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알아요! 옆에 뉴질랜드 있어!]
-[옆에 다른 멤버들도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 어스래빗 완전 팬이에요!]
대체 파티에 몇 명을 초대한 건지, 정신이 없다.
박가람과 강보배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누구랑 통화해?”
“사촌 동생들이 오늘 생일이라서, 영통 걸었어요.”
“인사해도 돼?”
“얘들아, 오빠 친구들이랑 인사할래?”
-[응!]
한율은 박가람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박가람과 강보배가 나란히 서서 카메라에다 손을 흔들었다.
“안녕, 얘들아. 우리는 한율이 오빠 직장 동료들이야. 반가워~.”
“나는 친구 아니고 친한 형~.”
언제 다가왔는지 길우성도 불쑥 끼어들었다.
“안녕, 안녕! 생일 축하해!”
핸드폰 영상 속, 옹기종기 모인 아홉 살 아이들이 까르륵 웃었다.
월드투어 ‘The CARNIVAL’ 종료
멜버른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온 호텔.
모니터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오 팀장이 멤버들에게 통보했다.
“미국 토크쇼 <크리스 라터쇼>에서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오우.”
엉거주춤 일어났던 박가람이 도로 앉았다. 멤버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크리스 라터쇼>는 미국 지상파 방송국에서 심야에 하는 인기 토크쇼로, 인기 많은 셀럽이 게스트로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곳에 출연한 한국 아이돌그룹은 극소수.
“원카운트도 아직 출연 못 한 곳에 우리가요?”
“여러분이 몸이 부서지라 열정적으로 콘서트를 한 덕분입니다. 특히 미주투어 반응이 아주 좋았잖습니까. 이 기세를 몰아 <크리스 라터쇼>에서 무대를 최초 공개했으면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생각하고 말 것도 없지 않나요? 없지 않아?”
이건우가 멤버들을 살피며 물었다. 멤버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인기 토크쇼라니. 딱 5분만 출연해도 땡큐지.”
“날짜는요?”
“미국 날짜로 19일 월요일. 생방송입니다.”
본래 어스래빗은 16일 멕시코시티 콘서트를 끝내고 다음 날 바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크리스 라터쇼>에 출연하게 된다면 미리 무대 연습을 더 해야 하는 건 물론, 귀국에서 컴백 일정까지의 기간도 퍽 짧아진다.
그러나 멤버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다시 주어질지 모르는 좋은 홍보 기회인 까닭이었다.
“전 찬성.”
“저도.”
한율도 보탰다.
“저도 찬성이요.”
어스래빗이 <크리스 라터쇼>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바로 다음 날,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메인을 장식했다. 2주 후 깜짝 컴백 소식과 새 디지털 싱글 M/V 티저 공개를 다룬 기사도.
[어스래빗, 월드투어 직후 초고속 컴백 예고! M/V 티저 최초 공개]
[어스래빗, 현지 19일 美 인기 토크쇼 <크리스 라터쇼> 출연 확정!]
-워;;;
-역시 보석들은 해외에서 먼저 알아봐 주는 구나ㅠㅠ
-저기 이제 개나 소나 다 나가서 별로
ㄴ개나 소ㅋㅋㅋㅋㅋㅋㅋ
ㄴ진사랑 앞에 가서 ‘개랑 소만도 못하시네요.’ 이 한마디 하면 인정ㅋ
ㄴ고작 토크쇼 하나 출연하는 데에 개랑 소까지 들먹일 일임?
-한국 토끼들의 지구정복은 순조롭게 진행 중
ㄴ미국인 하나 섞여 있음
ㄴ아 맞다ㅋㅋ 위화감이 없어서 자주 깜빡함
-얘네 라이브도 잘하고 영어 잘하는 멤버들도 많아서 별걱정 안 된다
-월드투어 할 정도면 미국 토크쇼도 들르는 게 필수코스 된 지 오래라ㅋ
ㄴ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축하가 먼저 아닐까?
