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하면 서한율을 던지고 튀면 돼.”
“…….”
직원이 낭랑한 목소리로 알렸다.
“5번 상영관 입장하겠습니다.”
“가자.”
그들은 팝콘과 음료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영관 안. 한율은 조명이 어두워진 후에야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을 가린 수상한 5인조가 신경 쓰였는지, 뒤를 힐끗거리며 돌아봤던 앞 관객과 눈이 마주쳤다.
“……!”
동그랗게 커지는 관객의 눈. 한율은 살며시 미소 지은 채 고개를 꾸벅였다. 그러자 관객도 얼떨떨한 얼굴로 웃으며 꾸벅. 그러곤 옆에 앉은 일행에게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그 일행도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
강보배가 보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던 공포 영화는, 한율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우, 길우성은 적잖이 무서웠는지 팝콘을 흘렸다며 머쓱하게 웃었고, 박가람은 뚱한 얼굴로 강보배를 바라보았다.
“예고가 다였구나, 동생아.”
하하. 강보배가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그런데 형, 내 옷은 누가 이렇게 구겨놨을까?”
상영관 조명이 환해졌다. 앞자리에 앉았던 관객들이 한율 일행을 돌아봤고, 멤버들은 다시 적당히 얼굴을 가린 채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짱짱한 사운드 때문에 더 놀란 것 같아.”
“공포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지.”
“인형 뽑기하고 가자. 아까부터 하고 싶었는데, 팝콘이랑 음료 때문에 손 어지러워질까 봐 안 했어.”
“오, 무조건 뽑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인형뽑기 기계 앞에 섰다. 한율은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후에 주차장으로 이동할게요. 가야 연습 시간 맞출 수 있어요.”
“OK. 오래 안 걸려.”
이건우가 의기양양하게 고개와 손목을 풀더니, 지갑을 꺼냈다.
잠시 후,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유호의 작업실.
“형.”
소파에 편히 누워서 핸드폰을 하던 차남석이 말했다.
“멤버들 목격담 떴어요.”
“벌써?”
차남석이 유호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제목: 방금 극장에서 ㅇㅅㄹㅂ 봤다]
[머리 작고 얼굴 작은데 스타일 좋은 애들 5명이 목도리나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우르르 몰려다님. 아이돌인가? 싶었어도 아이돌에 별 관심 없어서 첨엔 무시했는데, 걔네가 내 뒷자리였음. 영화 시작 직전에 한 번 돌아봤는데 마스크 벗는 서한율이랑 눈 딱 마주침ㅋ 머쓱하게 서로 인사하곤 영화 봄ㅋ
영화 끝나자마자 걔네 도망치듯 나갔는데, 멀리 안 가고 인형 뽑기 하더라. 나랑 내 친구도 떨어져서 구경했는데, 아이돌 포스 눈치챈 중딩들도 걔네 힐끗거리면서 구경함.
3만 원을 그 자리에서 날리는 걸 구경함.
좋은 구경이었다.
+추가. SNS에 뜬 사진.
(이미지)]
-결말 왜 이 모양
-여기 모자이크 된 거 글쓴이 너임? SNS에 올라왔던데
ㄴ(링크)
ㄴ모자이크ㅅㅂㅋㅋㅋㅋ 범죄자 같이 해놨엌ㅋㅋㅋㅋ
ㄴ연옌이라고 사진 몰래 찍고 올려도 됨?
ㄴ안 됨
-팀 반지에 가방 보니까 서한율 맞네
-멤버들끼리 정말 친한가 보다. 같이 극장에 영화도 보러 가고ㅎㅎ
ㄴ서한율 은근히 잘 돌아다님. 친한 아이돌이랑 고기도 먹으러 가고, VR 겜방도 가고, 대학로 카페에도 나타나고
ㄴ근데 학교엔 안 나옴
ㄴㅋㅋㅋㅋㅋ
유호는 게시글 하단에 추가된 사진을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봐도 우리 애들이네. 그런데 남석아.”
“네.”
유호는 핸드폰을 돌려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커뮤 글 자주 읽어?”
“아뇨. 누가 링크를 보내줘서요. 평소엔 안 들여다봐요.”
