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 (240/427)

-[감사합니다.]

“오늘 달냥이 데려온다고 했으면서!”

거실에서 길우성이 씩씩거리더니 톡을 올렸다.

-[달냥이는? 달냥이는? 달냥이는?]

-[(이모티콘)]

서한율의 답장.

-[내일 데려감.]

“진작 말했으면 내가 오늘 데려오는 건데.”

“그러다 지난번처럼 또 달냥이한테 맞으려고?”

서한율이 <서울 구미호> 촬영으로 한창 바빴을 때였다. 길우성과 유호가 달냥을 숙소로 데려왔다. 그리고 숙소에 서한율이 없는 걸 확인한 달냥은, 두 사람을 쫓아다니며 항의하다가 급기야 솜방망이 펀치를 날렸다.

길우성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지 않은 젤리 발바닥으로 퍽퍽 때리는 그 감촉이 얼마나 푹신하고 좋은지, 모태 집사인 형이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렇기는 하지.”

중문을 열고 들어오던 차남석이 한마디 했다.

“변태들.”

“어서 와, 남석 씨.”

“집에서 자고 내일 올 줄 알았는데, 일찍 왔네?”

“계속 있다간 아버지랑 한바탕하게 될 것 같아서. 둘이 뭐 해?”

“그동안 못 본 드라마 정주행 중.”

차남석은 고개를 끄덕이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곧 운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계단을 올랐다.

“저 형도 참 관리 부지런히 해.”

부스럭. 강보배가 드라마를 보면서 먹었던 과자 봉지를 정리했다.

“나도 운동 좀 하고 자야겠다.”

곧 거실엔 길우성만 덩그러니 남았다. 유호는 아직 회사에서 안 왔고, 이건우와 라이언은 2층에 있는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는 중.

길우성은 소파에 드러누워서 드라마를 보다가, VOD 재생 종료 버튼을 눌렀다. 혼자 보니 심심했다.

어슬렁어슬렁 정원으로 나가자, 습하고 차가운 밤바람이 그를 반겼다.

‘바로 어제 이 시간엔 팬 사인회에서 이프림이랑 놀았었는데. …라방이나 할까? 분위기 있게 옥상에서?’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길우성은 거실로 돌아와 큰소리로 물었다.

“우리 미니 히터 있어?!”

잠시 후. 길우성은 옷을 따뜻하게 입고, 미니 히터와 차가 담긴 보온병, 노릇노릇하게 찐 고구마를 챙겨서 옥상으로 올라왔다. 고구마 냄새에 이끌려 방에서 나온 라이언도 데리고.

“안녕, 이프림~.”

“이프림, 하이.”

“휴가 첫날, 이프림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방송을 켰습니당.”

-[안녕안녕]

-어디야? 카페?

-카페 같지는 않은데

“이곳은 바로, 어스래빗 숙소 옥상입니다. …어? 오늘 처음 공개하는 건가?”

“응. 여기에서 라방하는 것도 처음일걸?”

“그렇다면.”

길우성은 테이블 공간을 나가, 핸드폰을 든 채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짜자잔.”

-[예쁘다. 사람도, 공간도]

-야외카펜 줄 알았는데 옥상이었구나

-크으 밤에 옥상에서 먹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

-[멀리 보이는 서울 야경]

-어? 잠깐만

-진짜 예쁘게 잘 꾸몄다ㅎㅎ

-[옥상에서 안무 연습해봤어?]

-[방금 우성 뒤로 눈동자가 보였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이런 공간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사다리차가 와서 무거운 자재를 막 옥상에다 내려놓더니, 전문가 포스를 뿜는 선생님들이 오시더라고요. 그리고 몇 시간 만에 이런 멋진 공간이 짠, 완성됐습니다.”

-디자인 구상하고 데크 자재랑 테이블, 의자 다 주문 제작하느라 몇 달 걸렸을 것 같당

“오오, 몇 달 전부터. 그런데 왜 집주인은 우리한테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어차피 반대할 사람이 없어서?”

