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서 긴급 재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한율도, 멍하니 한율을 바라보던 차남석도 핸드폰을 꺼냈다.
[송파구 일대 단체 이상 행동 보이는 동물 급증. 부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고 문단속 철저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야, 서한율….”
황급히 실검을 검색한 차남석이 한율을 불렀다. 그가 한 속보 기사를 보여주었다.
“여기….”
기사엔 도로를 미친 듯이 달리는 개와 고양이, 쥐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뒤에 찍힌 건물 2층은 통창이 산산이 박살 나 있다.
“펫펫바이오… 맞지?”
왜 우릴 버렸어요?
-[동물에게 모종의 영향력을 끼치는 괴물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펫펫바이오에 있던 게 아마 그런 종류 아니었을까요? 찐빵이도 괴물 울음소리 듣고 갑자기 낑낑거리고 그랬다면서요.]
한율은 자신의 방 침대에 걸터앉은 채 계나리와 통화했다.
“인터넷 보니까 동물들이 우왕좌왕 달리거나 헤매기만 할 뿐, 크게 공격성을 드러내진 않던데. 아주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
-[네. 괴물과 거리가 멀어지면…. 아니, 잘 모르겠어요.]
계나리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원래는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동물도 그렇고. 괴물 중에서도 약한 개체는 금방 다른 괴물에게 죽거나 했으니까.]
“지금은 서울에 살아있는 동물이 많지. 그럼 이전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능력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개들, 겁이 많고 주인밖에 모르는 고양이들이 덜 휘둘렸다는 걸 보면 크게 위협을 느낄 필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해원 씨랑 미국에 가신다고요?]
“응. 나도 마침 미국에 볼일이 있거든. 어쩌면 거기에서 곧장 마요르카로 갈 수도 있고.”
-[아….]
작은 탄식에서 여러 감정이 느껴진다.
-[진희 언니가…. 조유찬 씨가 이번 이탈리아 패션쇼 참석이, 오빠랑 하는 마지막 스케줄이 될지도 모른다고 굉장히 감성에 빠졌다고 그랬는뎅.]
“…그래?”
예정대로 이탈리아 패션쇼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할 땐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음…. 그럼 내가 없는 동안 구동이 잘 부탁해.”
-[그 말씀은.]
계나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곧장 마요르카로 안 가고 한국에 들렀다가 가신다는 거죠?]
“생각해 보니까, 달냥이랑 구동이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서. 그 녀석들도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테고.”
-[넵. 그럼 미국엔 언제 출발할 예정이에요?]
“이르면 내일이나 모레.”
* * *
“후우….”
서한율과 통화를 끝낸 계나리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 내려앉은 펜션 전경은 홍보용 사진처럼 참 예뻤다.
‘이르면 내일이나 모레.’
서한율이 해외 스케줄로 떠났을 때와 달리 벌써 긴장되었다. 지금은 게이트가 열린 상태이므로.
‘강한 각성자들이 각자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요령을 터득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그동안 게이트 방어선이 잘 지켜져야 할 텐데.’
…퍽.
풀장 옆 양궁 과녁 앞. 활을 쏴보곤 크게 한숨을 쉬는 계마루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아직도 펜션을 떠나지 않은 나기혁도 있었다. 그가 계마루에게 무어라 조언을 해준다.
계나리는 발코니 난간에 팔꿈치를 올려놓곤 구경했다.
‘저 사람도 아스대 양궁 메달권이었던가?’
사람들은 아이돌 스포츠 대회를 두고 애들 재롱잔치나 다름없다며 비웃었지만, 이렇게 도움 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양궁은 전문가에게 조금이라도 가르침을 받은 뒤 활을 잡으니.
‘그런데 나기혁, 정말 무슨 능력을 각성했는지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하긴,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계나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시선을 멀리 던졌다.
‘우성이 오빠가 죽고 율이 오빠가 떠난 뒤, 아이돌에 관한 관심을 거의 끊었었으니까.’
어쨌든 계나리는 지금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게이트 방어선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하겠지만, 게이트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유족이 들으면 미쳤냐고 소리 지르겠지만… 본래 그녀가 겪은 시간과 비교하면 정말로 지금이 백 배, 천 배 더 나았다.
‘지금은 율이 오빠가 있어. 내 시간대와 다른, 율이 오빠가.’
사실 계나리는 지난주 진짜 게이트가 열렸을 때, 서한율의 마법이 그 거대한 게이트를 감싸고 몇 시간 동안 내내 괴물들을 가둔 걸 보고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성을 내쳐두고 서한율에게 소리 지르며 따지고 싶었다.
이만한 힘이 있었으면서, 왜 그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마요르카에 열릴 게이트가 가장 위험하다곤 해도, 가족과 멤버들이 한국에 있었잖아요. 왜 그렇게 등 돌리고 떠나버린 거예요? 오빠한테 중요한 건 여기 없었어요?
