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7화 (327/427)

“말할게. 끊어.”

터엉! 힘에 부쳤는지, 군인이 거의 쓰러지듯 한율의 차를 잡았다.

그가 필사적인 얼굴로 외쳤다.

“살려주세요, 제임스! 제발!”

한율은 통화를 끊고선 창을 내렸다. 흐윽, 큭.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거칠어진 호흡과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우리, 우리 부대원들 좀 살려주세요, 제임스…. 제발…. 거기에 내 친구도….”

털썩. 군인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한율은 차에서 내려 그를 부축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요.”

군인의 사정은 이러했다. 방어선 내 건물 곳곳에 숨은 괴물을 찾아내 처리하는 게 그가 속한 부대의 임무였는데, 돌연 지반이 흔들리더니 부대원들이 있던 건물이 통째로 땅속 깊이 꺼져버렸다고.

“본부에선 지반이 너무 약해져, 흐윽, 2차, 3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당장 구조가 힘들다고 하고…. 아래에선 괴물의 울음소리랑 총성이 울리는데….”

그리고 필사적으로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하던 중, 제임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선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군인이 바닥을 더듬더듬,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한율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이대로라면 우리 부대원 전부 죽습니다! 제발요, 제임스! 우리 부대원들 좀, 제 친구 좀 살려주세요…!”

다 잡았어

“일어나십시오.”

다른 군인들이 달려와, 무릎을 꿇은 그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계급이 높아 보이는 한 군인이 그를 당장 일으키라고 지시한 까닭이었다.

제임스가 미스터리 해커 집단이란 의심은 많이 받지만, 진실을 정확히 아는 건 극히 일부였다. 그러나 게방부의 누구도 제임스에게 명령할 권한이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인 듯했다.

제임스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도.

“제임스….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리 부대원들 좀 살려주세요….”

“…….”

얼마나 여기저기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달려왔는지, 잡힌 팔이 풀리면 곧바로 쓰러질 것 같다.

덜덜 떨리는 군인의 다리를 바라보는 한율의 머릿속에 본래 세상, 전쟁터에서 겪었던 비슷한 일들이 떠올랐다.

한율은 정상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오늘, 괴물을 수색하던 장병들이 건물째 추락한 사고가 있었습니까?”

사고 장소는 육눈박이 괴물의 사체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 보통 괴물의 사체는 부패 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을 방지하기 위해 소각하지만, 몸집이 워낙 큰 데다가 게이트와 가까워서 처리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 지역은 열흘 넘게 이어진 전투의 충격이 축적되어, 똑바로 서 있는 건물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지반이 불안정한 상태. 당연히 무거운 장갑차나 전차, 중장비 또한 들어오지 못하는 구역이 되었다.

정상욱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부턴 차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위험합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크고 작은 균열이 쫙쫙 가 있거나 뒤틀려 올라온 길. 대기는 하수구와 괴물의 피 냄새, 화약 냄새가 뒤섞여 악취로 지독했다. 기온도 30도까지 육박해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저깁니까?”

두두두. 한율은 낮게 뜬 헬기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약 백 미터 앞. 거대한 싱크홀이 보였다.

“네.”

정상욱이 사과패드에다 본래 이 지역의 거리뷰를 띄워 건넸다. 편의점과 카페, 식당, 학원과 병원 등. 여러 가게와 회사가 입점한 8층짜리 빌딩이었다.

한율은 도움을 청했던 군인에게 말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모든 부대원을 구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없습니다. 이미 사망한 분도… 계실 테고요.”

그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전으로 생사를 확인한 인원은 넷. 그러나 추락 당시의 충격으로 무전기가 망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래에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괴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명 구조가 우선이니, 전투는 최대한 피할 생각입니다.”

한율은 지난번처럼 군에서 받은 장비로 무장하고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30분이면 충분하겠지.’

우웅.

“……?”

막 걸음을 내딛으려던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냈다. 게이트와 가까운 이곳에서 여전히 핸드폰이 된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네, 형. 도착했어요?”

* * *

제임스가 다시 게이트 방어선에 모습을 드러냈단 소식은 언론을 들썩이게 했다. 굉장히 강한 각성자이면서,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과거를 포함한 정체가 온통 베일에 싸인 까닭이었다.

여기에 미국조차 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더더욱.

그러나 제임스의 소식에 반가움이나 호기심이 아닌, 두려움에 벌벌 떠는 자들도 있었다. 바로 김대현과 함께 이해원의 집, 서한율의 펜션에 침입하려다 실패하고 도망친 집단.

“이제 어떡할 거야! 드미트리 그 새끼가 게이트 방어선으로 잡혀갔잖아! 지금쯤이면 분명히 만났을 텐데….”

