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427)

* * *

[어스래빗, 잇단 허위 열애설에 강력 법적 대응]

[인기 보이그룹 어스래빗의 소속사 WB래빗 엔터테인먼트가 어제와 오늘 연달아 뜬 멤버들의 허위 열애설 주장과 유포 행위에 칼을 빼 들었다.

WB래빗 엔터는…(중략).]

-맨 처음 서한율 연애 중이라고 글 쓴 애는 서한율이 직접 라방에서 해명하자마자 글삭튀했더라ㅋㅋ

ㄴ지켜보고 있었단 소리네

ㄴ원래 루머 만들려면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함. 그래서 팬이었던 안티가 제일 위험한 거. 아는 게 많은 만큼 ㅈㄴ 그럴싸하게 소설 쓰거든.

-얘네 이런 대응 빠른 거 하난 참 좋아

-듣보 띄우느라 고생이 많다.

ㄴ그 듣보가 이번에 두 번째 월드투어를 가네요^^

-툭하면 법적 대응이야 ㅅㅂ것들

ㄴ경찰서 다녀왔냐

ㄴ악플로 경찰서 가면 본인이 쓴 글 직접 소리 내서 읽게 한다던데ㅋㅋㅋㅋ 뭐라고 달았냐?

ㄴㄹㅇ임? 난 절대 악플 비슷한 것도 달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어제랑 오늘 같은 일이 더 자주 벌어질 거야. 기사까지 뜨진 않아도, 수많은 사이버 렉카들이 별의별 억측을 팩트인 양 떠들겠지. 본인들의 동영상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으로,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라디오 홍보 스케줄과 자체 콘텐츠 녹화를 하고 오는 길. 조유찬이 멤버들을 향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거지만, 사실 너튜버는 고소까지 가는 게 힘들어. 고소에 성공해도 해당 계정을 삭제하고 또 새로 파면…. 후.”

멤버들도 비슷하게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너희에게 중요한 사람은 너희를 이용하고 깎아내리는 못난이들이 아니라 팬들이야. 그 사실만 늘 명심하면 좋겠다. 알았지?”

“네에.”

“일부러 영상 찾아보면서 상처받지 말고.”

“네에.”

“그리고 4시간 후에 <락뮤닷> 리허설 있다.”

“네에….”

“이제 남석 씨 출연한 <너의 집> 방송 시간인데.”

차남석이 길우성을 향해 말했다.

“일단 자고, 나중에 봐.”

“엉.”

이렇게 박가람과 호수의 열애설도 두 소속사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금세 가라앉았다. 그러나 참 희한하게도, 처음 열애설을 주장한 너튜버의 구독자 수는 오히려 기사 덕에 늘었다.

팩트가 아닌 날조된 루머라도, 그에 동조하여 잘나가는 누군가를 씹으며 즐기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었다.

다음 날인 9일 오후. 뮤닷 <락뮤닷> 어스래빗 단독 대기실.

놀러 온 임승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기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해. 그게 마음 편할 것 같다. 그나저나… 할 거야, 말 거야? 안무 커버 챌린지.”

“너희 안무….”

유호가 대답하려던 찰나, 라이언이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

“응, 안 해.”

“이미 애들 연습 중인데?”

“본인 노래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해. 해체까지 얼마 남지 않았잖아.”

“OK. 토씨 하나 안 빼먹고 그대로 전해준다.”

“응.”

이건우가 웃었다.

“그러다 나중에 지욱이 달려온다, 이언아. ‘형이 어떻게 나한테 그런 섭섭한 말을 할 수 있어!’ 이렇게 호들갑 떨면서.”

“딸기빙수 사주면 괜찮을 거야.”

“오오, 이제 동생한테 빙수도 사주고. 우리 이언이 다 컸는데?”

라이언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씩 웃었다.

