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9화 (319/427)

“좀 위험한 거 아냐? 이런 도심 한복판에서 생포한 괴물을 가지고 실험한다고?”

“게방부 사람에게 들어보니, 국내에 괴물을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이 한정적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대신에 아주 작고 약한 것들만 데리고 한다는데….”

한율은 어깨를 으쓱이곤 차에서 내렸다. 앞차에서도 차남석이 누군가와 통화하며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자.”

펫펫바이오는 2층부터 4층이었다. 차남석이 엘리베이터에서 누른 버튼은 2층. 카드 리더기가 설치된 걸로 보아, 3층과 4층은 출입증을 찍어야 갈 수 있는 듯했다.

딩동. 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 펫펫바이오 입구에서 사람이 나왔다.

“어서 오세요. 찐빵이 견주 차남석 씨 맞으시죠? 잠시만 여기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찐빵이 곧 데려오겠습니다.”

펫펫바이오 직원은 한율과 JE에게도 꾸벅 인사하더니,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힌 문으로 향했다. 삐빅. 그가 문 옆에 설치된 리더기에 출입증을 대자 문이 열렸다. 그러나 바로 앞에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어,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외부인은 로비까진가.’

한율은 겉에서 본 회사 규모에 비해 다소 좁은 로비를 둘러보았다. 병원 로비처럼 상당히 깔끔했다. 벽에는 이곳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동물용 의약품 포스터가 걸려 있었는데, 예전에 임시 보호했던 고양이들이 먹은 약도 있었다.

삐릭. 펫펫바이오 직원이 돌아왔다. 그가 든 이동장에서 찐빵이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왕!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찐빵이 밥 잘 먹고 잘 싸고, 여러 가지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 소견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끼양, 끼양, 끼양! 직원이 나온 곳 문 쪽에서 새 소리 같기도 하고, 개 소리 같기도 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율은 모르는 척 물었다.

“이건 무슨 소리예요? 고양이나 강아진 아닌 것 같은데.”

“아…. 엄살이 심한 강아지요. 울음소리가 조금 특이하죠?”

괴물 울음소리 같았는데. 아무리 작고 약한 괴물이라고 해도, 개와 같은 공간에 두었던 건가?

한율은 닫힌 안쪽 문, 펫펫바이오 출입문, 엘리베이터, 마지막으로 바깥 전경이 탁 트인 통창을 보았다.

‘사람을 상대로 한 보안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지만.’

통창은 참 약해 보였다.

“그럼 저는 이만 일이 있어서….”

왕! 왕! 이번엔 찐빵이 돌연 닫힌 문 쪽을 향해 크게 짖었다.

“찐빵?”

벅벅. 낑낑거리며 이동장을 마구 긁기까지. 그 행동은 마치, 조금 전 안에서 들린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찐빵, 너 왜 그래?”

펫펫바이오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웃었다.

“안에 있는 친구랑 헤어지는 게 아쉽나 보네요. 그럼 전 이만. 안녕히 가세요.”

“네, 찐빵이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펫펫바이오를 나왔다. 끼잉, 끼잉. 여전히 애타게 우는 찐빵을 데리고서.

“형은 곧장 양평으로 갈 거죠?”

“어. 가다가 이놈 먹을 사료도 좀 사고. 마트에 재고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만약 재고 없으면 연락해요. 마트 보이면 들러서 살펴볼 테니까.”

“알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 나중에 뵙겠습니다, 선배님.”

“어. 운전 조심히 해.”

“네.”

차남석이 먼저 찐빵을 데리고 차에 탔다. 그리고 한율도 자신의 차 운전석에 오르려 할 때였다.

우웅. 이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형. 통화 괜찮아요. …미국이요? 거긴 왜?”

한율이 통화하는 동안, JE는 차에 기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게이트 방어선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대부분 대피해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닫힌 가게도 많고.

