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7월 3일. 4번째 EP 앨범 [Balance]의 활동은 끝났지만, 어스래빗은 사흘 동안 지방과 실내 스튜디오에서 디지털 싱글 곡의 M/V 촬영을 진행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월드투어가 끝나자마자 발표할 신곡이었다.
“달냥이.”
덥석. 길우성이 한율의 옷을 잡으며 강한 어조로 요구했다.
“달냥이 보고 싶다.”
“나도. 못 본 지 한참 됐어.”
잠든 몇 명을 제외한 멤버들도 한 마디씩 보탰다.
“지금 데려오면 안 돼?”
“달냥이 안아서 막 쓰다듬고 싶다.”
“달냥이 골골송 듣고 싶어.”
한율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곤 모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달냥이 데리러 가도 될까요?”
-[오늘도 뮤직비디오 촬영 있었다면서. 피곤할 테니까 숙소에서 편히 쉬고 있어. 내가 데리고 갈게.]
“아니요, 시간 늦었잖아요. 가는 길에 잠깐 들르면 돼요.”
통화를 들은 조유찬이 눈치껏 외쳤다.
“어머님! 20분 후면 도착할 거예요!”
-[어머…. 번거롭게 해서 미안한데.]
“괜찮아요. 멤버들이 빨리 달냥이 보고 싶다고 재촉해서요.”
-[그래, 알았어.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도착 5분 전쯤에 톡 부탁해.]
“네.”
잠시 후. 한율은 달냥의 이동장을, 길우성은 한율의 모친이 챙겨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서 숙소로 들어갔다.
“무슨 반찬 싸주셨을지 너무 궁금하당.”
“어머님이 만든 갈비찜이 먹고 싶지만 그건 없겠징.”
멤버들은 손부터 씻고 난 뒤, 달냥과 한 번씩 하이파이브 하고선 주방 테이블로 모였다. 달칵. 라이언이 대표로 아이스박스를 열어 크고 작은 반찬통을 꺼냈다.
“와아.”
“아니, 어떻게 딱 갈비찜이?!”
“아, 바로 밥 먹고 싶다.”
“아버지가 갈비찜을 좋아하셔서요. 오늘도 만드셨었나 봐요.”
“그럼 우리, 한율이네 아부지가 내일 드실 갈비찜을 중간에서 낚아챈 거야?”
“뭐 해. 빨리 냄비로 옮겨서 데워.”
이건우가 나서서 즉석밥을 꺼냈다.
M/V 촬영도 끝났겠다, 콘서트는 또 체력 싸움이라서 다이어트란 단어는 당분간 머릿속에서 지워도 무방했다. 경험상, 잘 먹어도 알아서 빠졌다.
“나랑 밥 하나 나눠 먹을 사람. 양심상 탄수화물은 차마 마음껏 못 먹겠다.”
“저요.”
우웅.
“누구 핸드폰 울린다.”
“내 건 아님.”
“라이언, 네 가방에서 울리는 것 같은데?”
신난 얼굴로 갈비찜을 냄비로 옮기던 라이언의 미간이 구겨졌다.
“누구야, 이 시간에.”
라이언은 소파에 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정원으로 나갔다. 그러곤 밥상이 다 차려지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 전환데 그렇게 오래 통화해.”
“아버지.”
“그렇구나. …안 좋은 일은 아니지?”
강보배가 조심스레 묻자, 라이언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일 아니야.”
“형 생각으로만 별일 아닌 거 아니야?”
그런가? 라는 얼굴로 라이언이 눈을 끔뻑거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프림 몇 명이 고모 SNS에 항의했대. 왜 내 어릴 적 사진을 멋대로 올리냐고. 심지어 돈 받고 팔기도 했나 봐.”
“별일을 넘어 큰일이잖아, 이언아.”
“그래서 고모한테 곧 변호사한테서 연락이 갈 테니 마음 준비하라고 전해달라고 했어.”
“잘했어.”
박가람이 라이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다가 거실 TV로 고개를 돌렸다.
“서한율 나오려나 보다.”
본방송. 바로 며칠 전 <락뮤닷>에 출연했던 컴투유 팀이 나왔다.
