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 오빠가 게방부에도 연락한다더니.’
군인과 경찰들은 펜션 부지뿐만 아니라 이해원의 집도 둘러보았다. 두 곳의 CCTV는 물론, 이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설치된 CCTV나 근처에 있는 다른 펜션과 집의 CCTV까지 협조를 구해 확인했다.
몇몇 군인들은 군견을 데리고 펜션과 이어진 계곡 쪽을 살폈다. 여기엔 나기혁과 JE, 차남석이 동행했다.
“저기, 이런 질문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나기혁과 JE가 게이트 괴물을 발견한 장소. 소총을 쥔 채 주변을 경계하는 군인을 향해 차남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군인이 작은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스물한 살입니다.”
“네….”
나보다 두 살 아래.
차남석은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쓴웃음을 삼켰다.
“정말 수고가 많으시네요.”
“아닙니다.”
JE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나도 군대에 가긴 가야 하는데. 입대하면 게방부로 자원하는 게 나으려나.’
서한율은 마나 조금 다룰 줄 안다고 어쭙잖게 나서지 말라고 거듭 충고했지만 말이다.
“…….”
아이돌 활동을 위해 이런저런 핑계로 입대를 미룬 건 나기혁도 마찬가지였다. 나기혁은 꿈에서 괴물이 이곳에 숨는 걸 봤다는 반 거짓을 말하면서, 저보다 어리거나 또래인 군인들을 힐끗거렸다.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물 말고 사람이 펜션으로 접근할 만한 길은 없습니까?”
JE가 대답했다.
“저쪽은 산으로 이어졌고…. 여기 반대 길도 쭉 따라가면 가능할 겁니다. 길이 험해져서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다른 펜션하고 이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계곡 쪽을 통해 침입하려다 결계에 부닥친 자들도 있었으나, CCTV엔 전혀 찍히지 않았기에 말하지 않았다.
“네. 세 분은 이만 펜션으로 돌아가십시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조심하세요.”
계곡에 온 군인들은 세 팀으로 나뉘었다. 게이트 괴물의 동선을 역추적하는 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괴물을 수색하는 팀, 펜션에 들어올 수 있는 다른 길을 확인하는 팀.
“그런데.”
펜션으로 돌아가면서 나기혁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도 그렇고 군인들도 너무 과하게 신경 써주는 인상인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죠? 솔직히 각성자 섞인 범죄자 새끼들이 왜 굳이 이 펜션에 들어오려고 했는지 이해도 안 가는데.”
“그 이유야 들어오려고 한 놈들이 알겠지.”
“언덕 위 집에서 잡힌 놈 있다면서요. 여기 들어오려던 새끼들하고 한패 아니에요?”
“입 꾹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한대.”
걷다 보니 CCTV가 설치된 등이 나왔다. 차남석은 CCTV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 많은 인원이 땅에서 솟아나거나 날아서 온 건 아닐 테니, CCTV 동선을 역추적해보면 뭐가 나오겠죠.”
펜션 관리동의 관리실.
새벽에 찍힌 CCTV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보던 정상욱이 조유찬과 박가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까마귀들, 혹시 따로 훈련한 겁니까?”
박가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얘넨 처음 봤을 때부터 이랬어요. 제대로 된 문 말고 담을 넘으려 하는 사람들만 저렇게 막더라고요. 참 똑똑하지 않아요? 그런데 세 마리나 죽어서….”
정상욱의 부하가 말했다.
“여기, 이 각성자로 추정되는 놈들에 의해 다치거나 죽은 까마귀들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네.”
“까마귀 사체는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나무 아래에 묻어줬다고 했어요. 안내해드릴게요.”
박가람은 정상욱과 함께 관리실을 나왔다.
그때였다.
므앙.
“……?”
고양이 울음소리에 정상욱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2층에서 내려오는 길우성의 품에서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아.’
제임스와 이해원이 처음 게이트 방어 지휘부로 찾아왔을 때 데려온 고양이와 상당히 닮았다. 므앙, 하는 특이한 울음소리도.
‘아니, 그때 그 녀석인가? 이해원이 바로 언덕 위 집에서 지내니까….’
정상욱의 시선이 달냥에게 박혀 떨어지지 않자, 길우성이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고양이 귀엽죠, 선생님? 달냥아, 인사드려. 게이트 괴물들과 싸우시는 훌륭한 군인 선생님이셔.”
므앙?
“막내야, 까마귀들 정확히 어디에 묻었는지 가르쳐줘.”
“그건 왜?”
“도둑놈들이 어떤 식으로 까마귀들을 죽이고 공격했는지 조사하신대.”
“응. …그럼 다친 애들은 안 찾아도 돼요?”
걸음을 옮기려던 길우성은 정상욱을 향해 물었다. 정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친 녀석들도 살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잡기가 쉽겠습니까?”
“부르면 오던데영?”
“네?”
“부르면 온다고? 까마귀들이?”
박가람도 의아한 얼굴로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훗. 길우성이 미소 지었다.
