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6화 (226/427)

* * *

[[어스래빗] 수상한 사람을 제압하는 경호원과 무기 찾는 리더 토끼]

-유 리더 여차하면 무기로 쓰려고 장식용 촛대 쪽으로 손 뻗는 거 봐ㅋㅋㅋㅋ

-호야 그런 촛대로 사람 치면 죽어

-나였으면 저런 사람 보자마자 무서워서 얼어버렸을 것 같은데

-유호 처음부터 끝까지 저 이상한 사람 돌발행동하진 않을까 진지한 얼굴로 주시하는 거 왠지 멋있다

-경호원분 대박

-이 영상 올린 이 어스래빗 사생이냐?

ㄴ로비에 있던 사람이 찍은 거 퍼와서 편집한 거임 원본 영상 (링크)

명상센터로 위장한 마법 학교.

스타믹스 JE는 노트북으로 너튜브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얘네도 가만히 보면 이런 일에 잘 휘말리더라.”

흐. 계나리가 빙수를 먹으며 웃었다.

“지은 님만 할까요. 앗, 구동아. 거기 밟으면 안 돼. 형광펜 잉크 아직 안 말…. 늦었다.”

“괜찮아요. 조금 지저분한 뭔가가 묻어도, 시간이 지나면 털이 저절로 깨끗해지더라고요.”

“뭐가 묻었었는데요?”

“스파게티 소스요.”

그들 주변엔 모의 훈련 계획을 위한 세계지도와 여러 지역 자료들이 널려 있었다. 구동은 조금 전 형광펜으로 표식을 남긴 세계지도를 깔고 앉았다.

“목욕을 시켜도 얼룩이 잘 안 지워지기에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다가 깨끗하게 사라지더라고요.”

“어쩌다 스파게티 소스가 묻은 건지, 저는 그게 더 궁금한데요.”

그때였다.

철컥, 삑삑.

“……?!”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JE와 계나리는 널려놓았던 지도와 자료를 후다닥 정리했다. 갑작스럽게 번쩍 들린 구동은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뀨웅.

“안녕하세요.”

활짝 열린 방문 사이. 이해원이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 내밀며 인사했다.

“두 분 언제 왔어요? 톡방이 잠잠해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모의 훈련 계획은 한율과 계나리, JE만 아는 일이었다. 기이한 재난 발생 시 마법사 제자들의 대처 능력이나 반응을 살피는 목적도 있기에, 이해원에겐 비밀.

계나리가 자료와 지도를 쑤셔 넣은 가방을 끌어안은 채 웃었다.

“저도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지은 님이 먼저 와 계시더라고요. 해원 님은 아침부터 웬일이에요?”

“주말이고 해서, 오래간만에 여기 대청소 좀 할까 하고요.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지. 같이 하자.”

“네.”

이해원이 방으로 들어와 구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동아, 오랜만이야. 형아 기억해?”

킁킁. 구동이 이해원의 냄새를 맡더니 그의 손가락을 잡고 뺨을 비비적거렸다. 끼웅.

“얜 성별 없다던데.”

“그래요? …어? 구동이 발에 웬 형광 잉크가.”

지익. 계나리는 가방 지퍼를 닫고선 새 빙수를 내밀었다. 원래 JE의 몫으로 사 온 것이었지만, 아직 뚜껑도 열지 않았다.

“해원 님, 빙수 드실래요? 방금 오면서 사 온 거라 아직 안 녹았어요.”

“앗, 감사합니…. 응?”

기껍게 받던 이해원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왜 빙수를 두 개씩이나….”

JE와 계나리가 동시에 대답했다.

“거 사람이 빙수 두 개 좀 먹을 수 있지.”

“거 사람이 빙수 두 개 좀 먹을 수 있죠.”

“…네.”

