데뷔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데다, 원제로보다 잘되기는커녕 ‘원제로의 정민솔이 재데뷔한 그룹’으로 반짝 주목받았다가 사그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원제로로 활동해보니, 그룹 활동이 마냥 좋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멤버들 간의 사이를 제멋대로 분석해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는 것도 피곤하고, 억지 케미를 만들려고 연기하고 눈치 보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낸 인지도로 소년 가장 노릇을 하게 될까 봐 저어되었다.

‘솔로로 활동하자. 나를 잘 케어해줄 수 있는, 나한테 빨대를 꽂지 않을 법한 그런 회사에서.’

그래서 고르고 고른 게, 대한민국 탑티어 솔로 여가수 ‘진사랑’이 소속된 리얼 엔터테인먼트였다. 진사랑을 비롯해 세 명의 아티스트만 소속된 작은 회사지만, 다들 음악성이 좋고 깨끗하다는 평판이었다.

“정말 놀랐어요. 민솔 씨가 먼저 우리 회사와 계약하고 싶다고 연락을 보낼 줄은. 처음엔 누가 장난치는 건 줄 알았다니까요?”

심 대표의 눈에는 정민솔을 향한 호기심과 호감이 가득했다. 거절하지 않고 이 자리에 나온 것부터가 긍정적인 신호이긴 하지만.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리얼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고 싶어서요.”

계약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엔 계약서 초안을 들고 만나기로 약속한 뒤 헤어졌다.

“굳이 저기랑 계약해야겠냐?”

차에 타자마자 내내 영업용 미소를 짓던 부친이 표정을 굳혔다.

“더 높은 계약금을 부르는 곳이 천진데?”

“계약금 그거 다 빚이에요. 아시잖아요.”

“빚이 아니라 네 가치다. 그리고 그만큼 널 대우해주겠다는 뜻이고.”

“왜요. 누나가 돈 더 보내달래요?”

“왜 말이 거기로 튀어? 그리고 네 누나 유학비 보태주는 게 그렇게 아까우냐? 너 가수 되고 싶다고 해서 보컬 학원 등록해줘, 댄스 학원에 피아노 학원에 영어 과외에다 그 비싼 예고 등록금까지! 너 때문에 네 누나, 다니고 싶은 학원도 못 다니고 참았던 거 몰라?”

“아, 알아요. 그만 해요.”

부친이 한숨을 푹 내쉬며 시동을 걸었다.

“오냐오냐 키워줬더니 아주 저 혼자만 잘났지. 가족들이 저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

정민솔은 입을 다물고 안전띠를 맸다.

3년 전 WB래빗 데뷔조에서 탈락해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고 말했을 땐, 상심한 자식을 달래주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돈타령을 하며 자존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려 놓곤.

『내 이럴 줄 알았다! 네 주제에 가수는 무슨 가수야! 헛짓거리 다 때려치우고 공부나 해! 그 많은 빚을 네가 다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냐?』

그때를 떠올리니, 결국 내가 번 돈으로 집 대출금도 갚고 이 좋은 차도 사지 않았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든다. 하지만 꾹 참았다. 자신이 대들면 그 화를 어머니에게 풀 테니.

『사이 좋은 가족 연기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됐어. 엄마가 조금 더 참으면 돼. 그리고 네 아버지 속 긁지 마. 이제 네가 돈을 많이 버니까, 가정 내 주도권이 너한테 넘어갈까 노심초사하는 속 좁은 양반이니까.』

“그리고 그때 WB래빗에 잘 붙어 있었으면 진작 자리 잡고 잘 돼서 이렇게 왔다 갔다 귀찮은 짓은 안 해도 됐을 거 아니냐. 어스래빗? 걔네 지금 잘나가는 거 봐라.”

“…….”

“집에서 크게 도와주지 않아도, 형편이 어려워도 혼자 알아서 잘하는 애들 보면 뭐 느끼는 것도 없냐?”

“…….”

“이젠 아버지 말에 대답도 안 하지?”

“저 세 시간밖에 못 자고 나왔어요. 이따가 또 스케줄 있는데, 한번 투덜거렸다고 계속 잔소리하실 거예요?”

커흠. 그제야 부친은 헛기침을 끝으로 더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정민솔은 속에서 한숨을 삼키곤 눈을 감았다.

누군 그때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냐고.

‘지금도 어스래빗 기사나 방송을 볼 때마다 ‘만약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이란 생각이 떠올라 미치겠는데.’

그날 오후 6시. 너튜브와 그린라이브 어스래빗 채널에 신곡 M/V 티저가 공개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콩콩 엔터의 ACCOM도 신곡 M/V 티저를 공개했다.

두 팀은 컴백 쇼케이스 날짜도 같았다. 다음 주 금요일인 6월 5일.

WB래빗 엔터 어스래빗 연습실.

M/V 티저에 이어서 ACCOM의 M/V 티저를 본 박가람이 씩 웃었다.

