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5화 (265/427)

미스터리 홀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이건 국가 입장에서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러모로 악영향이 발생하므로.

그런데 생방송 도중 많은 10대 팬을 보유한 인기 아이돌이 귀를 틀어막은 채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시각, 공연장과 멀지 않은 곳에 미스터리 홀과 흡사한 형체가 흐릿하게나마 나타났다 사라졌으니.

우웅.

계나리로부터 톡.

-[이번엔 나고야 게이트 예상 지역 근처에 있던 예비 각성자들만 증상을 보였어요. 다른 지역은 잠잠했습니당. 오빠는 괜찮았어요?]

예비 각성자가 아니라서 그럴까. 솔직히 한율은 소리만 들었을 뿐, 호흡 곤란 증상은 겪지 않았다. 지난 11월 30일에도.

하지만 계나리는 그를 각성자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게이트 너머 마법이 있는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었다고.

[ㅇㅇ 학교로 사용할 만한 곳은 찾았어?]

-[넹. 후보지 다섯 곳을 추려서 메일로 보냈어용]

-[그리고 오늘 오빠 정말 멋있었어요!]

-[수많은 이프림도 오빠가 자랑스러웠을 거예요ㅎㅎ]

-[(이모티콘)]

[고마워]

-[아 참]

-[알려드려야 할 내용이 있어요!]

“……?”

다음 톡이 빠르게 이어졌다.

-[이우그룹이 1130 증상자를 따로 조사 중이에영. 직접 만나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혈액 검사나 CT 촬영 등 여러 건강 검사 결과도 공유받는다더라고요.]

-[우성이 오빠한테도 찾아갈 것 같아요.]

한율은 한숨을 쉬었다.

또 그놈들인가.

[알려줘서 고마워. 돌아가면 맛있는 거 사줄게. :)]

-[넵!!! ㅎㅎ]

한편 그 시각, 진은수는 언니인 호수가 사용하는 호텔 객실에 그녀와 함께 있었다.

“몸은 어때? 괜찮아?”

“응….”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나도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나….”

진은수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떨었다.

RMMA에서는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미스터리 홀의 형체가 나타났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때부터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음번 미스터리 홀이 나타나면…. 그게 더 또렷해지고 오랫동안 있으면…”

흐윽. 결국 진은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땐… 오늘처럼 잠깐이 아니라, 흐윽, 계속 숨 못 쉬다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 언니….”

“은수야….”

호수도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애써 외면했던 끔찍한 가정. 상상만으로도 너무 싫었다. 괴로웠다. 아직 언니로서 못 해준 것도 많은데.

‘우리 은수, 이렇게 죽기엔 너무 아까운 나인데.’

흐읍. 호수는 눈물을 삼키곤 진은수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은수야. 괜찮아. 그런 일 없을 거야. 너 안 죽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언니…. …흐아앙!”

호수는 어린아이처럼 크게 울기 시작하는 동생을 달래며 다짐하고 약속했다.

“정말이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꾹 참으며.

“언니가 어떡해서든 방법 찾을게. 너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게. 괜찮아…. 괜찮아, 은수야. 언니만 믿어.”

다시 미스터리 홀이 나타나면, 그땐 죽을지도 모른다.

진은수와 비슷한 두려움에 휩싸인 건 원카운트의 나기혁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호텔 객실에 혼자 있던 그는 깊은 한숨만 내쉬다가 핸드폰을 집었다. 가족들에겐 정말 괜찮다며 안심시켰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무서웠다.

‘이러다 10분 후에 덜컥 뒈질 수도 있단 거잖아.’

“…안녕하세요, 나기혁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선생님. 저… 유언 공증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네. 그럼 그날 로펌으로 찾아뵐게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언장은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 거지.

통화를 끊은 나기혁은 핸드폰으로 [유언장 작성]을 검색했다가,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씨발, 엿 같네.”

감정적으로 되지 않도록 현실적인 문제만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쌍욕만 나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래…. 씨발….”

나기혁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이번엔 현재 여자친구인 아이허니의 유린에게 톡을 보냈다.

[자?]

우웅.

금세 답장이 왔다.

-[ㅗ]

하…. 나기혁은 한숨 비슷한 소리를 내곤 실없이 웃었다.

그때였다.

우웅.

“……?”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나기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평소엔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루아가 바뀐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여보세요…?”

그러나 돌아온 건 굵직한 남자 목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나기혁 씨. 저는 이우그룹의….]

뚝. 나기혁은 김이 팍 새는 걸 느끼곤 망설임 없이 끊었다.

…우웅, 우웅. 또 걸려오는 전화.

삐링. 이번엔 통화 거절, 수신 차단을 누르곤 미저장된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자동 수신 차단되도록 설정했다.

대기업인 이우그룹이 회사를 통하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 연락할 리도 만무하거니와, 타이밍을 노린 사생들의 장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남자를 시켜 검찰 사칭, 안무가 사칭, 대표 사칭한 적도 있었고.

