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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군, 몸길이 2백여 미터 육박 괴물 사살 성공!]
[초거대 괴물 사살! 일등 공신은 각성자?!]
[푸른 눈의 각성자 제임스의 정체는]
[초거대 괴물 사살… 그러나 현장은 초토화]
[각성자 제임스, 前아이돌 이해원과 무슨 관계?]
뉴스.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타난 괴물 중 가장 거대한 몸집을 지닌 것으로 예측되어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초거대 괴물이 오늘 오후 2시 45분경, 군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전투기의 공격으로 세 쌍의 눈이 파괴된 괴물은….]
너튜브와 SNS, 인터넷 커뮤에서도 온통 초거대 괴물, 괴물을 기절시키고 병사들을 구한 각성자 제임스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나 아는 사람이 제임스가 처음 올림픽대로에 나타났을 때 봤는데, 분명히 이해원이랑 같이 있었다고 함. 제임스 게방부 찾아갔을 때도 같이 있는 이해원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님.
ㄴ이해원? ㅇㅇ그룹 회장 손녀 ㅅㅍ받았던 걔?
ㄴ닮은 사람일 수도?
ㄴ(이미지) 이 마스크가 흔하냐
-제임스 미스터리 해커 집단이랑 관련된 거 아닌지 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님? 다른 각성자들이랑 능력 차이가 너무 나잖아
-제임스 한국어 개잘한다던데. 후퇴 직후에 파편 깔려 죽을 뻔한 병사한테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라고 물어보는데 그 대사가 존나 멋있게 들릴 줄은 몰랐다고 함
ㄴㅋㅋㅋㅋㅋㅋ
ㄴ아니 왜 하필 그 대사ㅋㅋㅋㅋㅋ 일부러 한 거면 더 멋있습니다, 형님
-님들 제임스 얼굴 잘 나온 사진 좀
ㄴ영상 확대하고 알아서 보정하세요. 그것밖에 없음.
ㄴ오늘 진짜 멋있었는데 고글 좀 벗어주지ㅠㅠ
ㄴ화약 가루랑 먼지 풀풀 날리는 데서 고글 벗고 다니라니 실명하라는 소린가
ㄴ고글 벗고 인터뷰해달란 소리다 이것아
-님들 제임스 SNS 안 해요?
ㄴ네, 안 해요...
전 세계 언론 매체도 제임스의 활약에 대해 떠들며 그의 정체를 유추했다. 미국의 한 뉴스 채널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그 답을 알고 있지 않겠냐며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당연히 게방부엔 제임스의 정체를 알려달라, 제임스와 인터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문의가 빗발쳤다.
해가 질 무렵. 제임스의 껍데기를 벗은 한율은 느긋하게 운전하며 정상욱 중위의 전화를 받았다.
-[호주에서 당신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연락해왔습니다. 캐나다, 미국, 유럽, 러시아에서도 당신의 가족들이 연락하고 있다네요.]
한율은 소리 내어 웃었다.
“절 안다고 하는 사람 모두 사기꾼입니다. 무시하세요.”
로건 워커의 가족이 연락할 수도 있지만, 한다고 해도 받을 생각은 없다.
-[네. 그런데 정말 표창장이랑 포상금 필요 없으십니까?]
“네. 제가 지금 운전 중이라 그런데, 내일 연락해도 될까요?”
-[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은 한율은 천천히 속도를 낮췄다. 어느새 파란달 펜션이 보였다.
게이트를 보호 결계로 감쌌을 때와 비교하면 힘을 한참 아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전장에서 싸운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까. 고작 몇 분에 불과했는데도 아직 고약한 탄내와 전투 소음이 들리는 듯했다. 괴물의 피비린내도.
‘너무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았나.’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누워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맛있는 와인까지 한잔 마시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펜션에 와인을 가져온 기억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차 돌려서 사러 다녀와?’
잠시 망설여졌으나 결국 피곤해서 포기, 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펜션 대문 앞에는 무례한 방문객의 수가 퍽 줄어 있었다.
“형, 대문 좀 열어주세요.”
펜션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야외 풀장 옆에서 막 양궁 장비를 정리하던 길우성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야, 써한! 너 뉴스 봤냐? 봤지? 2백 미터 괴물 기절시킨 엄청난 각성자 형님! 막 소용돌이로 무너지는 건물 화악 막아서! 진짜 멋있지 않냐?”
그 형님이 나다.
차에서 내린 한율은 풀장 옆에 나란히 설치된 과녁을 보았다.
“연습해보니 어때?”
“으음…. 상당히 오래간만이기도 하고, 코치님이 없으니까 내가 자세를 잘 잡은 게 맞나 조금 헷갈린다. 아스대 녹화 전에만 잠깐씩 연습한 게 다였으니까. 그런데 뭐 하다가 이렇게 늦게 와? 밥은 먹고 다니냐?”
