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1화 (311/427)

라이언이 창밖을 가리켰다.

“쟤 찐빵 아니야?”

끼익! 차남석은 브레이크를 밟고선 고개를 돌렸다. 수풀 사이로 잎사귀와 흙으로 지저분해진 하얀 강아지가 이쪽을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흔한 시골 강아지 외형이었으나, 차남석은 단번에 찐빵을 알아보았다. 그가 인터넷으로 직접 주문 제작한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맞지? 찐빵.”

“어….”

차남석은 찐빵을 놓치게 될까, 차를 길 한가운데에 세워둔 채 급히 내렸다.

“야, 찐빵. 너 대체 어디에 있다가….”

그러나 곧 멈칫했다. 반갑게 달려오는 찐빵이 쥐 비슷한 걸 입에 물고 있었다. 보통 쥐보다 긴 몸통에 얼룩덜룩 신기한 무늬가 시선을 끈다.

“너 내가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고 했지? 그거 내려놔.”

그 순간이었다.

파닥파닥.

“……?!”

신기한 무늬라고 생각한 부분이 돌연 몸에서 분리되더니 지느러미처럼 움직였다.

뒤에서 다가오던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게이트 괴물. 인터넷에서 봤어.”

“뭐?!”

차남석은 경악하며 찐빵을 덥석 잡았다.

“당장 뱉어!”

그르. 그러나 찐빵은 놓기 싫다는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교합력이 강해지자 괴물이 고통스럽다는 듯 지느러미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파닥파닥.

“강제로 뺏으려 하지 마. 더 세게 물면 괴물 피 마실 수 있어. 찐빵, 형이랑 같이 할아버지 보러 가자.”

“야…!”

차남석이 당황해하든 말든, 라이언은 조금 전 이웃집 할머니에게 돌려받은 리드 줄을 찐빵에게 채웠다. 찐빵은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자랑하듯, 위풍당당하게 집으로 걸어가려다 차에 태워졌다.

“하아….”

차남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핸드폰을 꺼냈다.

“네, 거기 112죠. 게이트 괴물로 보이는 걸 우리 집 개가 잡았는데요. 위치는….”

말하면서 무심코 고개를 돌린 시야. 찐빵이 나왔던 수풀 저 너머에서 무언가가 아른거렸다.

저게 뭐지?

-[…여보세요, 신고자 분? 말씀하세요.]

눈을 가만히 찡그리며 주시하던 차남석은 곧 그것의 정체를 깨닫곤 뒷걸음질 쳤다.

“……!”

착각일까. 땅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말을 하다 말자 112 신고센터 직원이 대답을 재촉했다.

-[신고자 분? 말씀하세요!]

“남양주시…!”

차남석은 주소를 외치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라이언의 품에 안겨 잠시 방심하고 있던 찐빵의 주둥이에서 괴물을 강제로 빼내 밖으로 휙 던졌다. 까슬까슬한 털과 물컹거리는 기분 나쁜 감촉이 손에 남았다.

쾅! 문을 세게 닫은 차남석은 옷에다 손을 대충 문지르곤 기어를 조작, 액셀을 세게 밟았다.

살아있는 놈을 잡아야겠어

“뭐야, 왜!”

라이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찐빵은 사냥감을 강제로 빼앗긴 충격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다물었다. 끼웅….

차남석은 마을회관 쪽으로 차를 몰았다.

“더 큰 것들이 땅에서 우글우글 나오고 있었어.”

“왓…. 여기 게이트랑 멀잖아!”

“그러니까!”

차남석에겐 어릴 적부터 자라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참 잘생기고 어른스럽다며 동네 어른들에게 귀염도 많이 받았다. 반강제적이지만 마을회관에서 방송도 몇 번 한 적이 있었고.

“넌 혹시 모르니 차에 있어.”

마을회관에 도착. 차남석은 단숨에 2층으로 올라가 방송 장비를 켰다. 창 너머로 조금 전 괴물을 목격한 방향을 유심히 살피며 마이크 스위치를 눌렀다.

게이트 지도에 자그맣게 적힌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미완성.]

‘서울에서 날아온 게 아니라, 만약 이 근처에도 게이트가 생긴 거라면.’

“마을 주민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차남석의 목소리가 동네에 퍼졌다.

차남석은 우선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괴물을 발견한 위치, 외형과 숫자, 신고를 마쳤으니 경찰이 올 동안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신고한 지 1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것도 달랑 두 명. 이곳이 읍내와 떨어진데다 남은 인원이 없다는 이유였다.

방송을 듣고 오히려 마을회관으로 온 동네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괴물? 난 그런 거 못 봤는데?”

“남석이 네가 잘못 본 거 아냐?”

