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5화 (255/427)

한율은 촬영하는 동안 가방에 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포털사이트 실검 말미에 [천둥소리 미스터리홀]이, 연예 뉴스란 메인엔 원카운트 나기혁과 퍼플아워 루아 스캔들에 대한 아림 엔터 공식 입장 기사가 떠 있었다.

[[공식] 아림 엔터 “나기혁과 루아는 이미 헤어진 사이”]

한율은 그 아래에 있는 다른 기사를 클릭했다.

[배우 장미연 “순간 죽음의 공포 느껴… 내가 미친 줄”]

배우 장미연이 SNS에 쓴 경험담을 기자가 그대로 가져와 쓴 기사였다. 그녀도 어제 아침, 천둥소리 비슷한 굉음을 듣고 호흡 곤란 증상을 겪은 모양이었다.

‘이 사람도 각성하는구나.’

장미연과는 3년 전, MBS <신나는 친구들>이란 예능에 특별출연으로 나갔을 때 스치듯 만난 적이 있었다. 듣기로는 배우 이희우와 아주 절친한 사이라고.

-이 정도면 증상 겪은 사람들 전부 병원 가서 정밀 검사받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한둘이 아니던데

-이거 미스터리 홀에서 흘러나온 독성 물질에 감염된 거

ㄴ감염됐다 쳐도, 전세계에서 전부 같은 시간에 증상이 발현된다고?

ㄴ그 전에 우리나라엔 미스터리 홀이 생기지도 않았음;

ㄴ지하에 생겼을지도 모르지

ㄴ지하; 와ㅆ; 그건 생각 못 했네

-우리 반 관종 ㅅㄲ 하나도 비슷한 증상 겪었다고, 지금도 천둥소리 들리고 공기가 울린다고 지랄해서 개패버리니까 얌전해 지던데ㅋㅋㅋㅋ

ㄴ학폭이 자랑이냐 쓰레기야

-단체로 외계인 지령 받은 거다에 한 표

-일단 병원 가보셔야 할 듯

우웅. 댓글을 훑는데, 계나리로부터 톡이 왔다.

-[미국에서 어제 전조 현상 겪은 사람들 명단 추리고 조사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우리나라 정부도 조사를 검토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미스터리 홀 그리고 방공호를 짓게 한 것 때문에 경각심이 생긴 듯해영]

달리 말하면, 이는 정부가 예비 각성자의 명단을 미리 손에 넣게 된다는 뜻이다. 게이트가 열려 세상이 난리가 난 뒤에야 뒤늦게 각성자를 파악했던 ‘이전’과는 다른 양상.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

회사에 도착. 한율은 휴게실에서 메이크업을 지우고 난 뒤 어스래빗 연습실로 들어갔다. 한창 안무 연습을 하던 멤버들이 하나둘 동작을 멈췄다.

“피자 냄새!”

“뭐야, 왜 빈손이야. 피자는?”

<시골집밥>을 찍으러 피자 광고 핑계를 댔었단 사실은 들은 모양. 한율은 말없이 제 배를 툭툭 두드렸다. 박가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혼자 먹으니 맛있든?”

“유찬이 형이 소화제 안 챙겨줬으면 지금쯤 체해서 병원 실려 갔을지도 몰라요.”

“써한 너한테서 피자 냄새나니까 피자 먹고 싶어진다.”

“먹을 거면 밖에 나가서 먹어. 옆에서 먹으면 나도 모르게 한 대 때릴지도 몰라.”

“……!”

“한율이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고생했나 보다.”

“연습 바로 들어가도 속 괜찮겠어?”

“네. 옷만 갈아입을게요.”

안무 연습은 새벽 1시에 끝나, 날짜는 2일. 박가람의 생일이 되었다.

“생일 축하한다, 박가람.”

“생일 축하해요, 형.”

생일 파티는 밤에 라방과 함께 하기로 했기에, 멤버들은 가볍게 말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후후. 박가람이 생글생글 웃었다.

“내 생일 선물로 다들 뭘 준비했는지, 기대하고 있겠어.”

“옷 샀어요.”

“난 신발.”

“난 부적.”

“이런 재미도 감동도 없는 녀석들. …부적 누구야.”

숙소로 돌아간 뒤 씻고 나왔을 땐 새벽 2시가 넘었다. 그러나 한율은 곧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장난감 낚싯대를 들고 거실과 방을 오가며 달냥과 놀아주었다.

먕. 므오옭, 므륽.

온종일 무료하게 숙소를 지켰던 달냥은 신나게 뛰었다.

