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 (23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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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래빗은 뉴욕 콘서트까지 무사히 마치고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 콘서트를 마친 뒤엔 2021년 시즌그리팅 화보를 촬영, 영국 런던으로.

-[해외 스케줄이 꼬여서 너희 콘서트에 못 가게 됐어. 태국에 생겼던 그놈의 미스터리 홀 때문에….]

런던 콘서트 때 오기로 했던 스카이러너 용맹의 연락.

“괜찮아요, 형.”

-[며칠 늦었지만 그래도 직접 주려고 생일 선물까지 준비했는데. 다음 달에나 줄 수 있겠다.]

“네. 다음 달에 봐요.”

11일은 영국 런던, 13일은 프랑스 파리, 18일은 포르투갈 리스본, 20일은 독일 베를린, 25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7일은 스웨덴 스톡홀름.

그렇게 날짜는 9월 28일.

태국에서 미스터리 홀이 생겼다가 사라진 지 4주가 지났다.

[어스래빗 팬덤, 28일 우성 생일 기념 5천만 원 기부]

[어스래빗 우성, 오늘 생일 맞이해 5천만 원 기부!]

[어스래빗, 스톡홀름 단독 콘서트 성료!]

[어스래빗, 성원에 힘입어 멕시코 추가 공연 확정!]

후우. 연예뉴스란 메인에 줄줄이 올라온 어스래빗 기사를 보며, 계나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게이트만 열리지 않는다면 1년 후, 2년 후…. 해외에서 대박 난 인기로 한국에서도 인정받고 탑티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팀인데….’

옆에서 운전하던 이해원이 의아한 눈으로 계나리를 살폈다.

“안 좋은 기사라도 떴어요?”

“아니영…. 그나저나 해원 씨는 이런 차도 잘 모시네요.”

“지난번에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일도 도울 겸 연습 삼아서 몰아봤거든요. 그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요.”

두 사람은 1t 탑차에다 온갖 물품을 싣고 양평 펜션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통기한이 긴 음식이 그리 많지 않네요.”

“네. 기껏해야 통조림이랑 곡물 정도? 그런데 곡물류는 저장 한번 잘못했다가는 골치가 아파서…. 맛은 없어도 유통기한 넉넉한 전투식량이 비상용으로 좋더라고요.”

“지난번에 대량으로 샀다고 했죠?”

“네. 여기저기 마련한 창고에다가 가득 쌓아놨어요.”

마법 학교가 양평에 마련한 펜션은 총 12개의 객실과 수영장, 넓은 야영장까지 갖춘 곳이었다. 그리고 현재 관리인을 두고 정상 운영 중.

이해원이 운전하는 차는 부지에서 가장 높은 곳, 펜션과 뜰, 수영장과 주차장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짜리 독채 옆에 멈췄다. 독채는 영업용 건물이 아닌, 이전 펜션 소유주가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

“수레 가지고 올게요.”

“네.”

두 사람은 장갑을 끼곤, 오늘 여기저기에서 산 물품을 짐수레에 실어 창고로 옮겼다.

“다쳐요. 조심.”

“괜찮아요. 저 힘세요.”

계나리가 무거운 상자를 번쩍 들어 선반에 올려놓았다. 이해원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제법 무거운 것부터 들어서 정리했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나리 씨. 그런데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데요?”

이해원은 장갑을 벗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월요일 아니에요? 학교는 어떻게 했어요?”

“참 빨리도 물으신다. 쨌죠.”

“하하….”

“농담이고, 오늘 개교기념일이에요. 아, 맛있는 냄새 난다.”

창고를 나오자 아래쪽 펜션에서 바비큐 굽는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뜰에선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가 해맑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뛰다가 그네에 앉았다.

아이가 신이 나 소리를 질렀다. 와앙!

“…….”

계나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해원을 휙 돌아보았다.

“나중에 언제든지 가족들이랑 와서 쉬어요. 교장 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은 무료라고 했거든요. 아깝잖아요. 이렇게 예쁘고 멋진 펜션을 본래 목적대로 이용해보지 못한다는 게.”

“아…. 네.”

계나리가 히죽 웃으며 창고를 열쇠로 잠갔다. 철컥.

“자, 우리도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이 근처는 뭐가 맛있나아.”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이 든 어르신처럼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

이해원은 조금 전 계나리의 얼굴에서 보인 쓸쓸함을 떠올리곤,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양평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계나리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도중에 내렸고, 이해원은 탑차를 명상 센터 건물 주차장에다 세웠다.

‘수련 좀 하다가 들어갈까.’

얼마 전 어머니가 이모, 외할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신 터라 집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센터에서 수련하는 게 더 집중이 잘 되었다.

이해원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선 차에서 내렸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마법사는 체력도 중요하다고 하여 매일 꾸준히 운동했더니, 3층까진 가뿐했다.

철컥, 삐릭.

“……?”

이중으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남자 신발. 중문을 열자, 막 커피를 내리는 JE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형. 언제 왔어요?”

“방금. 펜션에 물건 두러 다녀왔다며? 수고했다. 나도 선약 없었으면 같이 가서 돕는 건데.”

“아니에요. 제가 백수라 한가하잖아요.”

“커피 마실래?”

“네. 구동아, 안녕?”

활짝 열린 방 안엔 구동이 푹신한 방석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이해원이 손을 내밀자, 느긋하게 다가왔다.

“구동이, 어째 점점 느릿해지는 것 같네요.”

“처음엔 낯선 장소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뭐든 빠르게 반응했던 거고, 안전하다고 인식한 장소에선 한없이 늘어…지는 것 같아. 무엇보다 여기는 나무가 없잖아. 그래서 본능적으로 에너지도 아낄 겸.”

“그렇구나.”

이해원은 구동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끼융. 구동이 귀여운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JE가 커피를 내밀었다.

“여기엔 몇 시까지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6시까진 있다가 가려고요. 왜요?”

“내가 6시에 약속이 있거든. 그래서 괜찮으면 구동이 좀 봐달라고 하려고 했지. 사실 몇 시간 정돈 혼자 둬도 괜찮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혼자 두기가 싫네.”

“그럼 제가 구동이랑 같이 여기에 있을게요. 어차피 집에 가도 아무도 없거든요.”

“고마워. 늦어도 8시까진 돌아올게.”

“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다른 방에서 마나를 유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셨나?’

이해원이 눈을 떴을 땐 5시 35분이었다. 조용히 JE가 있던 방을 살피자, 구동이 혼자 방석에 웅크린 채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해원은 그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찰칵. 구동과 함께 셀카를 찍곤, 저장. 그리고 TV를 켜서 너튜브에 접속, 구동이 가장 좋아하는 한율의 직캠 영상을 틀어주었다.

구동이 귀를 뒤로 쫑긋하며 TV 앞으로 다가갔다. 뀽.

그때였다.

우웅.

“응, 엄마.”

-[해원아, 너 지금 어디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죄송해요. 밖이라 진동을 못 느꼈어요.”

후우. 핸드폰 너머에서 어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조금 전에 앞집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거든. 웬 수상한 남자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조금 전에 우리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해서…. 그래서 걱정돼서 전화해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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