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인 어떻습니까?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어제 이후 별다른 증상이 없다고 해서 오늘은 일단 푹 쉬라고 했습니다. 아림 매니저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진은수 씨와 나기혁 씨도 큰 문제 없다더군요. 그런데….”
“그런데?”
“이우그룹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1130 증상자를 조사하고 있는데, 협조 부탁한다고요.”
좌 대표가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사기꾼이 아니었나?”
“네?”
“회사로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이우그룹 전략기획실의… 도다리? 도 대리? 아무튼 우성이를 직접 만나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요. 처음 연락을 받은 우리 직원은 이건 무슨 수작질인가 싶어서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고요. 조금 전엔 나한테도 연락이 와서… 끊었거든요.”
“아림도 처음엔 의심했지만, 이우그룹에 확인해보니 정말로 이우그룹 직원이 연락한 게 맞았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 쪽에도 연락 오지 않을까 아림 실장에게 번호를 받았는데….”
오 팀장은 핸드폰 메모 앱에 기록해둔 번호를 내밀었다. 좌 대표는 자신에게 걸려온 번호와 대조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네요. 그런데 왜 이우기업이 1130 증상자를 따로 조사하는 건지 의문이네요.”
“그러게요. 무언가 따로 아는 게 있는 건지…. 어쨌든 우성이에게 미리 의사를 물어봐야겠습니다.”
“네. 저도 또 전화가 오면….”
우웅.
“왔네요.”
서한율의 본가. 길우성은 고양이 장난감 낚싯대를 든 채 고양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강보배는 거실 소파에 앉아, 무릎에 자리 잡고 내려갈 생각을 안 하는 ‘호랑이’를 정성스레 쓰다듬는 중.
점심을 준비하던 모친이 살며시 걱정을 내비쳤다.
“우성이,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그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율은 그릇을 꺼내며 대답했다.
“월요일에 부모님이랑 대학병원에 가기로 했대요.”
“우성이네 부모님도 걱정이 크시겠다. 나도 우리 아들.”
모친이 애틋한 눈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같은 서울 하늘에 있어도 종종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을까 걱정되는데 애가 먼 타국에서 아파하는 모습을 봤으니.”
“…….”
오래 마주보기 힘든 눈빛. 한율은 머쓱한 척 웃으며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더 자주 연락드릴게요.”
“약속이야.”
“네.”
강보배가 호랑이를 안은 채 일어났다. 웅웅 진동하는 길우성의 핸드폰을 들고.
“우성아, 팀장님 전화.”
“엉? …아얏.”
낚시 놀이 도중 어디서 한눈을 파냐는 듯, 퓨마가 길우성의 손등을 냅다 때렸다. 길우성은 솜방망이 펀치에 얻어맞은 손등을 만지작거리며 핸드폰을 받았다.
“넵, 팀장님!”
그날 늦은 오후.
한율은 길우성, 오 팀장과 함께 회사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를 찾았다. 예전에 한율이 L백화점 사장 비서인 장기백과 만났던, 길우성이 초등학교 동창들과 만났던 바로 그 카페였다. 카페 문에는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휴업]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우그룹 전략기획실 소속 도 대리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게 마음 편하실 것 같아, 가게를 한 시간 동안 빌렸습니다.”
이우그룹에서 나온 이는 도 대리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세 사람 모두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마음껏 주문하세요. 다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카페 사장은 카운터 너머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우그룹에서 적잖은 돈을 받았는지, 그는 세 사람이 제일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도 싱글벙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주 맛있게 내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커피를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준 뒤 자리를 피해주었다.
도 대리는 우선 이우그룹이 1130 증상자를 조사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미국과 중국, 태국에 나타났던 미스터리 홀. 그리고 우성 씨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벌어진 이상 현상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 이우그룹은, 기업 차원에서 여러 가지 미래 상황에 대비하고자 차근차근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길우성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어제와 같은 일을 11월 30일, 그리고 그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는지부터 시작해 평소 건강, 식습관, 가족력, 지금껏 경험한 미스터리한 일, 미스터리 홀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 생각. 심지어 최근에 꾼 꿈에 대해서도 물었다.
