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4화 (324/427)

계마루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웃었다.

“저 형님도 영화 찍으시는데?”

한편, 막 대문을 나서려던 JE는 도로 몸을 돌렸다.

“결계 발동시키래.”

“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형은?”

“해원이가 하는 거 본 적 있어. 서한율이, 마력 없어도 발동되게끔 전등 스위치처럼 만들어놨더라. 펜션 결계처럼.”

“오.”

두 사람은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까악! 그들을 시끄럽게 불러냈던 까마귀들이 이번엔 집 뒤쪽으로 날았다. 그리고 담을 넘으려던 불청객들을 공격했다.

콕, 콕, 콕!

시커멓고 커다란 까마귀들이 달려들어 두려울 법도 하건만, 선두로 담을 넘던 침입자는 한쪽 팔로 얼굴을 보호하면서도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그리고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사뿐히 안으로 착지했다.

반면, 다른 침입자는 볼썽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떨어졌다.

“흐악…!”

쿵.

먼저 들어온 침입자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단검을 꺼냈다.

‘이래서 일반인은.’

까악! 침입자는 제게 달려드는 까마귀를 향해 단검을 강하게 찔러넣었다.

푹. …꾸륵, 꾹.

단숨에 급소를 찔린 까마귀는 크게 펼친 날개를 부르르 떨다가 떨어졌다. 털썩.

그 순간이었다.

“……?!”

침입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높이 들었다. 푸드덕. 공격 태세를 갖추던 다른 까마귀들이 돌연 하늘 높이 날았다. 살랑거리던 미약한 바람이 멈추고, 공기가 고요해졌다.

마치 투명하고 거대한 수족관 안에 갇힌 것 같은 느낌.

‘뭐지?’

그는 잔뜩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설치된 CCTV 사각지대와 그림자 아래로 숨어서.

그러다 우뚝 멈췄다.

‘왜 아무도….’

이해원의 집을 살피기로 한 건 자신을 포함해 넷. 까마귀들도 멀리 날아갔건만, 누구도 넘어오는 기척이 없었다.

팟. 집안과 외부 조명이 일제히 켜졌다.

“……!”

그는 숨을 죽이고 벽에 밀착했다.

위에서 목소리가 내려왔다.

“야. 다 보이거든?”

“……?!”

놀라서 고개를 든 순간, 번쩍.

핸드폰 카메라 플래시로 추정되는 강렬한 빛이 시야를 장악했다. 탕, 탕. 동시에 따가운 무언가가 모자를 쓴 그의 머리와 어깨를 사정없이 때렸다. 눈에 띄는 야광 페인트가 선명히 번졌다.

‘이런…!’

실탄이 든 총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침입자는 잽싸게 달려 담을 넘으려 했다.

그러나.

빨랐던 속도만큼 큰 충격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쾅!

“악…!”

결계에 세게 부딪힌 침입자의 몸뚱이가 다시 기우뚱 넘어왔다. 흐릿해지는 그의 눈에 2층에서 페인트볼 건을 쏜 청년, JE의 사나운 미소가 비쳤다.

“미안한데, 너 지금 갇혔어.”

탕.

잠시 후. 계나리가 언덕 위 집으로 찾아왔다.

“무기 준비해놓길 잘했네요. 만약 놓쳐도 금방 잡을 수 있겠어요.”

창고에는 조금 전에 잡은 침입자가 밧줄로 꽁꽁 묶인 채 기절해 있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엔 형광 페인트가 요란하게 묻었다.

박가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어떡하죠? 이 집과 펜션에 미스터리한 결계가 있단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예전에 교장 쌤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괜찮대요. 이렇게 될 경우도 생각하고 해원 씨를 제임스와 동행하게 한 거라서. 너무 대놓고 알려져도 곤란하지만, 어차피 결계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자들이 상식적이고 양심 있는 사람들은 아닐 거라면서요.”

계나리가 음험하게 웃었다.

“막말로,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도 따질 수나 있겠어요?”

박가람도 비슷한 미소를 씩 지었다.

“듣고 보니?”

“장난은 그만하고. 이놈도 경찰에 넘길까요?”

경보음을 듣고 깬 사람들은 관리동의 CCTV 모니터를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보안업체 직원들도 출동했다.

펜션에 침입하려던 사람은 모두 여섯. 하나같이 어두컴컴한 옷과 모자, 마스크를 쓴 그들은 까마귀의 공격을 받고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몇 명은 놀랍게도 까마귀를 잡았다.

하지만 담을 완전히 넘으려던 순간, 무언가에 가로막혀 당황. 허공에 손을 더듬던 그들은 방범 경보음이 울리고 모든 조명이 켜지자 차를 타고 도망쳤다.