라이언은 핸드폰에다 사진을 띄워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괴물을 물고 있는 찐빵과 함께 찍은 셀카였다.

“이거예요.”

차남석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건 또 어느새.”

사람들은 아리송한 반응을 보였다.

“뭐야, 쥐 아냐?”

“쥐 보고 괴물로 착각한 거야?”

“남석이가 얼마나 똑똑한 앤데, 착각할 리 있겠어요? …아버진 안전한 곳에 잘 계시지?”

“착각 아니에요.”

“그래. 쥐치고는 너무 길고 이상한 게 달려있는데? 무늬도 희한하고.”

“쥐만 하면 발로 걷어차도 되지 않겠어? 아무렴 멧돼지보다 더 고약할까. 강아지한테도 잡힌 걸 무서워해?”

“치명적인 독이나 세균에 감염될 수 있잖아요.”

세균이란 말에 차남석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 괴물을 잡았던 촉감이 생생히 되살아나 소름이 돋았다.

경찰이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둘러보겠습니다. 자세한 위치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잘생겼어요? 혹시 연예인?”

“점잖은 차 씨 할아버지 있잖아. 그 양반 손자야. 그, TV에 나온다던.”

“아.”

“…….”

분명히 TV로 게이트 괴물들의 위험성을 봤을 텐데 왜 다들 이렇게 느긋한 건지. 눈에 띄도록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아서 그런 건가?

차남석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안내해드릴게요. 라이언, 넌 찐빵이랑 같이 여기에 있어.”

“싫은데? 네 명령 안 들어.”

“…….”

차남석은 입을 다물고 차 운전석에 올랐다. 라이언도 냉큼 다시 조수석에 탔다. 여전히 찐빵을 안고서.

잠시 후. 조금 전 그 장소로 돌아온 차남석은 주변을 살폈다.

“분명히 여기로 던졌는데….”

찐빵이 잡았던 괴물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간 거 아냐?”

“괴물들이 우글거렸다는 장소는 어딥니까?”

“저기 수풀 안쪽이요. 아까 신고할 때도 말했지만, 사진에 찍힌 놈보다 두 배 더 크고 수도 많으니 일단 지원 요청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경찰들이 긴장한 얼굴로 아주 작은 권총을 꺼냈다.

“말해뒀으니 곧 올 거예요. 혹시 모르니 차에 들어가 계세요. 시동도 끄지 마시고.”

정말 괜찮을까.

차남석은 선뜻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섰다.

본래 경찰 대부분은 권총에 약실 1발은 비워두고 공포탄과 실탄 3발만 넣는다. 게이트가 생긴 이후 모두 실탄 5발로 채웠다곤 하나, 그래봤자 두 사람이니 10발.

‘괴물도 어림잡아 열 마리가 넘었어. 전부 한 방에 잡을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는데.’

그때였다.

왕! 찐빵이 크게 짖었다.

“안 돼, 찐빵!”

차에서 뛰쳐나가려는 찐빵을 라이언이 꽉 잡아서 말렸다. 동시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한꺼번에 달렸다. 파사삭!

경찰이 총을 장전하고선 그쪽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차남석은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요! 아직 함부로 쏘지 않는 게…!”

타앙!

“……!”

퍼석. 묵직한 무언가가 지면에 구르듯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적중한 건가? 경찰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라이언과 차남석이 동시에 외쳤다.

“조심하세요!”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데에 분노한 걸까. 수풀 속에서 달리던 그것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파사삭! 붉은 눈깔을 형형하게 빛내며 달려드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몸통에 달린 짧은 지느러미가 파르르 빠르게 떨렸다.

“뭐, 뭐야!”

당황한 경찰들이 괴물들을 향해 총을 연달아 쐈다. 탕! 타앙! 긴 몸뚱이를 유려하게 휘며 달려들던 괴물 중 두 마리가 총알을 맞고 나뒹굴었다. 캬앙!

끼르르륵, 키르르륵! 앞장선 개체가 분노한 듯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

쩌저엉! 쿠웅!

지진이 난 것처럼 발밑이 흔들리더니, 무언가가 포장된 도로와 단단한 흙으로 된 지면 모두를 박살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키아아아악!

“……!!”

다른 괴물과 생김새는 비슷했다. 그러나 몸통은 최소 3m 남짓. 파르르 떨어대는 지느러미는 얇은 칼날과 같았고, 들고 있는 두 앞발의 발톱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쩍 벌리는 주둥이에선 보랏빛 혓바닥이 넘실넘실 길게 나왔다.

“지, 지원 요청! 지원 요…!”

괴물들이 무전기를 든 경찰을 덮쳤다.

“…아악!”

콰득, 콰득!

