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00즈라고 해도,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자신이 계속 함께 어울려도 괜찮은지 잠시 고민했었다는 말. 이런 고민 자체가 너희에게 실례란 걸 알아서 스스로가 더 못나게 느껴지고, 미안하다는 말.
“친구 이전에 같은 직업이니 마음이 더 복잡했겠지. 난 언이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그레이트7 숙소 앞에 도착, 그레이트7 멤버에게 완언을 넘기고 다시 택시를 타고 나서야 길우성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
“언제?”
길우성이 한율을 가리켰다.
“내가 데려온 녀석이 혼자서만 잘나가기 시작할 때. 같이 다닐 때도 얼마나 병풍 취급, 사진 촬영 방해물 취급, 선물 셔틀 취급을 받았던지.”
“사과해야 해?”
길우성이 방긋 웃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바보처럼 자주 웃는다.
“사과는 필요 없단다, 친구야.”
찰칵.
“왜 갑자기 내 사진을 찍는 거니, 친구야.”
“술기운으로 빨개진 볼에다, 눈도 조금 풀린 채 실실 웃는 얼굴이 못생겨서.”
“봐봐.”
한율은 방금 찍은 사진을 하신에게 보여주었다. 큽. 하신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나한테도 톡으로 보내주라.”
“내놔. 어떻게 나왔기에….”
한율은 슥 길우성의 손길을 피해서 00즈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우웅. 길우성이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와, 나 진짜 웃기게 나왔다. SNS에 올려야지~.”
“멈춰.”
어느새 택시는 어스래빗 숙소 앞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숙소 앞엔 사생들이 적었다.
“택시비는 톡으로 N빵하자.”
“응, 조심히 들어가.”
“다음에 보자.”
“오냐.”
한율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미리 꺼내둔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택시가 다가왔을 때부터 술렁거리며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꺼내던 사생들이 떠들었다. 얘들아, 어디 갔다 와? 너희 홍대에서 술 마시고 왔지? 다 알아.
쿵. 보란 듯이 무시하며 대문을 닫았는데도, 그들은 뭐가 좋은지 키득키득 웃었다. 아까 우성이 봤어? 얼굴 빨개져서 귀엽더라.
“써한.”
현관으로 들어오자마자 길우성이 안쓰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 애들은 집이 없나 봐….”
술주정이었다.
드륵. 거실 중문이 활짝 열리더니 박가람이 잔소리했다.
“참 일찍도 다닌다.”
달냥도 옆에서 한마디 했다. 므앙.
길우성이 신발을 대충 벗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들어갔다.
“달냥아아.”
슥. 박가람이 옆을 지나치는 길우성을 피하며 물었다.
“술 많이 마셨냐?”
“별로요. 집엔 잘 다녀왔어요?”
“엉. 감자떡이랑 오징어빵, 커피빵 잔뜩 가져왔다. 아직 냉장고에 안 넣었으니까 먹어.”
“네.”
한율은 신발을 신발장에다 정리하곤 거실을 둘러보았다. 거실엔 TV만 덩그러니 켜져 있었다.
길우성이 달냥을 안고선 뺨에다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아이, 귀여워라. 오늘은 꼭 안겨주네?”
달냥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은 안 자고 뭐 해요?”
“달냥이 혼자 여기 캣타워에 누워서 너 기다리는 것 같길래, TV 보면서 같이 기다려주고 있었지. 고양이도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
“생각은 정했어요?”
“음.”
박가람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씩 웃었다.
“사과나무를 심겠다.”
길우성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더니 실실 웃었다.
“정원에? 맛있겠다.”
다음 날, 포털사이트 연예뉴스란.
[모 아이돌그룹 사생팬 A씨, “보복 스토킹 그만둬달라” 호소]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을 인기 아이돌그룹 B의 사생팬이었다고 밝힌 A씨가 B로부터 고용된 해결사들에 의해 보복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해 화제다.
A씨는…(중략).]
-사생팬(x), 사생스토커(o)
-아이돌이 미쳤다고 사생을 스토킹하냐? 더럽고 지긋지긋해서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판에?
