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4화 (254/427)

대체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릉. 천둥소리와 비슷한 소리와 울림이 희미해졌다. 온몸을 짓누르며 괴롭히던 압박감과 호흡 곤란 증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아, 하아….”

진은수는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매니저가 크게 틀어놓은 거실 TV 소리를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흑. 불과 몇 초도 안 되는 사이, 이대로 갑자기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진은수는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거실로 나갔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언니,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소파 위로 두 다리를 편히 올린 채 TV를 보던 매니저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소리? 무슨 소리.”

“천둥소리랑 비슷한 소리가 크게 울렸잖아요. 못 들으셨어요?”

매니저는 TV 볼륨을 줄이곤 창밖을 보았다. 서울의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무슨 천둥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너 꿈꿨니?”

“아니, 분명히….”

그때 진은수의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스쳤다.

작년 말, SBC 연말 특집방송을 했던 돔구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금 전 들었던 것보다는 약하지만, 천장 혹은 하늘에서 그긍거리는 이상하고 낮은 울림이 들렸다.

‘그때도 그 소리를 들은 건 나뿐이었어. 그리고….’

당시 혼란스러워하던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서한율.

하지만 서한율과 눈이 마주친 건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언니….”

“어?”

또 나한테만 그런 소리가 들리면 어떡하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또 숨이 막히면 어떡하지? 내 몸에 큰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온갖 두려움이 마음을 불안하게 물들인다.

진은수는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며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우리 언니랑 통화 좀 할게요.”

한편 그 시각, 원카운트 숙소.

방에 처박혀 한숨만 푹푹 내쉬던 나기혁도, 진은수와 똑같은 현상을 겪고선 거실로 튀어나왔다.

“뭐야, 아까?”

어항 속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던 찬형이 돌아보았다.

“뭐가요.”

“아까 천둥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렸잖아. 못 들었어?”

“……?”

찬형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나기혁은 리더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형! 방금 그 소리 못 들었어?”

“아이씨, 깜짝이야! 뭔 소리!”

“천둥소리!”

“날씨가 저렇게 좋고 구름 한 점 없는데 무슨 천둥. 우리 몰래 술 마셨냐?”

“아니, 방금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잖아! 갑자기 숨도 못 쉴 만큼 이상한 느낌도…!”

“네가 지금 팔자 좋게 술이나 처마실 때냐?!”

그리고 한 백화점.

“……아.”

조금 전까지 웃으며 박가람의 생일 선물을 고르던 길우성이 돌연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자, 강보배와 라이언이 놀란 얼굴로 그를 살폈다.

“우성?”

“왜 그래, 우성아? 머리 아파?”

“…….”

한율은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예고도 없이 울린 게이트의 전조. 돔구장에서 들었을 때와 달리 오늘은 날씨도 맑은데, 더욱 크게 울렸다.

주위를 살피자 백화점 안은 여전히 우아하고 평화로웠다. 길우성과 자신처럼 전조 현상을 느낀 이는 보이지 않았다.

…허억. 숨을 몰아 내쉰 길우성이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방금… 엄청나게 기분 나쁜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았어?”

길우성이 그거예요

“소리?”

강보배와 라이언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한율을 돌아보았다. 한율은 시치미를 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

“아닌데. 분명히 하늘이랑 공기가 진동하는 것처럼 천둥소리 비슷한 게….”

비틀거리며 일어난 길우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평온한 백화점 분위기. 그의 얼굴이 혼란스러워졌다.

“어…?”

“요즘 새벽 늦게까지 연습하느라 몸에 무리 갔나 보다.”

“슬슬 돌아가는 게 좋겠네요.”

“아닌데. 분명….”

우웅. 길우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엄마.”

가까이에 있어서 길우성 어머니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우성아, 지금 통화 가능하니?]

“응. …엄마, 나 방금….”

-[1,217,000원.]

흠칫.

-[너 한율이한테 돈 빌렸던 거 왜 엄마한테 얘기 안 했어.]

어젯밤 방송된 <매니저의 하루>를 이제야 본 모양.

-[너 정신이 있어, 없어.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큰돈을 덜컥 빌릴 생각을 해, 어떻게! 그것도 엄마랑 아빠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엄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길우성의 얼굴이 또 다른 두려움으로 얼룩졌다.

“팀장님이 부르신다! 나중에 전화할게!”

뚝. 거짓말로 통화를 끊은 길우성이 한율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호들갑스럽게 눈을 부라리면서 부들부들. 게이트 전조 현상을 겪은 충격은 순식간에 날아간 듯했다.

“너 이 자식! 그걸 방송에서 말해…?!”

“어젯밤에 같이 방송 볼 땐 별말 없더니. 이제 와서 어쩌라고.”

“젠장, 언젠간 나도 네 TMI를 멋대로 방출해버릴 테다…!”

찰칵.

“우성, 못난이처럼 나왔다. 이제 괜찮아졌나 봐.”

그 날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

[멀쩡하다가 갑자기 내 귀에만 천둥소리 들리고 눈앞 핑 돌고 숨쉬기 힘들어졌는데 이건 무슨 병임? 진심 순간적으로 나 죽는 건가? 이런 공포 느낌]

-공황장애 같은데?

ㄴ공황장애에 환청도 동반됨?

ㄴ환청은 조현병 증상 아님?

ㄴ나 개무서워 진짜ㅜㅜ

ㄴ이명일 수도 있으니까 병원 가

-???? 나도 오늘 비슷한 일 겪었는데? 하늘에서 그긍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 크게 울리면서 몸이 못 견딜 것처럼 답답하고 숨도 못 쉴 것 같아서 존나 무서웠다가 헐떡거렸는데, 반 애들은 완전 멀쩡했음.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함

ㄴ몇 시쯤에?

