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자체 콘텐츠 촬영 장소로 향하는 스타믹스의 차 안.
JE는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조금 전, 서한율에게 들은 이야기를 곱씹었다.
‘계나리처럼 미래에서 되돌아왔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세상에서 마법을 배웠었다고?’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믿어주지 않을 건 물론이고, 그들과 거리감이 생길까 봐.
『속인 건 미안해요. 하지만 제가 더 오랜 시간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금처럼 서로 편한 관계론 못 돌아갈 것 같아서요. 전 지금의 생활, 지금 이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이 무척 소중하거든요.』
로건 워커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지구로 귀환할 때 오류가 발생했는지, 잠시 그가 되어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서한율은 치부를 들켜 민망하다는 얼굴로 웃었다.
『이건 나리도 모르는 일이에요.』
이로써 서한율에 대한 의문은 풀렸으나,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내 등 뒤에 붙은 건 아마, 나 때문에 죽은 원혼들일 거예요. 참… 많이 죽었거든요.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대체 무슨 일들을, 어떤 종류의 비극을 몇 번이나 겪은 걸까.
JE는 서한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매니저에게 연락이 와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툭. 옆에 앉은 에이플이 JE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손지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관악산에서 본 귀신 생각이요.”
“…….”
에이플이 조용히 팔을 치우곤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들려다오. 나중에 라방에서 팬들한테 말해주게.”
“제가 직접 썰 풀게요.”
“그럼 나랑 같이해.”
멤버들이 큭큭 웃으며 가볍게 떠들기 시작했다.
“에이플 저거 은근슬쩍 막내한테 묻어가려고.”
“시끄럽다.”
“관악산에서 무슨 귀신 봤는데? 라방에서 안 풀 테니까, 미리 들려주라.”
“나중에 예능에서 푸는 게 낫지 않아? 마침 여름이니까….”
태평하게 떠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자, 지금 이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이 무척 소중하다는 서한율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재앙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모의 상황을 만들 거예요. 진짜 커다란 재앙을 맞이하기 전에, 사람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차라리 누군가의 거대한 망상증에 휩쓸린 거라면 더욱 좋았을 거란 생각. 그리고 나중엔 이 생각이 더 절절히 들 거란 강한 예감이 든다.
JE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핸드폰을 꺼냈다.
한편 그 시각, 한율은 예정대로 구동을 데리고 관악산을 찾았다. 로건 워커로서 마지막으로 마법을 사용한 장소로.
‘50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잔재가 남아있을 줄이야.’
아니면 잔재가 산의 마나와 맞물려 귀신과 비슷한 기운으로 변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사용했던 마법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품에 있던 구동이 놓아달라는 듯 발버둥 쳤다. 내려놓자, 구동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익숙하다는 듯 움직였다. 한율이 잘 따라오는지 연신 고개를 돌려 확인하며.
“여기에서 살았어?”
얼마 가지 않아 나무를 탄 구동이 들어간 곳은, 딱따구리가 파놓은 듯한 구멍 안이었다. 본래라면 상당히 좁았을 텐데, 이빨로 조금씩 갉아서 입구와 안을 넓힌 모양이었다.
바스락바스락. 보금자리 안을 뒤적거리던 구동이 무언가를 입에 물고 얼굴을 쏙 내밀었다. 말라비틀어진 산삼이었다.
한율은 구동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끼웅.
가깝게 지내지 말자
“써한.”
16일 아침, 뮤닷 <락뮤닷> 어스래빗 대기실.
길우성이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전에 나 황성연 만난다고 했잖아.”
“어.”
“지난달에 만났었거든?”
“어.”
“결론부터 말하면.”
포털사이트 기사를 보던 한율은 고개를 돌려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길우성이 무릎에 두 팔꿈치를 세우곤 깍지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난 돈을 빌려줬고 그 녀석은 잠수를 탔어.”
“얼마나?”
“50만 원.”
“시간과 신경을 갈아 넣기엔 애매한 금액이네. 뭐라면서 빌려달래?”
“월세 더 밀리면 쫓겨나게 생겼다고. 그런데 내 얘길 들은 현우 형이 대신해서 그 집에 찾아갔거든? 이미 두 달 전에 이사 갔대.”
길우성이 심각한 표정 그대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날 그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눈으로 보지 말아주겠나, 친구? 나도 배신당해서 마음이 아파.”
한율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연예뉴스란 메인에 조금 전까지 없었던 기사 하나가 새로 올라왔다.
[[단독]블블 티스트·히아신스 라움 결별]
지금까지 잘 사귄다고 알려진 이 커플이, 실은 티스트가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했다는 내용이었다. 하단엔 티스트를 향한 동정 댓글이 잔뜩 달렸다.
“고등학생 때를 떠올리면 전혀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역시 사람은 안 좋은 쪽으로 쉽게 변하네.”
“회사 망해서 팀 흐지부지 해체된 뒤로 마음고생 많이 했잖아. 그래서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럽더라. 차라리 백만 원을 빌려 갔으면 또 몰라, 50만 원 가지고 뭘 하려고 그런 건지. 아니, 애초에 백만 원을 불렀으면 안 빌려줬겠지만.”
“나중에 돈 갚겠다면서 만나자는 연락 오면 절대 나가지 마. 계좌로 보내라고 해.”
풀썩. 차남석이 옆에 앉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술이나 음료에 약 타서 기절시킨 다음에 이상한 사진 찍고 협박할 수 있다.”
“그런 범죄까지 저지를 놈은 아냐. 너무 극단적이고 무서운 예시 들지 마쇼, 형님.”
“언제는 돈 빌려달랄 놈 아니라며? 그리고 돈 빌리고 잠수 타는 것도 범죄거든?”
“우성이 너.”
박가람까지 참견했다.
“앞으로 정말 친한 사람 아닌 지인 만날 땐, 꼭 형한테 허락받고 만나. 알았어?”