-미국 토크쇼에서 신곡 최초 공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ㄴ너튜브에서 동시 방송해줄걸요
-어스래빗 처음 듣는데 신기하네ㅎㅎ
ㄴ원래 남돌이 노래나 컨셉이 대중성이 약해서 여돌보다 뇌리에 잘 안 박히긴 하죠
ㄴ인기의 기준을 단순히 예능 출연 빈도로 따지니까 듣보로 보이는 거지, 수익은 히아신스 제친 남돌 엄청 많음
ㄴ돈 많이 벌면 뭐 함? 인기가 없는데
ㄴ???
-셔플러 티저 미쳤다 애들 개섹시해
ㄴ이런 댓글은 너튜브에다 다세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드니 콘서트 다음 날인 10월 12일. 어스래빗 멤버들은 라이언의 생일을 맞이해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곳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회사에서 빌린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어스래빗이 <크리스 라터쇼>에서 를 최초 공개하기로 하자, 연습을 도와주려고 이곳까지 날아온 안무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다치지 않도록 몸부터 잘 풉시다!”
“네에!”
그렇게 이틀간 5시간씩 연습하고 14일. 어스래빗은 멕시코와 남미 팬들의 강력 요청으로 추가된 멕시코시티 콘서트를 위해, 멕시코로 향했다.
멕시코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 어스래빗 팬들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그들은 핸드폰과 카메라는 기본이고, 온갖 슬로건 머리띠에다 커다란 현수막까지 든 채 어스래빗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만 오천 객석이 금세 매진되어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매니저 허진영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오 팀장에게 물었다.
“우리 애들,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다른 통로는 없을까요?”
“공항 관계자 말에 따르면 다른 통로 앞에도 팬들이 잔뜩 모여 있다더군요. 우리가 탈 버스까지 모두 알아챈 상태니,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죠.”
현장전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경호원들도 각오를 단단히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팀장이 저만 바라보는 어스래빗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안전이 우선입니다. 서로 다칠 우려가 있는 몸의 장신구는 미리 떼어놓기를 부탁드립니다. 가방도 앞으로 메시고.”
“네에.”
한율은 손목시계를 벗어서 가방 안에다 넣었다.
…꺄아아악! 로비로 나가자, 엄청난 함성이 공항을 가득 울리며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멤버들은 매니저들과 경호원, 공항 경찰들과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잔뜩 흥분한 팬들의 목소리, 그리고 숨이 막힐 정도로 밀려오는 압박감. 멤버들은 인파에 눌린 채 휩쓸리다, 한 명씩 버스로 쑤셔 담듯이 넣어졌다.
“후아….”
“다들 무사하냐? 우성이 넌 모자 어디 갔냐.”
길우성이 벙벙한 얼굴로 제 머리를 더듬었다.
“어? 어디 갔지? 어?”
“우리, 이렇게 인기가 많았었나?”
“새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보배야. 우리 콘서트를 보기 위해 만 오천 명이 모인다는 거 알고 있잖아.”
“강보배 씨가 넋이 나갔군요.”
“남미 팬분들까지 오셔서 그런 거지. 여기엔 써한 잘못도 있을 거야.”
“내가 뭘?”
“구미호로 대박이 난 죄.”
탕탕. 그 와중에도 버스는 팬들의 손길로 흔들거렸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만신창이가 된 오 팀장이 멤버들을 살폈다.
“다들 무사하죠?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팀장님이 전혀 무사하지 않으신데….”
호텔로 도착한 뒤에도 어스래빗 멤버들은 극성팬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항에서부터 쫓아온 수십 명의 팬이 같은 호텔을 예약하거나, 밖에 잔뜩 모여서 전혀 나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될까 봐 나갈 예정도 잡지 않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오 팀장이 멤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웬만하면 객실에서 나오지 마세요. 룸서비스 시키고 싶으면 직접 주문하지 말고, 나나 유찬 씨한테 연락하고요.”
객실은 두 명씩. 한율은 오래간만에 길우성과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길우성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돌연 한율을 향해 손을 들었다.
“hola! Mucho gusto! …음, 참 어렵군.”
“두 마디밖에 안 했잖아.”
“Gracias!”
“…….”
한율은 길우성에게서 신경을 끊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앉았다. 길우성이 옆 침대에 다이빙하듯 풀썩 눕고선 뒹굴뒹굴했다.
“써한, 우리 이따가 라방하자.”
“어.”