가정사와 병적도벽이 있었다는 고백이 <런던래빗> 방송을 통해 나간 뒤, 라이언은 무언가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익명의 악플러들이 그 고백을 두고 더 신나게 인신공격성 비하 발언을 지껄였지만, 그에 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승준이 형, 이번 ACCOM 노래 반응 봤어?”

“어. 오늘 바로 5위에 오른 거 보고 놀랐다. 호 형이 준 노래가 아주 찰떡이던데? 의상이나 세트 보니까 콩콩에서도 거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서포트 많이 해준 것 같고.”

“노출이 없는데 섹시하다고 난리야. 역시 ACCOM은 애초에 그런 심플하면서도 으른스러운 노선으로 갔어야 했어. 남돌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지만, 쉽게 도전 못 하는 콘셉트잖아.”

임승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형수 형 보니까, 이번에 노력 많이 한 것 같더라.”

이건우가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형이 헬스장에서 죽기 살기로 구르긴 했지. 그 형 5kg 감량하고 운동하는 몇 달 동안 닭가슴살이랑 고구마, 양배추밖에 안 먹었어.”

“으으….”

“PTSD가 온 박가람 씨.”

한율은 그들의 잡담을 들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포털사이트 실검에 [너의집 차남석], [차남석 할아버지]가 떠 있었다.

[<너의 집> 어스래빗 차남석, 단독주택 건설 중… 소원 이뤄]

토끼 농사 잘 지었네

[어제 8일 방송된 <너의 집>에 인기 보이그룹 어스래빗의 멤버이자 배우 차남석이 두 번째로 출연했다.

작년 10월 7일 방송에서 독립할 여건이 된다면 할아버지의 집부터 새로 지어드리고 싶다고 말한 차남석은, 그때가 되면 <너의 집>에 다시 출연하기로 약속했다.

(중략).

한편 차남석이 소속된 어스래빗은 지난 5일 4번째 EP앨범 [Balance]로 컴백해 활발한 활동 중이며 오는 7월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월드투어에 나선다.]

-작년에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잘생기고 노래도 잘 부르고 말도 잘하나 감탄했었는데 벌써 할아버지를 위해서 집도 짓고ㅜㅜ 제가 다 뿌듯하고 흐뭇하네요ㅎㅎ

-방송 8개월 만에 단독주택ㅋㅋㅋ 괜히 애들 장래 희망 1위가 아이돌이 아니야

ㄴ차남석 보고 아이돌 꿈꾸는 애들이 있다면 거울부터 보라고 말하고 싶다. 키 크고 살 빼고 뼈 깎고 성형하면 될 것 같지? 응 안돼^^

ㄴ팩트 폭력도 폭력이야

ㄴ실력 없으면 차남석 정도의 외모라도 갖춰야지. 그렇다고 차남석이 실력 없단 소리는 아니고

ㄴ그렇게 아이돌계는 멸망했다..

-나만 서한율이 5억까지 무이자로 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단 거에 놀란 건가ㄷㄷㄷ

ㄴ재산이 6백억이잖아

ㄴ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5억 그냥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효자추

-할아버지 눈엔 여전히 어린 손자일 텐데 그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집까지 짓고.. 얼마나 기쁘고 대견하실까ㅜㅜ

-돌아가신 할아버지랑 할머니 보고 싶다..

-차남석 사랑해♡♡♡♡♡

-런던래빗 보니까 멤버들 위해서 요리도 하지만, 은근히 장난 잘 치던 스물두 살 애던데ㅎㅎ 대견하다

-남석아, 아버진 잘 계시냐?

-어스래빗 신곡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D

어젯밤 방송된 <너의 집>에선 차남석이 조부를 위해 짓는 단독주택의 모습이 일부 공개되었다. 지하실을 비롯해 아주 튼튼하고 꼼꼼하게 짓는 터라 건설 속도는 느린 편이었으나, 늦어도 여름이 다 지나기 전엔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 토끼는 잘 지낸대?”