허튼짓하면 혼나

FJ그룹이 주관하는 <뉴욕 K-POP 콘서트>가 열리는 날 아침. 객실 앞 복도에서 유호와 마주친 박가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형님, 몰골이 왜 그래? 잠은 잘 잤는지 피부는 뽀송한데 고민은 많은 얼굴이네?”

“…….”

“왜 배신자를 보는 듯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지?”

덥석. 유호가 박가람의 머리를 팔로 감싼 채 객실로 끌고 들어갔다.

“악! 놓아라! 이게 무슨 짓이냐, 리더!”

한율은 슬쩍 비켜준 뒤, 복도로 나오며 객실 문을 대신 닫았다.

“무슨 일이야?”

박가람과 함께 나왔던 이건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한율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어젯밤에 라방은 어땠어요? 일찍 자느라 못 봤는데.”

“누가 어제 로비에서 마약중독자가 날뛰는 영상을 너튜브에 올렸나 봐. 그걸 봤는지 팬들이 호 형 괜찮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쿨쿨 잘 자고 있다고 했지. 어제 그 사람이 사용한 엘리베이터가 어느 거라고?”

“저쪽 거요.”

“우리 객실이랑은 머네.”

공연장으로 가는 버스 안.

유호는 차창에 옆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바깥 풍경을 보았다.

어젯밤, 한율은 박가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호에게 심신을 다스리는 데에 좋다며 명상을 시켰다. 유호는 객실에 가득 찼던 짙은 농도의 마나를 대번에 느끼곤 몸서리쳤다.

『…마법? …마법사? …가람이도? 지은이도? …해원이도?!』

슥. 박가람이 핸드폰 메모장을 이용해 한율에게 물었다.

[앞으로 찾아온다는 재앙에 관해선 아직 얘기 안 한 거 맞지? 그런 눈치던데.]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박가람의 질문을 지운 뒤 답변을 적었다.

[한꺼번에 전부 얘기하면 더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요.]

톡톡톡. 박가람도 한율의 답변을 지우고 새로 썼다.

[그런데 생각보다 충격 많이 받은 것 같다.]

[호 형이 얼마 전에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는 교통사고를 목격했잖아요. 그때 갓 죽은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온 특유의 마나를 강하게 느꼈었거든요. 그때 생각이 나서 그럴 거예요.]

아. 박가람이 깨달은 얼굴을 하더니 유호를 조심스레 살폈다. 한율은 메모장에 적었던 답변을 지우곤 창밖을 보았다. 공연장 주변엔 벌써 출연팀과의 팬미팅 혹은 굿즈 등을 사거나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이 모여 있었다.

어스래빗의 지구 토끼 그림 망토를 두르고 커버 댄스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 옆에서 펄럭이는 슬로건.

[지구토끼가 세상을 구한다]

별생각 없는 주접 드립이겠지만, 한율의 입가엔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쓴웃음이 번졌다.

* * *

<뉴욕 K-POP 콘서트> 출연팀 대기실 복도.

보이그룹 원카운트의 멤버 나기혁은 음료수를 마시는 척, 초조한 기색을 감추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 이쪽으로 오는 퍼플아워를 발견하곤 작게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그러곤 미소.

“안녕하세요, 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선배님.”

퍼플아워 멤버들이 그에게 꾸벅 인사했다. 루아가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다가갔다.

“여기에서 혼자 뭐 하세요?”

“그냥, 대기실에 있기 답답해서 나왔어.”

그들 외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가볍게 손을 잡았다가 떼는 두 사람.

루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

“누구 기다리던 건 아니고?”

“정답?”

“…….”

진은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멤버들이 다 알고 있다고, 이젠 감출 생각조차 안 하는구나.

솔직히 눈꼴이 시었다. 2019년 1월 1일부터 열애설 기사가 났을 때 완강히 부인해놓고선, 누가 볼지 모르는 이런 장소에서 조심성 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이.

송의연이 투덜거렸다.

“우리 병풍으로 세워놓고 뭐 하는 짓들이야. 나 갈래.”

“나도 이만 들어갈게, 오빠.”