“…….”
“대답 안 합니까.”
“나 어린애 아니거든?”
“그래, 어린애가 아니니까 50만 원이나 뜯겼겠지.”
“으씨. 원래 사람한테 돈 빌려줄 땐 못 받을 경우까지 다 생각하고 빌려주는 거랬어.”
“50만 원이면 부모님께 사 드릴 수 있는 홍삼이 몇 박스냐.”
“큭…. 비겁하게 효자의 양심을 찌르다니….”
어느새 활동 2주 차. 사녹 무대 두 개를 준비했던 지난주에 비해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그래서 그런지, 대기실엔 멤버들의 시시한 대화가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졌다. 지난주엔 틈만 나면 자느라 조용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루트 선배님들 컴백이지? 나중에 인사하러 가면… 어떡하냐.”
작게 한숨을 내쉰 이건우의 시선이 한율을 향했다. 한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그 팀에 한율이 너랑 비교당하고 욕먹은 사람 있잖아.”
“아.”
루트는 아림 엔터 소속으로, 원카운트의 직속 선배인 보이그룹이었다. 한때 아시아 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녔으나, 시간에 따라 슬슬 세대가 교체되어 이젠 음방보단 예능과 드라마에서 더 자주 보이는 선배 아이돌.
여기엔 <서울 구미호> 다음 시간대에 방영되어, 늘 연기력으로 비교당했던 KBC 드라마 주연인 김종주도 속해 있었다.
“작년 9월에….”
차남석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정원그룹의 정이장이 클럽에서 포토그래퍼 김 쌤 폭행했을 때요. 그 자리로 김 쌤을 불렀던 게 루트 멤버였죠?”
멤버들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어, 맞아. 그런 얘기가 있었어.”
“불렀다고 했나? 우연히 같은 클럽에 있다가 일행으로 오해받았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때 정확히 멤버 누구였는지도 안 밝혀졌었잖아. 김 쌤도 안 알려주셨고.”
“루트 멤버가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고도 안 하셨지.”
한율은 그 멤버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림 엔터에서 정이장 사건 관련해서 떠들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오기도 했고요.”
“그때 사건 다시 떠올리니까 기분 팍 나빠지는데?”
그럴 만도 했다. 정이장은 당시 김 쌤에게 여자 아이돌을 부르면 한 사람당 천만 원을 주겠다고 지껄였다. 그리고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를 피하려던 김 쌤을 무차별하게 폭행했다.
“어쨌든.”
유호가 대기실 안을 둘러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샵 직원들이 오지 않아, 단독 대기실에는 멤버들과 WB래빗 스태프들뿐이었다.
“루트 선배님들이랑은 가깝게 지내지 말자. 아무 잘못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지 모르는 이상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봐.”
그때였다.
똑똑.
“네.”
<락뮤닷> 조연출이 들어왔다.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갑자기요?”
“네. 그럼.”
오늘 1위 후보는 이틀 전 처럼 어스래빗과 원제로, 진사랑이었다. 선배인 진사랑이 나오지 않아, 원래는 어스래빗이 마지막 순서.
그러나,
“뭐야. 또 루트가 마지막이야?”
“네?”
조유찬의 어이없는 목소리에, 멤버들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세트나 시스템 문제가 얽혀 있어서 그런지 사녹 순서는 변함이 없었으나, 생방송으로 나가는 무대 순서가 바뀌었다.
“작년 6월에 로 첫 1위 했을 때도 이러지 않았었나? 그때도 루트 컴백 무대가 마지막 순서였잖아.”
“적어도 그땐 당일에 이렇게 갑자기 바꾸진 않았지.”
“대체 뭐지? <락뮤닷>, 아림한테 뭐 약점 잡힌 거 있나?”
* * *
“루트 컴백 스테이지가 마지막 순서 아니면, 생방 아예 패스하고 가버리겠다고 해서 바꾼 거래.”
사녹을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잠깐 놀러 온 임승준이 말했다.
“그래서 어스래빗이 원제로와 루트의 컴백 스테이지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버린 거지.”
“생방 보러 오는 팬들도 있을 텐데?”
“루트가 아니라 아림의 결정이겠지.”
“나쁜 놈들.”
“그런데 차남석 넌 어디 가?”
다른 어스래빗 멤버들이 앨범이 든 종이가방을 챙길 때, 차남석은 홀로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 중이었다.
“광고 미팅. 올 때 애플망고 빙수랑 인절미 빙수 등등 사 올 거니까, 이따가 너도 먹으러 와.”
“시간 되면.”
잠시 후, 루트의 단독 대기실.
루트 멤버들은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환한 미소와 다정한 태도로 어스래빗 멤버들을 맞이했다.
“<서울 구미호> 형호! 나 네 드라마 팬이었어!”
“반가워요, 한율 씨.”
“그 잘생긴 친구는 어디 갔어요? 아니, 그런데 이 팀은 왜 이렇게 다들 인물이 좋아?”
“나중에 심심하면 놀러 와요. 아니, 내가 놀러 가도 될까?”
“나 우성 씨 너튜브 구독자예요! 춤 진짜 잘 추더라. 나중에 우리 노래도 커버해주면 안 될까?”
“트레리안!”
친한 사이처럼 와락 포옹하기도 하며. 특히 김종주는 한율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더니, 연락처도 교환하자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한율 씨 연기력이 너무 뛰어나서 분한 감정보다는 팬심만 생기더라. 나중에 밥 한번 같이 먹어요.”
<서울 구미호>와 방송 시간대가 연달아 잡힌 까닭에 비교와 함께 욕도 많이 먹었다던데 넉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아이돌이랑 배우 병행하는 사람들만의 고충이 있잖아요. 내가 실력이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선배로서 그런 얘기를 잘 들어줄 수 있거든. 오늘 1위 후보 된 것도 정말 축하해요.”