-사생의 기본 패시브가 뭔지 앎? 바로 자의식 과잉임. 본인들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돌한테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착각함. 우연히 눈만 마주쳐도 쟤도 나 기억하는구나, 나한테 관심 있구나, 아니면 내 관심 끌려고 저러는 거구나, 널 정말 잘 알고 이해하는 건 나뿐이야 라고 생각함.
-기레기야, 기레기야. 커뮤 글 퍼오지 말고 취재를 해라
-이거 ㅇㅅㄹㅂ 사생임. 원본 보니까 남돌이다, 멤버 중 수백억 재산 가진 애가 있다, 걔가 사주했을 거다, 여름에 매니저를 폭행죄로 고소하려 하니까 나한테 보복하려고 해결사들을 스토커로 붙여놓고 투어 떠났다<조건이나 시기 들어맞는 게 ㅇㅅㄹㅂ 뿐임
왜 사람을 불안하게 해
해외 스케줄을 마치고 막 귀국한 퍼플아워의 차 안. 기사를 보던 한 멤버가 쯧쯧 혀를 찼다.
“어스래빗도 진짜 피곤하겠다. 사생이 별의별 방법으로 괴롭히네.”
“어젯밤엔 어떤 멍청이가 고깃집에서 서한율 만나 팬이라고 했는데, 사진 안 찍어줬다고 연예인병 장난 아니라고 씹어대다가 도리어 욕먹고 글삭했다더라.”
“나 네 팬이니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갑질은 본인들이 하면서 거절하면 연예인 병 걸렸다고 욕하고. 으, 팬도 아니면서 그러는 것들 정말 극혐이야. 진짜 팬들은 기본 예의 다 지키거든?”
“언니는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송의연이 슬쩍 진은수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흐. 진은수는 일부러 바보 같이 웃었다.
“조립PC. 주문하면 바로 조립하고 최적화까지 마쳐서 당일에 가져갈 수 있게 세팅해준대. 퀵으로 배송도 해주고.”
“설마 게임 때문에 사려는 거야? 이 언니 아주 게임에 미쳤네. 나중에 게임 방송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
“그럴까? 그런데 게임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달라서….”
“그냥 해본 말이야,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은수 너 노트북 있잖아. 그런데 컴을 또 산다고?”
다른 멤버의 의문에 루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게임은 원래 노트북으로 하는 거 아니라더라. 화면이 작아서 몰입도 잘 안 되고, 사양도 낮아서 버벅거린다고. 순간의 반응 속도가 승패를 가른다나 어쨌다나.”
“매니저님, 팬분들한테 조립PC 추천해달라고 해도 돼요?”
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매니저 중 한 명이 진은수를 돌아보곤 고개를 저었다.
“너도나도 가르쳐주려고 해서 오히려 고르기 힘들어질 거예요. 차라리 조금 더 비싸더라도, 조립PC 전문 사이트의 추천 구성 모델에서 원하는 옵션으로 변경해 사는 게 나아요. 그게 대부분 호환 충돌이 안 일어나게끔 설정해놓은 거라.”
“복잡하네요.”
“아니면 주변에 게임 좋아하는 사람한테 물어도 되고. 보통 남자애들이 잘 알기는 할 텐데…. 아니다. 그냥 구성이랑 후기가 괜찮은 걸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진은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진지한 얼굴로 조립PC 사이트를 살폈다.
“…….”
루아는 말없이 그런 진은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퍼플아워 숙소. 진은수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캐리어를 방치한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한참 동안 조립PC 상품 후기를 살피다가, 본인 명의 핸드폰을 켜서 선택한 조립PC와 추가 구성품을 결제했다.
액정 상단. 전원이 꺼졌던 동안 들어왔던 부재중 전화나 메시지, 톡 알림이 끊임없이 떴지만 모두 무시했다.
‘최소 3시간 후에 도착한다니까, 그동안 정리하고 씻어야지.’
진은수는 PC와 모니터를 둘 자리부터 정리했다.
똑똑, 벌컥. 루아가 노크 직후 들어오다, 바로 앞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멈칫했다.
“아직도 정리 안 하고 뭐 했어? 메이크업도 안 지우고, 옷도 안 갈아입고.”
“이제 막 컴 고르고 결제했어요. 무슨 일이에요, 언니?”