차남석이 옆에 앉으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너의 집> 기사 보니까, 현장 녹화하던 날에 가방에서 발견한 그놈 생각난다.”

“산책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대요.”

“다행이네.”

마법 학교 멤버들이 모인 단톡방이 있다. 구동이 마물인 터라, JE가 종종 보고를 겸해서 사진을 올린다.

-[딸기는 제 입맛에 너무 새콤했는지 바로 내팽개침ㅋ 참고로 고의로 먹인 거 아니고 지가 와서 먹은 거.]

어제는 구동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딸기를 내던지는 역동적인 사진이 올라왔다.

“아, 남석.”

“……?”

슬슬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임승준이 문득 차남석을 불렀다.

“귀찮은 연락 같은 거 안 오냐?”

“무슨 연락?”

“연예인 중에, 조금 잘나간다 싶은 후배한테 친한 척하면서 좋은 투자 아이템 있다고 꼬드기는 사람들 있잖아. 어제 <너의 집> 방송 보니까, 왠지 너한테도 접근할 것 같아서.”

“너 그런 연락 받았었냐?”

임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서 어머니한테 차 사드렸다고 하니까 그다음 날 바로 ‘나 누군데….’ 이러면서 전화 걸려오더라. 예능에 자주 나오는 선배님이라 무시할 수도 없어서 예, 예 대답했더니 처음엔 방송 잘 봤다, 너 MC 진행 잘하더라 칭찬하다가… 나중엔 조언하는 척 말하더라. 요즘은 투자도 필수라고.”

“진짜 거저 돈 벌 좋은 기회가 있으면 남한테 알려주겠어? 본인들이 다 해 먹지.”

“내 말이. 네가 참 좋게 보여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다. 이 말 진짜 조심해야 해. 나는 돈 관리를 모두 부모님께 맡겨서 힘들 것 같다고 빠져나왔지만.”

“그 선배님이 누구였는데요?”

임승준이 슬쩍 상체를 굽혔다. 그러곤 작은 목소리로 한율과 차남석에게만 알려주었다.

“옥정훈.”

차남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선배님이 그랬다고?”

“어.”

옥정훈은 스엔 엔터 2세대 아이돌그룹 출신으로, 현재 각종 예능 MC나 고정 출연으로 맹활약하는 평판 좋은 사람이었다. 한율과는 2년 전, 뮤닷 <감성 푸드트럭>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워낙 평판 좋고 인맥 넓은 사람이 그러니까, 부모님 핑계 대면서도 좀 쫄리더라. 앞으로 이 사람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선 섭외 안 되는 거 아냐? 나가도 죽 쑤는 거 아냐? 이렇게.”

“그 후로 연락은 오고?”

“가끔. 거절당했다고 바로 연락 끊으면, 속 보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너희 둘 다 조심해.”

“어.”

“알려줘서 고마워요, 형. 나중에 봐요.”

임승준은 가볍게 손을 들곤 어스래빗 대기실을 나갔다.

잠시 후, 생방송 <락뮤닷>이 시작되었다.

1위 후보 및 컴백 기념 인터뷰 자리. 어스래빗은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크리스탈 래빗의 미랑과 나란히 MC석에 섰다.

“같은 회사 선후배끼리 나란히 1위 후보에 올랐는데, 소감 한마디씩 부탁드려도 될까요?”

MC인 임승준이 자신은 WB래빗 소속이 아닌 것처럼 묻는다. 미랑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동생 그룹인 어스래빗과 이 자리에 함께 서게 돼서 정말 기쁘고, 누가 받아도 기쁠 것 같아요. 대표님이요.”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우리 이프림 사랑합니다! 대표님도 사랑해요!”

<락뮤닷> 프로그램 톡창.