“우리 이름 다 불어버리는 거 아냐? 다른 러시아 새끼들도 그새 쨌잖아.”

“…야. TV 볼륨 높여봐.”

뉴스 속보 자막.

[[속보] 제임스, 싱크홀 추락 건물에 갇힌 장병들 구출]

앵커가 떠들었다.

[2백 미터에 육박하는 초거대 괴물을 물리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준 각성자 제임스가 조금 전, 괴물 수색 임무 도중 건물째 싱크홀 아래로 추락한 장병 십여 명을 구출했습니다.]

[한편, 제임스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아이돌이자 배우 이해원 씨의 집 야간주거침입 사건을 합동 수사 중인 군경은, 범인들에게 죽거나 다친 까마귀를 조사한 결과 각성자 용의자들을 특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게이트 방어 지휘부는….]

“씨발, 진짜 어쩔 거야!”

“난 까마귀, 손끝 하나 안 댔다.”

“김대현, 그쪽이랑 아직도 연락 안 되냐?”

서울에는 방어선과 통제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살림살이 대부분을 남겨두고 대피해서 발생한 빈집이 많았다. 김대현 패거리는 그중 한 빌라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초조하게 핸드폰과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김대현이 발끈했다.

“좀 닥쳐봐! 선금받을 땐 존나 개꿀이라고 처웃더니, 더럽게 징징거리네.”

“뭐, 이 새꺄?!”

“기사 보니까 범인 중 한 명은 김대현 너 아니냐는 댓글 많더라? 그런데 너, 우리랑 연락할 때 흔적 안 남게 조심한 거 맞지?”

“…….”

“야, 김대현! 뭐라고 대답 좀…!”

퍼엉!

간밤에 라면을 끓여 먹고 방치했던 냄비가 돌연 터졌다.

“……!”

주춤거리는 각성자들을 노려보며 김대현이 으름장을 내뱉었다.

“씨발, 좀 닥치랬지. 죄다 머리 터지고 싶냐?”

투둑. 냄비가 터지면서 그 안에 말라붙었던 라면 건더기가 머리나 얼굴, 옷에 묻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 중 김대현의 능력이 가장 세면서 위험했으므로.

“아무리 몇 톤을 들어 올리는 힘이 있어도 사람 찾는 게 쉬워? 뉴스랑 기사까지 났는데 봐. 지금 우리 잡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드미트리 그 새끼 족치고 자백받으면 어쩔 건데? 그 새끼도 우리가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는데 무슨 수로.”

“하지만…. 너도 봤잖아. 그 투명한 보호막. 정말로 제임스가 미스터리 해커랑 한패면.”

“해커도 뭐 데이터가 있어야 추적을 하지. 그리고 잡혀도 발뺌하면 그만이야. 어차피 CCTV에 얼굴이 찍힌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하아. 겁쟁이 새끼들.”

“그래, 새끼들아.”

이중 유일하게 각성자가 아닌 김대현의 친구가 크게 말했다.

“잡혀도 우린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면 그만 아니야? 증거 있어? 증거가 있겠냐고. 다 정황상 추측이지. 까마귀 조사? 너희들도 제대로 모르는 힘을 쟤네가 어떻게 다 아냐? 진짜로 특정 끝냈으면 공개 수배 내렸겠지!”

“아니, 연락 흔적 안 남게 조심했냐고….”

“남아도 다 정황상 추측, 이 병신아!”

“…나 잠깐 물티슈 좀.”

소란스러운 와중. 조용히 대화를 듣던 청년, 강준식은 물티슈를 찾는단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여기 있는 각성자 대부분, 김대현과는 이우그룹 1130 증상자 설명회에서 처음 알게 된 사이였다. 솔직히 첫인상은 진은수에게 수작질하는 모습을 봐서 더러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게이트가 그가 사는 곳 근처에 열렸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알바를 하며 대학 등록금과 월세, 생활비까지 감당하던 강준식은 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마침 김대현이 SNS를 통해 연락해왔다.

큰돈을 벌고 싶지 않냐고.

‘그 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저들은 발뺌하면 그만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안심시키고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법적 처벌 기준이지, 사람은 다르다.

학교 교실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나도, 증거고 나발이고 심증이 가는 유력한 용의자부터 잡아 족치는 게 보통인데?

‘나라에서도 정체를 꽁꽁 감춰주는 각성자가 법대로 움직일 리 없잖아.’

러시아에서 온 사람은 넷. 그들은 적잖은 선금을 건네고선, 이해원의 집과 서한율의 펜션에서 제임스에 관한 단서를 얻으면 돈을 더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두 장소 모두 들어갈 수 없었다. 까마귀들이 집단으로 공격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보호막이 두 장소를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깨달았다.