땅 밑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놈은 다른 경찰에게.

“오, 오지 마!”

타앙, 탕! …철컥, 철컥.

본래 실탄이 5발 밖에 없던 총이었다. 그나마 명중한 총알도 아주 간지럽다는 듯, 커다란 놈은 한입에 그를 물고선 조금 전 생긴 구멍으로 쑤욱 들어갔다. 찰나에 스친 경찰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흐, 흐아악…!”

툭. 그가 있던 자리엔 빈 총만 바닥에 나뒹굴었다.

“차남석!”

라이언이 차에서 뛰어 내렸다.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굳은 차남석에게 손을 뻗었다.

“뭐해, 도망쳐!”

“…….”

휙! 그러나 차남석의 팔을 잡기 전, 돌연 차남석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차 트렁크를 열어 안에 있는 소화기를 꺼냈다.

“너 설마…!”

쿵. 차남석은 바닥에 소화기를 세우고선 안전핀을 뽑았다. 노즐 팁과 손잡이를 잡으며 몸을 돌렸다. 어느새 라이언의 품에서 탈출한 찐빵이, 바닥에 쓰러진 경찰을 도와주기 위해 괴물 하나를 물어서 공격하고 있었다.

“나와, 찐빵!”

본능적으로 의도를 파악한 걸까. 찐빵이 황급히 떨어졌다. 차남석은 괴물들을 향해 노즐을 쥔 채 손잡이를 강하게 잡았다.

‘제발 먹혀라!’

치이익! 강하게 분사되는 새하얀 분말이 시야를 가렸다.

…키륵, 키르륵!

다행히 통한 걸까. 괴물들이 당황해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차남석은 더 가까이 다가가며 소화기를 분사했다. 괴물들이 시뻘건 눈을 글썽거리며 한두 마리씩 경찰에게서 떨어졌다.

“에잇, 정말!”

그 틈을 노려 라이언이 쓰러진 경찰을 뒤에서 잡아끌었다. 여기저기가 물어 뜯겨 처참했으나, 의식을 잃었을 뿐 살아있었다.

“조금만 더! 콜록, 콜록!”

차남석은 라이언이 경찰을 차에 태울 동안 괴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소화기를 뿌렸다. 땅속으로 끌려 들어간 다른 경찰이 걱정됐지만, 이 정도가 한계라는 냉정한 판단이 머릿속에 경고음처럼 울렸다.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괴물들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이번엔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파르르. 얇은 지느러미를 떨면서.

소화기의 위력도 급속도로 약해졌다.

“타! 차남석!”

왕! 왕!

“저리 꺼져, 괴물 새끼들아!”

퍼억! 차남석은 괴물들에게 소화기를 집어 던지곤, 찐빵을 낚아채 차로 뛰어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 기어를 조작, 액셀을 밟아 그 자리를 벗어났다. 끼기긱! …쿵! 조금 전 괴물이 튀어나온 여파로 땅이 울퉁불퉁해져 차가 덜컹거렸다.

“라이언! 빨리 경찰에 신고해! 119에도!”

“어디로 갈 건데?!”

“마을회관으로 가서 이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고, 병원에 가야지! …야이 씨, 너도 면허 좀 따지 그랬냐! 그럼 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뒷좌석에서 다친 경찰을 부여잡고 있던 라이언이 울컥했다.

“그래, 딴다! 딴다고!”

키르륵….

한편, 새하얀 분말 범벅이 된 괴물들은 빠르게 멀어지는 차를 망연히 바라보다, 하나둘 지면에 난 구멍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서울의 게이트 방어선.

“제임스.”

무너진 건물 앞에서 쓰러진 괴물을 살피던 한율은 고개를 돌렸다. 깨진 유리창에 비친 그는 ‘로건 워커’의 젊은 시절을 빼다 박은 ‘제임스’였다.

이해원이 조용히 물었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몸의 절반이 날아간 괴물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여기는 너무 시끄럽고, 어디서 지켜보는 눈이나 카메라가 있을지 모르니 자세하게 살피는 건 힘들겠네요.”

그러면서 괴물에게 손을 댔다. 은은한 푸른빛이 일렁일렁 괴물을 감쌌다. 꾸륵, 꾸륵…. 고통스럽게 가쁜 숨을 몰아쉬던 괴물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짧은 적막.

“죽은… 거야?”

“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태라 그런지, 마나 양도 상당히 적네요.”

그래도 지구인의 마나보단 훨씬 쓸만하다.

‘이 정도 크기에, 영상으로 본 파괴력을 생각해본다면….’

“살아있는 놈을 잡아서 별장으로 데려가야겠어요. 운반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너무 큰놈은 힘들겠고….”

우웅. 한율은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유호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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