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도 게이트는 끊임없이 괴물을 뱉어냈다. 쩌쩍! 쩡! 게이트로 인해 뭉그러진 건물에 굵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오늘이 겨우 시작이잖아요. 벌써 마력을 낭비하면 되겠어요?]
-[무… 슨 소리야! 저렇게 괴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지금 이놈들부터 안전하게 처리해야 나중도 있는 거 아냐?]
-[그렇게 할게. 즉석에서 주변 마나를 대충 쓸만한 마력으로 정제시켜 그 힘만 불어넣으라는 거지?]
-[해원이 형….]
-[네. 괴물들은….]
두두두. 멀리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헬기 소리가 들린다.
-[게이트가 닫히는 즉시, 제가 처리할게요.]
서울 도심에 가짜 게이트가 생성된 지 25분.
경찰들과 소방관들이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떨어질 건물 잔해나 괴물에 대비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게이트가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소멸하여 사라졌을 때였다.
…키에에엑! 건물 잔해와 괴물들을 가둔 반투명 구체 안이 돌연 화염으로 휩싸였다. 불타는 괴물들의 끔찍한 비명이 새벽하늘에 절절히 울려 퍼졌다.
두려움에 잔뜩 질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 그들의 눈에 불에 탄 채 떨어지는 무언가가 비쳤다. 코뿔소와 닮았지만, 굉장히 날카롭고 뾰족한 긴 꼬리를 지닌 괴물이었다.
“헉…!”
“피해!”
“모두 충격에 대비해!”
쿠웅! 육중한 무게가 낙하한 충격으로 지면이 울리고 파편이 튀었다. 고약한 탄내도 훅 퍼졌다.
쿨럭, 쿨럭. 기침하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괴물이 떨어진 곳을 살폈다.
“대체 저게….”
…크륵, 크르륵….
불에 타다 만 채 떨어진 괴물은 괴로운 듯 사지를 꿈틀거리며 입으로 거품 섞인 피를 토해냈다. 초점이 흐릿해지는 새빨간 눈으로 멀찍이서 저를 살피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힘없이 입을 벌린다.
…크륵.
쿠웅, 쿵!
푸른색 구체 안에 있던 건물 잔해가 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몇 시간 후 아침.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그 사실은 묻어도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발생한 미스터리 홀은 그 자리에 생겨났을 뿐, 아무런 물리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안에 비치는 괴물들도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미스터리 홀을 국가적인 실험이나 음모, 거짓으로 여기며 의심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그러나,
[[속보] 오늘 새벽 서울 한복판에 미스터리 홀 발생]
[서울 한복판 미스터리 홀 출현! 인명피해는 없어]
[미스터리 홀 발생 건물 붕괴 위험! 주민 대피 및 접근 금지령]
[미스터리 홀 관련 신고 수백 건]
[미스터리 홀 목격자 A씨 “떨어진 괴물, 건물 파편 잔해에 깔려 있어”]
[서울 발생 미스터리 홀, 13일 공개된 지도와 일치해]
[미스터리 홀 지도 빨간색, 위험 표식이었나]
이번엔 건물이 박살 나고 괴물이 떨어졌다. 고약한 탄내도 풍겼다.
실체화된 미지의 공포.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전부 봤는데 찐이더라
-ㅋㅋㅋㄱㅋㅋㄱㅋ무서우니까 웃음만 나와ㅅㅂㅋㅋㅋ
-미스터리 홀 우리 회사 근처임. 일단 출근은 했는데 다들 일 집중 못 하고 창밖만 수시로 살피고 있음
ㄴ일요일인데 출근했다고?
-미스터리 홀 감싼 파란 구슬은 머임? 꼭 미스터리 홀에서 튀어나오는 괴물 막으려고 생긴 것 같던데
ㄴ구슬치곤 크기가 어마어마하지 않냐
ㄴ미스터리 홀 사라지자마자 그 안에서 괴물 소각되는 거 보고 소름
ㄴㅇㅂㅈㅅ는 실존했던 거임 지도 뿌린 것도 거기 소행임
-미스터리 홀 발생했을 때 가까운 건물 옥상에 사람들 그림자 보였다가 사라졌다던데
-이번엔 1130 증상자들 조용하지 않았냐?
“다친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스래빗 숙소. 멤버들은 거실 TV 앞에 모여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가족들의 괜찮냐는 전화를 받고 깬 뒤부터 쭉.
“지금 이거 현실 맞지?”
“어….”
“충격받아서 실신한 사람이 수십 명이래….”
“…….”
유호와 박가람은 말없이 뉴스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살폈다. 밤새 고생한 데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무척 피곤한 얼굴이었다.
우웅. 한율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어머니.”
흠칫. 유호와 박가람이 한율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
“…….”
“…네, 여긴 괜찮아요.”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한율을 살피곤 어색한 동작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몇 시간 전, 결계 안에 갇힌 괴물들을 불태워 없앤 뒤부터 한율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낯섦, 미약한 두려움, 혼란. 그 외에도 다른 복잡한 감정이 읽혔으나, 아직 차분히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냥 두는 중이었다.
“한 시간 후에 집으로 갈게요. …괜찮아요. 오늘은 연습 없거든요. 함께 가고 싶은 곳도 있고. …네.”
한율은 통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한 얼굴로 뉴스를 보던 길우성이 물었다.
