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9화 (289/427)

“하하하.”

굳게 닫혀있던 신부 대기실 문이 열렸다. 멤버들은 신랑 신부 가족들이 먼저 인사하는 걸 기다렸다가, 신부 친구가 들어가도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을 때 조유찬과 함께 들어가 인사했다.

“형수님, 우리 유찬이 형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때문에 출장이 좀 잦을 거예요. 그래도 허튼짓 못 하도록 감시 잘할 테니까, 안심하세요.”

“허튼짓이라니. 너희만 무사하면 나도 무사하거든?”

신부 대기실을 나온 뒤엔 하객들의 자리 안내를 도왔다. 하객들의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기도. 신부 측 하객과 사진을 찍을 땐 조유찬을 잘 부탁한다는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우리 유찬이 형 잘 부탁드립니다.”

“…어? PD님 안녕하세요.”

조유찬에게 청첩장을 받고 온 하객 중엔 방송국 PD나 작가도 있었다. 그중 어스래빗 멤버들을 놀라게 한 하객이 있었으니, 바로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뮤닷 <락뮤닷>의 강정진 PD였다.

작년 RMMA에서 한율이 MC를 하기로 했을 때, RMMA 총 연출을 맡았던 그와 자주 미팅하다 보니 친해졌다고.

“안녕하십니까. …결혼 축하해요, 유찬 씨.”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PD님.”

그 외에도 영화 <고양이 난로>의 부윤방 감독, 드라마 <별☆일없는 집>의 용인주 PD와 <서울 구미호>의 오준기 PD가 차례차례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유찬이 형 이 바닥의 숨은 인싸였네.”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 안내까지 하고 돌아온 조유찬이 한율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 한율이 덕분이지.”

“형이 일을 잘하고, 또 좋게 보였으니까 결혼식까지 와서 축하해주시는 거죠.”

그때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한곳을 바라보았다. 호텔 직원들까지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초대받고 같이 왔어요.”

조유찬이 지금의 신부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준 배우 이제설. 그가 여자친구인 온더로즈의 영아와 함께 도착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제설 씨.”

“결혼 축하해요, 유찬 씨. 괜히 제가 다 뿌듯하네요.”

이제설과 악수하던 손을 꽉 잡으며 조유찬이 말했다.

“제설 씨가 제 평생의 은인입니다.”

“뭘요.”

“결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세요.”

크래 멤버들도 다가와 이제설과 영아에게 인사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지, 라나와 은영은 영아와 가볍게 포옹했다.

“언니~.”

“오랜만이양~.”

결혼식 시간이 다가올수록 웨딩홀은 하객들로 가득 찼다. 가끔 입구 쪽에서 청첩장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오려던 사람과 경호원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으나, 안까진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도 자리로 가서 앉자.”

한율은 멤버들과 함께 지정된 테이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곧 조유찬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조유찬, 입장.]

와아아! 휘익! 환호성을 지르거나 휘파람을 부는 젊은 하객들.

한율도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조유찬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와 처음 일하게 된 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차남석과 함께 출연한 <보컬리스트 시즌3>의 본선 녹화를 앞두었을 때였다. 당시 조유찬은 WB래빗 입사 3년 차였다.

그로부터 5년.

한율은 뒷모습에서도 행복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조유찬을 보며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고작 4개월하고도 며칠.

문득 지난 설, 친척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난번 서울에 미스터리 홀이 열렸을 때, 거기에서 나오던 괴물들을 막은 사람들 있잖아요. 이번에도 그 사람들이 막아주지 않을까요?』

‘진짜’는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계나리가 미래에서 만난 한율은, 그의 고향과 연결되는 게이트를 결계로 감싸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괴물이 나오지 않는 게이트라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환호성이 잦아들고, 한율은 박수 치던 손을 내렸다.

‘물론 위험한 게이트를 꼭 막아야 할 의무나 생각은 없지만.’

* * *

결혼식이 끝나고 조유찬은 스페인 마요르카섬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다음 주 출연할 미국 토크쇼 <크리스 라터쇼>에서 날아온 대본을 검토하고, 다시 쇼케이스 연습에 매진했다.

너튜브엔 조유찬의 결혼식 날, 크래와 어스래빗의 축하 무대 영상이 올라왔다. 한율이 라나와 함께 축가를 부르는 영상도.