한율에게도 질문했다. 길우성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이한 점이 없는지.
“어제 만난 어떤 분은 어릴 적부터 몽유병이 심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여쭤보는 겁니다.”
“몽유병은 확실히 없어요. 4년 전부터 함께 살았는데, 잠결에 돌아다니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그 밖에도 이상한 건….”
한율은 길우성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격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상식 밖의 행동을 한 적은 없어요.”
“내가 성격이 이상하다고?!”
“그렇군요.”
도 대리가 사과패드에다 사과펜을 끼적거렸다. 오 팀장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금까지 만난 다른 분 중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 분은 없었습니까?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요.”
“네. 아직 스무 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심리적 불안 증세를 겪는 몇 분을 제외하고는 다들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네….”
“어쨌든 조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우성 씨에게도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재 아이돌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 홍보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잖습니까. 특히 어스래빗은 요즘 상당히 핫하고.”
길우성이 배시시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월요일에 부모님과 대학병원에 가신다고 하셨죠? 결과가 나오면 제게도 알려주시겠습니까? 물론 그냥 부탁드리는 건 아닙니다.”
“어….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아. 이 질문을 깜빡할 뻔했네요.”
도 대리가 가방에 넣으려던 사과패드를 도로 꺼냈다.
“작년 11월에 양상원이란 남자가 우성 씨 본가 담을 넘으려다 기절한 채 발견된 일이 있었죠?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
한율의 미간이 살며시 구겨졌다.
어제 RMMA처럼 언제 다시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서 이상 증세를 보일지 알 수 없으므로, 길우성이 이우그룹 사람과 만나는 데엔 부정적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나올지, 어떤 질문을 던질지 궁금해 이 자리에 함께 나왔다.
그런데 작년에 있었던 양상원 일을 끄집어낼 줄이야.
그 사건은 아직 경찰이 밝히지 못한 의혹 몇 가지가 남은 상태였다. 양상원도 시퍼런 귀신 눈깔을 한 여자에게 당했다느니 떠들기도 했고.
길우성이 고개를 기울이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이번 일이랑 무슨 상관이….”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상사분이 꼭 물어봐달라고 하셔서요.”
도 대리가 고개를 돌린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쪽팔려 죽겠다는 얼굴로.
“판타지답다나 어쨌다나….”
“네?”
* * *
한율과 길우성이 숙소로 돌아온 건 저녁 7시쯤. 마침 멤버들이 배달시킨 저녁이 막 도착해, 두 사람은 손만 씻고 식탁 앞에 앉았다.
유호가 말을 꺼냈다.
“우리 원래 6개월마다 방 바꾸기로 했었잖아. 조금 늦기는 했지만, 바꾸자.”
툭. 길우성의 젓가락에서 고등어 조각이 떨어졌다.
“나랑 같이 지내는 게 싫어, 큰형…?!”
박가람이 유호를 거들었다.
“찬성. 솔직히 계속 독방 쓰고 싶기는 한데, 양심이 아파서 더는 안 되겠다. 우리,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종종 있잖아?”
“박가람 징그러워.”
“뭐! 다 성인인데 뭐!”
“뭘 생각했길래 이렇게 격한 반응이야? 기특한 모습이 징그럽다고 한 것뿐인데.”
“…….”
“가람 귀 빨개졌다.”
“그럼 제비뽑기 상자는 제가 준비할게요.”
“뽑는 것도 네가 해라, 서한율.”
박가람이 제 두 귀를 잡은 채 진지하게 말했다.
“공정하게.”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정하게.”
한 시간 뒤. 한율의 속임수 제비뽑기로 방 배치가 바뀌었다.
1층의 두 번째로 넓은 방은 이건우와 라이언이, 독방은 차남석이 사용하게 되었다. 2층의 넓은 방은 유호와 박가람, 나머지 두 독방은 길우성과 강보배.