계곡 가는 길목에 설치된 CCTV는 결계 범위 안쪽에 있었던 터라 아무도 찍히지 않았다.

“각성자로 보이는 놈들도 섞여 있었잖아요. 이놈한테서 자백을 받으면 좋겠지만… 쉽게 대답하지 않을 게 뻔하고.”

“이우그룹에 연락하는 건? 서한율은 지금 전화기 꺼져 있잖아.”

“으음….”

계나리는 다시 침입자를 살폈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겨봤더니 명백한 외국인이었다. 군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피지컬도 좋고, 오래된 것 같은 크고 작은 흉터도 많았다.

잠시 고민하던 계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놈도 경찰에 신고하고 넘겨요. 이우그룹에도 연락하고요. 현재 국내 각성자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진 곳이니까, 이런 짓에 동참할 만한 놈들이 누군지 추릴 수 있을 거예요.”

* * *

미국 보스턴.

한율은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야 핸드폰에 쌓인 부재중 전화를 확인, 양평에서 벌어진 일을 듣게 되었다.

“차분히 대처 잘했어. 일단 CCTV에 찍힌 영상 보내줘. 혹시 모르니 게방위에도 연락해볼게.”

-[네!]

곧 계나리가 메일을 보냈다.

한율은 통로 벽에 등을 붙인 채 영상을 확인했다.

침입자들이 모두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움직임을 보아 계나리의 추측대로 각성자나 훈련받은 군인 같았다.

‘내가 있었다면 바로 정체를 캘 수 있었겠지만.’

한율은 주위를 살폈다.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 중 몇 명이 굼뜨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 중엔 이쪽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미 정부가 보낸 인사도 있지 않을까.

달리 생각하면,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접근을 막아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내가 아닌, 양평 펜션을 노린 걸지도.’

한율은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한율’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아는 게 바로 그 두 사람이므로. 해가 지면 무조건 결계를 작동시키라고 하긴 했지만, 조금 걱정되었다.

-[…응, 율아.]

모친이 잔뜩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해서 죄송해요. 잘 계시나 걱정돼서요.”

-[응…? 여긴 별일 없는데…. 왜? 무슨 일 있어?]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무 일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결계 덕에 침입 시도가 있었단 걸 감쪽같이 모르고 있거나.

“아니에요, 주무세요.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응, 조심히 다녀. 밥도 잘 챙겨 먹고.]

“네.”

캐리어를 찾은 한율은 공항 순환버스를 타고 렌터카 업체가 모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약한 렌터카의 키를 받았다.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웨이크필드의 한 호텔이었다.

도청기나 카메라가 설치되진 않을까, 예약 문의 전화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갔으나 다행히 남은 객실이 있었다. 호텔은 오래돼서 전체적으로 낡았지만, 창밖으로 잔잔한 호수가 펼쳐진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공기도 맑고.

한율은 짐도 풀지 않은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음 마법을 전개, 애니에게 주었던 키링과 똑같은 물건을 꺼냈다. 같은 파장으로 맞춘 통신 마법 아이템이었다.

사아. 살며시 마력을 불어넣자 애니 크루즈가 아닌, 수잔 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뉴욕에서 만난 택시 기사가 중계기 역할 아이템을 잘 뿌려줬는지, 음질 상태는 양호했다.

[웨이크필드요? 왜 하필 거길…. 그쪽에 연고가 있었나요?]

[자료상 전혀. 다행히 그가 체크인한 호텔에 남은 객실이 있어, 지금 요원들을 보냈습니다.]

[신중히 움직이라고 하세요. 한율, 분명히 미스터리 해커와 연관 있어요.]

역시, 수잔 또한 단순한 1130 증상자가 아니라 미 정부 측 인물이었다.

한율은 통신 아이템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루크에게서 뜯어낸 미국 예비 각성자 리스트를 살폈다. 이우그룹 자료에 없는 인물 중 낯익은 인물부터 추리고, 미리 없애두는 게 좋은 방해물을 분류했다.

사실 방해물이라고 모두 루크나, 스위스에서 없앤 위고처럼 인간쓰레기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을 게이트 괴물로부터 구한 각성자. 영웅이라 불리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구인들에게만.

[…서한율이 소유한 펜션과 이해원의 거처를 침입하려던 자들 중, 잡힌 한 명의 신원이 파악되었습니다.]

[어디 소속의 누구죠? 사진은?]

한율은 자료를 살피는 걸 멈추곤 귀를 기울였다.

[러시아 출신 용병으로….]

다음 날.

한율은 웨이크필드의 한 초등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여기도.’

레드 게이트 예상 지점이라서 그럴까.

뉴욕의 환영 게이트가 발생한 장소보다 더욱 넓은 범위가 통제 구역으로 설정되었다. 본래 이 근방에 살던 주민들은 불안함을 느끼고 이사했는지,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게이트 관측을 위한 장비, 군인들만 눈에 띄었다.

