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누군가 열린 문을 노크했다.
“안녕하세요.”
“어….”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순간 놀라거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몇 명은 ‘올 게 왔구나’란 얼굴로 조심스레 라이언을 돌아보았다.
퍼플아워의 루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라이언,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라이언은 먹던 쿠키 봉지를 손에 든 채 일어났다.
“응.”
두 사람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 복도를 걷던 아이돌이나 스태프들이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을 힐끗거렸다.
“라이언 너. 그놈이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알고 있었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알았어?”
우물우물. 라이언은 입에 넣은 쿠키를 삼킨 후에야 대답했다.
“너 그때 안 사귄다고 했어.”
“뭐?”
“작년 연말에 나한테 건우 형 스타일 물어봤잖아. 그때 나도 너한테 물었잖아. 나기혁이랑 사귀냐고.”
“그땐….”
루아가 주위를 살피곤 목소리를 낮췄다.
“어떻게 솔직히 말해. 라이언 너도 아이돌이니까 잘 알잖아. 너라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누구랑 사귀는지 사실대로 말하겠어? 어디에서 어떻게 소문이 퍼질지 모르는데?”
“그건 그래.”
“왜 그때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지려는 게 아니야. 그놈이 작년 RMMA 이전부터 날 속이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아무리 지금은 헤어졌어도, 괘씸하잖아. 분하잖아. 네가 나라고 생각해봐. 열 안 받겠어? 네 여자친구가 너랑 사귀는 동안 다른 놈이랑 바람피운 건데?”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라도 화날 것 같아.”
“그러니까 말해줘. 그때 나기혁….”
루아가 살며시 거리를 좁히며 조용히 물었다.
“유린이랑 만난 거 맞지?”
라이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기혁의 바람 의혹 현장을 맞닥뜨렸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상대는 못 봤어. 짐작 가는 사람도 없고. 작년 RMMA 스페셜 영상 찍었을 땐 나기혁이 마음에 안 들어서 놀렸던 거야. 하뉼도 마찬가지고.”
“…….”
“정말이야.”
“…….”
루아의 얼굴이 실망한 기색으로 어두워졌다.
라이언은 천천히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좋아. 하지만 이성적이어야 해. 네게 잘못한 놈 때문에 지금껏 네가 쌓은 시간까지 무너뜨릴 거야? 그놈 때문에 생긴 분노로 지금 네 인간관계랑 일까지 망가뜨릴 거야?”
“…….”
고개를 돌리는 루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머리론 너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오늘처럼 중요하고 큰 시상식이 있는 날까지 마음이 어지러울 정도로 분한 거겠지. 그런데 복수는 차갑게 해야 제맛이랬어.”
부스럭. 라이언은 루아에게 쿠키 하나를 건넸다.
“먹고 힘내. 복수도 밥심이야.”
그러곤 몸을 돌려 대기실로 향했다.
저벅저벅.
“…….”
혼자 남겨진 루아는 멍하니 제 손에 들린 쿠키를 바라보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훌쩍.
‘쿠키가 무슨 밥이야….’
* * *
오후. RMMA 최종 리허설이 끝나고 어스래빗은 호텔로 돌아갔다. 그들을 위해 일본까지 출장 온 샵 직원들에게 단장을 받고, 스타일리스트들이 준비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한율이, 우리랑 같이 입장하는 거죠?”
레드카펫 시간에 맞춰 다시 공연장으로 가는 길. 강보배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오 팀장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한 팀이잖아.”
“다행이다.”
“그래도 한율이가 MC이기도 해서, 한율이만 따로 개인 촬영이랑 인터뷰하는 시간 있을 거야.”
길우성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돈 드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줄 수 있….”
“……?”
말하던 길우성이 웃는 낯 그대로 살짝 굳었다. 고개를 돌려 차창 밖 하늘을 살피는 길우성.
한율은 의아한 눈으로 길우성을 보았다.
“왜 그래?”
“어? 아….”
길우성이 한율을 돌아보곤 머뭇거리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래.”
한편, 어스래빗의 차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원카운트의 차.
“형, 아까 리허설 했을 때…. 내 말 듣고 있어?”
원카운트 리더는 나기혁이 내미는 사과패드를 외면했다.
“양다리나 걸쳤던 쓰레기랑은 대화 안 한다.”