왜 다 버렸어요?
…라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사람이지만, 현재는 다른 선택을 하고, 모두를 지켜주고 있었다.
이 고요하고 아늑한 펜션처럼.
‘지금 오빠의 선택에 내 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있겠지? 응, 있을 거야. 내가 우성 오빠를 구했는걸.’
계나리는 혼자 히죽히죽 웃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자, 나도 수련이나 빡세게 해볼까?’
다음 날, 어스래빗 숙소.
이건우와 박가람, 강보배가 도착했다. 어제 영상통화를 하면서 어떤 물건이 사라졌는지 대충 파악했지만, 실제로 와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서 다시 리스트를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우리 개인 물건도 물건이지만, 이프림이 준 선물도 도둑맞았잖아.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 목격자나 물건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유찬이 형, 회사는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응, 크게 문제없었어. 몇몇 직원들이 출근 중이기도 하고.”
“출근이요? 이 시국에?”
“하하하. 괴물들이 도로에서 마라톤을 뛰어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단다…. 참고로 오 팀장님, 월요일부터 매일 출근 중이셔. 대표님도.”
“아주 회사가 통행 제한 구역에 포함되어야 쉴 사람들이네, 이거.”
“그래서 임시로 사무실을 외곽으로 옮기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먹고는 살아야지. 물가도 굉장히 올랐으니까.”
“그러려면 우리도 일해야….”
조유찬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수입이랑 지출, 콘텐츠 관리하는 일 정도거든. 너희들 미국에서 팔린 앨범 수익, 아직 못 받았잖아.”
“아.”
“도둑질당한 거 이프림한테 어떻게 알리지? SNS? 회사 공식 입장?”
“가람, 갖고 온 과자 먹어도 돼?”
“엉. 먹어, 먹어.”
이틀 만에 멤버 전원이 모였더니 시끌벅적하다.
한율은 다 모인 김에 알렸다.
“저 오늘 밤이나 내일, 미국 가요.”
“뭐?!”
“갑자기?”
“왜?”
“개인적인 일로요. 길우성.”
“어! 같이 가자고?”
큰일 날 소릴.
한율은 달냥의 장난감 인형을 턱 건넸다.
“달냥이 부탁한다. 관리동 2층에서 지내면서 돌봐.”
길우성이 인형을 불끈 쥐었다.
“OK!”
“혼자 가는 거야?”
“아니요. 해원이 형이랑 같이 가요.”
조유찬이 조심스레 물었다.
“가면 언제 돌아오는데?”
“25일 전에요. 그러니 이번 절도 사건이랑 펜션, 저 없어도 잘 부탁드려요.”
“응, 맡겨둬.”
툭. 차남석이 무심한 얼굴로 한율의 팔을 가볍게 쳤다.
“조심히 갔다 와라.”
미스터리 해커 집단 일 때문에 미국에 간다고 생각한 걸까.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25일 전에 돌아오려면 서둘러서 움직이는 게 좋다. 한율은 이우그룹 부회장을 통해, 오늘 밤 청주 국제공항에서 뉴욕으로 출발하는 항공권을 구했다.
므아, 므아앙.
양평 펜션에 들러 여권을 챙기고 짐을 싸는 중. 달냥이 또 어디 가냐는 듯 길게 항의했다. 한율은 달냥을 정성껏 마사지해주듯 쓰다듬었다.
“미래를 위해 방해물 제거 좀 하고 올게.”
므앙?
공항까진 JE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운전대를 잡은 JE가 물었다.
“그런데 둘 다 미국엔 무슨 일로 가는 거야?”
“비밀이에요.”
“전 다녀와서 말할게요.”
“둘이 서로 목적이 다른 거지?”
“네. 도착하면 거의 따로 움직이게 될 거예요.”
JE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했다.
“그나저나 너희 둘, 미국 가는 거 좀 위험하지 않냐? 요즘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각성자 정보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잖아. 아무리 방송에서 별 볼 일 없는 능력이라고 보여줬어도…. 특히 해원이 같은 경우엔 제임스랑 아는 사이라고 알려져서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었고.”
JE가 룸미러를 통해 한율과 이해원을 번갈아 살폈다.
“가자마자 어디 구금되는 거 아니냐고.”
“설마요. 바보가 아닌 이상, 초거대 괴물을 기절시킨 사람의 동료를 건드릴까. 도움을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야, 세상에 상상과 상식을 뛰어넘는 멍청이가 얼마나 많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서 만나려는 사람이, 1130 증상자 협회 뉴욕지부 사람이거든요.”
“그러냐…. 그나저나 해원이 넌 영어 괜찮아? 서한율 없이 혼자 다녀도 되겠어?”
“아….”
“아니, 무시하는 게 아니라. 네가 미국 스케줄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이해원이 룸미러를 통해 마주친 JE의 시선을 피했다. 착각일까. 그의 눈동자가 살며시 흔들렸다.