-떠비 토끼 농사 잘 지었네

-차남석이랑 미랑 투샷ㄷㄷ

-미친 비주얼

-방금 차남석 미랑 보면서 작게 웃는 거 본 사람? 개설렌다

-둘 중 아무나 1위 가져가도 결국 대표 거

-1위 공약이 2위 된 사람 커버 영상 올리고 홍보해주기ㅋㅋㅋㅋ 같은 소속사라 가능한 공약이네ㅋㅋㅋㅋ

-아니 너희 서로 커버 챌린지 했잖아ㅎ

-진 팀 약 올리는 거냐고ㅋㅋ

-하양 토끼 까망 토끼

인터뷰가 끝난 뒤, 어스래빗과 미랑은 관계자용 복도를 통해 대기실과 백스테이지 쪽으로 이동했다.

“미랑.”

조금 전까지 카메라 앞에서 생글생글 웃던 박가람이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호수 님한테 괜히 나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 거 미안하다고 전해줘.”

“새삼스럽게 님은 무슨. 알았어.”

“엉. 고마워.”

“그럼 저흰 먼저 백스테이지로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네, 나중에 봐요.”

어스래빗과 헤어지고 나서 미랑은 단독 대기실로 들어갔다.

‘혼자 음방 스케줄 오니까 허전하네.’

미랑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호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심하기도 하고, 박가람의 부탁도 들어줄 겸.

“하이, 호수. 뭐 해?”

전화를 받은 호수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웅, 그냥 누워서 락뮤닷 보고 있어.]

히아신스의 호수와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반이 다른데다가 미랑이 1년 일찍 데뷔한 선배라서 마주치면 어색한 사이였었다.

『듣보 기획사보단 대형인 아림이지.』

『미랑 존나 싸가지없고 도도하게 굴더니, 1년 늦게 데뷔한 히아신스 호수한테 발렸네. 꼴 좋다.』

『그래도 얼굴이랑 몸매는 미랑이 더….』

주변 사람들의 이런 비교 때문에 더더욱. 그러다 2년 전, 아육대 녹화 당시 옆에 앉게 되어 조금씩 대화를 나누다, 서로 은근히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지금은 자주 만나는 친한 사이가 됐다.

“박가람이 호수 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괜히 자기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렸다고.”

-[가람이가 사과할 일 아니니까 괜찮다고 전해줘. 나쁜 건 그런 영상을 제작하는 인간이랑 거기에 동조하고 퍼다 나르는 바보들이지. 참, 미랑이 너도 가끔 게임 한다고 그랬잖아. 그 총 쏘는 게임.]

“응.”

-[그거 재밌어?]

“호수 너도 하려고?”

-[아니…. 은수가 요즘 그 게임에 푹 빠졌나 봐. 핸드폰까지 꺼놓고 몇 시간씩 하더라.]

눈을 반짝거렸던 미랑은 미간을 찡그렸다.

“핸드폰…을 일부러 꺼놓고?”

* * *

6월 12일 금요일. MBS <뮤직센터> 1위 트로피를 가지고 퇴근하는 길. 어스래빗 멤버들은 핸드폰을 통해 원제로의 컴백 쇼케이스를 봤다.

이건우가 원제로의 타이틀곡 무대를 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버 챌린지 하자고 할 걸 그랬다.”

“안무가 너무 쉬워서?”

“어.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박가람이 씩 웃더니 유명한 교양 프로그램의 내레이션 톤으로 말했다.

“무심코 속마음을 말해버린 건우 씨. 참 오만하다.”

“하고 싶으면 해, 건우야. 어차피 원제로에 같은 회사 식구가 셋이나 있는데, 하면 좋지. 지욱이 삐친 것도 풀어줄 겸.”

“그럴까? 두 명 지원받는다.”

길우성과 차남석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저용.”

“나도 할게요.”

세 사람은 내일 <뮤직뮤직>에서 짬이 났을 때 영상을 찍기로 했다.

“연습은 각자 알아서 하자.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오만한 이건우 씨.”

“그러고 보니 오늘이지? <혼자서도 잘 살아요>.”

“응. 그런데 내가 얼마나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한율이 정말 피곤한가 봐. 잘 자네.”