자막으로 표기되는 대화.
[나는 우리 팀이 1등 하게 되면 <락뮤닷> 무대에… 아, 이 소원 말해도 되나?]
[뭔데?]
[(???) 선배님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주셨으면 좋겠어.]
삐. 묵음 처리되는 괄호 속 물음표 이름. 그리고 <락뮤닷> 무대에서 물음표로 얼굴이 가려진 채 등장하는 누군가를 보고, 놀라 감격한 표정을 짓는 컴투유 멤버들.
자막.
[잠시 후, 놀라운 지원 사격 주인공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이미 <락뮤닷> 본 사람은 누군지 다 아는데.”
“그러게.”
“다음 주 마지막 화에 ‘트레리안 호’도 가?”
유호와 강보배,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초대받았어. 경연곡 만든 작곡&프로듀서 팀으로.”
“원제로는 바로 그다음 주 해체지?”
이건우가 핸드폰으로 달력을 살폈다.
“걔네 마지막 콘서트도 17일 금요일이고. 우린 일본 콘서트로 국내에 없을 때니까, 승준이랑 지욱이, 강희한테 줄 선물 미리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오, 형님.”
“내가 임승준한테 뭐 갖고 싶냐고 물어볼게요.”
“응. 나중에 단톡방에 올려줘.”
다음 날. 서울 첫 단독 콘서트를 일주일 앞두고 어스래빗에겐 온전한 하루 휴일이 주어졌다. 한율은 아침 일찍 달냥을 데리고 스타믹스 JE의 집으로 향했다.
몇 달 만에 만난 달냥과 구동.
므에오옹.
끼웅?
킁킁. 이동장에 든 달냥이 뭐라 한마디 하더니, 코를 바짝 대고 구동의 냄새를 맡았다.
달냥에게서 익숙한 마나 냄새가 나서 그럴까. 구동 또한 JE의 바지를 꼭 잡은 채 호기심 있는 얼굴로 갸웃거리며 킁킁거렸다.
“갑자기 물진 않겠지?”
“괜찮을 거예요. 꺼낼게요.”
한율은 이동장 문을 열었다. 달냥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곤 부르르. 환한 아침 햇살에 새카만 털이 반짝거리며 휘날렸다.
“으아, 털.”
달냥은 한 차례 쭈욱 기지개를 켠 후 구동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킁킁. 구동은 주춤거리며 JE의 다리 뒤로 숨었다가, 다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 순간이었다.
휙. 돌연 달냥이 고개를 돌리더니 볕이 잘 드는 발코니 앞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므아앙.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언제든 구동을 잡으려고 상체를 숙였던 JE가 김이 샌다는 얼굴로 허리를 폈다.
“처음 온 남의 집에서. 참 뻔뻔한 녀석이네.”
구동이 슬금슬금 움직여 달냥의 근처로 가서 앉았다. 므앙. 달냥이 일어나더니 대뜸 구동의 머리를 핥았다.
구동의 뒤통수 털이 앞쪽으로 부스스하게 세워졌다.
“처음 만났을 땐 구동이한테서 바깥 냄새, 이질적인 냄새가 짙게 나서 달냥이가 경계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보니, 둘이 둬도 괜찮을 것 같네요.”
“다행이네, 친구가 생겨서. …야, 그만 핥아. 구동이 스타일 다 망가지잖아.”
그래도 혹시 몰라, 두 사람은 달냥과 구동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거실 식탁에서 아침을 먹으며.
“아. 너 원제로의 정민솔 알지? 예전에 WB래빗에 있었잖아.”
“네.”
“걔 또 기사 났더라.”
“……?”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냈다.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
[진사랑 소속사 리얼 엔터, 원제로 정민솔과 전속 계약 불발]
[진사랑의 소속사 리얼 엔터테인먼트와 원제로 정민솔과의 전속 계약 논의가 불발되어 화제다.
