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2화 (312/427)

“네, 형. ……남양주에서요? 두 사람은 괜찮대요?”

차남석과 라이언이 괴물들을 목격하고, 다친 경찰을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괴물과 가까이에서 접촉했으니 당분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지금 병원에 격리된 상태래. 찐빵이도 무슨 연구소로 사람들이 데려갔다더라.]

“형들,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도 들었어요?”

-[응. 지금 남석이 할아버지랑 아버지 모시고 가는 중이야. 위치 보내줄까?]

“네, 부탁할게요.”

괴물들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고? 강서구 상공에 뜬 게이트에서 떨어져, 남양주 외곽까지?

통화를 끊은 한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해원을 돌아보았다. 간혹 아주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는 작은 게이트도 있었다. 그런 종류가 열린 것일지도.

“남양주에 다녀와야겠어요.”

한율과 이해원이 도착했을 땐 무장한 군경이 마을 주민을 대피시키고 현장을 살피는 중이었다.

“연락받았습니다. 제임스… 그리고 이해원 씨 맞으시죠?”

“네. 저희도 가까이에서 봐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현장엔 커다란 괴물이 나왔다던 깊은 구멍과 문이 활짝 열린 순찰차, 주인을 잃은 권총 두 정과 무전기, 소화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군인들의 경계 속에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괴물들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수습한다.

“블랙박스 영상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순찰차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은 오는 동안 차남석, 라이언과 통화하며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직 이 안으로 들어가서 살피진 않은 거죠?”

“네. 아무래도 무너질 위험성이 커서…. 하지만 곧 탐사 장비가 도착할 겁니다. 그걸 이용해 괴물들의 경로와 위치를 파악하면.”

“잡혀간 경찰의 생존 가능성은 더 떨어지겠네요.”

“…….”

현장 책임자가 힘없이 입을 다물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으니 이미 죽었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말이다.

한율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전기 주세요.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갈 거면 탈퇴하고 가

므아앙. 한율이 구멍 아래로 들어가려 하자 달냥이 애타게 울었다. 자신도 데려가라는 듯.

“괜히 흙먼지만 뒤집어쓰니까 여기에서 기다려.”

므앙….

“정말 이대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익숙하지 않은 장비 걸치고 들어가는 게 더 불편해서요.”

한율은 군인에게 고글과 무전기, 손전등만 빌렸다. 현장 책임자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저희 대원도 데려가시는 게.”

“다녀올게요.”

휙. 한율은 망설임 없이 구멍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희미하지만 게이트 특유의 불쾌한 느낌이 슬슬 신경을 자극한다.

‘역시.’

이 근방에 게이트가 열린 게 분명했다.

스륵. 불필요한 마력 소모를 줄이고자 덧씌웠던 환영 마법을 걷었다. 그리고 인위적인 바람을 일으켜 안쪽으로 날려 보냈다. 놈들이 얼른 침입자를 눈치채고 움직이도록.

‘이래서 용케도 무너지지 않았던 거고, 사람들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거군.’

땅굴엔 괴물의 체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반들반들 묻어서 지반이 무너지는 걸 막고 있었다. 원래 땅속에서 사는 데에 특화된 개체인 모양.

잠시 후. 발밑에 점점이 떨어진 분말을 따라 걷다 보니 하수구 냄새와 뒤섞인 묘한 냄새, 쥐새끼들이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큰 괴물이 파 놓은 듯한 세 갈래 길과 커다란 구멍.

구멍 안쪽엔 작은 게이트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기운이 약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보호 결계를 단단히 씌워놓았다. 또 다른 괴물들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그런 한율의 의도를 읽고 분노한 걸까.

키륵, 키르륵….

숨어서 지켜보던 놈들이 슬금슬금 붉은 안광을 드러냈다.

커다란 놈도.

한율은 미소 지었다.

“마침 적당한 크기의 실험체가 필요했는데. 알맞게 나타나 줘서 고맙다.”

촤악.

커다란 놈을 제외한 작은 괴물들의 몸이 일제히 잘려 나갔다.

* * *

대형 포털사이트 메인.

[어스래빗 차남석·라이언, 괴물과 맞서 경찰 목숨 구해]

[인기 아이돌그룹 어스래빗의 멤버인 차남석과 라이언이 괴물과 맞서 경찰의 목숨을 구했다.

(사진=어스래빗 [Magic Bullet] 컴백 쇼케이스)

두 사람은 오늘 오후 남양주에 있는 차남석의 고향을 찾았다가…(중략).

게이트 방어 지휘부는 남양주에서 발견된 괴물들을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미니 게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미니 게이트는 완전히 소멸했다고 밝혔다.