ㄴ10시 조금 넘어서

ㄴㅅㅂ 나돈데;

ㄴ울 엄마도 아침에 천둥소리 못 들었냐 숨 쉬는 거 괜찮냐 묻던데.. 뭐임 대체

ㄴ?????

ㄴ잼민이들아 재미없다

ㄴ장난 아니고 지금 해외에서도 비슷한 경험담 올라오는 중임

ㄴㄷㄷㄷ 이거 미스터리 홀이랑 관련 있는 거 아니냐?

자기 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적거렸더니 역시나. 길우성과 비슷한 증상을 겪은 예비 각성자들의 경험담이 올라와 있었다.

“넌 괜찮았어?”

한율은 계나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한창 수업 시간이었던 때라, 티 안 내려고 감추는 게 더 힘들었어요. 오빠는 괜찮았어요?]

“너랑 비슷해. 멤버들이랑 백화점에 있었거든.”

계나리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정말 머지않았다는 게 실감 나네요. 장소는 정하셨어요?]

타닥. 한율은 노트북 모니터에 띄운 화면을 전환했다. 대한민국 지도가 떴다.

“어. 나중에 보내줄게.”

* * *

[어스래빗 서한율, 다음 주 <시골집밥> 뜬다!]

[어제 30일 방송된 MBS <시골집밥> 다음 주 예고편에 인기 아이돌그룹 어스래빗의 멤버이자 배우 서한율이 알록달록한 모자와 바지를 입은 채 오이를 따는 모습이 공개되며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배우 진송아, 드림래빗 박세은의 손님으로…(중략).]

“이게 뭐지?”

12월 1일 아침. 어스래빗 멤버들을 태우고 WB래빗 엔터로 향하는 차 안.

“뭐가?”

길우성이 강보배에게 인터넷 기사를 보여주었다.

“써한 이 녀석, 이거 대체 언제 촬영한 거지?”

“그러게? <시골집밥>에 나간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

조수석에 앉은 유호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한율이가 피자 광고 찍는다고 했던 날 촬영했대. 세은이도 우리랑 같은 회사잖아. 어디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 들어갈지 모른다고, 팀장님이 비밀로 하라 그랬다더라.”

“형은 그거 언제 들었어?”

“어젯밤에 예고 보고 직접 물었지?”

“그럼 그날 찍는다고 했던 피자 광고는?”

“오늘 찍으러 갔어.”

“그래서 안 보였구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차남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위장약이나 소화제는 챙겨갔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우성아, 이거 봤어? 어제 아침에 갑자기 천둥소리 비슷한 게 들리고 숨도 못 쉴 것처럼 몸이 이상했다고 그랬잖아. 그 시간에 너 말고도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들이 더 있었나 봐.”

강보배가 화제가 된 커뮤 게시글을 핸드폰에 띄워 보여주었다. 길우성의 안색이 점점 새하얗게 질렸다.

“…헐? 대체 뭐지, 이거? 나 좀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유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천둥소리? 무슨 소리야?”

“그게….”

한율의 피자 광고 촬영 현장.

피자 광고는 사르르 녹아서 쭈욱 늘어나는 치즈, 그리고 소비자의 침샘을 더 자극하게 하는 모델의 연기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치즈가 식어서 굳는 터라, 스태프들이 부지런히 피자를 데워서 촬영장은 느끼한 냄새로 가득 찼다.

여기에 맛있어 보이게 먹는 건 기본, 다양한 표정을 여러 각도로 촬영해야 하는 데다가 광고주까지 지켜보고 있어, 한율은 내내 생글생글 웃었다. 속이 느글거려 당장 게워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피자를 자주 먹는데도, 한율 씨가 촬영하는 모습 보니까 저도 막 먹고 싶어지던데요?”

“감사합니다.”

“이제 먹는 촬영은 끝났으니까, 조금 쉬었다가 갈게요.”

“한율 씨, 잠깐 인터뷰 괜찮을까요?”

“네.”

식도와 위를 괴롭히던 오전 촬영이 끝났다. 한율은 조유찬이 음료수로 위장해서 건넨 소화제를 단숨에 들이켜곤,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 한율 씨 SNS를 보면 연극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연극 무대에도 설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직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좋은 기회, 하고 싶은 재밌는 작품이 들어오면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도 드리고 싶은데요, 오늘 피자 광고를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분이 있다면?”

“우리 팀의 라이언이요. 맛있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잘 먹거든요. 형의 먹는 모습을 참고하느라 계속 떠올렸어요.”

인터뷰가 끝났을 땐 쉬는 시간도 끝. 한율은 메이크업을 고친 뒤 다시 촬영을 재개했다.

광고 촬영이 모두 끝난 건 오후 5시 즈음.

“정말 고생 많았다, 한율아. 난 먹지도 않았는데, 내내 냄새 맡다 보니까 헛배가 다 부르는 느낌이더라. 당분간 피자는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아.”

한율은 광고주에게 선물로 받은 피자 상품권을 살피며 대답했다.

“저도요. 누나, 이거 다섯 장 드릴게요.”

“고마워, 한율아.”

스타일리스트에게 반을 나눠주곤, 운전 중인 조유찬의 주머니에도 나머지를 넣었다.

“이걸로 매니지 팀 회식하세요.”

“하하…. 고맙다. 회사로 갈 거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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