“집에 가?”
“어.”
“밖에 나가는 거 안 무섭냐? 갑자기 저런 게 또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가는 건데.”
“아.”
길우성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나도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유호가 길우성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팀장님께 말씀드려서 오늘 내려갈래? 어차피 오늘 일요일이라 연습 없잖아.”
“그럴까? 비행기표 있나 모르겠당.”
한율은 방으로 들어가 말끔하게 씻고선 외출 준비를 하고 나왔다. 므앙. 달냥이 어디 가냐는 듯 졸졸 따라왔다.
“달냥. 너도 같이 갈래?”
므앙.
“그래.”
소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남석이 작게 웃었다.
“고양이랑 대화가 통해?”
“척하면 척이죠.”
한율이 방에서 이동장을 가지고 나오자, 달냥이 스스로 안으로 들어가 자리 잡았다.
“그럼 전 집에 다녀올게요.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어. 조심히 다녀와.”
유호와 박가람도 살며시 손을 들었다.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올 때 맛있는 밤빵.”
“네.”
한율은 차고로 이어지는 문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박가람이 손을 내리며 유호에게 속닥거렸다.
“지금 보니 달냥이도 수상하다. 아무리 봐도 절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야.”
“…음.”
“……?”
바로 옆에 있던 차남석은 의아하게 두 사람을 보곤 시선을 돌렸다. 미스터리 홀 발생 현장에 나간 리포터가 다급한 어조로 떠든다.
[조금 전, 건물 파편 잔해를 실은 마지막 트럭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괴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집으로 간 한율은 모친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함께 차에 탔다. 모친이 뒷자리 이동장에 얌전히 누운 달냥을 보며 우려를 표했다.
“달냥이 괜찮아? 차에 오래 타면 스트레스받을 텐데.”
“괜찮아요. 저랑 외출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참 특이한 고양이야.”
므앙.
몇 시간 동안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조부모 댁 뒷집 앞.
“여기는 왜…?”
모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한율은 달냥에게 산책용 하네스와 줄을 채우곤 바닥에 내려주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철컹. 한율이 그 집 대문을 열쇠로 열자, 모친이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이 집 열쇠를 왜 율이 네가 갖고 있어?”
“지난번에 제가 어머니께 물었었잖아요. 우리나라에도 미스터리 홀이 나타나면 어떡하시겠냐고.”
“그랬지…?”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하던 모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이 집을 산 거야?”
“아니요.”
한율은 장난처럼 미소 지었다.
“정말로 한국에도 미스터리 홀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아버지가 은퇴하면 고향에 집 짓고 느긋하게 전원생활 즐기고 싶다 하셨잖아요. 그래서 내년 설에 내려오면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고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마음이 초조해져서….”
한율은 대문을 활짝 열었다.
“이참에 보여드리려고요.”
“어머.”
모친은 놀란 표정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림처럼 예쁘게 단장된 2층짜리 전원주택이었다. 별장만큼 넓진 않지만, 화단과 텃밭 그리고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야외 놀이터까지 마련했다.
“사실은 외조부모님 댁 근처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마침 이 집이 매물로 나와서요. 괜찮으시죠?”
“당연히 괜찮지!”
“아버지 명의로 샀는데.”
“잘했어, 율아. 잘했어.”
모친이 대견하단 얼굴로 웃으며 한율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다가 안았다. 한율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 아들, 정말 언제 이렇게 다 컸어. 우린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해준 게 없으시다뇨.”
한율은 옅게 미소 지었다. 머뭇거리던 그의 손이 모친의 등을 살며시 감싸며 마주 안았다.
“두 분 덕에 제가 이렇게 잘 컸는걸요.”
* * *
-[뭐 하느라 여태껏 전화를 안 받아!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
스타믹스 JE의 집. 오늘 새벽에 귀가하자마자 잠들었던 그는 환한 대낮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리고 뒤늦게 핸드폰을 찾았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지금 너희 집 도착 5분 전이거든?!]
“죄송해요. 새벽에 겨우 잠들었다가 이제야 일어났거든요. 밥은요?”
-[네가 전화를 안 받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니? 서울에 그 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보고 내가 얼마나…!]
JE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소곳하게 앉았다.
“죄송합니다. 저 씻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안전 운전하면서 오세요.”
-[…알았어. 찬거리 사서 갈게.]
“네.”
통화가 끝났다. JE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침실을 나왔다. 그러다 볕이 잘 드는 창가 앞에 길게 축 늘어져 있는 구동을 발견.
JE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구동아?”
JE는 한걸음에 구동에게 달려갔다. 쫑긋. 구동이 아래로 축 처진 귀를 움직이더니 JE를 향해 뒹굴 몸을 돌렸다. 끼웅?
“…야.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구동이 추울까, 어젯밤 나가기 전 거실 보일러를 따뜻하게 틀었다. 새벽에 들어왔을 때도 온도를 낮추는 걸 깜빡 잊고 잤더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던 모양.
“그런데.”
JE는 구동을 쓰다듬다가 멈칫했다.
“너 좀 살찐 것 같다?”
더 쓰다듬으라는 듯, 구동이 앙증맞은 두 앞발로 JE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
끼웅?
“…에이씨, 왜 이렇게 귀여워.”
JE는 아예 자리 잡고 앉아 구동을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