하. 나기혁은 한숨을 푹 내쉬곤 억울하고 화난 얼굴로 말했다.
“양다리 걸쳤던 거 아니라니까? 루아, 내가 먼저 마음이 식어서 헤어졌단 걸 인정하기 싫은 거야. 그래서 사람을 그런 식으로 모는 거라고.”
“그럼 유린이 너랑 루아, 아무 사이 아닌 줄 알았다고 말한 건 뭔데. 둘이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여자애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그건 단순히, 헤어진 이후 새로 만난 간격이 너무 좁아서, 그리고 유린이랑은 원래 허물없이 친해서 그런 오해가 생긴….”
하. 변명을 늘어놓던 나기혁은 답답하다는 듯 재차 한숨 쉬었다. 그가 리더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걔랑 아직 안 잤다고.”
리더는 한심하기 그지없단 눈으로 나기혁을 바라보았다.
“내 기준으론 마음만 통해도 바람이거든? 꺼져.”
“아, 형.”
바로 앞 좌석에 앉아있던 찬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귀가 밝은 덕에 그들의 대화가 잘 들렸다.
‘한심한 놈.’
바로 어제 연예뉴스란 메인에 걸렸던 ‘인기 남자 아이돌 A씨 양다리 의혹’ 기사는 회사가 힘을 써서 사라졌다. 그러나 너튜브에선 사이버 렉카들이 기사가 내려간 것까지 꼬집으며 비웃고 있었다.
‘본인 행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가?’
현재 아림이 고용한 걸로 추정되는 알바생들과 원카운트 극성팬들이 유린에 대한 지저분한 루머를 뿌리는 중이었다. 유린이 평소에 남돌에게 치근덕거렸다, 루아와 나기혁이 사귀는 걸 알면서도 나기혁을 유혹한 것도 모자라 루아를 비웃었다는 식으로.
정말로 유린이 나기혁과 루아 사이에 일부러 끼어든 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애초부터 나기혁이 처신만 똑바로 했었다면 이런 불미스러운 이슈가 생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뒤에서 리더가 나기혁에게 말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넌 나중에 천벌 받을 거다.”
“바람피운 거 아니라고….”
“닥쳐.”
“…….”
“…왜 그래, 갑자기?”
나기혁이 돌연 흠칫 놀라며 천장을 봤다가 바깥을 살피자, 리더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나기혁은 그런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오후 4시. <2020 RMMA in JAPAN> 레드카펫 생중계가 시작되었다. 오늘 RMMA에 처음 참석하는 신인 아이돌그룹부터 최정상 아이돌그룹까지. 다양한 팀이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해, 포토 타임과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
스캔들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원카운트와 히아신스, 아이허니도 아무 일 없단 것처럼 화사한 미소를 띤 채 입장했다. 어스래빗은 오늘 MC를 맡은 한율도 있어, 조금 더 카메라에 오래 잡혔다.
너튜브에서 실시간 생중계되는 [<2020 RMMA in JAPAN> 레드카펫 LIVE] 채팅창엔, 어스래빗 팬들이 멤버들의 이름, 그리고 어스래빗이 후보로 오른 부문 상을 함께 외쳤다.
한율이 MC를 맡게 된 소감을 말할 땐 채팅창이 폭주했다. K-POP은 잘 몰라도, 배우 서한율을 보기 위해 접속한 팬도 많은 까닭이었다. 더구나 그들을 배려하듯 능숙한 영어로도 말해주니, 자막을 기다리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는 반응도 흘러넘쳤다.
입장을 마치고 대기실로 가는 길.
크으. 길우성이 스스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게 나도 모르게 쌓인 연차란 건가. 작년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인터뷰한 것 같다.”
“야, 너도? 나도.”
이번엔 박가람과 서로를 가리키며 크으. 그러곤 그들을 찍는 RMMA 비하인드 촬영 카메라에다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안뇽~.”
“사이다 마시고 싶다.”
오후 6시. 팀에서 메인 댄서를 맡은 다섯 명의 아이돌이 <2020 RMMA in JAPAN> 오프닝 무대를 화려하게 열었다.
‘잘하네.’
백스테이지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그들의 아름답고도 멋있는 춤을 지켜보던 한율은, 스태프의 지시를 받고 메인 무대 뒤에서 대기했다.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조금 전과 결이 다른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멋들어진 목소리를 지닌 성우의 소개.