두두두. 기이잉! 하늘에선 헬기와 전투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멀지 않은 곳에선 무슨 일인지 총성도 들렸다. 사이렌 소리도.

‘이런 소음을 계속 듣고 있다 보면 멀쩡했던 사람도 노이로제 걸리겠네.’

스타믹스 단톡방에는 그새 톡이 잔뜩 쌓여 있었다. 다들 어지간히 불안하면서도 심심한 모양이었다.

“……?”

톡을 훑던 JE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침 한율이 통화를 끊고 운전석에 올라, 그도 조수석에 탄 뒤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서한율, 이 사진 봐봐.”

“……?”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JE의 핸드폰을 받았다. 짧게 깎은 머리에, 얼굴엔 검댕을 묻힌 군인의 사진이었다.

‘왠지 낯익은….’

“아.”

워낙 군복이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니었던 터라 누군지 바로 알아차리는 게 힘들었다.

“맞지? 해원이 시궁창으로 끌어들였던 놈.”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인섭. 그런데 이 사진 어디에서 난 거예요?”

“에이플 형이 지인한테 받았대. 인천 쪽 출입 통제 구역 벗어날 때 왠지 낯익은 인물이 보여서, 혹시 예전에 아이돌이었던 사람 아니냐고 찍어서 보내줬다더라.”

한율은 다시 안인섭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VEL 엔터의 만행과 함께 이런저런 일이 폭로되어 MOHE를 탈퇴하고 조용히 입대하더니. 게이트가 열린 뒤로 군에서 제대로 구르는 모양이었다. 늘 입가에 띠고 있던 가식적인 미소나 화사함은 전혀 보이지 않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퀭한 인상만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에게도 추적마법을 심어뒀었는데.’

아직도 남아 있으려나.

한율은 잠깐 든 의문을 가벼이 날리곤 시동을 걸었다.

“가다가 문 연 식당이 보이면 좋겠네요.”

“편의점 김밥이라도 감지덕지할 것 같다.”

숙소 털렸어요

“이 동네에 이렇게 사람 없는 거 처음 본다.”

한율의 차는 어스래빗 숙소가 있는 동네에 들어섰다. 농담 삼아 회장님 동네라 불리는 부촌은 아주 고요했다.

“그런데 원래는 너희 숙소, 안전 거처로 사용하려고 일부러 튼튼한 요새처럼 된 거 구입하고 리모델링한 거 아니었어?”

“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을 지켜봐야 하잖아요. 게이트와 가까울수록 물류 공급도 끊기는 중이고. 몇 달 정도 지나면….”

“……?”

말을 하던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JE도 의아한 얼굴로 한율의 시선을 따랐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늘 사생 스토커들이 모였던 자리. 그곳에 세워진 차 한 대가 급히 출발하는 게 보였다. 꼭 한율의 차를 보고 도망가는 것처럼.

“왜? 아는 차야?”

“아뇨.”

한율은 미간을 찡그렸다.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방금 급히 떠난 차.”

어스래빗 숙소로 들어간 뒤, JE가 조심스럽게 한율을 살폈다.

“신고부터 하지? 내가 봤을 땐 그 차가 범인 같은데.”

“하….”

한율은 구겨지는 미간을 손끝으로 살살 만졌다. 숙소 안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처럼 깨끗했다. 사라진 물건들이 적잖아, 아주 휑할 지경이었다.

신발장에 있던 고가의 신발부터 시작해 부피가 크지 않은, 돈 될 만한 물건이 죄다 사라졌다.

“멤버들한테도 연락해. 피해 물품이랑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지. 너, 4천만 원짜리 손목시계….”

“그건 전에 왔을 때 따로 챙겨서 괜찮아요. 멤버들의 비싼 액세서리도 올 때마다 조금씩 챙겨서 펜션으로 갖고 가긴 했는데….”

한율은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보안업체에도 연락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게이트 괴물과의 전투 여파로 일부 망이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인력 부족까지 겹쳐 실시간 모니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체 침입 알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걸로 보아.]