“안 먹었는데. 별일은 없었지?”
“아니.”
길우성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관리동 쪽을 턱짓했다.
“손님 왔어.”
“……?”
에휴. 한숨을 쉰 길우성은 마저 양궁 장비를 정리하러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한율은 곧장 관리동으로 들어갔다.
“하이, 서한율.”
관리동 로비 소파엔 원카운트 나기혁이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한율은 뚱한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라이언을 향해 물었다.
“이분 누가 들였어요?”
“우성이가.”
“네가 너무 연락을 안 받아서 그냥 온 거야. 이렇게 늦게 올 줄 알았으면 애초에 내일 왔을 거고. 그건 그렇고, 택시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 30만 원이 말이 돼?”
“어디서 탔는데요?”
“강남. 물가가 펄쩍 뛰고 기름값도 뛰고 위험수당까지 더해져서, 30만 원 이하론 죽어도 못 태워주겠다더라. 아무리 괴물들이 날뛰어도 그렇지, 게이트 열린 지 나흘 만에 진짜….”
나기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변하냐.”
“이상하네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버스비 몇천 원에, 읍내에서 택시비 만 원 주고 왔다던데.”
어젯밤 언덕 위 집에 갔다가 고은훤에게 들은 이야기다.
나기혁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나 호구 잡힌 거냐?”
“외국인도 그렇겐 안 당하겠다. 기혁, 바보야?”
“하…. 진짜 너무하네. 미국에서 산 간식도 줬는데. 어쨌든 나 하룻밤만 재워주라. 남는 객실 많은 것 같던데.”
“여기 온 용건부터 들어보고요.”
“야박한 놈. 공짜로 재워달란 거 아니거든?”
나기혁이 묵직해 보이는 에코백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쿵. 에코백 안에는 개봉하지 않은 와인과 위스키가 잔뜩 들어있었다. 팬들에게 받은 선물인지 아니면 본인이 산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비싸 보였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나기혁이 온 용건은 다름이 아니었다. 각성했을 때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생생히 듣고 싶다고.
한율은 길우성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설명했다. 오히려 왜 그걸 묻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냥, 되던데요?”
“…….”
“제가 설명을 잘 못 해서요. 은수 씨한테 묻는 게 더 빠를 거예요.”
“톡을 보내도 답이 없어. 폰 번호도 모르고. 설마 벌써 방어선에 들어간 건 아니겠지?”
“하루도 안 지나서 합류 허가가 내려왔을까요. 초거대 괴물 출현도 예측된 마당에. 그런데 선배님은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구로 근처까지 갔는데?”
“어.”
나기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꿈속에서 가위눌린 것처럼 식은땀이 나고 그러긴 했는데…. 딱히?”
“1130 증상자 전부 각성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인터넷에서 그러더라.”
달그락. 차남석이 테이블에 오므라이스 두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율이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하자, 일부러 관리동까지 와서 만들어주었다.
“길우성처럼 그런 경우 아냐?”
“고마워요, 형. 잘 먹을게요.”
“고맙다, 차남석.”
차남석은 나기혁에게 고개만 까딱하곤 한율에게 말했다.
“설거지는 하지 말고 둬. 지난번처럼 그릇 깨 먹지 말고.”
“네.”
“어?!”
라이언이 큰소리를 내더니 TV를 가리켰다.
“하뉼, 저거 봐!”
뉴스.
[정부가 국가에서 국내 각성자를 직접 관리, 감독하는 방침을 준비 중인 것으로 밝혀져 큰 논란이 예상됩니다.]
나기혁이 미간을 구겼다.
“은수처럼 특이하거나 제임스처럼 말도 안 되게 강한 각성자를 다른 나라에 뺏기는 것보단 낫지만, 강제 관리는 좀 아니지 않나?”
“각성자 전부 모범 시민은 아닐 테니, 범죄 예방 차원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일리 있지만…. 싸잡혀서 예비 범죄자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 나쁜데.”
“기혁, 각성 안 한 무능력자잖아. 뭐가 걱정이야?”
“라이언, 어감이 조금 그렇다?”
그날 밤, 관리동 2층에 있는 집.
한율은 욕조가 아닌 거실 티 테이블 앞에 혼자 앉아 와인을 마셨다. 종이로 된 세계 지도, 게이트 지도를 띄운 사과패드와 다른 나라 각성자 자료도 펼쳐놓고서.
머지않아 국내 각성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계나리의 시간대에서 서울을 초토화시킨 가장 위험한 괴물도 처리되었다.
잔 걱정거리는 어느 정도 사라진 셈.
그러자 다른 할 일들이 떠올랐다.
‘일단 가까운 곳부터 다녀올까.’
우웅.