“그래, 수고해.”

살며시 떨어지는 루아를 향해 나기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다정하게.

“수고하세요. …아, 은수야.”

“네?”

멤버들을 따라가려던 진은수가 그를 돌아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의아한 얼굴로 시선 집중.

“너 요즘 FPS 게임 한다면서? ID 알려줘. 같이 하자.”

“…….”

진은수는 루아를 바라보았다. 살짝 표정이 굳었던 루아가 입가를 올렸다.

“얘 요즘 게임에 미쳐 사는 건 어떻게 알았대?”

“스타일리스트 누나한테 들었지. 그리고 이번에 그 게임에서 큰 이벤트 열리거든? 같이 팀으로 참전하면 좋을 것 같아서.”

“참 한가하신가 봐요, 선배님. 게임 이벤트도 챙기고.”

“루아 너도 이참에 게임….”

“안 해요. 들어가자, 얘들아. 은수야, 빨리 와.”

“네.”

진은수는 나기혁에게 고개를 꾸벅이곤 대기실로 들어갔다. 곧 복도엔 나기혁만 남았다.

나기혁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곤 음료수를 마셨다.

“…….”

“기혁.”

깜짝. 입가에서 음료수를 떼던 나기혁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언제 왔는지, 어스래빗의 라이언이 핫도그를 들고 서 있었다.

“은수한테 허튼짓하면 혼나.”

“뭐?”

“우리 리더한테 혼나.”

“게임 ID 물어본 것뿐이거든? 그리고 우리 클랜에 히아신스 멤버도 있고, 네 친구 찬형이도 있어.”

“…….”

라이언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기혁을 바라보며 핫도그를 먹었다.

“그런데 넌 왜 복도에서 핫도그 먹으면서 돌아다녀. 먼지도 같이 먹고 싶냐?”

“왜 친한 척 참견이야.”

“…말을 말자.”

어스래빗 대기실로 돌아온 라이언은 조금 전 본 광경을 유호에게 이야기했다. 유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것처럼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게임 ID를 묻는 게 허튼짓이야? 나도 물어봤었는데.”

“나기혁이면 허튼짓이야.”

“그래….”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 대충 이런 얼굴로 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무심코 한율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

라이언이 의아한 얼굴로 유호와 한율을 번갈아 보았다.

“리더, 하뉼이랑 싸웠어?”

“안 싸웠어. 오늘 아침에….”

유호가 머쓱하게 웃었다.

“악몽 때문에 꼴사납게 비명 지르면서 일어났거든. 그게 좀 창피해서.”

혼란스러운 것과 별개로 원래 책임감이 강한 성격에다, 이젠 프로라는 자각이 있어서 그럴까. 유호는 리허설과 미니 팬미팅을 할 땐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평소처럼 잘했다.

대기실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

“한율이 너도 간식 좀 먹어. 물 줄까?”

“감사합니다.”

“가람이 넌 적당히 먹어.”

“리더가 차별한다!”

“그런데 우리 다음 주 어떡해요? 갑자기 일정이 붕 날아간 셈인데.”

다음 주 11일과 12일에 잡혔던 홍콩 콘서트는 안전상의 문제로 취소, 티켓도 환불 처리 중이었다.

오 팀장이 사과패드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16일 로 다시 미국으로 와야 하잖습니까. 22일부턴 미주투어 시작이고. 그래서 9일 싱가포르 콘서트가 끝난 후 바로 미국으로 돌아와서 자체 콘텐츠를 촬영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LA에서요?”

“LA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렇다. 콘서트가 취소된 핑계로 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는 우리가 쉬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싫습니까?”

박가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아아니요?!”

“어쨌든 그렇게들 아시고.”

오 팀장이 손짓하자, 구석에서 스태프인 척 의상을 정리하던 사람이 번쩍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매니저 허진영은 들뜬 얼굴로 멤버들에게 설문지와 펜을 나눠주었다.