리얼 엔터테인먼트 측 관계자는 정민솔과 전속 계약 논의를 진행한 건 사실이지만, 최종 협상 중 계약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민솔의 아버지 A씨는 ‘민솔이가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대로 계약하기로 약속했는데 돌연 리얼 엔터에서 등을 돌려서 참 당혹스럽다.’라며 정민솔이 과도한 계약금과 조건을 달아서 불발된 게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추측엔 ‘말도 안 된다. 오히려 더 높은 계약금과 조건을 제시한 곳을 두고 민솔이가 직접 선택해 접촉한 곳이 리얼이었다.’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한편 원제로는 현재 17일 해체를 앞두고 미주투어를 진행 중이다.]
-얘 전에는 스케일 엔터랑도 불발 기사 뜨지 않았냐? 왜 자꾸 까이냐ㅋㅋㅋㅋ
왜 하필 콘서트 전에
ㄴ이쯤 되면 얘한테 문제 있는 듯
ㄴ무슨 문제요? 딱 봐도 정민솔한테 거절당한 회사나 지금 소속사가 이 악물고 방해하는 거구만ㅋㅋㅋ
ㄴ계약이 장난인 줄 아나. 신중하게 하다 보면 엇갈려서 엎어지기도 하는 거지. 사회생활 안 한 티 내지 마라 백수야
ㄴ??? 이봐요. 너희 오빠가 가만히 있다가 까인 거예요. 급발진도 본문 좀 읽고 해;;
-당사자가 투어 떠나자마자 일방적으로 태도 바꾸는 건 좀 이상한데
-리얼 엔터는 대표보단 진사랑이 실세 아니었나? 말하지 않는 뭔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
ㄴㅇㅇ사랑이 누나가 괜히 문제없는 계약을 엎을 사람이 아님
ㄴ222222
ㄴ33333333
-원제로 메보에다 올해 고작 22살이라 영입만 하면 돈을 쓸어 담을 텐데 벌써 두 기획사가 깠다? 백퍼 뭐 있다
ㄴ그러니까 아는 척하려면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지껄여봐^^ 쫄?
“어쩐지 느낌이 별로더라니. 뭔가 있긴 있나?”
“느낌이요?”
한율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JE는 구동의 방석에 자리 잡고 눕는 달냥과 그런 달냥에게 붙어 잠을 청하려는 구동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저놈 좀 별로인 것 같다.’ 대충 이런 느낌이 들었었거든. 실제론 어떤 놈이야?”
“생각이 얕고 자기중심적인 못난이요. 최근엔 그래도 조심하려 노력하는 것 같은데, 직업상 과거의 언행이 계속 꼬리표처럼 달릴 것 같네요.”
“그렇게 심했었냐?”
“글쎄요. 저한텐… 충분히 생길 법한 질투심으로 못나게 굴기는 했지만,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돈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들하고도 겉으론 원만하게 잘 지냈고. 그런데 라이언에게는 달랐죠.”
한율은 라이언과 정민솔 사이의 일을 간단히 추려 이야기해주었다.
“…말 참 X같이 했었네. 한동안 잠잠하다가 <런던래빗>이 방송되고 나서야 다시 알짱거리는 것도 수가 환히 보이고. 어쨌든, 내가 만약 리얼 엔터 대표고 이런 인성 짓을 알았다?”
JE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라면 계약 엎어. 다른 기획사면 몰라도 리얼 엔터는 진사랑이 가장 중요하니까. 폭로 한번 터지면 진사랑이 만들어놓은 좋은 회사 이미지까지 엉망이 되잖아. 수익도 당장 아쉬울 거 하나 없고. 왜? 진사랑이 있으니까.”
JE의 의견을 듣자, 며칠 전 <락뮤닷>에서 라이언이 진사랑을 따로 만나고 온 일이 떠올랐다.
설마.
“정말 리얼 엔터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기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지만요.”
“사실….”
JE가 포크로 샐러드를 휘저으며 한숨 쉬었다.
“괜히 나 때문에 스케일이랑 계약 틀어진 것 같아서 조금 찝찝했거든.”
“……?”
“그런 게 있어. 커피 마실래?”
“네.”
그 시각, 미국 LA의 한 공연장.
원제로의 콘서트 연출가가 매니지먼트 직원과 뮤닷 직원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라면 팬들에게 실망만 줄 거예요.”