한편 땅속으로 끌려간 경찰도 구조되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위독한 상태라고 알려졌다.]

-땅속에서 발견된 분 위독한 상태인 거 너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런 위험한 괴물들한테 맞서서 다른 경찰분 구한 거 정말 장하고 대견하다ㅠㅠㅠㅠㅠ

-평소 기부 많이 하는 서한율은 펜션 찾아가서 도와달라는 사람들 매정하게 내쫓았다던데ㅋㅋㅋ

ㄴ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좀 보고 지껄여. 자리 넘치는 대피소 놔두고 빌붙으려고 간 인간이 태반이야

ㄴ멤버 가족들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준비한 펜션입니다. 영업 중단까지 한 사유 재산에 생판 모르는 타인을 그냥 들이는 게 미친 짓 아닌가요? 막말로 누가 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데?

ㄴ이우그룹하고 정원그룹이 경주하고 수원에 지은 대피소 덕에 다른 대피소도 자리 많음. 그냥 지들이 불편하니까 예쁜 펜션에 공짜로 편히 지내러 간 거

ㄴ넌 꼭 너희 집 문 두드리는 사람 받아줘라

-그 찰나에 소화기 꺼낼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나였으면 당황해서 안전핀도 제대로 못 뽑았을 것 같은데

ㄴ차에 소화기 있는 것도 신기하던데

ㄴ아직도 차에 소화기 없는 애가 있네 신기하다

-이프림으로서 자랑스러운데 한편으론 불안하다ㅠㅠ

-외모도 존잘 용기도 존잘

-증거가 없으면 뭐다? 이 와중에 소속사 일 잘하네ㅋㅋㅋㅋ

ㄴ경찰이 블박 공개 검토 중임.

-미니 게이트가 있단 게 더 심각한 상황 아니냐? 우리 발밑에도 갑자기 생길 수 있단 거잖아

-남돌은 군대나 가라. 지금이 적기다.

“하….”

자신의 기사를 본 차남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조됐구나. 정말 다행이다….’

라이언과 함께 구한 경찰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이것저것 검사와 조사를 받는 동안에도 내내 떠올랐었다. 괴물에게 물려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던 경찰의 얼굴이.

‘그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봐도 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분했다.

차남석은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목숨 걸고 괴물과 맞서 싸우는 군인들, 그들을 돕겠다며 나선 1130 각성자들의 모습. 그런데도 시시각각 늘어나는 사망자.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고작 소화기나 뿌리는 것뿐이었는데.’

“고민하지 마.”

“…뭐?”

차남석은 고개를 돌렸다. 경찰을 구하는 과정에서 괴물의 체액을 만졌다며, 함께 같은 병실에 격리된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네가 군대 가잖아? 사람들은 칭찬하겠지. 괴물에 맞서 경찰을 구하더니 입대까지 한다고. 하지만 네 용기에 할아버지는 쓰러질 거야. 아까 봤잖아. 할아버지, 자책하고 계셨어.”

하아. 한숨을 내쉰 라이언이 차남석을 똑바로 보았다.

“계실 때 잘해. 당장 차오른 자극적인 감정으로, 더 큰 감정 잃어버리지 마.”

“…….”

“멍청아.”

흔들리려던 마음이 뒤이은 한마디에 차게 가라앉는다.

울컥.

“…야.”

“너 가면 리더도 빨리 가게 되잖아. 갈 거면 탈퇴하고 가.”

탈퇴란 말에 차남석은 더욱 울컥했다.

“씨발, 그 말은 존나 선 넘는 거 아니냐?”

라이언도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화냈다.

“어스래빗 흔들면 가만 안 둬.”

저놈이 생각하는 어스래빗에 나는 필요 없는 멤버인 건가? 아무리 사이가 그리 좋진 않아도, 그래도 함께 고생한 세월이 몇 년인데.

차남석은 몰려오는 섭섭함을 보여주기 싫어, 반대로 몸을 돌리고 담요를 뒤집어썼다.

“됐다. 말을 말자.”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너 가면 다 흔들리잖아.”

휙. 차남석은 담요를 걷고선 라이언을 째려보았다.

“아까는 탈퇴하라며, 새끼야.”

“갈 거면 탈퇴하고 가란 말이지.”

라이언도 짜증 난다는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탈퇴하면 팀 흔들리니까 가지 말라고. 이해가 안 돼?”

“…….”

“멍청아.”

“…에이씨.”

차남석은 도로 담요를 뒤집어썼다.

에휴. 라이언은 그런 차남석을 보며 대놓고 한숨을 쉰 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의 탈출을 위해 항공편을 확보 중이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미 대사관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사촌 동생 테디의 메시지도.