“한율아, 안 자?”

유호가 계단을 내려오며 물었다. 폴짝! 소파 뒤에서 자세를 낮추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던 달냥이 낚싯대에 매달린 인형을 잡았다. 먉!

“달냥이랑 조금 놀아주다가 자려고요. 형은요?”

“물도 챙길 겸…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

한율은 달냥에게 간식을 챙겨준 뒤 유호와 방으로 들어갔다. 유호는 어제 길우성이 겪었던 증상이, 앞으로 다가올 재앙과 관련이 있냐고 물었다.

“인터넷을 보니까 미스터리 홀이랑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그래서.”

한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잠든 박가람을 깨워 데리고 왔다. 나중에 따로 설명하기 귀찮아서.

“예전에 나리 씨가 그랬잖아요. 앞으로 세계 여기저기에서 전조 현상이 나타날 거라고. 길우성이랑 사람들이 겪은 것도 그중 하나예요.”

“왜 우성이한테?”

“작은 희망.”

“희망?”

잠이 덜 깨 멍하니 있던 박가람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 나리 씨가 그런 말도 했었지? 재앙이랑 함께 작은 희망도 찾아온다고.”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길우성이 그거예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해

[어스래빗 박가람 23번째 생일, 팬들과 따뜻한 나눔 나눠]

[오늘 2일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이한 인기 아이돌그룹 어스래빗의 박가람이 어스래빗 팬덤 이프림과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다.

박가람은 이프림의 이름으로 ○○어린이재단에 1억 원을 기부했으며 이프림은…(중략).]

-???: 크큭.. 이제 돈 좀 벌었으니 기부 좀 해볼까?

ㄴ박가람이 라방에서 실제로 한 말.

ㄴㅋㅋㅋㅋㅋ

-처음 보는데 1억을 기부할 정도면ㅋ 아이돌이 진짜 많이 벌긴 하는구나

ㄴ남돌에 관심 없으면 처음 볼 수 있기는 한데ㅋㅋㅋ

ㄴ데뷔 3년 지나도 정산 못 받는 애들 많아요ㅜㅜ

ㄴ월드투어 두 번 다녀오고 미국 유명 토크쇼에도 나갔던 나름 성공한 아이돌입니당ㅎㅎ

-어스래빗은 서한율이 속한 그룹이다.

ㄴ어쩐지

ㄴ아

ㄴ납득하는 거 개웃기네ㅋㅋㅋㅋ

어스래빗 숙소. 식탁에는 차남석이 끓인 소고기미역국, 멤버들의 집에서 온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박가람 씨!”

밥을 먹으며 기사를 보던 길우성이 박가람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1억 기부! 대박이다! 쩐다! 멋있다!”

“…….”

“왜 그렇게 봐?”

잠이 덜 깬 얼굴로 가만히 길우성을 바라보던 박가람이 입가를 올렸다.

“네가 더 대박이지, 막내야.”

“엉?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박가람이 싱크대로 가서 소고기미역국이 든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길우성의 국그릇에다 소고기를 더 퍼주었다. 자상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많이 먹어, 우리 막내.”

“잉? 형, 이런다고 미리 준비한 생일 선물이 더 고가의 것으로 바뀌진 않아.”

“괜찮아. 간은 잘 맞아?”

밥 없이 소고기미역국만 먹던 이건우도 의아한 눈으로 박가람을 보았다.

“소고기도 남석이가 사고, 국도 남석이가 끓였는데 왜 네가 생색 내냐.”

박가람이 이건우를 향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댁도 동생한테 잘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뭔 소리야. 난 평소에 잘하거든?”

슥슥. 소파에 앉아 달냥을 빗질해주던 한율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그 시각, 걸그룹 히아신스 숙소.

호수는 여전히 진은수의 핸드폰이 꺼진 걸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공식 입장도 내놨겠다, 이젠 핸드폰 돌려줄 때도 되지 않았나? 은수나 다른 애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나기혁과 루아의 스캔들로 잠시 난리가 나기는 했으나, 두 사람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다. 원카운트는 예정대로 컴백을 진행하기로 했고, 휴식기인 퍼플아워 멤버들 역시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른 퍼플아워 멤버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마찬가지로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숙소로 가봐야겠어.’

이틀 전, 진은수가 전화로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포털사이트 실검에 떠 있는 [천둥소리 미스터리홀], 그리고 인터넷에서 점점 부풀려지는 온갖 추측과 음모론을 보자 더더욱.

‘어제는 대본 리딩이랑 레슨,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못 갔지만.’