“콘서트의 쾌감은 라이브에서 나오는 건데, 그것도 하필 메인 보컬의 목 상태가….”
매니지먼트 직원은 고민에 잠겼다. 오늘 LA 공연은 원제로 해체 전 마지막 미주투어의 스타트였다. 엉망으로 시작할 순 없는 노릇.
“지난번 리허설 때 녹음된 게 있으니 그걸 깔죠. 그나마 티가 덜 나도록.”
“그러는 게 낫겠네요. 매니저님, 민솔이 좀 불러와 주세요.”
한편, 대기실에 있던 정민솔은 구석진 곳에 앉아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씨발, 왜 하필 콘서트 전에 기사가 떠!’
며칠 전, 아버지를 통해 리얼 엔터의 변심을 들었다. 그때 정민솔의 머릿속에는 ‘왜?’라는 의문과 함께 의심도 피어올랐다. 스케일 엔터에 이어서 잘 진행되던 논의가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엎어졌다.
‘누가 고의로 방해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리얼 엔터 대표와 직접 통화하며 이유를 물었다. 심 대표의 대답은 이러했다.
『여러 차례 고심했지만, 우리 회사와 민솔 씨의 방향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리얼 엔터는 애초부터 진사랑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기획사였다. 매니지 업무 역시 방송 활동보다 음악 활동에 전념하는 진사랑에게 맞춰져 있어, 방송 활동은 물론 팬 서비스에도 신경 써야 하는 정민솔의 케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변명.
『솔로로 선다고 해도 민솔 씨는 아이돌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아이돌을 위한 케어가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거든요. 민솔 씨에게 중요한 이 시점에… 그런 기사가 나가는 걸 전혀 막지 못한 것처럼요. 미안해요.』
“하….”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아이돌 명가라고 불리는 스엔 엔터 프로듀서 출신 대표가, 최종 협상 직접에 아이돌 케어에 자신이 없다며 발을 뺀다?
분명히 진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민솔아, 잠깐.”
매니저가 다가와 손짓했다. 정민솔은 겉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며칠 동안 계약 문제로 골머리를 앓느라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몇 시간 전 진행된 최종 리허설. 리허설 관람권을 지닌 VIP 티켓 팬들 앞에서도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으니, 그에 관한 이야기일 터.
‘어쨌든 지금은 정신 바짝 차리고 공연에 집중해야 해. 계약 불발 기사가 나왔다고, 프로답지 못하게 불성실한 태도로 공연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결국 나만 손해야. 무대에서 피 토하며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다시 괜찮은 회사를 찾아서….’
씨발.
정민솔은 입안에서 맴도는 쌍욕을 삼키고 입가를 올렸다.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멤버들을 향해.
너희들이 걱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원제로의 마지막 투어가 나 때문에 엉망이 되는 일이겠지. 내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두진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갔다 올게.”
* * *
7월 10일 금요일. 어스래빗이 늘 컴백 쇼케이스를 가졌던 YY라이브홀보다 천 명의 관객을 더 품을 수 있는 넓은 공연장. 바로 내일 이곳에서 어스래빗 두 번째 월드투어 ‘The CARNIVAL’의 시작이자, 데뷔 최초로 서울에서 여는 단독 콘서트가 열린다.
“환호성 같은 거 지르지 말고, 점잖게 흐뭇한 미소만 짓다가 와. 알았지? 목 상한다.”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서둘러서 갈 채비를 하던 유호와 강보배,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오늘 밤 진행되는 뮤닷 파이널 생방송에 경연곡 작곡팀으로 초대되었다.
“그래, 알았어.”
“방송 안 보고 먼저 자도 괜찮지만, 그래도 우리 회사 후배들한테 투표하는 거 잊지 마.”
“네에.”
한율은 라이언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형, 혹시 모르니 조심해요.”
지난주, 정민솔과 리얼 엔터와의 계약 불발 기사가 뜬 날.
