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0화 (320/427)

차남석도 창밖을 살피다가 이해원에게 말했다.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은데요.”

“…조류형 괴물은 무리 짓는 습성이 있단 소리를 들었거든. 그래서 빨리 자리를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길우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아까 그 사람들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 괴물도 아직 살아있는 것 같던데…!”

“괜찮을 거야. 저기 헬기도 오잖아.”

두 사람은 이해원이 가리킨 하늘을 살폈다. 정말로 이쪽으로 헬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무리가 있었다면 저 헬기, 여기까지 무사히 오진 못했겠지?”

“잠깐.”

차남석은 낮게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헬기가 휘청거리는 느낌이었다.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높은 곳에 낀 먹구름 탓에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뒤쪽으로 희미하게 연기도 나는 것 같았다.

차남석은 핸드폰 카메라를 실행, 헬기를 확대했다.

“……!”

헬기 바로 뒤. 조금 전 조류 괴물과 닮은 무언가의 날개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헬기도 무기가 장착된 전투용이 아닌, 방송국에서 사용하는 촬영용 헬기였다.

‘괴물을 추적하거나 신고를 받고 오는 게 아니었어!’

“차 세워요! 저거 지금 쫓기고 있는 거예요! 아니, 피해!”

그 순간이었다. 헬기가 크게 휘청거리더니 낙하하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는 거리만큼 헬기 승무원들이 다급히 탈출하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

끼이이익! 이해원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오른팔을 뻗어 길우성을 보호했다. 그의 눈이 은은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길우성은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으악, 엄마!”

헬기는 불과 수십 미터 거리를 두고 추락했다. 콰앙! 그 여파로 도로와 헬기의 파편, 후폭풍이 차를 덮쳤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차남석은 단단한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걸 발견했다. 게이트가 열린 날, 서한율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원의 눈이 파랗게 변한 것도 보았으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 숙여!”

화악! 이해원의 손목에 있던 염주 팔찌에서 보호 마법과 함께 강력한 공격 마법이 발동되었다.

정말로 사이비 종교 아니에요

차남석은 머리를 최대한 숙이고 웅크렸다. 그러나 이어진 충격은 거센 바람에 차가 흔들리는 정도.

‘고작 이 정도로 그친다고?’

고개를 들어보니 은은한 푸른빛의 무언가가 차를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

차남석은 눈을 부릅떴다.

‘이건 분명….’

작년 12월 서울 최초 발생 게이트를 막았던 막. 그리고 바로 지난주 강서구에 발생한 게이트를 막았던 것과 흡사한 장막이었다. 차를 향해 날아왔던 크고 작은 파편은 그것에 튕겨 나간 것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이해원은 길우성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뻗은 동작 그대로, 조심스럽게 앞을 살폈다. 하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의 눈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스륵. 차를 감쌌던 푸른색 장막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뭡니까?”

흠칫. 이해원이 어깨를 떨며 차남석을 돌아보았다.

저 앞에 추락한 헬기에선 불이 활활 타올랐다. 끼아아악! 조류 괴물들은 사냥에 성공했다는 기쁨에 취한 듯 길게 울며, 그들의 차를 지나쳐 날아갔다.

길우성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우리, 산 거야?”

차남석은 아랑곳없이 이해원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도, 각성자야?”

푸른색 장막을 전혀 못 봤는지, 길우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엉? 무슨 소리…. 아니, 우선 서로 다친 데가 없는지 살펴야지. 괜찮아요, 선배님?”

“어, 응…. 난 괜찮아. 우성이 넌?”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 외엔…. 남석 씬 괜찮냐? 아니, 헬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 어떻게 됐어? 내려도 돼? 내려도 되겠지? 괴물….”

“진정해, 우성아. 우선 차 갓길에 세울 테니, 탈출한 헬기 승무원들부터 찾자. 신고도 하고.”

뒤론 다른 차들이 천천히 다가오다 멈추고 있었다. 길우성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아, 네.”

이해원이 차남석을 바라보았다.

“…….”

차남석은 말없이 이해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그의 정체를 따지는 것보다, 헬기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찾는 게 우선이므로.

한편으론 서한율이 떠올랐다. 강서구에 게이트가 열렸을 때도 서한율의 눈이 푸른색으로 물들었었다. 조금 전 이해원처럼.

‘서한율 그 녀석도 뭔가 있는 게 분명해.’

* * *

한율은 길우성의 횡설수설 전화, 이해원의 상황 보고 톡을 받곤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갈수록 게이트 방어선과 통행 제한 구역을 벗어나는 괴물이 늘고 있었다. 차남석과 라이언이 겪은 미니 게이트 사건도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해원을 붙여둔 게 다행이었다.