-이거 누가 찍어서 올린 건지 바로 추려질 텐데 용감하네

-영상 유포자 최소 WB래빗 취미 모르는 사람임

-SNS에 결혼식 참석한 다른 유명인들 사진도 올라와 있던데

ㄴ이제설이랑 영아?

ㄴ이제설이 어스래빗 매니저가 지금 신부 만날 수 있게 소개팅 주선한 사람이래요

ㄴ오

-민폐 하객들이 따로 없네

-얘네 행사 섭외하려면 돈 진짜 많이 내야 할 텐데

ㄴ축의금이랑 결혼 선물도 푸짐하게 했을 듯

ㄴ연예인 매니저는 월급보다 떨어지는 콩고물이 진짜 달달하다더니

ㄴ서한율한테 차 선물 받았던 매니저가 이 사람이었나?

ㄴㅇㅇ

-괜히 떠비가 크리스마스 노래 낼 때마다 유독 서한율이랑 라나 같이 붙이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영상에서도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느껴질 정도면

-<매니저의 하루> 나왔던 똘똘이 스X프 장가갔구나 ㅊㅋㅊㅋ

괴물보단 사람이 더

경기도 양평. 이해원이 지내는 집.

차칵차칵.

“나리 씨.”

구동에게 꽃 모자를 씌우고 사진을 찍던 계나리가 JE를 돌아보았다.

“네?”

JE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리 씨가 생각하기에도, 우리가 ‘진짜’ 게이트를 막는 건 힘들어 보여요?”

“…네.”

계나리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는 이해원을 살핀 후 자신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본래 시간대에서 진짜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을 본 것도 아니고…. 만약 봤다고 해도 당시 어느 정도의 위력을 지녔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때 전 마법사도 아니었고, 지금도 그리 수준이 높지 않으니까요.”

“서한율도 진짜 게이트가 생기면 나서서 막을 생각 전혀 하지 말라고, 개죽음당한다고 했을 정도니…. 역시 힘든 건가….”

“율이 오빠라면 잠깐 정돈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상태로 어떻게 몇 년을 버티겠어요. 아무리 강하다 해도 오빠도 사람인데. 솔직히 오빠가 그렇게까지 희생해야 할 의무도 없고요.”

이해원이 커피를 들고 왔다. 계나리는 구동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끼웅. 구동이 기꺼워하며 뺨을 비비적거렸다.

“강자가 약자를 지키는 게 옳다, 그게 힘 있는 자들의 의무다. 이렇게 떠드는 사람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떠밀려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래놓고 죽으면 잠깐 슬퍼하는 척했다가 다시 다른 희생자, 다른 방패막이를 찾고. 하….”

계나리의 얼굴에 차가운 혐오가 스쳤다.

“나중엔 괴물들보단 사람이 더 싫어질 지경…. 아.”

“…….”

“…….”

계나리가 JE와 이해원을 향해 어설프게 웃었다.

“말하다 보니 꼭꼭 눌러왔던 부정적인 감정이 그만.”

“아니에요. 답답하면 다 말해도 괜찮아요, 나리 씨. 우리로선 아직 백 퍼센트 공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네, 고마워요.”

JE는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서한율이 그렇게까지 희생해야 할 의무는 없지. 지금도 가짜 게이트 만들면서 경고하고, 경각심 주고, 이우그룹까지 움직이면서 국가 단위로 대비하게 하는데.’

“그럼.”

JE는 한 가지 의견을 냈다.

“1130 증상자 전부 예비 각성자잖아요. 그 사람들을 모아 기초적인 훈련이라도 미리 받게 하는 건요? 물론 지원자들만.”

“네.”

계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이우그룹이 1130 증상자들에게 연락 취했을 거예요.”

26일 금요일, 경기도 외곽에 있는 이우그룹 연수원. 주차장에는 전세버스를 비롯한 여러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걸그룹 퍼플아워의 진은수가 탄 차도 그중 하나.

진은수는 창에 달라붙어 바깥 광경을 이리저리 살폈다.

‘한율 선배님은 역시… 안 오시겠지?’