“이게 뭐예요?”

“일단 적으세요. 다른 멤버들에겐 보여주면 안 됩니다.”

“선생님, 이름도 써요?”

“안 써도 됩니다.”

“팀장님 보고 선생님이래.”

멤버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거나 몸을 돌렸다.

“보지 마.”

“안 봐.”

한율은 문제를 찬찬히 훑었다.

[1. 미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2. 놀이공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

[3.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

[4.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철없는 멤버.]

[5. 무인도에 갇혔을 때 옆에 있었으면 하는 멤버 순위와 이유.]

[6. 무인도에 절대 같이 갇히고 싶지 않은 멤버 순위와 이유.]

[7. 객관적으로 보는 나의 문제점.]

[8. 좋아하는 영화 장르.]

[9. 지금까지 가장 감명 깊게 본 미국 드라마 혹은 영화.]

[10. 이프림에게 한 마디.]

대충 어떤 콘텐츠를 촬영할지 감이 올 듯 말 듯 하다.

한율은 사과패드를 받침 삼아 천천히 답변을 작성했다. 박가람이 투덜거렸다.

“4번은 누구 쓸지 뻔히 보이잖아.”

그날 저녁, <뉴욕 K-POP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어스래빗은 중후반부 순서에 과 두 곡을 연달아 불렀다. 객석은 작년보다 더 많은 지구토끼 응원봉이 반짝거리며 물결쳤다.

마지막 무대 순서는 보이그룹 루트. 그들은 최근에 발표한 곡, 한국과 미국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두 곡을 포함해 총 세 곡을 불렀는데, 마지막 곡은 2절부터 전 출연팀이 나오며 함께 불렀다.

한율이 초등학생 시절, 같은 반 여학생들이 굉장히 자주 불러서 저절로 외우게 됐던 노래로, 새삼 루트의 연차가 실감 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내일은 밤 8시 55분 비행기니, 마음껏 푹 주무세요. 내일 잠깐이라도 외출할 일 있다면 미리 저한테 말씀하시고요. 그리고….”

<뉴욕 K-POP 콘서트>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안. 오 팀장이 평소답지 않게 머뭇거리다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저랑 오늘 술 한잔하실 분?”

길우성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미국은 만 21세부터 음주 허용입니다. 탈락.”

“그럴 수가!”

“후…. 만 19세는 일찍 잠이나 자거라.”

박가람이 가소롭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여유 넘치는 얼굴로 손을 들었다.

“저는 맛있는 칵테일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맥주 마실 겁니다.”

“저요. 형은?”

이건우가 손을 들더니 유호를 바라보았다. 유호가 슥 미소 지었다.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그래.”

“안주도 팀장님이 쏘시는 건가영?”

“그러죠.”

“와아.”

강보배가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달만 지나면 나도 만 21세인데….”

“아쉬운 사람은 나중에 한국 돌아가면 한잔합시다.”

“네에.”

호텔로 돌아와 객실. 한율은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풀썩 쓰러지는 유호에게 물었다.

“안 씻고 그냥 자게요?”

“이따가 씻으려고. 먼저 씻어.”

“네.”

한율은 클렌징 티슈로 메이크업부터 지운 후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왔을 때 유호는 심각한 얼굴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요?”

“해리○터.”

“…영화 속 마법하곤 전혀 다르니까 일단 씻고 와요. 어제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요.”

다음 날 아침. 한율은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핸드폰부터 찾았다.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간밤에 들어온 연락이나 앱 알림을 확인한 뒤 대형 포털사이트에 접속.

“……?”

연예뉴스란 메인. 어제 있었던 <뉴욕 K-POP 콘서트> 반응을 다룬 기사 아래에 시선을 끄는 다른 기사가 있었다.

[어스래빗 서한율, 이번엔 소속사 후배와?]

