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화 (237/427)

“뭐가.”

힐끗. 이건우가 닫힌 문을 확인하고선 대답했다.

“예전에 자주 보이던 사생 중 한 명이 안 보여서.”

“건우 너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그 단발머리?”

“응. 진영이 형 고소하겠다고 난리 쳤던 애.”

음악방송 미니 팬미팅은 사녹 방청을 한 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사녹 방청은 팬클럽 회원만 신청이 가능, 블랙리스트에 올라 제적당한 사생은 신청할 수 없다. 다른 방법을 통해 팬클럽에 가입해 방청에 뽑혀도, 본인 확인 절차에서 다 걸러지고.

그러나 미니 팬미팅이 주로 야외에서 진행되다 보니, 사생들은 혼잡한 틈을 타 슬쩍 섞여서 들어오거나 벨트 차단봉 너머에서 카메라로 찍어대기 일쑤. 김다우 또한 출퇴근길이나 미니 팬미팅을 노리고 늘 기웃거렸었다.

몇 달 전 허진영을 폭행죄로 고소하겠다며 난리도 쳤었으나, WB래빗 측 변호사가 ‘그래, 이참에 하나하나 법대로 따져보자!’라고 나서자 수그러들었다. 그녀가 과장된 몸짓으로 쓰러지는 모습이 다른 차 블랙박스나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고.

『저년 할리우드 액션한 거 맞아요! 우리가 증인이야!』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 있던 다른 사생들이 증거를 제출, 증언까지 해주었다.

“생각해보니까, 귀국한 이후로 한 번도 안 보인 것 같아.”

“안 보이면 좋은 거지. 깊게 생각하지 마.”

“그래야겠다.”

강보배는 그가 정말 사랑하는 예능, MBS의 <괴담> 현장 녹화를 하러 가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았다. 진한 무대용 메이크업을 지우고, 새로 단정하게 하려고.

“두근두근하다. 오늘은 어떤 괴담이고 어떤 곳일까.”

“쟤도 참 특이해.”

강보배를 제외한 멤버들은 SBC 라디오 스케줄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보배야.”

“조심히 다녀와요, 형. 수고하고.”

“응. 너희도 수고해. 나중에들 봐요.”

대기실엔 강보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매니저 조유찬과 윤승우만 남았다.

“그런데 보배 넌 무서운 게 재밌어? 무섭지 않아?”

“무섭죠. 그런데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짜릿함 때문에 자꾸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진짜일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형은요?”

조유찬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서운 건 무서울 뿐이란다.”

“예전에 한율이가 <객귀, 해> 찍을 때 같이 갔었잖아요.”

“그건 다 분장이고 연출이란 걸 아니까 괜찮았지. 그런데 귀신이 나오는 실화 괴담 배경은… 정말로 사람이 죽은 장소인 경우가 많잖아.”

들떴던 강보배의 얼굴이 차분해졌다.

“그렇긴 하죠….”

MBS <괴담>은 스튜디오에서 시청자들이 보낸 괴담 사연을 읽고, 직접 그 사연 속 장소를 찾아가는 예능이었다. 매끄러운 몰입을 위해선 당연히 스튜디오보단 현장 녹화가 우선.

강보배는 달리는 차 안에서 제작진이 보내준 사연과 참고 자료를 읽었다.

“와…. 되게 섬뜩한 내용이에요, 형. 읽어줄까요?”

“괜찮아.”

“네.”

이윽고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곳에 있는 2층짜리 폐가였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던 제작진과 인사를 나눈 뒤, 촬영 동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작년에 처음 출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리액션 지시는 없었다. 출연자의 리액션보다 사연이 중점인 까닭이었다. 어차피 방송에도 짧게 나가고.

“밤에 왔으면 정말 무서웠겠는데요? 제보자 일행이 이곳에 왔던 게 3년 전이니까, 그때보다 먼지만 조금 더 쌓였을 뿐, 지금이랑 비슷했을 것 같아요. 여기가 방치된 지 20년이 지났다니까.”

촬영 시작. 강보배는 VJ가 든 카메라를 향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건물 바깥부터 한 바퀴 돌았다. 색이 바랜 과자 봉지, 깨진 술병,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를 부러진 밥상 등. 별의별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최근에 누가 여기 드나들었나 봐요. 희미하지만, 사람이 지나다닐 폭 정도로만 잡초가 눌려 있거나, 쓰레기가 부자연스럽게 치워져 있네요. 제보자분 일행도 이렇게 지나가면서 두리번거렸을 것 같은데…. 아, 저긴가?”