-방금 이상한 눈 한 쌍 보인 것 같은데

-얘들아, 뒤돌아보지 마

-????

-모든 건 집주인의 뜻대로ㅎㅎ

-왜들 그래요, 무섭게

“응? 뒤돌아보지 말라고요? 왜?”

“이프림이 우리 놀려.”

-아니 뒤에 눈동자 같은 게 반짝거렸는데

-ㄷㄷㄷ

-칸막이 틈 사이에서 애들 쳐다보는 저거 뭐지?

“그러지 마요, 이프림. 하나도 안 무서워.”

가끔 뒤에 뭐가 있다느니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그런 말은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컸다. 놀리면서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위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막 의자에 앉던 길우성은 핸드폰을 든 채 다시 일어났다.

“대체 뭐가….”

-가지 마, 우성아!!!!!

그러곤 주위를 살피다, 이불 빨래 건조대 위에 둥둥 뜬 한 쌍의 눈을 발견했다.

“어…?”

길우성처럼 그것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게 뭐….’

거뭇한 실루엣이 보일락말락. 유심히 살피던 길우성은 뒤늦게 정체를 파악하곤 어깨를 떨었다.

“…어우, 깜짝야!”

푸드덕.

엄살 가득 섞인 외침이 쩌렁 울렸다.

“까마귀잖아아!”

-???

-잉?

-아

-까마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죠?]

-까마귀가 왜 여기에서 나와ㅋㅋㅋㅋㅋ

-[이 와중에 놀라서 소리 지르는 우성이 귀엽다. 난 나쁜 이프림이다]

-까마귀잖아아ㅋㅋㅋㅋㅋ

-[까마귀래요.]

그제야 라이언도 고개를 돌려서 살피곤, 고구마를 티슈로 덮어 감췄다.

“까마귀도 고구마 먹어? 안 되는데. 쟤 한번 주면 친구들도 데리고 오잖아.”

-이언아ㅋㅋㅋㅋ

3층에서 운동하던 차남석과 강보배도 길우성의 외침을 듣곤 의아한 얼굴로 등장했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야, 길우성. 너 누가 밤중에 소리 지르래.”

-놀라서 비명 지른 막내를 대하는 태도가 극명한 두 형들ㅋㅋㅋㅋ

* * *

양평 펜션 언덕 위의 집.

[저리 가, 이 녀석아!]

어스래빗 라이브 방송. 고구마를 야금야금 먹는 라이언의 뒤로, 두 팔을 크게 휘저으며 까마귀를 날려 보내려는 길우성의 모습이 작게 나온다. 하지만 까마귀가 날아가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와 난간 위에 앉는 걸 반복하자, 포기하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까마귀가, 예전에 한라산에서 본 까마귀처럼 엄청나게 커요. 이만해. 그리고 쟤도 안 가.]

-까마귀야 우리 애들은 진짜 토끼가 아냐ㅜㅜ 먹이가 아니라고ㅜㅜ

-고구마를 줘야 가지 않을까?

-야생동물한테 먹이 함부로 주면 안 돼, 얘들아. 특히 까마귀는 머리가 좋아서 기억하고 자꾸 올 수 있어

[음. 생태계를 위해서, 먹이는 주지 않겠습니다.]

라방을 보던 한율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라방에 나오는 까마귀는 예전에 훈련한 개체 중, 숙소 옥상을 자주 찾아왔던 그 녀석인 듯했다.

‘훈련한 녀석들 상태도 한번 봐야 할 텐데.’

툭. 투둑.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한율은 그린라이브 앱을 끄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한율은 몇 시간에 걸쳐 박가람과 이해원에게 외부 마나를 유동하면서 정제하는 걸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지구의 마나에 불순물이 많은 데다, 마력이 쌓이는지 체감도 잘되지 않아 ‘내가 지금 제대로 하는 건가?’라는 의심이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초반에는 몸소 감각과 요령을 익힐 때까지 몇 시간씩 진득하게 하는 게 좋으므로.