“그래, 웬만하면 보지 마. 이상하거나 뜻이 안 좋은 밈이나 말투에 물들어서, 방송에서도 실수하는 경우 있더라.”
차남석이 명심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호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모니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스피커에선 그가 조정하는 짤막한 음이 수시로 흘러나오다가 끊겼다.
차남석이 부스스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형.”
“응?”
“…….”
“……?”
불러놓곤 말이 없자, 유호는 의아한 얼굴로 차남석을 돌아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차남석이 고개를 들었다.
“저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그게….”
다시 머뭇거리는 차남석.
꺼내기 힘든 말일까. 유호는 보채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후. 차남석이 작게 숨을 내쉬곤 유호에게 물었다.
“형 혹시… 서한율이랑 가람이 형이랑… 종교 모임 같은 데에 들어갔어요?”
그런 행동 안 했어
유호는 잠시 멍해졌다.
이상한 종교 모임 같은 건 아니지만, 셋이나 둘이 모여 마나 유동을 하는 모습, 재앙 어쩌고 하는 대화를 들었다면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그런 데를 왜 들어가. 아니야.”
“정말 아니에요?”
“혹시 우리가 명상하는 모습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차남석의 눈에 의혹이 서렸다.
“단순히 명상하는 걸 보고서 제가 이러겠어요? 추운 날, 그것도 한밤중 옥상에 모여서 하는 걸 봤으니까 그렇죠. 솔직히 그 모습 봤을 때 좀 무서웠다고요.”
“그게, 한율이가 가끔은 그런 곳에서 명상하는 게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 좋다고 해서… 해본 것뿐이야. 가람이가 한율이 따라서 명상센터 다닌다는 얘기 들은 적 있지? 그 후로 가람이가 아주 조금 차분해진 것 같아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한 게, 음.”
말이 길어지니까 오히려 수상한데. 유호는 차남석의 얼굴에 드러나는 의심을 읽고선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아무튼 아니야. 지금까지 내가 만든 곡 다 걸고서 맹세할 수 있어.”
“…그렇다면야.”
그제야 차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극장에 갔던 멤버들이 돌아왔다. 유호는 단체 안무 연습이 끝난 뒤, 한율과 박가람을 작업실로 불렀다. 그리고 차남석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었다.
“하마터면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의심받을 뻔했어. 그러니 우리, 앞으로 주의하자.”
큽. 박가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제삼자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서한율이 가끔 우리 마나 움직임 본다고 어깨에 손 얹고 그러잖아. 우리는 얌전히 앉아서 눈 감고 있고. 그런데 한밤중 옥상에서 그러는 걸 봤으니.”
“그럼 제가 교주 포지션인가요.”
“차남석 앞에서 서 교주님이라고 부르면 표정 가관이겠다.”
“그러다 일 커진다, 가람아. 남석이, 농담 잘 안 통하는 거 알지?”
“흐. 그나저나.”
박가람이 신발을 벗고 소파 위로 두 다리를 편히 올려 앉았다.
“차남석 성격상 당분간 우리를 면밀하게 주시할 텐데… 명상센터는 이제 가면 안 되잖아. 옥상에서 하기엔 이젠 날씨가 너무 춥고, 차남석처럼 다른 멤버가 볼 수도 있고.”
“셋만 자꾸 모여도 의심을 사겠지. 그리고 지난번에 우성이가 그러더라.”
“뭐라고요?”
“한율이 네가 요즘 가람이랑만 다니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하다고.”
한율은 작게 한숨 쉬었다.
“애도 아니고.”
“우성이한텐 네가 제일 친한 친구잖아.”
“어쨌든, 숙소에서 따로 모여도 의심받지 않을 방법은… 간단하지 않아요?”
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가람이가 같은 방을 쓰면 되지. 원래 우리, 지금 숙소로 이사하고 나서 6개월에 한 번씩 방 바꾸기로 했었잖아. 월드투어랑 겹치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지만. 나랑 우성이, 남석이랑 보배가 별말 안 하기도 했고.”
박가람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미안. 독방을 오래 쓰고 싶단 욕심에 그만 입을 다물었어.”
“괜찮아. 실은 나도 짐 옮기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아서 말을 안 꺼냈거든. 아마 남은 세 사람도 그럴걸?”