[<2020 RMMA in JAPAN> MC를 소개합니다!]
앞에 서 있던 무대 세트 벽이 갈라졌다.
[서! 한! 율!]
한율은 무수한 카메라, 동료 아이돌, 4만 명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무대로 나갔다.
…저벅. 일정한 보폭과 속도로 무대 중앙에 도착. 거대한 전광판에 부드럽게 미소 짓는 한율의 모습이 크게 비쳤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POP 최고의 음악 시상식 <2020 RMMA in JAPAN>.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영광스러운 이 자리에 MC로 서게 된, K-POP 아이돌이자 배우 서한율입니다.]
한율은 매끄러운 일본어와 영어로도 자기소개했다.
……!!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함성과 다채로운 응원봉 물결이 한율을 반겼다. 멤버들과 함께 아티스트 석에 앉아있던 라이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율을 향해 두 쌍의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멋있어!”
뮤닷과 수많은 아이돌그룹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RMMA는 최종 리허설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부, ‘남자 아이돌그룹 퍼포먼스상’ 시상이 있기 전까진.
지금부터 시작인가?
RMMA 2부 마지막을 장식할 어스래빗 공연 10분 전.
한율은 백스테이지에 마련된 임시 탈의실에서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나오자마자 샵 직원들이 달라붙어 메이크업과 헤어를 수정, 스타일리스트는 준비된 피어싱을 끼워주고 손목시계를 벗겨주었다.
“먼지 많이 마셨지? 천천히 한 모금 마셔.”
조유찬이 생수에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한율은 사레들리지 않도록 천천히 물을 마셨다.
“어스래빗, 가자!”
어스래빗과 함께 무대에 설 백업 댄서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우워어! 놀아보자!
2부 마지막 시상이 끝나고 암전된 장내. 거대한 전광판에 싱그러운 풀 한 포기가 자라더니 이내 화사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한다. 은은한 조명이 살며시 내려앉는 새하얀 피아노 앞.
직접 피아노를 치며, 그 특유의 중저음으로 의 후렴구를 감미롭게 부르는 차남석.
[네가 가둔 꿈속 Garden, 빗장 열어 지르밟는 사슬.]
[이제 갇힌 건 너야, 나의 세상.]
[갈라진 땅을 채워 스스로 달려.]
차남석이 카메라를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꺄아악!! 수만 명 관객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돔구장 전체를 울렸다. 쟤 진짜 잘생겼네. 순수하게 감탄하는 다른 아이돌의 모습도 연달아 카메라에 잡혔다.
[네 곁으로.]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로 시작했으나, 본래 은 래퍼들의 강세가 두드러진 힙한 분위기에 어스래빗 특유의 흥과 퍼포먼스를 더한 곡이었다.
쿵! 강렬한 사운드를 경계 삼아 화려한 LED 효과와 함께 강보배가 백업 댄서 군단을 이끌고 등장, 어스래빗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뮤닷 <2020 RMMA in JAPAN> 톡창.
-으어어
-RMMA는 이 맛에 보는 거지
-랩이랑 표정 연기, 분위기, 안무 대박이네
-왜 2부 마지막에 어스래빗 세웠는지 알겠다
-스케일 보소;;;
-서한율 조금 전까지 점잔 빼고 진행하던 MC 맞냐ㅋㅋㅋ 관절 부서지라 춤추고 표정 연기도 완전 미쳤는데
-중간에 입에 두 손 모으고 감상하는 여돌 누구임? 개예쁘네
-이런 미친 것들(욕아님)
-자연스럽게 Shuffler로 넘어가는 거 봐
-서우
-서한율 드라마 말고 음방에서 처음 보는데 의외로 잘해서 당황했다ㅋㅋㅋ 왜 잘하는데
-중간에 나온 여돌은 IOMU의 김서우입니다. 참고로 어스래빗이랑 같은 회사
-타팬인데 얘네 무대는 그냥 보게 됨
-노출이랑 과한 느끼함 없이 섹시한 거 쉽지 않은데 해내네
-왜 잘하냐뇨ㅋㅋㅋ 원래 아이돌이니까 그렇죠ㅎㅎ
-쪼그만 놈 라이브 고음 지린다
-토끼놈들 RMMA에서 지들 콘서트 해요
RMMA 버전으로 편곡한 과 의 7분 30초 남짓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