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서한율]
-[도착했냐]
[네. 이제 비행기에서 내려요.]
-[정체 드러나지 않게 조심히 다녀]
-[미국인들 우리나라 각성자한테 관심 진짜 많아서 이미 팬클럽 결성된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ㅋ]
-[그리고 넌 이미 연ㅋ예ㅋ인ㅋㅋㅋ]
[네, 조심히 다닐게요.]
길우성은 조금 전 찍은 듯한 달냥의 사진을 연속해서 올렸다. 한율은 그중 잘 나온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한율 씨. 즐거운 여행 하시길.]
[네, 감사합니다.]
입국 심사는 순조롭게 통과. 다음 차례인 이해원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공항 경찰과 보안요원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역시, 바로 시선이 붙네.’
“한율아.”
곧 이해원이 나왔다.
“별일 없었어요?”
“응. 무슨 일로 왔냐고 물은 것 빼곤 별말 안 하더라.”
[실례합니다.]
이쪽을 주시하던 경찰 두 명이 다가와 씩 웃었다.
[두 분 잠깐 선글라스 벗어주실 수 있을까요?]
[네.]
한율은 흔쾌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이해원도 눈치껏.
헉. 그 모습을 본 한국인 몇 명이 입을 틀어막았다. 비행기에서 앞자리에 앉았던 여성은 일행의 팔을 때렸다.
“저것 봐, 내 말 맞지? 서한율 맞았다니까?!”
“옆에는 이해원 아냐? 왜 여기에 있지? 혹시 제임스도 같이 왔나?”
“제임스가 미국에 오면 우리나라는 어떡해?”
찰칵, 찰칵. 핸드폰부터 꺼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또 그 모습이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끌어들인다. 그에 부담을 느꼈는지, 경찰이 황급히 손짓했다.
[다시 쓰셔도 괜찮습니다. 한국의 유명인이신가 봐요. 알아보는 분들이 많으시네.]
[네. 그럼 이만 가도 될까요?]
[혹시 모르니 안전을 위해 입국장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맡겨둔 수화물이 있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희끼리 갈게요.]
[그러시죠. 그런데 가는 방향이 같네요?]
마음대로 해라. 한율은 어깨를 으쓱이곤 이해원과 걸음을 옮겼다. 경찰들은 두 사람 뒤에 붙다시피 경호원처럼 움직였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을 알아보고 핸드폰을 든 이들은 경찰들의 위압적인 기세에 눌려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형, 비행기에서 한숨도 안 잔 것 같던데. 컨디션 괜찮아요?”
“시차 적응하려고 일부러 참았어. 한율이 너야말로 괜찮아? 나중에 제대로 못 자면 어떡해?”
“전 자기로 마음먹으면 잠들거든요. 너무 많이 자서 못 자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평소에 시간을 알차게 써서 그런가 보다.”
우웅.
“잠깐만. …네.”
이해원이 전화를 받으며 벽 쪽으로 붙었다. 한율도 자연스럽게 멈추자, 따라오던 경찰들도 멈췄다.
[안 가세요?]
딴청을 피우던 경찰은 말없이 씩 웃었다. 한율도 장난처럼 웃곤 이해원을 바라보았다. 통화가 끝났다.
“마중 나오기로 한 이우그룹 사람. 바로 앞에서 경호원들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대.”
오늘은 시간이 늦어, 같은 호텔에 묵은 뒤 내일부터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네. 저녁은 호텔 룸서비스로 해결할까요?”
“응.”
경찰들은 입국장까지 따라 나오다, 한율과 이해원이 마중 나온 사람들과 만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갔다.
이우그룹에서 나온 사람은 중후한 분위기를 지닌 중년 남성이었다.
“두 분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호텔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리겠습니다.”
그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은 모두 한국인 혹은 한국계로 추정되었다. 그들은 묵묵히 한율과 이해원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두 사람이 함께 묵는 객실 앞을 지켰다.
“괜히 나 때문에 내내 감시당하게 될 것 같아 미안하네요.”
“괜찮아. 오히려 귀빈 대접받는 것 같아서 좋은걸. 그리고 한편으론 날 위해서였잖아. 그나저나….”
이해원이 자신의 캐리어를 살폈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꼭, 감시 대상자의 소지품에 몰래 도청기나 위치추적기 붙여놓던데. 설마 그런 짓을 하진 않았겠지?”
“설마요. 하하.”
교과서 읽듯이 웃으며, 한율도 자신의 옷과 가방 여기저기를 살폈다. 조금 전에 경찰들이 뒤로 바짝 붙어서 따라온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그래서.