“어떻게든… 되겠죠. 번역기 앱도 있으니까, 네. 괜찮아요. 문제없을 거예요.”
“서한율. 쟤 정말 혼자 다니게 둬도 괜찮겠냐? 넌 걱정이 안 되는데, 쟤는 왠지 어리바리하다가 또 납치당할 것 같거든?”
“형 용무 끝날 때까지 같이 다닐까요?”
한율까지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이해원이 손사래 치며 미소 지었다.
“아니야, 정말 괜찮아. 미국 가는 게 처음이라 긴장돼서 그래. 한율이 네가 새로 준 아이템도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제가 준 아이템엔 통역 마법이 없어요, 형. 그런 거 만들 기술도 없고.”
“괜찮아. 이우그룹 사람도 마중 나오기로 했거든.”
정말 괜찮은 거 맞나. 평소 점잖았던 사람이 이러니 더 걱정된다.
라디오에선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던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젯밤 송파구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동물들의 집단 이상 행동 현상은 멈췄지만, 홀린 듯이 거리로 뛰쳐나간 개와 고양이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주인들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동물들의 이런 집단 이상 행동 또한 게이트의 영향일 수 있다고 추측하며….]
“게이트가 아니라 펫펫바이오에서 실험 중이던 괴물 때문 아니었어?”
“지금 그 사실을 솔직히 밝혔다간 비난의 화살이 펫펫바이오, 그리고 실험을 지시한 정부에게 돌아갈 테니 숨기는 거 아닐까요?”
“아. 서한율 너도 고소당하게 생겼더라.”
한율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요?”
“정확히는 너 말고 제임스가. 인터넷에 ‘제임스 고소’라고 검색해 봐.”
대체 무슨 명목으로?
한율은 JE가 말한 대로 검색했다.
[게이트 방어선 사망 군인 유가족, “제임스 고소하겠다” 이유는]
제임스가 조금 더 일찍 나섰다면, 자기 아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지 않았을 거라 주장,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하겠단 이야기였다.
물론 제임스는 법적으로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고소 자체가 안 된다. 실존 인물이라 해도 접수 자체가 반려 당할 가능성도 크고.
“…….”
그러나 한율의 입가엔 메마른 미소가 번졌다.
본래 세상에서도 자주 받았던 원망이었다.
『당신 때문에 죽었어! 당신만 더 빨리 왔어도…!』
『왜 그러셨습니까? 마법사님이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왜 우릴 버린 겁니까?』
한율은 핸드폰 전원 버튼을 가볍게 누르며 화제를 돌렸다.
“우리 두 사람 없는 동안, 남은 사람들이랑 구동이 잘 부탁해요. 남석이 형 의심도 조심하고요.”
“어.”
잠시 후, 한율과 이해원이 비행기에 탑승한 시각.
미국 본토에 있는 게이트 조사위원회는 난리가 났다.
“이해원, 그리고 각성자 서한율이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합니다!”
다시 이해원을 만나려 양평으로 갔던 한국의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김민지와 찰리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참 부지런히 바쁜 분이시네요. 찰리, 그저께 이후로 제임스 모습을 본 사람도 없는 거죠?”
“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의심처럼 정말로 제임스가 미스터리 해커와 관련된 인물이라면.”
“그와 아는 사이인 이해원 씨도 갑자기 미국으로 향했다….”
김민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설마 다음 게이트 발생 장소, 미국인 건 아니겠죠?”
반갑다, 자식아
“저기 혹시…. 서한율 씨 아니세요?”
커다란 선글라스로 가렸는데 잘도 알아보네. 한율은 앞자리 승객의 물음에 단호히 부정했다.
“아닌데요.”
“흔한 피부랑 이목구비가 아니신데….”
미심쩍은 표정을 지은 앞자리 승객은 자세를 바로 했다가, 계속 힐끗힐끗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한율은 담요를 덮고선 편히 잠을 청했다.
약 14시간 후.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잠에서 깼다. 한율은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어스래빗 단톡방.
-[숙소 털렸다고 기사 뜨니까 이프림 난리 났당]
-[(링크)]
-[서한율 뉴욕에 도착하면 몇 시?]
-[도착하면 톡 하겠지]
-[나기혁 씨는 펜션에 아예 눌러살 기세던데ㅎㅎ]
-[원카운트 숙소에 혼자 있기 무섭다더라ㅋ 가족은 다 호주에 있고]
톡을 쭉 훑어보니, 숙소는 당분간 유호와 이건우가 지키기로 한 모양이었다.
-[TV만 해도 몇천만 원짜리잖아. 다른 가전제품도 다 비싼 거고. 무겁고 커서 당장 안 들고 갔을 뿐이지, 또 올지도 몰라]
한율은 톡을 올렸다.
[만약 도둑들이랑 마주치면 싸우지 마세요. 괜히 다치면 더 억울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