“내가 진짜 놀라운 거 보여줄게.”
밖으로 나온 길우성은 달냥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곳을 보며 두 팔을 하늘로 활짝 벌렸다.
“까마귀들아, 안녕! 이리 와, 나랑 놀자!”
조용.
“…….”
“……음. 부끄러움은 형인 나의 몫인가.”
뒤따라 나온 조유찬과 밖에 대기하던 다른 군인들, 그리고 저 멀리서 걸어오는 차남석과 JE, 나기혁까지.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그때, 달냥이 우렁차게 울었다.
므와오오옭!
…푸드덕! 까악, 까악.
나무에서 까마귀 십여 마리가 일제히 날아오르더니 이곳, 정확히는 달냥 앞에 하나둘 사뿐히 착지했다.
“……!”
“이런 미친?!”
“세상에….”
씨익. 길우성이 박가람을 돌아보며 기고만장한 웃음을 지었다.
“어제 내가 온종일 달냥과 놀아주며 발견한, 달냥의 놀라운 재능이지.”
박가람은 놀라서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아니. 이건 분명 서한율 작품이야.’
하. 멀리서 그 광경을 본 차남석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레 머릿속에 어떤 사건이 떠올랐다.
2년 전, 정원그룹 정이장 실체 폭로 사건.
웬 까마귀가 기자에게 정이장 자료가 담긴 USB를 건넸다고 했던가. 어쨌든 그 덕에 정이장에게 폭행당한 뒤 되레 곤란한 상황에 빠졌던 포토그래퍼 김 쌤은, 예정대로 어스래빗 앨범 재킷 촬영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설마….’
* * *
미국 매사추세츠 웨이크필드.
한율은 호텔 근처, 어둠이 내려앉은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호수에 비친 달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지금쯤이면 저주가 발동되고도 남았을 텐데.’
띠링. 애니 크루즈로부터 메일이 왔다.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에요, 한율.
루크가 조금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한율은 감시를 의식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감추기 위해.
“…….”
정말 유감이었다. 이번에도 직접 사지를 하나씩 잘라내며 천천히 불태워 죽이고 싶었건만.
우웅.
이우그룹 부회장으로부터 전화.
“네. 알아내셨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러시아 쪽 소행 같습니다. 우리 그룹이 주관한 1130 증상자 설명회 참석자 중에 러시아 유학 경험이 있는 ‘김대현’이란 인물이 있는데, 행실이 썩 좋지 않은 멍청이입니다.]
부회장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설명을 이었다.
-[각종 사고 벌금과 합의금, 카드빚을 갚느라 사채만 4억이었습니다만, 최근 누군가로부터 거액을 받았는지 단번에 모두 정리했더군요. 러시아에서 발신된 번호와 여러 번 통화한 흔적도 있고요. 그리고 정부의 각성자 국가 관리 정책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반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놈도 양평에 왔었다는 거죠?”
-[침입 시도 한 시간 전, 가까운 읍내 편의점에 그자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가게 외부 CCTV에도 펜션 CCTV에 찍힌 것과 같은 차종이 찍혔고요. 아, 그러고 보니 김대현 이 자.]
바스락.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최은수 씨를 폭행 혐의로 고소한 적이 있습니다.]
떠나기 전에
지난 2월, 이우그룹이 첫 1130 증상자 설명회를 열었을 때였다. 진은수에게 팬인 척 접근해 성희롱하고 성추행까지 시도한 자들이 있었다.
당시 퍼플아워 매니저가 항의하다 싸움으로 번졌는데, 한 명이 싸움을 말리던 진은수의 손길에 과하게 넘어진 척하고선 폭행당했다며 신고했다. 그러나 모든 정황이 녹음된 파일과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결국 무혐의 처리.
이 사건은 기사로도 나며 실검 상위권에도 올랐다. 네티즌들은 그들이 폭행 합의금을 노리고 그런 짓을 벌인 게 아니냐 추측하기도.
“현재 행방은요?”
-[군경이 찾고 있으니, 김대현과 함께한 다른 자들의 윤곽도 곧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찾는 즉시 연락드리죠.]
“네.”
통화를 마친 한율은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들어가자, 만나기로 약속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율?]
한율은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요, 이안. 레드 게이트 예상 지점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보스턴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요, 뭘. 앉아요.]
1130 증상자인 이안은 유명한 언론사 기자이기도 했다. 현재 게이트 취재를 맡아 예상 지점을 일일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오히려 제 연락을 무시하지 않고 직접 만나자고 해서 얼마나 감동했는데요. 그런데 게이트에 정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이 먼 미국까지 오고.]
[친구가 미국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요. 그 친구가 미국이 초행이라 혼자 보내기 걱정됐거든요. 그리고.]
한율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한국 각성자 사이에 이런 소문이 돌아요. 게이트가 열리면서 발생한 정체 모를 에너지 영향을 받아 각성한 거 아니냐. 그렇다면, 능력이 약한 각성자가 예비 지역으로 미리 가 있으면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의 에너지를 더 받아 레벨 업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 소문이 있어요? 그렇다면 그걸 직접 확인하기 위해?]