김종주의 친한 척은 생방송 때도 이어졌다. 루트의 컴백 무대 사녹이 송출되는 동안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무대로 올라갔는데, 노래를 부르던 김종주가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다가와 한율의 어깨를 끌어안곤 토닥토닥 두드렸다.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과한 리액션까지.
방송으론 나가지 않지만, 수많은 방청객과 다른 출연자들, 스태프들까지 다 있는 자리였다. 한율은 소심한 미소를 지으며 1위 후보 축하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꾸벅였다.
<락뮤닷> 생방송이 끝나고 한 커뮤니티 사이트.
[제목: 오늘 락뮤닷 사전 유출된 큐시트랑 마지막 순서 다르던데?]
[(이미지)
어스래빗이었는데 루트로 바뀜.]
-ㅇㄹ이 또 ㅇㄹ한 거지
-생방 무대에선 ㄱㅉ이 ㅅㅎㅇ한테 존나 친한 척했다던데
ㄴ나 아는 사람이 그쪽에서 일하는데 원래 둘이 친하다고 함ㅇㅇ
ㄴ따로 만난 적이 없는데 뭐가 친해ㅋㅋㅋ
ㄴㅅㅎㅇ 인맥은 SNS만 봐도 알 수 있다. 걘 진짜 친한 사람 아니면 맞팔 안 해
-사전 유출 큐시트가 스태프 실수로 잘못 뽑힌 거. 원래 마지막 순서 ㄹㅌ 맞아
ㄴㅇㄹ 알바생 검거
-이것들은 마지막 순서 아니면 목구멍 막히는 병에라도 걸렸나
-당당하게 1위 후보 돼서 마지막 순서 차지하면 되는 걸 그걸 못해서ㅋㅋ 아저씨들 꼬꼬마 애기들 판에 끼지 말고 장가나 가요
-언제적 ㄹㅌ냐 진짜
-너무 그러지 마ㅜㅜ 나 유치원 때 루트 노래로 장기 자랑할 만큼 좋아했단 말이야
다른 게시글.
[제목: 왜 ㅅㅎㅇ한테 친한 척함]
[ㅅㅎㅇ이 살린 아이돌 배우 이미지 말아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왜 친한 척하면서 애한테 부담 주냐]
-ㄹㅇㅋㅋ
-누구?
-ㅅ1ㅂ 무서워서 인사 건네겠냐ㄷㄷ
-열 살이나 어린 후배한테 친한 척할 시간에 연기 공부나 더 해라..
-ㅅㅎㅇ 심기 거스르면 이 바닥에서 ㅈ된다는 소문이 있음. 그러니 친한 척이라도 해야지
ㄴㅈ된 사람이 누가 있는데 헛소리ㅗ
ㄴㅇㄱㄷ
“그러게, 너는 왜 생방 무대에서까지 오버하고 난리냐. 어린애들이 하나 같이 ‘저 아저씨 뭔데 우리 오빠한테 친한 척해?’ 이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 안 느껴졌냐?”
보이그룹 루트의 업무 차량. 핸드폰을 보던 멤버가 비웃는 어조로 말하자, 김종주가 그를 찌릿 째려보았다.
“내가 뭐 추행이라도 했어? 그리고 괜히 그 핑계로 나 공격하는 것들이 서한율 팬이겠냐고. 팬인 척하는 안티들이겠지.”
“대기실에 인사하러 왔을 때도 서한율 너 완전 부담스러워하던데 무슨.”
“하…. 요즘 애들 참 친해지기 어렵다. 우리 때는 선배님들이 다정하게 대해주면 그게 정말 감동이었는데.”
“그것도 상대에 따라 다른 거지.”
리더가 냉소적인 얼굴로 웃었다.
“어떤 새끼가 지저분한 재벌 놈이랑 엮이지만 않았어도, 후배들이 우리한테 그렇게 선을 긋겠냐고.”
순식간에 차 안이 조용해졌다.
“…형, 그 얘긴 꺼내지 않기로 했잖아.”
“어떻게 안 꺼내. 그때 그 일 때문에 내 예능 고정 출연 기회가 날아갔는데.”
“…….”
“종주 씨, 도착했어요.”
마침 차가 김종주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김종주는 자신의 물건을 챙겨,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은 차에서 탈출했다.
“다들 수고했어. 내일 보자.”
“어, 수고했다.”
김종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오래간만에 음방을 뛰어서 그런지 삭신이 쑤셨다. 그러나 더 괴로운 건, 바로 마음.
‘내가 정말 부담스럽게 한 건가? 진짜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김종주는 <서울 구미호>와 자신의 드라마가 방영됐을 때 <서울 구미호> 본방송부터 꼭 챙겨 보았다. 끝까지 다 보면 자신의 드라마 앞부분을 못 본다는 걸 알면서도, 예고까지 꼭꼭 챙겼다.
‘역시 요즘 애들은 다가가기 어려워.’
우웅.
‘응?’
김종주는 의아한 얼굴로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았다. 예전에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적 있는 배우 이강대였다.
“어, 강대야. 오래간만이다. 잘 지냈어?”
-[형….]
그런데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어. 무슨 일 있어? 목소리 왜 그래?”
작년 KBC 드라마 <장인> 출연 이후 이렇다 할 활동도, 연락도 없어서 이번엔 휴식기를 오래가지나 생각했건만.
이강대가 잔뜩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좀 살려주세요….]
한편 그 시각, 어스래빗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한율은 JE가 보낸 톡을 확인했다.
-[모의 상황 훈련이랑 별개로, 지금부터 어떻게든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가만히 손 놓고 태평하게 아이돌 일하면서 지내도 돼?]
초조함이 느껴지는 톡 아래엔, 명상센터에 맡겨놓았던 구동일 집으로 데려가는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안전띠를 한 이동장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네. 혼자 있을 때 마나 유동 열심히 하세요.]