스타믹스 JE로부터 톡.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에서 이해원 만나러 왔다.]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언덕 위 집.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사람과 먼저 마주친 건 고은훤이었다. 잠깐 바람을 쐬러 정원으로 나왔다가, 누군가 대문 앞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
“누구세요?”
“아….”
초인종을 누르려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대문 철장 무늬 틈새, 조명 아래에 선 고은훤을 멍하니 바라보며.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에서 나온 김민지라고 합니다. 안에 이해원 씨 계신가요?”
“…….”
현재 인터넷에선 ‘제임스가 미스터리 해커 집단 관련 인물 아니냐’란 짙은 의혹이 퍼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사진까지 까발려지는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과거의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인 까닭이었다.
고은훤은 제임스가 미스터리 해커 집단 일원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해원이 직접 말해주었다.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는 아직 듣지 못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능력 있는 각성자들을 노리고, 미스터리 해커도 애타게 찾는다더니.’
김민지란 이름으로 보아 아마 한국계. 그러나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소속이라고 밝혔으니 제임스에 관한 단서를 얻고자 찾아온 것일 터다.
한편으론 사칭일 수도 있겠단 의심도 들었다. 그만큼 제임스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없는데요.”
“그럼 이해원 씨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모르는데요.”
그제야 자신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있단 걸 깨달은 걸까. 김민지가 철장 무늬 틈새로 미 대사관 출입증을 내밀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쩌죠. 선생님께 협조할 법적 의무가 없는데요.”
“그럼 제 연락처라도 전해주시겠어요? 부탁드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저기…!”
“아, 초인종은 누르지 말아 주세요. 토끼가 놀라서 깨거든요.”
고은훤은 메마른 미소를 짓고선 가볍게 꾸벅,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선 이해원과 JE가 양궁 너튜브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김민지란 사람이 찾아와서 이해원 너 만나고 싶다고 미 대사관 출입증 보여주더라.”
“뭐?”
쉼표 없이 빠르게 이어진 말에, 이해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은 함께 대문 앞 CCTV 모니터를 살폈다.
“초인종만 안 누르지, 갈 생각을 안 하는데?”
“일단 서한율한테 톡 보냈어. 그저께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사람들하고 만났었다고 하니, 적어도 진짠지는 확인할 수 있겠지.”
“다른 차가 또 오는데요? 그냥 지나가는 찬가… 싶었는데 세우네?”
이해원은 CCTV 영상을 확대했다. 새로 온 차가 왠지 낯익었다.
“아….”
그 차에서 내린 건 슈트 차림의 남성. 그는 대문 앞에 서 있는 김민지, 그리고 미 대사관 차량을 번갈아 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는 사람이야?”
이해원은 작게 한숨 쉬었다.
“이채욱. 이우그룹 부회장의 둘째 아들이에요. 이채현 사장님의… 사촌오빠이기도 한.”
그때 미 대사관 차량에서 건장한 외국인 남성이 내렸다. 이채욱이 타고 온 차 운전석에서도, 어깨가 떡 벌어진 남성이 내렸다.
JE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싸움이라도 한판 벌어질 분위긴데?”
한편, 이채욱은 김민지와 찰리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제임스의 단서를 얻고자, 그와 게이트 방어선에 동행했던 이해원을 찾아왔구나.’
불쾌감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들이 국내 1130 증상자들에게 접근, 각성 능력 실험 연구소를 세울 예정이니 협조 부탁한다고 꼬드기고 있단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게이트가 열려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쩌면 한 나라의 희망이 될지 모르는 능력자들을 빼가려 하다니.’
그리고 부회장인 아버지는 제임스가 미스터리 해커와 관련된 인물이냐는 물음에 부정하지 않았다.
김민지가 통역사 역할도 겸하는 재미교포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이채욱은 선을 긋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영어로 물었다.
[미 대사관 분들께서 늦은 시간에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김민지도 그를 알아본 상태였다. 일찌감치 1130 증상자들을 조사하고, 이번 대한민국 정부의 각성자 국가 관리 정책 계획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한 대기업 이우그룹. 그곳 부회장의 차남.
‘이해원은 증상자 명단에 없었어. 그렇다면 이우그룹은 제임스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처럼 확인하러 온 걸까?’
김민지는 한국어로 대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인데요, 이채욱 씨. 어쨌든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소속 김민지라고 합니다.”
“…네. 이미 절 아시는 듯하니 따로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악수는 손끝만 대충 스치듯 하고 끝났다.
“그런데 정말 여기에서 뭐 하고 계셨던 거죠? 안에 사람이 없나요? 아니면….”
딩동. 이채욱은 초인종을 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절당하고도 알짱거리는 건가.”
“혹시 지금 비꼬시는….”
이해원이 응답했다.
-[네.]
“이채욱입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
잠깐의 침묵 뒤, 대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