호수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님, 저 은수 만나러 다녀올게요. 집안일로 직접 얼굴 보고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안 돼요. 아직 그쪽 숙소 앞에 기자들이랑 너튜버, 팬들이 깔려 있어서, 지금 호수 씨가 찾아가면 괜히 이상한 추측이 더해질 수 있어요. 공식 입장과 다르게, 더 심각한 속사정이 있어서 호수 씨가 찾아갔다는 식으로요.]

“그럼 퍼플아워 매니저분한테 은수 핸드폰 돌려달라고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사람 앞에서 편히 할 얘기가 아니라서 그래요. 그저께도 통화해보니까 매니저분 앞에서 통화해야 한다고 하던데, 이건 프라이버시 문제잖아요. 은수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네, 전달할게요.]

“짜증 내서 미안해요, 매니저님. 연락이 안 되니까 조금 초조해져서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러나 5분 후. 호수는 매니저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애들 핸드폰을 다 가진 채로 외출했다고요?”

호수는 이어서 튀어나오려던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미친 거 아니야?

“아무리 잠깐이라도 그렇지, 만약 애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안 되겠어요. 저 지금 퍼플아워 숙소로 갈게요. 이건 은수 가족으로서 가는 거니까, 말리지 마세요.”

지금까지 진은수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일까. 더 안달이 났다.

“어디 가?”

급히 외출 채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자,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던 라움이 물었다.

“은수 만나러요. 매니저가 애들 핸드폰 다 챙기고 외출해서 연락이 안 돼요.”

“애들 핸드폰을 다 가지고 나갔다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외부랑 어떻게 연락하라고?”

“그러니까요. 금방 숙소로 들어갈 거라곤 하는데, 이참에 그 매니저한테도 한마디 해야겠어요. 실장님한테도 따지고. 지금이 어느 땐데 애들을 이런 식으로 관리해요. 갓 데뷔한 신인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하나 없는데.”

탁탁. 라움이 손을 털며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 혼자보단 둘이 낫잖아.”

“택시 타고 갈 건데 괜찮아요?”

“상관없어.”

택시를 타고 이동 중, 호수는 매니저로부터 퍼플아워 매니저가 숙소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행선지를 바꾸진 않았다. 다시 진은수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번엔 신호음이 가다가 끊기거나, 통화 중이란 안내만 흘러나오는 까닭이었다.

“거 딴따라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난리야! 아주 민폐가 따로 없어! 경찰에 신고해서 다 내쫓아요! 여기 사유지인 거 몰라?”

“단지 안으로 안 들어갔거든요? 조용히 있는데 왜 참견인데요! 그리고 딴따라라뇨! 그 딴따라가 사회를 위해서 수천만 원에서 몇억까지 기부도 하거든요? 아저씬 그 정도 선행한 적 있어요?!”

“어디에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네가 선행했냐?!”

퍼플아워 숙소가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 앞에선 주민과 극성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택시 출입을 막진 않아, 호수와 라움은 무난하게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어?! 호수랑 라움!”

출입문 바로 앞에서 내리자, 근처에 주차된 차량에서 창이 내려가더니 카메라 렌즈가 튀어나왔다. 호수와 라움은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왔네.”

“그러게요.”

그러나 기가 막힌 상황은 퍼플아워 숙소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진은수가 문을 열어줘서 들어가 보니, 퍼플아워 매니저가 한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쿵쿵, 철컥철컥.

“루아! 너 문 안 열어?!”

짜증이 난 얼굴로 거실을 서성거리던 송의연이 호수와 라움을 보곤 꾸벅였다. 그녀가 루아의 방문에다 대고 외쳤다.

“언니, 이러지 말고 순순히 문 열지? 뒷일 생각 안 하냐? 나중에 후회할 텐데?!”

“대체 무슨 일이야?”

“그게….”

진은수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루아의 방 쪽을 돌아보았다.

“핸드폰을 돌려받아서 언니한테 전화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루아 언니가 갑자기 내 핸드폰을 두 개 다 낚아채더니… 방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안 나와.”

호수는 어이가 없어졌다.

“미친 거 아니야? 왜 본인 것도 아니고 네 핸드폰을….”

달칵. 루아의 방문이 열렸다.

“야, 루….”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매니저가 멈칫했다.

흑. …흐윽. 눈이 발갛게 퉁퉁 부어 엉망이 된 몰골로 루아가 나왔다. 그러곤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소리 내어 울었다.

“흐아앙…! 나기혁 이 나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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