한율은 라이언을 찾아가 물었다. 혹시 진사랑에게 정민솔에 관한 이야기를 했냐고. 라이언은 가사 하나를 보여주며 긍정했다. 이번 달에 너튜브와 글로벌 음악 공유 서비스 SC를 통해 발표할 트레리안의 믹스테이프 수록곡이었다.
『선배님이 간판으로 있는 리얼 엔터에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예고해줬어.』
그리고 오늘 생방송에는 지난 시즌으로 탄생한 원제로도 초대받았다.
만약 정민솔이 라이언 때문에 계약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오늘 만나는 자리에서 트러블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생방송이 진행될 경기도의 한 체육관.
트레리안 호 세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제작진, 초대받아서 온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트레리안 호처럼 경연곡을 만든 작곡가와 프로듀서, 의 트레이너들, 그리고 파이널 경연까지 살아남은 출연자들의 소속사 대표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의 작곡팀 트레리안 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 어스래빗! 이야, 가까이에서 보니까 다들 키가 훤칠하고 잘생겼네. 만나서 반가워요.”
초대받은 기획사 대표 중엔 WB래빗 엔터의 좌기훈 대표도 있었다.
하하. 그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자랑했다.
“우리 애들이 참 잘생겼죠? 노래도 잘하고 랩도 잘해요.”
“좌 대표님은 정말. 아니, 어떻게 이런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서 팀을 만드셨대. 만든 곡들 보니까 노래도 다 좋던데. 나중에 우리 회사에도 어떻게, 남는 곡 하나 보내줄 수 없을까요?”
농담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눈에서 진심이 엿보인다.
좌 대표가 싱글벙글 웃으며 트레리안 호를 돌아보았다.
“얘들아, 이럴 땐 그저 웃는 거란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함부로 구두 약속하면 안 돼요.”
하하하. 좌 대표가 크게 웃자, 세 사람도 따라 웃었다.
“하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쿠, 무서운 보호자가 옆에 딱 붙어 있으니 뭐라고 더 말을 못 하겠네.”
“하하하….”
그렇게 한참 동안 인사하고 좌 대표와 함께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대표니임! 저 멀리서 원제로의 변지욱이 위로 뻗은 두 팔을 좌우로 휙휙 흔들며 달려왔다.
“으안녕하세요오!”
변지욱의 뒤로 이제 막 도착한 원제로 멤버들이 보였다. 좌 대표는 같은 회사 식구인 변지욱과 임승준, 현강희를 가벼운 포옹으로 반겨주었다.
“멀리 미국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밥은 먹었고?”
“못 먹었어영, 배고팡.”
변지욱이 좌 대표의 옷을 잡고 징징거리자 임승준이 한마디 했다.
“변지욱, 대표님한테 버릇없이 무슨 짓이야. 그것도 다른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거 공복으로 예민한 사람 건들지 마시죠?”
하하. 좌 대표가 웃으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라도 먹으렴.”
“히힛.”
“대표님, 왜 양복 주머니에 소시지를 넣고 다니세요….”
그때 인사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원제로의 리더, 유지가 힘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원제로의 유지라고 합니다.”
“오, 만나서 반가워요.”
좌 대표가 유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다른 원제로 멤버들도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 좌 대표와 악수했다. 정민솔 역시.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그래, 민솔아. 노래 실력이 굉장히 안정적으로 좋아졌던데? 얼굴도 더 잘생겨지고.”
좌 대표는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정민솔의 팔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앞으로도 잘 될 거다.”
“감사합니다.”
좌 대표가 이번엔 다른 주머니에서 사탕을 잔뜩 꺼내 임승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럼 난 먼저 대기실에 가 있을 테니, 마저 인사들 나누고. 나중에들 봐요.”
“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원제로 멤버들이 좌 대표를 향해 재차 꾸벅거렸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임승준의 손에 들린 사탕을 하나씩 빼가며 트레리안 호와 인사를 나눴다.
“하이요.”
“잘들 지냈어요?”
“몇 시 비행기로 온 거야?”
“콘서트 도중에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느라 피곤하겠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만들어진 프로그램 시즌2 파이널인데.”
“라이언.”
정민솔이 라이언에게 다가와 살며시 팔을 잡았다. 그러곤 생글생글 웃으며 라이언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닥거렸다.