[인기 아이돌그룹 히아신스 호수와 어스래빗 박가람의 열애설 의혹을 최초 제기한 너튜버 A씨가 이번엔 어스래빗 멤버이자 배우 서한율의 새로운 열애설 의혹을 제기해 화제다.

A씨가 주장하는 서한율의 열애 상대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뮤닷 에서 최종 3위로 뽑혀 프로젝트그룹 IOMU 멤버가 된 김서우로, A씨는 두 사람의 열애 증거로 서한율이 김서우가 속해 있었던 경연 팀 ‘컴투유’ <락뮤닷> 무대 지원 사격, 최근 김서우가 서한율과 똑같은 고가의 브랜드 모델 신발을 신고 연습하는 장면 등을 내세웠으며…(중략).

한편 서한율은 부동산 재산만 6백억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이버 렉카ㅊ 짜깁기 허위사실을 그대로 퍼다 나르는 기레기 수준

-저 운동화 어스래빗이 데뷔 축하 선물로 김서우 말고 다른 떠비 후배한테도 같이 선물해준 거라고 이 꽁꽁 언 팥 아이스크림을 주둥이에 처넣고 싶은 놈아

ㄴ특정인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모두한테 선물하는 방법 모름? 돌판에선 흔함

ㄴ어스래빗이 데뷔한 두 멤한테 신발 선물할 거라니까, 저 신발 브랜드랑 모델 추천한 게 크래의 미랑이라고 합니다, 기자님ㅋㅋㅋ

ㄴ그럼 미랑이랑 서한율이 사귀나 보지

ㄴ이건 또 무슨 개 같은 논리지

-얜 어째 잊을 만하면 스캔들 의혹이 터지냐

ㄴ의혹은 많이 도는데 그럴싸한 증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음

-육다리ㅋㅋㅋㅋㅋㅋㅋ

-믿는 게 ㅂㅅ

-연애 좀 하게 냅둬

-이 렉카ㅊ 아직도 고소 안 당함? 머하냐 떠비? 이번엔 좀 느리다?

-이 정도면 ㅅㅎㅇ한테 문제 있는 거 아님? 여자들한테 여지를 줄줄 흘리고 다니니까 자꾸 이런 의혹이 돌지

ㄴ내가 봤을 땐 서한율 재산이 6백억이라고 알려진 게 문제임. 6백억 가진 스물한 살 남돌이 누구랑 사귄다, 누구한테 호감 표했다 이 말만 들어도 그 행운의 상대가 누구냐 ㅈㄴ 부럽다 이런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거지

-예쁜 사랑 하세요^^

“…….”

한율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본인의 이득을 위해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 사이버 렉카들을 한 자리에 모아, 구덩이에다 묻어버릴까.

난 한 번도 본 적 없어

점심시간이 지나 한적한 한식당. 한율은 길우성, 차남석, 강보배와 함께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어제 건우 형이 팀장님하고 술 마셨잖아. 팀장님이, 우리 회사 이사 검토 중이라고 하셨대.”

“언제요?”

“빨라도 내년?”

길우성이 옆 의자 위에 팔을 얹고 웃긴 표정을 지었다.

“어째 우리 투어 수익을 염두에 둔 시기 같구먼요, 형님? 그런데 엔터 회사는 풍수지리도 신경 써서 보지 않소? 스엔이랑 아림도 그쪽 전문가 조언 구해서 사옥 위치 선정하는 데에 한참 걸렸다던데.”

차남석이 수저를 챙겨주며 말했다.

“방음 잘 되고 튼튼하고, 샤워 시설만 잘 갖춰져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

“방송국이랑 샵하고도 가까워야지.”

“써한, 네가 가진 건물 중에 괜찮은 거 없냐?”

“없어.”

“그런데 너 웃긴 기사 났더라.”

“웃겨? 후배는 난데없이 폭탄 맞은 기분일 텐데.”

“아…. 반성.”

길우성이 삐딱하게 취했던 자세를 바로 하더니 그대로 찌그러졌다. 강보배가 물을 챙겨주며 말했다.