[(이모티콘)]
‘괜찮아요’ 글자가 크게 적히는 토끼 이모티콘 첨부.
우웅. 금세 답장이 왔다.
-[ㅡㅡ]
진짜 나 때문이었어?
18일 아침.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앗싸일보에서 걸려온 전화는 홍보팀을 거쳐 매니지 B팀 자리로 연결되었다.
“네, 매니지 B팀 오동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기자님. …네. …네, 그럴 리가요. 무슨 근거로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네, 좋습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이번엔 또 무슨 루머 체크예요?”
전화를 끊자 옆에서 서류 작업을 하던 조유찬이 물었다. 오늘은 어스래빗의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조금 불쾌한 루머요. 지금 이 근처에 있다니까, 금방 만나고 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오 팀장은 회사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앗싸일보의 이 기자와 만났다. 그리고 30분 뒤, 회사가 아니라 어스래빗 숙소로 향했다.
“그럼 저 때문에 일이 끊겼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란 뜻이네요?”
3층 옥상. 야외카페처럼 튼튼한 데크를 깔고 칸막이를 둘러 테이블과 의자, 화분 등으로 예쁘게 꾸민 공간. 오 팀장은 파고라를 올려보다가 고개를 내리며 끄덕였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땐 휑했었는데, 그사이 전문업체에 의뢰해 설치한 모양이었다.
“한율이 너 때문은 아니지. 그 사람이 멋대로 훼방을 놓은 거니까.”
한율은 이 기자가 오 팀장에게 주었다는 자료를 눈으로 살폈다. 자료 중엔 FJ그룹에서 뮤닷, OSN, tv Mu 등 방송 엔터 사업에서 중책을 맡은 ‘하 부장’이란 여성의 사진도 섞여 있었다.
처음엔 누군지 몰랐으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 유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4년 전 OSN 드라마 <수의형사>에 카메오로 출연했을 당시, 촬영장을 찾아왔던 사람이었다.
주연배우 오지원의 팬클럽이 보낸 푸드트럭 메뉴를 살필 때, 한율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때 스태프가 굽신거리면서 PD에게 안내했었지.’
그리고 이강대가 FJ그룹 계열사의 작품과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막은 인물이기도 했다.
“어쩌면 농담처럼 가볍게 한 말을 주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지.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강대가 한율이 너와 윤영 씨를 엮어서 안 좋게 말하고 다닌 게 이쪽 업계 사람들에게 퍼졌었거든. 그게 되레 그의 평판을 깎던 마당에, 하 부장의 말 한마디가 더해져 이 바닥 전체의 섭외 기피 대상이 된 게 아닐까 해.”
“아무리 독립적인 제작사라 해도, FJ그룹이 안 된다는 배우를 고집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요.”
“그렇지. 이강대가 연기를 잘하고 외모도 준수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 정도 레벨의 배우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오 팀장이 카페에서 포장해온 커피 뚜껑을 톡톡 두드렸다.
“앗싸에서는 FJ그룹의 하 부장이 서한율을 향한 팬심, 즉 사심으로 이강대에게 엿을 날렸다, 혹은 서한율과 하 부장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식으로 꼬아볼까 간 보는 중이고. 하 부장이… 한율이 네 생일마다 네 이름으로 830만 원씩 기부까지 하고 있단 사실도 알았으니.”
“그런데 앗싸에서는 하 부장의 입김이 작용했단 걸 어떻게 알았대요?”
“OSN 관계자가 이강대에게 이런 말을 한 모양이야. ‘너 혹시 술 먹고 FJ그룹 사람한테 꼬장 피운 적 있냐?’ 그 얘기를 단서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하 부장에게 다다른 거지. 이강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반 배우가 아닌, 대형기획사 소속에다 인기가 많은 아이돌 배우에게 하소연한 거고.”
“그게 루트의 김종주 선배님이고요?”
“어.”
참 아이러니했다. 한율의 험담을 할 때마다 늘 아이돌 출신이란 점을 들어 비꼬았다더니, 정작 도와달라고 찾은 사람 또한 아이돌 배우가 아닌가. 그것도 배우들이 가장 미워한다는, 인기로 주연을 꿰차는 발연기 아이돌.
“그렇게 김종주가 앗싸일보의 이 기자를 소개해준 거야. 이게 사실이면 이강대는 대기업의 횡포와 갑질로 일이 완전히 끊긴 거니까. 사회 뉴스 면을 장식할 만큼 큰 사건이잖아.”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대가 함부로 입을 놀리고 다닌 것도 잘못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받는 벌이 아주 가혹한 수준이었다. 1년 가까이 일을 전혀 하지 못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니.
“그런데 왜 저한텐 연락하지 않았을까요?”
작년 가을, 학교에서 만난 이강대는 한율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과했었다. 이번 사실을 알았다면 가장 먼저 한율에게 따지고도 남았을 텐데. 이성적으론 한율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아도 말이다.
“아직 앗싸에서 하 부장이 네 팬이란 사실을 이강대에게 말하지 않았거든. 하 부장이 한율이 너에 대한 팬심으로 그의 일을 끊어놓았다는 것도 앗싸의 일방적인 추측이고.”
“그래도 기사가 나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많겠죠. 그래서, 앗싸에서 저한테 원하는 건요?”
“없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척하면서 우리 반응을 떠보는 거거든. 진짜는 하 부장과 FJ그룹 쪽에서 얻어낼 거야.”
한율은 커피를 가볍게 흔들었다. 달그락달그락. 얼음끼리 서로 부딪쳤다.
“그럼 전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요?”
“그렇지,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 그래도 네 이름이 거론된 이상,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한율이 하 부장과 커넥션이 없다는 걸 확신하는 언행이었다. 그 기저엔 한율이 그런 식의 치졸한 보복은 하지 않으리란 믿음도 엿보였다.
한율은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작게 한숨 쉬었다.
