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끝낸 후, 셀카를 찍어 SNS에 올렸다.
[숙소엔 더 둘 곳이 없어, 별장 방을 하나 내어주었습니다. #토끼인형부자]
-히익ㄷㄷㄷ
-진짜 태반이 토끼 인형ㅋㅋㅋㅋ
-[전 세계 토끼 인형 수집 중인 율톢♡♡♡]
-하나 없어져도 모르겠다
-본인 얼굴처럼 정리도 예쁘게 잘해놨네
-[스웨덴 이프림입니다. 제가 선물한 인형도 보이네요. 함께 장식해주어서 고맙습니다. :)]
-[똑같은 인형은 나란히 두었군요! 멋져♡♡♡♡♡♡♡]
-아 진심 우리 애들 데리고 놀러가고 싶은 곳이네요^^; 절대 안 될 일이지만ㅎㅎ
-인형 방에 공기 청정기
-[사랑해]
댓글은 실시간으로 끝없이 달렸다. 한율은 위만 대충 훑곤 인형의 방을 나와, 드레스룸에 감춰진 비밀 공간으로 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온 건 저녁이 될 무렵. 부모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래간만에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4일 아침, 달냥을 데리고 어스래빗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에 있던 유호가 웃으며 반겼다.
“왔어? 달냥이도 안녕.”
이동장 안에 든 달냥이 빨리 꺼내달라는 듯, 문을 앞발로 툭툭 쳤다. 므앙.
“이게 다 뭐예요?”
거실엔 웬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므아앙. 이동장 문을 열어주자, 달냥이 상자 위로 냉큼 올라가 발톱으로 벅벅 긁었다.
“우리 광고 모델로 기용한 화장품회사에서 한 사람당 두 상자씩 선물로 보냈어. 한율이 너도 챙겨.”
“아주 오래 사용하겠네요.”
한 상자당 화장품 5종 기초 세트가 다섯 개씩 들어있었다.
“양이 많으니, 지인이나 연습생 애들한테 나눠줘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럼 일단 하나만 챙기고.”
한율은 달냥이 발톱으로 긁어 놓고 앉은 상자를 들었다. 므앙?
“달냥…?”
그때 2층에서 내려오던 길우성이 입을 틀어막고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사뿐사뿐 달려왔다.
“달냥아…!”
폴짝. 상자에 올라탄 채 옮겨지던 달냥이 한율의 어깨를 딛고 점프, 천장 아래 벽에 설치한 고양이 전용 통로로 올라갔다.
길우성이 낚싯대 장난감을 쥐고 흔들었다. 참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감격스러운 재회의 포옹을 하고 싶은데, 너무 높이 올라가서 내 손이 닿지 않는구나, 달냥아. 하하하.”
“…….”
저렇게도 고양이가 좋을까.
한율은 고개를 흔들며 방으로 들어갔다.
저 애들은 집이 없나 봐
오후 6시. 서울의 한 고기 뷔페 앞.
모자에다 마스크를 쓴 남자 넷이 모였다. 두 사람이 비장한 톤으로 대화했다.
“예약은 확실히 한 거겠지?”
“물론. 들어가자.”
그러곤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네 분입니… 아니, 네 명입니다. ‘우성과 아이들’로 예약했어요. 눈에 잘 안 띄는 구석진 자리로 부탁드립니다.”
“네, 확인됐습니다. 자리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을 따라가며 하신과 길우성이 촐싹거렸다.
“고기다, 고기.”
“이거 정말 다 마음껏 먹어도 되는 거지?”
“탄수화물만 멀리하면 괜찮지 않을까?”
“탄산은?”
“맥주도 탄산이야, 친구.”
“크으!”
누가 팀의 메인 댄서들 아니랄까 봐, 촐싹거리는 몸짓에서도 깔끔한 춤 선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여기에 ‘나 연예인이에요’라는 걸 주장하듯 새카만 마스크까지 쓰고 줄줄이 입장하니.
한율은 완언에게 조용히 물었다.
“우리 쟤네랑 따로 앉을까?”
“그럼 둘이 삐치지 않을까?”
자리는 홀과 벽으로 반쯤 분리된 공간이었다. 길우성은 의자에 가방만 툭 놓곤 소매를 걷어붙였다.
“알지? 우리 집이 예전에 고깃집 했던 거. 좋은 고기는 내게 맡겨라!”
“다들 반찬은 각자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챙겨. 채소도.”
“난 자리 지키고 있을게.”
곧 테이블이 고기와 반찬, 채소로 가득 찼다. 각자 취향껏 주문한 음료와 술도.
치익.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려놓고선 잔을 들었다. 당연히 답답한 마스크는 모두 벗었다.
“다들 투어, 음방 활동하느라 고생 많았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포상을 준단 의미로 실컷 먹자. 짠!”
“짜안.”
네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맥주를 들이켠 길우성이 두 눈을 찡그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크으!”
소주 한 잔을 단번에 비운 한율도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제는 양평에서 맥주, 어제는 부모와 와인을 마셨으니 사흘 연속 술을 마시는 셈이었다.
“우리 넷이 이렇게 밥 먹는 게 얼마 만이냐? 전에 만난 게 3월이었나?”
“응. 그리고 벌써 11월이지. 시간 왜 이렇게 빨리 가냐?”
“그만큼 다들 하루하루 열심히 산 거지.”
하신이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 언이는 말을 참 예쁘게 해. 악플이나 다는 못난이들이 보고 좀 배워야 할 텐데.”