한율은 농담이란 얼굴로 웃었다.
[아니요. 정말 그렇게라도 강해지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어서요. 이안도 알다시피 한국 각성자 전부 1130 증상자잖아요. 그 말인즉슨, 게이트가 열리기 한참 전부터 보이지 않는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음.]
[그럼 이미 각성한 사람은 어떨까요. 게이트가 열리는 걸 미리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네…. 7월에 모든 게이트가 열릴 거란 미스터리 해커 집단의 예고가 빗나간 이상, 게이트가 실체화하기 전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네요. 정말로 게이트의 에너지로 인해 사람들이 각성한 거라면….]
[물론 전혀 못 알아차릴 가능성도 있지만요.]
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넸다. 한율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메뉴판을 훑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답답하기도 하고.]
[멋진 행동력인데요? 보통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남이 대신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나저나 혼자선 위험하지 않겠어요?]
[곧 이탈리아에 가봐야 해서 오래 다니진 못해요. 주문은 어떻게 할까요?]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한율은 이안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에게서 미국의 게이트 예상 지점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영업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종종 연락해요, 한율.]
[네. 늘 조심히.]
호텔까진 다시 느긋하게 걸어서 도착.
미 정부 측이 객실을 비운 틈을 타 이것저것 설치했을 확률이 크기에, 씻고 나서 핸드폰 좀 만지작거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옆 객실. 카메라와 도청기로 서한율을 감시하던 FBI 요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지켜봐도 별다른 특이사항 없는데요?”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과의 대화에도 특별한 점이 없었지. 그전에 통화한 상대방은? 누군지 알아봤어?”
“네. 이우그룹에서 1130 증상자를 관리했던 도단희란 사람의 번호였습니다.”
“음….”
“이 정도면 리드 요원의 감이 틀린 거 아닙니까? 뉴욕에서 만난 사람에게 준 물건도 평범한 열쇠고리였다면서요. 이해원은 몰라도, 서한율은 단순한 후원자일지도 모릅니다. 돈도 많고 평소 기부도 많이 하는 착한 친구니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쿨하게 OK 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래도 누군가 조직적으로 서한율의 펜션에 침입하려 한 거 보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계속 주의해서 지켜봐.”
“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리죠?”
스멀스멀.
그들의 객실 침대 아래. 뱀의 형태를 띤 그림자가 벽을 통과해 서한율이 있는 옆 객실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주 오래간만에 단잠에 취했던 FBI 요원들은 뒤늦게 깨어나 패닉에 빠졌다. 서한율은 새벽 일찍 호텔을 나간 상태였다.
“렌터카! 우리가 차에 붙인 GPS!”
“차는 이미 보스턴 공항에 반납된 상태입니다.”
“아, 환장하겠네! 공항에 있는 요원에게 연락해, 당장!”
그러나 돌아온 건, 렌터카를 반납한 서한율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대답이었다.
* * *
[제임스와 친분 이해원, 야간 주거침입자는 각성자?!]
[초거대 괴물, 육눈박이를 물리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각성자 제임스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아이돌이자 배우 이해원의 집에, 각성자로 추정되는 10여 명의 집단이 야간에 강제 주거 침입을 시도하다가 붙잡히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일 새벽 2시경, 이해원의 주거지를 침입하려던 이들은, 방범 시스템이 작동되기 전 평소 이해원이 돌봐주던 까마귀가 공격하자 초능력을 사용해 제압하거나 무자비하게 사살하는 게 CCTV에 찍혔으며, 이해원의 집에 머물던 지인 A씨에게 들키자 도주를 시도하다 한 명이 붙잡혔다.
(중략).
한편 이해원은 현재 개인적인 용무로 미국에 갔으며, 제임스는 휴식 중이라고 알려졌다.]
-열 명씩이나 몰려갔다고? 왜????
-이해원도 미스터리 해커 집단 소속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열 명씩이나 야밤에 쳐들어갔다고? 같은 각성자라는 놈들이?
ㄴ이해원 각성자 아님.
ㄴ팩트: 이해원 스스로 각성자 아니라고 부정한 적도 없음.
ㄴ군이 각성자 아닌 아무 능력 없는 미필한테 게이트 방어선 출입증을 줬겠냐
-내가 미스터리 해커고 정말 이해원이랑 제임스가 같은 식구면 빡돌듯. 기껏 게이트 몇 시간 동안 막아주면서 사람들 대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초거대 위험한 괴물 물리치는 것도 도와줬더니 열 명이나 우르르 집 털려고 몰려간 거잖아ㅋㅋㅋ
ㄴ나라면 바로 정나미 떨어져서 한국 떴다.
-이해원 집 털러 간 각성자 중 한 명, 예전에 진은수한테 폭행당했다고 ㅈㄹ한 놈이라던데
ㄴ진짜임?
ㄴ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