“훗. 정면 승부인가?”

“ACCOM 쪽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ACCOM이 우리보다 컴백 날짜를 더 일찍 확정했어, 가람아.”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은 트레리안 호랑 레몬사이다 쌤 합작이고, ACCOM의 이번 신곡은 호 형이랑 보배가 같이 만든 곡이잖아.”

“자신과의 싸움인가?!”

“하하하. 다 봤으면 연습이나 하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몸을 풀었다. 박가람이 한껏 늘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컴백까지 일주이이일~!”

시간은 흘러 6월 1일 자정. 어스래빗 2020 월드투어 ‘The CARNIVAL’의 전체 일정이 공개되었다. 오후엔 월드투어 첫 번째 순서인 서울 공연의 팬클럽 선예매가 시작, 순식간에 전석 매진되었다. 2일 차 공연도 마찬가지.

-어스래빗 데뷔 후 서울에서 여는 첫 단독 콘서트다!!!!! 반드시 가야 한다!!!!!!!!!!!

-이번엔 아시아까지 껴서 한꺼번에 도니까 일정 엄청 기네요..

-7월부터 10월까지 22개 도시 ㄷㄷㄷ

-왜 이번엔 러시아가 빠진거죠ㅜㅜ

-남미에도 좀 와줘... 플리즈... ㅇ<-<

-세트리스트는 언제 공개되냥

-22개 도시를 가지만 이번에도 난 한 곳도 못 가겠지

ㄴ가까운 일본으로 가세요. 한국에선 이틀만 공연하는데 일본에선 나흘 동안 하네요...

연예뉴스란 메인에는 어스래빗의 월드투어를 다룬 기사 외에 또 다른 기사도 떴다.

[어스래빗 차남석·라이언, 눈부신 비주얼 자랑(뮤직마켓 출근)]

-오오 뮤직마켓 나오는구나

-아니 팀에서 제일 서로 어색하다는 애들을 같이 보내면 어떡해ㅋㅋㅋ

ㄴ런던래빗 보니 그것두 옛말이던데영ㅎㅎ

-녹화 가서도 싸우면 안 된다 얘들아ㅎㅎ

그리고 어스래빗 컴백 전날인 6월 4일 밤 10시 50분. 뮤닷에서 <런던래빗> 마지막 화가 방송되었다. 이런저런 걱정이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잠시 자유로웠던 런던 여행의 마무리.

[역시 여행 마지막 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그동안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고 눈물도 펑펑 흘리는 시간을 가져야지.]

[…….]

마트의 주류코너 앞. 박가람의 말에 차남석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건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남석인 한 잔만 마셔도 잠들잖아.]

그 옆에선 라이언이 인상을 썼다.

[나 술 냄새 싫어.]

[너희 둘은 탄산수 마시고 취하는 척이라도 해주렴. 속아줄게.]

같이 밥 먹자고 해줘서 고마워

멤버들은 직접 만든 음식과 사 온 음식들로 테이블을 채웠다. 저녁을 먹은 뒤엔 널찍한 거실로 자리를 옮겨, 술 혹은 탄산수가 든 잔을 들어 건배했다.

그들은 며칠 동안 런던에서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웃으며 떠들었다. 길우성은 연습실에서 홀로 연습했던 우스꽝스러운 안무를 선보였다.

큭큭.

[뜬금없이 백조가 왜 타조로 변해.]

[너 중간중간 우리 따라 한 거 맞지?]

[야, 내가 언제 표정을 그렇게 했냐?! 싸우자, 길우성!]

짝짝.

[네, 길우성 씨. 우수한 재능 낭비, 아주 자알 봤습니다.]

[감사합니당.]

[방송 나가면 무용과 쌤이랑 트레이너 쌤한테서 연락이 올 거야.]

길우성이 여기저기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쌤들, 저 폰 번호 바꿨어영. 톡으로 주세영~.]

프로그램 톡창.

-중간에 멤버들 특유의 표정이랑 제스처 따라 한 거 보면서 개터졌넼ㅋㅋㅋㅋㅋ

-편집이랑 노래 빠르게 리믹스한 것 때문에 더 웃곀ㅋㅋㅋㅋㅋㅋㅋ

[아까 호 형 따라 한 거 다시 보여줘, 우성아.]

[이렇게, 포인트는 최대한 어려 보이는 각도로 서글서글 눈웃음 반짜악.]

[아니지, 이렇게지.]

[…싸우자, 이건우.]

왁자지껄한 거실을 비추던 영상이 벽에 걸린 런던 그림으로 살며시 이동, 자막.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런던의 마지막 밤]

[멤버들은]

전날 밤, 멤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쪽지에 적어서 복도의 작은 상자에다 넣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라욘 펜 특이하게 잡는다

-한율이 양손잡이예여? 아깐 왼손으로 적더니 이번엔 오른손으로 적네

-차남석은 글씨도 바르고

-넹 한율이 양손잡이입니당

[서로를 향한 특별한 메시지를 공개합니다.]