“한율이 넌 내일 몇 시에 나갈 거야?”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한율은 미국 1130 증상자 협회 뉴욕지부의 애니 크루즈에게 연락했다. 뉴욕에 가는데 잠깐 만날 수 있겠냐고. 애니는 기꺼워하며 다른 1130 증상자와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다.
“10시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9시 즈음? 형은요?”
“나도 그때쯤 나갈 것 같아.”
이후 대화는 TV를 켠 채 핸드폰 메모 앱으로 나눴다. 그리고 룸서비스로 시킨 음식을 먹고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이 나라에 있는 동안엔 계속 감시가 따라붙겠지. 내일 애니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도 사람이 깔려있을 테고. 어쩌면, 애니와 함께 온다는 인원 전부 미 정부 측 사람일 수도.’
이해원뿐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요주의 인물로 올라가 있을 터다. 이해원과 여러모로 친분이 깊고, 이곳까지 함께 왔으니. 대체 미국에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이유로 온 건지 무척 궁금해하고 있을 터다.
그리고 한율은 그들에게 협조하는 척, 슬며시 호기심을 풀어주며 역으로 정보를 캘 생각이었다.
이우그룹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국의 각성자 정보를.
* * *
한율이 뉴욕 호텔에서 잠든 그 시각, 한국 양평.
인기 아이돌그룹 원카운트 멤버 나기혁은 파란달 펜션 근처에 있는 계곡을 헤매고 있었다.
‘분명히 이 근처 같았는데….’
파스락.
“……?!”
동물이라 보기엔 큰 인기척이 들렸다. 나기혁은 야구 배트를 꽉 움켜잡은 채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여기에서 뭐 해요?”
그곳엔 JE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커다랗고 새카만 눈망울과 새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긴 귀가 늘어진 작은 토끼의 리드 줄을 잡고서.
“야구 방망이까지 들고. 도둑이라도 때려잡게요?”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나기혁에게 JE는 조금 불편한 사람이었다.
JE가 오랫동안 음악방송 MC를 한 데다 스타믹스도 제법 인기가 많은 팀이라 여기저기에서 자주 마주쳤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무뚝뚝한 걸 넘어 쌀쌀맞기 그지없는 선배였으므로.
여기에 자신과 썸을 탔던 아이허니의 유린.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한때 유린이 JE를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었다. 둘이 친하다는 것도 알고.
“그냥…. 답답해서 산책 나왔어요. 이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호신용 무기로 잠깐 빌린 거고. 그런데 그 토끼는… 토끼 맞죠?”
“토끼가 토끼지, 그럼 뭐겠어요.”
“말 편히 놓으세요, 선배님. 제가 두 살 아래잖아요.”
“그래. 그런데 산책을 참 험한 길로 다니네. 그러다 길 잃어도 모른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선배님은 여기 잘 아세요?”
JE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네…. 저기, 선배님.”
나기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옆을 지나치는 JE를 불렀다. 느릿하게 폴짝거리는 토끼의 속도를 따라, 그도 걸음이 느긋했다.
“……?”
나기혁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조용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JE가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게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므로.
“혹시 이 근처에… 이만한 크기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있고, 그 사이로 작은 굴이라고 해야 하나? 찐빵이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 아무튼 그런 곳이 있어요? 옆에는 저거랑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이 계곡 방향으로 이렇게 휘어져 있고요. 아. 바위 앞엔 빨간색 장난감 깃발 하나가 꽂혀 있어요.”
“…….”
JE는 이상한 시선으로 나기혁을 바라보았다. 왠지 오늘따라 이쪽으로 구동의 산책을 시키고 싶어서 왔건만,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만난 후배가 뜬금없는 걸 묻는다.
그것도 펜션에 온 지 고작 며칠밖에 안 된 녀석이.
‘특징은 아는데, 장소는 모른다?’
조금 전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렇게 복잡한 곳도 아니었다. 물소리가 나는 계곡으로 나와, 그 길을 따라 걸으면 펜션으로 통하는 길과 만나므로.
“유명한 블록 장난감 로고 새겨진 그거?”
“네, 그거요!”
“그게 아마….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나기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가 싶더니 표정이 다급해졌다.
“일단 어딘지 알려주세요. 확인부터 하는 게 먼저라서요.”
뭐지. JE는 조금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
곧 나기혁이 설명한 곳과 들어맞는 장소에 도착했다.
킁킁. 도착하기 전부터 연신 코를 들어 냄새를 맡던 구동이 덥석, 앙증맞은 손으로 JE의 바지를 잡았다.
끼웅.
“왜 그래, 구동아. 무슨 이상한 냄새 나?”
뀽….
나기혁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심호흡하며 야구 배트를 고쳐 잡았다.
“선배님, 잠깐 뒤로.”
“저 안에 뭐 있어?”
“그걸, 확인하려고요.”
그때였다.