“그럼 RMMA 다녀온 후에 방을 바꾸자고, 호 형이 제안해주세요.”
“응. 그런데….”
“……?”
“이제 명상센터처럼 다들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없는 걸까?”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리 씨한테 물어보니, 괜찮은 장소를 알아보는 중이래요.”
다음 날인 7일. 정부는 11월 30일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천둥소리 환청과 호흡 곤란 증상 등을 겪은 사람들의 자진 신고 등록 사이트를 열었다.
왠지 겁이 난다며 멤버들의 입을 막은 길우성은 등록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나 지난주에 병원 가서 피 뽑고 여러 가지 검사받아봤거든? 아무 이상도 없댔어…!”
밤 11시 10분엔 한율이 손님으로 출연한 MBS <시골집밥>이 방송될 예정이었다. 멤버들은 본방송을 편히 보기 위해 숙소로 일찍 들어왔다.
“따뜻해서 좋다.”
“온도 너무 올리지 마. 난방비 엄청나게 나온다.”
“돈 버는 이유가 뭐냐.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하게 보내려고 버는 거잖아. 그러니 이 훈훈한 공기를 즐기렴.”
달냥은 따뜻한 바닥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몸을 굴렸다. 골골. 기분 좋은 목울음 소리를 내며.
방에 있는 욕실에서 씻은 한율은 편한 옷차림으로 나왔다. 광고가 흘러나오는 TV엔 <시골집밥> 방송 로고가 떠 있었다.
“그런데 한율이, 세은이 친구로도 나간 거잖아. 방송 이후로 또 이상한 루머 같은 거 돌진 않겠지?”
“괜히 회사에서 한율이가 나가는 걸 허락 했겠니.”
“더는 이상한 소문이나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오히려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몰라.”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이나 말만 안 했다면 말이지.”
차남석의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한율을 향했다. 한율은 방바닥에서 뒹굴뒹굴하는 달냥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런 행동 안 했어요.”
“무의식적으로 했을지도 몰라. 팬들에게 했던 것처럼.”
<시골집밥> 방송이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샵에 들러 예쁘게 단장하고 갔건만, 도착하자마자 알록달록한 작업복 바지와 모자를 쓰고 오이를 따는 한율. 진송아와 나란히 걸으며 두런두런 나눈 이야기가 방송에 고스란히 나왔다.
함께 <객귀, 해>에 출연한 이윤영에 관한 언급도.
<시골집밥> 프로그램 톡창.
-사진ㅋㅋㅋㅋ 귀신 몰골 두 사람 사이 서한율
-고양이 난로에 이윤영 꽂은 게 서한율이란 찌라시 돌았었는데 전번을 모른다고?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ㅋ 이희우가 민준 빠순이들한테 테러당한 거 생각하면
-서로 번호 모르는 형제자매ㅎㅎ 우리 집 이야기네
-같이 작품 했던 사람을 PD나 감독한테 추천하는 거 드문 일 아닙니다. 별일 드라마에서 사고로 하차한 이제설이 서울구미호로 서한율 부른 거랑 비슷한 맥락임
-객귀 찍었을 때 서한율도 신인이었는데 이윤영을 영화에 꽂아줬다고? 억지도 정도껏 부리자
메인 촬영장소인 집에 도착해선 요리를 돕는 모습이 이어졌다. 박세은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토끼 남매
-새로 바뀐 번호를 모른다면 처음엔 알았다는 소리
-서한율 세은이 손 다칠까 봐 무심한 척 살피는 거 왠지 치인다
-이윤영이랑은 번호 교환도 안 하고 SNS 좋아요만 누르면서?
-같은 소속사라 학교 친구 같은 느낌이겠죠
-....자정 넘은 시간에 어둑한 복도에서 긴 머리 풀어헤치고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놀랐겠다ㄷㄷ;
-박세은이 라방에서 말하기를, 회사에서 정신 잃고 쓰러졌을 때 서한율이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머리 부딪치지 않도록 잡아줘서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이 미담 내막은 왜 알려지지 않는 거냐! 오다리 루머 꺼져!!!!
-세은이 넘 귀엽다♡♡♡
-오 진짜 무서운 썰 푼다
-떠비에도 괴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