한율도 차에서 내려, 멀리 게이트 예상 지점을 바라보았다.

서울에 게이트가 생긴 이후, 한율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왜 하고많은 게이트 중, 하필이면 내가 있는 한국의 게이트가 빨리 열린 걸까.

혹시 내가 마법을 사용한 게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히말라야산맥 근처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만약 내 마법이 예상 시기를 앞당긴 ‘원인 중 하나’라면?’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다면, 강한 마법을 사용할 시 그 원인 자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실험해봐야겠어.’

부르면 오던데

고은훤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정원에 이런 게 있었나?’

정원 구석에 무언가를 묻은 것 같은 작은 봉분이 생겼다. 팻말도 꽂혀 있었다.

[까 공(公)]

흐아암. 박가람이 요란하게 하품하며 나왔다.

“형 진짜 새벽에 한 번도 안 깨고 잘 자더라.”

“무슨 일 있었어?”

박가람은 새벽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점점 눈이 커지던 고은훤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나 왜 안 깨웠어?!”

“나랑 지은이 형도 정신없었거든.”

“그럼 이건?”

“매일 여기 놀러 오던 까마귀 중 하나. 우리보다 먼저 나쁜 놈 쫓아내 주다가 그만….”

“아….”

고은훤은 까마귀의 묘를 향해 성호를 긋고 묵념했다.

‘평소에 무섭다고 싫어해서 미안해.’

박가람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크게 한숨 쉬었다.

“어쨌든 난 펜션으로 내려가 볼게. 경찰이 또 온다고 그랬거든.”

“나도 같이 가.”

펜션에는 어스래빗과 같은 소속사 배우인 박현우가 와 있었다. 길우성의 누나, 길미현의 남자친구이기도 한 그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전혀 안전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 누난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안 돼요!”

“응?”

길우성이 반대하기 전, 계나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끼어들었다.

“미현 언니 이제 막 양궁 배우기 시작했는데, 지금 가버리면 너무 아깝잖아요. 생존 기술 하나쯤은 꼭 익혀야 하는 이 시대에…!”

“생존 기술?”

실은 펜션에 여성 비율이 지극히 낮아서 반대하는 거지만, 박현우는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럼 안 되지. 그럼… 그럼! 나도 여기에서 지내는 수밖에.”

길우성이 박현우를 향해 두 눈을 부라렸다.

“박현우 씨는 가서 가족분들 지키셔야죠. 응? 어디 집주인 허락도 안 받고 제멋대로, 응?”

“괜찮아. 서한율이라면 무조건 OK 할 테니까. 내가 그 녀석이랑 같이 드라마도 찍고, 마, 밥도 같이 먹고, 마.”

라이언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싫어. 옆에 커플 있으면 불편해.”

“유찬이 형네는?”

“부부는 괜찮아. 가족이잖아.”

“우리 곰순인 가족인 내가 지킬 테니까 박현우 씨는 빠지시지?”

“진짜 이럴 거냐, 처남?”

“싸우자, 박현우!”

박가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작 화제의 중심인 길미현은 저 멀리 과녁 앞에서 활을 쏘고 있었다.

“싸움은 당사자 앞에서 하지?”

“안 돼. 누나한테 혼나.”

“혼나라고 하는 말이다.”

고은훤은 박현우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배우 고은훤입니다.”

“어? 안녕하세요. 예전에 <별☆일없는 집> 촬영장에서 봤었죠? 제가 어리니까 말 편히 놓으세요.”

“네. …어, 응.”

“경찰은 몇 시에 온대?”

차남석이 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곧 도착할 것 같아요.”

잠시 후. 펜션 대문이 활짝 열리고 경찰 승합차 한 대와 군용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펜션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왜 군인들까지?

트럭 조수석에서 내린 군인이 절도 있는 자세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게이트 방어 지휘부 소속 중위 정상욱입니다. 여기 책임자분이?”

조유찬이 나섰다.

“펜션 주인은 지금 해외에 가 있고, 제가 임시로 관리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어제 잡은 게이트 괴물 때문에 오신 겁니까?”

“네, 그것도 있고….”

정상욱이 크게 주위를 둘러보곤 말을 이었다.

“오늘 새벽에 침입을 시도한 자들 중, 각성자가 섞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차 왔습니다. 현재 각성자의 범죄는 군경이 함께 수사하라는 지침이 내려와서 말입니다. 각성자마다 능력이 천차만별이고, 그중엔 상식을 뛰어넘는 위험한 힘도 있으니까요.”

“아….”

키가 큰 차남석과 고은훤 뒤에 숨어서 군인들을 훔쳐보던 계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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