“올해 생일부턴 830만 원 기부 소식을 못 듣겠네요.”
다음 날,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
[배우 이강대, tv Mu 신작 <우리 회사> 주연 확정!]
‘빠르네.’
어제 오 팀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기사였다.
한편으론 이게 무슨 촌극일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높은 사람의 말 한마디로 1년 동안 일이 끊기기도 하고, 단숨에 주연 자리를 꿰차기도 하니.
본래 세상이나 여기나. 이런 면은 참 똑같다.
“한율아.”
“네, 형.”
MBS <뮤직센터> 어스래빗 단독 대기실. 옆에 앉은 유호가 조용히 물었다.
“예전에 은수랑 화장품 모델 했을 때 말이야. 혹시 은수, 게임 같은 거 했었어?”
“게임이요?”
“응. 핸드폰 게임을 했다거나,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거나.”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항상 긴장해서 떨거나, 혼자 콘티 표정과 동작을 연습하거나, 한율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셋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
“그건 왜요?”
“스케줄 없는 날에 핸드폰 꺼놓고 몇 시간씩 게임만 한다고 해서.”
인기 아이돌 중엔 게임을 취미 이상으로 하는 이들이 많았다. 휴식기라도 사생 스토커나 타인의 시선 탓에 편히 외출하기가 힘든데, 집안에서 할 만한 오락이 한정된 까닭이었다.
그러나 한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핸드폰까지 꺼놓고요?”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방해받는 게 싫으면 무음으로 둬도 됐을 텐데.”
“사생이나 안티한테 시달리는 거 아닐까요? 지난번엔 절 사칭한 놈한테서 연락받았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가서 물어보려고.”
유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타일 유지를 위해 머리 여기저기에 핀을 꽂은 그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네, 다녀오세요.”
대기실을 나온 유호는 거침없이 복도를 걸었다. 얼마 전까지 1년 넘게 매주 출근했던 곳이라, 이젠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뮤직센터>/MC 진은수 님 대기실] 종이가 붙은 문 앞에 도착, 노크하려 손을 들었을 때였다. 오늘 컴백한 걸그룹, 아이허니의 멤버 유린이 활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은수 찾아오신 거예요? 저돈데.”
유린이 카페 로고가 새겨진 종이가방을 가볍게 들었다.
“아…. 네.”
게임에 대해서만 물어봐야겠다. 유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퍼플아워의 여성 매니저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은수 있나요?”
매니저는 유호와 유린을 무표정한 얼굴로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을 활짝 열었다. 진은수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기실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발견하곤 반갑게 미소 지었다.
“왔어요?”
그 미소에선 어떤 그늘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호는 가볍게 한 손을 들면서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은 것 같은데?’
한편, 어스래빗 대기실.
살짝 열린 문 앞에서 라이언이 짝다리를 짚은 채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
문밖에 선 정민솔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들여보내 주지도 않고 대뜸 차단한다고?”
“용건 있으면 전화로 해.”
“전화하면 항상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끊으라며.”
“다음에 다시 와. 나 게임할 거야.”
“우리 내일부터 일본 콘서트거든?”
“그건 네 사정이고.”
어스래빗 멤버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라이언과 정민솔의 실랑이를 구경했다.
“잠깐 둘이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는 게 그렇게 싫을 일이냐?”
“그냥 여기에서 말하라니까?”
“여기에서 어떻게 말하냐? 너 솔직히 말해. 일부러 이러는 거지?”
“알면 좀 가. 너 싫어.”
“야. 너 유치하게 이럴래?”
참 소소하기 그지없는 말다툼은 정민솔이 원제로 리더에게 잡혀가며 끝이 났다. 민솔아, 라디오 홍보 가야지.
“민솔이 형, 라욘 형한테 쩔쩔매는 거 재밌다.”
길우성의 말에 차남석은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더 당해야 해.”
다음 날인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어스래빗은 음방 스케줄 대신 콘서트 연습에 매진했다. 연예 뉴스란에는 원제로의 일본 콘서트가 아주 성공적이라는 기사가 여러 건 올라왔다. 그러나 어스래빗 멤버들의 시선을 끈 기사는 따로 있었다.
[ACCOM, M/V 공개 16일 만에 천만 뷰 돌파!]
“크으! ACCOM 자체 최단 기록이래. 왜 내가 다 뿌듯하냐.”
“이번에 노래랑 같이 콘셉트를 잘 잡았다니까.”
ACCOM은 다른 때보다 좋은 반응에 힘입어 활동을 연장하기로 했다. 듣기론 행사도 많이 잡혀서 회사 스태프들도 참 바빠졌다고.
그래서 그런지, 23일 <락뮤닷>에서 만난 ACCOM 멤버들은 유호와 강보배를 보자마자 낯간지러운 멘트를 하거나 포옹했다.
“사랑한다, 친구야.”
“사랑합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선생님.”
“다음 곡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
어스래빗은 일주일 동안 후속곡 활동에 들어갔다. 중간에 라디오 홍보 스케줄, 자체 콘텐츠 촬영도 하며.
그렇게 날짜는 6월 30일.
어스래빗 네 번째 EP앨범 [Balance] 활동 마지막 날이 되었다.
뮤닷 <락뮤닷> 상반기 결산 특집방송. ‘컴투유’ 팀의 드라이 리허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우리느은!”
“의!”
“‘컴투유’!”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드라이 리허설인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사하게 단장한 소녀들이 한율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개중엔 회사에서 본 적 있는 얼굴도 섞여 있었다.
한율은 홀로 손구호를 하며 화답했다.
“어스, 래빗의 서한율입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한율을 바라보는 컴투유 멤버들의 눈은 말 그대로 초롱초롱 빛났다. 동경하던 선배를 가까이에서 본 기쁨으로 감격한 표정이었다.
한율은 미소 지으며 그들이 원하는 말을 덧붙여주었다.