“대문 열쇠를 갖고 있고, 비밀번호도 아는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단 말씀이시죠?”

-[직원들을 보내 확인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건에 부합하는 건 멤버들과 매니저 조유찬, 그리고 데뷔 때부터 어스래빗 숙소 청소를 담당한 가사도우미뿐이었다.

한율은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현관 도어락은 보안업체와 연결되어, 누군가 출입하면 곧바로 한율에게 알림 메시지가 왔었다. 하지만 숙소에 들어왔다가 한율에게서 ‘숙소엔 어쩐 일로 갔냐’라는 연락이 오지 않자, 방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곤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닐까. 아니면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먼저 알았거나.

‘한 번도 물건에 손댄 적 없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누구보다 믿음을 줬다가 등에 칼을 꽂는다. 처음부터 그런 부류가 아니더라도, 궁지에 몰리면 언제든 양심을 저버릴 수 있는 게 인간이다. 하물며 갑자기 집 잃은 난민 신세가 된 사람이 많은 상황.

‘나도 참 안이해졌네.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으니.’

아무리 외부 공격에 대비해 튼튼한 집을 구하면 뭐 하나. 내부 관계자에 의해 이렇게 쉽게 털리는걸.

한율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식장에 진열한 팬들의 선물 중, 비싼 물건이 놓였던 곳만 군데군데 비었다.

“형, 숙소 털렸어요.”

CCTV에 녹화된 영상도 살폈다.

바로 어제 아침, 가사도우미가 숙소에 들어왔다 나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리고 한율이 제임스가 되어 초거대 괴물과 싸웠던 그 시각, 웬 트럭 한 대가 차고 앞에 멈췄다.

여름이라 더울 텐데도 모자와 마스크, 긴 옷을 입은 남자가 대문을 열쇠로 열고,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눌러 들어왔다. 곧 차고 문이 활짝 열렸다.

차고 CCTV. 조금 전 트럭이 차고로 들어왔다. 차에선 쌍둥이처럼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둘이 더 내렸다. 그리고 물건을 열심히 옮겨 싣기 시작했다.

차고에서 집안으로 연결된 도어락 비밀번호는 가사도우미도 모르는 것이었으나, 안에서 열어주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한율은 차고 옆 지하실로 향했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하실엔 양평 펜션이나 이해원의 집 창고처럼 재난 발생 시 필요한 온갖 물품과 비상식량을 쌓아뒀었는데, 그것도 몽땅 사라졌다.

잠시 후, 보안업체 직원들이 다녀가고 난 뒤.

유호와 라이언, 조유찬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에, 본가로 간 박가람과 이건우, 강보배도 당장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출발하면 시간도 늦고, 해가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기에 내일 아침 일찍 오기로 했다.

길우성과 차남석은 차남석이 찐빵을 펜션에 데려다 놓은 뒤에.

한율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해원에게 두 사람과 동행해달라고 부탁했다.

“대체 밤새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털어간 거야? 그런데도 아무도 몰랐다니….”

유호는 헛웃음을, 라이언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횡설수설했다.

“이건 아냐. 정말이면 완전 나빠. 이모님 찾아야 해. 직접 얘기 들을 거야. 나쁜 놈들한테 협박당했을지도 몰라.”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회사에서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일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몰래 온 거잖아요. 우리가 없는 걸 뻔히 알면서.”

CCTV 영상을 본 조유찬의 얼굴은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애들이 데뷔 때부터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바로 곁에서 다 지켜봤으면서…!”

하. 크게 숨을 내뱉은 그가 물었다.

“경찰은 아직 안 온 거지?”

“네. 괴물 신고 접수가 들어오면 그곳을 우선 둘러보라는 지침이 내려와서 늦을 것 같대요. 그리고… 요즘 이런 절도 사건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라네요.”

한율은 황량해진 거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진작 비밀번호를 바꾸고 자물쇠도 여러 개 더 설치했어야 했는데. 제 불찰이에요.”

