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래빗 엔터테인먼트.
오 팀장이 어스래빗 연습실로 찾아왔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하지만 나라가 미스터리 홀과 괴물로 인해 뒤숭숭한 상태라,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 라방은 금지입니다.”
“그럴 수가!”
“이틀 후 잡힌 KBC <뮤직뮤직 대축제>도 취소될 수 있으니, 그것도 염두에 두세요.”
“팀장님.”
라이언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 라방이 금지면, 조용하고 엄숙한 크리스마스 파티 라방은 괜찮아요?”
“네.”
“그럴 수가!”
“그리고 한율아.”
“네.”
오 팀장이 담담하게 알렸다.
“다음 주 31일에 열리는 우수상 후보에 올랐다.”
“네.”
파랑 요정 서한율
안무 연습을 끝내고 쉬는 시간.
한율은 어제 얘기한 대로 1130 증상자 관리센터에 전화했다.
“수고하십니다. 증상자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다가 특이사항을 발견한 것 같아 알려드리려고요.”
-[건강 문제인가요?]
“건강 문제라고 하기는 그렇고, 2019년 12월 29일에도 지금 1130 증상자들이 똑같은 이상 현상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미스터리 홀 지도에 표기된 돔구장에서….”
-[죄송하지만 선생님, 미스터리 홀 관련 문의는 경찰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아직 말 다 안 끝났는데.
그러나 한율은 그런가 보다 하고 대답했다.
“네.”
112로 전화.
-[죄송하지만 신고자 분, 1130 증상자분들만 겪은 일이라 하셨잖아요. 그러니 1130 증상자 관리센터로 연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선 미스터리 홀 관련 문의라고 경찰에 말하라던데요? 미스터리 홀 지도에 표기된 돔구장에서 겪은 일이라고요.”
-[네. 하지만 그 일을 겪으신 분들이 1130 증상자시잖아요. 그러니 그쪽에 문의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미스터리 홀 담당 기관은 어디인가요?”
-[일단 미스터리 홀 관련 신고는 저희가 받고 있습니다.]
한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증상자 이야기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다시 1130 증상자 관리센터로 연락했다. 조금 전과 다른 상담사와 연결됐다.
“작년 12월 29일 돔구장, 그다음 11월 30일, 12월 11일 나고야. 늘 같은 사람에게만 증상이 나타나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세 번 다 직접 겪으신 건가요?]
“네. 저를 포함해 네 명이 세 번 다요.”
-[12월 29일 돔구장, 11월 30일, 12월 11일 나고야. 네 분이 늘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함께 계셨단 말씀이신가요?]
“11월 30일은 빼고요.”
-[…….]
1130 증상자가 몇만 명에 한 명꼴인데, 늘 함께 다니는 무리에서 넷씩이나 나온다고? 날짜랑 장소가 딱 맞아떨어지기까지?
이런 의심이 깃든 듯한 잠깐의 침묵.
“저희가 아이돌이거든요. 작년 12월 29일 돔구장에서 열린 SBC 연말 특집 방송, 올해 12월 11일 나고야에서 열린 라인업에 함께 올라서 동선이 겹쳤어요.”
-[…아. 지금 문의하시는 선생님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서한율입니다. 아직 사이트에 신고 등록은 하지 않았어요.”
-[…….]
또다시 찾아온 잠깐의 침묵.
-[…서한율 님이요?]
“네.”
-[다른 세 분 성함은요?]
“나기혁, 길우성, 진은수…가 아니라.”
한율은 진은수의 본명이 최은수란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렸다.
“최은수요.”
-[선생님 주민등록번호랑 연락처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율은 내친김에 1130 증상자 등록까지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지 5분. 1130 증상자 관리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서한율 님이 문의하신 내용 검토 결과, 미스터리 홀 특별조사위원회 소관인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안내해드리는 번호로 다시 문의를….]
“…….”