강보배는 제보자가 이곳에서 처음 이상한 그림자를 발견한 2층 창을 가리키며 살폈다.

이런 식으로 촬영은 내부까지 진행되었다. 이미 제작진이 위험한 건 없는지 살펴본 터라, 강보배는 내심 안심한 채 제보자 일행이 귀신과 맞닥뜨린 2층으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쿵!

“……?!”

2층에서 들린 소리에, 강보배는 계단을 오르던 동작 그대로 놀라 굳었다.

“방금… 문 닫히는 소리였죠?”

유리가 깨진 창 너머를 살폈다. 창문 앞에 심어진 나무 잎사귀는 요동조차 없었다.

강보배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바람도 안 부는데 왜….”

쾅, 챙그랑! 이번엔 병이 깨지는 소리.

“……!”

누군가가 병을 있는 힘껏 벽이나 바닥에 내리친 것처럼 생생하다. 분명히 사람이 내는 기척이었다.

강보배는 소리 높여 물었다. 이런 곳에선 귀신보단 사람과 마주치는 게 더 무섭다.

“거기 누구 계세요?!”

VJ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다른 제작진에게 황급히 손짓했다. 강보배 역시 빠르게 그들을 살폈다.

‘이런 식으로 출연자를 놀라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닌데.’

제작진도 위에서 들린 소리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한 눈치였다. 조유찬도 무언가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제작진들과 함께 다가왔다. 이 폐가 소유주에게 촬영 허가를 받으면서 현재 거주자가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 물도 전기도 다 끊겨,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말이다.

PD가 2층을 향해 외쳤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MBS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작가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까 살펴봤을 땐 아무도 없었는데….”

“올라가 볼게요. 보배 씨는 여기에 계세요.”

“아니요, 저도 같이 갈게요.”

강보배는 건물 바깥뿐만이 아니라, 안에도 지저분하게 버려진 담배꽁초나 술병, 과자 봉지 쓰레기 등을 떠올렸다. 노숙자가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쿵탕쿵탕. 꾀죄죄한 몰골의 남자가 계단에 나타나더니, PD를 향해 대뜸 깨진 술병을 휘둘렀다.

“꺼져, 이 새끼들아!”

“…헉!”

닿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위협. PD가 크게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

강보배는 PD, 정확히는 PD의 머리가 부딪칠 위치에 삐죽 튀어나온 못을 발견하곤 그를 뒤에서 와락 안아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함께 휘청거렸다.

“어어!”

“꺄악!”

“안 돼!”

놀란 사람들의 비명. 보배를 보호하려고 두 팔을 벌린 조유찬까지, 세 사람은 뒤엉킨 채 계단 아래로 쓰러졌다. 쿵!

“……!”

순간 눈을 질끈 감은 강보배의 귀에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꽂혔다.

“씨발, 내가 꺼지랬잖아! 비켜!”

쿵쿵. 깨진 술병을 휘두른 노숙자가 그들을 지나쳐 도망쳤다.

“…잡아, 저 사람 잡아!”

“괜찮아요? 다들 괜찮아?!”

스태프들의 절반은 노숙자를 쫓았고, 남은 사람들은 쓰러진 세 사람을 살폈다. 강보배도 눈을 떠서 조유찬과 PD의 상태를 확인했다.

“형, 괜찮아요? PD님, 괜찮으세요?”

제일 아래에 깔렸던 조유찬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어, 난 괜찮아.”

“저도… 괜찮습니다.”

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조유찬이 강보배의 몸을 살폈다.

“보배 넌? 어디 다친 데 없어? 발목 돌려봐. 팔은? 어깨는? 허리는? 목 제대로 움직여?”

“멀쩡해요. 형은요? 정말 괜찮아요?”

조유찬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멀쩡해.”

강보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노숙자는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밖에서 기다리던 어스래빗 경호원에게 붙잡혀 끌려왔다. 그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인계되었다.

<괴담> 제작진과 강보배 일행은 상황이 정리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촬영을 재개했다.

“낮에 제작진이 먼저 둘러봤을 땐 2층에 있던 침대 아래에 숨어있었던 것 같아. 그러다가 사람들이 또 와서 올라올 기미를 보이니까 쫓겨날까 봐 난동을 피운 거고. 어쨌든 깨진 술병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모두 담겨서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거야. PD님은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

촬영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조유찬의 이야기에 강보배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그런데, 아까 거기에 뭐가 있긴 있었나 봐. 아니면 조상님이 도와주셨나?”