“아까 핸드폰에서 우성이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던데. 왜? 무슨 일 있대?”

“눈앞에서 괴물들에게 쫓기던 방송국 헬기가 추락했대요. 특별히 다친 곳은 없고요.”

유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에서?”

“남양주 톨게이트 지나서요.”

“설마 또… 미니 게이트가 열린 건 아니겠지? 어쨌든, 그럼… 다시 펜션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남석이도 그렇지만, 우성이가 정말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라이언이 동감을 표했다.

“우성, 실제로 괴물 가까이에서 본 적 없어. 그래서 더 놀랐을 거야.”

“헬기를 공격한 괴물들이 그쪽으로 가서요. 그리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상체가 앞으로 쏠렸던 터라, 병원부터 가라고 했어요. 지금은 놀라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통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했어.”

딩동.

마침, 출동이 늦을 거라던 경찰과 조유찬이 비슷하게 도착했다.

절도 사실을 인지하게 된 상황 설명부터 시작해 CCTV 영상, 그리고 가사도우미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 경찰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사람 혹시, 다른 연예인 집 청소도 하고 그랬어요? 여기만 매일 관리한 게 아니라?”

조유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주일에 두세 번, 애들이 해외 스케줄로 오래 숙소를 비울 땐 한 번만 왔었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돌 숙소도 맡는단 얘기를 들은 적이…. 설마.”

“아직 조사 중이라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하필이면 이 사람이 일하던 어떤 집에서도 비슷한 절도 사건이 일어나서요.”

경찰은 확인된 도난품 리스트, 그 물품이 있던 장소 여기저기를 촬영했다. 지하실로 내려가서 피해 물품과 양을 말해줬을 땐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전투식량을 그렇게 많이….”

한율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게이트 지구 멸망설을 철석같이 믿은 멤버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한때 유행했었잖아요. 군 전투식량 먹어보기.”

경찰이 돌아간 후. 한율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모두 바꾸곤 다시 한번 방을 살폈다. 그래도 쥐 발톱의 때만큼 양심에 찔리긴 했는지, 아주 엉망으로 뒤지진 않았다. 신발도 벗고 들어왔는지 바닥도 깨끗하고.

‘뭐가 어디에 있는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을 테니, 그걸 아들 패거리에게 상세히 알려준 것일지도.’

차남석과 길우성, 이해원이 도착한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다친 군인들 치료가 우선이라, 일반 환자가 계속 밀려서 진료받는 것만도 한참 걸렸네요. 경찰은 뭐래요?”

“그 아줌마, 여기만 턴 게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아들이랑 그 아들 친구들이랑 같이 범행을….”

하아. 조유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 테니까, 일단 없어진 물건부터 확인해. 그런데 너희들, 밥은 먹었어?”

“아니요.”

“그래. 애석하지만, 다 같이 굶어야겠다.”

“……?!”

멍청한 얼굴로 들어와 멍하니 이야기만 듣던 길우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먹을 거 없어, 형? 즉석식품이나 닭가슴살 같은 거, 엄청나게 쌓여 있었잖아.”

라이언이 울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먹을 것도 다 훔쳐 갔어.”

“하다못해 가람이 형이 숨겨둔 초콜릿이라도….”

“응. 다 훔쳐 갔어.”

길우성이 믿을 수 없단 얼굴로 냉장고로 달려갔다. 벌컥. 냉장고엔 멤버 중 누군가 마시다 만 음료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냉동실엔 박가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이.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한 거 아냐? 김치랑 반찬, 한약까지 털어간다고? 이 와중에 민초는 손끝 하나 건들지도 않은 게 웃기기도 하네. 하!”

“김치랑 반찬 턴 건 나야. 전에 펜션으로 다 가져갔잖아.”

“아, 그나마 다행… 인 게 아니라!”

“우성아, 올라가서 네 방부터 확인해.”

“어, 알았어!”

쿵쿵. 길우성이 계단을 부리나케 올라갔다.

팔팔하네. 한율은 고개를 돌려 차남석과 이해원을 바라보았다.

“…….”

차남석은 시선이 마주치자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해원은 어색한 미소를 짓다 말았다.

라이언이 힘없이 소파에 앉았다.

“배고파…. 문 연 식당 없겠지?”

“네. 여기까지 오면서 살펴봤는데, 한 군데도 안 보이더라고요.”

“이 동네도 다들 대피하는 분위기니까. 물가도 굉장히 올랐고. 어쨌든 오늘은 여기에서 자야 할 것 같은데…. 내일 가람이한테 펜션에 들러서 먹을 것 좀 챙겨서 오라고 할까?”