“그냥….”
루아의 시선이 침대에 놓인 두 개의 핸드폰을 빠르게 훑었다.
루아가 진은수를 향해 입가를 올렸다.
“언제 씻나 궁금해서.”
“언니 먼저 씻어요. 저는 정리부터 하려고요.”
“그래. …아, 혹시.”
나가려던 루아가 다시 진은수를 돌아보았다.
“조언 구하고 산 거야?”
“누구한테요?”
“아무… 지인한테. 호 선배님도 PC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아서, 그분한테 조언을 구했나 하고.”
“그냥 후기가 좋은 걸로 선택했어요.”
“그렇구나. 점심은 어떻게 할래?”
“나중에 따로 먹을게요.”
“그래.”
달칵. 루아가 문을 닫고 나갔다.
요즘 들어서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느껴질까. 진은수는 속에서 일어나는 의문을 삼키곤 책상을 마저 정리했다.
한편, 루아는 진은수의 방문에 기댄 채 남자친구, 원카운트의 나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만약 조금 전까지 진은수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면 전원이 켜졌어야 하는데, 여전히 꺼진 상태다.
‘은수는 아닌가?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다른 년한테 한눈파는 게 확실한데 대체 누구랑…. 아냐. 다른 폰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은수 폰을 확인해봐야겠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히아신스 호수의 동생을 건들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번에 그가 진은수에게 함께 게임하자며 ID를 물어본 게 마음에 걸린다. 나기혁의 연락 횟수가 줄어든 것도, 잘 받지 않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고.
‘둘이 게임 안에서 만나고 있을지도 몰라.’
나기혁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의심이 된 지 오래였다. 서로 일이 바빠져 따로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도 같은 게임을 하자니, 감시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 두렵다.
하아. 루아는 깊은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대체 요즘 왜 이러는 거야, 나기혁. 왜 이렇게 사람을 불안하게 해.’
“언니, 언니.”
그때였다. 송의연이 방에서 나오더니 루아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대에박.”
“뭐가?”
“찬형 있잖아, 열애설 터졌어.”
“누구랑?”
송의연이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크리스탈 래빗의 미랑. 어제 둘이 따로 만나는 사진 찍혔어.”
루아는 미간을 구겼다.
“어제? 원카운트는 어제부터 1박 2일 동안 단체 스케줄일 텐데?”
“응? 누가 그래?”
“누구긴, 기혁 오빠가….”
대답하던 루아는 말을 흐렸다.
‘설마.’
송의연은 루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떠들었다.
“아닌데, 분명히 찬형인데. 그럼 이거 데이트 사진이 아니라, 방송 촬영 중 찍힌 건가?”
* * *
[찬형·미랑 선남선녀 아이돌 커플 탄생?! 진실은…]
-그렇다. 방송 촬영이었다고 한다.
-몇 시간 사이에 눈 뒤집혀서 악플 달고 울고불고했던 것들 단체 이불킥 각ㅋㅋㅋㅋ
-촬영 중이면 옆에 스태프들이 있었을 텐데 그걸 무시하고 데이트라고 오해한다고??
ㄴ방송국 측에서 일부러 흘린 걸지도 모르지
ㄴ최악의 홍보방식
ㄴ방송국이 아니라 최초 글쓴이가 그딴 식으로 보이게 사진 편집해서 올린 거임
-이딴 식으로 어그로 끌지 마라, 진짜
-외국 팬들은 잘 어울리는 커플 탄생했다고 난리던데ㅋㅋㅋ
-와 진짠 줄 알고 심장 철렁했네
목요일 밤. 유호를 제외한 어스래빗 멤버들은 강보배가 출연한 MBS <괴담>을 보기 위해 거실로 모였다.
길우성이 기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 나도 순간 심장 철렁했네.”
“왜? 미랑 선배님이 연애하는 게 그렇게 충격이야?”
“연애야 누나만 좋다면 상관없어. 그런데 상대가 원카운트잖아. 원카운트 팬덤이 얼마나 공격적인데. 지난번에 나기혁 열애설 터졌을 때, 그리고 같이 웹드라마 찍던 상대 배우 일 터졌을 때만 봐도….”
어으. 길우성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