“……?”

조유찬은 룸미러를 통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강보배를 보곤 말을 이었다.

“아까 다 같이 계단 아래로 떨어졌을 때 말이야. 솔직히 반사적으로 널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밑에서 받쳐주기는 했는데, ‘아이고, 나 내년에 장가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도 뒤늦게 들어서 ‘크게 다치지만 않게 해주세요!’ 이러고 눈 질끈 감았거든. 그런데 바닥에 쓰러질 때 느낌이….”

마침 신호에 걸렸다. 조유찬이 차를 천천히 세우곤 뒷머리를 긁적였다.

“푹신한 뭔가가 몸을 안전하게 감싸주는 느낌? 그런 느낌만 살짝 들고 전혀 아프지 않더라고.”

“형도요?!”

“응?”

조유찬이 강보배를 돌아보았다. 순간 놀라서 크게 되물은 강보배가 아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저도 떨어지던 순간에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난 그게 형 덕분인 줄 알았는데.”

“와…. 되게 신기하다. PD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 아니지. 내일 스튜디오 녹화할 때 말하자. 거의 1m 높이 계단 위에서 떨어진 사람도, 그걸 밑에서 받쳐준 사람도 몸 하나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고.”

스타일리스트가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웃었다.

“거기 있는 귀신이 보호해준 거 아닐까요? 그 노숙자 좀 내쫓아 달라고?”

“제보자 일행한테는 해코지했는데요?”

“제보자 일행은 밤중에 담력 테스트한다고 무단가택 침입한 거였잖아요. 우리는 집주인한테 허락받고 낮에 조심조심 들어간 거고.”

“그런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 경호원이 우울한 얼굴로 물었다.

“슬슬 다른 이야기 하면 안 될까요?”

뮤닷 <락뮤닷> 어스래빗 대기실.

라디오 홍보 스케줄을 다녀온 멤버들은 조금 전 다른 출연자들과 인사하며 받은 앨범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보배 왔어? 촬영 어디로 갔다 왔어?”

“스포가 되니까 비밀. 다음 주 방송으로 봐줘.”

“싫어.”

“공포물엔 정말 단호한 호 씨.”

“……?”

한율은 옆을 지나는 강보배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의 왼손에 끼워진 팀 반지. 거기에 새겨두었던 보호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보배가 가방을 벗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한율아?”

“가서 별일 없었어요?”

“어….”

강보배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입가를 올렸다.

“방송으로 봐줘.”

강보배와 함께 갔었던 조유찬과 스타일리스트를 살펴보니, 두 사람도 괜찮아 보였다. 혼자 조금 위험한 곳에 넘어지기라도 했던 건가.

“네.”

잠시 후, <락뮤닷>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멤버들은 대기실에 있는 TV로 방송을 보다가, 후반부에 슬슬 움직였다. 오늘 컴백과 동시에 1위 후보로 오른 까닭이었다. 다른 1위 후보가 그들보다 후배라, 자연스럽게 어스래빗이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1위 후보 축하드립니다.”

“1위 후보 축하드립니다.”

1위를 발표할 땐 전 출연진이 무대로 올라가야 해서, 백스테이지 앞 복도에는 벌써 다른 출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엔 함께 에 출연한 보이그룹 그레이트7도 있었다.

한율, 길우성, 스카이러너 하신과 함께 00즈 멤버인 완언이 손을 들었다.

“어스래빗 1위 기원.”

길우성이 활짝 웃으며 손바닥을 하이 파이브 했다.

“고맙다, 친구야.”

한율도 그와 가볍게 하이 파이브.

“나중에 보자.”

어스래빗이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며 육중한 문이 닫혔다. 복도에 길게 서 있던 아이돌 중 누군가가 비꼬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잘나가는 대세랑 친해서 좋겠네.”

오늘만 넘기면 일주일 쉰다

완언은 발끈했다.

어스래빗의 길우성, 서한율과는 그들이 대세라서 친해진 게 아니었다. 작년 에 함께 출연하는 동안, 동갑인 두 사람과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그러다 웹 예능에서 만난 스카이러너의 하신과 친해지게 되고, 하신의 주도로 00즈 모임이 결성되었다.

겉은 화려해도 속은 여러 가지 문제를 품은 험난한 연예계. 이런 곳에서 고충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아이돌 친구는 무척 소중했다.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정말 생각이 깊고 좋은 녀석들이구나 와 닿게 되어 더더욱.

같은 아이돌로서 존경스러운 점도 배울 점도 많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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