“ 정말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사실은 바쁘고 피곤해서 인기 클립만 겨우 챙겨 보고 있지만, 옆에서 측 카메라도 돌고 있고.
연습생 소녀들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더 반짝거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허튼짓할 아이는 아니야
“아까 픽미돌2 애들 봤어? 서한율 보자마자 눈웃음 살살 치면서 끼 부리는 거? 반면에 서한율은 딱 예의 바르게 선 긋더라.”
“서한율이 그런 애들 한두 번 겪어봤겠어? 그나저나 리허설인데도 연기 진짜. 형호가 아이돌 하면 그런 느낌일 것 같아.”
“아직도 <서울 구미호>에서 못 빠져나왔니?”
<락뮤닷> 걸그룹 공동 대기실. 칸막이 너머로 지나가듯 들리는 웃음소리와 말소리에, 다른 여자 아이돌도 수군거렸다.
“요즘 애들이 좀 까지긴 했지.”
“오늘 픽미돌2에서 나온 애들이 경연 1등 팀이라며? 그런데 사실 그 정도 실력이야 이 바닥에선 당연한 거잖아. 결국 얼굴이랑 화제성이지.”
“그런데 정말 용기 있다. 서한율이 걔네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1등 팀 소원 찬스로 뮤닷에서 부탁하게 한 거라며?”
“영악하게 이용하는 거지. 퍼플아워 진은수도 까인 마당에, 진짜 어떻게 해볼 수 있단 자신감으로 그랬겠어?”
오늘 방송 라인업에는 퍼플아워도 있었으나, 그들은 진은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웃었다. 대형기획사 소속 가수들은 데뷔 초부터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공동 대기실이 아닌 단독 대기실을 사용하는 까닭이었다. 오늘도 그렇고.
“옆에 우리가 있다는 걸 잊은 거야, 모르는 거야?”
얇은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드림래빗의 대기 공간. 막내 신혜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일부러 낭랑한 목소리를 크게 냈다.
“우리 어스래빗 선배님들한테 인사 언제 가? 회사에선 마주치기가 차암 힘드네에?!”
…….
옆 팀이 조용해졌다.
핸드폰으로 레이싱 게임에 열중하던 박세은이 대답했다.
“사녹 끝나고 가야지.”
“…언니. 내가 정말 몰라서 물었을까?”
그제야 박세은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응?”
한편 컴투유 팀의 드라이 리허설을 마친 한율은 어스래빗 대기실로 돌아왔다.
홀로 대기실을 지키던 조유찬이 물었다.
“수고했어, 한율아. 후배는 어땠어?”
“잘하던데요? 카메라도 돌고 있어서 특별히 후배 응원하는 멘트도 넣고, 다른 멤버들한테도 잘 부탁한다고 얘기했어요.”
“잘했어.”
어스래빗의 리허설은 두 시간 후라, 멤버들은 아직 출근 전. 조유찬이 얇은 담요와 베개를 챙겨주었다.
“그럼 혼자 편히 쉬고 있어. 난 A팀 매니저들이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필요한 거 있으면 톡이나 전화하고.”
“네.”
노트북까지 들고 가는 걸 보니 해야 할 업무 이야기가 많은 모양. 대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한율은 담요를 몸에 두르고 소파에 누웠다.
‘잠이나 자자.’
똑똑.
“……?”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한율은 담요를 두른 채 일어나 대답 없이 문을 열었다. 벌컥. 재차 노크하기 위함인지, 가볍게 손을 말아쥔 JE가 눈을 끔뻑거렸다.
“대답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은?”
“매니저 형은 다른 매니저랑 얘기하러 갔고, 멤버들은 출근 전이요. 그런데 스타믹스 리허설은 한 시간 후 아니에요?”
그동안 한율이 콘서트 준비와 스케줄로 바빴던 터라, JE와 만나는 건 지난번 명상센터 이후 보름 만이었다.
“내 차 타고 먼저 왔어. 너랑 얘기 좀 하려고.”
따뜻한 레몬생강차 두 잔이 테이블에 놓였다. 한율과 JE는 사과패드에 서울 지도를 띄워놓고 모의 훈련 계획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전 세계의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긴 하겠지만, 그것도 조사단 꾸려서 잠깐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도록 만들려고요.”
“그게 가능해? 혹시 너 순간이동 마법 쓰냐?”
“장거리 이동 마법은 목적지와 그 길에 미리 진을 설치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소모되는 마력도 만만치 않고. 그러니 사람이 직접 움직여야죠.”
덤덤한 한율의 대답에 JE는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능은 하단 소리네. 나도 그거 배울 수 있냐?”
“꾸준히….”
한율은 JE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30년 정도 수련하면?”
“…….”
“높은 레벨의 마법은 그만큼의 마력도 필요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실력도 갖춰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구의 마나 질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TV 보면서 숨 쉬듯 마나 유동하는 경지에 다다르는 데에도 한참 걸릴 거예요.”
한율을 바라보는 JE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총 몇 년 살았냐.”
“선배님, 혼자 해외 갔다 올 수 있죠?”
“이 자식 말 돌리네.”
아직 ‘이쪽’으로 포섭하지 않은 유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시작이 늦을수록 안 좋은 거 아냐?”
“호 형이 무언가를 느껴도 착각으로 치부하고 넘기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투어 중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려고요. 일단 반지에 마나를 잘 느끼게 해주는 마법이랑 보호 마법도 새겼고.”
“혹시 그 보호 마법…. 너희 멤버들이 낀 반지에 전부 새겼어?”
“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은 미소를 덧붙였다.
“당연히 새겼죠. 가족처럼 소중한 우리 팀 멤버들인데.”
“오호.”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JE가 물었다.
“그 보호 마법 새기는 건, 내가 배우려면 얼마나 걸려?”