“응? 호 형만 방 그대론데 괜찮아?”
“괜찮아. 너희들 짐 옮기는 거 도와줄게.”
“뭐지? 오히려 좋아 보이는…. 진짜로 나랑 방 쓰기가 싫었던 거야, 큰형?! 배신이다! 섭섭하다!”
“오해야, 우성아.”
“가람이 형, 나랑 방 바꾸자! 매일 큰형 괴롭힐 거다!”
“싫다, 인마.”
“자자.”
짝짝. 이건우가 손뼉을 쳤다.
“정해졌으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입시다.”
어차피 내일도 쉬는 날이지만, 더 마음 편히 쉬기 위해 멤버들은 곧바로 움직였다. 한율도 멤버들의 방 이사를 도왔다. 달냥은 활짝 활짝 열리는 옷장에 들어가 털을 묻혔으며, 누군가는 노동요랍시고 신나는 노래를 2배속으로 틀었다.
“허억, 계단 오르내리는 게 제일 힘들다….”
“계단 내려갈 때 특히 조심해. 무릎 다치기 쉽다.”
“아침에 구석에 쌓인 먼지도 좀 닦자.”
“한밤중에 이게 무슨….”
“내일은 각자 새로운 방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해보자고. 움직여!”
한밤중 숙소 내 이사는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마무리되었다. 박가람이 뿌듯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보배의 이어폰도 다 찾고. 보람찬 이사였다.”
“새것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쉽네.”
“이건 나 쓰고, 보배 네 건 새 걸로 사줄게.”
“정말?”
박가람이 코 밑을 슥슥 문질렀다. 후후.
“우리 오늘 용돈이랑 보너스 두둑하게 받았잖니. 내일 직접 매장으로 사러 갈까?”
“응!”
“나도! 쇼핑!”
“층 바꾼 사람들, 욕실에 있는 개인 물건도 다 옮겼어?”
“아, 맞다.”
“오늘은 잠 잘 오겠다.”
한율은 보이지 않는 달냥을 불렀다.
“달냥.”
“써한, 그렇게 옆 사람 부르듯 작게 부르면 달냥이가….”
므아아앙. 달냥이 요란하게 대답하며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 내려왔다.
“…오네.”
모태 집사인 강보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의 청력은 개보다 뛰어나단다, 우성아.”
“알고 있었는데 깜빡 잊었었어. 달냥이, 가끔 우리 말 무시하잖아. 못 들은 척하고.”
“그거야 고양이 마음이지.”
“내일 쇼핑하러 가는 사람들, 뭐 타고 갈 거야?”
“글쎄.”
박가람이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달냥을 품에 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내일 약속 있어서 안 돼요.”
“그래. 호 형 데려가는 수밖에 없겠네.”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럼 전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어제랑 오늘 수고했다, 한율아. 잘 자.”
“나도 이만 자야겠다.”
“잘 자요.”
“다들 안녕히 주무십쇼.”
한율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책상 앞에 앉자 달냥은 그대로 한율의 무릎에 자리 잡았다. 노트북을 열어 계나리가 보낸 메일을 열었다.
‘우선 새로운 학교로 적합한 곳이….’
다음 날. 주인을 잃은 SNS 계정 수천 개와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에 정체불명의 세계 지도가 올라왔다. 해당 지도에는 붉은색과 파란색, 노란색, 회색으로 된 점이 곳곳에 찍혀 있었다.
-뭐지??? 파란색 점은 미국이랑 중국, 태국에 나타났던 미스터리 홀 위치랑 똑같은데?
-서울에도 빨간색 점이랑 회색 점 하나씩 찍혀 있다. 이거 뭐임? 일본 나고야에도 빨간색 점 찍혔는데?
-어떤 잼민이가 장난치나 보네ㅋ
ㄴ잼민이가 SNS 계정 수천 개를 확보해서 동시에 글을 올린다고?
-이 지도 다른 나라에도 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