색은 없지만, 게이트 괴물들을 가두고 막은 그것과 같은 종류라고.

‘미스터리 해커가 일부러 단단히 보호할 정도면…. 씨발, 우리 X 된 거 아냐?’

강준식의 시선이 창문을 향했다.

‘지금이라도 혼자 빠져나갈까? 솔직히 난 망보기만 하고 까마귀 깃털 하나 건드리지 않았잖아? 나가자마자 김대현한테 제안받은 메시지만 남기고, 나머진 다 삭제하면….’

푸드덕.

“……?!”

강준식은 난데없이 들린 날갯짓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커먼 무언가가 창 앞을 지난 것 같았다.

‘꼭 까마귀 같았는데…. 아냐, 설마…. 그럴 리 없어.’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뭐야.”

거실에서 떠들던 이들이 한꺼번에 입을 다물고,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딩동.

커다란 초인종 소리가 재차 집안에 울렸다.

강준식은 조심스레 거실을 살폈다. 인터폰 화면을 들여다본 한 명이 주춤주춤 그들을 돌아보았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누구야. 경찰?”

“여기를 어떻게 알고?”

“아, 아니….”

인터폰을 확인한 각성자가 옆으로 비켜섰다.

“이해원… 인데?”

“뭐?”

똑똑.

이해원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죽기 싫으면 얌전히 문 여세요.”

대체 여길 어떻게 찾아온 거지?!

당황한 그들은 창밖부터 살폈다. 인터폰엔 비치지 않아도, 군경이 함께 왔을 가능성이 크기에. 그러나 빌라 근처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에 혼자 왔을 리 없었다. 혼자 왔다면 무언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을 거고.

김대현이 자신의 가방에다 급히 노트북을 집어넣었다.

“다들 튈 준비해. 현관문 날려버릴 테니까.”

그때였다.

까악.

“……?!”

선명하게 들린 까마귀 울음소리. 모두의 시선이 거실 발코니로 향했다. 창문 앞 난간. 조금 전까진 없었던 까마귀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씨발, 재수 없게….”

똑똑.

“셋.”

이해원이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되레 오기가 생겼는지, 김대현이 쿵쿵거리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다 나와. 바로 날려버린다, 씨발.”

“둘.”

우지끈! 이해원의 카운트가 끝나기 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현관문이 짜부라지며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콰앙!

각성자들은 경악했다.

“이 미친 새끼가 진짜로…!”

저 정도 파괴력이면 현관문 앞에 있던 이해원은 최소한 즉사다. 야간주거침입 미수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였다.

그러나.

“뭐야…? 어디 갔어?”

현관문에 깔렸어야 할 이해원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공격할 걸 예측하고 미리 옆으로 피했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꺽.”

큰 힘을 써서 헉헉거리던 김대현이 돌연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털썩.

“뭐, 뭐…. 커억!”

이상한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악!”

공범들이 하나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꺾이거나 쓰러졌다.

강준식은 냅다 몸을 돌려 방 창문으로 달려갔다.

‘이해원도 각성자였어! 분명히 투명 인간 그런 종류…!’

까악.

창 앞에 다시 까마귀가 나타났다. 놀라 부릅뜨는 강준식의 눈에, 창에 비친 자신과 그 뒤에 흐릿하게 나타나는 이해원의 모습이 잡혔다.

“……!”

이해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얌전히 문 열라고 했지?”

챙그랑!

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순간, 강준식의 의식이 날아갔다.

털썩.

“…후우.”

이해원은 힘이 다한 아이템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박가람이 투명 인간이 되는 어마무시한 팔찌라며, 서한율이 착한 놈이라 다행이라고 떠들었던 물건이었다.

까악. 깨진 창문 사이로 까마귀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마리는 익숙하게 이해원의 어깨에 살며시 자리 잡았다.

이해원은 쓰러진 놈들을 살피며 서한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 잡았어.”

잘하셨어요

『우리 임무에 투입된 동료는 나를 포함해 여섯. 임무 내용은 제임스 당신과 미스터리 해커의 조사, 그리고 한국의 각성자 국가 관리 정책을 막는 것이었다.』

『이유야 짐작하는 그대로야. 앞으로 세계 곳곳에 한국과 히말라야처럼 게이트가 열릴 텐데, 능력이 뛰어난 각성자는 웬만한 무기보다 더 효율적이잖아. 바로 당신처럼. 그걸 국가에 귀속하는 걸 두고 보라고? 우리 조국을 위해 영입할 수 있는 인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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