“이것도 견딜 수 있는 충격 강도에 따라 다른데… 선배님이 겪은 교통사고 정도를 기준으로 잡으면.”
한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10년 정도? 아이템에 마법을 새기는 게 그냥 시전하는 것보다 더 어렵거든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그 사이에 지구 멸망하는 거 아냐?”
JE는 30여 분 동안 한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헌의 연락을 받고 어스래빗 대기실을 나왔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퍼플아워 멤버들과 마주쳤다. 막 드라이 리허설을 마쳤는지 이름이 큼지막하게 써진 리허설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다른 멤버들보다 한 걸음 떨어져 오던 진은수와도 꾸벅.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복도에 울리는 퍼플아워 멤버들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진사랑 선배님 오늘 진짜 출연하시는 거 맞지? 몇 시에 오실까?”
“글쎄….”
JE는 걸음을 멈추곤 진은수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재앙이 닥치면 극소수의 사람들이 제각기 신비한 능력을 각성하게 될 거예요. 선배님이 좋은 향기를 맡았던 은수 씨도 그중 한 명이고요. …길우성도.』
‘향기에 대한 미스터리는 풀렸지만.’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재앙이 닥쳤을 때, 특별한 힘이 생기는 게 그 사람에게 꼭 좋은 일일까? 사람에 따라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타심과 희생정신을 강요받으며 사지로 떠밀리게 될 수도 있잖아.’
하. JE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하냐.’
오전 11시, 어스래빗 대기실.
길우성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통탄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써한. 널 두고 푹신한 숙소 침대로 돌아가는 날 용서해라.”
상반기 결산특집 방송인데다 오늘이 막방이라, 어스래빗은 1.5곡을 불렀다. 이어서 부른 터라 사녹은 한 번으로 끝. 생방송이 시작되는 5시까지 대기실에서 빈둥거리느니, 숙소나 회사로 돌아가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컴투유’ 팀의 사녹이 남은 한율을 제외하고.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빨리 꺼져.”
“흐.”
“나는 하뉼이랑 여기 있을래.”
라이언이 가방에서 노트북과 마우스, 키보드, 헤드셋을 꺼냈다. 강보배가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에서 작업하려고? 불편하지 않겠어?”
“게임할 거야.”
“…불편하지 않겠어?”
“괜찮아.”
“이따가 올 때 뭐 좀 사다 줄까?”
“괜찮아요. 나중에들 봐요.”
스타일리스트까지 드림래빗 쪽으로 이동해, 어스래빗 대기실은 금세 썰렁해졌다. 잠시 후, 몇 시간 전에 왔었던 샵 직원들이 다시 찾아와, 한율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컴투유 무대에 어울리게 수정해주었다.
“나도 같이 갈까?”
“괜찮아요.”
슬슬 사녹 시간이 되어, 한율은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조유찬과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금방 올게요.”
“응.”
그러곤 혼자 남겨지는 라이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곤 문을 닫았다.
“남친 룩 평범하게 잘 어울린다, 한율아.”
“칭찬이죠?”
“당연히 칭찬이지. 제일 인기 많은 훈훈한 대학생 같아.”
“대학생 맞는데요.”
조유찬과 심심한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스튜디오 백스테이지에는 컴투유 멤버들이 먼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새벽 리허설 때보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소녀들이 한율에게 꾸벅 인사했다. 여전히 그들 곁에 있던 측 카메라도 한율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우리, 리허설 때처럼 잘해봐요.”
“네!”
한율이 컴투유의 무대를 함께 꾸며준다는 사실은 아직 방송으로 나가지 않았다. 관계자들을 제외하곤 오늘 큐시트를 본 사람들만 알아차린 정도. 컴투유의 사녹을 방청하러 온 팬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일까. 사이드 무대 조명이 켜지고 한율이 등장하자, 방청석 쪽에선 놀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워어! 어스래빗 무대에선 듣기 힘든 남성 팬들의 굵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한율은 태연하게 무대 연기를 선보였다.
가사에 맞춰 주인공이 좋아하는 선물, 질색하는 선물을 따로 준비하면서 즐거운 듯하면서 짓궂은 장난기가 엿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어 얄미운 썸남처럼 보이도록.
사녹은 세 번 만에 OK. 잠깐 쉬는 중에도 컴투유 멤버들과 팬들 간의 대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사이드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한율은, 다 끝나고 나서야 방청객을 향해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실물이 훨씬 나아요! 서한율 잘생겼다!
“점심은 뭐 먹을래?”
어스래빗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 조유찬이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글쎄요. 형은 뭐 먹고 싶어요?”
“순두부찌개.”
“그럼 전 리코타치즈 샐러드에 로제 파스타요.”
“하하하.”
조유찬이 소리 내어 웃으며 대기실 문을 활짝 열었다.
“라이언, 점심 뭐 먹…. 응?”
“아, 안녕하세요….”
“……?”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문에 붙은 [<락뮤닷>/어스래빗 대기실] 종이를 확인했다. 분명히 어스래빗 대기실이 맞는데, 왜 스카이러너의 용맹이 있는 걸까. 그것도 혼자.
“형 여기에서 뭐 해요?”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던 용맹이 머쓱한 얼굴로 일어났다.
“라이언이 잠깐 대기실 좀 봐 달라고 해서, 혼자 TV 보고 있었어.”
급히 화장실에라도 간 걸까.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용맹에게 물었다.
“점심은 먹었어요?”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네. 형은 뭐 먹을래요?”
“순두부 백반. 라이언이 그랬는데, 만약에 한율이 네가 더 빨리 돌아오면 자기는 치즈돈가스 시켜달래.”
라이언은 주문한 점심 메뉴가 모두 도착하고 나서야 대기실로 돌아왔다. 조유찬이 점잖게 타일렀다.
“손님한테 대기실 맡겨놓고 어디 갔다 와. 용맹 씨가 얼마나 당황했겠어.”
