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으로 그런….”
완언이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걸그룹 드림래빗의 은보람이 웃음을 실어 말했다.
“부러우면 부러운 거지, 왜 말투나 억양이 그 모양이지? 듣는 사람 오해하게? …응?”
그러곤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멤버에게 물었다.
“나 목소리 컸어?”
조금 전 완언을 비꼬았던 보이그룹, ‘빅타임’ 멤버 성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작게 말해도 다 들렸을 정도로 드림래빗과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큭큭. 다른 아이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쟨 무슨 배짱이냐? 드림래빗이 바로 옆에 있는데 버젓이.”
“옆에 있어서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한 거 아니었어? 패기 넘친다고 감탄했는데.”
은보람이 성건에게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내 말투나 억양 때문에 오해한 건 아니죠, 선배님?”
“…….”
완언은 창피함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성건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같은 팀 멤버, 김권석이 완언의 팔을 두드리며 속닥거렸다.
“잘 참았어. 저런 못난이 말엔 일일이 반응하지 마.”
* * *
[2020년 10월 27일, 생방송 <락뮤닷>!]
어스래빗의 사녹 송출이 끝났다. 모니터링 TV에 전 출연자가 올라온 무대가 잡혔다.
[이번 주 1위는!]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들. 점수 집계가 끝났다.
MC 임승준이 또박또박하게 외쳤다.
[축하합니다! 어스래빗!]
, 에 이어 컴백 첫 주 만에 받는 1위였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은 채 웃으며 트로피를 받고, 소감을 말했다.
[솔직히 대표님이 ‘투어 끝나고 깜짝 컴백하자!’라고 하셨을 땐 ‘저희한테 왜 그러세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었거든요? 그런데 대표님이 옳았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프림, 사랑해요!]
앙코르 무대를 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퇴장하는 다른 출연자들과 꾸벅꾸벅 인사하며 노래를 불렀다.
[섞어. 허수, 묘수, 이런 Shuffler.]
[진실인지 진심인지 파헤치다 널 드러내지, 넘어와.]
[대신 읽어줄게, 숨은 Sunflower.]
[어느새 카드가 아닌 나를 봐.]
한율은 인사하다 눈이 마주친 완언에게 손을 뻗어 악수하곤, 이프림이 모인 객석을 향해서도 손을 흔들었다.
[이프림, 고마워요!]
앙코르 무대는 <락뮤닷> 너튜브 채널에 올라가기 때문에, 멤버들은 생방송 송출이 중단되어도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 같이 손을 잡아 정면 카메라, 이프림이 있는 객석을 향해 한 번씩 허리를 숙였다.
백스테이지에는 컴백 비하인드 촬영을 위한 VJ가 대기 중이었다. 멤버들은 다시 한번 트로피를 든 채 1위를 한 소감을 말하곤, 서로 바르고 고운 말만 사용하면서 대기실로 돌아왔다.
카메라는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어서야 꺼졌다.
“써한, 아까 완언이 좀 이상하지 않았냐?”
“어떤 점이?”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별로 안 친한 사이처럼 웃으면서 꾸벅 인사만 하고 바로 가려던 점이?”
“시간 끌면 괜히 친한 척한다는 오해 살까 봐 그런 거 아냐?”
“친한데 친한 척을 하면 안 돼? 다음 주에 같이 고기 뷔페도 가기로 했는데?”
“둘만?”
“지금 말하잖아.”
“이젠 묻지도 않고 통보하냐?”
<락뮤닷>에서 퇴근한 어스래빗은 <로얄K뮤직>으로 출근, 드라이 리허설을 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한율은 계나리와 통화했다. 모의 훈련을 12월로 미루겠다는 이야기에, 계나리는 이유도 묻지 않고 선뜻 대답했다.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진행 일주일 전에 게이트 예측 지도를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모의 훈련을 진행할 장소도 포함해서.”
-[그럼 서울에 짝퉁 게이트가 생기면…. 음,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알아서들 대비에 들어가겠네요.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다시 불신감이랑 음모론이 또 스멀스멀 퍼지지 않을까요?]
“다른 곳도 준비해야지. 어디가 좋을지는 아직 생각 중이야.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
-[죄송해요. 규모가 큰 환영 마법이나 파괴력을 가진 마법은 제가 아직 힘들어서….]
“괜찮아. 네가 없었다면 마법 학교도, 모의 훈련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야.”
계나리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히히….]
“그 사생한테선 손 뗐지?”
-[네. 앗싸일보 기자한테 연락하기 사흘 전에요. 원래 사람이, 본인이 잘못하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남들도 그럴 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보내지 않은 사람들도 알아서 스토커로 착각하더라고요. 김다우를 만난 기자도 괜히 시간 낭비했다고 여기는 모양이고.]