멤버들의 시선이 한율을 향했다. 한율은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어제 스케줄 끝나자마자 운동 다녀와서 피곤할 거야.”

“운동?”

“응. 운동 다녀온다고 밤중에 나갔었는데, 몰랐어?”

“1층 상황을 우리가 어찌 아오, 보배 형님.”

툴툴거리듯 말한 길우성은 힐끗 한율을 살폈다.

‘숙소에 운동기구가 잔뜩 있는데, 밖으로 운동을 다녀왔다고?’

길우성은 최근 들어 서한율이 수상했다. 황금 같은 휴일, 그리고 짧은 휴식 시간 동안 혼자 밖으로 나도는 일이 잦아진 느낌이었다.

‘연애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왜 그렇게 혼자만 바쁠까. …건물주라서?’

아.

그럴싸한 해답에 도달. 길우성은 짧은 자문자답을 마쳤다.

‘그럼 이해되지. 음.’

그날 밤. 한율은 자신의 방 침대에 편히 누워서 JE가 출연한 <혼자서도 잘 살아요> 방송을 시청했다. 지난달에 이건우, 길우성, 유호와 함께 선물을 싸 들고 놀러 갔던 집이 먼저 나왔다. 집안은 여전히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저 화분, 잘 관리할지 조금 걱정했었는데 상태 괜찮아 보이네.’

제 모습이 녹화되고 있단 걸 잊은 것인지, 워낙 연차와 경험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TV 속 JE는 일어나자마자 머리카락도 빗지 않고 집안을 편히 어슬렁거렸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환기와 청소.

청소를 마친 JE는 가볍게 스트레칭, 러닝머신에서 한 시간을 뛰고 난 뒤 샤워했다. 그러곤 소파에 드러누워서 한 시간 동안 빈둥거렸다.

‘같이 여행 갔을 때도 느꼈지만, 주변도 그렇고 본인도 조금 말끔한 상태라야 안정감 있게 쉬는구나. 게이트가 열리면 좀 예민해지겠는데?’

스튜디오에서 일상을 관찰하던 MC들이 JE에게 물었다.

[아침은 안 먹어요?]

[네. 운동하고 한두 시간 정도는 입맛이 안 돌아서요. 그래서 다이어트 할 때는 일부러 자기 전에 운동을 열심히 하기도 해요. 그래야 야식을 안 먹거든요.]

[아니, 뺄 살이 어디 있다고?]

관찰 영상 속 JE가 시계를 확인하곤 벌떡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드레스룸이 공개되었다.

[와아.]

[정리 진짜 깔끔하게 잘하셨다. 본인이 직접 하신 거예요?]

[네. 제가 직접 하나하나 다 정리했어요.]

한율은 무심한 얼굴로 갈아입을 옷을 툭툭 고르는 JE를 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마법 용품이나 자재 관리 맡기면 꼼꼼하게 잘하겠어.’

잠시 후, JE가 빌라 입구 앞으로 찾아온 유호와 만났다. JE는 매니저의 차를 연습 삼아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던 이야기를 했다.

[아!]

<혼자서도 잘 살아요> MC가 알은체했다.

[혹시 JE씨가 예전에 SNS에 찾는다고 올렸던 그…?!]

[네.]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찾았어요?]

차로 칠 뻔한 동물 언급 부분은 편집을 부탁했었다. 그러나 JE가 구동과 관련된 글을 SNS에 올렸던 이상, 제작진 측에서 모두 도려내는 건 재미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래도 사고 당시 블랙박스에 찍혔던 구동의 모습이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어느 정도 논의는 한 모양.

스튜디오에 MC들과 나란히 앉아있는 JE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팬분들 제보 덕분에 무사히 찾아서, 지금은 제가 돌보고 있어요.]

구동과 살며시 얼굴을 맞댄 채 찍은 JE의 셀카. 앞발의 형태가 나오지 않아, 구동은 영락없이 롭이어 토끼처럼 보였다.