“너지, 새끼야.”
라이언은 미간을 구기며 정민솔의 손을 떼어냈다.
“왜 다짜고짜 욕이야. 그리고 나 네 새끼 아니야.”
라이언의 목소리에, 대화를 나누던 원제로 멤버들과 유호, 강보배의 시선이 둘을 향했다.
“네가 전화를 제대로 안 받으니까 의심만 늘잖아. 그런데 만에 하나, 진짜 네 짓이다?”
정민솔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럼 정말로 가만히 안 둔다. 아무리 너라도 선 넘은 거야, 그거.”
뚱한 얼굴로 정민솔을 쳐다보던 라이언도 생긋 웃었다.
“뭐라는 거야, 이 못난이가.”
나도 콘서트 가고 싶다
“뭐가 네 짓이고, 뭘 가만히 안 둔다는 거야?”
에서 마련해준 대기실로 가는 길. 유호의 물음에 라이언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원래 자기 일 안 풀리면 남 탓부터 하는 놈이잖아.”
“…….”
강보배는 괜히 복도를 둘러보는 척 딴청을 피웠다. 둘을 번갈아 보던 유호가 살며시 걸음을 멈췄다.
“설마….”
유호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라이언에게 조용히 물었다.
“계약 건에 관한 얘기는 아니지?”
“내가….”
라이언이 영어로 바꿔 대답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잘 진행되던 남의 계약을 망치겠어. 다만, 내가 발표할 곡 때문에 애꿎은 회사가 피해 보는 게 싫어서 미리 알려줬을 뿐이야. 결정은 오로지 리얼 엔터의 몫이었어.]
[거기랑 계약 논의 중인 건 어떻게 알고?]
[건너 건너 들어서. 걱정하지 마, 리더. 새 믹스테이프 발표는 이번 달 말. 원제로 해체 이후니까 승준과 지욱에겐 큰 피해가 가지 않을 거야.]
…하. 유호는 가만히 라이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라이언의 어깨를 감싸듯 두드리며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그래. 네가 오래 참기는 했지.]
히. 라이언도 웃으며 나란히 걸었다. 멍하니 서서 열심히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하려던 강보배도 뒤늦게 두 사람을 따라갔다.
“나만 두고 가지 마. 여기 길 헷갈린단 말이야.”
밤 8시.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트레리안 호를 제외한 어스래빗 멤버들은 편한 모습으로 숙소 거실에 모였다.
“대표님이랑 형들 같이 있는 모습 보니까 뭔가 웃기다.”
“보배 왜 저렇게 해맑게 웃냐. TV에 처음 출연해서 신난 사람처럼.”
“아이돌이 아닌 작곡가로 초대된 자리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원제로도 나온당. 쟤네 벌써 미주투어 끝났나?”
“뉴욕 콘서트가 남아서, 내일 바로 또 출국한대.”
“그렇게 다음 주 금요일에 서울 콘서트하고? 쟤네도 일정 정말 빡세게 잡았다.”
방송 시작과 함께 도란도란 이어지던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었다. 쿠션에다 꾹꾹이를 하던 달냥도 한율의 옆에 붙어서 잠들고, 박가람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았다.
차남석이 조용히 일어났다.
“전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아니, 우리, 내일 콘서트를 위해서 일찍 자자. 호 형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그랬잖아.”
“난 눈 부릅뜨고 끝까지 볼 거야.”
“…투표부터 합시다.”
졸던 박가람이 눈을 떠서 핸드폰을 찾았다. 한율도 회사 연습생에게 투표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냥도 벌떡 일어났다.
“저도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다들 내일 보자.”
한율은 걸음을 옮기며 TV를 힐끗했다. 다른 원제로 멤버들과 핸드폰으로 투표하는 척하며 웃는 정민솔이 화면에 잡혔다.
라이언과 정민솔 둘 다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별일 없었던 모양이었다. 생방송이 끝나도 각자 또 일행에게 둘러싸인 채 숙소와 공항으로 갈라질 터.
‘트레리안의 새 믹테가 발표되면 그때 터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