“죄송합니당. 미안해, 맹.”
“아니야, 괜찮아.”
“손에 든 건 뭐에요?”
라이언이 작은 종이가방을 가볍게 들며 씨익 웃었다.
“진사랑 선배님 친필 사인 앨범.”
“혼자 인사 다녀온 거예요?”
“아냐. 선배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갔다가 내 것만 먼저 받았어. 나중에 멤버들이랑 또 같이 갈 거야.”
다른 아이돌에게 대기실을 맡기면서까지 혼자 찾아갈 만한 용건이 뭐가 있을까. 혹시 여기에 남겠다고 한 것도 진사랑을 만나기 위함이었나?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으나,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엉뚱하기는 해도, 이유 없이 허튼짓할 아이는 아니므로.
“네. 돈가스 먹어요. 아직 치즈 안 굳었어요.”
“응.”
아빠 전화
-[이 가사 사진 뭐야? 이거, 네가 쓴 거 아니지?]
<락뮤닷> 진사랑 단독 대기실.
진사랑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모르면 간첩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솔로 가수였다. 그러나 음악 방송에 나오는 건 아주 오래간만이라, 그녀는 후배들과 만날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긴장을 잠시 잊게 만든 작은 일이 생겼다.
“네. 조금 전에 한 후배가 주고 간 거예요.”
진사랑은 스태프들을 살피곤 목소리를 낮췄다.
“원제로가 해체되고 나면 발표할 곡 가사 일부라면서.”
-[어….]
리얼 엔터테인먼트 심 대표는 말문이 막힌 듯, 한참 동안 당혹스러운 기색을 흘렸다.
-[이 내용…이 사실이란 보장은 없잖아.]
“서사는 이어지는 것 같아요.”
-[서사? 무슨 서사?]
“어스래빗 단독 리얼리티 <런던래빗> 마지막 화요.”
-[어스래빗이면 서한율이랑 차남석 있는 팀이잖아. 그 팀 멤버 중의 한 명이 쓴 거라고? …아니, 내가 직접 알아볼게. 사랑이 넌 더는 신경 쓰지 마. 모른 척해. 알았지?]
“네.”
-[오늘 방송 수고하고.]
“네.”
통화가 끝났다.
진사랑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30일 방송된 <락뮤닷> 상반기 결산특집 방송은 여러모로 큰 화제가 되었다. 오래간만에 진사랑이 출연해 스페셜 무대를 보인데다, 뮤닷의 인기 예능 경연 1등 팀까지 나온 까닭이었다.
이프림은 어스래빗 영상만이 아니라 컴투유 동영상 클립에도 댓글을 잔뜩 달았다.
-한율이 네가 왜 여기에서 나와...?
-라면 끓이려고 일어났다가 서한율 보고 도로 TV 앞에 앉아서 봤는데 노래가 좋아서 다시 클립으로 보러 왔어요ㅎㅎ
-컴투유 사녹 방청 간 친구가 서한율도 같이 나왔다 그래서 구라치지 말라고 했는데 진짜였고
-사람 맘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여율톢
-역시 떠비가 소속 아이돌 보컬 트레이닝은 참 잘 시키는 듯.
-서한율 나온다고 해서 봤는데 노래도 좋고 실력도 기성 아이돌 못지않네요. 다들 최종 순위 안에 들어서 데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홧팅! :D
-같은 소속사 후배 도와주러 간 거야? 오구구♡♡♡
미국 LA의 한 호텔.
원제로 멤버 현강희는 침대에 누운 채 <락뮤닷> 동영상 클립과 반응을 살피곤 컴투유 영상을 또 재생했다.
‘선배님은 연극도 참 잘하실 것 같아.’
“현강, 배고프지 않냐?”
현강희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며 뒹굴 굴렀다. 막 욕실에서 나온 변지욱이 목 운동을 하더니 쩝 입맛을 다셨다.
“라일 형이 컵라면이랑 고추참치 챙겨왔던데. 두 개씩 내놓으라고 하자.”
잠시 망설이던 현강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시차 적응할 시간 없이 곧바로 콘서트 리허설을 뛰었던 터라 저녁엔 입맛이 없었다. 그래서 대충 먹고 넘겼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뒤늦게 허기가 밀려왔다.
“콜.”
두 사람은 라일과 정민솔이 사용하는 객실을 찾았다.
“컵라면은 두 개 주겠는데, 고추참치는 하나. 그 이상은 안 돼.”
“에이. 인심 쓰는 김에 더 쓰시죠, 형님.”
“너희 이거 나트륨 수치 다 더하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는지 알아?”
그때였다.
문이 열려있던 침실 안쪽에서 돌연 큰소리가 나왔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깜짝. 세 사람은 어깨를 떨면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민솔이 누군가를 향해 화내고 있었다.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요, 지금!”
하. 이어지는 커다란 한숨 소리에서 답답한 분노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내 거실에 있는 그들을 의식한 듯, 정민솔이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타악.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도 낮췄다.
변지욱이 라일에게 속닥거리며 물었다.
“민솔이 형 지금 누구랑 통화하는데 저렇게 화내?”
“아빠 전화 같았는데. 집에 무슨 일 생겼나…?”
“…….”
“일단 너희는 이거 가지고 객실로 돌아가.”
변지욱과 현강희는 컵라면과 고추참치를 각각 하나씩 받아 객실로 돌아왔다.
“아까 얼핏 들어보니까 ‘아버지가 일단 대표님 직접 만나봐요’라는 것 같았는데. 소속사랑 문제 생겼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리는 중. 현강희가 고추참치 캔을 따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들렸어?”
“나 귀 좋잖아.”
“민솔이 형 문제는 형이 알아서 잘하겠지.”
“컨디션에 문제 생길까 봐 그렇지. 민솔이 형, 컨디션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목 상태도 삐거덕거리잖아.”
변지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제로의 마지막 투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