[어웅, 귀여워~.]

[만약에 ‘내가 저 토끼 주인이다, 내놔라!’ 이러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해요?]

[구동이가 일반 토끼랑 살짝 다른 점이 있거든요? 그게 뭔지 먼저 정확히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내가 주인이다!’ 주장만 하는 분은 못 믿을 것 같아요.]

[오오. 이름이 구동이에요?]

JE가 생글생글 웃었다.

[네. 귀엽죠?]

아무것도 없었다

13일. 너튜브에 [MBS <혼자서도 잘 살아요> 어스래빗 유호 CUT 모음] 영상이 올라왔다.

-지은이랑 첫 동갑내기 연예인 친구가 돼주셔서 감사해요!

-톢이 동생들이 전부 큰형 차로 면허 땄구나

-아낌없이 주는 유 리더

-03:12 둘이 나란히 서서 딜러 얘기 경청하는 거 진짜 귀엽다

-방송이니 적어도 사기 치진 않았겠지? 중고차 딜러 중에 워낙 양아치가 많아야지

-[제발 남미에서도 콘서트 해 줘, 어스래빗]

-한 사람은 팀 내 맏형, 한 사람은 팀 내 막내. 공통점은 음방 MC 출신 동갑내기ㅎㅎ

-안전 운전이라며 느릿느릿 속 터지게 운전했을 때가 엊그제 같던 유호가 이젠 남들만큼 속력을 내다니 감개무량하다ㅠㅠ

KBC <뮤직뮤직> 어스래빗 단독 대기실.

유호가 너튜브 영상 댓글을 살피며 웃었다.

“편집 많이 안 돼서 다행이다.”

“지은이 형이 좋은 용건으로 잘 불러줬지.”

똑똑.

“네.”

매니저 허진영이 찾아온 손님을 확인했다. 그가 어스래빗 멤버들을 돌아보며 알려주었다.

“원제로 분들이에요.”

사녹을 끝내고 인사하러 온 모양. 제각기 편하게 있던 어스래빗 멤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한 앨범을 챙겼다.

문이 활짝 열렸다. 원제로 멤버들이 대기실로 들어와 두 줄로 섰다.

“완전한 하나!”

“원 없는 무대!”

“원! 제로입니다!”

“어스래빗 선배님, 1위 후보 축하드립니다!”

어스래빗도 화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원제로 분들 컴백 축하드립니다!”

서로 앨범을 교환하며 소소한 잡담. 어제 컴백 쇼케이스 잘 봤어요, 이번 신곡 정말 좋던데요? 우리 셋이서 짧게 커버 챌린지 해보려고요 등등.

“너 우리 안무 커버할 거야?”

별말 없이 서 있던 라이언이 웬일로 정민솔에게 말을 걸었다. 정민솔은 순간 놀란 눈으로 라이언을 쳐다봤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어. 못한다고 구박하지 마라?”

라이언이 입가를 올렸다.

“응, 안 할게.”

“…….”

“오늘 <뮤직마켓>에 나랑 차남석 나오니까 꼭 봐.”

이놈이 어쩐 일로 나한테 살갑게 굴지? 조금 혼란스러워 보이던 정민솔도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그래.”

잠시 후, 원제로 단독 대기실. 정민솔은 기분 좋은 얼굴로 받은 앨범을 정리했다.

이번이 마지막 활동이라 그런지, 앨범과 굿즈 판매량이 자체 역대 최고를 찍었다. 이번 달 말부터 진행될 일본 콘서트와 미주투어도 전 좌석 매진되었으며, 리얼 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 계약 논의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라이언이 갑자기 친한 척한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싫다고 어린애처럼 티 내는 게 본인 이미지에 안 좋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거겠지.’

사실은 얼마 전 <런던래빗> 마지막 화, 그리고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며 정민솔은 한참 동안 고민했었다.