며칠 전, 이우그룹 전략기획실의 도단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1130 증상자분들께 알려드리고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니, 시간 되시는 분은 2월 26일~28일 오후 2시까지 아래 주소로 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루만 참석하시면 되며, 보호자 1인 동반 가능합니다.]

나기혁이 지난번에 만든 단톡방을 통해 서한율과 길우성에게 물었다.

-[이우그룹 부회장이 미스터리 해커랑 만난 적 있다고 하니까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난 해외 스케줄 있어서 못 가. 너희는?]

-[저희도 27일 출국이라 안 되고, 26일도 스케줄 때문에 힘들 것 같아요.]

-[은수는?]

진은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27일과 28일은 퍼플아워도 스케줄이 있어서 힘들지만, 26일이라면 괜찮았다. 금요일마다 고정으로 출연하던 <뮤직센터> MC 자리도 지난달 내려놓았고.

[제가 다녀와서 단어 하나 빠뜨리지 않고, 들은 내용 그대로 전달해드릴게요!]

툭. 진은수는 차창에 머리를 댄 채 한숨 쉬었다.

‘선배님에게 도움 되는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핸드폰으로 녹음하는 게 좋겠지?’

“은수야, 슬슬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네, 잠깐만요.”

진은수는 녹음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차에서 내렸다.

연수원 중앙 현관 입구 옆에는 도단희가 연락을 받고 온 1130 증상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서 눈만 내놓은 진은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바쁘신 와중에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른쪽 복도 B 회의실입니다. 매니저분도 함께 들어가셔도 괜찮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중요한 자리엔 혼자 들어가라고 할까 봐 조금 무서웠는데. 진은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매니저와 함께 B 회의실로 향했다.

“…….”

그러나 도단희는 멀어지는 진은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조금 전, 이상한 말을 지껄이던 놈들이 있었기 때문.

『증상자 중에 진은수도 있지 않냐? 오늘 오면 존나 대박인데.』

『오늘 안 오면 내일 또 와보면 되지? 일단 오면, 팬인 척 다가가서 붙어. 아이돌은 존나 더럽게 생긴 새끼들이 붙어도 팬이라고 하면 대놓고 싫은 티 못 내거든? 그럼 실수인 척….』

도단희는 2시 정각에 맞춰 들어오는 차를 보며 생각했다.

‘옆에 매니저가 있으니 괜찮겠지. 우리 직원들도 있고.’

* * *

“지금까지!”

“어스!”

“래빗!”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조심히 들어가세요!”

서울에 있는 한 이우전자 매장. 어스래빗 멤버들은 팬들에게 씩씩하게 인사하고선 환하게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차에 탑승하고 나서야 머리나 목에 걸었던 팬들의 선물을 벗었다.

“이 머리띠랑 목걸이는 잘 아껴뒀다가, 나중에 내 딸한테 물려줘야겠다.”

“물려주기 전에 삭아서 망가지지 않을까?”

“아니, 내가 언제 결혼할 줄 알고?”

“20년 후?”

“싸우자, 이건우.”

“이제 숙소 가서 짐을 싸야 행. 떠날 준비를 해야 행.”

한율은 팬미팅 동안 꺼놓았던 핸드폰 전원을 켰다. 오후 6시. 나기혁과 진은수, 호수와 길우성이 있는 단톡방은 조용했다. 이우그룹이 1130 증상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가 2시 시작이었으니, 벌써 끝나고도 남았을 텐데.

길우성도 비슷한 의문을 느꼈는지, 잠잠한 단톡방을 확인하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은수 씨 바쁜가 봥.”

설명회 내용은 한율이 부회장에게 지시한 내용이었다. 증상자들에게 쓸모없이 덧붙인 사족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건만.

한율은 곰 머리띠를 벗었다.

“조금 기다리면 올려주겠지.”

자기가 한 말을 지킬 줄 아는 성실한 아이니.

진은수가 단톡방에다 글을 올린 건 그로부터 2시간 뒤였다. 한율이 숙소로 돌아와 한창 짐을 쌀 때.

-[오늘 이우그룹 연수원에 가서 들은 내용 정리 파일입니다. 늦어서 죄송해요ㅜㅜ]

-[(이모티콘)]

한율은 내용을 대충 훑고선 답장했다.

[고마워요. :)]

진은수는 귀여운 사자 캐릭터가 꾸벅 인사하는 이모티콘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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