파사삭! 바위틈 공간에서 무언가가 재빠르게 튀어나왔다. 나기혁은 눈을 크게 뜬 채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퍽. 갈색의 무언가가 배트 끝에 걸치듯 얻어맞아 나무에 부딪혔다.
컁!
“……?!”
짧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쓰러진 그것은, 얼마 전 남양주 미니 게이트에서 나왔던 쥐 닮은 괴물이었다.
괴물이 기절한 걸 확인한 JE는 놀란 눈으로 나기혁을 돌아보았다.
“너 어떻게….”
하아. 나기혁은 긴장이 풀렸는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몇 시간 후, 뉴욕.
잠에서 깬 한율은 JE의 톡을 보곤 고개를 기울였다.
‘나기혁이 게이트 괴물이 숨어있던 곳을 찾아냈다고?’
혹시 각성 능력이 괴물 탐지 쪽인가?
한율은 나중에 나기혁과 통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이해원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곤 객실을 나섰다. 여전히 객실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어깨에는 작은 메신저백을, 한 손으론 작은 캐리어를 끌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먼저 택시를 타고 도착한 장소는 작년, 게이트 환영을 만들었던 곳.
게이트 지도에는 안전하단 의미로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그러나 히말라야와 한국에 연이어 열린 게이트를 보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는지, 반경 30m가 통행금지 구역으로 설정되었다.
바리케이드 앞에는 게이트 환영이 생겼던 곳을 배경으로 촬영하는 관광객들과 거리 예술가들로 복작거렸다.
한율도 평범한 관광객인 척 핸드폰을 들어 찰칵, 셀카를 찍었다. 한 바퀴 빙그르르 천천히 돌면서 영상도 촬영했다.
“안녕하세요, 서한율입니다. 저는 지금, 뉴욕에 와 있습니다.”
기다려주던 택시를 타고 애니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이동. 내릴 땐 기사에게 팁을 잔뜩 주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10분 남았지만, 카페에는 이미 애니 크루즈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율을 보자마자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율 씨, 여기예요!]
한율은 그녀와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애니. 잘 지냈어요?]
[저야 잘 지냈죠. 한율은… 괜찮아요?]
[보다시피 멀쩡해요. 이분들이….]
애니와 함께 있던 세 명의 남녀가 일어났다.
짧게 묶은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안경을 쓴 남성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크 네빌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두껍고 거칠어 보이는, 총을 많이 다룬 특유의 손. 손등에서 안쪽까지 이어지는 문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
한율은 절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악수에 응했다.
처음부터 이 작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서한율입니다.]
‘반갑다, 이 개자식아.’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루크 네빌.
본래 세상,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을 학살하는 데에 앞장섰던 각성자. 손끝에서 생성된 날카롭고 긴 불꽃 채찍으로 도망치던 어린아이를 휘감아 태워 죽이고, 마치 벌레를 잡은 것처럼 만족스럽게 웃던 쓰레기.
이전에도 죽였지만, 다시 마주하니 또 고통스럽게 쳐죽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한율은 살기 대신 호기심을 보였다.
[손이 굉장히 단단하시네요.]
[하하. 몸을 단련하는 게 취미거든요.]
다른 두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먼저 한국의 게이트에 관해 듣고 싶어 했다. 그 후엔 능력을 각성하게 됐을 때의 모든 상황을.
한율은 익히 알려진 사실과 개인 감상을 섞어서 들려주었다.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정보가 넘쳐나는 터라 새로운 것도 없었지만, 네 사람은 집중해서 경청했다.
[그러고 보니 한율 씨, 그 유명한… 이분하고 아는 사이죠?]
애니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진은수의 사진을 내밀었다.
[게이트 방어선에 합류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혹시 평소에 연락 주고받으세요?]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요즘 체력 단련을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방어선도 일종의 전쟁터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 모자란 체력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고요.]
[멋있네요. 나라면 정말 강한 힘이 생겨도 선뜻 그럴 용기가 나지 않을 텐데.]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저도 이 친구가 존경스러워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곳에 자원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루크 생각은 어때요? 만약, 제임스처럼 정말 강한 힘을 갖게 되면?]
루크가 기세 좋게 대답했다.
[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갈 겁니다. 원래 내가 군인이었는데….]
한율이 이미 알고 있는 그의 이야기가 줄줄 시작되었다. 파병을 갔다가 부상 때문에 강제 전역하게 된 게 천추의 한이 되어,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정말로, 주어진 신비로운 힘이 더 발전하는 경우는 없을까요?]
[게임에서 레벨 업하는 것처럼요?]
[네. 아직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들어보니 각성자의 능력을 연구하는 곳도 생긴다던데….]
그들과의 대화는 컵 바닥에 남은 커피가 굳을 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