이거, 정말 진지한 모습으로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라이언을 대놓고 도둑으로 의심하고 경멸했던 이야기가 새어나오면, 나만 완전히 개쓰레기가 될 전개잖아.

어스래빗 멤버들이 그런 이야기를 섣불리 떠들고 다닐 만한 성격들은 아니지만, 피해 당사자인 라이언은 다르다. 그래서 정민솔은 고민 끝에 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음성 안내.

‘조금 전 모습을 보면 무난히 화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민솔은 시간을 확인하곤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 잠깐 어스래빗 대기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어스래빗 대기실.

“이언이? 보배야, 이언이 어디 갔냐?”

정민솔을 맞이한 이건우가 대기실을 크게 둘러보더니 강보배에게 물었다. 강보배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얘 어디 갔지?”

“진영이 형, 이언이 어디 갔어요?”

“한율이랑 같이 카페 갔어.”

매니저 두고 왜 직접 카페에 가. 사람들 시선이랑 관심이 고팠나? 그럴 성격들이 아닌데.

정민솔은 속으로 조금 당황했지만, 대답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곤 원제로 대기실로 돌아갔다.

한편, 방송국 내 카페.

“저기 서 국장님 아니야…?”

“쉿.”

방송국 직원들이 조심조심 어느 한 테이블을 훔쳐보거나,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을 알아보곤 놀라서 조용히 카페를 나갔다.

“카메라가 그동안 잘생긴 인물을 제대로 못 살렸네. 자, 마음껏 먹어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라이언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그러곤 사양하지 않고 앞에 놓인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퍼먹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석진 국장이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소고기를 사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 하니.”

“대신에 멤버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 주셨잖아요. 괜찮아요, 아버지.”

오늘 한율이 라이언과 함께 부친을 만나게 된 이유는 소소했다. <런던래빗>을 본 부친이, 라이언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다고 해서 가볍게 갖게 된 자리였다.

“나중에 시간 되면 집에도 편히 놀러 와요. 조금 부담스럽다면 다른 멤버들이랑 같이.”

“네!”

“너희들 투어 가기 전에, 엄마가 모두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밥 먹이고 싶다더라.”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의해서 시간 내볼게요.”

“그래. …혹시 한율이가 속 썩이거나 버릇없이 굴진 않아요?”

어느새 조각 케이크를 반이나 해치운 라이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리도리.

“전혀요. 하뉼에게 도움 많이 받아요. 배고플 때 맛있는 것도 자주 사줘요.”

“그래도 그런 일 있거나.”

서 국장이 명함을 꺼내 라이언에게 내밀었다.

“회사 사람이 아닌 어른과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 편히 연락해요. 큰아버지 한 명 생겼다고 생각하고.”

“…….”

환한 미소가 배어 있던 라이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훌쩍. 고개를 푹 숙이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친 라이언이 입가를 올리며 서 국장을 바라보았다.

“네, 큰아버지!”

“아이구, 잘생긴 조카 한 명 생겼네.”

“말 편히 놓으세요, 큰아버지.”

“그래.”

서 국장처럼 라이언도 소리 내어 웃었다.

“멋진 큰아버지가 생겼어, 하뉼.”

한율은 미소 지었다.

“축하해요, 형.”

잠시 후, 두 사람은 서 국장이 사준 커피와 간식거리를 들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멤버들뿐만이 아니라 스태프들 것까지 챙겨주어서 양손이 묵직했다.

“우와….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한율아.”

“오늘 토요일인데, 너 보려고 일부러 출근하신 거야?”

“마침 검토할 게 있어서 나오셨다가, 겸사겸사요.”

“잘 먹을게, 한율아.”

“아참. 이언아, 방금 민솔이가 와서 너 찾았었어. 할 얘기 있는 것 같던데?”

“응.”

라이언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핑크 마카롱 봉투를 따로 챙겨서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이건 작업할 때 먹으려고 내 돈으로 산 거야. 오해 금지.”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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