“그런데 그 사이버 렉카가 평소에도 짜깁기 루머 만들기로 유명해서, 사람들도 그다지 안 믿는 눈치더라. 커뮤도 슬쩍 들여다봤는데 IOMU 팬덤이나 우리 이프림이나 싹 무시하는 분위기였어.”

“상상의 나래 펼치는 거 좋아하는 애들만 신난 것 같았지. 써한 너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엄청 많더라. 내가 수백억 건물주에다 천재 아이돌 배우의 Pick?!”

“…….”

“제목 왜 그 모양이냐….”

강보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우성이 너 그런 거 보니…?”

“아니, 이름 검색하면 일부가 살짝 나오잖아. 그 정도만. 왠지 무서워서 클릭까진 못 했어.”

“그래, 앞으로도 읽지 마. 정신 건강에 안 좋아. 그런데 우리 점심 먹고 어디 갈까?”

“저 선물 사러 디○니 스토어에 가고 싶어요.”

“그래, 가자.”

식당 직원이 서빙 카트를 밀며 다가왔다.

“주문하신 순두부찌개 정식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그들은 한율이 가고 싶어 한 가게를 비롯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말없이 그들 곁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선물도 하고, 팬들에게 보여줄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운전기사가 기다리던 차에 돌아와선 쇼핑백을 정리했다.

“넌 무슨 인형을 두 개씩 샀어.”

차남석이 한율의 쇼핑백에 담긴 인형과 장난감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차가 천천히 호텔로 이동했다.

“받을 애들이 쌍둥이라서요. 똑같은 걸 줘야 안 싸운대요.”

“아. 변호사 하시는 분네?”

“네.”

“지난번엔 구미호 인형도 챙겨주지 않았어?”

“한율인 사촌 동생들 잘 챙기는구나. 난 사촌들이랑 데면데면한데. 명절에 보면 ‘어, 왔어?’ 이렇게 인사하는 정도.”

“난 얼굴 본 지 오래됐다. 특히 외가 쪽은 10년 넘게 안 본 것 같아. 딱히 볼 일도 없고.”

“결혼식이나 그런 일로 연락 안 와?”

“엄마 통해서 연락이 오기는 하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축의금만 전달해.”

끄덕끄덕.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길우성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사촌?”

“응. 엄마가 외가랑 연 끊은 지 굉장히 오래됐거든. 아빠 쪽은…. 아빠가 엄마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대가 굉장히 심했었대.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어쨌든 우리랑은 피가 전혀 안 섞여서 가족 행사가 있으면 아빠랑 엄마만 가.”

“그렇구나. 뭐, 집마다 사정이 있는 거니까. 딱히 흉도 아니고.”

차남석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솔직히 친척들 지긋지긋하다. 만나면 돈 얘기만 해대서. 지난 설에 만났을 땐 새로 짓는 집 명의, 누구로 할 거냐고 묻더라. 내 거라고 하니까 입 꾹 다물면서 불만스러운 표정 짓는데, 기가 차서.”

“저런. …아버지는 요즘 어떠셔?”

“아직까진 별 사고 안 치고 직장 다니시는 중. 그래야 나중에 뭐라도 떨어진다는 걸 아시는 거지.”

“삐딱한 남석 씨. 그러나 이해한다.”

한율은 그들의 평범한 대화와 푸념을 들으며 쌍둥이에게 보낼 선물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그날 저녁, JFK 국제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한율은 조유찬으로부터 스캔들 반박 기사를 내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굳이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 만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이제 막 데뷔를 앞둔 서우에겐 계속 꼬리표처럼 달릴 위험이 있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

“<서울 구미호> 이후로 한율이 네 인기가 참 많아졌거든. 그리고 이성 스캔들로 인한 공격은 여자애들이 훨씬 심하게 받는 편이잖아.”

“서우 씨는 괜찮대요?”