“도둑질한 사람이 나쁜 거지, 하뉼은 잘못 없어!”

“라이언 말이 맞아, 한율아. 넌 잘못 없어. 어쨌든 나는 회사로 가서 이모님… 아니, 그 아줌마 서류 살펴볼게. 너희는 어떤 물건이 얼마나 사라졌는지, 본가에 있는 애들하고 영통이라도 하면서 정리해놔.”

“네.”

한율은 전체적으로 사라진 물건 파악을, 유호와 라이언은 개인 물건부터 살피기로 했다. 외부인인 JE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유호에게 말했다.

“촬영은 내가 할게.”

“어. 고마워, 지은아.”

* * *

한율의 연락을 받은 차남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원이랑 같이? 왜?”

-[그 형 차가 더 튼튼해서요. 아무튼 형 도착할 때 즈음이면 펜션에 있을 테니까, 길우성이랑 셋이서 같이 와요.]

뚝.

“…….”

제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태도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차남석은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상대가 서한율인 까닭이었다.

‘이유 없이 괜히 이럴 놈이 아닌데.’

한참 동안 낑낑거리던 찐빵은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할아버지 보러 가자는 말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남석 씨! 찐빵아, 안뇽?”

펜션에 도착해보니 길우성과 이해원이 갈 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부도 나와 있었다.

왕! 이동장 문을 열어주자 찐빵은 반가워하는 길우성을 지나쳐 곧장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왕! 왕!

“이놈 데려오느라 고생 많았다. 그나저나 숙소에 도둑이 들었다니….”

“가서 없어진 물건 살피고, 옷 같은 것도 챙겨올게요.”

“거긴 아직 안전한 거 맞지?”

“네.”

“그래도 조심히 다녀와야 한다. 운전 조심히 잘 부탁해요.”

이해원이 웃으며 차남석의 조부에게 대답했다.

“네,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가기 전에 화장실 좀. 이것도 둘 겸.”

“빨리 와, 남석 씨.”

차남석은 오는 길에 산 사료와 그릇을 들고 객실로 향했다. 그러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

다른 객실 2층 발코니. 이쪽을 보던 계나리와 눈이 마주쳤다. 헉. 계나리가 이런 입 모양을 하곤 안으로 휙 들어갔다.

“…….”

며칠 동안 펜션에서 마주치고, 오늘 아침엔 함께 서한율에게 양궁도 배웠으나 아직은 퍽 어색한 사이였다. 서한율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도 듣지 못했고.

만약 이프림이 계나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이미지와 인기에 큰 타격이 올 거란 걸, 서한율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해원도 마찬가지. 분명히 싸잡아 헐뜯을 인간이 많을 거란 걸 잘 알 텐데.

‘서한율의 사람 사귀는 기준을 모르겠네.’

그러나 30여 분 뒤.

차남석은 어렴풋이 그 기준을 알게 되었다.

“교통사고라도 났나?”

톨게이트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앞서 달리던 차들이 비상 점멸등을 켠 채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경고하는 것처럼 경적을 시끄럽게 울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조류 괴물이 가드레일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그것과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차는 앞 유리창이 깨지고 보닛이 우그러진 채 중앙분리대에 비스듬히 세워졌고.

막 발생한 사고인지, 아직 현장엔 구급차나 경찰차가 없었다. 대신 몇몇 사람들이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내렸다.

“이, 이거 살아있어요!”

“가까이 가지 마세요! 위험해요!”

“여기까지 어떻게 날아온 거야?!”

허억. 길우성은 입을 막고선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운전자 괜찮을까? 우리도 내려서 살피는 게….”

“안….”

“안 돼.”

차남석이 대답하기 전, 이해원이 먼저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사고 현장을 피하더니 차 속도를 높였다.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을 거야.”

“그래도….”

“…….”

이해원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길우성은 그런 이해원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시로 주변과 하늘을 경계하는 이해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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