‘멤버들을 두고 나 혼자만 도망칠 순 없어.’

한편 그 시각, 미 대사관.

“제임스? 풀네임과 국적은요?”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에서 파견된 조쉬는 정신이 없었다. 한국의 1130 각성자들을 만나는 동안 게이트 방어선이 무너졌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굉장히 강한 각성자가 나타났다.

몇 톤에 달하는 충격을 가볍게 바람으로 감싸, 많은 사람을 구한 각성자.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속 그는 밝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한 백인이었다. 당연히 그의 정체에 관심이 쏠렸으나, 곧장 게이트 방어선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정보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게이트 방어선에서 활약하는 다른 각성자들처럼 뉴스나 기사도 나오지 않고.

김민지가 사과패드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둘 다 불명입니다. 한국 1130 증상자 리스트엔 없는 인물이라 한국 국적이 아닐 가능성도 크고요. 하지만 김관식 소장과 면담 뒤 일행과 함께 방어선 출입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일행은 바로 이 사람.”

이해원의 사진을 본 조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우, 상당한 미남… 소년? 청년? 아무튼 잘생겼네요.”

“이름은 이해원. 한국 국적으로 서한율과 길우성처럼 K-POP 보이밴드면서 배우 출신.”

김민지는 일부러 잠시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현재 서한율의 펜션 바로 윗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 참… 신기한 우연이네요? 그럼 이 청년도 각성자인가요? 자료에선 본 기억이 없는데.”

“아니요. 등록되지 않았어요.”

“으음…. 등록이 의무는 아니니. 어쨌든 이 친구를 만나면 제임스에 대해 알 수 있겠네요?”

“지금 집으로 가실 건가요? 아직 방어선에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그리고 벌써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다.

조쉬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서한율에게 이 잘생긴 친구의 연락처를 물어보도록 하죠.”

* * *

우웅.

[미국게이트 김민지]

한율은 핸드폰에 뜬 이름을 확인하곤 거절 버튼을 눌렀다. 이해원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두 사람 앞에는 몇 시간 전, 이우그룹 계열사 트럭을 빌려 별장 차고로 옮긴 괴물이 쌔근쌔근 깊게 잠들어 있었다. 미스터리 해커 집단의 일원인 제임스가 게이트 괴물에 관해 연구하고 싶으니 가져가겠다고 하자, 정부가 조용히 승낙했다.

“마나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마력을 얼마나 정제할 수 있는지, 마법이 얼마나 통하는지 실험할 거예요. 형은 옆에서 보조해주세요. 그리 어렵진 않을 거예요.”

므앙.

“달냥이 넌 안에서 편히 쉬어도 돼. 오늘 하루 낯선 냄새 잔뜩 맡느라 수고했어.”

“한율이 넌 안 쉬어도 괜찮아? 밥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집안 팬트리에 즉석밥이랑 즉석식품 몇 개 있을 거예요. 간단한 식사 준비 부탁드릴게요.”

“응, 알았어.”

므아앙. 이해원이 달냥을 안고선 차고를 나갔다.

한율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괴물의 이마에 손을 댔다.

우웅.

“……?”

이번엔 짧게 울리는 핸드폰.

길우성과 원카운트 나기혁, 퍼플아워 진은수와 히아신스 호수가 있는 단톡방이었다.

나기혁이 톡을 연달아 올린다.

-[다들 무사함?]

-[뉴욕에서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사람하고 만났는데]

-[여차여차해서 나 한국 들어간다. 증상자가 지금 한국 들어가면 각성하게 될지 지켜보고 싶다더라]

-[그리고 각성자 연구 시설 만들어지면 협조해달라고ㅋ]

-[세 사람한테도 조사위원회 사람이 찾아갔을 거라던데]

-[만남?]

길우성이 대답했다.

-[오늘 낮에 서한율이랑 잠깐 만났습니당.]

-[각성자 능력 실험연구소 만들어지면 협조 부탁한다공]

-[근데 서한율이 생각 좀 해본다 그럼요]

-[섣불리 약속했다가 미국 끌려가서 한국 못 오면 어떡해여]

나기혁.

-[은수는?]

진은수의 대답이 올라온 건, 한율과 이해원이 간단히 요기하고서 괴물의 안구를 파낼 때였다.

-[저도 미국에서 온 사람들과 만났어요.]

-[일단 거절했는데...]

-[미국의 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갑자기 퍼플아워를 초청하고 싶단 연락이 왔대요.]

-[토크쇼에서도.]

나기혁과 길우성이 동시에 반응했다.

-[수 쓰네]

-[거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 아니요?]

우웅.

히아신스 호수가 한율에게 따로 개인 톡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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