JE가 손을 들었다.

“우리 집 가시죠. 냉장고에 고기 쌓여 있습니다. 즉석밥도요.”

라이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사랑해요, 선배님.”

어스래빗 숙소와 JE의 집은 걸어서 불과 3분 거리. 차남석과 길우성이 도난 물품을 확인해야 하는 터라, 한율과 JE만 가서 먹을거리를 챙겨오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비었던 JE의 집은 미약한 먼지만 내려앉아 있을 뿐, 무사했다. 두 사람은 냉장고를 열어서 고기부터 챙겼다.

“길우성이야 직접 못 봤으니 그렇다 치고.”

이해원이 염주 팔찌의 마법을 발동시켰단 이야기를 들은 JE는 고개를 흔들었다.

“차남석 걘 신중하고 의심도 많은 타입 아냐? 그래서 아직 길우성한테 미스터리한 푸른 장막이 자신들을 보호했단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고. 어떻게 할 거야?”

한율은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후, 다시 어스래빗 숙소.

“다행히 조리도구랑 그릇은 안 훔쳐 갔네.”

지글지글. 고기가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거실 가득 퍼졌다.

“…….”

“…….”

그러나 식사 분위기는 조용했다.

조금 전까진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떠들었지만, 몇 년 동안 고생하면서 번 돈으로 구매, 혹은 팬에게 받은 선물을 도둑맞았다. 그것도 오랫동안 믿고 숙소를 맡겼던 사람에게. 다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차남석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아냐. 너 오는 길에 큰일 날 뻔했잖아. 쉬어. 나랑 라이언이 할게.”

조유찬이 팔을 걷어붙였다.

“형이 할게. 호 너도 쉬어.”

“올 때 형이 운전했잖아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설거지하면서 복잡해진 마음도 다스리고 싶거든요.”

“그래….”

한율은 그릇을 정리하고 계단을 밟았다. 차남석이 물었다.

“어디 가냐?”

“바람도 쐴 겸 옥상이요.”

“같이 가.”

“나도.”

길우성이 따라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려 하자, 차남석이 손을 가볍게 저었다.

“넌 나중에. 서한율이랑 둘이서만 할 얘기 있어.”

“엉?”

조유찬이 말했다.

“얘들아, 하늘에서 안 좋은 물질 떨어질 수 있으니까 마스크 쓰고 가.”

옥상으로 올라간 한율은 조명부터 환하게 켰다. 옥상은 지난번에 소각한 괴물의 시체 흔적 없이 깨끗했다.

번쩍번쩍. 저 멀리 조명탄, 먹구름과 겹친 괴물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바람에 실려 온 화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내 눈앞에 이런, 영화 같은 광경이 펼쳐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둘이서만 할 얘기라는 게 뭐예요?”

한율을 빤히 바라보던 차남석이 물었다.

“이해원도 명상센터 멤버냐?”

“…….”

“은훤이 형이 그러던데. 이해원도 집에서 명상한다고.”

“미리 말해두는데, 정말로 사이비 종교 아니에요.”

“부정하지 않는 거 보니, 멤버가 맞긴 한 거네?”

한율은 어차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미스터리 해커 집단과 모종의 관계가 있단 정보를 은근히 흘리려 했다. 이미 부모도 그렇게 알고 있고.

‘원래는 한국을 떠날 때 즈음 흘리려고 했지만.’

한율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명상센터 멤버 중엔 각성자 제임스도 있어요. 미스터리 해커 집단 일원이기도 한.”

“……!”

상당히 놀랐는지, 차남석이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미간을 구겼다.

“그게…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어?”

“전에 해원이 형이 VEL 엔터에 대해 폭로했을 때, 누군가 해원이 형한테 자료 보내줬다고 알려졌잖아요. 그거, 제임스의 친구가 한 일 같아요.”

“그럼 서한율 너도, 제임스를 만난 적이 있는 거야? 호 형이랑 가람이 형도?”

고개를 저으며 태연히 거짓말.

“호 형이랑 가람이 형은 제임스가 센터 멤버란 것도 몰라요. 저는… 제임스한테 ‘어떤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

“형. 궁금한 게 많겠지만, 지금은 다 말해줄 수 없어요.”

한율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차남석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요.”

쿠웅. 하늘에서 격추된 괴물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한강으로 떨어졌다.

한율은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만 더 견뎌요.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들은 죽으면 다시 생성되는 게임 속 몬스터가 아니니까, 언젠가는 인간이 역전할 날이 올 거예요.”

“…….”

그때였다.

삐-, 삐-,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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