조금 진정한 멤버들의 모습. 소파 옆에는 빈 맥주병과 탄산수병이 두어 개 더 늘었다.

유호가 상자에다 손을 넣고 뒤적거렸다.

[자, 처음엔 누구에게 쓴 쪽지가 나올까.]

[익명 맞지?]

[필체 보면 다 알 것 같은데?]

부스럭.

[To. 막내에게.]

쪽지에 적힌 글을 소리 내서 읽은 유호가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막내라고 적은 거 보니까 여섯 명 중의 한 명이 쓴 거야. 그리고 글씨가 깨끗해.]

[이언이랑 보배는 아니네.]

길우성이 기대 어린 얼굴로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눈으로 먼저 메시지를 훑은 유호가 픽 웃었다.

[그때 네 사과펜슬 밟은 거 나야. 미안해.]

[……!]

벌떡.

[누구얏! 내가 순순히 이실직고하라고 말했을 땐 다들 자기 짓 아니라고 시치미 떼놓곤…!]

[…….]

-남석이 왜 시선 피하는뎈ㅋㅋㅋㅋㅋ

-아 이런 거였어?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그거 이젠 잘 되잖아.]

[당신이었어?!]

[우성아, 남석이 멱살은 나중에 잡고 다음 쪽지 읽어보자.]

[커흠. …가람에게. 항상 중간에서 분위기 밸런스를 잘 잡아줘서 고마워.]

오오.

[후.]

박가람이 손가락으로 콧등을 슥슥 문지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상자를 건네받아 다음 쪽지를 꺼내 펼쳤다.

내용을 본 박가람의 눈동자가 살며시 흔들렸다.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우리 복덩이 서한율, 너한테 늘 많은 도움을 받는데 형은 별로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 천천히 갚을 테니까,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도 옆집에 살면서 가깝게 지내자.]

한율은 누가 쓴 건지 짐작 간다는 듯 조용히 웃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얼마나 오랫동안 갚을 셈이야, 박가람이.]

[이건 앞으로도 더 많은 도움을 받겠단 뜻으로 들리는데?]

[…뭐야, 왜 다들 알아차리는 건데.]

[글씨가 딱 형이잖아.]

-본인이 쓴 걸 본인이 읽었어ㅋㅋㅋㅋ

-박가람 귀 빨개졌다ㅎㅎ

[이것 봐. 필체로 다 들통난다니까? 나처럼 왼손으로 적었어야지.]

멤버들의 시선이 길우성을 향했다.

[길우성 너 바보지?]

[어…?]

-그걸 네 입으로 말하면 어떡햌ㅋㅋㅋㅋ

-길우성 바보

그렇게 쪽지를 담은 상자는 멤버들의 손길을 거치면서 점점 가벼워졌다.

자막.

[※미방영분은 방송이 끝난 뒤 너튜브 뮤닷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뒤적뒤적. 차남석이 상자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펼쳤다.

[한율. 그날, 같이 구내식당 가서 밥 먹자고 해줘서 고마워. 그날 네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난 그날도 혼자 구석에서 울었을 거야.]

[…….]

사락. 쪽지를 접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멤버들의 시선이 라이언과 한율을 향했다.

[다들 알다시피….]

라이언이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내가 많은 걸 숨겼었잖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고 의심하게 만들어놓곤, 입을 다물어서 오히려 그 사람들을 나쁘게 만들었어. 하지만 그땐 잘 몰랐어. 어….]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정리하는지, 라이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의심이나 오해, 편견 없이 날 대해주는 사람을 겪고 나서야 알았어. 내가 이상하고 나쁜 아이란 오해를 풀지 않고, 말하기 무섭다고 입을 다무는 게 나를 방치하는 거라는 걸. 그리고….]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라이언의 눈이 촉촉해졌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용기를 내서 내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어스래빗 데뷔앨범에 실린 <월흔>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며 라이언의 어린 시절 사진이 한 장 두 장 떠올랐다.

라이언의 독백.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어요. 아빠는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웠고, 멀리 떠난 엄마 대신 나를 돌봐준 고모는 늘 화가 나 있었어요. 나는 항상 배가 고팠어요.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노트에 적히는 단어 하나. ‘kleptomania’.

[당장 먹고 싶은 게 아닌데도, 필요한 게 아닌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내 것이 아닌 무언가가 손에 쥐어져 있었어요.]

다시 멤버들이 모인 거실.

훌쩍. 라이언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우리 멤버들이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지 않았다면.]

어스래빗 콘서트에서 서로 웃으며 노래 부르는 영상, 자체 콘텐츠나 방송에서 함께 신나게 장난치는 영상이 짤막하게 흘러나왔다.

훌쩍. 라이언이 고개를 들어 멤버들을 향해 웃었다.

[지금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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