다음 날, 어스래빗의 단독 콘서트가 열릴 공연장. 멤버들은 준비된 산소통과 응급차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은 리허설만 할 건데 왜…?”
“여러분은 멕시코시티 고도가 몇인지 아십니까.”
차남석이 손을 들었다.
“2,240m?”
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한라산보다 높죠. 고산지대라, 격렬한 안무와 라이브를 해야 하는 여러분은 여러모로 힘들 겁니다. 예전에 한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이곳에서 공연하던 도중 실신했다는 기사, 본 적 있죠?”
“아. 그래서….”
“그러니 조금이라도 두통이 오거나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네에.”
회사가 산소통과 응급차, 의료진까지 대기시킨 건 큰 도움이 되었다. 리허설 막바지, 본 공연처럼 안무하고 속사포처럼 랩을 쏟아내던 강보배가 돌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대기하던 의료진과 스태프들이 달려와 강보배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상태를 확인했다.
통역 알바생이 의료진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다행히 조금만 쉬면 나아질 거래요.”
“후우….”
공연 연출팀과 회사 스태프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라이브 AR 비중을 높이기로 하고, 무대 사이 쉬는 시간, 멘트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잡기로 했다. 3시간 넘는 콘서트를 무사히 마치기 위함이었다.
“며칠 더 일찍 와서 적응 기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저희가 너무 안이했네요. 미안하다, 보배야.”
의료진의 처치로 금세 안정을 되찾은 강보배가 웃었다.
“괜찮아요. 멕시코 공연은 우리 다 처음이잖아요.”
“와, 나는 진짜…. 보배 형이 갑자기 주저앉는데, 그 순간 내 심장도 쿵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미안, 미안.”
“다른 곳보다 힘들긴 힘드네요. 뭔가 좀 답답하기도 하고.”
“음.”
남은 리허설 동안 강보배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내내 앉아서 진행했다.
다음 날. 만 오천 명의 관객 앞에서 멕시코시티 첫 단독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몇 시간 전 최종 리허설에서 평소대로 무대를 진행한 강보배는 괜찮다고 판단, 본 공연에서도 멤버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돌아다니며 소리를 냈다.
이번 콘서트는 AR 비중을 조금 더 높이고 중간에 휴식 겸 멘트 타임을 길게 가졌으나, 그래도 고산지대라 힘들었다. 멤버들은 백스테이지로 잠깐 나왔을 때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힘든 내색을 감추며 다시 무대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어스래빗 2020 월드투어 ‘The CARNIVAL’! 오늘 이곳 멕시코시티에서 마무리를 짓게 되었는데요, 정말 기억에 오래 남는 콘서트가 될 것 같습니다.]
어느새 마지막 곡만 남겨두고 엔딩 멘트 타임. 멤버들은 처음 멕시코를 방문한 소감, 오늘 콘서트를 한 소감 등을 말했다. 강보배는 어제 저산소 혈증으로 두통을 겪었던 일을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오늘 콘서트 내내, 우리보다 더 열정적으로 성원을 보내주시는 여러분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리 이프림! 완전 짱 세다!]
[월드투어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지금까지, 어스!]
한율의 선창에 멤버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래빗!]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 11일 서울을 시작으로 총 22개 도시를 방문한 ‘EarthRabbit 2020 WORLD TOUR [The CARNIVAL]’이, 드디어 98일간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 * *
[어스래빗, 두 번째 월드투어 ‘The CARNIVAL’ 성공적 마무리]
[어스래빗, 총 22개 도시 방문 월드투어 성황리 종료]
[월드투어 효과, 어스래빗 공식 팬클럽 회원 수 대폭 증가]
[<스타학교>, 월드투어 성료 어스래빗 완전체 섭외 논의 중]
[[포토뉴스]어스래빗, 美 인기 토크쇼 <크리스 라터쇼> 출연 위해 뉴욕行]
멕시코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 비행기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유호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기사 보니까 이제야 투어 끝난 게 실감 난다. 어제는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피곤해서 바로 잤거든.”
“네. 형 정말 피곤해 보이더라고요. 형이 코 골면서 자는 거 처음 봤어요.”
유호가 충격받은 얼굴로 차남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코를 골았다고? 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