이번엔 미스터리 홀 특별조사위원회로 전화를 걸어, 다시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전했다. 그러자,
-[죄송하지만 현재 미스터리 홀 관련 허위 신고가 많아, 경찰서를 통해 서면 접수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신분증 지참하시어….]
이럴 거면 처음부터 이야기를 듣지나 말든가. 끝까지 다 말하게 해놓고선.
“1130 증상자 관리센터에서 직접 이곳으로 문의하라고 번호 주셨는데요.”
-[네. 조금 전 말씀하신 내용을 상세히 서면으로 기록해 가까운 경찰서 통해 접수해주시면, 그때 내용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은 1130 증상자 관련 문의 같다고…. 아니에요. 수고하세요.”
이게 그 유명한 민원 뺑뺑이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나기혁한테 미룰걸.
한율이 뒤늦게 후회하며 나갈 채비를 할 때였다.
우웅.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전 통화한 번호에서 뒷자리 하나만 달라, 한율은 전화를 받았다.
“네.”
조금 전과 다른 중후한 목소리.
-[서한율 님 되십니까? 미스터리 홀 특별조사위원회 김찬수라고 합니다. 조금 전 미흡한 안내를 드리게 되어 우선 사과드립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 * *
이우그룹 전략기획실.
이채욱은 놀란 얼굴로 도 대리에게 물었다.
“서한율도 1130 증상자라고요?”
“네. 조금 전 미스터리 홀 특조위에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1130 증상자 관리센터에도 전화상으로 신고 등록을 마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있는데….”
도 대리는 서한율이 두 기관에 말한 내용을 고스란히 전했다. 이채욱은 턱에 손을 댄 채 중얼거렸다.
“우연이 반복되면 절대 우연이 아닌데….”
소파에 편히 드러누워 있던 이채환이 도 대리를 째려보았다.
“도 대리. 네 상사는 난데 왜 채욱이 쪽만 보면서 보고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무심결에.”
“뭐? 무심결?”
“형님, 이게 우연일까요?”
“그럴 리가. 1130 증상자한테 뭔가가 있는 거야. 두고 봐. 우리가 조사한 게 헛되지 않….”
“서한율은 계나리와도 아는 사이입니다. 따로 교외로 나가 밥을 먹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요.”
“그야 계나리가 토끼 친구들이랑 가까워지기 위해서 단신으로 악당들을 물리쳤으니까?”
“이해원에게 지금 거처를 제공한 것도 서한율이고.”
“둘이 그만큼 친한가 보지.”
이채욱이 진지하게 의문을 표했다.
“왜 둘이 친할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마음이 잘 맞나 보지.”
“서한율은 아버지가 방송국 국장에, 어머니는 여러 부동산을 소유한 금수저 집안 출신입니다. 서한율 본인은 이미지가 생명인 아이돌이고요. 그런데 스폰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연예계를 떠난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고요? 그런 좋은 집까지 혼자 살게 내어주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형님, 이해원이 초능력자라면서요. 그럼 다른 사람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명상센터에 드나든 인원 전부, 단순히 친목 모임이 아닐지도 모른단 소립니다.”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지금까지 내 추측에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일 땐 언제고.”
슥. 이채욱은 그에게 사과패드를 내밀었다.
“서한율도 보통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채환은 가만히 사과패드에 띄워진 영상을 보다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미친?!”
다음 날인 25일 밤, 어스래빗 숙소 옥상.
“괴물도 사라지고 미스터리 홀도 닫혔지만… 서한율 이 녀석, 이번엔 이상하리만치 관심 없어 보이지 않아? 아무리 이우그룹이 눈에 불을 켠 채 감시 중이라고 해도 말이야. 응? 어떻게 생각하냐, 서한율아.”
박가람과 함께 핫초코를 마시던 한율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본인 앞에 두고 남 험담하는 것처럼 말해요.”
“이게 바로 앞담이란 것이다.”
까악.
“저 까마귀 친구는 이름이 뭐니?”
“안 지어줬는데요.”