그리고 지금은 각자 2층의 다른 방에서 스스로 하는 중.

한율은 일단 이해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그를 살피곤, 창문을 조용히 닫았다. 단순히 체내 마나를 유동할 때도 곧잘 집중하던 그는, 이번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 비 와?”

반면에 박가람은 한율의 인기척을 느끼곤 눈을 떴다. 그래도 한 시간 넘게 집중했으니, 예전과 비교하면 크게 발전한 셈.

“네.”

“어우…. 어쩐지 배고프네. 저녁 먹은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정제하고 마력을 쌓는 게, 단순히 유동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거든요. 그래서 그럴 거예요.”

“여기 배달 안 되지? 갑자기 치킨이 당기는데.”

“잠깐만요.”

배달 앱으로 근처 치킨집을 살폈다. 제일 가까운 곳이 약 3km. 배달은 가능했지만, 배달료가 굉장히 비쌌다.

“직접 포장해서 가지고 오는 게 낫겠네요. 무슨 치킨 먹을래요? 내가 가서 사 올게요.”

“혼자? 밤이고 비도 오는데?”

“뭐 어때요. 차 타면 금방인데.”

박가람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나 그냥 치킨 안 먹을래.”

“괜찮아요. 어차피 씻을 때 쓸 샤워 타올도 사야 하거든요. 다른 거 뭐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이상하다….”

박가람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서한율이 왜 갑자기 친절하게 굴지?”

난 원래 제자한테 친절해.

서한율은 속마음을 감추곤 되물었다.

“싫으면 말고요.”

박가람이 활짝 웃었다.

“치킨은 양념 반, 프라이드 반. 가능하다면 닭날개와 닭다리만 든 걸로. 맥주도 같이 사 오면 더 좋고. 해원이 형은?”

“아직 집중하는 중이니까, 나중에 불러요.”

“엉.”

박가람이 슬쩍 이해원이 있는 방을 살피곤 목소리를 낮췄다.

“해원이 형 집중력 쩐다. 나중에 대마법사 되는 거 아니야?”

“그럼 갔다 올게요.”

“응. 운전 조심히 해.”

한율은 앱으로 치킨 두 마리를 포장 주문한 뒤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가기 전, 가볍게 둘러보았다. 창문이나 테라스 문 모두 밖에서 열 수 없도록 잠금장치를 해놓은 데다, 현관문이나 뒷문 또한 이중 자물쇠를 설치해서 누군가 몰래 침입할 염려는 없었다.

지금껏 이해원 혼자 잘 지냈는데, 새삼 별일이야 생길까.

한율은 현관문 옆에 놓인 우산을 챙겨 그곳을 나섰다.

한편, 박가람은 2층 창문 앞에서 한율의 차가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

‘쟤는 참 담도 커.’

민가도 드문 외딴곳에서 비 오는 날 밤길 운전이라니, 무섭지도 않은가? 아니, 안 보이니 상관없나? 굉장히 세 보이는 커다란 파충류 눈을 뒤에 달고 있으니, 잡것들에겐 무적일지도?

박가람은 잡다한 생각을 하며 조용히 움직였다. 여전히 마나 유동에 집중하는 이해원을 살피곤, 2층의 이 방 저 방을 괜히 살피다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1층은 거실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러나 비 내리는 어둑한 바깥 정경, 빈 소파가 비치는 테라스 창을 보자 괜히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넓은 집에 내려앉은 고요함과 더불어, 자신과 이해원 외엔 아무도 없다는 게 실감 나서.

여기가 연이어 발생한 사건·사고로 저렴하게 나왔던 곳이란 이야기도 떠올랐다.

슥. 박가람을 도로 계단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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