“그래. 수고했어.”
-[넵! 오늘 1위 축하드려요!]
“고마워. 쉬어.”
-[넵!]
계나리와 통화를 끝낸 뒤엔 조유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괴담> 현장 녹화 때 별일 없었냐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폐가에 숨어 살던 노숙자가 깨진 술병으로 PD을 위협했고, 놀란 PD가 계단에서 떨어지는 걸 받쳐주다가 함께 아래로 쓰러졌었다고.
-[그런데 조상님이 도우셨나 봐. 그 순간에 부드러운 뭔가가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면서, 하나도 안 아프더라.]
“네…. 그래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에선 종종 시신도 발견된다던데, 그것보단 낫지. 아무튼 그거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배 형이 말을 안 해줘서요. 그런데 정말 전셋집….”
-[앗, 팀장님 전화다! 내일 보자, 한율아!]
뚝.
“…….”
전셋집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전화를 끊는 걸 보니 정말 부담스러운 모양. 한율은 작게 웃곤 핸드폰을 침대에 놓았다.
‘강보배 반지에 보호 마법이나 새로 새겨줘야겠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흘렀다.
수요일 MBS K <로얄K뮤직> 스케줄을 뛰는 동안, 차남석은 SBC <너의 집> 현장 녹화, 강보배는 MBS <괴담> 스튜디오 녹화를 하러 갔다.
목요일은 MBS <매니저의 하루> 카메라가 붙은 상태에서 <뮤직센터> 스페셜 영상 녹화, 패션 잡지 인터뷰 및 화보 촬영, 라디오 홍보를 진행했다. 박가람은 드라마 OST 제안을 받고 회의하러 가기도 했으며, 밤에는 <뮤직센터>로 다시 가서 사녹을 하고 퇴근했다.
금요일엔 유호와 길우성이 뮤닷의 <뮤직카페>라는 음악 토크쇼에 나갔다. 한율은 개인 CF를 촬영했으며, <뮤직센터> 생방송이 끝난 후엔 숙소에서 3시간 취침 뒤 KBC <뮤직뮤직>으로 출근했다.
토요일 <뮤직뮤직> 생방송이 끝난 직후엔 서울 1차 팬 사인회 장소로 이동, 2시간가량 팬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인도 하고, 팬들에게 선물 받은 물건을 몸에다 주렁주렁 달거나 든 채 미니 공연을 진행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이프림도 있어, 특별히 사진도 찍고 놀아주었다.
“아기 몇 개월이에요? 오구구, 예쁘다.”
팬 사인회가 끝난 뒤엔 SBC 에서 드라이 리허설을 진행하고 귀가. 아침 9시에 샵에 들렀다가 재출근했다.
어느새 날짜는 11월 1일. 일주일 동안만 하기로 했던 음방 순회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만 넘기면 일주일 동안 쉰다! 다들 내일부터 뭐할 거야?”
어스래빗 대기실. 정체불명의 막춤을 추던 길우성이 들뜬 얼굴로 물었다. 옆에는 왜 찍는지 모르겠지만, VJ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유호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효도.”
“…엉?”
“부모님께 효도할 거야.”
“어…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지는데? 나는 친구랑 고기 뷔페 갈 생각에 들떴었는데.”
“부모님께 더 좋은 고기를 사드리면 되지?”
“되지? 돼지! 돼지고기?! Yo, 삼겹살, 오겹살, 목살, 살살살! 살이 찐다, 예에! 고기, 고기, 소고기를 주세요, 난 한우가 좋아 Yo!”
박가람이 뜬금없이 아무 말 엉터리 랩을 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라, 멤버들은 별 반응 없이 흘려들었다.
“난 할아버지 집이나 다녀와야겠다.”
“나도 남석 씨네 집밥 축내러 갈래. 집 어떻게 완성됐는지도 궁금하고.”
“아, 남석이네 집 새로 지었지? 집들이 언제 해?”
“완성된 지 벌써 몇 달 지났는데요. 안 해요.”
“나도 남석이네 집 궁금하다.”
“우성, 얘네 집밥 맛있어?”
“응. 형네 할아버지 친구분이 담그신 식혜도 예술이야.”
“그럼 나도 갈래.”
“닭고기도 좋아 Yo, 좋아, 좋아, 치킨 좋아! 바삭바삭 튀기면 뭐든 맛있지!”
“언제 갈까? 남석아.”
“…잠깐잠깐. 다 오겠다고요?”
“차 두 대로 나눠서 가야겠네요.”
“휴가 때 나랑 극장에 공포영화 보러 갈 사람.”