“매정한 주인이로고.”
“주인 아니에요.”
“그런데 슬프다. 즐거워야 하는 크리스마스에 가족이랑 모여도, 친구들이랑 모여도, 애인끼리 만나도 미스터리 홀이랑 괴물 얘기만 나눌 것 같다는 게.”
“그렇게 불안감을 나누면서 현실적인 대책까지 논의하게 되는 거죠.”
“한율아, 박가람이.”
이건우가 옥상으로 나오며 두 사람을 불렀다.
“조용하고 엄숙한 크리스마스 파티 겸 차남석 생일 파티 시작하자.”
1층 거실. 티 테이블 가운데에 화려하고 큰 케이크가 놓였다. 케이크엔 숫자 22 모양을 한 초도 꽂혔다.
오래간만에 단체 라방 시작.
“안녕하십니까.”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어스래빗, 인사드립니다.”
-기다렸엉ㅠㅠ
-이게 얼마만의 단체 라방
-남석아 생일 미리 축하해♡♡♡♡
-남석 생일파티는 항상 크리스마스 파티랑 함께해서 슬퍼ㅜㅜ
-메리 크리스마스! 차남석 생일 축하해!
-서한율 tv Mu 드라마어워즈 우수상 가자~~~~~~~
어스래빗 멤버들은 너무 시끌벅적하게 하지 말라는 오 팀장의 당부를 떠올리며,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고 채팅창을 보면서 잡담을 나눴다. 채팅창에는 당진 미스터리 홀과 길우성의 건강을 걱정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저는 이번에도 멀쩡했어요. 20일에도 괜찮았고, 22일 밤에도 괜찮았고. 하지만 미스터리 홀이 생겼던 지역에 거주하시거나 직장에 다녔던 분들 생각하면….”
“안타깝죠.”
한율도 뻔뻔스럽게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밤늦게 일하시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으신 거잖아요. 정말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다친 분들이 없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응.”
“…저희 재난 대비요? 일단… 구급상자가 여러 개 있어요. 아주 바쁠 땐 병원에 못 가니까, 기본적인 상비약을 늘 넉넉하게 준비해두거든요. 안무 연습하다가 다치는 일도 있어서 소독약이랑 파스, 붕대 같은 것도.”
“비상식량으로 이건우 형이 사다 둔 닭가슴살이 잔뜩… 으.”
-박다람 말하다가 질색해ㅋㅋㅋ
“저희는 괜찮으니까, 이프림 여러분들 비상약품이랑 식량 잘 챙겨두세요. 아, 소화기도요.”
“소화기도 여차하면 무기로 쓸 수 있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시야 방해하는 용도로 쓰던데.”
“그러다 정말로 소화기가 필요할 때 사용 못 할 수도 있잖아. 호신용 무기는 따로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애들 진지하게 얘기 나누는 거 보니까 진짜 미스터리 홀에서 괴물 나온 거 실감 난다ㅜㅜ
“아 참, 저 고백할 거 하나 있어요. 고백이란 거창한 말까진 안 써도 될 것 같기는 한데, 길우성이 꼭 알려야 한다고 해서요.”
“뭔데?”
“그저께 저랑 길우성이랑 아림 엔터 다녀왔잖아요. 1130 증상자끼리 만나서 편히 얘기 나눠보자고, 기혁 선배님이 길우성 초대해서. 가서 퍼플아워 진은수 님이랑 히아신스 호수 선배님도 만나고.”
“응.”
“나 그때 써한이 ‘나도 같이 가자’ 그래서 ‘역시 친구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건 친구밖에 없구나’ 쪼금 감동했거든? 그런데.”
한율을 바라보는 길우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써한도 11월 30일이랑 RMMA에서 소리 들었대.”
“……?”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율을 바라보는 멤버들. 박가람과 유호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작게 한숨을 쉬었다.
-????
-???????
-지금 한율이도 1130 증상자라고 말하는 거죠?
-다른 애들 벙찐 거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