“예쁘고 바른 언어는 이미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줬죠? 그러나 습득하지 못했죠? 이제 와서 또 배우라고 해도 배울 수 있을까요?”
“길우성 팩폭 보소. 다들 취하기 전에 사진부터 찍자.”
하신이 핸드폰을 들었다.
“이 녀석들 알아서 고개 각도랑 표정 챙기는 거 봐.”
찰칵.
카메라 렌즈를 향해 환하게 웃었던 한율은 표정을 싹 바꿨다.
“직업병이지.”
그때, 조금 떨어진 테이블 손님이 연신 이쪽을 힐끗거리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일행에게 무어라 말하곤 사진을 찍었다. 찰칵. 식당 안이 워낙 시끌벅적해서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카메라 앱의 셔터 소리는 또렷했다.
찰칵, 찰칵.
그러나 이렇게 사진 찍히는 게 워낙 익숙한 일인데다,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식당을 온 거라 네 사람은 무시했다.
한율은 하신의 잔에다 맥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너 전에 몰래 면허 따려다가 걸렸잖아. 그 뒤로 어떻게 됐어?”
지난번 길우성이 운전면허를 땄다고 자랑하자, 하신도 완언과 함께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스카이러너는 올해까지 면허 취득 금지령이 떨어진 상태였고, 하신은 회사 몰래 학원에 다니다가 매니저에게 들켜서 크게 혼났다.
“어떻게 되긴.”
하신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수강료 아깝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계속 다니고 있지….”
“반년 넘게?”
“언이는 벌써 한 달 전에 땄다고 자랑했는데, 혼자 잠잠한 거 보면 모르겠냐, 써한.”
하신이 제 가슴팍을 움켜쥐며 슬픈 표정을 과장되게 지었다.
“큭…. 비교는 하지 마라. 가슴이 찢어진다.”
치익. 한율은 집게를 들어 고기를 뒤집었다. 완언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할게.”
“괜찮아, 넌 먹기나 해. 며칠 안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
“맞아. 너 왜 이렇게 살 빠졌어.”
완언이 머쓱하게 손을 거두며 웃었다.
“그제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밥을 왜 안 먹어!”
“너 그러다 쓰러진다. 아직 어리다고 방심하면 안 돼.”
“바로 고기랑 술 먹어도 괜찮냐? 죽으로 위부터 달래야 하는 거 아냐?”
“아. 오늘 낮에 인스턴트 죽 먹기는 했다.”
“이 자식이 친구들 걱정시키고 말이야. 응?”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대놓고 그들의 사진을 찍던 남자가 불쑥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팬이에요.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와, 가까이에서 보니까 진짜 잘생기셨다.”
번지르르 내뱉는 말과 달리, 한율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에는 조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의 일행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고.
한율은 희미하게 미소 짓곤 고개를 가볍게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인은 힘들 것 같네요.”
“에이, 비싸게 굴지 마시고요. 아니, 실제로 비싸시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좀 마셨더니 말이 뇌를 안 거치고 막 나오네요. 그럼 사진은 괜찮죠?”
대답도 안 했는데, 멋대로 카메라 앱을 실행한 핸드폰을 높이 든다. 그 순간, 길우성이 벌떡 일어나 렌즈 앞으로 손을 뻗었다.
“브이~.”
찰칵.
“…….”
손만 가득 찍히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입가를 올리며 길우성을 돌아보았다.
“저기….”
“친구들과 보내는 사적인 시간이라, 사진 촬영은 곤란합니다.”
남자의 일행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동영상을 촬영하려는 모양.
“아니, 고작 사진 한 장 찍는데 뭐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요?”
“회사 방침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니, 얘가 혼나요! 팬이라 하셨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혼난다고 크게 강조했다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당황해하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동영상을 찍던 그의 일행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키득거렸다.
일행 앞에서 거절당해 창피한 건지, 남자가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다.
“씨발, 존나 비싸게 구네! 내가 인터넷에다 다 올릴 거야!”
길우성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세상엔 참 개념도, 예의도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면전에 대고 욕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안티들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도 아니다.
한율은 무슨 일 있었냐는 얼굴로 가위를 집어 고기를 잘랐다.
“거의 다 익어간다. 앉아.”
“엉.”
하신이 길우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말로만?”
“계란찜 시켜줄까?”
“응.”
“…….”
존경스럽다는 얼굴로 길우성과 한율을 번갈아 보던 완언이 호출 벨을 눌렀다. 딩동.
고기 뷔페에서 배를 잔뜩 채운 그들은 VR 게임방으로 이동, 그곳에서 놀면서 소화를 시켰다. 그다음엔 하신이 추천한 조용한 주점으로 향했다.
“내가 총싸움은 안 된다고 했잖아. 써한이 다 이긴다고.”
“우성이 너도 잘하던데?”
“야, 인터넷에 우리 목격담 떴다.”
“일단 주문부터 해. 간단히 마시고 가자.”
“네에.”
잠시 후.
쿵. 완언이 테이블에 이마를 박으며 엎어졌다.
“나 진짜 내가 너무 한심해….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언아, 취했니?”
“어…. 너희들한테도 미안하다….”
“단단히 취했네.”
“챙겨서 가자. 완언, 일어날 수 있어?”
“응….”
다행히 완언은 조금씩 이끌어주자 비틀비틀 제 발로 걸었다.
그레이트7의 숙소로 향하는 택시 안은 조용했다. 길우성과 하신 둘 다, 조금 전 완언이 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