‘가뜩이나 심란하고 우울해 죽겠는데 어디서 수작질이야, 썩을 놈이.’

* * *

RMMA 다음 날인 12일 아침.

어스래빗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뮤닷 측에서 마련한 전세기를 타기 위해 주부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항공사 라운지는 인천국제공항에 마련된 곳보다 좁아, 복작거리는 느낌이었다.

“퍼포먼스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동료 아이돌의 축하 인사에 화답하곤 그나마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우성아, 샌드위치 먹을래? 아니면 수프?”

길우성이 기운 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수프….”

“응. 잠깐만 기다려.”

유호가 간단한 먹을거리가 준비된 코너로 향했다. 한율은 길우성 옆에 앉아 사과패드를 꺼냈다. 힐끗힐끗. 조심스럽게 길우성을 쳐다보는 다른 아이돌의 시선이 느껴졌다.

“써한.”

길우성이 제 손에 들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걸었다.

“오늘 달냥이 데려와?”

“어.”

“직접?”

“아니.”

“그럼 내가 데리러 가도 돼?”

“…….”

유호의 말에 따르면 어젯밤, 길우성이 유호의 객실로 찾아왔다고 한다. 만약 미스터리 홀이 다시 나타나 전보다 더 심한 증상이 찾아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라 너무 무섭다고.

말없이 길우성을 바라보던 한율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길우성이 게이트 코팅 능력을 각성할 거란 사실만 염두에 두고 있었지, 현재 전조 증상으로 그가 느낄 불안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같이 가자. 어머니한테 연락할게.”

“엉. …흐. 오래간만에 똑순이랑 밤순이, 호랑이랑 퓨마랑 사진 찍고 놀아야지.”

옆에서 강보배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나도 갈래.”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걸그룹 퍼플아워 멤버들이 라운지로 들어오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길우성이 번쩍 고개를 들더니 눈으로 누군가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시선이 마주친 진은수가 길우성에게 꾸벅 인사했다. 길우성도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그, 몸은… 괜찮으세요?”

어제 이상 증상을 보인 두 사람이 마주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조심스럽거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화를 듣는 사람들.

“네. 선배님은요? 그 후로… 괜찮으셨어요?”

“네.”

“다행이네요.”

살며시 웃는 진은수. 그러나 눈은 퉁퉁 부어 있고 안색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마침 유호가 수프를 들고 왔다.

“우성아, 수프 마셔.”

“고마워, 큰형.”

“은수야, 밥은 먹었어?”

“네, 먹었….”

불쑥. 송의연이 고자질했다.

“은수 언니, 빵 이만큼만 조금 뜯어먹고 말았어요. 혼 좀 내주세요, 선배님.”

“의연아….”

“든든히 먹고 힘내도 모자랄 판에 비실거리니까 더 걱정되잖아. 신경 쓰이고. 언니 체할까 봐, 나 약도 챙겼어. 봐.”

길우성이 유호에게 받은 수프를 진은수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아뇨, 괜찮아요. 선배님 드세요. 저는… 제가 직접 가져다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진은수는 송의연의 고자질, 그리고 자신에게 쏠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먹거리가 마련된 코너로 향했다. 멤버 한 명이 걱정되는지 함께 움직였다.

송의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이래야 말을 듣는다니까.”

그로부터 3시간 뒤. RMMA 출연팀을 태운 전세기는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입국장에는 사흘 전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우성아, 괜찮아아?!”

“얘들아, 수상 축하해! 사랑해!”

“우성 씨!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어스래빗, 사랑해!!”

“한율 씨, 이쪽 봐주세요!”

흐아앙…!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씩씩하게 걷는 길우성을 보곤 울음을 터뜨리는 팬도 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앞에 마중 나온 WB래빗 차에 탑승. 오 팀장이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숙소로 들어가서 푹 쉬세요. RMMA에서 여러분이 받은 트로피는, 회사로 가져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넵! 믿겠습니다!”

“그리고….”

띠링, 띠링.

“……?”

멤버들의 가방과 주머니에서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박가람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냈다.

“이 맑고 경쾌한 알림음은 설마…?!”

“대표님께서 RMMA 퍼포먼스상 수상을 축하하는 의미로 여러분에게 특별 용돈을, 회사에서도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습니다.”

한율도 본인 명의 핸드폰을 꺼냈다. 회사에 등록한 계좌에 적잖은 돈이 입금되었다.

길우성이 두 손으로 핸드폰을 번쩍 들었다.

“우오오…! 싸랑합니다, 대표님!”

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오동식 팀장은 어스래빗이 RMMA에서 받은 트로피를 들고 대표실을 찾았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맞이한 좌 대표는 트로피를 번쩍 들고 덩실덩실 춤추다가 우뚝, 정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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