“치킨 사주면 간다, Yo!”
“가람이 형이 웬일이야? 공포영화를 다 보고?”
멤버들은 핸드폰이나 사과패드 달력을 띄우곤 일정을 맞췄다.
“9일이 딱 적당하네. 다들 시간도 비고, 남양주면 또 가깝기도 하잖아.”
한율은 길우성의 핸드폰에 기재된 일정을 보고 물었다.
“주말에 제주도 다녀오려고?”
“엉. 써한 너도 갈래?”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안 될 것 같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 안전하게.”
“그러고 보니 그때 그놈 어떻게 됐…. 아, 나중에 물어볼게.”
현재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투어 내내 곁에 있던 스태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편하게 질문이 나왔던 모양. 강보배가 황급히 말을 수습하곤 주제를 바꿨다.
“나 아까 화장실 다녀오다가 봤는데, 드림래빗 애들 분위기 좀 이상하더라.”
“분위기가 왜? 싸운 것 같았어?”
“싸운 것 같지는 않던데…. 음,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어.”
라이언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보람이랑 사이가 정말 안 좋은 애가 있는데, 이번에 활동이 겹쳤어. 만날 때마다 시비 건대.”
“응? 누구? 뭐라고 시비를 거는데?”
라이언의 시선이 VJ를 향했다. VJ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카메라를 껐다.
“빅타임의 성건. 예전에 막내인 혜란한테 수작질하는 거 보람이 막은 뒤부터 시비를 거는데, 최근엔 말이 더 심해졌대. IOMU 들어간 후배들한테 열폭하는 거 환히 보인다, 추하다, 그런데 네가 픽미돌2 나갔어도 데뷔에 성공했을 것 같진 않다, 트레리안 선배님들 노래엔 다른 애 목소리가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왜 네가 피처링했냐 등등.”
멤버들의 미간이 구겨졌다.
“시비를 넘어 악담 수준이잖아.”
“하하하.”
어느새 고기 타령을 멈추고 옆에 와서 이야기를 듣던 박가람이 소리 내어 웃다가, 뚝 그쳤다.
“어떻게 혼낼까. 감히 우리 동생들을 건드려?”
“성건이면, 평소에 우리 팀이 롤모델이라고 말하고 다니던 걔 아냐? 우리한테도 완전히 싹싹하게 인사 잘해서 괜찮게 봤더니…. 와, 그런 놈인 줄 꿈에도 몰랐네?”
“아직 열아홉 살밖에 안 된 혜란이한테 수작 부렸다는 것도 불쾌한데요? 성건, 얘네 둘이랑 동갑이잖아요.”
차남석이 눈짓으로 한율과 길우성을 가리켰다. 한율도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리 두 살 차이라도, 같은 성인이면 몰라도 미성년자한테 치근덕거리는 건 좀.”
점점 굳어지는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강보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드림래빗 대기실.”
“거기는 왜. 알지? 이런 일에 우리가 섣불리 끼어들면 상황만 더 복잡해지는 거.”
강보배가 자신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밥 사주러 가.”
“…그래, 다녀 와.”
강보배가 대기실을 나갔다. 매니저 윤승우가 조용히 그 뒤를 따라 나갔다.
한율은 힐끗 길우성을 살폈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우성이 은보람을 짝사랑했었으므로.
“…….”
길우성을 바라보는 한율의 눈빛이 한심하게 변했다. 길우성은 인터넷으로 [빅타임 성건 약점]을 검색하고 있었다.
‘게임 속 몬스터도 아니고, 약점이 나오겠냐….’
모르는 게 좋을 거예요
[[어스래빗(EarthRabbit)/보배] 챌린지 with 보람(드림래빗)]
-이게 드림래빗 후배들 점심 사주러 갔다가 얼결에 같이 댄스 챌린지하고 왔다던 그 영상이군요ㅎㅎㅎ
-떠비 식구들 사이좋은 거 너무 좋아
-올해 크리스마스 송엔 드림래빗도 참여했으면 좋겠다
ㄴ그렇게 되면 파트 분배가 어려워져서 드림래빗은 새 보이그룹이랑 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보람님 남돌 춤도 정말 잘 추시네요
-토끼돌 팬은 그저 흐뭇
-둘이 남매 같다 :)
-꿈톢이들에게 맛있는 점심에 간식까지 푸짐하게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들 밥 사주러 간다더니, 같이 댄스 챌린지 찍었어? 어쩐지 늦게 오더라.”
SBC 에 이어서 서울 2차 팬 사인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너튜브에는 오늘 강보배가 드림래빗의 은보람과 함께 , 그리고 드림래빗의 신곡 댄스 챌린지를 하는 영상이 하나씩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