“인터넷 되는 기기가 모두 압수된 상태라, 아직 그런 기사가 뜬 것도 모른대.”

“다행이네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올해 고작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온갖 개소리와 성희롱을 받는 건 참 가혹하므로.

길우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미랑이 누나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더라. 괜히 자기가 추천해준 신발 때문에 그렇게 꼬인 것 같다고.”

“그게 왜 선배님 잘못이야. 애초에 선배님이 추천해준 신발은 세 가지였고, 최종적으로 고른 건 멤버들이었는데.”

“어. 그렇게 대답할 줄 알고 미리 말했어.”

“잘했다.”

어스래빗은 비행기를 타고 약 13시간을 날아 경유지인 도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2시간 넘게 대기하다가 다시 탑승, 9시간을 또 날아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자카르타의 호텔로 가는 버스 안.

“8월 5일 아침. 드디어 2년 만에, 이번엔 팬콘이 아닌 월드투어 ‘The CARNIVAL’ 콘서트를 위해서 자카르타를 다시 찾았습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도하에서 대기 중일 때 씻기는 했지만, 9시간 동안 비행기에 있다 보니 조금 꾀죄죄해졌다. 그래서 그나마 상태가 나은 한율과 박가람이 셀캠을 들어 촬영했다.

“2년 만에 인도네시아 이프림을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두근두근 설레네요. 빨리 만나고 싶다.”

“아까는 나시고랭 빨리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형.”

“밥을 든든히 먹어야 이프림한테 우리 에너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어? 쟤 봐.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막 비실거리잖아.”

박가람이 셀캠을 돌려 차남석을 찍었다. 차남석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졸려서 그런 겁니다.”

“아니, 비행기에서 안 자고 뭐 했대?”

“자고 싶었는데 잘 못 잤어요.”

“그렇다고 합니다. 꼬질꼬질한 모습을 찍고 싶은데.”

셀캠이 반 바퀴 돌았다. 카메라에 찍히는 멤버들은 후드나 모자,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꾸벅꾸벅 졸거나 손을 흔들었다.

“다 가려서 재미가 없네요. 버스 안에서의 촬영은 이만 마칩니다. 이따가 멀쩡해진, 쌩쌩하고 예쁜 모습으로 만나요. 안뇽~.”

돌아온 카메라 렌즈를 향해, 한율은 박가람과 서로 고개를 갸웃한 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녹화 종료.

한율은 좌석에 편히 몸을 기대곤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비행기에선 영화를 보거나 잠만 잔 터라, 그동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대형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

[서한율·김서우 열애 의혹 제기 너튜버 A씨, 공식 사과]

억지 짜깁기로 한율과 IOMU의 김서우가 열애 중이라는 영상을 만들었던 너튜버가 돌연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제 망상을 진짜인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변명을 늘어놓는 사과 영상을 올리고, 지금까지 올렸던 동영상 전부 삭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잘 처리했나 보네.’

한율은 나중에 계나리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른 기사를 클릭했다.

[원제로 정민솔, 개인 SNS 개설! 첫 글은 뉴욕 감성 듬뿍 사진]

-ㄹㅇㅇ한테 사과는 했냐

ㄴ어스래빗 묵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같이 저녁 먹고 어스래빗 멤버가 로비까지 사이좋게 배웅하는 사진 올라옴. -끝-

ㄴ그거 라이언이 특정인 겨냥한 노래 아니라고 SNS에서 직접 말했어요.

-뉴욕에 있었구나.. 어쩐지ㅜㅜ

-2년 전 원제로가 처음 섰던 합동 콘서트가 <뉴욕 K-POP 콘서트>였는데 이번엔 혼자 휴식으로 뉴욕.. 감회가 남달랐겠다.

-언제나 행복하자, 민솔아! :D

SNS로? 대체 어느새.

한율은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꺼서 그런지, 라이언은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벗고 편히 젤리를 먹고 있었다.

“하뉼, 너도 먹을래?”

“아니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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